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묵언 순례 팀을 만났다. 승려, 신부, 목사와 시인, 원불교 원감 등 그들은 한강을 출발하여 낙동강에 이르는 경부대운하라 지칭하는 건설 구간을 따라 강을 살리고자하는 일념으로 고행 중이었다. 간밤에 구미대교 아래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는 박남준 시인은 순례 34일째라 하였다. 나는 철새 도래지 또는 중간기착지로 이름난 해평 습지를 지나 시내를 통과하여 칠곡 모래채취장까지의 일정에 함께했다. 세속인들이야 잠시도 묵언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소곤거렸다.
강은 겨울철 갈수기라서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이런 곳에 배가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물을 가두어야 하고 물을 가두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양안과 바닥에 설치해야 한다. 강의 모습은 사라지고 풀장과 같은 모습의 연속이어야 한다. 강안의 습지나 물고기의 서식지, 철새 도래지는 꿈도 꿀 수 없게 될 것이며 샛강은 흘러갈 곳 잃은 고아가 될 것이다. 고수부지에서 지하수로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도 물이 고갈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고 구미낙동강공동체 배문용 회장이 들려주었다.
고행 중인 이들은 무슨 이해관계가 있기에 다리 밑에서 한데 잠을 자고 뙤약볕 속을 하루에 6~7시간씩 걷고 있는가.
찬성론자들이야 자신들에게 직접 돌아올 이익이 있기에 기를 쓰고 찬성한다지만 이들은 오로지 양심에 반해 천리를 거슬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을 누워있는 분수대로 만들어 놓고 복원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무슨 짓을 더 못하겠느냐고 말한다.
대학 교수들도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다. 두 부류 중 한 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란다. 곡학아세인가 아니면 학자적 양심인가는 당장 판가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봐도 어불성설인 사업을 억지 논리를 펼치며 합리화하려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낀다는 말도 들린다.
같은 날 구미시 동락공원에서 전국 예술인들이 모여 강을 보존하여 살리자는 취지와 함께 고행하는 이들의 행보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하여 문화행사를 펼쳤다.
이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조속한 백지화를 위한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의 공식출범 행사이기도 한 이 행사는 서예퍼포먼스, 시낭송, 살풀이춤, 환경생태의 노래 등이 이어졌다. 고은 시인은 '소원'이라는 서시로 조용히 울부짖었다.
나 산이고 싶다
강이고 싶다
내 조상
내 자손의 맨몸이고 싶다
그냥 놔 두라 쓰라린 백년 소원 이것이다
산과 강은 부모와 같다. 산등성이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타고 모여 강을 이룬다. 산이 있기에 강이 있고 또한 강이 있기에 산은 우뚝 솟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산기슭에 집을 짓고 강물을 마시며 농사를 짓고 삶을 꾸려 왔다. 주말이면 산을 찾고 강을 찾아나서는 것은 그것들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행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훼손하지 말고 우리가 물려받았듯이 내 아들 딸이 누릴 행복을 위해서 고스란히 물려주자.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