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01

醉月 2011. 3. 8. 08:57

생장어 셀프 구이?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장어구이

① 말끔하게 손질한 장어. 이처럼 핏물 없이 뼈와 내장을 갈라야 한다. ② 장어는 주방에서 애벌구이를 해야 한다. 손님에게 이 일을 시키는 것은 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으라는 것과 같다.

뱀장어(민물장어)는 민물에서 5~12년 살다가 태평양 심해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 알에서 깬 새끼들은 어미가 살던 민물로 헤엄쳐 와 산다.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대부분 양식으로, 어린 실뱀장어일 때 바다에서 잡아 민물에서 키운 것이다. 0.2g 정도의 실뱀장어를 8개월간 키워 250g에 이를 때 먹는다.

뱀장어는 풍천장어가 유명하다. 전북 고창 선운사 앞 고랑을 풍천(風川)이라 부르는데, 밀물 때 서해의 바닷물이 이 고랑으로 밀려들어 오면서 거센 바람까지 몰고 와 이런 이름이 붙었다. 풍천장어가 유명해진 것은 이 풍천에서 잡히는 자연산 장어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장어집은 거의 ‘풍천장어’를 간판에 다는데, 자연산이 아니면 이 간판이 별 의미가 없다. 선운사 근처에 장어 양식장이 많아 전국에 장어를 공급하는 기지 노릇을 하지만, 양식 방법이며 사료 등에서 타 지역과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에 이 지역에서 나오는 ‘갯벌풍천장어’는 눈여겨볼 만하다. 갯벌풍천장어는 자연산 풍천장어에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해 민물장어를 바닷물에 몇 개월간 자연상태로 둔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풍천의 자연환경을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동안 사료를 먹어 ‘비만’해진 장어들은 더 이상 사료를 먹지 않은 탓에 6개월만 지나도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들지만 살은 더욱 탄탄해진다. 이렇게 축양한 장어는 고창 일대의 몇몇 장어집에서 ‘갯벌풍천장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 일반 장어보다 비싸다.

장어를 손질할 때는 칼이 장어의 뼈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해 핏줄이 터지면 장어 살에 핏물이 밸 뿐 아니라 잡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핏물이 살에 배면 대책이 없다. 핏물 괸 장어를 물에 씻어 굽다 보면 불판에 들러붙기 일쑤다.

장어를 구울 때도 유의해야 한다. 잡자마자 구우면 조직이 딱딱해지고 기름 맛이 겉돌지만, 서너 시간 기다린 뒤 구우면 살과 껍질이 분리되지 않고 숙성된 맛이 난다. 뱀장어는 기름이 많아 숯불에 바로 구우면, 기름이 숯불 위로 떨어지면서 연기를 피운다. 물론 이 연기가 훈연 향을 더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연기가 과다해 맛을 상하게 한다. 이 같은 기름 타는 냄새를 피하려면 애벌구이를 잘해야 한다. 복사열이 강한 스토브로 기름을 충분히 제거하는 애벌구이를 한 뒤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숯불은 한숨을 죽인 숯불이어야 한다. 벌겋게 살아 있는 숯불은 장어를 너무 익혀 살을 뻣뻣하게 만든다. 장어집에서 까맣게 장어를 태우는 손님을 볼 때면 나도 속이 까맣게 탄다. 이 맛난 장어를 왜 그리 무신경하게 태워서 먹는지 알 수가 없다. 이를 말리지 않는 장어집 주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장어집 주인들의 행태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은 생장어를 그대로 내주면서 ‘셀프’로 구워 먹으라고 하는 경우다. 장어 굽는 법을 잘 아는 손님이 드물 뿐 아니라, 있다고 해도 내놓는 불이 장어를 맛있게 구울 수 있는 조건에 미치지 않아 엉망이 된 장어를 먹는 이가 많다.

장어는 클수록 살이 탄탄해 씹는 맛이 있지만, 지나치게 큰 것은 질긴 경우가 있다. 1kg에 2~3마리 크기가 가장 맛이 좋다. 수도권에서 장어구이 잘하는 집으로는 경기 고양시 일산 홀트복지관 앞 ‘장어 장가가는 날’(031-924-8802)과 서울 청담동의 강변민물장어(02-542-7930)를 들 수 있겠다. ‘장어 장가가는 날’의 장어 다루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구색 맞추기 반찬, 굴비가 뒤집어진다
 

굴비정식

음식이 절반 넘게 남는 법성포 굴비정식. 우리 ‘한정식’ 상차림의 문제다.

 

한정식의 변형이 여기저기 지뢰처럼 흩어져 내 발목을 강타해온다. 이른바 ‘~정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음식이다. 관광지에서 파는 향토음식은 회정식, 꼬막정식, 산채정식, 떡갈비정식과 같은 ‘~정식’ 꼬리표가 붙은 경우가 많다. ‘~정식’ 앞의 이름에 따라 회 몇 점, 꼬막 요리 두어 접시, 산채 요리 몇 접시, 떡갈비 한 접시 등을 내면서 그 곁에 온갖 음식을 놓는데, 여느 한정식과 마찬가지로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오는 일이 잦다 보니 돈이 아깝다.

