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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의 고향보따리_03

醉月 2011. 1. 29. 10:12

작물의 본성 그대로 땅심이 허락하는 그대로 기른

세상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들여다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생각에 따라 진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농업도 마찬가지 내가 가졌던 혹은 우리사회가 당연한 거라 믿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 더 나은 개념으로 옮겨가는 현장을 만나면 세상에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식물의 입장에서 농사를 지으면 사람도 편해지고 식물은 고달프지만 건강하게 의연하게 자라난다. 사람의 입장에서 농사를 지으면 사람이 시달리게 된다. 식물이 사람을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식물자체를 죽이는 결과를 자아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대부분의 농사가 사람의 입장에서 농사가 이루어진다.

식물의 입장에서 짓는 농사를 '뿌리농사'라 이름 짓는다. 이 뿌리농사로 농업의 일반상식을 뿌리채 흔드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의 본성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작물이 있고 곤충들이 있고, 시공간의 흐름을 채우는 '다양함'이 가득한 곳이 있다.
그 모든 것들로 인하여 세상은 농업은 아주 의미 있는 영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강원 횡성 청일면 속실리 청일주말관광농원

필자에게 추억이 아주 많이 서린 곳이다.
지난 1996년도 정농생협 사무국장으로 처음 농원을 방문하여 인연을 맺은 이래 정농회(사단법인으로 197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기치를 내건 크리스찬 농민조직)의 원년멤버인 정천근 오영자 여사와 지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느 해인가 물품구매차 출장을 갔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 갑작스레 정천근 선생 온 식구가 급하게 서울에 올라갈 일이 생겼다.

상황 발생하자마자 정천근 선생 왈
'안국장님!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으세요. 아무도 없지만 혼자서라도 재미있게 지내시고 내일 내려올 테니 업무이야기는 그때 나누지 뭐…. 저기 더덕주도 진열장으로 가득하고 안주는 여기 있고 …. 마음대로 드시고 집도 겸사겸사 봐주시고….^^"

유기농 식당도 겸하는 집이라 그날 밤 나는 호젓하게 횡성 운무산의 정취와 더덕주에 흠뻑 취했다. 그렇게 격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일관광농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친구는 그분의 아들 정호영군(36세)이다.

농사는 자연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가 간명하게 드러나는 실천 행위다. 급하게 서둘거나 순서를 바꾸거나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가거나 섭리를 거슬르거나…. 다 안되는 일이다.

작물의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
땅심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길러주는 것.
마음이 예뻐야 짓는 것.

자연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

1. 행복을 꿈꾸는 방울이
▲ 파란 방울이와 빨간 방울이형

제가 특히나 방울이 따러 갈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방울이 형제들이 화방 하나에 수십개가 달리는데요,
빨갛게 익는 대로 하나하나 따다 보면
막내 방울이는 아직 파랗거나... 수정이 되어 작은 방울이가 달리면...
그것 하나만 남겨두는 것이 너무 안스러워
작은 또는, 파란 방울이 옆에 있는 빨간 방울이 형을 그대로 두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방울이 두개를 남겨두면
제 마음이 흐뭇해 지는... 저도 참 별나죠?

우리 방울이가
행복을 꿈꾸는 방울이잖아요...
행복한 방울이가 되려면, 누가 봐도 외로워 보이면 안되니까요...
언제나 행복한 꿈을 꿀수 있게 해주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

우리 방울이들, 행복하겠죠?
특히 요즘 밤낮의 기온차가 커서... 방울이가 더욱 맛있어 지네요.
당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요. ^^

2. 미우나 고우나 농장식구

포도는 한송이 한송이 바로바로 따서 1키로 팩에 바로 넣었습니다. 한번 두번 옮기면 그만큼 포도 송이가 약해질것 같아서요. 나름 정성을 다해 한송이 한송이 수확을 했습니다.

보이세요?
포도팩 구석에 들어가 있는 노린재 한 마리.
생각 같아서는 포도와 같이 멀리 귀양을 보내고 싶지만, 이 녀석 외딴곳 도시로 가봐야 죽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얼른 꺼내주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농장식구이고 아직은 녀석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까요.^^

3.여름배추


지금 보시기에는 벌레가 파먹어 잎에 구멍이 숭숭하지만 이정도는 금방 이겨내고 결구가 잘 될꺼에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농장의 배추를 믿습니다. ^^

강원 횡성 청일면 속실리에 있는 청일관광농원 정호영씨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야기다. 30대중반을 관통하는 젊은 농업인의 멋들어진 생각이 읽혀져서 얼마나 반가운지 빙그레 웃는다.

 

 

 

 

 

뿌리농업, 무투입농업

'작물은 뿌리가 건강해야 한다'고 교육받고 강조하고 또 반복되는 상식이지만 대개의 경우 거꾸로 풀어간다. 잎을 위하여 옆면시비도 하고 열매를 위하여 다양한 액션들을 취한다. 물을 줘도 보통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뿌려주기도 한다.
청일농원 토마토밭은 거름도 3년째 안주는 무투입 개념으로 방향을 잡았고 일반적인 정식보다 20일 빨리 심었다. 서리를 되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살아남았고 잎도 튼튼, 꽃도 화려하고 작황이 기대가 된다.

사람이 만든 거름은 오히려 작물에 안 좋은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작물이 살아갈 환경을 잘 만들어 주면 알아서 큰다. 이 진리를 깨치는데 시간 오래 걸렸다. 요즘은 그 컨셉으로 인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농사를 짓는다.

보통의 농사는 뿌리근처에다 관주를 설치하여 물공급을 바로 해준다. 가물거나 물이 부족해 시들면 뿌리에다 바로 물이 들어가니 금방 싱싱하게 살아 나는듯 보인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뿌리가 할 일이 없어진다. 뻗을 생각을 안하게 된다. 아니 뻗을 필요가 없지. 사람이 바로 근처에 물을 넣어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라! 뿌리의 본성은 대지로 뻗어나가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여 자신의 생명줄로 바꿔주고 연결해주는게 주 임무인데 뻗어갈 생각을 안하면 이미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선생 부자는 모종을 키울 때 절대로 호스로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물을 뿌려주지 않는다. 반드시 바닥으로 흘려 보내 뿌리를 통해 흡수하도록 자연스러움을 선택한다. 애들을 키울 때 온실에서 마냥 오냐오냐식으로 키우지 않고 거칠게 스스로 알아서 필요에 의해서 자라나도록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허지만 진정한 사랑, 아주 따뜻한 사랑은 기본이다.

어린모종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는 물도 미리 받아놓고서 하우스 실내 온도만큼 물이 미지근해졌을 때 준다. 하나하나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아버지가 자식 키우는 마음 그 자체다.


토마토의 둔덕도 넓고 크다. 관주도 뿌리가 아니고 둔덕 아래골에다 깔아 물을 흘려보낸다. 그리고는 일체 거들떠도 안본다. 처음에 쭈뼛거리던 녀석들이 살기 위한 몸짓을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뿌리를 한 껏 내려 물을 찾아 내려온다. 뿌리가 깊이 내려가고 넓게 퍼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물이 있는 곳에서 생명수를 빨아들인다.

당연히 땅의 기운과 스스로의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어지간한 가뭄과 장애요인 등을 극복하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그렇게 농축된 에너지는 시기에 따라 한꺼번에 자라 오른다. 그리 지독한 서리를 맞았음에도 사람의 우려를 불식하고 끄떡없이 자라난다.


 

 

 

 

노지 고추밭을 보자.
고추밭도 둔덕을 아주 넓고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추보고 '니가 알아서 살아라'라고 방향을 정해준다. 고추는 아플 새도 없고 병날 새도 없고 게으름 피울 새도 없다. 뿌리는 자신에 의지하는 잎과 줄기와 열매를 위하여 고단하지만 물과 양분을 찾아 치열하게 뻗어 내려간다. 일반고추밭의 뿌리내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게 퍼져간다.


 

 

 

신기한 일은 고추줄기는 밑에서부터 커 나오다가 세갈래로 갈라지는데 뿌리농업으로 하니 마디사이가 아주 짧게 자라난다. 처음에는 병이 아닐까 피었는데 아니올시다. 한번에 다 달리고 고루고루 달리고 익는것도 한꺼번에 익어가는 경향이 농후했다. 거기다 키도 크지 않으니 노동효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작년에는 청일농원 역사상 최고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옥수수는 초당옥수수라 부르는데 생것으로 뜯어먹어도 맛이 좋아 인기 만발이다. 또 구운옥수수라 불리는 것은 구운것 같은 색깔이 나서 붙여준 이름이다.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환호하는 먹거리들이다.

여러가지 작물들

▲ 감자, 김장배추, 더덕, 곰취, 복분자, 청일관광농원은 모두 유기재배인증품


 

 

아버지,어머니가 세우고 아들이 채우고

1986년 현재의 농장부지를 구입해 농사를 시작하고 1990년 무농약인증을 받고 1995년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감자와 고추로 드디어 유기재배인증을 받았다. 그 이듬해에는 가든(식당)을 개업한다.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에서 청일관광농원은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농촌체험 프로그램, 현장에서 생산한 것들로 이루어지는 유기농 식당의 컨셉으로 뜻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정농회의 원년 멤버이기도 한 정천근씨는 세상을 품는 방식으로 유기농을 선택했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한번 더 고민하고 요모조모 다양한 실험들을 계속한다.
그 결과 운무산 자락의 계곡과 그 물, 비옥한 대지의 에너지로 생산되는 먹거리들은 맛있고 안전했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정호영군은 그 속에서 자라났다.

▲ 아버지와 아들

10여년전 정호영군이 학교다니다가 군대가 있을 때다.

1990년대 중반이후 인터넷이 농업에 접목을 시작할 무렵이다. 1997년도 정농생협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정농회의 생산자DB를 근거로 인터넷쇼핑몰을 준비하면서 청일농원을 살폈고 1999년에는 창업부사장으로 인터넷쇼핑몰 '이팜'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청일농원의 컨셉을 만나게 되었다.

그 무렵 정천근선생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선생님, 호영이가 졸업하고 제대를 하게 되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젊은이의 감각으로 인터넷을 농원에 접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겠습니다."

14,000평 청일 속실에 자리잡은 천혜의 농장, 역사와 묻어있는 의미를 살리고 온라인으로 도시민들과 연대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뜻만으로도 훌륭한 일이 되겠지 싶어서 이야기를 나눈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청일농원은 변화했고, 아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정호영군은 대학에서 목공예를 전공했다. 2001년도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인터넷의 바다에 청일관광농원은 순항을 시작했다.

농장 한켠에 목공예 작업실을 만들고 틈틈히 생활에 필요한 작품들을 만든다. 렌즈달린 카메라 가방매고 일하는 젊은 농부로, 수준 높은 사진기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청일농원의 홈지기 윤희아빠 정호영군은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자신의 가족이 살고 농장을 이루는 모든것(벌레,꽃,작물…)들이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카메라 앵글에 담아 세상에 선을 보이고 있다.

아주 많은 도시민들이 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꾸는 꿈 -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농장 - 을 향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가며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이야기로 소통하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환경친화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세운 뜻을 아들이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농업적인 삶의 양식, 그로부터 잉태된 전통과 문화의 총량으로 볼 때 우리농업이 이렇게 망가지고 피폐해진 것은 최근세기의 일이다. 구한말의 조선 지배계급의 오류와 일제침탈기의 수탈농업, 해방이후 50여년간 벌어진 농업희생정책의 결과로 인한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사람들이 오고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주 풍부한 사회였다.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새근새근 잠들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꿈인지 생시인지 빠져들곤 했다. 고비고비마다 견디고 이겨낸 크고 작은 무용담은 여럿의 이야기로 모아져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다. 동네마다 구비마다 골짜기마다 냇가마다 이야기 아닌 것이 없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출현했을때, 나는 우리농업의 복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IT의 기반이 전국의 농산촌에 깔리면서 뿔뿔히 흩어지고, 포기하고 의기소침했던 우리농업의 살아갈 길이 열린것이라고 보았다. 그 시대 벌어진 일, 농촌을 떠난 사람들,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인해 그 관계가 복원될 경로가 열린 것이다.

청일관관농원처럼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역할로 이어받고 협력하고 생각을 보태고 시대의 흐름을 접목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에 일로서 감당하려하면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농장전체를 풀어가는데 필요한 '역할'로 자리매김하면 그 농장 고유한 가치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농사는, 농장은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농사는, 농업은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농사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농업은 우리가 지난 세월을 살아낸 전통과 문화속에서 '낯설지 않음'을 간직한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해낸다.
도시가 농촌을 그리워하고 농촌은 도시를 마음에 품는데 그 둘이 이어지는 연애 '스토리(Story)'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우고 아들이 잇는 청일관광농원의 모습에 흐뭇하고 그들이 꿈꾸고 만들어 낼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고 또 기대되는 바다.

나는 이런 흐름이 우리농업의 현재를 풀어가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농업의 가치가 그간 우리사회를 짓눌러 왔던 '먹고사니즘', '허겁지겁 살아가기' 방식에서 벗어나 대지와 함께하는 조화로운 삶의 기조로 방향을 선회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위대함이 갖는 그 포용성이 다양함으로 우리모두를 유쾌하게 살게 해줄것이기 때문이다.

정호영의 사람대하기 사물 마주하기

정호영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에서 자라나서 그런가 감성이 아주 풍부하다. 작물을 비롯하여 농장내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배제', '죽임', '경쟁'… 같은 것보다는 '상생', '협력','자립'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 처제가 시집가는데 그 처제 내외를 위하여 목공예로 수제침대를 만들어 주면서
하나하나 얹어놓은 말들은
눈으로 안봐도 그들 동서간,형제간의 우애를 얼마나 돈독하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선물을 받은 처제내외와
그들이 잘살기를 간절함으로 빌었을 호영씨 내외가 나누었을
정감어린 마음들이 눈에 밟힌다.

혼자 남은 토마토가 외로워 미우나 고우나 농장 식구….
난 재네들을 믿어요. 고단하지만 네 힘으로 살아라

농장의 공지사항이나 상품에 대하여 농장의 의지를 도시민들에게 알릴 때 윤희, 운덕이의 해맑은 사진을 걸고 글쓰기를 한다. 내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걸고 하는 약속이니 감동일수 밖에…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켜나간다.

아직 여러가지로 고단하고
어머니 아버지의 일에 대하여 100% 이해 못하고 있고
아버지만큼 몸이 노동에 단련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일에 치여 홈페이지 한장 관리못하는 날도 허다 하지만
그가 꾸는 꿈은 나날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에 일로매진하여 우리사회에 예쁘고 잔잔한 농업적 감동을 전해준다.

내게는 그렇게 살아가는 젊은 농부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살아가는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청일관광농원에 사는 것들

황금벌레, 노린재, 꿀벌, 무당벌레, 메뚜기….
이름을 알거나 모르거나 수많은 꽃들…

그리고
이야기들….
그들이 그립다.

이거 참 잘 생긴 보약이구나

음식을 먹으면서 오감을 만족시키게 된다면 그 음식은 이른바 '양생음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생음식(養生飮食)은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한 음식'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또 중국에서는 섭생(攝生), 섭양(攝養), 보양(補養)등으로 부른다. 중국의 서민들은 공자의 가르침인 인(仁)과 의(義)보다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사는 불로장생만이 더 없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 노자는 섭생, 장자는 양생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잘사는 삶의 요체는 잘 먹는 것, 건강한 것에 기반하는 것이니 우리가 매일매일 대하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1주일에 한두번 우리집 아침밥상에 올라오는 단호박


우리 집은 고구마, 감자, 단호박, 가지, 당근…. 제철에 아주 풍성하게 나오는 뿌리채소와 열매채소를 자주 애용한다. 복잡한 요리로 만들어 먹기보다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익히거나 구워서 먹는다. 가끔 고기를 구울 때에도 이 친구들은 아주 요긴한 식재료로 등장하여 입맛을 돋군다.

그중에서 먹을때마다 감탄하는 재료는 바로 단호박이다. 엷게 편으로 썰면 써는대로, 두툼하게 자르면 자르는대로 적당히 배어나온 즙액이 표면을 싱싱하게 하고 짙은 녹색으로 시작하여 연두색을 지나 노란색으로, 급기야는 짙은 주황색으로 펼쳐지는 그 색의 향연에 늘 감동받는다. 그로 인해 함께했던 전체 재료들의 분위기까지 업그레이드 된다. 아주 간단한 것들이 훌륭한 성찬(盛饌)으로 탈바꿈을 하고 각 재료들이 갖는 고유한 본성과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섭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단호박은 내게 아주 친근하고 멋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섭생의 멋쟁이 단호박

단호박의 달디단맛, 혀끝이 먼저알고
단호박의 초록껍질, 세상이 싱그럽고
단호박의 노랑노랑, 눈으로 꿀떡이다

단호박 너로 인해
고운맛을 더하고
색동옷을 입는다

그렇게
품위를 더하는 구나

모든재료 서로서로
모든차이 어깨동무
기꺼이 곁을 주니

어울려서 감흥을 부르고
눈으로 감동을 부른다

색으로
맛으로
뜻으로

그 자체로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몇 년 전 전국 박과채소축제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박과채소(cucurbitaceae vegetables, 科菜蔬)는 1년생 초본식물이며 덩쿨성 식물로 호박, 오이, 참외, 수박, 박, 수세미 등의 채소를 일컫는다.

호박은 남과(南瓜)라 하는데 수박은 서과(西瓜), 참외는 첨과(甛瓜), 수세미는 사과(絲瓜), 오이는 황과(黃瓜)라 부른다. 오이는 언뜻 푸른색을 연상하지만 오이가 익으면 노란색을 띄므로 황과라 뷸렀다. 노각(늙은오이)이 그것이다.

수백종의 박과채소를 만나면서 우리농업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희망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먹을거리라는게 얼마나 다양한 존재적 가치를 지닌 '생명에너지'인지 실감했다. 또 그것들이 지닌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아무 조건 없는 넉넉함과 향기로 유년시절을 영글게 만들어 주었던 어머님의 품속처럼 생을 충만하게 해주는 '즐거운 현실'이구나 판단했다.

