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의 본성 그대로 땅심이 허락하는 그대로 기른
세상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들여다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생각에 따라 진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농업도 마찬가지 내가 가졌던 혹은 우리사회가 당연한 거라 믿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 더 나은 개념으로 옮겨가는 현장을 만나면 세상에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식물의 입장에서 농사를 지으면 사람도 편해지고 식물은 고달프지만 건강하게 의연하게 자라난다. 사람의 입장에서 농사를 지으면 사람이 시달리게 된다. 식물이 사람을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식물자체를 죽이는 결과를 자아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대부분의 농사가 사람의 입장에서 농사가 이루어진다.
식물의 입장에서 짓는 농사를 '뿌리농사'라 이름 짓는다. 이 뿌리농사로 농업의 일반상식을 뿌리채 흔드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의 본성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작물이 있고 곤충들이 있고, 시공간의 흐름을 채우는 '다양함'이 가득한 곳이 있다.
그 모든 것들로 인하여 세상은 농업은 아주 의미 있는 영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강원 횡성 청일면 속실리 청일주말관광농원
필자에게 추억이 아주 많이 서린 곳이다.
지난 1996년도 정농생협 사무국장으로 처음 농원을 방문하여 인연을 맺은 이래 정농회(사단법인으로 197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기치를 내건 크리스찬 농민조직)의 원년멤버인 정천근 오영자 여사와 지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느 해인가 물품구매차 출장을 갔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 갑작스레 정천근 선생 온 식구가 급하게 서울에 올라갈 일이 생겼다.
상황 발생하자마자 정천근 선생 왈
'안국장님!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으세요. 아무도 없지만 혼자서라도 재미있게 지내시고 내일 내려올 테니 업무이야기는 그때 나누지 뭐…. 저기 더덕주도 진열장으로 가득하고 안주는 여기 있고 …. 마음대로 드시고 집도 겸사겸사 봐주시고….^^"
유기농 식당도 겸하는 집이라 그날 밤 나는 호젓하게 횡성 운무산의 정취와 더덕주에 흠뻑 취했다. 그렇게 격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일관광농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친구는 그분의 아들 정호영군(36세)이다.
농사는 자연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가 간명하게 드러나는 실천 행위다. 급하게 서둘거나 순서를 바꾸거나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가거나 섭리를 거슬르거나…. 다 안되는 일이다.
작물의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
땅심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길러주는 것.
마음이 예뻐야 짓는 것.
자연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
1. 행복을 꿈꾸는 방울이
▲ 파란 방울이와 빨간 방울이형 |
제가 특히나 방울이 따러 갈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방울이 형제들이 화방 하나에 수십개가 달리는데요,
빨갛게 익는 대로 하나하나 따다 보면
막내 방울이는 아직 파랗거나... 수정이 되어 작은 방울이가 달리면...
그것 하나만 남겨두는 것이 너무 안스러워
작은 또는, 파란 방울이 옆에 있는 빨간 방울이 형을 그대로 두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방울이 두개를 남겨두면
제 마음이 흐뭇해 지는... 저도 참 별나죠?
우리 방울이가
행복을 꿈꾸는 방울이잖아요...
행복한 방울이가 되려면, 누가 봐도 외로워 보이면 안되니까요...
언제나 행복한 꿈을 꿀수 있게 해주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
우리 방울이들, 행복하겠죠?
특히 요즘 밤낮의 기온차가 커서... 방울이가 더욱 맛있어 지네요.
당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요. ^^
2. 미우나 고우나 농장식구
포도는 한송이 한송이 바로바로 따서 1키로 팩에 바로 넣었습니다. 한번 두번 옮기면 그만큼 포도 송이가 약해질것 같아서요. 나름 정성을 다해 한송이 한송이 수확을 했습니다.
보이세요?
포도팩 구석에 들어가 있는 노린재 한 마리.
생각 같아서는 포도와 같이 멀리 귀양을 보내고 싶지만, 이 녀석 외딴곳 도시로 가봐야 죽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얼른 꺼내주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농장식구이고 아직은 녀석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까요.^^
3.여름배추
지금 보시기에는 벌레가 파먹어 잎에 구멍이 숭숭하지만 이정도는 금방 이겨내고 결구가 잘 될꺼에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농장의 배추를 믿습니다. ^^
강원 횡성 청일면 속실리에 있는 청일관광농원 정호영씨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야기다. 30대중반을 관통하는 젊은 농업인의 멋들어진 생각이 읽혀져서 얼마나 반가운지 빙그레 웃는다.
뿌리농업, 무투입농업
'작물은 뿌리가 건강해야 한다'고 교육받고 강조하고 또 반복되는 상식이지만 대개의 경우 거꾸로 풀어간다. 잎을 위하여 옆면시비도 하고 열매를 위하여 다양한 액션들을 취한다. 물을 줘도 보통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뿌려주기도 한다.
청일농원 토마토밭은 거름도 3년째 안주는 무투입 개념으로 방향을 잡았고 일반적인 정식보다 20일 빨리 심었다. 서리를 되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살아남았고 잎도 튼튼, 꽃도 화려하고 작황이 기대가 된다.
사람이 만든 거름은 오히려 작물에 안 좋은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작물이 살아갈 환경을 잘 만들어 주면 알아서 큰다. 이 진리를 깨치는데 시간 오래 걸렸다. 요즘은 그 컨셉으로 인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농사를 짓는다.
보통의 농사는 뿌리근처에다 관주를 설치하여 물공급을 바로 해준다. 가물거나 물이 부족해 시들면 뿌리에다 바로 물이 들어가니 금방 싱싱하게 살아 나는듯 보인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뿌리가 할 일이 없어진다. 뻗을 생각을 안하게 된다. 아니 뻗을 필요가 없지. 사람이 바로 근처에 물을 넣어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라! 뿌리의 본성은 대지로 뻗어나가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여 자신의 생명줄로 바꿔주고 연결해주는게 주 임무인데 뻗어갈 생각을 안하면 이미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선생 부자는 모종을 키울 때 절대로 호스로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물을 뿌려주지 않는다. 반드시 바닥으로 흘려 보내 뿌리를 통해 흡수하도록 자연스러움을 선택한다. 애들을 키울 때 온실에서 마냥 오냐오냐식으로 키우지 않고 거칠게 스스로 알아서 필요에 의해서 자라나도록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허지만 진정한 사랑, 아주 따뜻한 사랑은 기본이다.
어린모종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는 물도 미리 받아놓고서 하우스 실내 온도만큼 물이 미지근해졌을 때 준다. 하나하나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아버지가 자식 키우는 마음 그 자체다.
토마토의 둔덕도 넓고 크다. 관주도 뿌리가 아니고 둔덕 아래골에다 깔아 물을 흘려보낸다. 그리고는 일체 거들떠도 안본다. 처음에 쭈뼛거리던 녀석들이 살기 위한 몸짓을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뿌리를 한 껏 내려 물을 찾아 내려온다. 뿌리가 깊이 내려가고 넓게 퍼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물이 있는 곳에서 생명수를 빨아들인다.
당연히 땅의 기운과 스스로의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어지간한 가뭄과 장애요인 등을 극복하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그렇게 농축된 에너지는 시기에 따라 한꺼번에 자라 오른다. 그리 지독한 서리를 맞았음에도 사람의 우려를 불식하고 끄떡없이 자라난다.
노지 고추밭을 보자.
