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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醉月 2011. 2. 5. 09:24

대식가로 알려진 이탈리아 사람들도 점심은 간단하게 파스타 한 접시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여러 종류의 파스타가 적혀 있지만 이탈리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메뉴에서 빠뜨리지 않는 것이 바로 까르보나라(Carbonara)이다. 까르보나라는 토마토소스, 오일 파스타와 더불어 크림파스타의 기본이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는 파스타이다. 크림소스로 만든 파스타 요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까르보나라는 베이컨, 치즈, 달걀노른자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부드러운 맛이 인상적이다.
 

 

‘Carbone'는 ‘석탄’ 이라는 의미

이탈리아어로 ‘Carbone'는 ‘석탄’ 이라는 의미로 중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라치오지방의 음식이다. 원래는 아페니니 산맥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달걀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까르보나라의 시초이다. 광부들이 이 음식을 먹다가 몸에 붙어 있던 석탄가루가 접시에 떨어진 것에 착안해서 굵게 으깬 통후추 가루를 뿌려먹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크림파스타의 기본이라 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지닌 까르보나라

 

 

한국과 이탈리아의 까르보나라는 다르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방식의 까르보나라와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까르보나라는 맛과 모양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생크림을 듬뿍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내지만 이탈리아의 로마식 까르보나라 소스는 생크림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판체타(이탈리아식 햄)나 달걀노른자, 치즈가루만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진한 노른색을 띤다. 전통 방식의 까르보나라에는 판체타가 아닌 구안찰레(guanciale)를 사용하는데 돼지의 뺨과 목살부위를 이용하여 만드는 햄인 구안찰레를 바삭하게 구워 면과 함께 내어 놓는다. 여기에 페코리노 로마노(pecorino romano) 라는 로마의 전통 양젖 치즈를 사용하는데,  페코리노 치즈를 넣고 구안찰레를 얹은 카르보나라를 정통 ‘카르보나라’라고 지칭할 수 있으며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한국식으로 크림을 넣고 걸쭉하게 만든 까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변형된 형태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갔는데 그 후 미국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크림과 우유를 넉넉하게 넣고 끓이다 파마산이라고 부르는 파르미자노(parmigiano) 치즈를 넣고 졸여낸다.

 

 

한국식으로 크림을 넣고 걸쭉하게 만든 까르보나라

 

 

맛있는 까르보나라를 위한 Tip

 

모든 파스타가 그렇겠지만 특히 까르보나라는 최대한 심플하게 기본에 충실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맛을 내는 비결이다. 라치오(Lazio) 지역에서 유래된  전통적인 까르보나라에는 몇 가지 필수적인 재료와 독특한 조리법이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재료를 찾기 어렵지만 조리법을 설명하자면, 무엇보다 돼지의 볼살 부위를 염장해 만든 구안찰레와 진한 풍미의 양젖 치즈가 필요하다. 또한 생크림 대신 동일한 양의 파스타 삶은 물에 달걀 노른자, 양젖 치즈 그리고 후추를 넣어 녹인 소스를 사용한다. 달걀 노른자가 완전히 굳지 않게 조리해야만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달걀을 풀 때 소금을 넣는 이유는 간을 한다기보다 흰자의 알부민에 작용하여 좀 더 잘 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삶은 면과 구안찰레 햄 그리고 양유 치즈에 충분히 간이 되어 있으므로 그 점을 고려한다. 면은 알덴테(al dente)가 아니라 완전히 익은 상태라도 괜찮다. 파스타를 둘러싼 크림이 많이 든 까르보나라 소스와 면의 질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까르보나라 소스와 면의 질감을 맞추기 위해 면은 알덴테가 아니라 완전히 익혀도 좋다.

  

까르보나라 레시피 보기

 

 

참고문헌: 파올로 데 마리아, [파스타 에 바스타], (비앤씨월드, 2008); 안토니오 심, [안토니오 셰프의 파스타], (대가, 2010); 이영미, [파스타(잘 먹고 잘사는 법 50)], (김영사, 2004)

 

길게 늘어진 모습이 마치 국수의 모습과 흡사해 한국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스파게티(Spaghetti).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스파게티’는 파스타 보다 더 익숙한 단어이다. 파스타를 즐겨 먹는 사람들도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한 종류로 얇고 긴 모양을 가진 면의 이름이다. 스파고(Spago)는 이탈리아어로 ‘실’ 이라는 뜻인데, 실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면이 모여 있다는 의미로 스파게티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나폴리에서 만들어진 스파게티

해산물 스파게티

 

 

 

스파게티는 1824년 ‘안토니오 비비아나’ 라는 사람이 쓴 ‘나폴리의 마케로니’ 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파게티는 파스타를 모두 일컫는 ‘마케로니’ 혹은 ‘버미첼리(Vermicelli)’ 라고 불렸다. 스파게티는 초기단계에 나폴리에서 만들어 졌으며 그 때의 스파게티는 현재의 스파게티 두께와 비슷한 얇고 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파게티가 이탈리아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두꺼운 면발을 선호하는 북부인들의 기호에 맞게 점차 두꺼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해산물이 풍부한 남부지역 사람들의 입맛이 깔끔하고 간이 약했다면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북부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소 간이 센 음식을 선호하였기에 진한 소스를 사용하였고, 소스의 맛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해 오늘날과 비슷한 두께(1.8~2.0mm)의 스파게티로 변하게 되었다.

 

퍼지지 않는 스파게티

 

처음 파스타를 먹었던 르네상스 시대만 하더라도 연질밀(부드러운 밀)과 경질밀(단단한 밀)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면을 1~2시간 정도 푹 삶아서 먹을 정도로 퍼진 상태의 면을 선호했기 때문에 시장에는 자연스레 경질밀만으로 제조된 밀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스파게티는 100% 경질밀만을 이용하여 만들어 졌으며 끓는 물에서 건져낸 뒤에도 잘 퍼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스파게티와 비슷한 면으로는 스파게티 버미첼리(spaghetti vermicelli)나 스파게티니(spaghettini)가 있다. 스파게티 버미첼리는 스파게티와 비슷한 이름과 생김새를 가진 파스타이며 시칠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스파게티보다 더 가는 것이 특징이다. ‘스파게티니’는 스파게티보다는 한 단계 더 가는 면으로 조리 시간이 짧아 최근 들어 많이 사용된다.


스파게티는 끓는 물에서 건져낸 뒤에도 잘 퍼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출처 : wikipedia>

‘스파게티’와 최고의 궁합은 ‘토마토소스’

 

토마토를 활용하게 되면서부터 파스타의 무한한 변신이 시작된다. <출처:NGD>


 

사람들이 스파게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붉은 소스와 버무려진 음식’을 생각할 정도로 스파게티와 어울리는 소스로 토마토소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토마토는 스파게티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음식이자 이탈리아의 모든 음식에 고르게 사용되는 식재료이다.

 

토마토를 기본으로 해서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소스들은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어울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붉은 스파게티의 상징이 된 토마토가 파스타에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17세기 초, 토마토가 이탈리아로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처음에 토마토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토마토는 신세계를 정복한 정복자들로부터 전해졌는데, 처음 이탈리아로 들여왔을 당시 관상용으로 취급되었으며, 심지어 어느 지방에서는 토마토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식용이 금지되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였다.  

 

1800년대가 되어서야 토마토를 활용한 파스타 요리가 등장했는데 1778년 빈첸조 코라도(Vincenzo Corrado)는 그의 저서 [Cuocogalante(The gentlemen's chef)]에서 최초의 토마토 소스를 언급했다. 기존의 파스타는 질 좋은 올리브 오일을 사용해 볶아 내거나 혹은 치즈를 곁들여 먹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지만 토마토를 활용하게 되면서부터 파스타의 무한한 변신이 시작되었다. 토마토에 소스와 바질 잎을 넣고 끓여서 만드는 토마토소스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지방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든 스파게티 알 포모도르(spaghetti al pomodoro)는 나폴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토마토소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파스타요리는 더욱 다양해지고 그들의 식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토마토소스와 잘 어울리는 해산물을 주재료로 만든 스파게티

이탈리아식 토마토소스 해산물 스파게티

 

 

‘포크와 스푼을 동시에?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스파게티를 먹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황홀하다. 하지만 처음 스파게티 음식을 접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스파게티를 먹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포크만을 사용하여 스파게티를 먹다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의 사람들은 식사할 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특히 대화를 중요시하는 유럽의 식사문화에서 한참동안이나 머리를 숙이고 식사를 해야 하는 스파게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만회하고자 스푼을 이용하여 스파게티 먹는 것을 도왔고 그 후 많은 국가에서 포크와 스푼을 동시에 사용하는 식사 예절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스파게티를 먹을 때 스푼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포크만으로 돌돌 말아 식사를 하며, 포크를 사용하기 힘든 어린 아이들이나 남부 지역에서 스푼을 사용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스푼과 포크를 동시에 사용해 스파게티를 먹는 예절이 있긴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포크만으로 면을 돌돌 말아 스파게티를 먹는 경우가 많다.


