풍류, 술, 멋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_02

醉月 2011. 3. 10. 08:46
<6> 금오산에서 낙동강을 보다
강변의 금빛 모래밭이 대운하 콘크리트 구조물로 변해서야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100일 묵언순례 팀에 합류한 필자(맨 앞)가 행군하고 있다.

 

금오산은 구미의 진산이다. 18년 전 낙동강 페놀 사태를 일으킨 구미공단이 있는 곳이다. 구미시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낙동강의 반짝이는 금빛 모래밭은 시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강이 구불거리며 가는 이유도 모르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강은 놀이터였으며 꿈과 낭만을 무르익게 한 교과서였다.

그곳에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묵언 순례 팀을 만났다. 승려, 신부, 목사와 시인, 원불교 원감 등 그들은 한강을 출발하여 낙동강에 이르는 경부대운하라 지칭하는 건설 구간을 따라 강을 살리고자하는 일념으로 고행 중이었다. 간밤에 구미대교 아래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는 박남준 시인은 순례 34일째라 하였다. 나는 철새 도래지 또는 중간기착지로 이름난 해평 습지를 지나 시내를 통과하여 칠곡 모래채취장까지의 일정에 함께했다. 세속인들이야 잠시도 묵언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소곤거렸다.

강은 겨울철 갈수기라서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이런 곳에 배가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물을 가두어야 하고 물을 가두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양안과 바닥에 설치해야 한다. 강의 모습은 사라지고 풀장과 같은 모습의 연속이어야 한다. 강안의 습지나 물고기의 서식지, 철새 도래지는 꿈도 꿀 수 없게 될 것이며 샛강은 흘러갈 곳 잃은 고아가 될 것이다. 고수부지에서 지하수로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도 물이 고갈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고 구미낙동강공동체 배문용 회장이 들려주었다.

고행 중인 이들은 무슨 이해관계가 있기에 다리 밑에서 한데 잠을 자고 뙤약볕 속을 하루에 6~7시간씩 걷고 있는가.

찬성론자들이야 자신들에게 직접 돌아올 이익이 있기에 기를 쓰고 찬성한다지만 이들은 오로지 양심에 반해 천리를 거슬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을 누워있는 분수대로 만들어 놓고 복원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무슨 짓을 더 못하겠느냐고 말한다.

대학 교수들도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다. 두 부류 중 한 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란다. 곡학아세인가 아니면 학자적 양심인가는 당장 판가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봐도 어불성설인 사업을 억지 논리를 펼치며 합리화하려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낀다는 말도 들린다.

같은 날 구미시 동락공원에서 전국 예술인들이 모여 강을 보존하여 살리자는 취지와 함께 고행하는 이들의 행보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하여 문화행사를 펼쳤다.

이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조속한 백지화를 위한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의 공식출범 행사이기도 한 이 행사는 서예퍼포먼스, 시낭송, 살풀이춤, 환경생태의 노래 등이 이어졌다. 고은 시인은 '소원'이라는 서시로 조용히 울부짖었다.

나 산이고 싶다
강이고 싶다
내 조상
내 자손의 맨몸이고 싶다
그냥 놔 두라 쓰라린 백년 소원 이것이다

산과 강은 부모와 같다. 산등성이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타고 모여 강을 이룬다. 산이 있기에 강이 있고 또한 강이 있기에 산은 우뚝 솟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산기슭에 집을 짓고 강물을 마시며 농사를 짓고 삶을 꾸려 왔다. 주말이면 산을 찾고 강을 찾아나서는 것은 그것들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행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훼손하지 말고 우리가 물려받았듯이 내 아들 딸이 누릴 행복을 위해서 고스란히 물려주자.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7> 불일평전에서 사랑을 듣다
반도지 연못을 파고 피라미 풀어 남북의 통일을 기원
기지개 켜는 매화와 봄을 재촉하는 비
개구리 구애의 절규 밤새 요란한 전쟁 산방엔 생명이 '활짝'