고추밭도 둔덕을 아주 넓고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추보고 '니가 알아서 살아라'라고 방향을 정해준다. 고추는 아플 새도 없고 병날 새도 없고 게으름 피울 새도 없다. 뿌리는 자신에 의지하는 잎과 줄기와 열매를 위하여 고단하지만 물과 양분을 찾아 치열하게 뻗어 내려간다. 일반고추밭의 뿌리내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게 퍼져간다.
신기한 일은 고추줄기는 밑에서부터 커 나오다가 세갈래로 갈라지는데 뿌리농업으로 하니 마디사이가 아주 짧게 자라난다. 처음에는 병이 아닐까 피었는데 아니올시다. 한번에 다 달리고 고루고루 달리고 익는것도 한꺼번에 익어가는 경향이 농후했다. 거기다 키도 크지 않으니 노동효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작년에는 청일농원 역사상 최고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옥수수는 초당옥수수라 부르는데 생것으로 뜯어먹어도 맛이 좋아 인기 만발이다. 또 구운옥수수라 불리는 것은 구운것 같은 색깔이 나서 붙여준 이름이다.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환호하는 먹거리들이다.
여러가지 작물들
▲ 감자, 김장배추, 더덕, 곰취, 복분자, 청일관광농원은 모두 유기재배인증품 |
아버지,어머니가 세우고 아들이 채우고
1986년 현재의 농장부지를 구입해 농사를 시작하고 1990년 무농약인증을 받고 1995년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감자와 고추로 드디어 유기재배인증을 받았다. 그 이듬해에는 가든(식당)을 개업한다.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에서 청일관광농원은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농촌체험 프로그램, 현장에서 생산한 것들로 이루어지는 유기농 식당의 컨셉으로 뜻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정농회의 원년 멤버이기도 한 정천근씨는 세상을 품는 방식으로 유기농을 선택했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한번 더 고민하고 요모조모 다양한 실험들을 계속한다.
그 결과 운무산 자락의 계곡과 그 물, 비옥한 대지의 에너지로 생산되는 먹거리들은 맛있고 안전했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정호영군은 그 속에서 자라났다.
▲ 아버지와 아들 |
10여년전 정호영군이 학교다니다가 군대가 있을 때다.
1990년대 중반이후 인터넷이 농업에 접목을 시작할 무렵이다. 1997년도 정농생협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정농회의 생산자DB를 근거로 인터넷쇼핑몰을 준비하면서 청일농원을 살폈고 1999년에는 창업부사장으로 인터넷쇼핑몰 '이팜'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청일농원의 컨셉을 만나게 되었다.
그 무렵 정천근선생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선생님, 호영이가 졸업하고 제대를 하게 되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젊은이의 감각으로 인터넷을 농원에 접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겠습니다."
14,000평 청일 속실에 자리잡은 천혜의 농장, 역사와 묻어있는 의미를 살리고 온라인으로 도시민들과 연대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뜻만으로도 훌륭한 일이 되겠지 싶어서 이야기를 나눈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청일농원은 변화했고, 아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정호영군은 대학에서 목공예를 전공했다. 2001년도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인터넷의 바다에 청일관광농원은 순항을 시작했다.
농장 한켠에 목공예 작업실을 만들고 틈틈히 생활에 필요한 작품들을 만든다. 렌즈달린 카메라 가방매고 일하는 젊은 농부로, 수준 높은 사진기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청일농원의 홈지기 윤희아빠 정호영군은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자신의 가족이 살고 농장을 이루는 모든것(벌레,꽃,작물…)들이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카메라 앵글에 담아 세상에 선을 보이고 있다.
아주 많은 도시민들이 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꾸는 꿈 -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농장 - 을 향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가며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이야기로 소통하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환경친화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세운 뜻을 아들이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농업적인 삶의 양식, 그로부터 잉태된 전통과 문화의 총량으로 볼 때 우리농업이 이렇게 망가지고 피폐해진 것은 최근세기의 일이다. 구한말의 조선 지배계급의 오류와 일제침탈기의 수탈농업, 해방이후 50여년간 벌어진 농업희생정책의 결과로 인한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사람들이 오고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주 풍부한 사회였다.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새근새근 잠들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꿈인지 생시인지 빠져들곤 했다. 고비고비마다 견디고 이겨낸 크고 작은 무용담은 여럿의 이야기로 모아져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다. 동네마다 구비마다 골짜기마다 냇가마다 이야기 아닌 것이 없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출현했을때, 나는 우리농업의 복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IT의 기반이 전국의 농산촌에 깔리면서 뿔뿔히 흩어지고, 포기하고 의기소침했던 우리농업의 살아갈 길이 열린것이라고 보았다. 그 시대 벌어진 일, 농촌을 떠난 사람들,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인해 그 관계가 복원될 경로가 열린 것이다.
청일관관농원처럼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역할로 이어받고 협력하고 생각을 보태고 시대의 흐름을 접목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에 일로서 감당하려하면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농장전체를 풀어가는데 필요한 '역할'로 자리매김하면 그 농장 고유한 가치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농사는, 농장은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농사는, 농업은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농사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농업은 우리가 지난 세월을 살아낸 전통과 문화속에서 '낯설지 않음'을 간직한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해낸다.
도시가 농촌을 그리워하고 농촌은 도시를 마음에 품는데 그 둘이 이어지는 연애 '스토리(Story)'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우고 아들이 잇는 청일관광농원의 모습에 흐뭇하고 그들이 꿈꾸고 만들어 낼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고 또 기대되는 바다.
나는 이런 흐름이 우리농업의 현재를 풀어가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농업의 가치가 그간 우리사회를 짓눌러 왔던 '먹고사니즘', '허겁지겁 살아가기' 방식에서 벗어나 대지와 함께하는 조화로운 삶의 기조로 방향을 선회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위대함이 갖는 그 포용성이 다양함으로 우리모두를 유쾌하게 살게 해줄것이기 때문이다.
정호영의 사람대하기 사물 마주하기
정호영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에서 자라나서 그런가 감성이 아주 풍부하다. 작물을 비롯하여 농장내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배제', '죽임', '경쟁'… 같은 것보다는 '상생', '협력','자립'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 처제가 시집가는데 그 처제 내외를 위하여 목공예로 수제침대를 만들어 주면서 하나하나 얹어놓은 말들은 눈으로 안봐도 그들 동서간,형제간의 우애를 얼마나 돈독하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선물을 받은 처제내외와 그들이 잘살기를 간절함으로 빌었을 호영씨 내외가 나누었을 정감어린 마음들이 눈에 밟힌다. |
혼자 남은 토마토가 외로워 미우나 고우나 농장 식구….
난 재네들을 믿어요. 고단하지만 네 힘으로 살아라
농장의 공지사항이나 상품에 대하여 농장의 의지를 도시민들에게 알릴 때 윤희, 운덕이의 해맑은 사진을 걸고 글쓰기를 한다. 내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걸고 하는 약속이니 감동일수 밖에…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켜나간다.
아직 여러가지로 고단하고
어머니 아버지의 일에 대하여 100% 이해 못하고 있고
아버지만큼 몸이 노동에 단련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일에 치여 홈페이지 한장 관리못하는 날도 허다 하지만
그가 꾸는 꿈은 나날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에 일로매진하여 우리사회에 예쁘고 잔잔한 농업적 감동을 전해준다.