▲ 다양한 호박들

유기농업 일에 20년을 종사했지만 그저 오이, 수박, 참외, 호박 정도의 인식에 머문 채 '수집'과 '분산'에 바쁘기만 했지 이들 이외에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이야기)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박과채소 분야만 하더라도 일상에서 익숙한 채소 말고도, 맛있고 영양 많고 거기다가 농촌어메니티 요소도 많아 소비현장이나 생산현장에서 '섭생(攝生)의 멋'을 입으로 몸으로 느낄수 있게 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제철에 맞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욕심이 들었다.

조류독감, 중국산 발암물질파동, 말라카이트그린사건, O-157세균, 광우병, 환경호르몬, 사스 등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환경오염의 단면들이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가운데 '여주와 동아', 애호박, 단호박, 참외, 메론, 수세미, 쓴오이, 늙은오이, 국수호박, 국좌호박, 무종피호박, 먹참외,기기묘묘한 수박 등등 수십가지 박과채소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들 인생의 구미를 돋구고 있다.

놀라운 생명짓 , 거침없는 유기체_ 호박
▲ 호박덩쿨손(호박손), 놀라운 생명의 촉각을 지닌 녀석이다. 무엇이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끝에 닿는 것은 모조리 감아 돌린다. 달팽이처럼 말아 돌아간 저 의미는 아주 의미심장하다.

▲ 지난해 5월 30일, 호박모종을 심었다. 놀라운 기세로 주변텃밭을 점령하고 호박꽃을 피우고 벌들의 잔치 한바탕 벌인 후에 9월 20일경 호박이 달리기 시작했다.

호박은 기후조건에 대한 적용범위가 넓고 토질을 별로 가리지 않아 모래땅에서 참흙까지 재배가 가능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난다. 건조기에도 강하지만 물 빠짐이 좋은 곳이라야 한다. 자체적으로 수분을 많이 저장하기에 건조에는 이길 수 있지만 수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상하기 쉽다.

텃밭에서 호박을 키워보면 호박의 부피생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 뼘 정도 되는 호박모종을 심어놓으면 주변식물들이 맥을 못 출 정도로 호박이 무성하게 세력을 펼쳐나가는 것을 본다. 옛날에는 호박을 심기 전 인분(人糞)을 흠뻑 뿌려주면 더욱 잘 자랐다. 낮은 야산언덕배미에 똥바가지 들고 거름을 뿌려대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풍겨오던 그윽한(?) 향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부숙(腐熟)이 덜된 인분은 다른 작물에 주면 고사하지만 호박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수분과 양분을 맘껏 흡수하며 발산량 또한 다른 식물들보다 많다. 손톱보다 작은 호박씨로 시작해서 수천수만배 부피생장을 하는 셈이다. 온 나지막한 야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왕성하게 살아간다.

외국의 어느 호박대회 자료사진을 보면 사람키만큼 큰 호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호박의 흡비력(吸肥力)이 다른 식물보다 좋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 시골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중인 늙은 호박의 모습이 정겹고 아직 매달려 있는 수세미의 정감이 올망졸망 잘 어울린다.

호박의 주요성분은 수분이 90%를 차지하며 채소가운데 녹말이 가장 풍부하다. 비타민A가 많고 비타민B,C도 함유되어있다.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은 이유는 호박의 당분이 소화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친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호박의 주성분은 녹말이고 그 성분은 감자와 비슷하다.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고 잎은 나물로 쌈을 싸먹고, 애호박은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는다.

호박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늙은 호박이 갖는 범용성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낳은 산모의 산후조리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몸의 기가 쇠잔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얼굴은 푸석푸석해지고 윤기가 없어지게 된다.

호박은 그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기를 보호해주는 작용을 하고 이뇨를 원활하게 해주고 갈증을 없애준다. 그외에도 말려서 쓰는 호박고지, 호박범벅, 호박가루, 호박찜, 호박죽 등 전통의 요리법도 많다.

단호박

호박은 멕시코남부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동양계호박(C. moschata), 라틴아메리카 원산의 서양계호박(C. maxima), 멕시코북부와 북아메리카원산의 페포계호박(C. Pepo) 3종류로 나뉜다. 단호박은 이 가운데 쪄서 먹거나 건강식으로 먹는 서양계 호박을 일컫는다. 맛이 밤처럼 달아 밤호박이라고도 부른다.
▲ 녹말과 무기염류가 풍부하고 비타민B, C가 많이 들어있어 주식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도입해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도입해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우리집 식단에서 단호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용하게 쓰여진다. 특히 아침식사에서 단호박이 갖는 의미와 눈으로 보이는 맛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풍성하게 해준다.
▲ 고구마, 감자, 버섯, 당근 등을 구울 때 같이 사용한다. 단호박이 갖는 칼라풀한 감성은 입맛을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된다. 진노랑, 혹은 진주황이 갖는 식감자극도 일품이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단맛은 섭생의 의미를 한층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 주식겸 간식으로 쪄 내오면 녹색과 진노랑색이 곁들여지는데 그 자체로 일품먹거리가 된다.

▲ 서천 아리랜드에서 생산한 미니단호박이다. 달걀크기와 견줘보니 앙증맞기 그지없다.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데다 단호박이 갖는 타 식재료와의 친숙성으로 인하여 강호에는 수백수천가지의 개성 있는 단호박 요리들이 가가호호 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드는 사람 각자각자의 성질이 들어가고, 손맛이 들어가고, 아이디어가 보태지니 단호박요리의 종류는 만드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것이다.

단호박 찜, 단호박 샐러드, 단호박 경단, 단호박 쿠키, 단호박 죽, 단호박 피자, 단호박 그라탕, 단호박 푸딩, 단호박 치즈구이, 단호박 조림, 단호박 돼지고기조림……

바이오다이나믹농법(생명역동농법)

충남 서천 아리랜드 정의국씨 내외가 아리아랑 미니단호박을 키워낸 농법이다. 정농회회원들은 1994년부터 생명 역동농법을 도입하여 실천하고 있다.

매년 행성들의 주기를 파악하여 농업에 바이오다이나믹 달력을 사용하는데, 달이 점점 커가는 음력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작물의 씨를 뿌리면 발아도 잘되고 생육이 균일하며, 보름이 지나 그믐까지는 수확을 하여 저장하거나 식용할 것을 추천한다.

즉 쉽게 이야기하면 아래와 같이 작목별로 날을 가리고 작목을 구분하여 농사짓는 것이다.

● 열매의 날 : 곡물, 콩류, 수박, 오이, 가지, 피망, 호박,고추...
● 꽃의 날 : 모든 꽃과 허브류
● 잎의 날 : 시금치, 배추, 양배추, 쑥갓, 부추...
● 뿌리의 날 : 무, 당근, 생강, 양파, 마늘, 감자, 고구마...
● 휴경의 날 : 농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

1924년 루돌프슈타이너박사(Rudolf Steiner, 1861~1925)에 의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농법으로 하늘의 힘이 땅을 살리고, 작물과 균형 및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므로 이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릴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주와 지구, 달과 지구 및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관계를 농사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농사를 일컫는다.

물량중심의 이익에 눈멀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탈하는 농업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땅과 하늘이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정농회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단호박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생산과정에서, 주방에서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한가지 작물이 자리를 잡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따라서 생겨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야기들은 엄마의 입에서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갈 것이다.

반대로 고유한 우리종자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일 테니 대저 우리농업을 귀하디 귀하게 여겨야 할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되겠다.

'섭생의 멋'과' 양생의 맛'을 일깨워준 단호박이 고맙기 그지없다.


제대로 된 가을의 첫 사과 맛 홍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정사로 보던 야사로 보던 아주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왕의 다음을 잇는 후사(後事), 즉 세자책봉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숙종대의 장희빈과 인현왕후처럼 여인들의 역사도 결국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왕이 되느냐 아니냐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가장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세종이 왕이되는 이야기다.
태종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이 첫째가 양녕대군 둘째가 효령대군 셋째가 충녕대군이었다.

이제(李褆) 양녕대군은 태종 이방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서에 능했고 영민하기 그지없던 그였기에 자연스레 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아버지 태종이 권력을 위하여 정적들을 제거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데다가 셋째인 충녕이 왕의 자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종이 더 총애한다는 사실을 알아 차린다. 하여 일부러 왕도의 법도를 무시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자유분방하게 행동거지를 가져가 결국 폐세자 당하고 셋째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둘째 효령대군과도 의논을 하니 효령대군도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만다.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스님의 형이니
부러움과 거리낌이 없도다

형제들과 우애 좋게 지내다가 천수를 다하고 운명하면서 남긴 양녕대군의 싯구다.

영,정조 시대에도 결국 왕이 되지 못하고 뒤주 안에서 죽어가야 했던 사도세자 이야기도 있다. 저간의 속사정이야 당시 사람들의 몫이고 이런 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고 보면 맏아들 상속의 원칙이 순탄하게 지켜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여러 이유로 인해 상황이 비켜간 것이다.

그런데 사과나무에서도 대를 잇는 우여곡절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게 아닌가?
▲ 제1번과와 2번과가 냉해를 입어 밀려나고 3번과가 열매를 달기 시작했다. 올해 이런 현상이 90%정도에 이른다. 농부의 설명이 구체적이다.

▲ 화방6개 올해는 봄철 내내 벌어진 이상기후로 인해 냉해를 입어 제1번과가 솟았다가 도태되고 2번과가 대신하였다가 또 도태되고 3번 과가 자리를 잡았다.

사과나무가 얼마나 영리한지…

꽃눈 하나에서 하나의 꽃만 틔우고 수정하여 한 개의 열매를 맺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꽃눈으로 6개의 꽃을 피우고 수정이되면 [그림2]처럼 6개의 화방이 생기고 열매를 매달 준비를 마치는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8월 중순 필자가 농장을 방문한 날이다. 다른 지역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올해는 '3번과'가 대세라서 씨알이 굵은 게 별로 나오질 않고 중간크기가 주종을 이룰 것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3번과?" 사과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해서 물었고 그 신기한 사과나무의 생명짓에 푹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유통 일을 하면서 사과를 참 많이 다루고 판매하고 구매하는 일을 했건만 정작 사과나무가 풀어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혀 살펴보질 못했다.

사과나무 입장에서는 다음 대를 이을 후사를 생산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일 터,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다하여 다음 대를 생산한다. 거기다가 더 정확하게 이어가기 위하여 6개의 꽃을 한 꽃눈에 달리게 하여 만일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안목도 지니게 된것이다.
▲ 4월에 가운데 조금 큰 꽃몽우리 1개와 5개의 꽃몽우리가 모여있다. 각 몽우리들이 활짝 꽃을 피우면 벌들이 날아와 수정이 된다. 수정이 이루어진 꽃들은 꽃잎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화방 6개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사과가 익어가는 것이다. 역시 가운데 있는 1번과가 제일 크다.

자연이 정해준대로 1번 꽃봉오리가 세자책봉을 받은 것이다. 제일 크게 진보라색을 띄고 가운데 우뚝 솟아올라 햇살을 받고 영양을 받아 다음을 준비하는 영광의 자리다. 그런데 아뿔사! 냉해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등 예기치 못한 상황(기상이변, 외부충격)이 오면 그만 도태되어 위축되어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사과나무는 2번 화방을 자연스럽게 올려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한다. 그런데 올해처럼 그 두번째 화방 마저 냉해로 인해 낭패를 보게 되면 3번과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셋째가 자리를 잡으면 나머지는 적과작업을 거쳐 일일이 손으로 제거한다. 그 시점부터 나무는 최선을 다해 영양물질을 공급하기 시작하여 빨갛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과나무는 대를 잇기 위한 안전판으로 6개의 꽃을 피우고 6개의 화방을 이루게 하고는 거기다 한술 더 떠 문제가 생기는 경우 6형제가 차례대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안배한 것이다.

"야! 이거 옛날 왕세자 책봉하는거 하고 똑같네^^"
"맞아요! 딱 그거에요"

사과나무의 경이로운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처럼 권모술수로 서로 해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대로, 순서대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과의 크기는 1번과가 그대로 진행이 되었을 경우에 대과가 많이 나오고 2번이 그 다음으로 크고 3번과가 대세인 올해는 중간크기가 90%정도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상은농장 전체적으로 보면 달려있는 과수의 숫자는 예년보다 더 달렸다.

작년에는 '뺀질이와 멍텅구리' 사과로 이야기를 더했고 올해는 인간사 세자책봉처럼 나름대로의 '생명잇기', '삶의 방편'을 펼치는 사과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름사과 하양과 홍로
▲ 9월 상순이지만 수확은 8월 하순부터 가능하다. 무게는 300~350g으로 중간 정도이고 형태는 긴 원형이다. 껍질은 짙은 홍색에 줄무늬가 있다. 속살은 흰색이며, 조직이 치밀하고 과즙이 많아 맛이 매우 좋다.

푸른색깔의 아오리 사과가 새해 첫 사과로 여름철에 세상에 나오지만 사과고유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 해 첫 사과 맛은 역시 9월초순경 제 맛이 드는 하양, 홍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맞다. 다른 과일들과 구별되는 아삭아삭한 식감과 신맛이 가미된 단맛은 무주 상은농장 사과 홍로의 비결중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홍로는 단맛에 방점을 찍는데 신맛이 가미되면 햇 사과의 그윽하고 깊은 맛은 나무랄 데가 없게 된다.

게다가 여름사과의 큰 결점중의 하나가 저장성이 아주 많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조금만 지나도 푸석푸석해져서 아차 싶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필자도 서너 번 여름사과를 유통하면서 손해를 본적이 있다. 상은농장 홍로는 일반 홍로들에 비해 더 오랫동안 상온에서 저장이 가능하다. 아주 중요한 여름사과의 장점중의 하나가 되겠다.
▲ 무주상은 농장은 대덕산자락 해발 580여m높이에 위치하고 환경오염원이 없는 청정지대에 소재한다. 일교차의 폭이 크고 햇살이 과수원 전체를 늘 휘감아 돈다.

상은농장의 사과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합작품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농사를 지으며 생각을 하고 또 생각해봐도 "자연에 가까워야 제 맛을 내더이다"는 농부의 확고한 원칙이 재배의 전과정과 수확의 과정에 걸쳐 반영이 되므로 맛있는 사과가 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사과를 사과답게 만들고 그 격을 높게 만드는 12가지 미량원소(붕소, 아연, 마그네슘, 철, 망간, 황…)를 소중하게 관리하고 사과나무와 관계 맺게 하여 다른 사과들과는 구별이 되는 맛을 구현하는 것이다.
▲ 농장의 부사가 8월 볕에 영글어 가고 있다. 두달여가 지나 첫서리가 내리면 이 친구들은 '뺀질이와 멍텅구리사과'로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존재들이 된다.

농장전체의 수세가 아주 건강해 보이고 달려있는 홍로, 양광, 감홍, 부사… 등등 싱그런 기운이 넘쳐난다. 깜깜한 밤에 들어가보면 사과과육의 이미지들이 은빛으로 뿌옇게 드러나 신비롭게 보여진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칠흑 같은 밤 흰색소복빛깔이 투영되는 으스스한 밤풍경(?)과 비슷해진다.
▲ 주인농부 양한오

8월 16일자 현장에서 살짝 빨간빛이 도는 홍로를 한 개 따서 입에 베어 물어 분다. 아직 보름여 이상을 더 있어야 제대로 익는 거지만 풋사과의 맛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다. 신맛이 강하고 단맛은 아직이다. 그런데도 먹을만했다. 아 풋사과 맛은 이런거구나… ^^

농장을 둘러보고 올라오는 길 내내 나는 참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 혼자 슬몃슬몃 웃었다. 사과 하나하나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고, 꺼내서 살피면 살필수록 꿈결을 거닐 듯 재미에 빠져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부사가 나올 무렵에는 더 기가막힌 재미난 이야기가 또 있다고 하니 잔뜩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농사를 잘 짓는 고수(高手)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확하게 드러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기가 키우는 작물들을 사람의 살림, 사람의 생각에 빗대어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 대하듯 작물을 대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하니 알아듣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작물이나 보통 영리한 존재들이 아니다. 아니지, 사람은 아주 개인적인 이익에 눈멀어 공생(共生)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작물들은 섭리(攝理)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다른 환경을 맞이하며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꽃6개를 피우고 화방6개를 만들어 놓고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순서대로 자기역할을 하도록 안배한 사과나무의 뜻 또한 곰곰이 곱씹을수록 정감이 간다.

그 경이로움에 마음이 가 닿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 왜 6개인지도 사과나무는 알고 있겠다. 지금까지는 6개 화방으로 대응하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7개가 될지 8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혹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다음 생명을 이어가는 안전핀을 만들지 않을까?

자연에 가까워야 제 맛을 낸다

격(格)이 높은 사과는
재배하는 농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 어디로 가겠는가?
사과나무로 옮겨간다

농장의 지리적 조건과 풍광
색다르게 도전하는 재배방식

단순한 단맛보다 아삭거림
약간의 신맛이 가미된 고유한 풍미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색택과 장기저장성

저마다의 고유한 향이
정확하게 발현이 된다

대를 이으려는 나무의 본성에
우리들의 마음이 다가가고

자연에 가까울수록
제 맛을 내더이다




한과가 이렇게 깔끔한 맛이었나?

요즘에는 시험 볼 때나 집들이, 이사 혹은 창업이나 개업하는 지인들을 찾아갈 때 무엇을 들고 어떤 마음을 담고 찾아갈까?

내 어린 시절 70~80년대에는 성냥, 양초와 같은 것들을 어른들이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라"는 덕담과 함께 당시 UN표 곽성냥은 단골 필수품이었다. 이후에는 "당신의 일이 술술 잘 풀리라"며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가기도 하고…

요즘에는 수저 셋트, 커플 속옷 등등 기발한 생각들로 중무장한 선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각종 시험 때는 착 붙으라고 엿을 건네는데 엿이 가진 본래의 성질보다 화려한 포장에 더 치우친 감이 있어 오히려 의미가 가벼워지는듯 하다. 나는 오래 전에 조카녀석 수능 보던 날, 인생의 항로 방향 잘 잡으라고 '나침반'을 선물로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선물로나 가족 주전부리로 좋은 의미, 좋은 인연들로 가득한 이런 선물은 어떨까? 맛도 있고 프레쉬하고,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고 작은 것이 아주 크게 일어나는 성질도 있구. 행운을 가져다 주는 유쾌한 우리 전통과자 '유과' 말이다.