최근 전남 영광 법성포에 굴비 취재를 갔었다. 법성포에는 식당이라곤 굴비정식 파는 집밖에 없는 듯이 보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굴비정식은 먹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 비집고 다녔다. 여기도 다 한상차림으로 굴비정식이 1인분에 1만5000원 또는 2만원씩 한다지만 1인상은 역시 없었다. 2인상 또는 3인상이 기본이었다. 굴비정식이면 굴비구이나 찜 또는 찌개를 내놓고 간단하게 상을 차리면 될 텐데, 그럴 수 없다니 하는 수 없이 한 상을 받았다. 사진의 상차림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한 상을 받고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굴비’정식을 먹으러 왔지 굴비‘한정식’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었는데, 굴비구이, 굴비찜, 굴비찌개, 고추장굴비 등 굴비로 할 수 있는 음식이 가득 나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상에 오른, 굴비로 굽고 찌고 끓이고 절이고 한 온갖 음식이 계통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굴비 음식을 빼놓고 보면 한정식집마다 구비해놓는 다 그렇고 그런 음식뿐이었다. 웬만한 한정식집에 가도 굴비구이, 굴비찜, 굴비찌개 정도는 나오니 이 상을 굳이 굴비정식이라 부를 것도 아닌 듯했다.

이런 것을 다 차치하고, 음식 맛의 조합만으로도 이 밥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굴비구이가 있는데 갈치구이는 왜 올리며 굴비찜이 있는데 장대찜은 왜 필요한가. 굴비구이 먹은 입으로 간장게장을 씹으면 얼마나 비린지 아는가. 게다가 온갖 나물에 장아찌는 다 올려놓았다.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식당에서 조리한 것이 아니라 어디 반찬 가게에서 사온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일행과 함께 음식이 아까워 밥을 두 공기나 억지로 먹었는데도 상 위에 절반 넘게 남자 “미쳤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식당을 나오며 사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상의 음식 다 먹고 가는 손님도 있나요?

“없을 겁니다.”

주인 처지에서는 원가 부담이고 손님 처지에서는 다 먹지 못해 손해인데.

“손님들의 불만도 종종 듣습니다. 한때 반찬을 줄이고 1만 원짜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데서 다 저런 식으로 하니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고….”

굴비는 밥만 있으면 다른 찬이 필요 없는, 참 맛있는 음식이다. 굴비구이든 굴비찜이든 정갈하게 딱 어울리는 서너 가지 반찬 곁들이면 완결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맛있는 굴비를 다른 음식과 뒤섞어 잡탕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건 법성포 굴비정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정식과 그 외 ‘~정식’이라 이름 붙은 한국의 모든 음식의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음식점이 거의 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주는 ‘모범음식점’ 간판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접대용으로 ‘모범’적인 음식점이란 뜻인가.

 

‘막걸리 흥분’이 다양한 맛 죽일라 

막걸리

다양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막걸리.

일본의 막걸리 붐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국내에 막걸리 바람이 분 것은 확실하다. 음식 유행에 가장 민감하다는 홍대 앞에는 연일 새로운 스타일의 막걸리집이 문을 열고, 전국 막걸리 수십 종을 갖다놓고 파는 집도 생겼다.

막걸리 붐으로 가장 들뜬 곳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막걸리집과 양조장 취재를 넘어 막걸리 제조와 유통의 문제까지 꼼꼼히 따지고 전문가들의 막걸리 평가 자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그래선지 막걸리 기사가 빠지는 날이 하루도 없다. 와인이나 사케 붐에 들썩였던 일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음식 담당 기자들의 ‘흥분’으로 끝나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언론만큼 들떠 있는 곳은 대형 막걸리 제조업체다. 매출은 급성장하고 주가는 연일 상승 중이다. 음식점마다 막걸리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고 텔레비전 광고도 한다. 막걸리의 보존기간 연장과 냉장 막걸리의 유통 등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워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대형 주류업체도 여럿 된다.

이 대목에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막걸리 붐이 오히려 막걸리의 다양성을 해치는 쪽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방에는 소규모 생산, 소규모 유통구조를 유지하며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판매하는 오랜 전통의 제조업체가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런데 대형 업체의 막걸리 시장 진출은 곧 지방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의 시장을 빼앗는 형국이다. 실제 요즘 어느 지방을 가든 대형 업체 막걸리 포스터가 눈에 띈다. 걱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지방의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도 전국 유통망을 통해 자신의 막걸리를 판매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전국 유통망을 확보한 대형 업체에서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의 것을 끼워줄 리 만무. 결국 독자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 수 있는 막걸리 생산자는 매우 드물다.

식품에서 이런 예는 많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소규모 두부공장이 있었으나 대형 업체들이 시장을 독식하면서 다 문을 닫았다. 대형 식품업체의 제품이니 더 믿을 만하고, 그래서 소비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지 대형 업체들이 유통기간을 늘려 전국에 두부를 공급하는 대규모 마케팅이 소비자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유통기간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소비자들은 당일 만든 따끈하고 맛있는 두부를 먹지 못하게 됐을 뿐이다.

어떤 상품이든 독과점 상황이 만들어지면 소비자에게 최선의 선택은 사라진다. 또 일단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를 깰 방안도 없다. 독과점 상황은 우리에게 다양한 먹을거리를 즐길 기회를 빼앗아간다.