내게는 그렇게 살아가는 젊은 농부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살아가는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청일관광농원에 사는 것들
황금벌레, 노린재, 꿀벌, 무당벌레, 메뚜기….
이름을 알거나 모르거나 수많은 꽃들…
그리고
이야기들….
그들이 그립다.
이거 참 잘 생긴 보약이구나
음식을 먹으면서 오감을 만족시키게 된다면 그 음식은 이른바 '양생음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생음식(養生飮食)은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한 음식'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또 중국에서는 섭생(攝生), 섭양(攝養), 보양(補養)등으로 부른다. 중국의 서민들은 공자의 가르침인 인(仁)과 의(義)보다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사는 불로장생만이 더 없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 노자는 섭생, 장자는 양생이라 했다.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잘사는 삶의 요체는 잘 먹는 것, 건강한 것에 기반하는 것이니 우리가 매일매일 대하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1주일에 한두번 우리집 아침밥상에 올라오는 단호박 |
우리 집은 고구마, 감자, 단호박, 가지, 당근…. 제철에 아주 풍성하게 나오는 뿌리채소와 열매채소를 자주 애용한다. 복잡한 요리로 만들어 먹기보다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익히거나 구워서 먹는다. 가끔 고기를 구울 때에도 이 친구들은 아주 요긴한 식재료로 등장하여 입맛을 돋군다.
그중에서 먹을때마다 감탄하는 재료는 바로 단호박이다. 엷게 편으로 썰면 써는대로, 두툼하게 자르면 자르는대로 적당히 배어나온 즙액이 표면을 싱싱하게 하고 짙은 녹색으로 시작하여 연두색을 지나 노란색으로, 급기야는 짙은 주황색으로 펼쳐지는 그 색의 향연에 늘 감동받는다. 그로 인해 함께했던 전체 재료들의 분위기까지 업그레이드 된다. 아주 간단한 것들이 훌륭한 성찬(盛饌)으로 탈바꿈을 하고 각 재료들이 갖는 고유한 본성과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섭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단호박은 내게 아주 친근하고 멋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섭생의 멋쟁이 단호박
단호박의 달디단맛, 혀끝이 먼저알고
단호박의 초록껍질, 세상이 싱그럽고
단호박의 노랑노랑, 눈으로 꿀떡이다
단호박 너로 인해
고운맛을 더하고
색동옷을 입는다
그렇게
품위를 더하는 구나
모든재료 서로서로
모든차이 어깨동무
기꺼이 곁을 주니
어울려서 감흥을 부르고
눈으로 감동을 부른다
색으로
맛으로
뜻으로
그 자체로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몇 년 전 전국 박과채소축제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박과채소(cucurbitaceae vegetables, 科菜蔬)는 1년생 초본식물이며 덩쿨성 식물로 호박, 오이, 참외, 수박, 박, 수세미 등의 채소를 일컫는다.
호박은 남과(南瓜)라 하는데 수박은 서과(西瓜), 참외는 첨과(甛瓜), 수세미는 사과(絲瓜), 오이는 황과(黃瓜)라 부른다. 오이는 언뜻 푸른색을 연상하지만 오이가 익으면 노란색을 띄므로 황과라 뷸렀다. 노각(늙은오이)이 그것이다.
수백종의 박과채소를 만나면서 우리농업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희망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먹을거리라는게 얼마나 다양한 존재적 가치를 지닌 '생명에너지'인지 실감했다. 또 그것들이 지닌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아무 조건 없는 넉넉함과 향기로 유년시절을 영글게 만들어 주었던 어머님의 품속처럼 생을 충만하게 해주는 '즐거운 현실'이구나 판단했다.
▲ 다양한 호박들 |
유기농업 일에 20년을 종사했지만 그저 오이, 수박, 참외, 호박 정도의 인식에 머문 채 '수집'과 '분산'에 바쁘기만 했지 이들 이외에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이야기)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박과채소 분야만 하더라도 일상에서 익숙한 채소 말고도, 맛있고 영양 많고 거기다가 농촌어메니티 요소도 많아 소비현장이나 생산현장에서 '섭생(攝生)의 멋'을 입으로 몸으로 느낄수 있게 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제철에 맞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욕심이 들었다.
조류독감, 중국산 발암물질파동, 말라카이트그린사건, O-157세균, 광우병, 환경호르몬, 사스 등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환경오염의 단면들이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가운데 '여주와 동아', 애호박, 단호박, 참외, 메론, 수세미, 쓴오이, 늙은오이, 국수호박, 국좌호박, 무종피호박, 먹참외,기기묘묘한 수박 등등 수십가지 박과채소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들 인생의 구미를 돋구고 있다.
놀라운 생명짓 , 거침없는 유기체_ 호박
▲ 호박덩쿨손(호박손), 놀라운 생명의 촉각을 지닌 녀석이다. 무엇이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끝에 닿는 것은 모조리 감아 돌린다. 달팽이처럼 말아 돌아간 저 의미는 아주 의미심장하다. |
▲ 지난해 5월 30일, 호박모종을 심었다. 놀라운 기세로 주변텃밭을 점령하고 호박꽃을 피우고 벌들의 잔치 한바탕 벌인 후에 9월 20일경 호박이 달리기 시작했다. |
호박은 기후조건에 대한 적용범위가 넓고 토질을 별로 가리지 않아 모래땅에서 참흙까지 재배가 가능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난다. 건조기에도 강하지만 물 빠짐이 좋은 곳이라야 한다. 자체적으로 수분을 많이 저장하기에 건조에는 이길 수 있지만 수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상하기 쉽다.
텃밭에서 호박을 키워보면 호박의 부피생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 뼘 정도 되는 호박모종을 심어놓으면 주변식물들이 맥을 못 출 정도로 호박이 무성하게 세력을 펼쳐나가는 것을 본다. 옛날에는 호박을 심기 전 인분(人糞)을 흠뻑 뿌려주면 더욱 잘 자랐다. 낮은 야산언덕배미에 똥바가지 들고 거름을 뿌려대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풍겨오던 그윽한(?) 향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부숙(腐熟)이 덜된 인분은 다른 작물에 주면 고사하지만 호박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수분과 양분을 맘껏 흡수하며 발산량 또한 다른 식물들보다 많다. 손톱보다 작은 호박씨로 시작해서 수천수만배 부피생장을 하는 셈이다. 온 나지막한 야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왕성하게 살아간다.
외국의 어느 호박대회 자료사진을 보면 사람키만큼 큰 호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호박의 흡비력(吸肥力)이 다른 식물보다 좋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 시골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중인 늙은 호박의 모습이 정겹고 아직 매달려 있는 수세미의 정감이 올망졸망 잘 어울린다. |
호박의 주요성분은 수분이 90%를 차지하며 채소가운데 녹말이 가장 풍부하다. 비타민A가 많고 비타민B,C도 함유되어있다.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은 이유는 호박의 당분이 소화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친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호박의 주성분은 녹말이고 그 성분은 감자와 비슷하다.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고 잎은 나물로 쌈을 싸먹고, 애호박은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는다.
호박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늙은 호박이 갖는 범용성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낳은 산모의 산후조리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몸의 기가 쇠잔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얼굴은 푸석푸석해지고 윤기가 없어지게 된다.
호박은 그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기를 보호해주는 작용을 하고 이뇨를 원활하게 해주고 갈증을 없애준다. 그외에도 말려서 쓰는 호박고지, 호박범벅, 호박가루, 호박찜, 호박죽 등 전통의 요리법도 많다.