▲ 찹쌀과 콩가루로 만든 '바탕(반대기)'을 깨끗한 기름에 튀기면 이렇게 크게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튀김 옷을 입히면 아주 깊은 맛, 주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우리과자 '유과'가 된다. 뻥튀기처럼 허맹맹하게 부푸는 것도 아니고 본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실속있게 일어나는 성질을 맛보게 된다. 곡물가루에서 저렇게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발견하여 생활에 응용한 조상님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바탕', 사물의 '바탕'

세상의 모든 일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둘의 조화에 의해서 세상은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만남은 하늘에 속한 일이고, 관계는 땅에 속한 일이다.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과로 남고, 사람의 삶은 만남과 관계가 조화로우면 그만큼 아름다워진다. 그렇게 시작(始作)이 일이 되어가는 과정(過程)이 되고 결과(結果)를 낳게 된다. 그 결과(結果)는 다시 시작(始作)이 되고….

그것을 인연(因緣)이라 부른다.

경북 군위 부계면 창평리에 그 인연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월한과에서 한껏 부풀어 오르는 인연의 즐거움을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맛보도록 한다.

▲ 유과의 기본이 되는 '바탕'이다. 우리말로는 '반대기'라고 부른다. 찹쌀과 콩이 기본이고 흑미, 쑥, 대추가 자연색상의 역할을 하며 혼입이 된다.
이 '바탕'이 모든 인연의 출발이자 끝이다.

일원한과 설 완 대표는 2가지의 바탕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그 소중함을 절실히 헤아리고 있다. 한가지는 '사람'이란 바탕이고 다른 한가지가 바로 유과의 근본 '바탕'이다.

'바탕'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1. 물체의 뼈대나 틀을 이루는 부분
2.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을 이루는 기초
3. 타고난 성질이나 체질
4. 그림, 글씨, 자수, 무늬 따위를 놓는 물체의 바닥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우리말로 '반대기'는 가루로 반죽한 것이나 고기 다진 것 등을 얄팍하고 둥글 넙적하게 만든 조각을 지칭하니 '반대기'를 '바탕'으로 불러도 무방한 일이다.

8월 하순 추석을 준비하느라 한참 바쁜 일월한과를 찾았다. 보통 추석이나 설, 한달 전에 일을 시작하여 미리 준비를 한다.

▲ 숙성이 잘된 바탕을 카놀라유에 적정하게 튀기면 아주 은은한 색깔을 표현하면서 부풀어 오른다.

▲ 속 색깔도 원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찹쌀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 달고 맛있고 속이 실한 주전부리 유과가 완성이 된다. "크게 일어 나세요" "시작은 미미하나 끝내 창대 하세요^^"

인연이 바탕을 만들고 그 바탕이 다시 인연을 만든다.

지난 2002년 가을, 설 완 대표는 대구 달성 유가농협과 손잡고 한과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기계가 들어오기 하루 전에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기계반입을 일단 연기시키고 한 달간 경북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적합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이제 살고 있는 전셋집도 비워야 하는 그 시점에 군위 부계면 창평리 이 곳을 와보고 일단 비어있는 곳이라 기계라도 넣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계약한 곳이다.
공장 한 켠에 살림집을 꾸미고 계약기간 만료만 되면 나간다 생각하고 대책 없이 몇 달을 보냈다. 이사올 무렵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찾아와서 "여기는 뭐 하는 곳인고?" 관심을 표했고 일거리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한과기술이래야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라 아무 자신감도 없이 우물쭈물하던 중 설이 다가왔다. 주변에서 설인데 뭔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격려를 하고 용기를 주어 공장을 다녀가셨던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을 소개받았다. 바로 지금까지 옆에서 아들 같고 동생 같은 설완 대표와 8년째 일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여사님들이다.
내가 방문하던 날도 단순히 급료 받고 일하는 직원이 아니고 당당히 자기 전문역할로서의 포지션을 직원 분들에게서 느꼈다.

"세상은 아이러니하죠? 계약이 틀어져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유가농협에서 글쎄 첫 주문을 500만원어치나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그 주문은 일원한과의 명줄을 살리는 의미가 있었고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거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설 완 대표가 쓰는 재래종 찹쌀은 유가농협에서 전량 구매하고, 유과는 유가로 납품하고 이름도 비슷하고…. 이 또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겨우겨우 그렇게 연명하면서 유과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골에서 홍보 없이 살아 남으려면 한번 구매한 고객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줄 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바로 망한다고 생각했다.

▲ 일월한과 삼색유과, 유과는 '한과의 꽃'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여 실천했다.

원료 전부를 최고의 국산품으로 하고, 찹쌀도 야무진 재래종 찹쌀을 취급하는 유기농협에서 구매했다. 산화방지제는 물론 착색제, 합성보존료 같은 화학첨가제도 일체 배제하기로 한다. 또 기름은 카놀라유만 쓰고 정화기를 사용하여 맑고 신선한 상태의 기름에서 작업한다. 또 여러 번의 실험 끝에 바탕(반대기) 반죽할 때 소주를 사용하고 충분히 숙성시켜서 유과를 만든다.
법정 유통기한은 6개월이지만 소비자들의 손에 2개월 이내에 도달이 가능하도록 작업일정을 맞춘다. 그래서 일월한과는 늘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각!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의 인연, 찾아오거나 주문하는 고객들과의 인연, 거래처들과의 인연에 유난히도 정성을 바치기로 했다.

"망하지 말자, 만약 망한다면 우리나라 한과 업체중에서 제일 늦게 망하자.
그리고 사람 - 가족, 직원, 고객 - 에 대해 책임을 지자.
적어도 그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일까 2004년 한국전통식품 BEST5 선발대회가 열리는데 경북에는 한과업체가 몇군데 안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접수하고 예선 통과하여 바로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그 전국대회에서 동상에 입상하게 된다. 그때 같이 수상한 업체들은 굴지의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내노라하는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한달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샘플을 보냈고 한달 뒤에 서울로 올라가 계약을 했다. 베스트5 선정업체와 이미 청와대 납품경험이 있는 업체들의 한과를 다 받아서 먹어보고 결정했는데 유과는 일월한과, 약과는 신궁방, 강정은 합천한과가 납품을 하고, 8도의 특산물을 고루 섞어서 선물세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과의 꽃인 유과를 생긴지 2년 된 일월한과에서 납품을 하게 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어떤 맛일까?

▲ 일원한과의 작품들

깔끔하고 '프레쉬(Fresh)'한 맛이다. 아니 한과를 먹으면서 프레쉬하다고 느끼다니 의아해 하지만 우리 몸이 느끼는 맛은 이구동성이다. 맥아당 성분이 70%이상인 최고급 물엿을 쓰는데 이 친구는 단맛이 덜하여 상쾌함의 밑바탕이 된다. 재래종 찹쌀의 야물진 성질과 자연스런 색감은 먹는 이로 하여금 산뜻한 은은함을 맛보게 한다. 흑미 유과는 보라색으로, 대추 유과는 노란 갈색으로 녹색의 쑥 유과는 연두색으로 연해진다. 연한 파스텔톤의 여운이 비주얼로 깔끔하게 남는다.

거기다 더하여 일월한과에는 사람 사는 맛이 있고, 인연과 인연 사이에 녹아있는 감칠 맛이 더해진다.

고객의 방문매출액이 거의 50%를 차지한다. 명절 전후 고객들은 공장에 찾아와서 기다리고 이야기하고 맛보고 기대감을 가진다. 한바탕 유과잔치가 벌어진다. 즐겁게 기다리고 현장의 분위기를 만끽한다. 기다림이 미안해서 설 대표는 덤으로 더 넣어주고 마음으로 고맙고 서로 보태는 분위기가 입맛에 앞서 마음 맛을 더한다.

해마다 때가 되면 택시를 대절하고 와서 한 차 구입해가고 고객이 A 농협에 선물로 보냈고, 그 담당자가 주문을 하고 다시 다른 인근 B농협으로 소개를 했다. 다시 그 농협은 또 다른 C농협으로 소개를 하고…. 그렇게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노인분들은 전화로 "아들도 외국 나갔고 인터넷으로 돈도 보낼 수 없고, 움직이기도 곤란하다. 그러나 너네 유과는 먹고 싶다"고 강짜 아닌 강짜(?)를 부리곤 한다. 그러면 무조건 갖다 드려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노인고객들께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장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갔을 때의 충격이 컸다. 해서 저 어른께 이번에 못 보내드리면 혹 다음에 못 뵐 수도 있으니까 계실 때 챙겨드리려고 노력한다."

어떤 회사로 남고 싶은가?

▲ 활짝 웃는 설 완 대표, 경북대학교 농생물학과 86학번이다,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전화하고 지내지요? 밤12시에도 전화 하고…^^
마찬가지 일월한과가 매일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떠오르면 푸근하고 안심되고 반가운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아, 그랬지! 군위 일원한과 유과 맛이 아주 기억 나거든… 또 그 분위기가 좋았어. 그 친구 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노력한다.

▲ 사무실 한 켠에 놓여있는 오래된 어항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차 한잔 나누는데 금붕어 이야기를 한다. 저 녀석들과 보통 6년 이상 된 인연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저 중의 한 녀석 어항 오른쪽 모래바닥위의 갈색 붕어는 6년 전에 큰아이가 초등학교 등교 길에 조그만 어항에 담겨있는 꼬마를 백원인가 얼마인가 주고 샀는데 오늘날까지 잘 자라고 있으니 아무래도 우리 집과는 인연인 모양"이라고 웃는다. 지금껏 살아준 저 녀석들이 고맙고 대견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설 완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들은 모두 아주 오래가는 모양새를 띈다.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이야 말할 나위 없고…. 여사님들은 일원한과의 일에 충실하기 위하여 자신이 짓는 농사의 일감을 많이 줄여나가고 있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성이 높아지며 평생의 인연으로 승화되어 간다.

시골생활 10년 가까이 하면서 가장 크게 남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 형제를 두었는데 이 녀석들에게 자연과 추억을 남겨줄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큽니다."
시골학교가 워낙 작다 보니 부족한 것도 있지만, 유년시절의 꿈과 감성을 자연속에서 최대한 감응하면서 보낸 것이 눈에 보인다. 중학교까지 약 10리 가까이 되는 거리(3.5Km)인데 아이는 걸어 다닌다.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걷거라"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머금는다.

"과거의 나를 보려면 지금의 나를 보면 되고, 미래의 나를 보려면 마찬가지 지금의 나를 보면 된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설 완 대표의 일월한과 스토리는 여러모로 생각할게 많았다.

두툼한 생김새와 걸걸한 성격, 호방한 웃음….
원칙적이고 단호한 기준. 그의 사물을 대하는 시선….
나하고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제2석굴암

▲ 멀리서 본 바위산 중간에 있는 석굴암, 모전석탑, 소나무 숲, 가까이서 본 석굴암

일월한과에서 5분 거리에 제2석굴암이 있다.
신라19대 눌지왕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 하던 곳으로 화상께서 처음 절을 짓고 그 후 원효대사가 절벽동굴에 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제보살)을 조성 봉안하였다. 이 석굴암은 7세기경으로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선 선행양식으로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다.
경북 군위 부계면, 일원한과와 제2석굴암 소나무 숲과 팔공산 계곡의 풍취, 이야기 가득한 문화유적들…. 아이들과 함께 먹거리여행, 문화여행 다녀오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불교의 기본 컨셉 또한 인연(因緣)이 아니던가? 전생(前生)과 현생(現生)과 내세(來世)가 '윤회하는 인연'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옷이 더러우면 세탁을 하고, 몸에 때가 끼면 씻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에 때낀 바는 벗을 줄을 모른다. 아집의 때, 어리석음의 때를 벗으면 우리의 본래 심성은 밝아지고 그것을 일러 자각이라고 한다.

오늘날처럼 비인간화된 기술문명사회에서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내재해있는 자신의 등불을 밝히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표류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서로 믿고 의지해 사랑하며 인간의 길을 함께 갈수 있도록 환히 밝혀야 된다.
경내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마음의 등불]中

일월한과 현장방문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다. 달포 전 설 완 대표가 나의 이야기 구상에 도움이 되라며 나에게 보내준 메모를 들여다 보았다.

- 인연 –

-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
- 한과를 싫어했던 사람
- 이런 맛 없는 한과라면 우리 조상들이 좋아 했을까?
- 내가 먹어서 맛이 없다면 팔지 않겠다
- 조금은 다른 한과
- 無에서 시작, 다르게, 또 다르게
- 운이 좋아 참가한 대회에서 입상
- 한과가 맛이 있다며 갑자기 걸려온 청와대 전화(샘플 보내라고)
- 2010년까지의 지속적인 발전
- 고객과 일하시는 여사님들은 일월한과 발전의 일등공신
- 법정유효기간은 6개월, 일월한과는 한 달 이내에 고객의 입속으로
- 더불어, 어울려 사는 삶
- 주위의 도움
- 시골에서 잘 자라 주는 아이들
- 걸어서 등교하는 장한 큰 놈
- 기발한 상상력으로 기쁨을 주는 작은 놈
- 군위가 만들어준 선물
- 이런 우리 아이들
- 재료는 내가 아는 한 제일 좋은 것만
- 평소에는 바탕 작업

- 일월한과 설완

처음에는 잘 연결이 안되던 퍼즐이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서로 간보고, 분위기에 취하고나니 하나 둘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거창하고 번지르하지는 않지만 한번 맺은 인연이 그 다음 인연을 낳고, 시골에서의 삶이 아이들의 꿈을 풍요롭게 해주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감성이 서로 감응하는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문득 생각나는 그리움으로 자리하고 싶은 그 마음…
그렇게 일원한과 설 완 대표와 임직원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농사는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에 사람의 인연이 보태지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뜻은 온전하게 그들이 만드는 결실 '유과'로 옮겨가니 그 유과 맛 오죽하면 여북하랴!

깔끔하고 프레쉬하다. 옛날 할머니가 집에서 해주시던 맛이다.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 맛.
인연으로 가득한 맛.

일월한과를 들여다 보는 일정은 유쾌하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막는 음식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 다큐멘타리 영화를 자주 감상한다. 인류 4대문명, 지구, 바다, 우주, 자연, 역사 같은 내용을 다룬 것들이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오늘과 그 당시 혹은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돌아가 들여다 보는 여정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중 기억나는 것 하나가 중국 황하문명의 이야기다. 역사의 전개와 사람의 인식의 틀을 넘어서는 황토문명의 크기와 그 당시의 생각과 결과물들에 매료되곤 한다. 그렇게 선명하게 누런 흙 '황토(黃土)'는 '만물의 근원'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 중국의 황토고원지대

흙은 만물의 근원이다.
황토상황버섯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맨 처음 떠오른 전제였다. 농업의 근거로서의 흙의 의미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황토가 갖는 단순한 흙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들….

ㆍ 생기력 : 우리 몸의 기(氣)의 흐름을 원할하게
ㆍ 습도조절 : 습도가 높으면 습기흡수, 낮으면 습기발산
ㆍ 온도조절 : 바깥의 더운 열기를 막아주고 반대로 추울 때는 온기를 내어준다
ㆍ 통풍 : 황토 1g에는 약 2억 마리의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이 산다. 생물이 숨을 쉬듯 황토도 생물처럼 숨을 쉬어 공기를 순환시킨다.
ㆍ 흡수력 : 탈취, 탈지의 성질
ㆍ 항균력 : 곰팡이 및 인체유해균 서식방지
ㆍ 건강성 : 원적외선을 방출하여 혈액순환촉진, 스트레스해소, 피로회복에 좋다.

바다생태계에 이상기온과 환경오염으로 적조현상이 나타나면 누런 황토를 바다에 뿌려서 문제를 해결한다. 온돌, 기와, 벽체, 옹기….
우리민족의 일상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때론 그 가치를 잊어먹고 지내는게 우리 황토다.

국내에서도 황토의 효용성에 대한 연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아주 다양한 상품으로 응용되어왔다. 농산물 유통에 종사하면서 만난 인연도 돌이켜보니 부지기수였다. 서산 황토 육쪽마늘, 무안 황토양파와 고구마, 황토먹인 한우, 황토를 걸러 받은 물 지장수…. 전통가옥의 건축재료, 보온 및 보냉, 원적외선 이야기 등 가만가만 둘러보니 황토는 우리의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요 의미였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토매리에서 난 또 하나의 황토이야기를 만났다. 황토에서는 버섯재배가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황토재배를 성공시킨 황토상황버섯농장 류병창씨가 그 주인공이다.

토매란 이름은 이 지역의 언덕이 좋고 흙의 질이 좋아 토구라 불리웠고 음력 2월인데도 매화가 피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둘을 합하여 토매가 된 것이다. 토매리는 '갓 시집온 며느리신발에 묻은 흙(황토)이 3년은 되어야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누런 황토 흙이 많다. 그 고유함에서 나온 특산물로는 '의성 황토 쌀', '의성 황토마늘'이 유명하다. 거기에 황토상황버섯을 한가지 더해야 할 듯하다.

상황버섯재배, 면역을 재배하는 것

버섯류는 오래 전부터 민간 전통한약으로 전래되어오며 각종 질병에 대한 민간치료제로 자주 이용되어왔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 버섯류가 생산하는 기능성 생리활성 물질은 부작용이 적어 독성면에서 매우 안전한 반면 인체 면역계의 기능을 강화시켜 탁월한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왔다.

상황버섯의 우리말은 목질진흙버섯이다.

상황버섯 이야기를 만드는데 보름 이상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수십 번 망설이고 고민했다. 일반 과일이나 채소 혹은 곡물처럼 우리네 일상에서 친근하고 소용(所用)이 가까운 것들과는 달리 상황버섯이라는 실체는 엄중하다 싶었다. 느타리나 표고, 팽이버섯처럼 일상식품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약용, 혹은 항암, 또는 면역체계의 강화 같은 약리학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성(藥性)물질로 들여다 보기에는 내가 전문성이 떨어지므로 함부로 처신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성 현지 농장을 두번 방문하여 자세히 버섯의 일생을 공부하고 살피게 되고, 그 식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이 또한 우리농업의 중요한 범주로 다루어야지 싶었다. 오롯이 진정성을 담아 농사짓는 늙은 농부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그 Key는 '면역'이었다.
▲ 상황버섯 종균이 심겨져 있는 참나무 원목을 의성의 좋은 황토를 바닥에 깔고 심는다. 아래 우측은 6월 중순경의 농장내부모습

▲ 8월의 상황버섯농장의 모습이다. 같은 게 하나 없이 제 각각의 고유함을 극성으로 내밀고 있다. 이것들이 다 면역을 강화시켜주는 주인공들이다. 사람도 같은 얼굴이 수십억명중에 하나 없듯이 상황버섯들도 마찬가지다.