    불일평전의 봉명산방과 연못 반도지. 지난해 타계한 변규화 선생이 직접 한반도 모양으로 판 반도지에는 피라미들이 남북을 걸림없이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노란꽃 산수유가 환호하는 길을 따라 불일평전에 들었다. 봄비가 내리는 봉명산방에는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화는 물방울을 머금고 활짝 핀 놈, 몽우리 진 놈들이 어울려 한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마당 가운데 고욤나무는 내리는 비가 반갑고 고마운 듯 온몸을 활짝 펴서 잎을 틔울 문을 열고 있었다. 국사봉은 피어오르는 운무로 동양화 한 폭을 펼쳐 보인다. 마당 가운데 예사롭게 지나쳤던 연못은 반도지라고 한다. 반도지는 산방을 30여 년 지키다 작년에 별세한 변규화 선생이 직접 한반도 모양으로 연못을 파서 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연못 위쪽에는 소망탑이 있어 반도지를 지켜본다. 지극하면 이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돌을 가져와 탑을 쌓을 때 통일은 마음에서 벌써 이루어 졌다. 불일평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산바람도 묵으면 조용해지는 걸세
노각나무 잎 잎에 회오리치던 성깔도 죽어
햇빛 속에서 나뭇잎들 반짝이게 하고
분단 없는 반도지에 나울도 잠든 지 오래
숨을 곳 없는 바람은 소망탑에 들었네

반도지에는 물고기가 산다.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물고기가 보고 싶어 변 선생이 키워온 피라미들이다. 얼음이 걷힌 못에는 봄 햇살을 받기 위해 나온 피라미가 지느러미를 흔들며 남북을 유유히 오간다. 통일은 살림의 미학에서 출발함을 보여준다. 개인적 욕심이나 이데올로기, 아집 같은 것으로 장벽을 쌓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왕래하며 통일을 이루고 산다. 반도지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생명이고 생명이 곧 통일의 희망이다. 불일평전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비 때문에 불일폭포 가는 일은 미루고 산방을 지키고 있는 아우와 함께 낙수 지는 소리를 벗 삼아 산을 주고받으며 마가목주를 기울였다. 밤이 깊어져 잠자리에 들었을 때 고요해야할 불일평전이 소란으로 들끓었다. 요란한 다툼의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 쫓기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새들이 빗속에서 잠을 설치면서 다투는 소리는 아닐까. 왜가리 떼가 한꺼번에 끼룩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궁금하여 옆에 누운 아우에게 물었다.

"새가 보채는 소리가 아니라 사랑을 찾는 절규랍니다."

아아, 그랬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먹개구리와 아무르 개구리, 산개구리들이었다. 들을수록 선명해지는 그 소리는 짝을 부르는 절규였다. 반도지와 야영장 아래 물웅덩이 속에서 그들이 벌이는 애정의 향연이었으며 애타게 짝을 찾는 세레나데였다. 짝짓기를 위해 수컷들이 벌이는 혈투 속에 쫓고 쫓기면서 내뱉는 사랑을 구하는 지극한 소리였다. 애절한 절규는 짧은 봄밤 불일평전을 가득 채우고 청학봉 백학봉 사이를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소리까지 감추었다.

어스름이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울부짖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으리라. 아니 그들은 대낮부터 처절하게 짝을 부르는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었지만 듣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 잠잠했다. 긴 사랑의 행각 뒤에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반도지 물속을 살펴보니 수초가 우거진 얕은 물가에는 까만 눈동자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투명한 알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사랑이 쏟아낸 결실이었다. 생존은 행복하고 생명은 아름다웠다. 알들이 깨어나 반도지의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통일을 간직하기를 바라며 지극한 사랑을 가슴에 담았다. 나도 생명이었다.

 

 

<8> 백운산에서 길을 묻다
지름길이 유혹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아름답다

    광양 백운산. 정상에서 억불봉 가는 능선에는 비에 젖은 길이 뚜렷하지만 아직 봄빛은 여물지 못했다.

 

멀리 솟아 있는 봉우리가 해발 1000m 억불봉.
산 이름이 친근한 백운산에 갔다. 그것은 각 지역마다 있기 때문이다. 절영도 봉래산처럼 저기압이 형성되거나 비가 오기 전에 혹은 비가 온 뒤 산머리에 구름이 걸리는 풍경이 곧 백운산이다. 그 지역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붙인 이름이기에 늘 가본 것 같은 그런 산이다. 함양 울주 밀양 양산 광양 근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리산이 마주 뵈는 광양 백운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 헤맸다. 잘못 든 길은 최종 목적지를 훨씬 벗어나 도착한 뒤 많은 애를 먹었다. 가스도 없었는데 초행길이라서 그랬을까.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숲으로 들었고 그 끝에는 어떤 풍경이 놓여 있을지 두려웠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낯선 길에 대한 동경에 앞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막연히 갖는 두려움이었다. 양 갈래 혹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선택은 언제나 하나이기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된 선택은 자신이 책임져야하기에 결정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산의 길은 외롭다. 혼자 가지 않더라도 짐을 진 채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 한다. 도심 길을 갈 때도 물론이지만 위험이 많은 산에서는 혼자 져야할 책임이 무겁다. 불의의 사고라도 맞닥뜨리게 된다면 함께 간 일행에게도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이 짊어진 짐도 그렇거니와 지친 몸을 간수해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산길은 쓸쓸하지 않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고 주변에 핀 꽃과 노래하는 새들, 상쾌한 공기, 탁 트인 시야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산에 들지 않는가.