단호박
호박은 멕시코남부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동양계호박(C. moschata), 라틴아메리카 원산의 서양계호박(C. maxima), 멕시코북부와 북아메리카원산의 페포계호박(C. Pepo) 3종류로 나뉜다. 단호박은 이 가운데 쪄서 먹거나 건강식으로 먹는 서양계 호박을 일컫는다. 맛이 밤처럼 달아 밤호박이라고도 부른다.
▲ 녹말과 무기염류가 풍부하고 비타민B, C가 많이 들어있어 주식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도입해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도입해서 널리 재배하고 있다. |
우리집 식단에서 단호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용하게 쓰여진다. 특히 아침식사에서 단호박이 갖는 의미와 눈으로 보이는 맛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풍성하게 해준다.
▲ 고구마, 감자, 버섯, 당근 등을 구울 때 같이 사용한다. 단호박이 갖는 칼라풀한 감성은 입맛을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된다. 진노랑, 혹은 진주황이 갖는 식감자극도 일품이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단맛은 섭생의 의미를 한층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
▲ 주식겸 간식으로 쪄 내오면 녹색과 진노랑색이 곁들여지는데 그 자체로 일품먹거리가 된다. |
▲ 서천 아리랜드에서 생산한 미니단호박이다. 달걀크기와 견줘보니 앙증맞기 그지없다. |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데다 단호박이 갖는 타 식재료와의 친숙성으로 인하여 강호에는 수백수천가지의 개성 있는 단호박 요리들이 가가호호 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드는 사람 각자각자의 성질이 들어가고, 손맛이 들어가고, 아이디어가 보태지니 단호박요리의 종류는 만드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것이다.
단호박 찜, 단호박 샐러드, 단호박 경단, 단호박 쿠키, 단호박 죽, 단호박 피자, 단호박 그라탕, 단호박 푸딩, 단호박 치즈구이, 단호박 조림, 단호박 돼지고기조림……
바이오다이나믹농법(생명역동농법)
충남 서천 아리랜드 정의국씨 내외가 아리아랑 미니단호박을 키워낸 농법이다. 정농회회원들은 1994년부터 생명 역동농법을 도입하여 실천하고 있다.
매년 행성들의 주기를 파악하여 농업에 바이오다이나믹 달력을 사용하는데, 달이 점점 커가는 음력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작물의 씨를 뿌리면 발아도 잘되고 생육이 균일하며, 보름이 지나 그믐까지는 수확을 하여 저장하거나 식용할 것을 추천한다.
즉 쉽게 이야기하면 아래와 같이 작목별로 날을 가리고 작목을 구분하여 농사짓는 것이다.
● 열매의 날 : 곡물, 콩류, 수박, 오이, 가지, 피망, 호박,고추...
● 꽃의 날 : 모든 꽃과 허브류
● 잎의 날 : 시금치, 배추, 양배추, 쑥갓, 부추...
● 뿌리의 날 : 무, 당근, 생강, 양파, 마늘, 감자, 고구마...
● 휴경의 날 : 농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
1924년 루돌프슈타이너박사(Rudolf Steiner, 1861~1925)에 의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농법으로 하늘의 힘이 땅을 살리고, 작물과 균형 및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므로 이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릴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주와 지구, 달과 지구 및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관계를 농사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농사를 일컫는다.
물량중심의 이익에 눈멀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탈하는 농업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땅과 하늘이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정농회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단호박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생산과정에서, 주방에서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한가지 작물이 자리를 잡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따라서 생겨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야기들은 엄마의 입에서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갈 것이다.
반대로 고유한 우리종자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일 테니 대저 우리농업을 귀하디 귀하게 여겨야 할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되겠다.
'섭생의 멋'과' 양생의 맛'을 일깨워준 단호박이 고맙기 그지없다.
제대로 된 가을의 첫 사과 맛 홍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정사로 보던 야사로 보던 아주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왕의 다음을 잇는 후사(後事), 즉 세자책봉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숙종대의 장희빈과 인현왕후처럼 여인들의 역사도 결국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왕이 되느냐 아니냐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야기였다.어린 시절 가장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세종이 왕이되는 이야기다.
태종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이 첫째가 양녕대군 둘째가 효령대군 셋째가 충녕대군이었다.
이제(李褆) 양녕대군은 태종 이방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서에 능했고 영민하기 그지없던 그였기에 자연스레 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아버지 태종이 권력을 위하여 정적들을 제거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데다가 셋째인 충녕이 왕의 자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종이 더 총애한다는 사실을 알아 차린다. 하여 일부러 왕도의 법도를 무시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자유분방하게 행동거지를 가져가 결국 폐세자 당하고 셋째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둘째 효령대군과도 의논을 하니 효령대군도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만다.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스님의 형이니
부러움과 거리낌이 없도다
형제들과 우애 좋게 지내다가 천수를 다하고 운명하면서 남긴 양녕대군의 싯구다.
영,정조 시대에도 결국 왕이 되지 못하고 뒤주 안에서 죽어가야 했던 사도세자 이야기도 있다. 저간의 속사정이야 당시 사람들의 몫이고 이런 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고 보면 맏아들 상속의 원칙이 순탄하게 지켜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여러 이유로 인해 상황이 비켜간 것이다.
그런데 사과나무에서도 대를 잇는 우여곡절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게 아닌가?
▲ 제1번과와 2번과가 냉해를 입어 밀려나고 3번과가 열매를 달기 시작했다. 올해 이런 현상이 90%정도에 이른다. 농부의 설명이 구체적이다. |
▲ 화방6개 올해는 봄철 내내 벌어진 이상기후로 인해 냉해를 입어 제1번과가 솟았다가 도태되고 2번과가 대신하였다가 또 도태되고 3번 과가 자리를 잡았다. |
사과나무가 얼마나 영리한지…
꽃눈 하나에서 하나의 꽃만 틔우고 수정하여 한 개의 열매를 맺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꽃눈으로 6개의 꽃을 피우고 수정이되면 [그림2]처럼 6개의 화방이 생기고 열매를 매달 준비를 마치는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8월 중순 필자가 농장을 방문한 날이다. 다른 지역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올해는 '3번과'가 대세라서 씨알이 굵은 게 별로 나오질 않고 중간크기가 주종을 이룰 것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3번과?" 사과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해서 물었고 그 신기한 사과나무의 생명짓에 푹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유통 일을 하면서 사과를 참 많이 다루고 판매하고 구매하는 일을 했건만 정작 사과나무가 풀어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혀 살펴보질 못했다.
사과나무 입장에서는 다음 대를 이을 후사를 생산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일 터,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다하여 다음 대를 생산한다. 거기다가 더 정확하게 이어가기 위하여 6개의 꽃을 한 꽃눈에 달리게 하여 만일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안목도 지니게 된것이다.