최근, 막걸리를 취재한 기자를 여럿 만나 지방의 막걸리 업체 사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사정이 나아진 업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중 내 폐부를 찌르는 말이 있었다. “이젠 취재 오지 말래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막걸리 붐의 혜택이 업체에 골고루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막걸리 맛의 획일화, 막걸리 시장의 독점화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손두부 맛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
두부 ①어느 두부집 주인이 농수산물 유통공사에서 구입한 수입 콩. ②가마솥에 장작불을 쓰는 강원도 양구의 두부 전문점 ‘전주식당’의 부엌.

두부집이 부쩍 늘고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소비자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나도 두부를 좋아해 두부집에 자주 가지만 만족스러운 두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공장두부와 진배없는 것을 ‘손두부’ ‘3대째 하는 두부집’이라며 파는 곳이 많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소비자가 그 차이를 잘 모르니 그런 것이다. 맛있는 두부의 조건 중 딱 두 가지만 짚어보겠다.

첫째, 국산 콩이어야 한다. 수입 콩도 똑같은 메주콩이지만 품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입 콩은 농수산물유통공사(이하 유통공사)에서 국영무역 형태로 수입해 가공업체에 풀기 때문에 일반인은 보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들은 유통공사에서 하는 일이므로 국산 콩과 거의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 수입 콩을 보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그냥 봐도 변색된 콩, 깨진 콩, 썩은 콩이 섞여 있다. 덜 익어 푸른색을 띠는 콩도 많다.

물론 유통공사가 질 나쁜 콩을 수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미국 기준으로 1등급 콩을 수입한다. 그러나 유통공사 홈페이지에 적시된 수입 콩의 품질 규격을 보면 금세 그 이면을 파악할 수 있다. ‘파쇄립 : 10% 이내. 변질률 총계 : 2% 이내. 변질 중 뜬 것 : 0.2% 이내. 이물 : 1% 이내. 이종피색 : 1% 이내. 수분 : 13% 이내. 색택 : 황백색. 돌콩 : 2% 이내.’ 그 뒤에 기재해둔 용어 정리를 보면 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쇄립 : 콩이 쪼개지거나 깨진 것, 충해립(콩껍질 포함)을 말함. 변질률 총계 : 부패, 변질, 변색 등의 총계를 말함. 변질 중 뜬 것(열손립) : 변질립 중 열에 의해 뜬 것. 이물 : 콩 이외의 것. 이종피색 : 황백색 콩 외의 다른 종피색의 콩. 돌콩 : 20~23℃의 물에 5시간 동안 수침해 불지 않는 콩.’

규격 자체가 이러니 수입된 콩 자루에는 멀쩡한 것과 썩고 깨지고 벌레 먹고 변질된 것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수치로만 보면 금방 와닿지 않겠지만 실상이 그렇다. ‘수입 콩 사진’만 봐도 품질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은 어느 두부집 종업원이 유통공사에서 받은 콩 자루에서 무작위로 한 움큼 쥐어 찍은 것이다.

집에서 콩물을 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썩은 콩 한두 알이 한 됫박의 콩물 맛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은 콩을 상에 펼쳐놓고 한 알 한 알 골랐다. 물론 두부집에서도 수입 콩을 사다가 그 정도의 정성을 들이면 되지만, 버리는 콩의 양과 인건비를 계산하면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두부의 조건 두 번째. 100℃ 이상의 수증기(스팀)로 콩물을 끓이지 말아야 한다. 콩물은 100℃ 이상의 온도와 닿으면 맛이 변할 뿐 아니라 콩 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증기에 노출된 콩물은 자연히 ‘맛탱이’가 갈 수밖에 없다. 공장두부에서 옛날 두부 맛이 나지 않는 것도 이렇듯 수증기로 콩물을 끓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콩물을 가스불에 끓이다 보면 바닥에 눋기도 하고 수증기로 끓이는 것보다 시간이 5, 6배 더 걸려 수증기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다. ‘손두부’ ‘즉석두부’라는 간판을 단 집들의 주방을 들여다보면 거의가 그렇다. 장작불에 가마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스불에 양동이 정도는 걸어두고 두부를 쒀야 비로소 손두부, 즉석두부라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밖에 두부 맛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이 두 가지에 비하면 부수적인 수준이다. 공장 식품이든 식당 음식이든, 소비자가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것을 ‘얻어’먹을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양식 해산물 팔고 바가지 씌운다고?
소래시장

수도권에서 소래시장처럼 싱싱한 해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어시장은 없다.