▲잘 된 버섯농사를 기뻐하는 류병창

상황버섯농사의 애로점은 병충해 방제에 있다. 모든 농산물에 장해요소가 있듯, 상황버섯 어린버섯의 밑부분 보드라운 곳에 번식하는 벌레가 있는데 이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살펴서 제거해내야 한다. 농약에 중독되어 고생해본 아픔이 있는 류병창씨는 그 일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해낸다. 더군다나 무농약인증을 받은 상태이므로 더더욱 사회와의 약속은 엄중해지기 마련이다.

두번째로는 판로의 문제인데 시장에서 그간 온갖 장난을 친 사람들이 많아서 늘 진짜 가짜 논쟁이 벌어지고 수입원산지를 속이는 경우도 빈번했다. 해서 상황버섯의 면역강화와 관련한 이야기와 탁월한 효능, 그리고 그 물성이 갖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 논쟁에 휘말리면서 시장이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 진품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법이다. 어느 소비자들은 농장으로 직접 와서 흙도 담아가고 원목나무에 달린 그대로 가져가기도 한다. 품질의 안정성과 농부의 마음을 보고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다.

면역(immunity, 免疫)은 우리 몸을 지키는 군대
▲ 황토상황버섯 진품

옛날 전염병(역병)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이던 시절, 전염병에 의해 부모형제 다 잃어버리고 동네 사람들마져 다 죽어버렸지만 용케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늘이 도운 것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면역체계가 가져온 생명방어 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면역은 주로 외부침입자에 대한 인체의 방어체계를 말한다. 외부인자(외부침입자)는 항원(抗原:antigen)이라 하며 병원미생물 또는 그 생성물, 음식물, 화학물질, 약, 꽃가루 등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인간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여러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통해서 얻은 에너지를 여러 초식동물들이 에너지로 사용하고, 육식동물은 그 초식동물을 먹이로 생존해간다. 이처럼 하늘과 땅 바다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생명짓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생태계가 있는가 하면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생태계가 있다. 바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사는 미생물의 세계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펄펄 끓는 활화산의 용암주변에도 존재하고, 남북극의 얼음지대에도 산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피부, 기관지, 장(腸)속 심지어는 입안에서도 미생물은 우리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들이 피부나 점막의 바깥쪽에 살면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데 얘네들이 1차 방어선을 뚫고 체내로 들어오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몸은 비상경보를 울리고 면역체계가 발동되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게 된다. 이때 동원하게 되는 군대가 바로 면역세포들이다. 마크로파지(macrophage), 보체, T임파구 세포, B임파구 세포, 자연살해(NK, natural killer)세포등이 5분대기조, 기동 타격대가 되는 셈이다.

또 면역(인체방위군)은 자기감시기능도 철저히 한다. 이동, 매복, 순찰기능을 한다. 면역세포들은 혈액을 타고 조직을 지나 림프액을 돌아다니다가 고장 난 세포나 감염된 세포를 찾아낸다. 사람의 몸은 고정된게 아니고 죽는 날까지 계속 세포분열을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세포도 실수를 할 때가 있고 DNA 복제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로 누구나 하루에 몇 개씩의 암세포는 생겨난다.

또는 다른 요인(환경호르몬, 활성산소)으로 인해 정상DNA가 공격을 받아 암세포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럴 때 인체방위군은 이 고장 난 암세포들을 찾아내어 파괴한다. 그 고장 난 것들이 '암(癌)'이라는 질병을 이룰 만큼 자라지 못하고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면역세포(기동타격대)의 능력인 것이다.

이처럼 면역은 우리 몸을 24시간 지키는 인체방위군 상황실, 기동타격대, 이동순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혹 침투가 되었다 하더라도 즉시 거기에 합당한 방위군을 파견하여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면역(免疫)을 마신다_황토상황버섯
▲ 황토상황버섯을 스테인레스 주전자로 달인다. 표고버섯, 대추를 가미하여 처음 센불로 하고 팔팔 끓인 다음 약한 불로 낮추어 물의 양이 반으로 줄어들도록 달인다. 세 번 울궈낸 후 까맣게 탈색이 된 상황버섯.

매주 한번씩 집 마당에서 한바탕 벌이는 작업이 있다. 황토상황버섯을 20g잘게 편으로 잘라 마른 표고버섯 2~3개와 대추를 넣고 우려내는 일을 한다. 1주일 우리집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내가 자궁경부암으로 투병중이기도 하고, 식구들의 건강을 위하여 일상음료도 대용하고 있다.

치료목적이라기보다 범용으로 우리가족 일상의 패턴을 바꿔보고 상황버섯과 표고버섯의 물성을 고스란히 맛보고 식구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밥을 할 때에도 맨 마지막 밥물로 쓰기도 한다.

면역을 마시는 거다.

예전에는 약과 음식의 경계가 없이 식약동원(食藥同源)으로 보았다. 즉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고 본 것이다. 1431년(세종1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에서는 임파선 질환과 유방암 계통에 효능이 있다 했고 1610년(광해2년) 동의보감에서 명의 허준은 쌀과 함께 죽을 끓여 복용하면 각종 종양에 좋다고 하였다.

동양의학 대사전에서는 복통과 오장을 비롯 위장에 좋다 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본초학자(本草學者) 김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서는 남자의 오장에 좋다 하였고 양기에 좋다고 기록했다. 현대의 의학에서도 항암과 면역활성화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면 상황버섯은 우리인체의 어떤 특정부위에 작용하는 기전이 아니고 인체 방위사령부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하겠다.

늙은 농사꾼의 작은 소망
▲ 부부금술이 좋게 백년해로중인 류병창내외 모습이다. 부부는 아주 정확하게 닮아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웃는 모습, 선한 인상, 부드러운 표정이 닮았다.

대대로 의성에 살아온 류병창씨는 7남매를 두었다. 아들 다섯에 딸 둘.

농촌에서 애들 여럿을 키우려면 소득을 올려야 했다. 당시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농사규모를 늘리다보니 50마지기이상 벼농사를 지었다. 1970~80년대에는 통일벼를 재배하면서 하루 종일 병충해 방제하느라 농약구덩이에서 살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고독성 농약을 썼다.

차츰차츰 음식을 먹으면 속이 매스껍고, 구토도 나고 시름시름 몸에 힘도 빠지고 느낌이 이상했다. 급기야는 '농약중독'이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한참 이농현상이 심하고 식량증산으로 농산물값을 저렴하게 유지해야 했던 정부의 정책이 불을 붙기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다. 대다수 우리의 농민들은 그렇게 농약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다.

더군다나 젊은 일꾼들이 다 도시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저히 큰 규모의 벼농사는 불가능해지기 시작했고 모종의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시점이 그에게 다가왔다.

40년 동안 벼농사만 짓던 그는 경북농업기술원에서 6년간 연구하여 2001년 개발한 '천년상황버섯'을 기술이전 받아 황토가 많은 토매리의 지역특성을 살려 황토상황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무농약인증을 받고 황토의 고유한 기운이 상황버섯종균을 품어서 길러내도록 모든 열정을 기울였다.

"인생의 모든 출발은 마음(心)에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하여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거라 그러면 끝까지 교육을 시켜주마" 라고 선언했고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잘 자라나 7남매 모두 가고 싶은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고 교사가 둘이 나왔고, 공무원이 셋이고 각자 자기 할 일 맡아서 잘살고 있다.

류병창씨 내외에게서 70년~90년대를 관통한 농촌에 근거했던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았다. 자신은 죽도록 고생할지라도 아이들은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서 세상에 내보내고 말겠다는 강한 교육열에 불타는 아버지들의 모습 말이다.

류병창씨의 농사스타일
▲ 논농사와 밭농사도 일부 같이하는데 열, 간격, 크기등이 질서정연하기 그지없다. 밭이나 논을 보면 대게 그 밭 농부의 성향이 보인다.

필자의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목수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논이며 밭이며 장소 구분 없고, 파종이며 모종이며 절기 구분 없이 나무에 먹줄 튕기듯이 바둑판처럼 칼같이 농사를 관리했다. 우리는 늘 아버님다운 모습이라며 웃곤 했다.

마찬가지다. 류병창씨도 농사 관리하는 모습과 상품주문시 배송포장하고 그 위에 부착물을 붙여 보낸 손맛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정성스럽게 매만진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마디로 각이 잡히는 일맵씨를 보여준다. 버섯농사도 그런 기준으로 빈틈없이 농사를 짓는다.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이 어디로 가겠는가? 고스란히 작물로 가고 그 에너지는 다시 소비자들에게로 갈 것이다. 황토상황버섯농장에서는 그린음악이 잔잔하게 음율(音律)을 탄다. 살아있는 것들을 위한 류병창씨의 서비스인 셈이다. 버섯들은 어릴 때부터 농부의 그 마음을 받아 들고 기꺼운 마음으로 제 성질 마음껏 채우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출발은
마음(心)에 있는 것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아라

농사짓는 그 마음 어디로 가겠는가?
고스란히 상황버섯에게 가고
그 에너지는 다시 먹는 사람에게로 간다

그린음악 들려주며
대화하는 농사꾼

살아있는 것들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

늙은 농사꾼의 작은 소망
'가족건강 지킴이'

버섯들은 어릴 때부터
그 농부의 마음을 받아 든다

기꺼운 자세로 제 성질 마음껏 채워가며
야물게 자라난다

감 중의 감 - 청도 이준수 반건시

 유년시절 소풍 갔을 때 제일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보물찾기'이다. 이를 앙다물고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쪽지)'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발견해서 기쁘기도 했고, 끝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안 잡혀서 서러웠던 기억, 지금 생각해도 즐겁다. 입에 침이 돌 듯 머릿속에 추억이 돈다.

'보물섬'이란 잡지도 있었고, 즐겨 읽은 소설들중에 보물섬, 보물지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물의 느낌이 자꾸 축소되어가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속에 가득 널려 있었던 보물, 내 마음속 전부를 다 채우고 있던 보물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꾸 물질적이고 계량적으로 되어버렸다. 나라의 유형문화재중의 하나로 '보물'이란 개념을 배우고 나서는 낭만적이고 꿈결 같았던 컨셉이 고정화 되어버려 아주 작아져 버린 것이다.

어릴 때는 '가치(價値)' 였다가 점점 더 '물건(物件)' 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物件)'으로 보기도 하고 '아주 귀중히 여기는, 가치 있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나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시공간을 아우르고,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귀중한 가치'를 보물이라고 이야기 하는게 맞다.

감, 감꽃
▲ 납작한 청도반시

▲ 암꽃(좌)은 감 열매를 품고, 수꽃(우)은 땡땡땡 종모양으로 생겼다.

감꽃이 필때쯤이면 뻐국새도 와서 울기 시작하고 촌에서는 모질고 모진 보릿고개가 막바지에 이른다. 배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조금만 기달리거라! 감꽃이 피었으니 열밤만 자고나면 햇보리를 먹을 수 있단다." 손짓몸짓 건네며 녀석들의 성화를 달래야했다.

감자밭에 노고지리가 알을 낳고 재수 좋은 놈은 못자리에 넣을 갈풀 베러 산에 갔다가 꿩알도 열두개씩 주워오기도 했다. 감꽃이 피는 것은 힘든 보릿고개가 끝난다는 신호였고 가난한 농촌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감꽃 이었다.
그렇게 감 꽃은 슬프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한 채 우리 곁으로 해마다 다가섰다.
추억을 머금고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채 우리에게 오곤했다.

아프지만 살가운 기억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에게는 슬프고 가슴 저미는 '아픔의 꽃'이었지만 소위 386세대라 일컫는 필자 세대(50세 전후)에게는 배고프기는 했지만 아련한 '추억의 꽃'으로 남는다. 배고파 초근목피 모진 고생은 어른들이 했고 아이들이었던 나는 나름대로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2년전 필자는 한국농업대학 영농조합법인 사장으로 일했다. 그 무렵 청도반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졸업생 스토리를 기획하고 청도반시 이야기를 UCC로 녹여내는 과정에서 청도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싸움'과 '씨 없는 감' 청도반시의 내력을 공부하면서 "아! 그랬구나!" 하는 새삼스런 느낌으로 청도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2010년, 다시 청도감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생겨서 청도감 영농조합법인(대표 이준수)을 만났다.

청도소싸움

▲ 청도 소싸움

소싸움에서 인생을 배운다. 한물갔다고 평가되는 싸움소들이 당당히 재기해 상을 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꼭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인생에도 많은 굴곡이 있을 수 있지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싸움소들에게서 찾아낸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많은 이웃들이 있겠지만 우직한 소처럼 다들 꿋꿋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소싸움은 이 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또는 씨족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어왔다.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면서 소싸움으로 발전했다.
▲ 수원시 입북동 영인목장에서 키우는 싸움소 두마리

가까이서 만난 싸움소의 위세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그들의 풍채 앞에서 은근히 위축이 되었다. 일체의 간사함과 졸렬함을 거부하는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이 친구들은 장소를 이동하기 위하여 차를 대면 기꺼이 올라탄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한우들은 차를 들이대면 머뭇거리고 꺼린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온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한우가 이동하는 경우는 도축장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동창천 다리 너머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청도의 감나무밭은 동창천을 따라 양 옆으로 시작이 되서 동창천에서 끝난다.
동창천을 '비단내' 한자어로 금천(錦川) 이라고 한다. 금천이란 이름처럼 동창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은데다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운문댐이 생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 청도감영농조합법인 이준수대표(40)

오늘도 아이는 식전 댓바람부터 분주 합니다.

아침 일찍 산으로 일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가기 위해서 입니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게에다 거름을 잔뜩 지고 손자의 고사리 손을 잡고 감 밭으로 향합니다. 얼마 전에 심어 놓은 감나무에다 거름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이 산길을 다닙니다.

청도반시는 씨가 없는데 어릴 때부터 씨 있는 감을 보지 못했기에 감에는 원래 씨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건실한 청년이 되었고 내 고향 씨 없는 청도반시가 '보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청도반시로 감말랭이 곶감 사업을 생각하며 귀농이라는 꿈을 안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농촌생활을 시작합니다.

청년은 귀농을 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귀농사업을 준비했습니다.
대형할인점 직거래를 하면서 경영과 유통물류를 배우고 소비자도 공부했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시행하는 귀농인 교육을 수료하고 친환경농산물, 추적이력관리 인증을 받고 홈페이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유통관리사, 농산물품질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대부분 농민들의 생각은 생산은 얼마든지 하는데 판매하기가 어렵다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좋은 품질의 감말랭이를 저렴하게 많이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맛있는 감말랭이를 경쟁력 있게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판매는 제품 자체가 한다고 자신합니다.

[이준수대표의 회고]

청도감영농조합법인 대표 이준수씨는 고향이 청도 매전면이다. 중학교까지 나오고 고등학교는 경산에서 다녔다. 대학에서는 전산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회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다가 사돈의 요청으로 이마트 울릉도 오징어 납품회사를 맡아 경리부터 경영까지 8년간을 일했다. 자금의 흐름, 거래처관리, 매장관리, 세무회계관리, 직원관리방법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2005년도였던 그 무렵, 고민에 빠졌다.

사돈은 온천지가 오징어인 울릉도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사업을 하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삶이란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것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래! 나도 사방천지 감으로 둘러싸인 고향 청도로 내려가 감 사업을 하자"

어렸을 때는 감을 돈이라고 안 봤다. 친구들하고 감도 집어 던지며 놀았고 발에 채이는게 감이었다. 하지만 약 2만평의 감나무 밭이 있고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역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매전면에 감말랭이 지원사업으로 자금이 내려왔고 아버지가 신활력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사돈어른 회사일을 하면서 인연 맺은 거래처에 감말랭이와 반건시 납품을 시작했다. 전산실 근무덕에 홈페이지도 직접 제작해서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사업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청도감

우리나라에는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선물 '감'들이 다양하다. 상주둥시, 청도반시, 의성사곡시, 산청단성시, 구례장둥이, 영동월하시, 도근조생, 함안대봉시, 경산반시, 평핵무……. 하나하나 독특한 특성으로 우리들의 입맛과 함께 해왔다.
▲ 청도반시는 넓적한 쟁반같이 생겼다 해서 반시(盤枾)라 하며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중 '감중의 감' 청도반시는 종자 자체가 씨가 없는게 아니고 청도가 해발 고도가 높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싼 분지형 지형이라 타 지역의 감나무 수꽃가루가 자연 유입되기 어렵고, 안개가 자주 끼는 지형적 특성으로 한참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벌의 수분 활동이 제약되는 등의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청도감나무도 다른 지방으로 시집가면 씨가 들어선다.

암수가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 간절하지만 육질이 연하고 당도가 높은 특성(18브릭스)이 있으며 씨가 없어 먹기에 편하고 가공에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청도감은 9월말경부터 완숙되기 전에 따기 시작하고 수확과 동시에 가공작업에 들어간다. 가공작업은 설날이전까지 지속된다.

원료감(수확 당시에는 딱딱하다) 연화 작업을 하루 정도 하고 껍질을 벗겨 숙성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건조실에서 수분을 빼고 냉동 보관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6~7일이 소요된다.
▲ 감말랭이(우), 청도반건시(좌)

▲ 원료감(껍질 깐감)과 반건시(우측), 감말랭이는 1/4~1/5크기로 줄어들고 반건시는 1/3로 줄어든다.

이 과정을 거치면 감의 수분이 날라가고 고유한 단맛, 그 정수만 남게 된다.
보기만해도 침이 넘어간다. 참 달고 맛 난다. 자연이 품은 단맛은 단순한 설탕 맛 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감이 내어준 단맛에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담겨 있으니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과일'임이 분명하다.