▲ 4월에 가운데 조금 큰 꽃몽우리 1개와 5개의 꽃몽우리가 모여있다. 각 몽우리들이 활짝 꽃을 피우면 벌들이 날아와 수정이 된다. 수정이 이루어진 꽃들은 꽃잎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화방 6개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사과가 익어가는 것이다. 역시 가운데 있는 1번과가 제일 크다. |
자연이 정해준대로 1번 꽃봉오리가 세자책봉을 받은 것이다. 제일 크게 진보라색을 띄고 가운데 우뚝 솟아올라 햇살을 받고 영양을 받아 다음을 준비하는 영광의 자리다. 그런데 아뿔사! 냉해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등 예기치 못한 상황(기상이변, 외부충격)이 오면 그만 도태되어 위축되어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사과나무는 2번 화방을 자연스럽게 올려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한다. 그런데 올해처럼 그 두번째 화방 마저 냉해로 인해 낭패를 보게 되면 3번과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셋째가 자리를 잡으면 나머지는 적과작업을 거쳐 일일이 손으로 제거한다. 그 시점부터 나무는 최선을 다해 영양물질을 공급하기 시작하여 빨갛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과나무는 대를 잇기 위한 안전판으로 6개의 꽃을 피우고 6개의 화방을 이루게 하고는 거기다 한술 더 떠 문제가 생기는 경우 6형제가 차례대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안배한 것이다.
"야! 이거 옛날 왕세자 책봉하는거 하고 똑같네^^"
"맞아요! 딱 그거에요"
사과나무의 경이로운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처럼 권모술수로 서로 해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대로, 순서대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과의 크기는 1번과가 그대로 진행이 되었을 경우에 대과가 많이 나오고 2번이 그 다음으로 크고 3번과가 대세인 올해는 중간크기가 90%정도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상은농장 전체적으로 보면 달려있는 과수의 숫자는 예년보다 더 달렸다.
작년에는 '뺀질이와 멍텅구리' 사과로 이야기를 더했고 올해는 인간사 세자책봉처럼 나름대로의 '생명잇기', '삶의 방편'을 펼치는 사과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름사과 하양과 홍로
▲ 9월 상순이지만 수확은 8월 하순부터 가능하다. 무게는 300~350g으로 중간 정도이고 형태는 긴 원형이다. 껍질은 짙은 홍색에 줄무늬가 있다. 속살은 흰색이며, 조직이 치밀하고 과즙이 많아 맛이 매우 좋다. |
푸른색깔의 아오리 사과가 새해 첫 사과로 여름철에 세상에 나오지만 사과고유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 해 첫 사과 맛은 역시 9월초순경 제 맛이 드는 하양, 홍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맞다. 다른 과일들과 구별되는 아삭아삭한 식감과 신맛이 가미된 단맛은 무주 상은농장 사과 홍로의 비결중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홍로는 단맛에 방점을 찍는데 신맛이 가미되면 햇 사과의 그윽하고 깊은 맛은 나무랄 데가 없게 된다.
게다가 여름사과의 큰 결점중의 하나가 저장성이 아주 많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조금만 지나도 푸석푸석해져서 아차 싶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필자도 서너 번 여름사과를 유통하면서 손해를 본적이 있다. 상은농장 홍로는 일반 홍로들에 비해 더 오랫동안 상온에서 저장이 가능하다. 아주 중요한 여름사과의 장점중의 하나가 되겠다.
▲ 무주상은 농장은 대덕산자락 해발 580여m높이에 위치하고 환경오염원이 없는 청정지대에 소재한다. 일교차의 폭이 크고 햇살이 과수원 전체를 늘 휘감아 돈다. |
상은농장의 사과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합작품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농사를 지으며 생각을 하고 또 생각해봐도 "자연에 가까워야 제 맛을 내더이다"는 농부의 확고한 원칙이 재배의 전과정과 수확의 과정에 걸쳐 반영이 되므로 맛있는 사과가 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사과를 사과답게 만들고 그 격을 높게 만드는 12가지 미량원소(붕소, 아연, 마그네슘, 철, 망간, 황…)를 소중하게 관리하고 사과나무와 관계 맺게 하여 다른 사과들과는 구별이 되는 맛을 구현하는 것이다.
▲ 농장의 부사가 8월 볕에 영글어 가고 있다. 두달여가 지나 첫서리가 내리면 이 친구들은 '뺀질이와 멍텅구리사과'로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존재들이 된다. |
농장전체의 수세가 아주 건강해 보이고 달려있는 홍로, 양광, 감홍, 부사… 등등 싱그런 기운이 넘쳐난다. 깜깜한 밤에 들어가보면 사과과육의 이미지들이 은빛으로 뿌옇게 드러나 신비롭게 보여진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칠흑 같은 밤 흰색소복빛깔이 투영되는 으스스한 밤풍경(?)과 비슷해진다.
▲ 주인농부 양한오 |
8월 16일자 현장에서 살짝 빨간빛이 도는 홍로를 한 개 따서 입에 베어 물어 분다. 아직 보름여 이상을 더 있어야 제대로 익는 거지만 풋사과의 맛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다. 신맛이 강하고 단맛은 아직이다. 그런데도 먹을만했다. 아 풋사과 맛은 이런거구나… ^^
농장을 둘러보고 올라오는 길 내내 나는 참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 혼자 슬몃슬몃 웃었다. 사과 하나하나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고, 꺼내서 살피면 살필수록 꿈결을 거닐 듯 재미에 빠져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부사가 나올 무렵에는 더 기가막힌 재미난 이야기가 또 있다고 하니 잔뜩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농사를 잘 짓는 고수(高手)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확하게 드러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기가 키우는 작물들을 사람의 살림, 사람의 생각에 빗대어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 대하듯 작물을 대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하니 알아듣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작물이나 보통 영리한 존재들이 아니다. 아니지, 사람은 아주 개인적인 이익에 눈멀어 공생(共生)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작물들은 섭리(攝理)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다른 환경을 맞이하며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꽃6개를 피우고 화방6개를 만들어 놓고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순서대로 자기역할을 하도록 안배한 사과나무의 뜻 또한 곰곰이 곱씹을수록 정감이 간다.
그 경이로움에 마음이 가 닿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 왜 6개인지도 사과나무는 알고 있겠다. 지금까지는 6개 화방으로 대응하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7개가 될지 8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혹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다음 생명을 이어가는 안전핀을 만들지 않을까?
자연에 가까워야 제 맛을 낸다
격(格)이 높은 사과는
재배하는 농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 어디로 가겠는가?
사과나무로 옮겨간다
농장의 지리적 조건과 풍광
색다르게 도전하는 재배방식
단순한 단맛보다 아삭거림
약간의 신맛이 가미된 고유한 풍미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색택과 장기저장성
저마다의 고유한 향이
정확하게 발현이 된다
대를 이으려는 나무의 본성에
우리들의 마음이 다가가고
자연에 가까울수록
제 맛을 내더이다
한과가 이렇게 깔끔한 맛이었나?
요즘에는 시험 볼 때나 집들이, 이사 혹은 창업이나 개업하는 지인들을 찾아갈 때 무엇을 들고 어떤 마음을 담고 찾아갈까?내 어린 시절 70~80년대에는 성냥, 양초와 같은 것들을 어른들이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라"는 덕담과 함께 당시 UN표 곽성냥은 단골 필수품이었다. 이후에는 "당신의 일이 술술 잘 풀리라"며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가기도 하고…
요즘에는 수저 셋트, 커플 속옷 등등 기발한 생각들로 중무장한 선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각종 시험 때는 착 붙으라고 엿을 건네는데 엿이 가진 본래의 성질보다 화려한 포장에 더 치우친 감이 있어 오히려 의미가 가벼워지는듯 하다. 나는 오래 전에 조카녀석 수능 보던 날, 인생의 항로 방향 잘 잡으라고 '나침반'을 선물로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선물로나 가족 주전부리로 좋은 의미, 좋은 인연들로 가득한 이런 선물은 어떨까? 맛도 있고 프레쉬하고,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고 작은 것이 아주 크게 일어나는 성질도 있구. 행운을 가져다 주는 유쾌한 우리 전통과자 '유과' 말이다.