한 포털 사이트에 ‘팔도식후경’이란 칼럼을 1년 넘게 연재하고 있다. 지역 특색이 강한 농수산물을 취재해 글을 올리는데, 최근 ‘소래 꽃게’를 게재하니 누리꾼이 와글와글 말이 참 많다. 소래는 더럽고 복잡하며, 대부분 양식 해산물을 팔고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에 언론에 소개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소래를 자주 찾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지만 재래 수산시장의 특성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먼저 소래 해산물이 대부분 양식이라는 소문은 크게 잘못됐다. 소래포구에는 50여 척의 어선이 있다. 그 배들이 수시로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한다. 바다로 나가는 수로가 좁고 수심이 낮아 배들은 작고, 따라서 다 당일치기 어업을 한다. 쉽게 말해 싱싱한 해산물이 올라온다는 뜻이다. 포구 옆에는 수협위판장이 있다. 여기서 경매를 거쳐 상인들의 손에 들어간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배에서 내려 상인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두어 시간 걸린다. 수도권에서 이처럼 싱싱한 해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어시장은 없다. 물론 구색을 갖추기 위해 상인들이 타지의 해산물을 가지고 오고, 이 속에 양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만 정확히 알면 싸고 싱싱한 ‘당일치기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2010년 5월 현재 소래시장에서 먹을 만한 것은 꽃게와 광어다. 봄에는 암꽃게가 제철인데 지난겨울 대풍어의 영향으로 가격이 싸다. 그리고 올봄에는 광어가 많이 잡힌다. 다 자연산이다. 치어를 뿌려 그 효과를 보고 있다는 말이 있다. 배에서 내리는 대형 자연산 광어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노량진시장에서도 귀한 것이 눈에 자주 띄었다. 여러 명이 팀을 꾸려 가면 대형 자연산 광어를 싸게 먹을 수 있다.

소래시장에서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은 풍문일 뿐이다. 소래는 바가지를 씌울 수가 없는 장터다.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상인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계속 호가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들어가 50m만 걸으면 가격이 다 나온다. 이런 동네에서 바가지를 썼다면 정말 멍청한 소비자이고, 바가지 씌운 상인은 천재라고 봐야 한다. 시장이니 해질녘에 가면 확실히 싸지만, 이를 기준으로 평소 가격을 바가지라 하면 안 된다.

소래가 더럽다는 말은 일부 맞다. 바닥이 바닷물로 질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시장은 다 그렇다. 바닥에 바닷물 없는 어시장은 이 세상에 없다. 이게 싫으면 어떤 어시장도 싫을 것이다. 청소부들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상인들도 뒷정리를 잘한다. 누가 하든 이렇게 복잡한 어시장에서 그 정도면 청소도 잘된 편이다. 다만 쏟아지는 양에 비해 치우는 인력이 부족해 보이긴 했다.

복잡하다는 것은 정말 복잡한 문제다. 소래의 해결과제 1순위는 주차공간 확보다. 그러나 시장 안에서 복잡한 문제는, 그냥 두었으면 한다. 낮은 지붕 아래로 바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골목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 복잡함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이걸 현대화한다고 속초 동명항, 강화 후포처럼 건물 짓고 지붕 씌우면 안 된다.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멋이란 게 있지 않은가. 외국의 복잡한 재래시장은 흥미로워하면서 우리의 재래시장은 복잡하다고 투덜대는 것을 나는 정말 이해하지 못한다.

 

차가우면 다 냉면? 메밀을 따져라
냉면 함흥냉면과 소바. 이 둘 중에 평양냉면과 더 가까운 음식은?

냉면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참 조심스럽다. 미식가입네 하는 사람 대부분이 냉면에 민감해서 설핏 말했다가 난리가 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또 어느 식당 냉면이 맛없다고 콕 찍어 말하면 그 냉면을 즐기는 사람은 나와 척을 지으려 하기도 한다. 자신의 ‘솔 푸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면에 대해 말할 때면 “그것도 맛있지요” 하며 한발 빼는 버릇이 있다. 여기서는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안티’가 생기지 않을 한도에서.

흔히 냉면이라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대표로 꼽는다. 그리고 이 둘을 곧잘 비교한다. “난 평양냉면은 별로인데 함흥냉면은 맛있더라” 하는 식이다. 대중매체에서 냉면 기사를 다룰 때도 평양냉면이 나오면 함흥냉면은 절로 따라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는 냉면이라는 카테고리에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함께 넣어두고 있으며, 이런 분류법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일상의 여러 분야에서 이 같은 분류의 혼동은 허다하게 일어나며, 그것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대상물의 정체성에 큰 타격을 입힌다. 무엇을 두고 냉면이라 하는지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음식의 맛조차 가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냉면을 ‘차게 해서 먹는 면 음식’이라 한다면 평양냉면, 함흥냉면을 비롯해 막국수, 쫄면, 비빔면, 소바, 중국냉면, 열무국수, 냉라멘, 부산밀면, 진주냉면 등을 모두 냉면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면을 냉면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 머릿속의 냉면 카테고리에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정도밖에 들어 있지 않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한 데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뒤에 ‘냉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냉면과 진주냉면이 유행하면서 평양냉면과 함께 다룬 기사를 자주 보는데, 이 역시 ‘냉면’이란 단어가 붙어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음식을 분류하고 그 음식 맛의 포인트를 찾아 비교할 때는 재료나 조리방법 등이 비슷한 음식끼리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눈으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보면, 두 음식은 전혀 다른 계열에 들어 있다. 이름만 평양‘냉면’, 함흥‘냉면’이지 면의 재료와 양념법, 맛의 포인트가 다른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메밀면과 육수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고, 함흥냉면은 감자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에 비중을 둔다.

그러면 일차적으로 주재료에 따라 차가운 국수류를 분류해보자.