스파게티는 포크와 스푼을 동시에 사용해 면을 돌돌말아 먹을 수 있다.

 

스파게티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보세요.

 

단호박스파게티 오징어먹물스파게티 미트볼스파게티 해산물스파게티 알리오올리오

 

 

참고문헌: 파올로 데 마리아, [파스타 에 바스타], (비앤씨월드, 2008); 안토니오 심, [안토니오 셰프의 파스타], (대가, 2010); 이영미, [파스타(잘 먹고 잘사는 법 50)], (김영사, 2004)

 

ITALY 카르보나라봉골레스파게티마카로니* 음식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음식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한 접시에 담기는 파스타(pasta)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식이다. 파스타는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을 모두 갖춘 건강식이다. 재료의 종류에 따라 160여개, 면의 형태에 의해 600 가지가 넘을 정도로 파스타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정찬 메뉴의 한 부분인 프리모 피아또(Primo Piatto) 로서 코스요리 중 한 순서로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1인분에 50g 정도의 소량으로 섭취하지만, 한 끼 식사의 대용으로 먹는 한국에서는 1인분에 110~120g 분량으로 섭취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파스타는 ‘파스타(pasta)’+‘물기가 없다(ascitto)’라는 의미의 ‘파스타 앗슈타 pasta asciutto'라고 불릴 정도로 국물이 없는 파스타로 통용되며, 이탈리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파스타는 소스와 면이 진득하게 버무려져 있다.

 

 

파스타 =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면

파스타는 이탈리아어의 ‘암파스타레(impastare) = 반죽하다’가 어원으로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면의 총칭이다. 파스타는 대부분 글루텐(gluten)이 많이 들어 있는 듀럼밀(durum wheat 경질밀)의 배아를 갈아서 만든 세몰리나(semolina)를 이용해 만든다. 파스타의 종류는 200여 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파스타는 면이 젖은 상태인 생(生) 파스타와 마른 상태인 건조 파스타로 나누며, 면의 길이에 따라 크게 롱(long) 파스타, 쇼트(short) 파스타로 나눌 수 있다. 롱 파스타에는 스파게티(Spaghetti), 링귀니(Linguine), 페델리니(Fedelini), 카펠리니(Capellini), 탈리아텔레(Tagliatelle), 라자냐(Lasagna) 등이 있고 쇼트 파스타에는 리가토니(Rigatoni), 펜네(Penne), 로텔레(Rotelle), 푸질리, 마카로니, 파르팔레(Farfalle) 등이 속한다.

 

파스타는 길이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1. 스파게티(spaghetti) 2. 뇨께띠(gnocchetti) 3. 루오테(ruote)
4. 세다니니(sedanini) 5. 마카로니(macaroni)

 

파스타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중국은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국수 형태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칸의 궁에서 파스타를 먹는 것을 보고 1295년경 유럽으로 가져 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후 제노바에서 폰지오 바스토네(Ponzio Bastone)라는 사람이 마카로니가 가득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유산으로 남긴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또 다른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에투르스칸족의 무덤에서는 파스타를 만들었던 기구와 파스타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기원전 4세기의 것이었다. 따라서 에투르스칸족은 그 당시 이미 밀과 비슷한 곡물을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미 기원전 4세기에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어 먹었던 파스타는 물과 소금, 밀가루반죽으로 만든 라가네(Lagane)라 불리는 라자냐와 비슷한 음식으로, 이시대의 유명한 미식가인 아피기우스(Apicius)가 자신의 요리책에서 이 요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또한 1세기에 마르티노 코르노(Martino corno)가 쓴 [시칠리아식 마카로니와 버미첼리 요리(De arte Coquinaria per vermicelli e maccaroni siciliani)] 라는 책에 최초로 파스타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파스타

현재의 가느다란 모습의 파스타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안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동안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그들은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이  방법은 11세기경 아라비아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부터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재료와 면 종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파스타 요리(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르곤졸라 뇨끼, 닭가슴살 파스타, 토마토소스 라자냐, 오일 파스타)

  

 

파스타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1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파스타는 상업화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리구리아주(Liguria)에서는 파스타의 균일한 품질 관리를 위해 일명 ‘파스타 조합’이 설립되었고, 이탈리아 각 지방에서는 손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소량으로 생산하였으나 1500년대가 지나면서부터 기계를 이용하여 파스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17세기 이후 파스타는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후 미국의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의 유럽 방문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19세기 말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이 급증하여 미국 본토에서 파스타를 대량으로 수입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듀럼밀(경질밀)을 생산하기 시작, 현재는 미국이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제 2의 파스타 생산 국가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을 만나면서 그 소비가 더 증대되었다. 최근 들어 미국 농무성(USDA)에서 파스타를 건강 음식으로 꼽을 정도로 파스타는 미국에서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건강한 음식’ 의 모델로 삼고 ‘지중해식 식생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파스타는 살찌는 음식?

 

‘밀가루 음식=살찌는 음식’이라는 오명을 사게 된 것은 라면, 자장면, 빵, 과자 등의 밀가루 음식들이 당지수가 높아 우리 몸에서 지방으로 빠르게 흡수될 뿐만 아니라 이런 음식에 첨가되어 있는 각종 기름과 설탕 등에 들어 있는 고열량의 지방 때문이다. 하지만 파스타는 다르다. 밀가루라고 해서 다 같은 밀가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스타를 이루는 밀가루는 천천히 소화 흡수되는 것으로 파스타에는 일반 밀가루 외에도 메밀가루나 밤가루, 보리가루 등 다른 곡식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고탄수화물 식품이기는 하지만 파스타의 전분은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으로 형성된 일종의 그물에 갇혀 있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소화흡수가 빠른 다른 전분 음식과는 달리, 천천히 분해되어 흡수된다. 즉, 소화흡수가 빨라 칼로리가 지방이 되어 체내에 축척되기 쉬운 패스트푸드와는 달리, 천천히 흡수되는 파스타는 칼로리가 완전 연소되기 쉽고 체내에 여분의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는다. 파스타를 이탈리아의 ‘슬로우 푸드(slow food)’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해산물을 주재료로 만든 킹크랩 파스타, 미국에서는 파스타를 건강한 음식의 모델로 삼고 지중해식 식생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파스타는 손으로 먹었던 음식

파스타는 17세기에 출연한 압착기(press) 덕분에 오늘날과 같이 파스타를 압착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그 생산이 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압착기는 사람이 직접 힘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반죽 또한 사람들이 긴 의자에 앉아서 발을 이용하여 주물러 섞어야 했다. 당시 나풀리 왕이었던 페르디난도 2세(Ferdinando Ⅱ)는 이러한 방법에 불만을 갖고 유명한 기술자 체자레 스파다치니(Cesare Spadaccini)를 고용하여 제조 과정을 향상시키라고 일렀다. 이렇게 하여 갈아놓은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증기기관이나 전동기를 작동시켜 반죽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 파스타 제조의 마지막 단계인 건조 과정은 여전히 기계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건조시키는 방법이었지만,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으로 파스타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의 파스타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귀족이나 왕의 식탁에 오르지 못했다. 16세기 이전 사케티의 소설에 마케로니를 감는 포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직 포크가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던 시기라 파스타를 손으로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 파스타는 거리 수레에서 판매되었으므로 이런 파스타를 먹는 것은 권위의 상징인 귀족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페르디난도 2세의 시종인 젠나로 스파다치니(Gennaro Spadaccini)가 포크를 발명함으로써 파스타의 지위는 한층 상승하였다. 

 

 

다양하고 맛있는 파스타 맛집 찾으러 가기 

파스타 음식 레시피 보기

 

 

참고문헌:파올로 데 마리아, [파스타 에 바스타], (비앤씨월드, 2008); 안토니오 심, [안토니오 셰프의 파스타], (대가, 2010); 이영미, [파스타(잘 먹고 잘사는 법 50)], (김영사, 2004) 

 

봉골레(Vongole)는 조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조개 국물을 기본으로 해 만들어내는 조개 소스와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인상적인 봉골레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인기 있는 파스타 중 하나다. 봉골레 파스타는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서 마늘과 조개를 넣고 충분히 볶다가 적당히 익었을 때 면을 볶아내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다. 토마토소스나 크림소스를 넣고 간을 하는 것이 아닌, 재료라고는 달랑 조개 하나만을 사용하여 만들어 내기 때문에 때로는 밀가루 맛만 느껴지는 끔찍한 요리가 되기도 하며, 성의가 없으면 해감이 덜된 조개의 모래를 씹을 수도 있다. 재료만 놓고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봉골레 파스타는 이처럼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가득 담겨진 사랑스러운 파스타이다.