▲ 찹쌀과 콩가루로 만든 '바탕(반대기)'을 깨끗한 기름에 튀기면 이렇게 크게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튀김 옷을 입히면 아주 깊은 맛, 주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우리과자 '유과'가 된다. 뻥튀기처럼 허맹맹하게 부푸는 것도 아니고 본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실속있게 일어나는 성질을 맛보게 된다. 곡물가루에서 저렇게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발견하여 생활에 응용한 조상님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
사람의 '바탕', 사물의 '바탕'
세상의 모든 일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둘의 조화에 의해서 세상은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만남은 하늘에 속한 일이고, 관계는 땅에 속한 일이다.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과로 남고, 사람의 삶은 만남과 관계가 조화로우면 그만큼 아름다워진다. 그렇게 시작(始作)이 일이 되어가는 과정(過程)이 되고 결과(結果)를 낳게 된다. 그 결과(結果)는 다시 시작(始作)이 되고….
그것을 인연(因緣)이라 부른다.
경북 군위 부계면 창평리에 그 인연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월한과에서 한껏 부풀어 오르는 인연의 즐거움을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맛보도록 한다.
▲ 유과의 기본이 되는 '바탕'이다. 우리말로는 '반대기'라고 부른다. 찹쌀과 콩이 기본이고 흑미, 쑥, 대추가 자연색상의 역할을 하며 혼입이 된다. 이 '바탕'이 모든 인연의 출발이자 끝이다. |
일원한과 설 완 대표는 2가지의 바탕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그 소중함을 절실히 헤아리고 있다. 한가지는 '사람'이란 바탕이고 다른 한가지가 바로 유과의 근본 '바탕'이다.
'바탕'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1. 물체의 뼈대나 틀을 이루는 부분
2.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을 이루는 기초
3. 타고난 성질이나 체질
4. 그림, 글씨, 자수, 무늬 따위를 놓는 물체의 바닥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우리말로 '반대기'는 가루로 반죽한 것이나 고기 다진 것 등을 얄팍하고 둥글 넙적하게 만든 조각을 지칭하니 '반대기'를 '바탕'으로 불러도 무방한 일이다.
8월 하순 추석을 준비하느라 한참 바쁜 일월한과를 찾았다. 보통 추석이나 설, 한달 전에 일을 시작하여 미리 준비를 한다.
▲ 숙성이 잘된 바탕을 카놀라유에 적정하게 튀기면 아주 은은한 색깔을 표현하면서 부풀어 오른다. |
▲ 속 색깔도 원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찹쌀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
▲ 달고 맛있고 속이 실한 주전부리 유과가 완성이 된다. "크게 일어 나세요" "시작은 미미하나 끝내 창대 하세요^^" |
인연이 바탕을 만들고 그 바탕이 다시 인연을 만든다.
지난 2002년 가을, 설 완 대표는 대구 달성 유가농협과 손잡고 한과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기계가 들어오기 하루 전에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기계반입을 일단 연기시키고 한 달간 경북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적합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이제 살고 있는 전셋집도 비워야 하는 그 시점에 군위 부계면 창평리 이 곳을 와보고 일단 비어있는 곳이라 기계라도 넣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계약한 곳이다.
공장 한 켠에 살림집을 꾸미고 계약기간 만료만 되면 나간다 생각하고 대책 없이 몇 달을 보냈다. 이사올 무렵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찾아와서 "여기는 뭐 하는 곳인고?" 관심을 표했고 일거리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한과기술이래야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라 아무 자신감도 없이 우물쭈물하던 중 설이 다가왔다. 주변에서 설인데 뭔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격려를 하고 용기를 주어 공장을 다녀가셨던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을 소개받았다. 바로 지금까지 옆에서 아들 같고 동생 같은 설완 대표와 8년째 일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여사님들이다.
내가 방문하던 날도 단순히 급료 받고 일하는 직원이 아니고 당당히 자기 전문역할로서의 포지션을 직원 분들에게서 느꼈다.
"세상은 아이러니하죠? 계약이 틀어져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유가농협에서 글쎄 첫 주문을 500만원어치나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그 주문은 일원한과의 명줄을 살리는 의미가 있었고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거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설 완 대표가 쓰는 재래종 찹쌀은 유가농협에서 전량 구매하고, 유과는 유가로 납품하고 이름도 비슷하고…. 이 또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겨우겨우 그렇게 연명하면서 유과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골에서 홍보 없이 살아 남으려면 한번 구매한 고객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줄 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바로 망한다고 생각했다.
▲ 일월한과 삼색유과, 유과는 '한과의 꽃'이라고 부른다 |
그래서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여 실천했다.
원료 전부를 최고의 국산품으로 하고, 찹쌀도 야무진 재래종 찹쌀을 취급하는 유기농협에서 구매했다. 산화방지제는 물론 착색제, 합성보존료 같은 화학첨가제도 일체 배제하기로 한다. 또 기름은 카놀라유만 쓰고 정화기를 사용하여 맑고 신선한 상태의 기름에서 작업한다. 또 여러 번의 실험 끝에 바탕(반대기) 반죽할 때 소주를 사용하고 충분히 숙성시켜서 유과를 만든다.
법정 유통기한은 6개월이지만 소비자들의 손에 2개월 이내에 도달이 가능하도록 작업일정을 맞춘다. 그래서 일월한과는 늘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각!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의 인연, 찾아오거나 주문하는 고객들과의 인연, 거래처들과의 인연에 유난히도 정성을 바치기로 했다.
"망하지 말자, 만약 망한다면 우리나라 한과 업체중에서 제일 늦게 망하자.
그리고 사람 - 가족, 직원, 고객 - 에 대해 책임을 지자.
적어도 그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일까 2004년 한국전통식품 BEST5 선발대회가 열리는데 경북에는 한과업체가 몇군데 안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접수하고 예선 통과하여 바로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그 전국대회에서 동상에 입상하게 된다. 그때 같이 수상한 업체들은 굴지의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내노라하는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한달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샘플을 보냈고 한달 뒤에 서울로 올라가 계약을 했다. 베스트5 선정업체와 이미 청와대 납품경험이 있는 업체들의 한과를 다 받아서 먹어보고 결정했는데 유과는 일월한과, 약과는 신궁방, 강정은 합천한과가 납품을 하고, 8도의 특산물을 고루 섞어서 선물세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과의 꽃인 유과를 생긴지 2년 된 일월한과에서 납품을 하게 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어떤 맛일까?
▲ 일원한과의 작품들 |
깔끔하고 '프레쉬(Fresh)'한 맛이다. 아니 한과를 먹으면서 프레쉬하다고 느끼다니 의아해 하지만 우리 몸이 느끼는 맛은 이구동성이다. 맥아당 성분이 70%이상인 최고급 물엿을 쓰는데 이 친구는 단맛이 덜하여 상쾌함의 밑바탕이 된다. 재래종 찹쌀의 야물진 성질과 자연스런 색감은 먹는 이로 하여금 산뜻한 은은함을 맛보게 한다. 흑미 유과는 보라색으로, 대추 유과는 노란 갈색으로 녹색의 쑥 유과는 연두색으로 연해진다. 연한 파스텔톤의 여운이 비주얼로 깔끔하게 남는다.
