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의 힘은 몇 가지 수치만 들어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어느 척도로 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국의 <타임스>지나 중국의 자오퉁(交通)대학의 랭킹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미국 대학이 세계의 학문과 지성계를 이끌어가고 있고 끊임 없는 탐구, 창조, 개발과 발명의 産室(산실)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인정한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대륙과 인종, 종교와 이념을 불문하고 미국 대학에서 수학하기를 갈망한다.
또 미국에는 4500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다. 이는 전 세계 박물관의 25%에 해당하는 숫자다. 박물관과 미술 갤러리를 합친 숫자는 2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또 오케스트라는 1200개 팀이 활동하고 있고, 소규모 오케스트라까지 치면 300여 개가 더 있다고 한다.
뉴욕은 전 세계 미술과 연극·뮤지컬의 중심지이고, 할리우드는 전 세계를 제패한 영화산업의 산실이다. 미국 대중음악의 힘과 영향력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계량적인 수치만 갖고 문화의 힘을 따질 수는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의 각 부문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量(양)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데 있어서도 문화적인 차원의 교류를 중시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G8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및 일본이 멤버로 있는 선진국 클럽이다.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8개국은 전 세계 총생산의 65%, 군비의 72%, 핵무기의 99%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현안들에 대해 토의하고 보조를 맞춘다.
인식론적 공동체
G8 회원국들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서로의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다.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노문학, 이탈리아문학, 일문학은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의 根幹(근간)을 이루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 위고와 사르트르,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단테와 에코,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 등은 국적과 국경을 넘어 이들 나라가 형성하고 있는 인식론적 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상징적 존재들이다.
이들 선진 강대국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국민과 엘리트들이 문화적 코드를 共有(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간의 정치적, 경제적, 심지어 군사적 분쟁마저 이들을 갈라 놓을 수 없다.
가장 비근한 예로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을 때, 프랑스는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급기야 미국에서 ‘反(반)프랑스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프렌치 토스트’를 ‘프리덤 토스트’로 고치자는 법안이 미국 하원에서 상정될 정도로 미-불 관계는 급전직하의 상황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이런 해프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프랑스와 미국 간의 관계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밀접하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과도하다시피 한 존경심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10년간 소위 ‘반미감정’이 표출되면서 한미관계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아무리 중요한 동맹국이고 교역국임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는 작은 변화에도 크게 흔들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심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록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급격하게 부상한 신흥국가지만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본다면 문화적으로는 ‘低(저)발전국가’군에 속할 뿐이다. 따라서 한국이 진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관건은 하루빨리 한국의 고급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대장금’ 드라마의 가능성
미안한 얘기지만 ‘민중문화’ 또는 ‘대중문화’는 정치적 또는 이념적 저항을 위해서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즉 기존의 ‘엘리트 문화’, ‘고급 문화’에 대한 반항으로서는 설정될 수 있지만 ‘卽自的(즉자적·헤겔 변증법에서 그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태. 정반합의 제일 단계로, 正에 해당-필자 주)’인 매력은 결여하고 있다.
풍물과 사물놀이, 판소리와 민중문학이 아무리 호소력이 있다고 해도 외국에 한국문화의 정수를 알리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의 고급문화인가? 몇 년 전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장금’이란 연속극은 한국의 고급문화의 가능성을 일깨워준 역작이었다.
한국 음식이 불고기와 비빔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멋과 맛에 있어서도 실로 어느 나라의 ‘퀴진’(cuisine)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려 준 것은 민간외교의 개가다. 더욱이 한국의 음식문화가 모양과 맛에 못지않게 깊고 논리정연한 ‘철학’을 담고 있음을 알렸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미국 등지에서 한국 음식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직접 참가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한국 음식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세계관’, 즉 ‘음양오행’ 등의 철학에 대한 설명들도 간단하게 곁들여진다면 錦上添花(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느 나라의 음식이건 이처럼 심오한 철학까지 곁들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급문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특히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이 해외에 한국학을 심고자 하는 노력은 부단히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유수 대학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됐고 한국사, 한국문학,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영화 등 대중문화 관련 과목들이 속속 개설되어 왔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의 고급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이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저변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스타워즈’는 우주판 사무라이 이야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급문화를 알리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빠져 있다. 한 나라의 고급문화를 소개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적 ‘인간형’을 소개, 보급하는 것이다. 일본의 문화는 ‘사무라이’, 미국의 문화는 ‘카우보이’, 프랑스의 문화는 ‘귀족’이 대변한다.
이런 이상적 인간형들은 그 문명이 전통적으로 표방하는 윤리와 도덕, 국가관과 가족관, 형이상학과 미학을 體化(체화)하고 실천했다. 그리고 그 인간형들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도 그들이 상징하던 세계관과 가치관이 전수돼 면면히 흐르면서 그 문명 특유의 멋과 맛을 제공해 준다.