메밀을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비빔국수, 중국냉면, 열무국수, 냉라멘.

감자(또는 고구마) 전분을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함흥냉면, 쫄면.

이렇게 주재료에 따라 국수류를 재분류하니, 각 국수를 먹을 때 무엇이 맛의 중심이 돼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특히 평양냉면과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이 한 묶음이 되면서 이 음식을 먹을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맛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해진다.

냉면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의 분류법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메밀국수를 쓴다는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등의 면 가운데 메밀 함량이 매우 적은 것을 수시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당면 수준의 면을 내는 집에서 벽에는 ‘메밀의 효과’니 하는 설명의 글을 붙여놓고 있다. 또 어떤 식당에서는 “메밀 100%짜리 면은 불가능하다”는 거짓말로 자신들의 ‘가짜 면’을 숨기려 한다.

메밀로 만든 국수류라면 면의 메밀 함량이 일정 수준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밀가루와 전분이 주성분인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은 쫄면과 함께 분류해야 한다.

 

 

공깃밥 값은 꼬박꼬박 받으면서…
밥은 유료, 빵은 무료

쌀값이 떨어져 난리다. 지난해 봄부터 쌀값 폭락 예측이 있었는데도 정부는 뚜렷한 대책 없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퍼주자’는 말이 나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쌀이 남아돌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량이 증가한 데다 사람들이 밥을 덜 먹어서다. 예전에는 밥 더 먹기 운동, 아침밥 먹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움직임도 없다. 그래 봤자 효과가 없다는 것을 경험해서 그런가.

1인당 쌀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부터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면서 밥 외의 먹을거리에 눈을 돌리던 때다. 이 시기에 외식산업도 급격히 확장됐다. 이때부터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 먹는 습관을 들였고, 그 습관의 변화가 쌀 소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외식업소는 대부분 ‘단품요리’로 음식을 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굽거나 팬에 볶아 내고, 생선은 회 또는 탕으로 먹거나 찜으로 만든다. 이런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관찰하면, 밥은 더 이상 주식이 아니다. ‘선택 후식’이다. 고기나 회, 탕, 찜 등 메인 요리를 먹고 난 다음 밥이나 국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느 날 농업계 인사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식당 주인들이 좀 나서주면 좋겠네요” 하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부터 밥을 내놓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주인 입장에서는 메인 음식을 더 팔아야 이익이 남는데, 밥하고 같이 주면 이를 덜 먹게 되니 매출이 줄지 않을까요.”

외식업체들의 잘못된 관습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먼저 공깃밥을 따로 계산하는 관습이다. 실제로 공깃밥 값을 받는 업소가 많다. 갈치조림이나 매운탕을 밥 없이 먹기 어려운데도 이러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서양 레스토랑에서 빵 값을 따로 받는지 생각해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밥을 공기에 반 정도 담아 내는 일도 흔하다. 내 생각에 이는 ‘못된 상술’로밖에 안 보인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밥의 질이다. 아침에 밥 한 번 해서 ‘스뎅’(스테인리스스틸) 공기에 담아 보온통에 차곡차곡 쌓아 저녁때까지 팔다 보니, 전분 노화가 일어나 밥알의 겉은 거칠어지고 안은 떡이 진다. 심한 경우는 누렇게 색깔이 변하고 냄새까지 난다. 요즘엔 흑미와 향미를 넣는 음식점이 많은데,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쌀의 질이나 밥 지은 지 오래됐음을 숨기는 구실을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가을 수매한 벼를 창고에 밀어 넣고 있다.

밥은 한국음식의 중심이다. 밥을 주식으로 해온 민족의 음식문화에 대한 관례적인 언사가 아니다. 우리 반찬은 대체로 짜고 맵고 강한데, 밥이 그 맛을 감싸고 헤치고 순화하게 돼 있다. 주변이 아무리 잘나도 이 중심이 잡혀 있지 않으면 밥상은 무너진다.

외식업체들이 맛없는 밥을 돈을 받으며 팔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무책임 탓이다. 맛없는 밥은 물리고, 공깃밥 값을 따로 계산하는 업소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어필’을 해야 바로잡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똑같다. 대중의 수준에 맞는 그 지점에서 모든 것이 딱 멈추게 돼 있다.

 

 

 

 

고추장 양념 빼면 그게 떡볶이냐
떡볶이 세계화 최근 추진하는 ‘떡볶이 세계화’에는 떡볶이의 본질이 빠져 있다.

 

