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헤매는 나비와 함께 춤을…
사람들 발길질 아래에서도 특유의 도도함을 잃지 않고 생을 이어간다.
사람과 길고양이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할까.
이제 남은 건 고양이다. 사람에게 ‘요물스럽고 신경통에 좋기로’ 소문난 고양이는 사람 눈을 피해 도시 구석구석에서 고된 생을 이어간다. 더럽고,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발정기가 되면 아기 울음소리를 내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털을 세우고 몸을 부풀리는 탓에 많은 도시 사람은 고양이를 미워하거나 무서워한다. 발을 굴려 쫓아내고, 밥에 독을 타거나 석궁을 쏴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안다. 고양이만큼 자기 몸이 더러운 걸 못 견디는 동물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러운 고양이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일정한 먹이가 주어지면 고양이는 절대로 쓰레기봉투를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존이 위협받을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더 잦아진다는 것을, 극한의 두려움을 느꼈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책이 털 세워 몸 부풀리기라는 것을 알기에 이 ‘어떤 이’들은 도시에 사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라고 부르며 어여삐 여긴다.
사람들이 자신을 가여워하든 미워하든 길고양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사람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어쩌다 집에 들여놓아도 ‘함께 지낼’ 뿐 ‘키워지지’ 않고,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복종하지 않는 길고양이를 보고 도시의 많은 문화예술인이 영감을 얻었다. 사진가는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이들의 사진과 글, 그림에는 길고양이를 향한 연민과 미안함, 흠모의 감성이 함께 섞여 있다.
ⓒ박은경 그림 길고양이를 거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두 일러스트레이터의 고양이 그림. |
일러스트레이터 박은경씨(30)가 그리는 고양이는 워낙에 도도하고 화려한 양탄자 위에 앉아 있어 ‘품종묘’로 보인다. 친구 고양이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속 고양이도 모델로 삼지만 주로 그리는 얼굴은 고등어 무늬의 열두 살 고양이 ‘마리’. 11년 전 길에서 거지꼴을 하고 울던 것을 데려와서 여차저차 사람 나이 아흔 살이 되도록 함께 살았다. 6년 전 들인 새끼 고양이 형제 3마리도 집 앞 공사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길고양이였다. 박씨의 그림을 보면, 털 색깔이 어떻고 족보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고양이는 모두 화려하고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학 측면에서도 고양이가 좋지만, ‘망가진 자연의 상징’ 같아서도 박씨는 길에 사는 고양이에게 마음이 끌린다. “인간이 모든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폭력적으로 내쫓고, 베어버리고, 부숴버리고…. 이런 심성이 용산 철거민 사건처럼, 결국 인간에게도 향하는 것 아닐까요?”
“고양이가 사라진 동네, 좋을까요?”
황인숙 시인(51)은 본 적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 10마리에게 밥을 준다고 하면 고작 한두 마리의 얼굴만 구경해봤다. 없어지는 사료를 보고 ‘아, 많이 먹는 애들 대여섯 마리가 요 근처에 사는구나’라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황 시인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왠지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물색한다. 예를 들면 오래도록 주차해놓은 큰 트럭 바퀴 뒤, 연립주책 1층 테라스와 땅바닥 사이 같은 곳 2.너무 많지 않도록 양을 조절해 그릇 두 개에 고양이 사료와 물을 담고 그곳에 둔다 3.수시로 내다보며 그릇이 비었는지, 누가 해코지는 안 하는지 확인한다 4.그릇이 비고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되면 매일 그곳에 먹이를 둔다 5.가끔 먹으러 오는 ‘그놈’ 얼굴을 보게 되면 흐뭇한 마음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황 시인은 옥탑방에 살면서 처음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 먼젓번에 살던 옥탑방에서 내려가면 보이는 1층 작은 뜰에서 큰 길고양이를 종종 만났다. 모습이 어여뻐 몇 번 먹이를 줬는데, 그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옥상까지 올라왔다. 황 시인은 “차라리 고양이를 모르고 살 때가 세상이 더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시어로 나긋나긋 시를 쓰는 황 시인도 고양이 이야기를 담을 때면 시에서도 목소리를 약간 높인다.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 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 그러면, 좋을까요?” (황인숙, <고양이를 부탁해> 중)
‘버려진 것’의 쓸쓸함을 무조건 찍고 또 찍고…
포털 사이트 다음(daum) 메인 화면에 뜬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클릭하면, 백이면 백 길고양이 블로거 고경원씨(34)의 블로그(http://catstory.kr)로 넘어간다. 가회동 고양이, 이태원 고양이, 밀레니엄 삼색 고양이, 신사동 카오스 고양이, 오금동 턱시도 형제 등 고씨가 서울 곳곳에서 만난 길고양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길고양이’로만 1000여 개 포스트를 쓰고 파워 블로거로 여러 곳에서 상도 받았다.