거기다 더하여 일월한과에는 사람 사는 맛이 있고, 인연과 인연 사이에 녹아있는 감칠 맛이 더해진다.
고객의 방문매출액이 거의 50%를 차지한다. 명절 전후 고객들은 공장에 찾아와서 기다리고 이야기하고 맛보고 기대감을 가진다. 한바탕 유과잔치가 벌어진다. 즐겁게 기다리고 현장의 분위기를 만끽한다. 기다림이 미안해서 설 대표는 덤으로 더 넣어주고 마음으로 고맙고 서로 보태는 분위기가 입맛에 앞서 마음 맛을 더한다.
해마다 때가 되면 택시를 대절하고 와서 한 차 구입해가고 고객이 A 농협에 선물로 보냈고, 그 담당자가 주문을 하고 다시 다른 인근 B농협으로 소개를 했다. 다시 그 농협은 또 다른 C농협으로 소개를 하고…. 그렇게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노인분들은 전화로 "아들도 외국 나갔고 인터넷으로 돈도 보낼 수 없고, 움직이기도 곤란하다. 그러나 너네 유과는 먹고 싶다"고 강짜 아닌 강짜(?)를 부리곤 한다. 그러면 무조건 갖다 드려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노인고객들께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장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갔을 때의 충격이 컸다. 해서 저 어른께 이번에 못 보내드리면 혹 다음에 못 뵐 수도 있으니까 계실 때 챙겨드리려고 노력한다."
어떤 회사로 남고 싶은가?
▲ 활짝 웃는 설 완 대표, 경북대학교 농생물학과 86학번이다, |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전화하고 지내지요? 밤12시에도 전화 하고…^^
마찬가지 일월한과가 매일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떠오르면 푸근하고 안심되고 반가운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아, 그랬지! 군위 일원한과 유과 맛이 아주 기억 나거든… 또 그 분위기가 좋았어. 그 친구 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노력한다.
▲ 사무실 한 켠에 놓여있는 오래된 어항 |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차 한잔 나누는데 금붕어 이야기를 한다. 저 녀석들과 보통 6년 이상 된 인연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저 중의 한 녀석 어항 오른쪽 모래바닥위의 갈색 붕어는 6년 전에 큰아이가 초등학교 등교 길에 조그만 어항에 담겨있는 꼬마를 백원인가 얼마인가 주고 샀는데 오늘날까지 잘 자라고 있으니 아무래도 우리 집과는 인연인 모양"이라고 웃는다. 지금껏 살아준 저 녀석들이 고맙고 대견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설 완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들은 모두 아주 오래가는 모양새를 띈다.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이야 말할 나위 없고…. 여사님들은 일원한과의 일에 충실하기 위하여 자신이 짓는 농사의 일감을 많이 줄여나가고 있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성이 높아지며 평생의 인연으로 승화되어 간다.
시골생활 10년 가까이 하면서 가장 크게 남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 형제를 두었는데 이 녀석들에게 자연과 추억을 남겨줄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큽니다."
시골학교가 워낙 작다 보니 부족한 것도 있지만, 유년시절의 꿈과 감성을 자연속에서 최대한 감응하면서 보낸 것이 눈에 보인다. 중학교까지 약 10리 가까이 되는 거리(3.5Km)인데 아이는 걸어 다닌다.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걷거라"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머금는다.
"과거의 나를 보려면 지금의 나를 보면 되고, 미래의 나를 보려면 마찬가지 지금의 나를 보면 된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설 완 대표의 일월한과 스토리는 여러모로 생각할게 많았다.
두툼한 생김새와 걸걸한 성격, 호방한 웃음….
원칙적이고 단호한 기준. 그의 사물을 대하는 시선….
나하고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제2석굴암
▲ 멀리서 본 바위산 중간에 있는 석굴암, 모전석탑, 소나무 숲, 가까이서 본 석굴암 |
일월한과에서 5분 거리에 제2석굴암이 있다.
신라19대 눌지왕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 하던 곳으로 화상께서 처음 절을 짓고 그 후 원효대사가 절벽동굴에 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제보살)을 조성 봉안하였다. 이 석굴암은 7세기경으로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선 선행양식으로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다.
경북 군위 부계면, 일원한과와 제2석굴암 소나무 숲과 팔공산 계곡의 풍취, 이야기 가득한 문화유적들…. 아이들과 함께 먹거리여행, 문화여행 다녀오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불교의 기본 컨셉 또한 인연(因緣)이 아니던가? 전생(前生)과 현생(現生)과 내세(來世)가 '윤회하는 인연'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옷이 더러우면 세탁을 하고, 몸에 때가 끼면 씻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에 때낀 바는 벗을 줄을 모른다. 아집의 때, 어리석음의 때를 벗으면 우리의 본래 심성은 밝아지고 그것을 일러 자각이라고 한다.
오늘날처럼 비인간화된 기술문명사회에서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내재해있는 자신의 등불을 밝히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표류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서로 믿고 의지해 사랑하며 인간의 길을 함께 갈수 있도록 환히 밝혀야 된다.
경내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마음의 등불]中
일월한과 현장방문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다. 달포 전 설 완 대표가 나의 이야기 구상에 도움이 되라며 나에게 보내준 메모를 들여다 보았다.
- 인연 –
-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
- 한과를 싫어했던 사람
- 이런 맛 없는 한과라면 우리 조상들이 좋아 했을까?
- 내가 먹어서 맛이 없다면 팔지 않겠다
- 조금은 다른 한과
- 無에서 시작, 다르게, 또 다르게
- 운이 좋아 참가한 대회에서 입상
- 한과가 맛이 있다며 갑자기 걸려온 청와대 전화(샘플 보내라고)
- 2010년까지의 지속적인 발전
- 고객과 일하시는 여사님들은 일월한과 발전의 일등공신
- 법정유효기간은 6개월, 일월한과는 한 달 이내에 고객의 입속으로
- 더불어, 어울려 사는 삶
- 주위의 도움
- 시골에서 잘 자라 주는 아이들
- 걸어서 등교하는 장한 큰 놈
- 기발한 상상력으로 기쁨을 주는 작은 놈
- 군위가 만들어준 선물
- 이런 우리 아이들
- 재료는 내가 아는 한 제일 좋은 것만
- 평소에는 바탕 작업
- 일월한과 설완
처음에는 잘 연결이 안되던 퍼즐이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서로 간보고, 분위기에 취하고나니 하나 둘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거창하고 번지르하지는 않지만 한번 맺은 인연이 그 다음 인연을 낳고, 시골에서의 삶이 아이들의 꿈을 풍요롭게 해주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감성이 서로 감응하는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문득 생각나는 그리움으로 자리하고 싶은 그 마음…
그렇게 일원한과 설 완 대표와 임직원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농사는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에 사람의 인연이 보태지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뜻은 온전하게 그들이 만드는 결실 '유과'로 옮겨가니 그 유과 맛 오죽하면 여북하랴!
깔끔하고 프레쉬하다. 옛날 할머니가 집에서 해주시던 맛이다.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 맛.
인연으로 가득한 맛.