사물을 파악할 때 그에 붙은 이름이나 주요 소재 때문에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이는 인간의 인지능력이 본래부터 뛰어나지 못해 그럴 수도 있고, 일부러 그런 착각을 해 정신적 위안 따위를 얻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일은 음식에 관해 이런 ‘착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음식으로서 ‘닭갈비’의 본질은 닭채소매운양념볶음이다. 닭의 갈비를 먹는 음식이 아니고, 고추장이 포함된 양념장에 토막 낸 닭고기와 양배추, 고구마 등 채소, 가래떡 등을 팬에 볶아서 먹는 음식인 것이다. 닭갈비라는 이름은 쇠갈비를 먹는 기분이 들게 그리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닭갈비에서는 닭의 갈비가 주재료가 아니니 그 음식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어렵지 않으나, 주재료가 이름에 붙은 경우 그 음식의 본질 파악에 자주 곤란을 겪는다. 예컨대 삼겹살은 ‘돼지 삼겹살을 구운 음식’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이를 먹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쌈’이 본질일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은 고기 종류는 뭐든 된장을 더해 쌈으로 먹기를 즐기는데, 삼겹살이라 부르는 음식은 이 쌈에 돼지 삼겹살을 구워 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떤 맛에 치중해 그 음식을 먹는가 하는 포인트를 확인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이런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 음식을 소비하는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음식의 확장(문화적 확장, 시장에서의 확장 등)을 예측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를 세계화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보고 있다. 떡볶이연구소까지 차려 떡볶이 맛을 세계화하겠다고 열심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떡볶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떡볶이는 일반적으로 가래떡을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려 조린 음식을 말한다. ‘볶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떡을 기름에 볶는 것은 아니다. 조리법에 맞춰 부르자면 가래떡고추장조림이 맞다. 떡볶이 맛의 핵심은 크게 떡과 고추장 양념으로 볼 수 있는데, 둘 중 어느 것이 우리가 먹는 떡볶이의 본질을 확인해줄 수 있을까.

음식의 본질은 재료나 조리 방법이 아닌 소비자의 먹는 행태에서 알 수 있다.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떡볶이 먹는 방식을 보면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떡볶이 소스에 어묵도 넣고 튀김도, 만두도, 삶은 달걀도 넣어 먹지 않는가. 즉석에서 끓이는 냄비 떡볶이를 보면 그 안에 어묵도 있고 만두도 들었으며 당면, 라면, 햄, 치즈도 있다. 자, 쉽지 않은가. 떡볶이의 본질은 뭘까. 바로 이것, 고추장 양념이다.

그런데 떡볶이를 세계화하려는 시도를 보면 이 고추장 양념을 버리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 듯하다. 특히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궁중떡볶이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간장떡볶이는 고추장떡볶이가 나오기 오래전에 시장 가판 등에서 팔렸으나 고추장떡볶이에 밀려난 음식일 뿐이다.

세계화를 위해 개발했다는 떡볶이를 수시로 보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 눈에는 가래떡을 각종 파스타 소스에 버무려놓은 것밖에는 안 보인다. 이게 세계시장에서 성공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떡볶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친숙하지 않은 엉뚱한 음식을 만들어놓고 떡볶이라며 판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죽순 맛을 망쳐놓는 언론의 조바심
죽순의 계절 분죽의 죽순이다. 부드럽고 아삭한 것이 맛있다. 맹종죽에 비해 길쭉하고 가늘다.

농수산물 생산 정보에 관한 한 우리나라 언론은 늘 앞서 나간다. 산지에서는 나올까 말까 한 시점에 출하 전성기인 듯이 보도한다. 특히 영상 중심의 보도가 그렇다. 산지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 계절의 변화를 전하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게 소비자들은 진짜 출하 전성기를 놓치는 ‘불행’을 겪는다. 산지에서도 불만이다. 보도를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물량이 없을 때 주문이 폭주하다가 한창 나올 때면 뚝 끊기기 때문이다.

죽순 역시 발 빠른 언론 때문에 산지에서 곤란을 겪는다. 죽순은 이르면 4월 초순에도 나오지만, 5월 말에서 6월에 많이 나오고 맛도 이때가 가장 좋은데 언론 보도는 5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한반도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왕죽(왕대), 맹종죽(죽순대), 분죽(솜대), 오죽, 해장죽(신우대), 조릿대 등이다. 키가 작은 오죽, 해장죽, 조릿대의 어린 줄기는 먹지 않으며 왕죽, 맹종죽, 분죽의 어린 줄기를 죽순이라 하여 먹는다. 맹종죽이 가장 크게 자라며 죽순이 굵다. 가장 빨리 나오는 죽순이 바로 맹종죽의 것으로 4월 초순에 나온다. 그러니 매년 봄 언론에서 보여주는 죽순은 맹종죽의 죽순이다. 그렇지만 산지에서는 이것을 맛있는 죽순으로 여기지 않는다. 썰어놓으면 모양이 좋긴 하지만 육질이 두툼한 데다 질기기 때문이다. 진짜 맛있는 죽순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나오는 분죽의 죽순이다. 이어 6월 중순부터 말까지 왕죽의 죽순이 나온다. 모양과 맛은 분죽과 비슷하다.

분죽과 왕죽의 죽순은 부드러우면서 아삭한 식감이 있다. 결이 고와 입 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맹종죽의 죽순은 흔히 중국집에서 먹는 그것으로, 대부분 중국산이 통조림 형태로 수입된다. 기억나지 않는가. ‘어쓱어쓱’ 씹히고 심지어 질긴 나무 질감까지 느껴지는 그 죽순 말이다.