 

 

이탈리아 해안 지역 어부들의 한 끼 식사

봉골레는 이탈리아어로 조개를 뜻한다. 해안지역인 베네치아 지방에서 유명한 봉골레 파스타는 과거부터 바지락, 모시조개, 백합 등 바다에서 공수되는 다양한 조개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조개의 생산량이 풍부한 한국에서도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파스타가 바로 봉골레다. 봉골레 파스타는 항구지방에 사는 어부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였는데, 스파게티 면을 삶은 뒤 치즈를 얹어 먹던 것에 지루함을 느꼈던 어부들이 어느 날 갓 잡아온 신선한 조개들을 넣고 요리를 시작하였으며, 그 후 현재의 담백하고 깨끗한 맛을 내는 봉골레 파스타가 탄생되었다.

 

조개가 들어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봉골레 파스타

 

 

바다와 어울리는 파스타

한국에서는 대부분 스파게티 면을 사용해 만들어내지만 봉골레 파스타는 본래 면이 두꺼운 링귀네로 먹어야 제 맛이다. 봉골레 파스타는 신선한 조개와 올리브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콤한 고추를 첨가한 조개 육수와 어우러져 맛을 낸다. 다른 파스타에 비해 비교적 맛이 깔끔하며 담백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한 끼 식사로 대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깔끔한 맛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강한 맛이 나는 조개는 피해야 하며, 큰 조개보다는 작은 조개를 사용해야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또한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또는 동죽조개를 사용하여 미리 육수를 끓여 놓은 뒤 사용하면 한층 더 깊은 맛의 봉골레 파스타를 완성할 수 있다.

  

해안지역인 베네치아 지방에서 유명한 봉골레 파스타는 바지락, 모시조개, 백합
등 주 재료인 조개에서 느껴지듯이 바다와 잘 어울리는 파스타이다.

봉골레 파스타에 잘 어울리는 두꺼운 면의 링귀네
<출처:Sebastian Zurkuhl at en.wikipedia.org>

 

 

세기의 파스타 마니아들

“내 몸매는 파스타로 만들어 졌어요” 
                       - 이탈리아의 유명 여배우 소피아 로렌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여배우 소피아 로렌은 파스타 책을 직접 쓸 정도로 파스타 마니아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 관리는 파스타로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파스타 사랑은 애틋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특히 즐겨 먹던 파스타는 ‘봉골레 파스타’였는데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이 곁들여진 봉골레 파스타 맛에 반한 그녀의 집 냉장고에는 항상 조개가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소피아 로렌 외에도 수많은 세계 유명인들이 파스타 마니아를 자청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파스타와 피자광으로 알려진 나폴리왕국의 왕 페르디난도 2세는 1833년 최초의 파스타 생산 공장 취임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파스타를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며 파스타 산업의 발달에도 한몫을 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나폴리의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파스타를 좋아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괴테도 나폴리의 파스타를 맛본 후 그 이야기를 남겼고,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역시 파스타 광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작곡가 로시니는 파리에 있을 때 파스타를 그리워하며 이탈리아의 친구에게 편지를 쓸 정도였으며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은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접받은 파스타에 반해 파스타를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피아로렌, 봉골레 파스타를 즐겨 먹어 그녀의 집 냉장고에는 항상 조개가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wikipedia>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를 위한 Tip

신선한 조개는 봉골레 파스타의 맛을 좌우한다. 조개 조리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해감인데 바닷물의 염도를 유지하며 어두운 곳에서 해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신선한 조개를 공수하는 것이  봉골레 파스타의 맛을 좌우한다. 신선한 조개를 공수하였으면 그 다음 할 일은 해감이다. 깨끗하게 씻은 조개는 4~6%염분을 유지하여 하룻밤 정도 담가 놓는다. 조개를 해감하지 않으면 조리과정시 불순물이 나올 수 있으며, 바닷물이 아닌 민물에 씻으면 조개가 가진 영양분이 녹아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바닷물의 염도를 유지하여 어두운 곳에서 해감 시킨다.


그 다음에는 화이트 와인을 넣고 조개를 볶다 입이 벌어지는 순간 면과 함께 볶아낸다. 화이트 와인을 넉넉히 뿌려줘야만 조개 안으로 와인이 들어와 육즙이 흥건하게 베어 나온다. 너무 오래 조리하지 않는 것도 맛의 포인트. 조개를 너무 삶으면 질겨지고 맛이 너무 진해져 전체적으로 느끼한 맛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좀 더 깔끔하고 깨끗한 맛을 위해서라면 파스타용 고추를 넣고 먹으면 된다.

  

봉골레 파스타 레시피 보기

 

 

참고문헌: 파올로 데 마리아, [파스타 에 바스타], (비앤씨월드, 2008); 안토니오 심, [안토니오 셰프의 파스타], (대가, 2010); 이영미, [파스타(잘 먹고 잘사는 법 50)], (김영사, 2004)

 

이탈리안 파스타는 우리에게 친근한 스파게티를 비롯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들은 제각기 모양과 어울리는 이름과 재미난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파스타는 생긴 모양에 따라 그리고 재료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얇고 긴 튜브를 잘라 놓은 것 같은 모습의 구불거리는 마카로니(Macaroni)는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의 식탁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인기 파스타이다.

 

 

마카로니란?

구불구불하고 짧은 튜브 모양의 파스타, 마카로니

 

 

 

4mm정도의 지름을 가지고 있으며 구불구불한 짧은 튜브 모양의 파스타를 마카로니라고 한다. 지금은 마카로니라는 말이 특정한 파스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파스타가 길거나 혹은 짧거나 또는 구멍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통틀어 마케로니(Maccheroni)라고 불렀다. 즉, 제노바식 라비올리, 스파게티 알리오 올리오가 아니라 '로마식 마케로니', '베네치아식 마케로니'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러한 영향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탈리아의 남부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길고 가는 두께의 파스타를 마케로니라고 부른다.

 

마카로니는 시칠리아섬 사람들의 발명품

 

시칠리아섬의 옛 지도 <출처 : wikipedia>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요리사 마르티노 다 코모(Martino dacormo)가 쓴 요리책 Livro de arte coquinaria 은 15세기 이탈리아 조리법 전집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이 책은 그 당시 이탈리아의 식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의 책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책을 살펴보면 마카로니는 시칠리아섬 사람들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파스타를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이 사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시 중국에서는 넓이가 크고 납작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지만 마카로니는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로 돌아오기 전인 13세기에 이미 사용되는 말이었다. 시칠리아지역은 물론 남부의 나폴리 지역까지 널리 사용되는 용어였으며 이를 토대로 시칠리아 사람들은 여전히 마카로니의 기원은 시칠리아 지방이라고 주장한다.

 

 

마카로니 만들기

마카로니를 만드는 방법은 일반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질 좋은 밀가루를  달걀흰자 한 개와 물을 섞어 혼합한다. 이렇게 걸쭉하게 만들어낸 반죽을 손바닥 폭 정도 길이의 빨대 정도 두께를 가진 작고 둥근 막대 모양으로 돌돌 만다. 이것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손바닥 폭 길이의 가는 밧줄 두께를 가진 쇠막대로 돌돌 굴린 다음 쇠막대기를 빼면 속이 빈 마카로니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카로니는 햇볕에서 말리며, 일단 한번 마르고 나면 2년 내지 3년은 보관할 수 있다.

 

마카로니를 제대로 즐기려면

 

마카로니를 이용하는 어떠한 요리든 꼭 거쳐야 되는 요리과정은 끓는 물에 15∼20분간 충분히 삶아 내야 한다는 점이다. 요리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삶아내야 마카로니가 말랑말랑해 지며 특유의 탄력 넘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잘 삶아낸 마카로니는 물기를 완전히 뺀 뒤 액상 버터나 순한 향신료들과 섞는 등 다른 재료들과 섞어 요리를 완성해 낸다. 마카로니는 그 자체로 먹기보다는 주로 샐러드나 스프에 넣어 먹는 경우가 많다.

 

마카로니 요리는 요리방법에 따라 삶은(boiled) 마카로니와 구운(baked) 마카로니로 나눌 수 있다. 삶은 마카로니는 버섯, 야채류를 곁들인 뒤 마요네즈 소스나 토마토소스를 버무려 샐러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구운 마카로니는 양파, 우유, 크림 등을 넣고 간을 한 뒤 오븐 그릇에 담아 치즈와 빵가루 등으로 덮어서 오븐에서 구워낼 수도 있다.


삶은 마카로니는 버섯, 야채류를 곁들인 뒤 마요네즈나 토마토 소스를 버무려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모양이 긴 파스타 VS 짧은 파스타

긴 파스타에는 단면이 스파게티처럼 둥근 것, 링귀네처럼 납작한 것, 마카로니처럼 구멍이 있는 것, 구멍이 없는 것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생면 파스타를 돌돌 말아 칼로 잘라 만드는 칼국수 모양이나 끼따라나 비골리처럼 특유의 도구를 이용해 만드는 지역 전통 파스타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파게티가 가장 보편화된 긴 파스타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긴 파스타에 비해 짧은 파스타를 즐겨 먹는다. 그 이유는 짧은 파스타는 나선형이거나 구멍이 있는데, 구조상 소스가 면에 잘 달라붙어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긴 파스타에 비해 짧은 파스타는 변형이 좀 더 용이하다. 특히, 짧은 파스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모양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각각이 독특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긴 파스타를 사용해 만든 미트볼 스파게티(좌) 짧은 파스타를 이용한 펜네 요리(우)

 

  

긴 파스타는 길이가 20cm 이상 되는 것을 말하며 국내에서는 스파게티가 가장 유명하며 대표적으로 링귀네, 딸리아 뗄레, 카펠리니 등이 있다. 긴 파스타는 조리과정에서 면발 전체에 소스의 맛과 향이 베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조리시간이 길다.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드는 경우에도 조개의 육수가 면발에 충분히 베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유지해야만 면과 육수의 맛이 살아난다. 이렇게 길게 만들어낸 면발은 생크림 소스나 버터 소스, 치즈 소스 등 비교적 무거운 소스와 잘 어울린다. 가끔은 면발에 육즙이 잘 베어들게 하기 위해 뚜껑을 덮고 요리하는 경우도 있다.