고유하다는 것

고유하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고 결과다

자연과
끊임없이 다투고 순응하면서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어느 시점, 어느 순간 최적의 상태이다

문화와
역사로 봐도 그렇고

사람과
문명으로 봐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고유한 것은
그 나름의 분명한 자기원인과 결과를 지니게 마련이다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반시 & 청도사람들

하나같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청도 여행을 하면서 단순하게 청도 감을 반건시나 감말랭이를 중심으로 한철의 특산품 컨셉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6월 내 눈앞에 보여진 청도의 감나무,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사람들 그리고 청도를 움켜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보려고 노력했다. 청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함부로 예단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되겠지 싶었다.

청도 매전면 예전리를 이루는 것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감나무농장과 홍시를 맛나게 드시는 어른들

조상들로부터 이어 내려온 내력이 가득했고 땅은 환경친화적인 재배방식으로 유기물질의 다양성이 존재했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가 홍시를 맛나게 들고 계신다. 이준수대표가 어린 갓난아기때부터 함께 해온 마을 어르신….

홍시는 이가 불편하신 어른들께는 아주 훌륭한 간식이고 영양식이었다. 쪼글쪼글 이 없는 볼살, 오물오물 마치 아이처럼 좋아라 하시며 평생 몸에 익은 홍시 맛을 즐기시던 할머니도 생각나고…. 어머님께 이번 가을에 제대로 된 홍시를 보내드려야겠다.
▲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오래된 지게와 가득 담긴 청도감, 전통과 문화와 살아가는 방식이 아직 남아있는 고향이다.

▲ 보리밭전경과 살구가 한창이다. 살구 맛은 폐부 깊숙히 스며있는 맛이다. 난 톡하고 깔끔하게 과육과 분리되는 살구씨가 너무 기특하고 좋다.

▲ 동창천에 고디(다슬기)가 많이 산다. 자연하천의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연륜이 깊은 감나무가 수두룩하다.

다정다감 기분 좋게 만드는 먹을거리
▲ 출장 길, 주인장으로부터 받아 든 기억나는 감

왼쪽은 전남진도 김종북 농장에서 무화과와 같이 나온 감이고 오른쪽은 무주구천동 복분자 농장에서 받은 정감어린 홍시다. 맛도 맛이고 감이 갖는 선연한 이미지가 안먹어도 마음 가득 훈훈해진다. 감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고 조금은 서먹했을 관계도 단박에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이기도 했다. 주고받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청도반건시

감나무의 속명'Diospyros'는 '먹거리의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감나무를 일곱가지의 덕이 있는 나무 '칠덕수(七德樹)'라 부른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녹음이 짙으며
셋째 단풍이 아름다우며
넷째 열매가 맛있으며
다섯째 잎은 훌륭한 거름이 되고
여섯째 날짐승이 둥지를 틀지 않으며
일곱째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감을 선물하고 먹는다는 것은 7가지의 의미를 먹는 것이고 축복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청도의 고유한 먹거리 청도반시, 청도의 보물 청도반시.

보물섬 청도를 찾아 떠난 귀향청년 이준수를 만나는 여정은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사람끼리 정(情)을 버무린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난 여름 그 혹독했던 더위와 멈출 줄 모르던 빗줄기도 어느새 과거로 흘러 들고 말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우울한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 곁을 서성거린다.

한 통에 15,000원을 넘나들며 세상을 비웃던 배추가 이제 김장철이 다가오니 이번에는 폭락으로 갈아 엎어야 할지 모른다는 아주 비감하지만 웃기는(?) 소식이 전해진다. 호남과 영남지방의 작황이 좋아 월동배추가 15%이상 공급이 늘어날 전망인데다가 지난 배추 파동때 가격을 안정시킨답시고 중국에서 금년 말까지 무관세로 들여오는 길을 터놓은 일이 엎친데 덮친격이다.

우리나라의 농업 여건상 한 품목의 예상 밖의 변동상황은 금방 다른 품목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켜 농수산물의 수급을 혼란에 빠트리게 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이번 배추파동처럼 고스란히 농민이나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땀 흘려 열심히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들만 고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안이한 발상에서 한발자국도 못 넘어가는 정치권이고 정책담당자들이다.

최근 뉴스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중국에서 무차별로 들어온 배추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단다. 수입가보다 싼값에 처분하려고 한단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 노릇을 어이할꼬!
▲ 속노랑배추, 김장배추 고갱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영원한 로망, 그 이상으로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 노란 고갱이에 양념소를 넣어 동그랗게 말아 입안 가득 문채 느끼는 첫맛은 '김장하는 날'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아주 고유한 자산이다. ⓒ안병권

그들의 눈에 비치는 농업농촌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저 부족하거나 값이 뛰면 외부에서 들여오면 끝나는 것인가? 넘쳐서 폭락하면 갈아 엎으면 되고?

먹을게 없으면 자동차 팔아서 사먹자고 하는데 그건 아주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외국에서 안 주겠다면 어이 할 것인가? 기후 이상으로 농산물 수출국 농업이 망가지면 어이하는가? 그때는 자동차 수백만대 가지고 있어도 안되는 일이다. 또 자동차는 그냥 만들어 지는가?

최근 몇년 사이 러시아를 비롯한 곡물수출국들의 기상악화로 수입곡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더 무서운것은 그 어디에서도 긍정적인 예측을 찾아볼수 없다는것이다.

그전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생배추까지 중국산으로 해야 하나?는 물음으로 머뭇거리던 소비자들에게 이제는 자주 가락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친숙한 존재로 눈에 띄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심리적인 저항선이 무너지면 더 큰일이다.

그렇게 잡곡이며 다른 농작물처럼 온통 중국산, 미국산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의 노예가 되어도 서서히 망각의 늪으로 우리농산물은 사라져 가는 것이다.

식량자급율 26%밖에 안되는 나라,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도 채 안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허둥지둥 채소놀음이다. 왜 우리는 원하지 않는 끼니걱정을 매번 이렇게 부여안고 살아야 하는가?

끼니

얼마전 70일만에 지하 700m갱도에 묻혀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33인의 칠레광부들 이야기가 모처럼 지구촌을 훈훈하게 달구었다. 내가 유심히 살핀것 중의 하나는 그 안에 녹아있는 상황중 가장 중요한 내용 '끼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였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와 외부와 차단된 절망속에서 하루 참치 한두스푼으로 기본적인 끼니를 유지하며 인간적인 존엄을 지켜냈고 살아냈다. 그들에게 지나간 수천 수만의 멋들어진 끼니보다 삼시세끼 다가서는 한 끼니 한 끼니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을까?

너무나 먹을게 풍족해 보이는 우리나라의 현실, 마트에 가도 시장에 가도 온갖 패스트푸드가 넘친다. 식당에 가도 먹을게 천지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오히려 넘치는 영양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하지만 배추 파동에서 보듯, 이상기후로 인한 전 지구의 농작물 흉작의 조짐이 조금만 보여도 자급율 26%라는 이 천인공노할 상황은 순식간에 우리들의 삶을 옥죄기 시작할 것이다.

"건건이가 별게 없네"

지금도 서울 어머님댁에 가면 다 늙어가는 자식 먹이려고 이것저것 준비하셔서 밥상을 내오신다. 그때마다 입에 붙는 말씀이 있다.

"건건이가 별게 없네"
내가 볼 때는 꽤 근사한 밥상인데도 말이다.

그 말을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부터 들었으니 족히 40년은 된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스토리가 있는 '언어유산'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에는 단순히 반찬의 다른 순 우리말이라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변변치 않은 반찬. 또는 간략한 반찬을 지칭하거나, 음식이 싱겁지 않도록 짠맛을 내는 간장이나 양념장같이 짭짜름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여튼 우리 집은 그런 건건이 마저 신통치 않았으니 참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런 우리집 건건이에도 볕들 날이 있었으니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이 되서 맛보게 되는 김장김치 덕분이다. 항아리 가득가득 차게 되는 시점부터 한겨울을 넘어 중간 봄까지의 기간이다. 때로는 초여름까지 가기도 했다.

땅속에 묻은 항아리에서 꺼내 드는 김장김치의 맛은 우선 뚜껑을 여는 순간 살얼음이 살짝 낀 냄새에 회가 동했다. 생김치로 먹어서 입안에 생기가 돌고, 어쩌다 아버님이 끊어오신 돼지고기 한덩어리에 푸짐하게 잘 익은 김치를 넣고 익힌 찌개가 있는 날이면 우리식구들은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아버지도 고단한 몸을 그 김치찌개 안주 삼아 소주한잔 하시면서 너플너플 풀어내던 모습이 기억난다.
▲ 한여름까지 있었던 장모님 묵은지로 푹 고아낸 돼지고기찜이다. 밥 반찬뿐만 아니라 술안주로서 이만한 친구 없다.감칠 맛이 돌고 물리지 않는 맛으로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돼지고기, 묵은김치, 소주한병' 최고의 삼합(三合)이다. ⓒ안병권

그 영향일까?

나도 집에 김치 묵은지가 있거나 처갓집에서 얻어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돼지고기 통으로 덩어리째 넣고 판을 벌인다. 그 맛은 어머니 아버지가 남겨준 '또 하나의 유산'임이 분명하다.

김장

김치는 밥과 함께 삼시 세끼를 먹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음식으로 저장성이 뛰어나며. 비타민A, C가 많이 들어있다. 또 정장작용(整腸作用)을 하여 비위를 가라 앉혀주는 역할을 하는 채소 염장식품으로 우리의 '혼(魂)'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예로부터 '겨울의 반양식(半糧食)'으로 먹거리의 '총량적 의미'로서의 중요성이 있지만 나는 가족 구성원간, 혹은 이웃간 속정을 버무리는 이벤트로서의 '제의(祭儀)적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문신 이규보의 시문집)에 '무를 소금에 절여 한겨울에 대비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 다른 기록에 보면 채소가공품을 저장하는 '요물고(料物庫)'가 있었다고 하니 고려시대에 이미 채소 저장생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동국세시기(조선 순조 홍석모 지음)에서 봄의 '장담그기'와 겨울의 '김장담그기'는 가정의 중요한 1년 계획이라고 기록했다. 그 전에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농가월령가에 구체적으로 김장 담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농가월령가 10월령도 ⓒ안병권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김치,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서 깊이 묻고......

[농가월령가중 10월령 일부]

속대쌈

지금이야 핵가족화하고 주거의 형태로 아파트가 많아져 살림살이의 내용이 많이 변해 한 가정에서 담그는 배추의 량을 포기단위로 10포기네 20포기네 이야기하지만 한 세대전만 해도 한 접(100포기)은 기본이고 두세접을 넘기기는 일도 아니었다. 대가족이 겨우내 먹어야 하므로 가급적 형편 닿는대로 많이 담갔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4식구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이 오기 전 연탄 300~400장, 쌀과 보리 등 양식거리 들이고 김장을 1~2접 정도 담갔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해 아버지 하시는 일도 잘 풀리고 어머니 행상도 잘되서 일찌감치 겨울장만 하던 기억이 난다. 연탄, 쌀, 김장김치 이 세가지만 들여놓고 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걱정거리가 없었다.

한 집안의 김장을 위하여 배추를 씻고, 무를 채 썰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만으로도 족히 2~3일 걸렸으므로 이웃과 서로 도와가며 김장을 하는 풍습이 다반사였다. 이때 김장을 담그는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두서너근 끊어다가 푹 삶아놓고 배추의 속대(노란속잎)와 양념을 준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먹도록 하였다.

막걸리 한사발에 시뻘겋게 버무려진 갖은 양념을 적당히 절여진 노란 배추고갱이에 싸서 한입 넣으면 양볼태기가 볼룩하니 씹기도 힘들었지만 그 맛이야 당할 자가 없었다. 그렇게 오지게 맛나게 먹었던 쌈을 '속대쌈'이라 불렀다.

김장 담그는 날, 어머니는 오징어국을 많이 끓이셨다. 매칼한 오징어국은 김장김치, 겉절이, 돼지보쌈, 막걸리에 흰쌀밥, 그 뒷맛을 개운하게 마무리해주곤 했다. 조무래기 우리들은 어른들 곁에서 싱글벙글 막걸리 받아오고, 양념거리 전해드리고 잔심부름하며 하루 해를 보냈다.

김장 담그기가 끝나고 나면 절인 배추나 남은 소(속)를 나누어 주고 겉절이를 나누기도 한다. 가난한 집 아낙들은 남의 집 김장을 도와주고 얻은 배추와 양념으로 김장을 하기도 하였다. 일종의 '김장서리'인 셈이다.

건건이서리

이규태 선생은 저서 <한국인의 힘>에서 어려울 때 나눠먹는 '건건이서리' 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나물철은 보릿고개와 겹친다. 산촌에서 가장 넘기기 힘든 고된 춘궁기였다. 이때즘 되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양식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식도 떨어진다. 이 건건이가 떨어지면 아낙네들은 산채를 뜯어 한 광주리씩 이고 그들의 생활권에 속하는 같은 마을, 이웃마을, 읍내의 좀 잘사는 집으로 떼지어 가는데, 이를 건건이 서리라고 한다. 한 마을에서 건건이 서리를 떠나게 되면 대개 10~20여명에 이르는 대부대가 되는데 이들은 산채광주리를 이고 줄지어 문안에 들이닥친다.

마님이 이 서리 아낙들을 보면 하인으로 하여금 뒤란에 덕석을 펴놓으라고 시킨다. 아낙들은 줄지어 뒤란으로 들어가 펴놓은 덕석에 산나물 광주리를 엎는다. 그러면 산채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원했던 산채는 아니지만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부녀자의 덕행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은 주인마님의 허락도 없이 장독대에 가서 된장독을 열고 마련해간 바가지나 호박잎에다 응분의 된장, 곧 건건이를 퍼 담는다.

그것은 관행이었기에 더도 덜도 퍼 담는 법이 없고 또 그것을 감시하는 법도 없다. 이렇게 퍼 담고 나면 주인마님은 이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먹여 보냈다. 이 과정이 일체 무언속에 진행되는 것이다.

건건이 서리는 수요자의 일방적인 강제상행위란 경제적 개념으로 파악된다. 물물교환은 두 교환자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지만 '건건이서리'는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형성되는 어쩌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상행위가 아닌가 싶다.

김장서리

살기가 팍팍했던 시절 그나마 살만한 집에서는 눈대중으로 자기가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은 배추를 준비하고, 양념소를 마련한다.

"이웃집 개똥이네가 올해 살림이 어렵고, 점순이네는 아버지가 편찮으니 살림이 여간 노릇이 아닐께야" 슬며시 김장 품앗이 해달라 말을 전하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 부지런히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로 양념에 인정(人情)을 버무려서 맛있는 김장을 마친다.

"어머! 절인 배추가 30여포기 남았네. 우린 더 담을 데도 없으니 개똥이네하고 점순네가 반반 나눠다가 버무려라. 양념이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 남은게 있으니 여기 남은 파하고 고춧가루 담아다가 마져 마무리해 버려라!"

두 엄마의 손에 잘 담근 겉절이 한통 하고 절인 배추를 가득 담겨서 내보낸다. 그 마음은 '이웃으로부터 전해 받은 따뜻함'이었고, 한겨울 용기 잃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은근슬쩍 주고받는 김장이야기가 이웃집 담장을 넘어 가고 덤이 보태져서 풍성하게 이어졌다.

나는 그 일련의 행위를 '김장서리'라고 부른다. 요즘도 마을사람들이 모여 김장을 담가 불우이웃이나 동네 어르신들 한 겨울 김치를 마련해 드리기도 하는데 김장서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왕 내가 담그는거 조금 더해서 이웃집, 친척집, 어려운 이웃 나누어 먹는 가슴 뿌듯한 부조행위이다.

건건이서리 김장서리는 단순히 먹을 것을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서서 서로가 정을 담뿍 담아 내오고 내가던 마을사람간 마음으로 통하는 '몸짓', '마음 짓'이었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나누어야 하는지 선인들의 지혜로움이 느껴진다.

서로가 은근히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하고 주는 이나 받는 이나 한눈 찡긋거리고, 알고도 모르는 척, 마음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어깨한쪽 빼쪽거리면서 한바가지 두바가지 주고받던 호호깔깔이 눈에 선하다. 요즘 도시생활에서 어디 상상이나 가능할까. 참으로 그리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 나박김치, 총각김치, 묵은지 물에 빤 것. 얼갈이 겉절이. 우리 집에서 김장이외에 절기마다 즐기는 김치들이다. 고비고비 입맛을 돋우는 친근한 건건이다. ⓒ안병권

김치의 숙성_익는다(발효)

김치가 익는다고 하는 것은 원료성분의 삼투압작용과 미생물의 발효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이때 채소를 소금으로 절일 때의 소금물의 농도와 저장온도가 숙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김치의 맛과 향기는 주로 김치국물에 들어있는 향미성분의 삼투로 빚어지는데, 삼투작용을 빨리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거다. 소금과 부재료에 의한 용해성분이 많아 삼투압의 차이가 클수록 온도가 높을수록 김치가 빨리 익는다.

김치를 담그면 초기에는 여러가지 잡균이 많이 붙게 되고 점차 젖산균이 많아져 젖산발효가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생성된 젖산과 소금의 공동작용으로 채소의 방부효과가 커지고 저장성이 생기게 된다. 젖산발효 초기에는 약산성인 젖산구균이 번식하고, 그 뒤부터는 산을 많이 내는 젖산간균이, 마지막에는 젖산장 간균이 순차적으로 번식하여 젖산등 몸에 좋은 유기산을 많이 만들어 낸다. 결국 산이 많이 만들어 지게 되므로 맛이 시큼해 지는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치의 국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이 있었으면 '김치국물 미리 마시지 말라!'는 속담이 전해올까? 우리의 일상에서 김치국물 마시는 일은 시원할 뿐만 아니라 막힌 것을 뚫거나 답답할 때 개운한 맛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예전 연탄가스에 중독이다 싶으면 무조건 동치미국물을 먹이곤 했던 이유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게다.

속이 더부룩할 때 시원한 김치국물 한 사발 들이키면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니 한여름철 국수 삶아서 그냥 아무 양념 없이 김치국물에 말아서 먹는거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뒤에 먹는 김칫국물맛을 무엇에다 견주겠는가. 아! 그 시원함이란...