산지 농민들은 이보다 맛있는 분죽과 왕죽의 죽순을 판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에게 항의를 받는다. 언론에서 내내 맹종죽 죽순의 ‘그림’을 내보이니 맹종죽보다 가늘고 길쭉한 분죽, 왕죽의 죽순이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해명 아닌 해명을 해보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제철이라 하여 죽순을 생으로 파는 일이 흔한데, 이도 잘못된 방법이다. 죽순은 캐내었다고 해도 계속 생장을 하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순 속의 아미노산과 당류가 급격히 소비돼 맛이 떨어진다. 또 수분도 달아나 식감도 나빠진다. 그러므로 죽순은 되도록 빨리 적절하게 수확 당일에 삶아야 한다. 이 조리 시기에 따른 맛의 차이는 아주 크다. 아침에 따서 저녁에 삶아도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참고로 크기나 무게로 따지면 생죽순이 무척 싸 보이지만 조리 과정에서 밑동, 껍질 등을 버리면 30%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가공품이 여러모로 낫다.

죽순 가공품에는 삶아서 포장한 것과 염장한 것이 있는데, 염장하지 않은 것이 당연히 맛있다. 그러나 그냥 삶아서 포장할 경우 보존 기간이 길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죽순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한은 7월 말까지인데, 8월부터 팔리는 것은 국산이라 해도 염장이다.

죽순은 향이 약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강한 양념을 하면 좋지 않다. 소금 간에 살짝 볶기만 해도 충분히 맛있다. 통조림에 든 죽순이 아닌 제철의 것이면 더더욱.

 

 

향조차 죽인 커피, 왜 그리 비싼지…
커피 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할아버지들 노천카페’의 커피 자판기다. 자판기마다 다른 맛의 커피가 나오게 해놓았다.

 

민족마다 습관성 음료라는 게 있다. 서양 각국의 커피나 홍차, 남미의 마테, 중국과 일본의 차(이른바 녹차)가 그러한데, 우리에게는 끼니때마다 곁에 두는 음료가 없다. 숭늉이 있다고? 글쎄….

중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차나무가 잘 자라는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차를 일상 음료로 많이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 차문화가 급격히 쇠잔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문화인 차문화가 쇠락했다’는 설과 ‘극심한 차 재배지 수탈로 민중이 차 재배를 기피해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 우리나라 골골에는 맛있는 물이 샘솟는 감천(甘泉)이 흔해 굳이 차를 끓여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차문화, 곧 습관성 음료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가 5000년의 유구한 전통을, 적어도 조선 500년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녹차, 식혜, 수정과를 우리의 습관성 음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잘 차려진 한식 상차림에 후식으로 이런 차가 나온다. 그러나 이 전통차를 마신 뒤 신발 신고 나오면서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전통은 커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의 습관성 음료는 커피다.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고 식후에 커피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앞에는 커피가 놓인다. 어느 장소를 가든 인스턴트커피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반경 50m 안에 있고, 목 좋은 건물의 1층은 커피숍이 차지한다.

이를 어찌 해석할 것인가는 각자 처지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개탄스러운 현실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환영할 일일 것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왕에 마실 거라면 더 맛있는 커피를 먹자는 쪽이다.

우리 민족이 커피에 중독됐다지만, 대부분의 커피 맛은 어느 하나에 집중돼 있다.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가 가장 심각하다. 커피를 쓴맛 음료로 알고 쓴맛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유제품과 당류를 첨가해준다. 이런 커피는 향조차 희미하다.

원두는 쓴맛 외에 단맛과 신맛이 함께 난다. 커피의 주요 맛이 쓴맛인 건 맞지만, 쓴맛에 단맛과 신맛이 조화롭게 날 때 커피의 향도 살고 맛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원두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강배전(원두를 높은 온도에서 긴 시간 볶는다는 뜻)을 해 신맛이 안 난다. 신맛이 살아 커피의 향까지 잡으려면 약배전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질 낮은 원두의 본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커피도 여느 음식과 마찬가지로 좋은 재료여야 가공 과정에서 조심스레 다뤄지고 향과 맛도 좋아지는 것이다. 향조차 다 죽인 탕약 같은 커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는 현실이 슬프다.

 

 

맛없는 ‘청매’만 기억하는 세상
매실 청매를 시장에 내느라, 익으면서 붉은색이 생기는 품종의 매실까지 덜 여문 상태에서 팔고 있다.

 

매년 5~6월이면 시장에 매실이 지천으로 깔린다. 그런데 오직 청매만 있다. 또 소비자들은 청매가 맛있고 영양가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의식 있는 매실 생산자들은 청매만 찾는 이 요상한 풍토에 의구심과 걱정의 눈빛을 보낸다. 청매보다는 황매, 즉 다 익은 매실이 향도 좋고 구연산 등의 함량도 높기 때문이다.

매실이 일상적인 과일이 된 것은 2000년 방송된 TV 드라마 ‘동의보감’의 영향이 컸다. 이 드라마에서 허준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매실로 고친다. 내용은 허구였지만, 덕분에 우리 국민은 매실을 만병통치약 정도로 여기게 됐다.

사실 매실은 우리 일상과 크게 거리가 있는 과일이었다. 자생하는 매화나무가 많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 땅에 매화나무를 본격적으로 심은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 당시 정부에서 농촌에 유실수를 심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그 안에 매화나무도 있었다. 이때 일본에서 매실이 많이 달리는 품종을 들여와 널리 보급했으며,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에 집중적으로 심었다. 이 남녘의 매화나무에서 결실을 볼 즈음 드라마 ‘동의보감’이 터졌고, 매실도 터졌다. 그런데 청매만 터졌다.