ⓒ고경원 제공 김하연씨가 새벽에 길고양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 꽤 친한 사이다. |
누군가는 묻는다. 버려진 고양이도 불쌍하지만 버려진 사람부터 챙겨야 하지 않느냐고. 고씨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생명을 돕는 일에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생명을 우선순위에 따라 줄 세울 때, 그 줄에서도 저만치 뒤로 밀려난 존재들은 누가 돌봐줄까? 아무리 기다려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뒷줄에 서서 죽어가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며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쓴다.”(고경원,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중)
“부모 같고, 나 자신 같아 카메라에 담는다”
한겨레신문 서울 봉천지국장 김하연씨(40)는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나설 때마다 4kg짜리 카메라 가방을 챙긴다. 조용한 거리에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달리면 곳곳에 숨어 있던 길고양이들이 얼굴을 내민다. 어떤 길고양이는 “개처럼 뛰어와” 김씨 다리에 몸을 비빈다. 김씨는 그들에게 먹이를 챙겨주거나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엎드려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김씨에게 가끔 행인이 다가와 혀를 찬다. “그걸 뭐 하려고 찍는대요? 어이구 참, 일도 없네.”
‘개처럼 살갑지 않아’ 김씨도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다. 2006년, 신문 배달 도중 틈틈이 찍은 풍경 사진들 중 몇 개를 골라 아마추어 사진전에 냈다. 별 생각 없이 찍은 길고양이 사진도 2점 섞여 있었다. 심사를 맡은 프로 사진가가 제안했다. “고양이가 여러 가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찍어봐라.” 피사체를 알아야 하니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고양이를 공부했다. 알고 나니 고양이가 더 좋아졌다. 2007년부터 고양이 사진 개인전을 두 번 열고 개인 블로그(http: //ckfzkrl.egloos.com)에 길고양이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김하연 제공 길고양이를 만나고 싶으면 ‘틈새’를 잘 노려야 한다. 자동차 밑, 주택가 좁은 담장 사이처럼 조금만 외진 곳이다 싶으면 그들이 있다. |
자동차 밑, 오토바이 바퀴 뒤, 길모퉁이 옆처럼 조금이라도 외진 곳이면 그곳에 길고양이가 있다. 김씨는 항상 엎드리거나 쭈그리고 그들을 찍는다. 길고양이의 눈높이로 보는 도시 풍경은 매정하고 살벌하다. 자동차 불빛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길고양이에게는 너무 크고 시끄럽다. 김씨는 “눈에 안 띄고 피해 주지 않으려고 자꾸 자신을 격리시키는” 길고양이를 보고 부모를 떠올렸다. 또 자신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더라고요.”
취향은 도덕이 아니다. 길고양이가 예쁘고 위험하지 않은 동물이라고 100명이 설득해도 ‘그냥 정이 안 가는’ 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길고양이 매력에 반하고, 미안해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려고 뛰는 길고양이 애호가 중 아무도 세상 사람들에게 “길고양이를 예뻐해주세요”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다. 다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다만 이 정도만 부탁한다.
“‘아, 저 고양이들이 우리 사는 도시 속에서 함께 살고 있구나’ 정도만 인식해달라. 또 굳이,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롭히지만 말아달라.” ‘길고양이’라고 부를 때의 ‘길’은 꼭 사람만의 길이 아니다.
이미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무너진 이상, 도시에서 길고양이를 ‘자연 상태’로 놔두는 일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길고양이 개체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면 길고양이에게나 사람에게나 좋지 않다. 길고양이끼리 영역 다툼이 치열해져 서로 싸우다가 많이 다치기도 하고, 번식을 위한 암컷 길고양이의 아기 울음소리가 한밤중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최근까지 ‘길고양이 대책’이라 불릴 만한 것은 살처분뿐이었다. 길고양이가 시끄럽고 지저분하다며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들어오면 동물구조협회 등에서 생포해 유기동물보호소에 몰아넣는다. 일정 기간 찾으러 오거나 입양하는 사람이 없으면 길고양이를 죽인다. 동물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차라리 잡자마자 죽여라”고 말할 정도로 보호소의 환경은 열악하다.