 

짧은 파스타는 보통 10cm 이내의 파스타를 지칭하며 가장 유명한 것은 ‘펜네’로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며 대표적인 짧은 파스타에는 리가토니, 로텔레, 마카로니 등이 있다. 짧은 파스타는 전체적으로 한입거리의 식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마토를 기본으로 야채위주의 가벼운 소스와 잘 어울린다. 짧은 파스타는 바질 페스토나, 토마토 소스 등 재료의 향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소스들과 어우러져 맛을 낸다. 면을 삶아내서 뜨거운 상태로 조리해야 하는 긴 면발과 달리, 짧은 파스타는 차가운 물에 행군 뒤 다양한 소스를 곁들여서 샐러드로 완성해 내기도 한다. 냉파스타와 마카로니를 곁들인 샐러드 등 기존의 메인요리로서의 파스타가 아닌 좀 더 가벼운 느낌의 요리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한, 짧은 파스타 속에는 파스티네(pastine)라고 부르는 1cm 미만의 아주 작은 면도 존재한다. 아랍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파스티네는 곡식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수프를 만들 때 사용하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 중요한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마카로니를 이용한 음식 레시피 보기

 

 

참고문헌: 파올로 데 마리아, [파스타 에 바스타], (비앤씨월드, 2008); 안토니오 심, [안토니오 셰프의 파스타], (대가, 2010); 이영미, [파스타(잘 먹고 잘사는 법 50)], (김영사, 2004)

 

과거 한국에서는 입학식 날이나 졸업식 날과 같이 특별한 날이 되면 온가족이 모여 중국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먹거리가 다양해져서 많은 음식들이 유혹하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정도로 자장면은 우리에게 친근한 음식이다. 불과 백여 년 전 중국인들에 의해 우리나라로 건너왔던 자장면. 이제는 한국인 8명 가운데 1명은 매일 자장면을 먹으며, 전국 2만 4000개의 중국 음식점에서는 하루 평균 600만 그릇의 자장면이 소비될 정도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 자장면은 외래음식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문화 상징에 들어가며 정부의 중점물가 관리 품목으로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자장면의 유래

1882년 임오군란당시 청나라 군인들을 따라 국내로 들어온 중국 상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중국 음식을 우리나라에 소개한다. 인천에 청관이 설정된 후 많은 청나라 상인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1920년 항구를 통한 무역이 활성화 되면서 중국 무역상들을 위한 많은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값싸고 쉽게 맛볼 수 있는 중국의 대중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45년 해방 직후, 우리 정부는 한국에 건너와 있던 중국 상인들에게 강한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 상인들에게 무역을 금지시키자 수입원을 잃은 많은 중국인들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점을 차리게 된다. 이 당시 생겨난 중국음식점의 개수가 기존의 것보다 무려 다섯 배나 될 정도로 많았다.

 

이처럼 중국 음식점이 증가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게 되자 청나라 상인들은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자장면’이다. 이후 이들은 특유의 상업적인 면을 활용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자장면의 맛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는데, 국내에서 많이 생산되는 양파와 당근을 넣은 뒤 춘장에 물을 타서 연하게 풀어낸 뒤 소스로 곁들였다. 6.25 전쟁 이후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입은 한국에 많은 식품들을 무료로 원조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지원된 것이 바로 ‘밀’이었다. 때마침 쏟아져 나온 값싼 밀가루와 자장소스의 만남은 자장면이라는 모든 한국인이 즐겨먹는 음식을 탄생시켰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음식, 자장면

 

최초의 자장면은? 인천 차이나 타운의 ‘공화춘’

자장면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자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춘은 일제시대 때에도 중국 음식으로 상당히 유명한 인지도를 갖고 있던 고급 음식점이었다. 인천에서 공화춘이 성업을 이루자 중화루, 동흥루 등 많은 고급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났으며 그곳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은 차츰차츰 우리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 1 자장면의 시초로 알려진 인천 차이나 타운의 공화춘, 건물은 개보수 중이며 자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소읍기행 인천 차이나타운’>
  • 2 인천 차이나타운에 새롭게 문을 연 ‘공화춘’
  • 3 새롭게 문을 연 ‘공화춘’의 자장면

 

 

자장면 가격의 변천사

1960년, 처음 자장면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을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5원 정도로 상당히 비싼 음식으로 대우받았다. 미국의 밀 원조를 통해 원재료가 저렴한 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초기 자장면은 서민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장면이 점차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장면은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1970년대에는 200원대를 유지하고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자장면 가격은 서서히 오르다가 1990년에서 2000년대 사이에 급등하게 된다. 1990년대 초기만 해도 1300원이었던 자장면 가격은 2000년 IMF를 지나면서 3000원까지 치솟게 된다. 현재 자장면 한 그릇은 4000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지만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여전히 서민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자장면은 서민적인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자장면

춘장에 물을 넣고 연하게 풀어서 만드는 자장면. 그러나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장면은 여러 형태로 우리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 때만하더라도 옛날자장이 주를 이루었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간자장, 유니자장, 쟁반자장 등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 1 가장 흔한 자장면, 옛날자장
  • 2 옛날자장보다 기름진 맛이 느껴지는 간자장
  • 3 돼지고기를 곱게 갈아 만드는 것이 특징인 유니자장

 

 

 

옛날자장은 양파, 양배추, 감자를 굵직하게 썰어서 춘장과 함께 볶다 물과 전분을 넣어 만든 자장면으로 우리가 흔히 자장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옛날자장이다. 반면 간자장은 춘장에 물과 전분을 전혀 첨가하지 않고 기름에 볶아낸 자장면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바로 볶아내기 때문에 좀 더 기름진 맛이 느껴진다. 유니자장은 유니 혹은 유미 자장으로 불리며 돼지고기를 곱게 갈아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유니자장은 모든 재료를 곱게 갈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삼선(三鮮)자장은 3가지 이상의 해산물이 들어간 자장면을 말하는데 보통 새우나 갑오징어, 건해삼을 넣어서 만들며 재료의 씹는 맛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쟁반자장은 춘장과 면발을 함께 볶아낸 뒤 커다란 쟁반에 담아내는 자장면으로 2000년대 들어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부추를 첨가해 볶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과 중국의 자장면

‘장’을 볶는다는 의미의 자장면(炸醬麵). 실제 중국에도 자장면이라는 음식은 존재하지만 한국의 자장면과는 모습부터 다르다. 중국의 자장면은 삶아낸 면 위에 춘장, 숙주나물, 오이, 완두콩 등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채 비벼 먹는다. 한국의 자장면 맛이 달다면 중국의 자장면은 짠맛이 강하고 중국 특유의 향신료 맛도 강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자장면은 춘장을 볶다 물을 넣어 짠맛을 연하게 풀어주며, 양파와 양배추 등 야채를 듬뿍 넣어 전체적으로 단맛이 나게끔 만든다.