김장의 재료

▲ 배추 모종과 싱그럽게 익어가는 김장배추밭의 전경이 눈에 익숙하다. 김장용 배추는 이렇게 80여일간 충분히 자라나야 속이 꽉찬다. ⓒ안병권

▲ 잘 마른 고추가루와 천일염은 김장의 맛을 결정짓는 기준이다. 이 두 친구의 물성(物性)에 따라 한해 한 가정의 맛이 좌지우지되니 우리 엄마들은 김장의 이 기본요소들을 준비하는데도 온갖 정성을 다 들인 것이다. ⓒ안병권

▲ '일해백리(一害百利)'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늘이다. 한가지 냄새나는 것 빼고는 100가지가 이롭다는 데서 유래한것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고, 종양을 없애며 복통, 냉통, 급체를 다스린다고 기록했다. 또 마늘을 매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안병권

▲ 김장김치 양념소(좌), 밭에서 막뽑아낸 무(우)의 녹색빛깔이 감미롭다. 김장을 색으로 표현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인 오방색(五方色)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오간색(五間色)이 느껴진다. 땅과 하늘의 기운이 골고루 배어있고, 저마다의 성질을 지닌 물성이 색으로 극점에 다다른다. 그렇게 모여서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전에 없던 맛과 색들이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준다. ⓒ안병권

김장은 먹거리를 넘어서는 문화유산

연도 많고 이야기도 많고, 일년 내내 살아내느라 고단했던 울화통도 끄집어 내고, 이웃간 형제자매간 서운했던 감정도 털어낼 수 있는 만년 화수분이다.

거기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한여름까지 더 길게는 2~3년을 두고두고 묵은지로 보물처럼 쓸수 있는 겨울 김장을 그냥 '식구가 없다', '시간이 없다', '양념속 자신이 없다' 등등 갖가지 핑계로 포기하고 마켓에서 사다 먹거나 남에게서 얻어다 먹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가 담근 김장이 조금 맛이 덜하면 어떠랴!
내년에 더 잘 담그면 되고
내가 담근 김장이 조금 짜면 어떠랴!
내년에 소금간 더 잘 맞추면 되고, 기왕 담근 것은 빨아서 쓰고 찌개로 쓰고 국으로 쓴다.
내가 버무린 김장이 조금 싱거우면 어떠랴!
된장찌개에 넣고, 갖은 양념으로 간을 더하면 되고, 부침개 밑 재료로 쓰면 되지

내가 담근 김장이 너무 맛있으면 금상첨화지.
언니네 한 통 주고 이웃집 나눠 먹고

건건이가 궁할 시점, 맛있는 김장김치 선물 만한게 어디 있더냐 !

모처럼 나는 일등 요리사
모처럼 나는 멋쟁이 엄마가 된다


▲ 우리집에서 애용하는 주인공들이다. [김치만두, 두부김치, 김치찌개, 김치만두전골]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김장김치가 주인공이고 와이프가 연출하는 것들이다. 두번째 공통점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다. 잘 익은 김장김치의 푸른겉대(푸른이파리) 맛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안병권

'김장담그기'가 더 없이 좋은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우리가족의 건강에 그만이고 또 하나는 아이들의 인생에 살가운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또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인생사를 전해 들으며 조상들이 살아온 인생을 감칠맛 나게 받아 먹는 일이다.

온 식구가 직접 담근 김장김치는 겨우 내내 수십가지 이야기로 아이들의 영혼을 맑게 해줄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엄마와 할머니의 추억어린 먹을거리는 무용담(武勇談)이고, 열심히 사셨던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는 아이의 감수성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김치는 본성이 다른 것과 어울려야 제대로 자기 자리를 잡는다.

만들어 지는 과정도 이웃집, 옆집, 앞집 뒷집의 손이 보태져야 하고, 배추, 무우, 갓, 고추, 마늘,생강, 젓갈 등 저마다 한 성질하는 독특한 녀석들이 모여 세월과 버무려져 탄생한다.

거기다 소용(所用)의 측면도 그렇다.
김치 한가지만 먹기에는 안 어울린다. 간과 맛이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밥에 김치
라면에 김치
군고구마나 감자 곁에 김치, 말이 필요 없는 노릇이고

김치찌개
김치만두
묵은지찜
보쌈
김치국….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김치는 반드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해야 그 맛을 대접받는다.

또 김치는 요리가 되든, 원재료가 되든 각자의 성질을 뾰족하게 뿜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것들과의 조화속에서 자기성질을 버무리고 양보하면서 지켜낸다. '자신을 버림'으로서 지켜내는 모양새니 세상사는 원리중의 하나로도 손색이 없다.
▲ 주거환경의 변화로 생배추를 절이는 일이 쉽지 않아서 정성껏 키운 통배추 10포기를 2등분하여 천일염에 절여서 20kg 단위로 도시민들에게 공급하는 농가들이 많이 늘어났다. 배추 절이는 과정이 빠지면 김장일이 반으로 줄어든다. ⓒ안병권

모든게 핵가족화되고, 도시의 기능이 기술중심으로 간다고 해도 사람들은 안 먹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든지 우리땅에서 자급이 가능하고, 건강에도 좋고, 영양에도 좋은 건건이 김장을 하나의 생활문화운동으로 붐을 일으키자.

하여 단절되고, 소홀히 하고, 잃어버리고 살았던 우리들의 살림살이를 세계에 자랑할만한 '생활문화유산'으로 꽃피우는 것을 꿈꾼다.

올 겨울
집집마다
도시마다
농촌마다 '김장파티'를 열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건건이 서리 '김장서리'를 하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배의 참맛을 보는구나

맨손의 마법사 맥가이버를 아시나요?

1980년대 중반부터 방영된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

대부분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슈퍼맨이나 600만불의 사나이, 베트맨 등 초능력을 가진 상상의 존재들이었지만 맥가이버는 보통사람이었다. 하물며 그는 온갖 강력한 신흥무기로 무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폭력보다는 빨간 작은 군용 칼을 지닌 채 주변의 간단한 도구와 과학적인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으니 그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속의 맥가이버는 인간미와 재능이 조화를 이룬 존재였다고 할 수 있겠다.


▲ 리처드 딘 앤더슨은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상을 잘 소화했고 지금도 내게는 아련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해결사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사물에 대한 이해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물리적, 화학적 원리를 성찰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우였다. ⓒ안병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0년 여름, 경북 영천에서 현대판 맥가이버, 고경면 창하리 용수농원 안홍석 대표를 만났다. 세상을 들여다 보고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방법이 달랐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나는 푹 빠져들고 말았다.

▲ 용수농원 안홍석 대표(63) ⓒ안병권

"저 새끼 저거 완전 사기꾼!"

어느 해인가, 농업인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던 안홍석씨의 귀에 "저 새끼 저거 완전 사기꾼!"이란 말이 들렸다. 그날 어린 배나무를 1년에 4~5m 키운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반응이다. 수강생 자리에서 대놓고 나온 비아냥이었지만 속으로 받아들이고 웃고 말았다. 엄지손가락 정도의 두께밖에 안되는 어린 배나무를 1년 만에 5m이상 올라가게 키우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했고, 나무의 입장에서 보더라고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보통의 상식에서 배나무는 1년에 1m~2m정도 자라는게 맞는 일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30년 동안 더덕을 키워온 이웃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린 더덕에 긴 나무막대를 꽂아 지주로 삼아 더덕이 타고 올라가게 하니 키가 훨씬 커지고 수확량도 많아진다고 했다. 글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는 아주머니였지만 자연의 지혜에서 얻은 관찰의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흘려 들었지만 안홍석씨는 일리가 있겠다 싶어 배나무에다 적용하기 시작했다.
▲ 사진 한가운데 높이 솟은 나무가 1년 큰 나무다 ⓒ안병권

▲ 나무 밑둥 모습과 엄지손가락 굵기의 어린 배나무다. 이게 5m이상 한껏 커버린 것이다 ⓒ안병권

어린 배나무에 6m정도 되는 대나무를 세우 묶어 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실제 배나무가 5m이상 크는 것이었다. 지난 6월 농장을 방문한 나도 믿을 수 없어서 현장확인을 했다. 그랬더니 농장 한 켠에 정말로 그렇게 키가 커버린 1년생 나무가 있었다.

나무도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크기도 한다.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크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보호막이자 버팀목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곁에서 어떤 경우라도 보살펴주니 한껏 자라나는 것이다. 배나무도 마찬가지다. 버팀목이 함께하므로 물리적으로도 위로 더 커나가도 자신이 꺾여지지 않겠다라는 믿음도 들테고…

여하튼 배나무도 '생명 가득한 유기체'이니 만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대나무 지주에 의지하는 가운데 한껏 자라난 것이다. 시골 더덕아주머니의 삶의 지혜가 안대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다.

그 다음에는 영양생장(키 크는 과정)을 멈추게 하고 생식생장(열매 맺는 과정)이 관건이었다. 보통의 경우 배나무는 5m정도 크려면 5년 정도 걸리고 과실수확도 2년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용수농원은 1년생 나무에서도 수확을 한다.

스코링 농법

스코링이란 '스테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비계나 햄을 덮고 있는 비계층'을 말하거나 '파이껍질을 칼로 베어내는 것'이다. 나무의 주지(원가지)나 부주지에 3~5군데 혹은 그 이상을 적절한 깊이로 톱질해 자극을 주고 가지를 Y자 모양으로 유인하는 방법이다.

용수농원 현장은 배나무가 Y삼각형으로 가지 유인을 해서 무엇인가 정교하게 일들이 꼬매지고 있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보통의 배나무 밭에서는 보기 힘든 싱그런 터널을 지나는 비주얼이었고 컨셉이 묻어 나온다.
배나무마다 톱으로 상처를 낸 자국이 여러 개 보이길래 물었다.

"이 흔적들은 무엇인가?"
"아! 예 스코링작업을 한 것인데요, 우리농장 기술의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수확량과 맛을 좋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자손을 남기는 일을 유전적으로, 본원적으로 제1순위로 삼고 살아간다. 모든 경우에 후손을 남기려는 의지를 보이게 되는데 배나 사과 같은 과일나무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먹이기 위하여 과실을 맺는게 아니고 자기들의 후손을 남기기 위하여 치열한 생명활동을 통해 열매를 맺고 씨를 맺는 것이다. 다만 우리 인간이 자신의 소용에 맞게 그 과실을 가로채는 것이다.

▲ 빨간 네모칸 안에 보이는 자국이 톱으로 스코링 작업을 한 것 ⓒ안병권

▲ 나무의 가지에 톱으로 상처를 내면 배나무는 긴급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비상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안병권

즉 평상시 같으면 한가지에 한 두개 꽃눈을 틔울텐데 스코링이 진행되면 나무는 생체활성물질인 '사이토카이닌'을 적극적으로 분비하여 상처받은 가지로 보내 후손을 남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되고 "이크! 큰일이다" 싶어 몇 배 이상의 꽃눈을 틔우게 된다.

죽어가는 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빨리 익어가고 당도도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나무는 죽어가는 순간까지 후손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생물촉진제'는 글자 그대로 생명을 자극 시켜주는 일단의 구성성분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다. 이것은 또한 유익한 식물반응을 촉진시키는 일단의 성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중 식물호르몬은 줄기의 신장, 뿌리의 발근, 그리고 조직의 분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필수적인 세포와 조직의 기능을 조절하기 위하여 식물체내에서 합성된다. '사이토카이닌'은 세포분열, 형태형성(조직의 분화), 양분의 이동, 그리고 노화의 지연과 연관이 있는 호르몬이다.

이렇게 배나무 줄기에 톱으로 상처를 내 자극을 주는 스코링농법으로 가지를 유인하여 삼각형지주에 고정시켜주는 것이다. 단위면적당 일반 농장의 수확량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당도 또한 16브릭스 이상 간다(보통 12브릭스 내외).

스코링을 하지 않고 가지 유인을 하면 부러지기도 하고 수확량도 적고 다른 부작용들이 많이 발생한다.

발칙한(?) 아이디어

필자의 눈에 보인 안홍석대표의 맥가이버 컨셉은 여러가지 기구나 도구들에서 두드러졌다.

● 계단식 이동작업대


계단식 이동 작업대는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은 도구인데 배나무 작업의 모든 것을 평지에서 하듯 효율성을 높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다리 가지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가 너무 비효율적이라 간단한 생각 끝에 만든 것이다.

● 맞춤형 경운기

▲ 키가 작은 미니 경운기. 짐칸에 싣는 컨테이너박스와 박스4개를 고정시켜주는 클립 ⓒ안병권

배나무 농장 사이를 오고 가는 이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경운기의 짐칸 크기를 줄여 노란색 콘테이너 박스의 규격에 맞추어 적재하기 쉽게 했다. 미니경운기인데 배나무 사이를 오고 가는데 안성맞춤이다.

내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은 컨테이너박스 4개를 맨 위에서 서로 고정시켜주는 쇠로 만든 고리(?)였다. 경운기가 박스적재 규격에 맞춤이니 배를 가득담아 한껏 싣고 맨 위에서 고리로 4개씩 그냥 간단하게 고정시켜 줄로 묶어나 흔들리거나 하는 불편을 없앤 것이다.

● 편안한 제초기

▲ 예초기에다 폐차에서 뜯어낸 의자에 바퀴를 달고 유연한 연결 축을 만들어 연결한다. 아래사진은 차량 운전하듯 제초작업 하는 모습 ⓒ안병권

예초기에 바퀴 달린 의자를 연결하여 자가용처럼 앉아서 제초작업이 가능하게 만든 아이디어를 보면서 나는 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물의 이치를 이렇게 헤아려서 작업에 활용하다니 그의 발칙한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다.

▲ 허리둘레에 완전군장한 도구들을 보니 야! 배농사 제대로 짓는구나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일일히 자신의 작업에 맞게 고치고 가공하고 덧붙이고 업그레이드 시킨 그 지혜로움에 그저 속으로 박수만 보낼 뿐이다. ⓒ안병권

내가 더 무얼 하겠는가? 파란색 손잡이 작은 톱도 원래는 훨씬 더 큰 톱인데 잘라내고 손질해서 작은 나무줄기에 사용이 편하도록 스스로 만든 것이다.

유쾌한 현장, 기분 좋은 농업 그 한가운데를 서성거리며 나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일하고

대구에서 30년간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중 잘못 선 빚 보증으로 사업을 접고 현재의 창하리 농원으로 귀농했다. 사람이 밥 세끼 먹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 돈이 없어 밥 한끼로 겨우 때워야 했던 그 시절 1997년 전후의 몇 년간이 제일 어려운 고비였다.

▲ 대구에서 가전제품 대리점 경영하던 시절의 가족사진 ⓒ안병권

그의 입에 붙은 '밥 먹고 일하고'의 부지런함에다가 사물을 들여다 보는 눈치코치로 농업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아무래도 전자제품을 다뤘던 기술이 농업에 접목된게 아닌가 싶어요" 직접적인 연관은 안될지 몰라도 시스템의 구성, 앞과 뒤의 연결, 원인과 결과 예측 등을 살피는 안목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저것 자신의 손으로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개량하듯 농사짓는 일도 같은 시선으로 열심으로 들여다 본 것으로 보인다.

용수농원은 3,000여 평이 조금 넘는 크지 않은 면적이고 배 품종도 화산, 원황, 만풍배가 재배면적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보통의 배 농장은 '신고'품종을 제일 많이 심는데 그니는 달랐다. 누구나 쉽게 재배하는 품종으로 경쟁하는 것보다 재배가 까다로워 꺼리는 품종을 선택하고 대신 품종의 특성을 잘 이해하여 맛있는 고품질의 배로 경쟁하고 싶었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고, 몇 년 전부터 배 값이 사과보다 못한 가격으로 떨어졌지만 용수농원배는 제값을 톡톡히 받는다. 또 배즙은 미국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는 모 공판장에서는 뒤로 돈을 더 주는 경우도 있다. 다른 농장배들과의 형평성문제도 있어서 일단 최고시세로 쳐주고 넘어서는 가치는 다른 방법으로 용수농원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다.

용수농장에는 세계각국의 농업관계자들이 자주 찾아온다. 미국, 호주, 중국, 일본 등지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홍석씨의 배 재배기술을 배우려고 찾아온다. 그런데 안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100가지 기술이 있다면 자신이 오히려 99가지 정도를 그들로부터 배우고 자신이 가르쳐 주는 것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세계각국의 장점을 체크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예를 들면 당도를 높이는 기술도 각국의 농부들로부터 그들이 농사짓는 장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안대표 노력의 결실

2007년도 농림부 신지식농업인 221호에 선정되고 농림수산식품부는 현장교수로 임명하고, 선도농가 실습장 및 교육관을 농장내에 설치하여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여러 과수농가들이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 농원의 사계절 ⓒ안병권

▲ 정부에서 지어준 교육관과 배가공장 전경이다 ⓒ안병권

중국한의학계의 자문을 받아 대구한의대학교와 공동으로 배즙도 만들었다. 배즙에다 오미자, 도라지, 생강, 올리고당을 첨가하여 맛과 영양을 최고조로 올린 작품이다.

궁리 [窮理]하는 생활

나는 농업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회에 젖곤 한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있고, 그들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최근 시점의 결과를 오롯이 간접경험(공유) 한다는 기쁨이 있어서다.

맥가이버의 문제해결방식
실사구시(實事求是), 조선시대 실학파들의 삶
농업, 과학, 경영,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해 낸 다산 정약용선생의 삶의 방식
한국 최고(最古)의 어류학서(魚類學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통해 드러난 정약전 선생의 바다와 바다생물에 대한 성찰….


내가 감동받고 책을 읽은 시점시점, 생활의 기준으로 삼으려 했던 존경하는 사람들의 면면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궁리 [窮理]'다.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통사람의 방식대로 그냥 주어진 상황 그대로 바라 보는게 아니라 세밀하게 살피고 기록하고 개선점을 헤아린다. 모든 일의 전후좌우를 살피고 다른 것과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이루어질 것을 예측한다.
즉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헤아리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세상을 보고 사물을 이해한 순간 세상은 그만큼 유쾌해지고 편리해지고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경북 영천 용수농원을 다녀오고 공부하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궁리하는 농부 안홍석', '지혜로운 안홍석'이었다.

그에게서 '궁리하는 삶'을 보았다.