일본 사무라이의 예를 살펴보자. 사무라이는 일본문화의 精髓(정수)를 대변하는 인간형이다. ‘부시도(武士道)’는 물론 일본의 ‘젠(禪)’ 불교, 일본인들의 공동체 의식, 忠(충) 사상, 도덕률 등 모든 것은 사무라이를 통해 알려져 있다.
또 일본 특유의 예의범절, 의복문화, 건축문화에 대한 인식 역시 사무라이라는 인간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건축, 의복, 음식, 예절, 도덕, 사상도 그것을 체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간형이 있어야 구체성과 역사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영화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해외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카게무샤’, ‘란’ 등은 일본 무사의 멋을 맘껏 자랑하면서 외국인들의 뇌리에 일본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7인의 사무라이’는 율브리너 등이 주연한 ‘황야의 7인’으로, ‘요짐보’는 크린트 이스트우드를 유명하게 만든 ‘황야의 무법자’,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로 다시 태어나면서 미국의 대중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루카스는 스필버그와 함께 구로사와를 신봉하면서 스타워즈를 만드는 데 있어 일본 사무라이의 모든 것을 반영했다. 줄거리를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따왔을 뿐만 아니라 ‘제다이 기사’들이 사용하는 레이저 검은 사무라이의 검을, 그들이 추구하는 ‘포스(force)’는 사무라이들의 ‘氣(기)’를, 그리고 다스 베이더가 쓰고 있는 가면은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를 그대로 딴 것이다. 결국 영화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스타워즈 시리즈는 일본 사무라이극을 ‘우주전쟁’이란 틀 속에 각색한 것이다.
사무라이의 이상형 시대마다 재생산
톰 크루즈가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열연하고 있다. 2003년 개봉한 이 영화는 톰 크루즈가 사무라이라는 인간형에 매료돼 자진해서 만들었다. |
그 이후 일본 사무라이의 ‘로망’은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미국인을 비롯한 서양인들의 세계관의 일부분이 되어 갔다. 1975년에 호주 출신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제임스 크라벨은 ‘쇼군’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미 ‘대탈출’의 대본을 쓰고 시드니 포이티에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을 쓰고 감독한 그는 임진왜란 직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패권을 잡아가는 과정을 픽션의 형식을 빌려 그리면서 일본 사무라이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서양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서양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는 가상의 영국 선원이 일본에 난파해서 사무라이 세계의 일원이 되면서 빠져들게 된다는 機制(기제)를 사용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은 1980년 리처드 체임벌린이 주연하는 미니시리즈로 제작돼 1억2000만명이 시청하는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이는 지금까지 방영된 모든 미니시리즈 중 두 번째로 많은 시청자 수다.
가장 최근에 다시 한 번 사무라이를 서양인들에게 대중화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톰 크루즈가 제작, 주연한 ‘마지막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다. 2003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세계적인 스타 톰 크루즈가 사무라이라는 인간형에 매료돼 자진해서 영화를 만든 경우다. 실제로 톰 크루즈는 영화 시사회 때마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철학자요, 예술가”라고 하면서 자신이 사모하는 인간형임을 숨기지 않았다.
‘쇼군’이 일본 전국시대 말기를 무대로 했다면 ‘마지막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막부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본이 근대화의 길로 나가기 시작하는 기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겐 征韓論(정한론)의 주창자로 알려져 달갑지 않은 존재지만, 일본인들은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崇仰(숭앙)하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메이지유신의 주역이면서도 사무라이의 세계, 특히 그 정신세계가 무너져가는 것을 막아 보고자 자기 몸을 던지는 ‘마지막 사무라이’의 장렬한 모습을 최신 할리우드 영화기법과 톰 크루즈라는 스타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면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사무라이는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 대중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사무라이라는 인간형이 발산하는 ‘소프트파워’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일본의 복식, 음식, 붓글씨, 검 등 모든 것은 사무라이가 애용하던 것이었기에 더욱 구체적이면서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일본이 선진국으로, 문화대국으로 미국과 서양인들의 인정을 받는 데 있어 사무라이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인 것이었다.
선비는 한국 고유의 인간형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문명과 가치관을 대변할 수 있는 인간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선비’다. 지금은 비록 사라진 ‘전근대적’인 인간형이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추종하는 忠(충), 孝(효), 仁(인), 義(의), 禮(예), 智(지), 信(신) 등의 가치관들을 대변하고 있다.
선비라는 인간형은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 현대판 과거제도인 국가고시를 통해서 선발된 엘리트들이 주도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현대판 ‘재야’인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주도해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선비’야말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간형이다.
혹자는 선비가 한국만의 고유한 인간형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유교경전을 공부하면서 과거를 치르고 入朝(입조)해 관료로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인간형은 중국이나 월남 등지에서도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 모두 ‘기사’가 있었다고 이 기사들이 모두 같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대부나 관료, 또는 일본의 文士(문사)들과 조선의 선비와의 차이는 서양 각 나라의 기사들 간의 차이보다 훨씬 크고 근본적이다.