 

참고 문헌: 양세욱, [짜장면뎐], (프로네시스, 2009)

 

 

자장면소바쌀국수돼지국수* 음식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음식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면(麵) 요리를 즐겨온 지역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권역 그리고 이탈리아와 중동, 북아프리카에 걸친 이슬람권으로 한정된다. 이렇게 넓은 지역이 하나의 기원을 가지는지 아니면 저마다 독립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는지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국수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된 것으로 본다. 즉, 현재의 시리아아프카니스탄 북부 지역인 중동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비옥했던 재배 환경은 풍부한 양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했고 이는 사람들이 곡물을 이용해 국수를 만들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수는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로 깊숙이 전파되었는데 실크로드는 문화를 교역하는 것을 뛰어넘어 다양한 요리문화가 전파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실크로드의 상인들은 세계 각지로부터 온 외국 무역상들과 만나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요리법을 교환했다. 이후 이러한 요리법들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전해진 국수는 각 나라의 입맛에 맞게 각기 다른 형태로 조리법이 바뀌었으며 각 나라마다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는 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분된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여서 벌린 막대기에 감아 당긴 후 만들어내는 소면(素麵)계열(일본과 한국의 소면, 중국의 선면), 반죽을 작은 통 사이에 넣고 눌려 뽑아내는 압면(押麵)계열(한국의 냉면, 중국의 하수면), 반죽을 얇고 넓게 민 뒤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切麵)계열(한국의 칼국수, 일본의 우동), 반죽을 양쪽으로 길게 늘여서 만드는 납면(拉麵)계열(일본의 라면, 중국의 납면), 마지막으로 쌀을 갈아서 찌거나 삶은 후 칼로 가늘게 썰어 만드는 하분(河粉)계열(동남아 쌀국수) 등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다양한 국수 음식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출현한 파스타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았다면, 근세 이후 화교들의 진출로 인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각국에 국수 음식이 침투되었고 이후 일본에서 개발된 인스턴트 라면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보급되면서 동양의 면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 쌀국수에 사용하는 면   2 우리나라에서 자주 접하는 얇고 가는 소면   3 반죽을 얇고 넓게 민 뒤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칼국수 면으로 주로 사용)

 

 

 

한국 면의 기원

한국 면의 기원은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의 여행기인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 ‘고려인들은 제례 때 면을 사용하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면 요리는 고려인들의 식생활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면’을 ‘국수’라고 일컫는데 옹희잡지에 ‘건(乾)한 것은 병이라 하여 시루에 쪘으며 습한 것을 면이라 하여 끓는 물에 삶거나 물에 넣은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면은 습면(濕麵)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면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세종신록]이다. 수륙재공양 음식으로 면을 올리고 있는데 이 면의 재료가 메밀로 추정된다. 특히 [음식디미방]에는 다양한 종류의 면 요리가 소개되어 있고 밀가루 국수가 아닌 메밀국수, 녹말국수 등이 성행하였다는 것들을 통해 당시 밀이 대단히 귀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쌀농사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밀은 귀한 식재료였다. 삼국 시대 때부터 밀을 중국에서 수입하였으며 그 때문에 궁중이나 귀족층의 잔치 때 밀로 반죽해서 만든 국수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잔칫날이나 결혼식을 올린다는 의미의 ‘국수 먹는다’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영조 6년(1730년) 윤유(尹游)가 평양풍토의 기록인 [평양지(平壤志)]를 보완해 펴낸 [평양속지(平壤續志)]에 놀랍게도 흙으로 빚는 ‘흙 국수’가 등장할 정도로 국수는 귀하게 대우되었다. 당시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수는 메밀과 녹말로 만들었다. 조선 왕조 초기 세종대왕은 메밀면을 즐겨 먹었는데 궁중으로 진공하는 메밀이 부족해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에 205섬을 더 할당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에 전파된 면을 뽑는 방법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국수틀을 사용하여 면발을 뽑아내는 방법. 두 번째는 면본(구멍이 뚫린 바가지)에 반죽을 밀어 넣어 뽑아내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반죽을 밀대로 밀어 길게 썰어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들은 각각의 맛에 따라 다른 국물과 함께 하게 된다.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을 대표하는 냉면(좌), 육수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칼국수(우)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은 주로 메밀국수를 즐겼으며, 경기지방은 녹두나 전분을 사용한 국수, 그리고 충청 이남 지역에서는 밀을 사용한 국수가 발달하였다. 그중에서도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에서는 남쪽 지방과 달리 독특한 면들이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냉면’이다. 생선회에 면을 넣어 먹기 시작한 함흥냉면에서부터 꿩을 삶은 물에 면발을 넣어 만든 평양냉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면 요리로 발전하였다. 남쪽지방을 중심으로는 칼국수가 나타났는데 산간지방에서는 멸치 육수를 바탕으로, 농촌에서는 닭 육수로, 해안지역에는 조개류를 넣어 칼국수를 끓여내는 특징이 있다.

 

 

중국의 병(餠)

중국은 한대(漢代)에 밀이 전파되었다. 밀로 만든 가루를 면(麵)이라 불렀고, 면으로 만든 음식을 통틀어 떡(餠)이라 하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분식이 발전하였다. 중국의 분식(紛食)은 본래 병(餠)과 이(餌:먹이 이)로 나누어지고, 밀가루를  원료로 하는 것을 병(餠),그 외 곡류(조, 기장, 수수, 콩 등)로 만든 것을 이(餌)라고 불렀다.

 

이러한 병은 조리법에 따라 삶거나 끓인 것, 찜통으로 쪄낸 것, 직화로 구운 것, 기름에 튀긴 것, 피 모양으로 가공한 것과 같이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송나라(960-1279)때 와서 오늘날과 같은 국수류 음식의 체계가 갖추어졌다. 보통 중국에서는 국수에 간수를 넣어 면발을 발색시키며 간수의 알칼리성으로 인해 밀가루에 포함된 플라보노이드계 색소가 노란색으로 발색되어 글루텐의 점탄성이 늘어나며 면발이 매끈하고 쫄깃하게 된다. 면의 조리방법이 점차 발달하면서 반죽을 양손으로 면판(麵板)위에 치고 잡아당기면서 면발을 가늘고 길게 뽑아내게 된다. 이러한 면발을 화북 지방에서는 '라면(La-mien)', 화남 지방에서는 '타면(打麵, ting-mien)'이라 불렀다.

 

중국의 면 문화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해지게 된다. 한국, 일본, 베트남까지 면을 즐겨 찾는 습관은 그 국가의 젓가락 문화에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몽고에서 조차 국수를 먹을 때에는 젓가락을 사용할 정도로 젓가락은 국수를 애용하는 식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죽을 양손으로 면판 위에 치고 잡아당기면서 면발을 가늘고 길게 뽑는 중국 화북지방의 라면(La-mien) <출처: Youngjediboy at en.wikipedia.org>

 

지금 중국에 존재하는 국수는 크게 여섯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뜨거운 국물에 삶은 국수를 넣은 탕면(湯麵), 다양한 재료와 함께 볶은 초면(炒麵), 다양한 재료를 넣어 버무린 반면(伴麵), 차가운 소스로 버무린 양반면(凉伴麵), 국물에 넣어 끓이는 외면(煨麵), 국수를 삶거나 쪄서 기름에 튀긴 작면(炸麵)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면

일본에는 나라시대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당과자(唐菓子, 당에서 전해진 제법의 과자)가 전해졌다. 홍법대사가 당에서 밀과 동시에 우동의 제법을 가지고 오면서부터 일본인들의 밀가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게 되고 분식가공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우동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면인 소바(そば)는 무로마치 시대에 등장하여 매운 무즙과 함께 먹었다고 전해진다. 소바가 발달하기 전에는 소바 가루에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한 소바가키(そばがき)가 성행하였다.

 

일본의 면 문화는 관동/관서 지방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우동(좌),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소바(우)

 

 

가마쿠라 중기부터 논의 뒷갈이로 밀 재배가 시작되어 밀가루 입수가 수월해지고, 찌고 굽고 기름에 튀기는 기술이 전해지면서 이후 일본의 식문화는 크게 바뀐다. 처음 일본에서는 손으로 잡아당겨 늘이는 소면이 유행하다가 14세기를 지나면서부터 절면(絶麵)이 등장하게 되고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우동이 발전하고 간토(關東)지방에서는 소바가 발전하면서 일본의 면 요리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에도시대에는 시코쿠(四國)지방을 중심으로 면발이 연하고 야들야들한 우동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사누끼 우동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의 면 문화는 관동과 관서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보통 관서지방은 우동, 관동지방은 소바로 대표되는데 이렇게 분식 문화가 발달한 것은 일본의 분식장려 운동 덕분이다. 상대적으로 쌀의 생산이 부족했던 일본은 부족한 쌀에 다양한 종류의 곡류를 섞어 떡이나 소바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소바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면

동남아시아의 면 요리는 국물이 뜨겁기 때문에 얇고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과 비교해 볼 때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면 문화는 19세기에 이주한 화교가 절면과 압면 기술을 전한 때부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중국에서 퍼져나간 면 문화이지만 중국의 출신지에 따라 국수의 종류가 달라진다. 오키나와는 푸젠성, 태국과 베트남은 차오저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푸젠성과 광둥지방의 영향을 받았다. 뜨끈한 육수에 면발을 담아내는 식문화가 발달한 동남아시아의 면 요리는 국물이 뜨겁기 때문에 얇고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밀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쌀을 이용해 면을 뽑아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쌀국수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건더기와 고명을 얹어 먹기도 한다.

 

참고문헌: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가람기획, 2006); 자크제르네, [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 (신서원, 1995); E.M.번즈, R.러너, S.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상)], (소나무, 1997); Maguelonne Toussaint-Samat, [먹거리의 역사], (까치, 2002); 오카다 데쓰, [국수와 빵의 문화사], (뿌리와 이파리, 2006);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 [누들], (시공사, 2007)

 

다양한 면 요리를 만들어 보세요.