 

귀가 즐겁고, 눈이 황홀하고 입이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생각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특히 농업이란 분야에서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지만 살아온 내력을 따라 들어가면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보다 이런저런 삶의 굽이굽이를 넘어온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농산업은 농업 그 자체보다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삶이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분야가 아닐까 싶다.

짜장면 배달, 신문팔이, 구두닦이, 눈물 젖은 빵, 건달생활, 난전장사, 룸싸롱 주인… 아주 오래 전에 읽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이동철의 '어둠의 자식들'과 김홍신의 '인간시장'에 나오는 밑바닥 생활들을 골고루 전전한 한 농부를 만났다.

내가 생각해도 슬픈 인생
▲ 경북 구미시 옥성 구미 (유)구미원예 하나로파프리카 정세화 대표(52세) ⓒ안병권

지난 4월 영덕에서 있었던 경북스토리텔링 프로젝트 준비 미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 오는데, 정세화 대표가 내 차 근처로 와서 "안소장님! 제 이야기 며칠밤을 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구구절절인데 언제 한 번 들려드리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라며 인사를 건낸다. 얼마나 사연이 많길래?

그래서 기억이 나는 사람이다.

고향이 경북 상주 이안인 그는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때 당시 400원인가 하던 기성회비를 못 낼 정도로 가난해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9살짜리 꼬마가 무슨 앞뒤 생각이 있어서 그리했겠는가? 10살 때 다시 가출했고 아버지한테 잡혀서 들고 나고 몇 번, 결국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다. 그에게는 졸업장이 없다.

1학년 때까지 한글을 잘 몰랐던 꼬마 정세화는 가출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할 때 중국집 사장에게 배웠다. 12살 무렵 중국집 배달을 하고 있을 때다. 지금은 중국음식 배달통이 알미늄 재질로 산뜻하지만 40년 전 당시에는 나무통에 음식 넣어 배달하던 때다. 그때 까지는 또래의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중학교 올라가고 나서 교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 순간부터 안면을 싹 바꾸더니 앞으로는 짜장면 배달하는 너와는 친구할 수 없다며 곁을 두지 않은 채 떠나가 버렸다. 그때의 그 배신감은 어린 마음에 아주 큰 상처를 주었다. 그날 정세화는 우둘두툴하게 세멘으로 바른 담벼락을 주먹으로 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좋다 너네들 중3, 고3, 대학4년, 군대3년 재미있게 잘 보내라. 나는 그 13년 동안 사회를 배우겠다. 그리고 난 이후에 너희가 많이 아는지 내가 많이 아는지 견주어보자"

산전수전(山戰水戰), 위험한 짓도 많이 했고, 눈물 젖은 빵도 먹었고 도둑질도 해봤다. 점촌 어느 빵집에서 10원짜리 크림 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주인 몰래 훔쳐 먹었다. 한 번 두 번은 괜찮았는데 4번째 걸렸다. 걸렸을 때 주인아저씨가 빵을 주면서 먹으라고 하길래 어린 마음에 아저씨가 용서해 주시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입에 넣으면 넣는다고 때리고,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때리고… 그때 눈물 젖은 빵 제대로 맛 봤다. 그렇게 험난하게 살았다.

20대에는 아는 누님의 일을 도우며 룸싸롱 일을 거들다 27살 때 대구에서 룸싸롱 사장으로 사업체를 경영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장사도 사업도 연륜이 맞아야 되는 가보다 싶다. 룸싸롱을 경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이해하기에는 연륜이 짧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세화 대표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하고 물었더니 "내가 생각해도 슬픈 인생"이라며 웃는다.

하나로 파프리카

▲ 하나로파프리카 유리온실은 전자동 관리시스템을 자랑한다. 햇볕 차광망이 닫히고 있다. ⓒ안병권

구미시 옥성면 옥관1리에 위치한 (유)구미원예 하나로 파프리카는 전국에서 제일 큰 유리온실단지 약 28,900평중 7,200평의 면적이다.

이전에는 국화와 장미를 생산하여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였다. 대구 난전에서 꽃 장사를 하다 본격적으로 꽃 재배를 위해 2000년도에 지자체에서 진행한 유리온실 프로젝트에 31명중 한명으로 참가하여 장미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3년 거치 17년 분할상환의 조건으로 온실을 운영하는데 하늘의 방해일까 화훼산업은 하향길로 접어들고 그중 장미가 대표적인 희생양이 된다.

2004년부터는 상환자금도 시작해야 하는 판이라 어려움은 더욱 커져갔다. 엔화의 하락과 동남아 국가들의 기술수준 향상과 과잉생산으로 장미수출을 중단 해야 했다. 동남아의 싼 인건비와 기술의 향상으로 인해 일본 수출 대비 경쟁력이 높아지자 국내농가의 장미수출은 한 본당 원가가 250원인데 수출대금으로는 150원밖에 못 받았다.

결국 2005년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날 2월 13일 밤, 유리온실의 전원을 껐다. 장미농사를 포기하고 내린 피눈물 나는 조치였다. 장미는 꽃이 피면 빨간색으로 천국처럼 예쁘지만 영하10℃로 내려간 온실은 새까맣게 변해서 '죽음의 계곡'이 되어버렸다. 그날 얼마나 북받쳐서 울었는지 모른다. 서러워서 울고, 신세가 불쌍해서 울고, 까맣게 죽어버린 자식 같은 장미를 쳐다보고 울고….

하지만 예서 말 수는 없는 일. 7,200평 이 온실을 무엇으로 운영할 것인가? 정세화 대표는 동남아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템을 고려했고 전국의 선진지들을 찾아 다니며 조언을 구했고 구상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과 7,200평을 파프리카 농장으로 재정립하기로 결정했다.

파프리카는 첨단재배기술을 접목해야 하고 고정설비투자가 선행되야 하므로 동남아국가에서 쉽게 따라오기 힘들다. 파프리카의 재배관련 한 일은 와이프가 주관하고 판매, 홍보 및 분산작업은 정세화 대표가 한다. 직원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고 11명이 일한다. 파프리카 재배 5년차 이제 비로소 파프리카에 대해서 눈을 뜨고 있다.

장미에서 파프리카로 작목을 대체한 후 매출액도 안정적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수출을 주로 하다가 3년 전부터 수출계약 이외의 물량을 인터넷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하나로 파프리카의 특징은 고객들의 주문물량을 오전에 파악하여 당일 작업하여 그 자리에서 택배발송을 하니 상품자체가 신선하기 그지없고, 수출용의 기준과 같은 품질로 보내드리니 고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게 나온다. 향후에는 보다 큰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내수용으로 인터넷판매에 주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파프리카 파프리카

파프리카는 가지과(Solanaceae) 고추속(Capsicum) 고추종(Annuum)의 한해살이 식물로, 고추종의 6가지 아종 중의 하나로 꽈리고추와 함께 대표적인 단고추의 종류인데, 잡맛이 없고 달며,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어 샐러드나 요리의 색을 낼 때 사용되고 있다.

또한 파프리카와 같은 감미종(甘味種)은 신미종(辛味種)에 비하여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 발달했으며, 미국, 유럽, 브라질, 일본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식생활의 서양화가 진행됨에 따라 수요가 급증해 겨울철에도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어 연중 공급되고 있다. 나무 하나에 한가지 색만 열리고, 처음 열리는 모양 그대로 전체 나무에 열리는 모양이 같다.
▲ 파프리카는 카멜레온 채소, 화려한 팔방미인, 청춘을 돌려주는 채소 ⓒ안병권

과일처럼 단맛이 많아 입이 즐겁고, 아삭아삭 하는 소리로 귀가 즐겁고, 선명한 색상은 눈으로 먹는 즐거움까지 보석 같은 채소다.

19가지 영양소로 가득하며 특히 파프리카 1개에 함유된 비타민C는 토마토의 5배, 딸기의 4배, 사과의 40배, 레몬의 2배에 이른다. 또 비타민A도 풍부한데 이 비타민은 열에 강하고 기름에 잘 녹아 볶음 요리로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

피망은 녹색과 빨강 2가지이지만 파프리카는 노랑, 자주, 검정, 오렌지, 백색, 빨강 등 8~12가지 색을 자랑한다. 이중에서 하나로 파프리카는 주황, 노랑, 빨강 3가지를 생산한다.

주황색 파프리카는 비타민이 많고, 철분과 베타카로틴이 많아 미백효과에 탁월하며 기미와 주근깨 등 얼굴이 검어지는 원인이 되는 멜라닌 색소 생성을 억제한다.

빨간색 파프리카는 칼슘과 인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들과 성인들의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붉은 색소인 리코펜이 신체의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의 생성을 막아준다. 암세포증식을 억제하고, 관상동맥증 예방에 좋다

초록색 파프리카는 다이어트에 좋고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 예방에 한몫을 한다. 철분과 엽록소는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노란색은 비타민이 풍부해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피라진'이라는 성분의 파프리카 특유의 냄새는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방지해서 고혈압, 심근경색, 뇌경색을 예방해준다. 루테인과 제아신틴이라는 성분이 많아 눈의 건강에 그만이다.

파프리카 재배

파프리카 온실에 들어서니 그 넓은 면적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말이 7,200평이지 대단히 광할했다. 또 파프리카 나무의 키가 얼마나 큰지 내 키를 훌쩍 넘어서 올라서 버린데다가 울창하기는 어찌나 울창한지 마치 아프리카 밀림속에 와있는 느낌이다. 형형색색 파프리카의 색깔은 다채롭기 그지없고 꽃이 피고 어린 녀석들도 보이고, 한참 색이 진행중인 친구들도 있고….
일에 열중인 외국인 근로자들하고 눈맞춤도 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말도 나누고 곳곳을 세심히 살폈다.
▲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워 세상에 나온다 ⓒ안병권

▲ 자기집으로 하나하나 옮겨 마음 붙이고 정착하게 한다 ⓒ안병권

▲ 각자의 집들이 시설속에 안착하고 살림을 시작하여 이렇게 울창한 결실로 세상에 드러난다 ⓒ안병권

▲한 알의 씨앗이 이렇게 굵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고 잎을 열고 열매를 맺는다는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단순 부피생장으로 보더라도 수천~수만배 생장하니 생명짓의 경이로움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안병권

7월 15일경 파종, 8월 15~20일경 정식하면 그 한 달 후인 9월 15일경에 첫 착과가 이루어진다. 특별한 문제없이 잘 자라나면 11월 들어 수확이 시작된다. 환절기나 건조기에는 흰가루병이 돌고 해충으로는 진딧물, 총채벌레, 담배가루이, 온실가루이 같은게 주종이다. 현재에는 친환경제재로 방제를 하고 있으나 이후에는 천적방제시스템을 적용하려고 계획중이다. 파프리카를 재배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세밀하게 사물을 살펴야 되는 일이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조사한다.

세계적으로 네덜란드는 화훼 및 원예사업의 메카로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농업교육도 많이 실시한다. 2009년도에 각국의 농업인들을 초청하여 진행한 파프리카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참가한 교육생중 2명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 교육덕분에 파프리카에 대한 이해와 농업에 대한 스스로의 접근성이 많이 높아졌다. 농사와 자신의 삶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한 몸이 되어 돌아간다는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파프리카 농사는 단순히 재배가 아니다. 끊임없이 이야기도 나누어야 하고 음악도 들려주어야 하고 아픈데 없나 추운데 없나 하나하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내 숨결과 더불어 현재 진행형인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배웠다.

농장을 둘러보니 빨강색과 노랑색이 주종이고 주황색이 별로 안보였다. 이왕 칼라풀 하려면 주황색이 곁들여지면 더 좋을텐데 하고 물었다. 당연하지요 주황색이 갖는 색감은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주황색 파프리카는 나무에 달리는 갯수가 적다. 그래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현저히 적어요. 그러다 보니 주황파프리카는 보통 주력으로 재배하는게 아니고 보조군으로서 재배한다. 그렇게 해서 한 상자에 주황색을 3~4개라도 넣어드리고 있다.

입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눈이 즐거워

파프리카는 필자에게는 낯선 과채류였다. 쌈장에 풋고추 얼큰하게 즐기고 된장고추장 찌개하나면 넉넉하다 생각했고 김치 보쌈에 소주한잔이면 "거 아주 맛난 음식 보시 받았네" 싶었다. 여름철 텃밭에서 나는 상추를 비롯한 몇 가지 채소 뜯어먹는 재미와 몇 주 안되지만 고추나무에 달린 풋고추 청양고추 따먹는 재미면 그만이지 싶었다. 사실 피망만해도 서양고추라는 인상이 있어서 별로 식탁활용을 안하고 살았다. 미식가분들이야 다른 뜻을 가졌겠지만 내게는 피망이나 파프리카가 그리 가까운 친구들은 아니었다.
▲ 야채겉절이와 볶은밥 ⓒ안병권

그러다가 재작년인가 싶은데 파프리카를 만나고 먹어볼 기회가 생겼다. 달짝지근한게 생으로도 먹을 만 했고 색깔이 가히 환상적이라…. "어라! 이거 나 같은 사람이 먹어도 될만하네! ^^" 뭐 이런 류의 엉성한 고백을 하고는 기본적인 단계부터 응용을 시작했다.

우리 집의 대표적인 여름반찬이고 가장 많이 올라오는 찬이 야채겉절이다. 텃밭에서 적상추, 청상추, 트레비소, 쌈케일을 풍성하게 뜯어와서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큰 양푼 하나에 버무려내는 아주 간단한 녀석인데 나는 이 친구를 정말 좋아한다. 여름 내내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여기다가 색깔 파프리카를 곁들여 넣으니 보기에도 맛에도 영양에도 한결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 들었다.
▲ 야채토마토 샐러드에 삼색 파프리카가 들어가면 미감식감이 레벨업된다. ⓒ안병권

또 샐러드를 만들 때 삼색 파프리카가 들어가면 모양 그대로 비주얼이 환상적이 된다. 볶음밥을 할 때도 깍뚝 썰기를 해서 넣으면 볶은 밥의 품위가 급상승한다. 잡채 할 때도 그만이다.

이외에도 블로그나 까페를 보면서 각 가정에서 수백수천가지 파프리카 요리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파프리카를 즐기고 있었구나 싶어서다.

확실히 요즘의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다른 재료들과 대립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맛과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 전체를 특징 지우는 파프리카의 본성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말맺음을 하며

지난 20년 동안 농업에 종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컨셉의 농업을 마주대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파프리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 것은 '색깔'때문이다. 원색의 칼라가 내 뿜는 강력한 인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나는 연한 파스텔톤의 빛깔을 좋아했고 무채색의 단순 간결함을 좋아했다.

앞으로도 여전하겠지만 파프리카처럼 전체로는 강렬한 원색이지만 부분적으로 나누어지면서 연출되는 원색의 다양한 전개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 자료를 만들기 위해 파프리카로 여러 가지 사진을 찍는데 정말 색감 그 자체는 다이나믹 했다. 속이나 겉이나 파프리카는 그 스스로의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선뜻 다가서기가 어려웠지 다가서고 나니 그 뜻에 그 영양적 가치에, 그 맛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 농사를 짓는 정세화 대표의 인생역정 또한 쉽게 보기 힘든 콘텐츠를 지니고 있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여 너와 내가 살고, 인생을 즐기자"는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처럼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돌아왔다. 여전히 그는 '거치른 야생마'였다.

졸업장도 없고, 온갖 직업 우여곡절,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인생이라 하지만 어쩌면 그는 동시대인들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세상을 마주 대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가지 방향을 결정하면 그 일에 일로매진(一路邁進), 어떤 결과이든지 매듭을 짓는다. 그래서 내일의 희망을 열어가는 구미의 파프리카 농사꾼 정세화 대표와의 만남은 사각사각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정세화대표와 그 가족들이 건승을 빌어마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슬픈 인생

밑바닥 생활 전전긍긍
안해 본 짓, 못해 본 짓 없이 살았다

내딛는 발걸음 온갖 설움 눈물바다
졸업장 없이 산 인생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인생...

하지만 그는
이 악물고 살아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하나 생활에서 지혜를 배웠다.

장미온실 빠른 판단
파프리카 빠른 선택
한 가지 방향 결정하면
일로매진 매듭 짓는다.
작물관리,사람관리
마음관리 최고박사

파프리카 농사짓는
거치른 야생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형형색색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
쉽게 만나기 힘든 컨텐츠
정세화



우리나라에도 유기농 사과가 있구나!

썩지 않고 말라만 가는 사과가 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썩지 않고 바짝 말라만 간다. 자기 생명력이 강한 존재일수록 항산화 작용이 강해서 오래 살아남는다. 사과가 갈변이 일어나고 부패가 되는것은 사과가 산소를 만나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쇳덩어리가 녹이 스는 것도 산화이다. 인체의 노화 현상도 활성 산소와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물리화학적 기전 산화과정의 하나이다.

보통의 사과는 잘라놓으면 얼마 안가서 갈변현상이 나타나고, 작은 상처 등을 통하여 곰팡이가 피고 곧바로 부패가 시작되는데 이 사과는 말라만 간다. 말라가는 사과는 껍질과 자른표면은 경질화되고 말라가며 쪼글거리지만 속살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오랜동안 생과상태를 유지한다. 몸속의 수분은 밖으로 내어주지만 나머지는 옹골차게 지켜낸다. 다 그가 행하는 생명짓이다. 왜 일까?

화학 비료와 농약, 성장 호르몬이나 착색제 같은 화학 물질의 힘을 이용해 재배한 사과는 과육의 세포간 간극도넓고, 살이 무르게 된다. 반면에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사과에는 무엇보다 대자연의 기운과 나무의 생명이 서로 경합하고 협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야물고 단단하고 본래의 맛과 향이 자연스러워진다. 또 사과의 몸속에 넣어준 항산화 물질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스스로 지켜내는 생명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가 환경친화적인 먹거리를 섭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월 하순 접어들 무렵 방문한 강산농장 책상 한 켠에서 잘라 놓은지 30일을 경과한 쪼글쪼글 마른 사과를 보았고, 그로부터 다시 30일이 더 지난 상태를 사진으로 확인했다.
▲ 2010.12.30일자 상태(60일 경과), 난 이 기묘한 사과의 모습에 적잖게 놀랐다. 두달이 지나자 속살은 거의 대부분 말랐다. ⓒ안병권

▲ (좌)2010.11.30일자 상태(30일경과), (우)2010년 11월 1일(맨 처음) 당도 측정하고 잘라놓은 상태 ⓒ안병권

우리나라에도 유기농사과가 있었구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유기재배인증을 받은 사과가 경북 영덕에 살고 있었다.
내가 유기농산물 유통일을 20년간 해오면서 가장 많이 거래하고, 고민하고 연구한 품목중의 하나가 사과다. 또한 그에 관련한 에피소드도 다양해서 관련 데이터를 내 PC에서 열어보면 목록으로만 봐도 하나 가득이다. 그 세월동안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 '전제'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농사는 절대 무농약이나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계에는 수많은 생물종이 살아간다. 인간을 포함하여 동식물이 살고 벌레들이 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바이러스 등의 미생물이 한치의 빈틈없이 원인과 결과를 서로 주고받으며 생명 짓을 다하며 살아간다.