길을 묻는 사람은 언제나 많다. 그 길은 산에 있기도 하고 삶에 있기도 하다. 스승에게 길을 묻고, 길에 길을 묻고, 책에 길을 묻고, 하늘에 길을 묻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길은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물어도 뒤에 남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길은 어쩌면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에 관한 글이 유난히도 많다. 길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나는 늘 길 위에 놓여 있었고 길 끝에 앉아 있었다.

좁은 길이 멀리 간다
바꿀 수 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숲 사이로 구불구불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물웅덩이를 만나면 피해서 간다

길 앞에서 가끔 난감해질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길이 나타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방향이 다른 길은 선택하면 된다지만 같은 방향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이른바 질러가는 길을 만나면 난감해 진다. 오를 때는 지름길을 만들지 않지만 내려올 때는 쉽게 만든다. 산이 좋아 가는 사람들이 산이 망가지는 일에 상관없다는 듯이 난감한 길을 만들었을까? 오래된 길은 다져질 대로 다져지고 주변도 잘 다듬어져 훼손되지 않지만 새로 만들어진 길은 푸석푸석하여 쉽게 무너지고 작은 비에도 토사가 쓸려 나가 패이기 쉽다.

어느 산악회에서는 지름길을 다니지 않거나 지름길을 만들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질러가나 돌아가나 같은 높이에 이르기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는 같다. 무리하게 질러 가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도 있다.

거리가 조금 멀더라도 여유를 갖는 산행이 산을 보존한다. 오래된 길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곁가지, 지름길이 유혹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처럼.

과정은 달라도 어떤 길이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같다. 선택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행복은 어느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길을 잃고 난 뒤에야 생은 길 위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는 길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다. 다시 백운산에서 길을 묻는다.

 

 

<9> 주왕산에서 부피의 산을 가다
높이의 산을 가지 않고 나무와 풀과 나와의 관계를 셈해보라

    주왕산 제1폭포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솟은 암벽이 학소대로 계곡 어디선가 학이 날아 올 것만 같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왕산은 그 수려함으로 등산의 산이기보다는 관광의 산이다. 72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에는 깊은 협곡에다 많은 폭포, 웅장한 바위군으로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그 산에는 주왕과 관련된 많은 전설들이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산을 오른다면 금은광이 쪽이나 절골을 타고 가메봉으로 올라 대전사로 내려오면 산행과 관광을 한꺼번에 즐길 수가 있다.

핏빛 전설을 간직한 수달래는 일러서 아직 피지 않았고 대전사 경내 벚꽃은 이제 다 졌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세월을 잊기 위해 산에 들었다가 세월의 빠름만 되새기고 다시 하산하게 된 것을 어찌할까?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세속인의 삶이 아닌가. 계곡과 폭포를 순례하다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감미로운 하산을 감행해야 했다.

젊었을 때는 무조건 산 정상을 밟아야 속이 후련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실패로 규정하고 뒷날에 다시 가서 밟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는 꼭대기를 산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이 넓어졌다. 등성이를 흐르는 선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여름까지 계곡에 쌓여있는 낙엽더미에서 의미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나무와 야생화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색을 즐기게 되었다. 체력이 떨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산을 그렇게 바쁘게 달려갈 것은 무엇인가라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구경도 하고 음미도 하고 그러면서 가는 산. 그것은 부피로 느끼는 산일 것이다.