 

우동 볶음면 칼국수 소바 비빔냉면

 

일본에서는 12월 31일(大晦日)에 ‘소바’를 먹는 풍습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날 소바를 먹는 것은 장수의 의미가 있어서 매년 마지막 날이 되면 집집마다 소바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처럼 일본의 소바는 역사가 깊고 스시, 덴푸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이다. 소바는 메밀가루로 얇게 뽑아낸 국수를 차가운 간장 국물에 넣고 무와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일본에서는 면요리를 모두 '소바(蕎麥)'라 하며, 소바 그 자체 또한 메밀을 지칭한다. 최근 들어서는 '소바기리(蕎麥切)'라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소바는 종류에 따라 뜨거운 국물이나 차가운 국물을 선택할 수 있으며, 차가운 간장 국물에는 조금씩 덜어서 먹고 채썰어놓은 파와 갈아놓은 무를 듬뿍 올려 육수와 섞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삼색소바, 소바는 면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에도시대부터 먹었던 소바

소바의 기원은 17세기 무렵의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지리적으로 간사이(교토, 오사카)와 에도(현재의 도쿄지방)로 나뉘어 있었으며 두 도시권을 중심으로 일본의 전반적인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당시 일본의 수도는 교토였고 상업의 중심지는 오사카였기 때문에 화려함을 자랑하는 가이세키 요리정진 요리 등은 모두 간사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와 달리 에도지방은 일본 내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지역이었으며 사무라이들의 도시였기 때문에 에도지역의 음식은 간사이 지방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간사이 지역 음식이 화려함을 자랑하였다면, 에도지방은 정갈하고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그 당시 에도지방에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남성들이 많았는데 매일 저녁 이들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야타이(포장마차)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든든한 한 끼를 책임졌던 포장마차 음식들은 이시기에 모두 탄생되게 된다. 소바뿐 아니라 스시, 튀김, 덮밥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생겨났고 이후 이러한 음식들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세련된 맛을 지니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소바는 관동지방의 음식


일본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맛이 존재한다.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형성된 관서지방과 지금의 도쿄지방인 관동지방의 맛이 그것이다. 소바는 철저하게 관동지방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도쿄에는 그 역사가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라시나(更科)와 스나바(砂場), 야부(藪) 등 이른바 3대 노포 계통의 소바집들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소바는 처음 관동지방에서 생겨난 이후로 많은 서민들에게 환영받았고,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다랭이포와 고등어포를 함께 넣어서 우려낸 육수에 진한 간장을 넣어 맛을 낸 관동지방의 소바는 가다랭이포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우려내는 관서지방의 육수보다 훨씬 더 맛이 진하고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소하고 실용적인 관동지역의 문화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 1 면과 육수, 파, 갈은 무로 소박하게 만든 소바는 일본 관동지역의 문화에 잘 들어맞는 음식이다.
  • 2 소바의 육수는 가다랭이포, 고등어포 등을 우려내 만든다.
  • 3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하여 최근에는 튀김소바 등 변형된 소바들도 등장하고 있다.

 

 

소바의 영양

소바의 주재료인 메밀은 일본인들에게 부족한 비타민 B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메밀은 다른 곡류들과 달리 영양소가 고루 퍼져 있기 때문에 제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영양 손실이 적다. 피를 맑게 해준다고 알려진 메밀은 특히 혈압강하에 효능이 있다. 비타민의 일종인 판토텐산은 두통과 피로를 쉽게 덜어주며, 루틴(rutin)은 모세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압을 내려준다. 메밀은 다른 곡류와 비교해 볼 때 아미노산의 조합이 뛰어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밀의 겉껍질은 원활한 변통과 활발한 이뇨작용을 돕는다. 이와 더불어 콜린은 술의 해독작용을 돕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간을 보호한다.

 

국내 1호 소바전문점 ‘미진’의 소바 상차림. 소바는 몸에 좋은 메밀로 만들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여름철 별미로 많이 찾는 음식이다.

 

 

 

소바 면의 비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밀의 색깔을 검은색 한 종류로만 생각하지만 메밀가루의 등급이 높을수록 흰 색을 띈다. 소바 면을 만들기 위해서 메밀가루에 일정량의 밀가루를 첨가하여야 하는데, 이는 메밀가루의 점성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서는 밀가루 대신 해조류를 추출하여 가공한 가루를 사용하기도 한다. 메밀가루는 효소가 빠르게 활성화되어 면들 만들어 놓으면 금방 메밀가루 고유의 맛이 없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주문 즉시 면을 만들거나 미리 만들어 놓을 경우에는 4°정도의 서늘한 공간에서 보관해야 한다.

 

  • 소바 면은 메밀가루의 등급이 높을수록 밝은 색을 띈다.
  • 1 회색을 띠는 소바 면
  • 2 삶은 후의 소바 면

 

 

소바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에서는 100%의 메밀함유량을 자랑하는 ‘주와리소바’에서부터 ‘1:10’의 비율을 지닌 ‘소토이치’, 2:8의 비율인 ‘니하치’ 등 다양한 종류의 소바를 다룬다. 밀가루가 첨가된 비율만큼 제각기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다양하게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다. 껍질을 벗긴 배유 부분으로 만든 가루를 1번 분 이라하며, 껍질의 함유량에 따라 2번, 3번 분으로 구분한다.

 

소바 맛집 찾아보기

 

2000년대 초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베트남 쌀국수는 건강한 음식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굳건히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 ‘웰빙’ 열풍을 타고 낮은 칼로리와 담백한 맛, 여기에 쌀로 만든 국수라는 점이 쌀 문화권인 한국에서 쌀국수가 성공한 배경이 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전쟁과 분단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화에 성공한 쌀국수이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트남인들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풍부한 쌀을 가공해서 만든 음식, 쌀국수

베트남은 대표적인 농업국가로서 그 중에서도 쌀이 농업생산량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쌀을 가공한 음식이 발달한 나라이다.

 

 

베트남은 전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업 국가이다. 그중에서도 쌀을 경작하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연간 최대 3모작도 가능하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베트남의 한해 쌀 생산량은 베트남 전체 농업 생산량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처럼 풍부한 쌀을 가공하여 만든 음식이 바로 쌀국수이다. ‘포(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는 베트남 사람들이 분주한 아침의 간편한 식사 혹은 출출할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쌀국수는 쫄깃하게 삶아낸 면발에 쇠고기나 닭육수를 넣고 신선한 야채를 듬뿍 곁들여 먹는 건강식이다.

 

쌀국수의 유래

지금은 베트남의 대표 음식이 된 쌀국수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세기말 방직공업이 번성했던 남딘(Nam Dinh)의 공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고기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것이 쌀국수의 시초이다. 쌀국수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설은 프랑스의 야채스프인 ‘뽀오페(Pot au feu)’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베트남에 소개된 프랑스의 요리 ‘뽀오페’가 베트남의 식재료에 맞게끔 변형되었다는 설로서 포의 국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구운 양파와 생강이 뽀오페를 만들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하며, 베트남 이외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조리방법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설을 지지한다. 또한, 예부터 베트남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소를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식용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 같은 사실은 베트남에서 프랑스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포가 만들어 졌다는 설을 뒷받침 한다.


프랑스의 야채스프 ‘뽀오페’에 들어가는 재료들
<출처: André at en.wikipedia.org>

 

쌀국수는 하노이 유역에서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후, 1950년대에 이르러 남부지방과의 교류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베트남의 대표음식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다. 1954년 제네바 협약으로 북부지역은 월맹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프랑스군은 북위 17도선 이남으로 철군하게 된다. 이 당시 남하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규적인 문제 때문에 사이공 등의 대도시 주변이나 해외로 망명을 신청하게 되고 이들이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차리거나 포를 등에 매고 다니면서 음식을 팔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쌀국수는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남쪽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된다.

 

 

쌀국수의 종류

베트남의 쌀국수는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혹은 육수의 종류에 따라 수십 가지 맛으로 나눌 수 있고,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쌀국수는 쇠고기 육수에 숙주나물과 고수를 얹은 뒤 새콤한 라임즙을 짜 넣어 함께 먹는다.

 

쌀국수의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육수에 있다. 쌀국수는 소꼬리와 갈비, 사태에 계피, 향료 등을 함께 넣어 오랫동안 우려낸 달콤한 육수에 소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소고기 쌀국수인 ‘포보(Pho bo)’, 그리고 닭의 고기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담백한 닭 국물에 닭살을 찢어 올린 닭고기 쌀국수인 ‘포가(Pho ga)’등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달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베트남 남부 사람들은 ‘포보’를 즐겨 먹는 반면, 담백한 맛을 즐기는 북부 사람들은 ‘포가’를 선호하는 등 쌀국수를 통해 베트남의 지역 간 입맛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닭고기를 넣은 ‘포가‘(좌)와 소고기를 넣은 ’포보‘(우)

 

 

쌀국수의 종류에 따른 조리 방법 차이

베트남 남부지방의 쌀국수는 삶은 쌀국수를 대접에 넣고 쪽파, 파슬리, 숙주나물, 육계피 등을 얹은 다음 위에 얇게 썬 쇠고기나 닭고기를 얹어 고기 뼈로 만든 육수를 부어 먹는다.(호치민 지방 : 국수가 약간 가늘고 질기며 중국 국수와 비슷한데 맛이 독특하다.) 반면에 북부지방의 쌀국수는 숙주나 계피를 넣지 않고 육수도 담백하며, 여기에 쇠고기나 닭고기를 동그랗게 만든 것이나 유부를 넣기도 한다. (하노이 지방 : 국수 위에 날 쇠고기를 얹기도 한다.)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 쌀국수와의 차이점

베트남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국가인 태국도 쌀국수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주식으로 밥을 먹고 있는 태국은 쌀가루로 만든 쿠이티오, 셈미, 카놈친 등의 면이 존재할 정도로 쌀국수를 즐겨 먹는 국가이다.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의 쌀국수의 차이는 육수에 있다. 태국 음식은 중국, 인도, 유럽의 음식문화가 융합되어 다양한 향신료가 독특한 향을 낸다. 태국 쌀국수에는 마늘, 고추는 물론 생선으로 만든 장류(類)인 남플라와 새우, 보리새우를 발효시켜서 만든 된장 같은 가피, 고수, 라임, 코코넛 밀크 등도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쌀국수에 비해 태국 쌀국수는 자극적이면서 맛이 더 진하고 양념이 강하다.