요즘 구제역, 조류독감(AI)으로 온 나라가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가축들에게 전염되는 돌림병이다. 아무리 방역조치를 취한다해도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바이러스의 전염경로로 인해 뾰족한 대책이 없는 노릇이다. 육식을 비롯하여 필요 이상으로 선호하는 인간의 탐식(貪食)에 따른 밀식(密植)형 대량사육(재배)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각종 미생물에 의한 돌림병의 문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배작물 또한 마찬가지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나오지만 식물에도 돌림병이 돈다. 소나무 돌림병이 돌기도 하고,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리우는 재선충에 의한 피해도 심각하다. 이렇게 균으로, 바이러스로, 해충으로 인해 식물도 끊임없이 침탈을 당하고 생명을 빼앗기기도 하는 것이다. 야생에서의 식물들이야 저항성을 키워가며 대응하고 소멸해가도 존재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밀식 재배되는 사과나 배, 복숭아 같은 과수들은 약제나 비료 같은 화학물질을 인위적으로 투여하지 않으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는 환경조건이 되고 말았다.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고독성 화학물질이 '약(農藥)'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행농법은 대세를 이루었다. 단기간에 높은 소출이 가능해지자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환상에 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깨어나고 보니 그것은 또 하나의 재앙이었다. 환경오염으로 생태계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것이다.

시설(하우스)안에서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개방된 생태계인 노지(露地)에서 이루어지는 사과 과수원의 생태계를 부석, 포항, 청송, 충주, 문경, 무주, 의성지역의 농민들과 거래하면서 오랫동안 살피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 결과 "그래! 우리나라에서 사과농사는 저농약재배가 최선일수 밖에 없구나!"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예전의 사과농사는 농약으로 시작해서 농약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5번을 쳤네" "20번을 쳤네" 하는 일상다반사로 이루어지던 병해충 방제작업은 곧 농약살포를 의미했다. 거기다가 성장을 촉진하거나 착색을 유도하는 호르몬제 살포 또한 중요한 일이었으니 참 오랫동안 우리는 '길러낸 사과'를 먹은게 아니라 '만들어진 사과'를 먹어온 셈이다.

하지만 농약의 폐해가 극심하게 늘어나자 소비자들은 안전한 사과를 원하게 된다. 농민들의 재배기술도 향상되어 환경친화적인 방식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땅심을 키우고 농약살포횟수도 7~8번 정도로 줄이고, 다양한 관리체계가 도입되면서 농민들은 각자의 노하우로 달고 맛있는 사과를 이전보다 안전하게 생산해낼 수 있었다.

저농약재배를 하면서 이웃관행농장과의 거리, 바람의 향방, 물의 오염도 등을 긴장하면서 살피고 어루만지며 애지중지했던 사과농부들과의 추억 또한 새롭다. 또 작물의 본성을 헤아리고, 나름의 평생농사 노하우와 다양한 재배기술로 무궁무진한 사과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농부들도 많이 만났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사과농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마지막 버전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유통의 현업에서 빠져 나와 이야기농업 일을 3년째 하고 있다. 그러기에 단호하게 말라만 가는 모습의 '영적(靈的)인 존재'로 내 앞에 나타나 스스로 '자연산 미이라'가 되어가는 '유기농 사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기농 사과 농장의 한해살이
▲ 농장의 겨울 ⓒ안병권

겨울은 대지의 휴식기이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에너지를 내뿜어 사과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풀을 키워냈던 고단함을 내려놓고 한동안의 꿀맛 같은 휴식의 시공간이다.

과수농사는 1년농사 아닌게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인마트나 백화점에 빨간 사과가 진열되면 아 사과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다분히 감상적으로 느끼지만 농부의 입장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1월초 만생종 사과수확이 끝나면 한시름 덜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 한겨울

▲ 몇 개월 동안 각종 부재료를 미생물로 발효 숙성 시켜 만든 퇴비를 12월 과수원에 뿌리는 작업. 한겨울인데 퇴비는 뜨근뜨근 김을 내뿜는다. 잘 만든 퇴비는 보약중의 보약이다. ⓒ안병권

퇴비가 주는 의미는 세가지다.

첫째는 토양구조 개선이다. 토양의 이화학성을 개선하여 포근포근하고 공기구멍이 충분한 토양으로 만들어 연작장해와 토양산성화를 방지하여 농작물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둘째는 병충해의 억제역할을 한다. 토양에 서식하는 유효미생물의 증가로 병원성(病原性) 미생물을 억제하여 농작물의 병해를 예방하고, 지렁이 등 다양한 미소생물이 증가하여 토양을 갈고 영양을 공급하는 등 토양환경을 최적화 시킨다.

셋째는 양질의 영양공급원이다. 다양한 성분의 영양분을 지속적,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농작물의 맛과 영양이 풍부해 진다.

● 2~3월

사과 나무 전정작업을 하고 봄작업을 준비한다.
▲ 남은 잔설이 대지를 덮고 있어도 새싹은 벌써 봄맞이를 하나보다. 군데 군데 새싹이 파랗다, 이제 날씨가 풀린다 하는데 잠깐이면 대지가 온통 파랗게 되겠지. 유기사과 나무아래 청보리, 호밀 잡초 이렇게 어우러져 커 올라오면 이게 전부다 유기사과 나무에게 거름이 되는걸…. ⓒ안병권

사람들은 사과는 안 키우고 풀만 키운다 하겠지. 미침사람 취급 받으며 생활한 어언 10년 (저농약 5년, 무농약 3년, 유기재배 2년), 금년은 효과가 날테니 두고 보라지, 땅이 살아야 자연 나무도 살고, 그 땅에서 자라는 유기사과도 기능성이 있고 사과 본래의 맛, 향, 모든게 제대로 될 테니 기대해 주세요. 금년 수확 철에는 정말 맛있는 제대로 된 사과를 드릴께요.

<이병두 영농일기>중에서

● 3월 하순

▲ 석회유황합제 만드는 일과 살포작업을 한다. 월동병균과 해충 퇴치 목적이다. "이틀에 걸쳐서 살포를 끝내고 나니 전 밭에서 생기가 돋아 나는거 같고 유기사과 나무가 주인님 고맙습니다, 하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안병권

2년 후 한해동안 사용할 양을 미리 제조하여 숙성에 들어간다. 숙성은 장해를 제거하고 약효가 배가되게 하는 과정이다. 생유황을 사람이 먹으면 해가 되지만 오리에 먹여 사육하면 사람에게 이로운 기능성이 추가된다. 석회 유황입제를 농장에서 제조하여 바로 잎에 뿌리면 잎이 타 들어가서 안 된다. 최소 2년 이상 숙성을 시켜서 사용하면 장해요인이 없어지고 균과 해충 퇴치에 효과를 낸다. 유기농 작업의 기본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스로 만들어 쓰는 원자재도 보통 1~ 2년 이상 숙성을 시켜야 하는 일이다. 관행농법의 개념에서는 불필요한 일이다.

● 4월초 : 교미 교란제 걸고, 기계유제(식물성 오일 자가제조) 살포

콩기름, 채종유 같은 식물성 기름을 물에 섞이기 쉽도록 유화작업을 하여 사과나무에 뿌린다. 해충의 몸에 부착이 되면 기름기로 인해 숨구멍이 막혀 해충이 질식하여 죽게 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 5월 : 꽃 만개 2일 후, 3일 후, 5일 후 적화 및 적과, 살균을 목적으로 석회유황합제를 살포한다.

● 6월 : 자가제조한 보르도액 살포
▲ 사과나무의 반점낙엽병 걸린 잎 ⓒ안병권

연중 4회 정도 사용할 석회보르도액 원액을 제조하여 살포하고 나머지는 보관한다.
보르도액은 사진처럼 반점낙엽병, 갈반병을 예방하는데 쓴다. 잎이 노랗게 말라 들어가면 광합성작용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잎이 떨어져버려 과육의 생장과 발달에 지장을 초래한다. 잎이 일찍 떨어져 버리면 당도와 색깔 등에 현저한 장애를 초래한다.

● 7월

▲ 유기사과 강산농장에서는 녹비작물 호밀이 사과나무 중턱까지 자라난다. 이젠 호밀 꽃이 졌으니 베어 눕혀서 유기질 공급원으로 활용한다. 호밀, 헤어리베치등을 풀베기하여 나무 밑에 깔아 덥는다. 풀로써 풀을 다스리는 방법이다(1차 제초작업) ⓒ안병권

▲ 해충이 기승을 부려 해충 유인주를 병에 담아 나무에 달고 비상조치를 한다. ⓒ안병권

● 7월초순~ 8월초 : 석회보르도액 살포_ 부패병, 탄저병, 갈반병 예방

● 8월 중순 ~10월 초 : 복숭아순 나방, 심식나방을 퇴치목적으로 자가제조한 기계유제(콩기름이나 채종유 같은 식물성오일을 물에 섞이기 쉽게 유화시킨 것) 및 한방약 수차례 살포

해충의 발생밀도 조사 후에 바닷물과 혼합하여 살포. 식물성 오일은 해충들의 몸에 묻으면 호흡을 못하게 숨구멍을 막아 퇴치하는 효과가 있다.

● 9월 중순

▲ 잡초 풀베기 제 나무 밑에 눕히기 작업(2차 제초작업) ⓒ안병권

9월에는 잡초풀베기 작업이외에 '적엽작업'과 '과일돌리기'를 해야한다.

적엽은 사과에 붙어 자라나는 나무 잎을 떼어내는 작업으로 햇빛을 막는 잎을 따서 골고루 햇빛을 받도록 만드는 일이고, 과일 돌리기는 사과를 돌려서 햇빛을 받지 않은 쪽도 햇볕을 받도록 하는 일이다.

관행농사에서는 착색제를 쓰고 성장호르몬을 사용하지만 유기농 사과는 일일히 사람의 손으로 도와주어 나무 스스로 그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 유기농사과 재배는 함부로 자재를 투입 할수 없는 자연농법이다. 힘들어도 생선 아미노산을 자가제조하여 액비로 투입한다. 2008년에 제조한 청어로 만든 아미노산의 향긋한 젓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옷에는 젓갈냄새가 며칠을 두고 진동을 해도 유기사과 나무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공급하고 소비자님들의 안전 먹거리를 공급하는 중책을 맡았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냄새가 나도 좋고 웃으면서 사용한다. ⓒ안병권

영덕 동해안에서 많이 나오는 생선 청어로 발효시켜 만드는 동물성 아미노산은 당해년도에 제조한 것은 물에 섞어서 액상으로 만들어 살포해주고, 2년 이상 숙성시킨 아미노산은 옆면시비로 영양공급하여 여러가지 효과를 자아내도록 한다. 아주 가물때에는 물과 배합하여 땅에다 뿌려주어 뿌리로 하여금 흡수하도록 한다. 사과의 잎과 줄기와 뿌리의 상태에 따라 시비한다. 사과나무의 요구에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것이다.
사람이 먹어도 되는 젓갈과 같은 원리와 역할이다. 맛있는 영양물질이다.
▲ 그 폭염도 이기고 가을과 함께 영글고 색이 곱게 들어가는 유기농 사과의 예쁜 모습에 매료된다. 굵어지고, 색깔나고, 이 모두를 자연에 맡기고 오직 순리에 따라 가는 순수유기농 사과의 자태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만들어진 느낌보다 사람과 함께 나무 스스로 맺은 건강한 생명의 몸짓이 느껴진다. ⓒ프레시안

● 11월초 수확작업

수확후 선별하여 자장창고에 입고후 판매시작
사과 이야기 만들기 작업

● 수확후
▲ 선별되어 분리 보관된다. 보르도액이 진하게 묻어있어 희뿌연 빛깔이지만 마른 헝겁으로 슥 문질러 닦으면 본래의 색이 드러난다. ⓒ안병권

▲ 유기농사과 쥬스와 포장상자의 모습 ⓒ안병권

살아온 일생
▲ 공부하는 농부, 세상과 이야기하는 농부, 유기농사과 생산자 이병두씨 ⓒ안병권

1940년 영덕 강구생인 이병두씨는 올해 만으로 칠순을 넘어간다. 1966년, 군 제대후 강구면에 소재한 양조회사에 입사하여 30년간 4개의 양조회사 경영을 맡아 일을 했다. 식품제조, 그것도 술을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매일 매식을 하고 한달 내내 술과 담배와 고기에 파묻혀 거래처 접대로 지냈다. 생활이 무절제함의 극치로 빠져들어 건강이 말이 아니게 나빠졌다. 안되겠다 싶어 1988년부터 담배도 끊고, 유기농 포도로 단식도 하며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유기농 포도단식을 통해 유기농식품이 인체에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학설 같은 엄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더 나아가 '나 혼자만의 것'으로 하기에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직접 유기농사과를 재배하여 도시민들에게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5년, 30년 직장생활을 접고 현재의 영덕 달산에 12,000평의 과수원을 꾸리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자유롭게 생활하며, 등산도 다니고 여행도 하고 사람답게 사노라 자부하며 사과농사를 시작했다.
저농약재배 5년, 무농약으로 3년, 유기재배로 3년을 경과하여 올해 4년째를 맞는다.

그렇게 10년이 넘어서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인생을 이 사회에 별 것 아닌 '노하우'를 내어놓고 가리라 굳은 마음을 먹는다.

그의 마음은 그가 만든 이야기에 잘 녹아난다.

눈 덮인 땅에도
봄은 다시 오고
제일먼저 풀님이 방긋이 돋아 나와요
풀님인들 얼마나 소중한데요

키 크고 여물 때
베어 눕혀 거름되면
유기사과 양식인걸
어느 하나 버릴 소냐
유기사과 양식 주랴

바쁘게 삽질하고
나무이발 잘하고
잘 다듬어서 시집장가 잘 보내죠

혹시나 나쁜 벌레 해로운 균
쫒아 내려 유황살포
노란 유황 옷 입고
뽐내는 자태 보소

사과 한 알 한 알에
서른 다섯 번 손길이 가야
예뻐지고 굵어져요
곱고 예쁘고 안전하고
이쁘게 키워서
우리고객님께 정성으로 공급할 때
마음으로 따뜻하게
고마움에 답한데요

우리손자 손녀가 먹어도
부끄럼 없는 유기사과
이것 말고 또 있으랴!

<유기농사과농장 강산농장 이병두>

▲ 과수원 한 켠에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그가 직접 판 농업용수로 쓰기 위한 물이다. ⓒ안병권

얼핏 바다에 떠있는 석유시추선 같이 물에 떠있는 펌프기가 보인다. 과학의 원리를 이용한 궁리가 보인다. 관을 묻어서 물을 퍼올리면 파이프가 지하 깊숙히 내려가는 바람에 수압이 떨어져서 효율이 안났다. 아예 저수지를 파고 물위에 뜨는 펌프모터를 설치하니까 비가 많이 와 수면이 높아지면 높아지는대로, 갈수기 비가 안내려 수면이 낮아지면 낮은대로 펌프가 따라 내려가고 올라온다. 그러면 거의 수면과 같은 높이에서 물을 퍼 올리는 효과가 나므로 아주 후련하게 물 관리가 가능하다.
▲ 유기농품질인증 표지판과 보르도액 입간판 ⓒ프레시안

영덕 강구 오포리 농장에서 영해 정보화활용센터까지 왕복50km가 넘는다. 이 멀다면 먼 길을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저녁 교육에 참석하여 정보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야기농업연구소 까페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유기농사과농장을 한다고 했다. 지난 시절 선입견에 빠져있던 나는 아마 은퇴해서 작은 면적(많아야 1,000평 정도)에서 소일거리로 농사짓고 운 좋게 인증을 받은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온통 사방이 관행농 사과농장이라 쉽지 않은 일인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11월 영덕이야기농업학교 수강생 현장조사차 방문하고 난 딱 벌린 잎을 다물지 못했다. 면적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2,000평, 일반 관행농 사과로도 만만치 않은 면적인데 그는 너무나 분명하고 소신있게 유기농사과 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장을 다 둘러보고 방안에 들어가서 바짝 말라가는 사과를 보고서야 아!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사과가 상품으로 가능하구나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18개 사과농장이 유기농인증을 받은 상태인데, 그나마 상품으로 낼만한 농장은 5개 정도로 줄어든다. 그중에서 영덕 강산농장이 제일 규모가 크다.

이병두씨는 금년에는 기후의 이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다행히 나무들이 잘 견뎌주어서 소출을 보게됬다.

금년 목표가 당도는 16brix 이상, 크기는 400g이상, 경도는 단단하고 야물게로 잡았는데 고온 다습한 날씨로 크기가 작은게 많고 피해과가 많이 나와 걱정이다. 하지만 당도는 16brix를 넘어 18brix까지 나오는 녀석들도 있어서 기쁘다고 이야기한다.

또 유기사과는 수확량이 관행농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지므로 가격을 2배정도에 출하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경영을 잘하고 기술을 개발하여 수확량이 많아지는대로 가격을 인하하여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 사과를 즐길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유기농사과 강산농장을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같이 공부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저런 일련의 작업과정만으로 유기농이 가능한 것일까, 내가 들여다 보지 못한 면면은 얼마나 더 많을까 싶어서다. 유기농사과재배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만은 아닌듯하다.

대지와 사과나무, 이병두씨의 삶 이 세가지 요인이 서로 감응하면서 만들어 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게 분명하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알알이 하나하나 '입으로 먹는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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