우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선비, 또는 문사의 지위가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중국에서의 선비나 문사, 사대부는 강력한 황제와 관찰사로 대표되는 ‘군벌’의 할거 사이에서 늘 치이는 존재들이었다.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선비’ 특성
중국에서도 ‘포청천’ 같은 모범적인 儒家(유가)적 인간형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관료의 모습일 뿐, ‘재야’의 인간형으로서의 모습도 함께 담고 있는 ‘선비’와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문사가 아닌 武士(무사)가 역사 속에 대대로 ‘주류’ 인간형으로 자리를 잡아왔기에 ‘선비’의 모습을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선비가 한국 특유의 인간형이란 사실은 필자가 경험을 통해서 확인한 바 있다. 필자는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유교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해외의 저명한 유교 전문가들을 초청해 유교의 현대적 意義(의의)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인 회의들이었다.
회의의 결과는 2000년에 ‘전통과 현대’社(사)에서 출간한 <유교민주주의, 왜, 어떻게?>라는 책으로, 그리고 2003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그런데 이 회의는 두 번 모두 서울이 아닌 安東(안동)에서 진행했다. 외국 학자들이 서울만 와서 보고 한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교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조선 유교의 본산의 하나인 안동을 꼭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첫 번째 회의는 의성 김씨 宗宅(종택)인 ‘지례마을’에서, 두 번째 회의는 광산 김씨 종택인 ‘군자리’에서 가졌다. 특히 사흘간 속개된 두 번째 회의는 오전 중에는 군자리 중앙에 자리한 종택 대청마루에서 학술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근방의 사찰과 서원을 하나씩 견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회의 참석자들은 봉정사와 부석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소수서원들을 견학할 수 있었다.
회의 사흘째 오전 회의가 끝나고 회의 참석자들은 부석사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해서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부석사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학자 중 컬럼비아대학교의 저명한 유교 전문가인 테오도르 드베리 교수와 프린스턴대학교의 길 로즈만 교수는 그날 오후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시간상 그날 계획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모두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석사만 보고 그 두 교수는 비행장으로 직행하도록 계획을 짰다.
점심식사 후 드베리 교수가 필자에게 “이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왔다. “바로 이 앞에 있는 부석사에 갑니다” 했더니, 그가 “미안하지만 소수서원으로 먼저 갈 수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평생 유교를 공부했다. 그리고 유교의 本山(본산)인 중국은 수도 없이 다녀왔다. 중국의 불교 사찰들은 많이 다녀봤지만 書院(서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늘 오후에 보기로 되어 있는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서원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꼭 보고 싶다.”
그날 드베리 老(노)교수의 간청으로 회의 참석자들은 바로 앞에 있는 부석사를 뒤로한 채 다시 버스를 타고 소수서원으로 갔다. 소수서원을 찾은 드베리 교수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누구보다 한문에 능통한 그는 서원에 보관돼 있는 文獻(문헌)과 書札(서찰), 簇子(족자) 등을 자세히 읽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줬다.
선비들이 공부하고 심신을 수련하던 서원, 유교에 없어서는 안될 특유의 교육기관인 서원이 정작 중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의 유학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서원이다.
요즘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서원을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선비가 누구였는지 모르면서 서원의 참뜻과 참맛을 알 수 있을까?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 오래된 건축물로 소개된다고 서원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서원을 짓고 그 속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련하면서 큰 뜻을 품은 선비라는 인간형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서원의 의미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또 한국의 음식과 전통한옥, 한복도 한국의 대표브랜드로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역시 선비라는 인간형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야 보다 쉽게, 그리고 보다 깊이 있게 전달될 수 있다. 한옥은 선비가 살던 집, 한복은 선비가 입던 옷, 그리고 한국음식은 선비가 먹던 음식으로 소개되어야 한다.
물론 선비의 것만이 전통한국의 의식주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비가 ‘주류’ 인간형이었고 다른 인간형들은 선비와의 대비를 통해서 그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선비 프로젝트’ 시동을…
선비는 분명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빨리 ‘선비’를 한국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인 동시에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고 전 세계에 보급하는 ‘선비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세계사에서 유일무이한 ‘선비들의 쿠데타’를 통해 조선조를 창건한 鄭道傳(정도전)·權近(권근) 등의 이야기, 세조의 왕위찬탈에 저항하면서 끝까지 충절을 지킨 死六臣(사육신)의 스토리, 임진왜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와 관군 대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격퇴한 선비들의 활약상, 그리고 구한말 무너져 가는 전통문명을 끝까지 지키면서 기울어지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마지막 선비’들의 생애는 모두 소설과 영화, 다큐멘터리의 훌륭한 소재들이다.
이런 스토리들을 발굴하고 이를 주제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시에 전시회, 강연회를 선진국 주요 도시의 미술관, 도서관, 대학 등의 최고급 문화공간에서 개최하면서 세계인의 의식 속에 한국 선비의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이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가장 확실하게 고급스러운 한국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생산해 내고 외국에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