고심 끝에 도입한 것이 바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프로그램(TNR)이다. 길고양이를 잡아서(Trap)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Neuter) 다시 제 영역으로 돌려보내는(Return) 과정으로 진행된다. 살처분 방식이 오히려 진공 효과(빈 영역에 다른 길고양이들이 들어오거나, 암컷이 새끼를 빨리 배 결국 길고양이 수가 줄어들지 않는 효과)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영국에서 처음 시행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서울 강남구와 용산구에서 시범 실시하다가 지난해 3월부터 서울시 전체로 확대했다.
“인간이 숲과 먹이를 없앤 이상…”
정부에서 나서기 전 민간 동물보호 단체에서 먼저 TNR를 실시하고 있었다. 서울 한강맨션의 ‘캣맘’들이나 고양이보호협회 회원들이 후원금을 모아 민원이 잦은 동네의 길고양이를 잡아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왔다. 이들은 ‘잡아서 수술시키는 과정’보다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사후 모니터링 과정에 더 신경을 쓴다. 수술 후 회복이 덜 된 길고양이가 자기 영역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행한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고양이 보호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지자체에서 TNR 프로그램을 시작한 게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일단 많이 잡아서 수술시키고 보자”라는 실적주의에 빠질까봐 걱정스럽다.
길고양이를 집에 들여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시킨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옆집 담 밑 좁은 곳에 갇혀서 우는 새끼 고양이를 구출해 8년간 키운 일러스트레이터 전지영씨(39)는 수술을 시킨 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들었다. “비윤리적이고 고양이에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씨를 비롯한 고양이 애호가들은 대부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어쩔 수 없는 차악”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모든 숲과 먹이를 없앤 이상, 도시에서 이미 태어난 길고양이의 생명을 존중하되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중간 선택지라는 것이다.
길고양이와 친구가 되는 길이 자칫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은 동네에선 더욱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 습성 이해하기
고양이의 습성을 제대로 모르고 접근하면 사람이나 고양이나 상처받기 십상이다. 일단 길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 눈을 정면으로 마주쳐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것을 공격하려는 의사로 이해한다. 눈을 깜빡이거나 무심한 듯 고개를 돌리면 길고양이들이 안심한다. 개의 몸짓과 의미가 정반대인 경우도 많으니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는 화가 나면 으르렁거리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기분이 좋으면 그르렁거리고 화가 날 때 꼬리를 흔든다. 고양이가 기분이 느긋할 때는 두 앞발을 몸 아래로 접어넣고 꼬리로 몸을 감싼 ‘식빵 굽는 자세’를 취한다. 가끔 길고양이가 죽은 쥐나 곤충을 집 앞에 두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상대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저주가 아니니 고맙게 받으면 된다.
함부로 만지지 마라
안면을 익혀서 길고양이가 더 이상 달아나는 일이 없다고 해도 함부로 손을 내밀어 만지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새끼 고양이를 만지면 사람 냄새 때문에 어미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를 못 알아보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집에 데려가 키울 것이 아니면 만지면 안 된다. 또 사람 손을 많이 탄 길고양이가 아무한테나 경계를 풀 경우, 위험한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길고양이 애호가들은 “웬만하면 지켜만 보면서 친해져라”하고 조언한다.
한번 밥을 주면 끝까지 책임져라
같은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먹이를 제공해주는 게 중요하다. 한번 먹이면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사료를 먹던 길고양이는 쓰레기봉투 속 음식물을 더 이상 뒤지지 않기 때문에 몇 번 주다가 말면 길고양이가 굶을 수도 있다. 먹이를 둘 때는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정인의 집 앞을 피해야 한다. 고양이는 배부르면 절대 더 먹지 않기 때문에 먹이 양도 적당히 조절해야 주변 자리가 깨끗하다. 또 길고양이에게 개 사료를 주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개 사료에는 고양이가 필수로 섭취해야 하는 타우린 성분이 없기 때문이다. 타우린은 고양이 눈의 망막 기능에 관여해, 지속적으로 결핍될 경우 고양이가 실명할 수도 있다.
길고양이가 진짜 싫다면
아무리 봐도 길고양이가 무섭고 싫다면 오렌지 껍질이나 즙을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곳에 둔다. 고양이가 싫어하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고양이를 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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