 

태국 쌀국수는 베트남 쌀국수와 외관은 비슷하지만 육수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데, 태국 쌀국수는 향신료 맛이 강해 더 자극적이며 양념 또한 강한 편이다.

 

 

쌀국수 더 맛있게 먹는 방법
1. 생 숙주는 국수를 받자마자 면 아래로 넣어 숨을 죽인다.
2. 레몬은 국수 위에서 충분히 즙을 낸다.
3.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3:1 비율로 뿌려서 먹으면 더욱 얼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4. 고기는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3:1 비율로 종지에 담아 찍어 먹으면 맛있다.
5. 절인 양파에 칠리소스를 적당량 넣어 버무려 먹으면 쌀국수와 조화롭게 먹을 수 있다.

 

 

쌀국수 맛있는 집 찾아보기

 

예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음식을 향토 음식이라 지칭한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면서도 토속적인 맛이 곁들여져 있는 향토음식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다른 지방과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제주도의 향토 음식은 육지의 음식과 비교해 볼 때 지방 고유의 특색과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조리법 때문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제주의 향토 음식을 빼놓지 않고 즐긴다. 그중에서도 서귀포를 중심으로 마을의 잔칫날이나 큰 행사가 있던 날 즐겨먹던 고기국수는 제주의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육수에 수육을 올려 만든 국수

마을의 잔칫날이나 경조사 때 빠지지 않는 제주도 음식, 고기국수

 

 

 

제주도의 ‘고기국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국수 요리로 흑돼지를 고아낸 육수에 수육을 올려 만든 국수이다. 고기국수는 돼지를 한 마리 잡은 후 남은 뼈와 살코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큰 솥에 남은 재료를 모두 넣고 푹 고아낸 뒤 면을 삶아 곁들어 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돼지 머리와 살코기들을 사용해 국물을 만들며 건면을 삶아 곁들여 먹는다. 고기국수는 육지에서처럼 마을의 잔칫날이나 경조사 때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간단한 식사나 해장을 위해서 제주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향토 음식으로 제주 시내 동문시장과 관광지 삼성혈 주변에는 고기국수 전문식당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가 조성되어있다.

 

 

고기국수의 유래

제주도에서 일반적으로 고기라고 함은 쇠고기나 닭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지칭한다. 이는 과거 제주도에서 행해졌던 모든 의례음식에 돼지고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털과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제단에 올려놓고 지내던 제례뿐만 아니라 무속 제의에도 사용할 정도로 제주도에서 돼지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토산 일렛당에서는 ‘여신이 돼지 발자국에 고인 물을 빨아먹고 일곱 쌍둥이를 낳았다’라고 할 정도로 돼지는 다산과 생산의 주술적 의미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보통 제의식이 끝나면 돼지를 추렴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수육을 위해 발라놓은 뼈다귀와 자잘한 고기 덩어리들은 고기국수를 위한 좋은 재료들이었다. 큰 가마솥에 모든 재료를 넣고 마을 행사가 끝날 때까지 푹 삶아낸 뒤 고기는 두툼하게 썰어내고 육수를 담아 고기국수를 완성한다.

 

고기국수의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육수

 

 

하지만 지금의 모양과 같은 고기국수는 1950년 일제 해방이후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건면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국수를 넣고 말아 먹기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제주도의 경우 메밀과 같은 거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건면의 등장은 제주인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건면이 제주에 상륙한 이후 고기국수는 담백한 고기 국물과 곁들어져 자연스레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기 국수의 과거와 현재

제주의 향토 음식이라고 알려진 고기국수가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불과 30~40여 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며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들이 제주에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이러는 과정 속에서 제주도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음식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몇몇 집만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고기국수는 1970년대부터 향토음식으로 알려져 육지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하였던 국민 식량 자급자족 운동 중 혼-분식 장려 정책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최근 들어 고기국수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제주의 지자체 또한 고기국수를 향토 음식 문화체험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도는 매달 11일을 고기국수데이로 지정하여 국수 거리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고기국수는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다.

 

 

고기국수 맛의 비결

담백하고 깔끔하지만 돼지 특유의 잡냄새가 없는 고기국수

부산의 돼지국밥, 뽀얀 육수를 자랑하는 고기국수는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연상시킨다.

 

 

 

고기국수의 맛은 담백하고 깔끔하지만 돼지 특유의 잡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얇은 소면으로 삶아낸 면발에 하루 이상 고아내어 뽀얀 육수를 자랑하는 사골육수는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연상시킬 정도로 뛰어나다. 대부분의 업소에서는 돼지 사골 뼈와 돼지 머리를 함께 넣어 육수를 만들며 생강과 통마늘을 넣어 잡냄새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과 살의 함량이 육지의 돼지와 비교해 볼 때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국수 특유의 ‘배지근한(담백하다는 제주도 방언)' 맛이 나온다.

 

 

닮은꼴 국수 ‘고기국수와 돈코츠 라멘’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제주와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닮은꼴 음식을 찾아 볼 수 있다. ‘고기 국수’와 ‘돈코츠 라멘’은 생김새만보더라도 두 음식이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더 비슷함에 놀라게 된다.

 

잘 삶아낸 편육에 뽀얀 빛깔을 가진 고기 육수는 차슈가 올려진 돈코츠(豚骨) 라멘과 생김새가 똑같다. 그리고 일본 음식이지만 빻아놓은 마늘과 생강을 곁들여서 먹는 것까지 한국식 식습관과 매우 동일하게 느껴진다. 돈코츠 라멘은 진한 국물의 기름진 맛이 인상적인 것에 반해 고기국수는 돈코츠 라멘보다 한층 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도드라진다는 차이가 있지만 돈코츠 라멘 맛의 유사함 때문인지 제주를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또한 제주도의 고기국수를 스스럼없이 즐긴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방에는 과거 제주의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예부터 후쿠오카는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와 빈번히 교류하였고 다양한 문화와 식습관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것을 통해 제주와 후쿠오카에서 비슷한 음식이 탄생된 배경에 돼지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닮은꼴 음식인 돈코츠 라멘

 

고기국수 레시피 보기

 

 

우리나라에서 비 오는 날이면 빈대떡에 막걸리를 곁들이듯 일본에서는 오코노미야키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빈대떡과 비슷한 모습의 오코노미야키는 한국의 전과 비슷한 일본 대중 음식이다. 오코노미야키는 ‘오코노미(お好み): 좋아하는 것’이라는 뜻과 ‘야키(燒き): 굽다’라는 뜻이 합해진 말로 자신의 취양에 맞는 재료를 마음껏 선택하여 철판에서 구워먹는 지짐 요리이다. 지역에 따라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한 특색을 보이며, 얇게 부쳐내는 한국의 전 요리와는 달리 두껍게 요리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오코노미야키의 기원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오코노미야키

 

 

오코노미야키의 기원은 일본 에도시대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지방 사람들이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한 뒤 넓은 철판위에 반죽을 펼쳐 놓은 뒤 다양한 재료를 넣고 구워낸 것이 오코노미야키의 시초이다. 일본에서 오코노미야키가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이다. 대지진이 발생하고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사람들은 적은 양을 불려서 먹을 음식이 필요하였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오코노미야키를 애용하게 된다. 그 이후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다양한 오코노미야키로 발전하였다.