지나가다 만나는 나무나 풀 한 포기 이름도 모른 채 산을 간다면 그것은 단지 등산이 아닌 운동일뿐 아니겠는가?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 사물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그 나무나 풀을 훼손하더라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나무와 풀과 나와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산을 가면서 그저 길만 보거나 산정상만 딛고 와서는 올바른 산행이라고 할 수 없다. 나와 사물과의 교감을 통하여 서로의 존귀함을 느끼고 거기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길 가에 앉은 바위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칠선골 묵은 계곡 시커멓게
세월의 외투를 껴입고 누워있는 영원한 노숙자
오래된 바위에게 이름이 없다는 건 이상하다
풀에도, 나무에도, 산봉우리에도 이름이 있듯이
작은 바위에도 이름이 있었으면
밤길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을 터인데
존재의 무거운 몸을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은 작품에 이름 모를 나무, 이름 모를 들꽃이라고 쓰면 야단을 치셨다. 어찌 나무나 꽃에 이름 없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작가 정신에 합당하지 못하다. 그 이름을 찾아 주고 불러 주는 것이 작가의 도리가 아닌가. 그랬다. 당신 스스로 식물도감을 만들어 소설을 쓸 때 사용하였다. 나무나 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서는 산은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산과 더 친근해지며 산의 체온과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악회마다 누적 표고를 셈하며 얼마의 높이에 도달했는가를 으뜸으로 삼는다. 산을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그것은 올바른 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산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나무를 보는 것은 곧 바로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급하게 산을 오르면서 지금껏 높이의 산만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 숲속에는 무엇이 살고 무슨 이야기가 있고 무슨 느낌이 드는지 셈하며 천천히 걷는 것, 그것은 바로 풍요롭고 행복한 산행이 될 것이다. 무엇을 만나고 돌아 왔는가. 높이로만 산을 가지 않고 부피로 느끼면서 산을 가고 싶은 이유이며 산행의 화두다.

 

 

<10> 설흘산에서 색에 빠지다
자연에 들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풍경 속 색의 조화가 아닐까

    남해 설흘산에서 본 절정의 봄빛. 바다 색과 어울려 산과 들도 파스텔톤으로 빛난다.

 

평범한 산인데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면 어떤 특별함이 있어서일 게다. 남해에 있는 설흘산은 몇몇 힘차게 솟구친 암봉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멋있다고는 생각 들지 않는다. 가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 뒷산이기에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다. 산행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가고 싶은 산이 되어 갔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새잎이 막 나서 연둣빛으로 소곤거릴 때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산빛 앞에서 발자국 소리까지 끊어버리고 몰입해 간다. 산은 처녀의 풋풋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애의 모습이다. 어쩌면 저렇게 부드럽고 맑은 빛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일까?

섬에 있는 산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봄빛과 바다 빛 그리고 푸릇푸릇 돋는 나뭇잎이 함께 다가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다와 함께 가는 아기자기한 능선에서 바라다보는 파란 하늘과 그것을 닮은 바다 빛, 하얀 물거품을 남기고 가는 배, 해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갛거나 파란 지붕들, 그와 어우러진 붉은 흙, 연초록 이파리가 소곤거리는 산빛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광은 절정의 봄이 가져다주는 파스텔 톤이었다. 그 색은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색에 푹 빠지게 하였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낯바닥 기웃거리며
그대 빠진 색을 탐해 보지만
흉내는 철쭉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눈 밖에서 눈꺼풀을 닫는다 그대
아낌없는 붉은 기운에 눈을 다치리라

1970~80년대 등산복은 주로 원색이었다. 조난 시를 대비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배낭이나 바람막이 옷을 빨간색으로 선호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검정색이 주를 이뤘다. 검정색은 산에서뿐만 아니라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즐겨 입는 색상이 되어 도심 거리도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밝은 색으로 넘쳐나는 거리는 평화롭게 보이고 안정감이 넘쳐난다. 그러나 검은 물결이 넘치는 거리는 어쩐지 무겁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심하게 말해 모두들 상가에 가는 길인지 얼굴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내 폭력이 횡행하던 1980년대 미국에서는 회색이었던 교도소벽 색깔을 핑크색으로 바꾸자 놀랍게도 폭력사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핑크색은 자궁 내부의 색이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연의 색상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데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들은 왜 우중충한 색깔로 몸을 감싸고 있는지 모르겠다. 겨울은 그렇다치고 봄이나 여름에도 검은 색조가 주를 이루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자신감이 없어서 무난한 검정색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들어서는 등산복도 연두색이나 노란색, 파란색과 같은 밝은 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 바라보는 눈을 상쾌하게 만든다.

집을 떠나 새로운 풍경에 맞닥뜨리게 되면 그 어떤 풍경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지만 유별나게 빛나는 색을 만날 수 있어 봄산은 황홀한 기분을 제공해 준다. 자연에 들면 행복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서 만나는 변화무쌍한 색에서 조화를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봄이 어른거리는 섬 기슭에서 커가는 보리밭, 마늘 싹들의 푸릇푸릇함과 함께 유채꽃 노란색깔이 어우러져 환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룬다.

'때깔 고운 음식이 맛도 있다'는 말처럼 빛 고운 색깔은 우중충한 회색 도시에서 탈출한 소시민에게 맛 나는 때깔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빛이었고 빛이 만든 색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행복에 푹 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