일본은 매화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인 데다 매실도 크고 많이 열리는 편이다. 그래선지 일본인에게 우메보시(매실 절임)는 그들의 민족 정서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였다가 붉은색이 나는 차조기(깻잎 비슷하게 생겼다)와 함께 넣고 삭힌 음식으로, 매우 시고 짜서 우메보시 한 알이면 밥 한 공기를 비울 정도다. 맛 뒤에 숨어 있는 다 익은 매실, 즉 황매의 냄새는 더없이 향기롭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매실 음식이 별로 없다. 매실이 많이 열리지 않았으니 전래되는 매실 음식이랄 게 없다. 드라마 덕에 매실의 인기가 급상승했지만 우리가 먹는 매실 음식은 소주를 넣고 담근 매실주, 설탕을 넣어 숙성시킨 매실 농축액, 몇몇 업체에서 개발한 매실 절임이 전부다. 그런데 한국 매실 음식은 죄다 덜 익은 매실, 청매를 사용한다.

한국과 일본의 매실 사용 차이점을 민족의 식성 차이로 인정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청매는 덜 익은 과일이며, 따라서 향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매실의 진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청매 상태에서는 아주 덜 익은 매실이 섞여도 구별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아직 먹을 수 없는 매실이 시장에 깔려도 구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매실 생산자들은 ‘맛없는 청매’ 위주로 소비시장이 형성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매가 한국시장을 점령한 까닭은 한 주류업체가 매실주를 제조하면서 퍼뜨렸다는 말이 있다. 다 익은 매실은 쉽게 뭉개지는 탓에 운송과 보관이 어려워 청매를 수매했는데 그게 번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유통업체가 청매의 확산에 한몫을 하긴 했다. 황매는 보존 기간이 짧으니 판매대에 장시간 진열할 수 없어 비교적 보관이 수월한 청매만 내놓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일부 매실 농사꾼이 황매 유통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자는 취지도 취지지만, 시고 향도 없는 청매만 팔다 보면 언젠가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잘 익은 매실 파는 농장 몇 곳을 찾을 수 있다.

 

천일염으로 미네랄 보충하겠다고?
소금

천일염을 거두고 있다. 천일염 맛은 제각각이다. 대체로 날씨와 소금 결정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묵혔다고 다 맛있는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 손자의 배필을 구하는 영조가 가계 좋은 집안의 처자들을 불러모아 문제를 냈다.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은 무엇인고?”

별별 답이 나왔다. 한 처자 왈, “사람의 마음이옵니다.”

영조는 이 처자를 1차 통과시켰다. 두 번째 문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은 무엇인고?”

모란, 매화 등 별별 답이 나왔다. 1차 통과한 그 처자 왈, “목화이옵니다.”

놀란 영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무엇인고?”

온갖 산해진미가 답으로 나왔다. 2차까지 통과한 그 처자 왈, “소금이옵니다.”

우문현답의 주인공인 그 처자는 바로 간택됐다.

사람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네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매운맛은 촉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감칠맛을 제5의 맛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단맛, 쓴맛, 신맛은 여러 재료에서 그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짠맛은 오직 소금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 소금은 인간의 생리작용에 꼭 필요한 성분이라 섭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소금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그 짠맛이 생명의 맛인 까닭이다.

소금은 재료에 양념이 배게 해 맛을 더하는 역할도 한다. 생물의 세포막은 이물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소금이 이 막을 깨뜨려 맛이 들게 도와준다. 김치 담글 때 배추를 먼저 소금에 절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 때문이다. 소금의 침투력이 다른 조미료보다 훨씬 빠르므로 조리할 때는 맨 나중에 넣어 다른 맛이 모든 재료에 적절히 배도록 해야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구울 때 소금을 뿌리거나, 대하를 소금구이 하는 까닭은 단지 짠맛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육류에 소금을 뿌리고 구우면 표면의 단백질이 빨리 응고돼 고기 안의 영양분과 맛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다.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인 것이다.

요즘 슈퍼마켓에 가보면 별별 소금이 다 있다. 심해소금에서부터 암반염, 죽염, 볶음소금, 나트륨을 대폭 줄인 소금까지. 최근에는 천일염이 소금 시장에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네랄이 많은 건강 소금이라는 것이다. 각종 자료를 보면 미네랄이 많은 것은 맞다. 그런데 미네랄이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마그네슘은 쓰며 칼슘이나 칼륨은 텁텁함을 준다. 미네랄이 풍부한 약수를 마셨을 때 좋지 않은 맛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네랄도 적당하게 들어 있어야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또 미네랄이 소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된다. 천일염으로만 미네랄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은 비상식적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무슨 음식이 어디에 좋다”고 하면 거의 맹신적으로 매달린다.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는 것이야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과학적이고, 때로는 매우 정치적이며 상업적인 주장에 따라 그 몸에 좋음이 부풀려지는 일이 흔하다. 최근에 불고 있는 ‘천일염 지상주의’도 그런 경우로 보인다. 사실 천일염은 근대의 산물이며, 우리 어른들은 ‘왜염’이라 하며 맛없는 소금 취급했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음식에서 ‘최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