 

 

오코노미야키와 빈대떡


오코노미야키는 우리나라의 빈대떡과 상당히 흡사하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요리를 완성 한 뒤 보이는 시각적인 모습, 그리고 맛 또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설에 의하면 부산의 동래 파전이 오사카지역으로 건너 가 오코노미야키가 탄생했다라고 할 정도로 빈대떡과 오코노미야키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겉 모양과 맛 또한 비슷한 한국의 빈대떡(좌)과 일본의 오코노미야키(우)

 

 

오코노미야키의 종류와 특징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는 반죽을 넓게 핀 다음 많은 양의 양배추와 숙주,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돼지고기, 오징어, 조갯살, 새우 등)에 소바면을 올려놓고 철판위에서 구워서 만든다. 20분정도 익혀서 완성해 내며 양배추와 고기가 완전히 익으면 마요네즈와 오코노미 소스로 간을 한 뒤 아오노리(青海苔)를 뿌려서 완성한다.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양배추를 충분히 익혀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철판의 낮은 온도에서 충분히 익혀내야 한다. 이렇게 숨을 죽인 양배추를 소스와 함께 곁들여 구워내야지만 히로시마식의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

 

  •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의 맛을 위해서는 양배추를 충분히 익혀주는 것이 중요하다.
  • 1  양배추를 익히는 과정
  • 2  완성된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오사카풍 오코노미야끼는 오사카지역의 신선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밀가루 반죽과 해산물이 조화로운 맛을 낸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대부분의 오코노미야끼 전문점이 오사카풍일 정도로 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다. 바다에서 얻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부산의 동래파전에 들어가는 재료와 대단히 흡사하며, 밀가루 반죽이 다 익으면 오코노미 소스와 가쓰오부시, 파래가루를 얹어서 마무리 한다.

 

  • 1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가는 것이 특징인 오사카풍 오코노미야키의 조리 전 모습
  • 2 풍부한 해산물을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오사카풍 오코노미야키와 유사한 부산의 동래파전
  • 3 파래 김가루
  • 4 가쓰오부시

 

 

오코노미야키와 비슷한 모습의 몬자야키(もんじゃ燒き)는 동경의 서민가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묽게 반죽한 밀가루에 양배추, 새우, 오징어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며  졸이듯 익혀내는 것이 특징이다. 각 재료가 잘게 으깨지면 가운데 부분을 둥글게 만든 뒤 묽은 밀가루 반죽을 넣어 준다. 몬자야키는 오코노미야키와 달리 묽은 반죽에 졸여내듯 반죽을 익혀내는 것이 특징이다. 적당히 졸여진 반죽은 넓게 펼친 뒤 각자의 기호에 맞게끔 익혀 먹으면 된다. 오코노미야키가 두툼한 빈대떡의 식감을 지니고 있다면 몬자야끼는 김치전처럼 촉촉한 반죽의 식감이 특징이다. 또한 오사카 지역사람들이 오코노미야키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듯, 동경 사람들은 몬자야키가 동경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다른 지방의 오코노미야키와 달리 몬자야키에는 밀가루 반죽에 우스터 소스를 섞는 것이 특징이며 동경의 츠키시마(月島)나 아사쿠사(淺草) 지역에 몬자야키 가게들이 집중되어 있다.

 

동경의 서민가에서 발달한 몬자야키, 두껍게 구워내는 것이 특징

 

 

맛있는 오코노미야키 즐기는 방법

오코노미야키 맛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재료와 밀가루 반죽의 비율이다. 밀가루와 계란, 그리고 양배추 등 각 재료들을 균일하게 배합에 맞게끔 맞추어야지만, 타지 않고 속까지 익은 오코노미야키를 맛볼 수 있다. 200°~220°의 화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철판에서 구워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온도를 유지하면서 구워내야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열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코노미야키 소스 쉽게 만드는 Tip
①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잘게 썬 베이컨, 다진 마늘을 먼저 넣고 볶는다.
② 곱게 다진 양파와 셀러리 그리고 당근도 함께 넣고 볶는다.
③ 재료가 적당히 볶아지면 케찹, 칠리소스, 우스터 소스, 데미글라스 소스, 핫소스, 닭육수를 넣고 20분 정도 끓인 뒤 믹서에 넣고 갈아준다.
④ 가정에서는 양조간장 : 우스터소스 : 케찹을 1.5 : 2: 4의 비율로 섞어준다.

 

오코노미야키 레시피 더 보기

 

오, 성스러운 초콜릿이여!
사람들은 무릎 꿇고 갈고 있고,
두 손 모아 당신을 부수고 있구나.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마시네.

[성스러운 초콜릿] 스페인의 발렌시아 시인의 초콜릿을 찬양하는 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콜릿은 남녀 간의 사랑의 징표로 여겨졌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스페인의 한 시인이 쓴 시에서처럼 초콜릿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하게 생각되었다. 초콜릿의 원산지인 남미의 마야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를 보면 카카오나무에 옥수수 신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이 옥수수만큼 초콜릿을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맛과 모양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초콜릿 <출처: NGD>

 

 

초콜릿의 역사


초콜릿(Chocolate)은 멕시코의 원주민이 카카오 콩으로 만든 음료인 초콜라틀(Chocolatl)에서 유래한다.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강 인근 지역이 원산지인 카카오는 신이내린 선물이라 불리며, 카카오 열매는 초기에 음료나 약으로 사용하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화폐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카카오 10알로 토끼 한 마리를,100 알로는 노예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멕시코에 원정 갔던 한 신하가 스페인의 황제 카를 5세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카카오 콩은 그 가치 때문에 화폐로 활용하거나 피로 회복 음료 또는 영양제 로 활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콜릿의 전파

15세기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4번째로  항해하던 중 유카탄 반도 연안의 카카오 열매를 가지고 들어간 것이 초콜릿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시초다. 이후 16세기 중반 스페인의 웨루디난도 코르테스가 남미를 탐험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가 카카오 열매를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1828년 네덜란드의 반 호텐이 카카오를 압축하여 지방을 추출하는 기술을 계발, 코코아 버터를 만들게 된다.

 

이 기술은 지금과 같은 초콜릿의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피터스(Daniel Peters) 가  지금의 밀크 초콜릿과 비슷한 모습의 초콜릿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후 1976년 스위스의 피터(D. peter)가 우유를 첨가한 초콜릿을 계발하여 초콜릿 산업은 한층 더 올라서게 되었다.


마야의 한 추장이 초콜릿이 담긴 항아리에 손대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모습의 그림. 마야에서 초콜릿이 귀하게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출처:wikipedia>

  

초콜릿이 만들어지기까지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카카오 콩을 선별(Cleaner)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 다음으로는 카카오 콩을 볶아(Roaster) 내는데 이 과정을 통해 카카오콩 특유의 향을 살려낸다. 볶은 콩은 분쇄하고 껍질을 골라내는 분리(Seperater)과정을 거치며 이 과정에서 초콜릿의 풍미를 위해 카카오니브(카카오콩의 껍질과 배를 제거하고 남은 살)를 배합(Blender)한다. 카카오니브에는 다량의 지방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혼합하게 되면 걸쭉한 묽기로 변하게 된다. 여기에 우유나 코코아 버터와 같은 미립화 과정을 거치고 콘체(Conche : 반죽기)로 장시간 반죽한다. 코코아 버터가 안정되면 온도를 조절하여 틀에서 굳힌 후 완성되며 제품에 따라서 일정기간 숙성을 거치기도 한다.

 

  • 카카오 열매에서 초콜릿 상품이 되기까지
  • 1  카카오 열매
  • 2  정제된 카카오 콩
  • 3  카카오니브의 배합 <출처: Sanjay Acharya at en.wikipedia.org>
  • 4  틀에서 굳힌 초콜릿
  • 5  최종 상품으로 진열된 초콜릿

  

한국에서의 초콜릿


조선말기 러시아 공관의 부인은 규방 외교의 일환으로 양과자와 양화장품들을 명성황후에게 바쳤는데 그것이 한국으로 들어 온 초콜릿의 시초였다. 1968년 동양제과해태제과에서 초콜릿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1975년 롯데제과에서는 판모형의 초콜릿인 ‘왓다비’를 생산해내었다.  이후 초콜릿에 아몬드를 첨가한 제품들도 출시되었으며 과자와 초콜릿을 접목시킨 ‘빼빼로’도 탄생되었다.

 
초콜릿의 다양한 성분과 효능


일찍이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를 재배해왔으며 왕실에서는 카카오가루에 옥수수, 물, 향신료를 섞어 초콜릿을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낸 초콜릿은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에 사용되었다. 아즈텍의 왕인 ‘몬테수마’는 여인들을 만나러 가기 전 여러 잔의 코코아를 마셨을 정도로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에 최음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시중에 판매되는 초콜릿에는 식물성 지방을 고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트랜스지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트랜스지방은 혈관을 좁게 만들어 심혈관계 질병을 일으키거나 동맥경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다. 일부 가공된 초콜릿에는 3.5g정도의 트랜스지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감자튀김에 들어있는 분량 4.5g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높은 수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콜릿을 구입 할 때는 초콜릿의 성분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렌타인 데이와 초콜릿

한국의 밸런타인데이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며 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1477년 2월 14일 영국의 시골 처녀인 마거리 부르스는 몇 년째 짝사랑하던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2월 14일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의 밸런타인데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소규모 제과회사였던 모토고미 제과점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을 전하세요’라는 문구로 다양한 초콜릿을 판매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밸런타인데이의 시초가 되었다.

  

참고문헌: 에르베 로베르, [초콜릿], (창해, 2000); 소피 도브잔스키 코, [신들의 열매 초콜릿], (지호, 2000); 칼 토베, [아즈텍과 마야신화], (범우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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