일월한과를 들여다 보는 일정은 유쾌하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막는 음식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 다큐멘타리 영화를 자주 감상한다. 인류 4대문명, 지구, 바다, 우주, 자연, 역사 같은 내용을 다룬 것들이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오늘과 그 당시 혹은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돌아가 들여다 보는 여정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중 기억나는 것 하나가 중국 황하문명의 이야기다. 역사의 전개와 사람의 인식의 틀을 넘어서는 황토문명의 크기와 그 당시의 생각과 결과물들에 매료되곤 한다. 그렇게 선명하게 누런 흙 '황토(黃土)'는 '만물의 근원'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 중국의 황토고원지대 |
흙은 만물의 근원이다.
황토상황버섯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맨 처음 떠오른 전제였다. 농업의 근거로서의 흙의 의미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황토가 갖는 단순한 흙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들….
ㆍ 생기력 : 우리 몸의 기(氣)의 흐름을 원할하게
ㆍ 습도조절 : 습도가 높으면 습기흡수, 낮으면 습기발산
ㆍ 온도조절 : 바깥의 더운 열기를 막아주고 반대로 추울 때는 온기를 내어준다
ㆍ 통풍 : 황토 1g에는 약 2억 마리의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이 산다. 생물이 숨을 쉬듯 황토도 생물처럼 숨을 쉬어 공기를 순환시킨다.
ㆍ 흡수력 : 탈취, 탈지의 성질
ㆍ 항균력 : 곰팡이 및 인체유해균 서식방지
ㆍ 건강성 : 원적외선을 방출하여 혈액순환촉진, 스트레스해소, 피로회복에 좋다.
바다생태계에 이상기온과 환경오염으로 적조현상이 나타나면 누런 황토를 바다에 뿌려서 문제를 해결한다. 온돌, 기와, 벽체, 옹기….
우리민족의 일상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때론 그 가치를 잊어먹고 지내는게 우리 황토다.
국내에서도 황토의 효용성에 대한 연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아주 다양한 상품으로 응용되어왔다. 농산물 유통에 종사하면서 만난 인연도 돌이켜보니 부지기수였다. 서산 황토 육쪽마늘, 무안 황토양파와 고구마, 황토먹인 한우, 황토를 걸러 받은 물 지장수…. 전통가옥의 건축재료, 보온 및 보냉, 원적외선 이야기 등 가만가만 둘러보니 황토는 우리의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요 의미였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토매리에서 난 또 하나의 황토이야기를 만났다. 황토에서는 버섯재배가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황토재배를 성공시킨 황토상황버섯농장 류병창씨가 그 주인공이다.
토매란 이름은 이 지역의 언덕이 좋고 흙의 질이 좋아 토구라 불리웠고 음력 2월인데도 매화가 피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둘을 합하여 토매가 된 것이다. 토매리는 '갓 시집온 며느리신발에 묻은 흙(황토)이 3년은 되어야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누런 황토 흙이 많다. 그 고유함에서 나온 특산물로는 '의성 황토 쌀', '의성 황토마늘'이 유명하다. 거기에 황토상황버섯을 한가지 더해야 할 듯하다.
상황버섯재배, 면역을 재배하는 것
버섯류는 오래 전부터 민간 전통한약으로 전래되어오며 각종 질병에 대한 민간치료제로 자주 이용되어왔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 버섯류가 생산하는 기능성 생리활성 물질은 부작용이 적어 독성면에서 매우 안전한 반면 인체 면역계의 기능을 강화시켜 탁월한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왔다.
상황버섯의 우리말은 목질진흙버섯이다.
상황버섯 이야기를 만드는데 보름 이상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수십 번 망설이고 고민했다. 일반 과일이나 채소 혹은 곡물처럼 우리네 일상에서 친근하고 소용(所用)이 가까운 것들과는 달리 상황버섯이라는 실체는 엄중하다 싶었다. 느타리나 표고, 팽이버섯처럼 일상식품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약용, 혹은 항암, 또는 면역체계의 강화 같은 약리학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성(藥性)물질로 들여다 보기에는 내가 전문성이 떨어지므로 함부로 처신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성 현지 농장을 두번 방문하여 자세히 버섯의 일생을 공부하고 살피게 되고, 그 식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이 또한 우리농업의 중요한 범주로 다루어야지 싶었다. 오롯이 진정성을 담아 농사짓는 늙은 농부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그 Key는 '면역'이었다.
▲ 상황버섯 종균이 심겨져 있는 참나무 원목을 의성의 좋은 황토를 바닥에 깔고 심는다. 아래 우측은 6월 중순경의 농장내부모습 |
▲ 8월의 상황버섯농장의 모습이다. 같은 게 하나 없이 제 각각의 고유함을 극성으로 내밀고 있다. 이것들이 다 면역을 강화시켜주는 주인공들이다. 사람도 같은 얼굴이 수십억명중에 하나 없듯이 상황버섯들도 마찬가지다. |
▲잘 된 버섯농사를 기뻐하는 류병창 |
상황버섯농사의 애로점은 병충해 방제에 있다. 모든 농산물에 장해요소가 있듯, 상황버섯 어린버섯의 밑부분 보드라운 곳에 번식하는 벌레가 있는데 이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살펴서 제거해내야 한다. 농약에 중독되어 고생해본 아픔이 있는 류병창씨는 그 일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해낸다. 더군다나 무농약인증을 받은 상태이므로 더더욱 사회와의 약속은 엄중해지기 마련이다.
두번째로는 판로의 문제인데 시장에서 그간 온갖 장난을 친 사람들이 많아서 늘 진짜 가짜 논쟁이 벌어지고 수입원산지를 속이는 경우도 빈번했다. 해서 상황버섯의 면역강화와 관련한 이야기와 탁월한 효능, 그리고 그 물성이 갖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 논쟁에 휘말리면서 시장이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 진품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법이다. 어느 소비자들은 농장으로 직접 와서 흙도 담아가고 원목나무에 달린 그대로 가져가기도 한다. 품질의 안정성과 농부의 마음을 보고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다.
면역(immunity, 免疫)은 우리 몸을 지키는 군대
▲ 황토상황버섯 진품 |
옛날 전염병(역병)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이던 시절, 전염병에 의해 부모형제 다 잃어버리고 동네 사람들마져 다 죽어버렸지만 용케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늘이 도운 것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면역체계가 가져온 생명방어 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면역은 주로 외부침입자에 대한 인체의 방어체계를 말한다. 외부인자(외부침입자)는 항원(抗原:antigen)이라 하며 병원미생물 또는 그 생성물, 음식물, 화학물질, 약, 꽃가루 등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인간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여러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통해서 얻은 에너지를 여러 초식동물들이 에너지로 사용하고, 육식동물은 그 초식동물을 먹이로 생존해간다. 이처럼 하늘과 땅 바다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생명짓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생태계가 있는가 하면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생태계가 있다. 바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사는 미생물의 세계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펄펄 끓는 활화산의 용암주변에도 존재하고, 남북극의 얼음지대에도 산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피부, 기관지, 장(腸)속 심지어는 입안에서도 미생물은 우리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들이 피부나 점막의 바깥쪽에 살면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데 얘네들이 1차 방어선을 뚫고 체내로 들어오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몸은 비상경보를 울리고 면역체계가 발동되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게 된다. 이때 동원하게 되는 군대가 바로 면역세포들이다. 마크로파지(macrophage), 보체, T임파구 세포, B임파구 세포, 자연살해(NK, natural killer)세포등이 5분대기조, 기동 타격대가 되는 셈이다.
또 면역(인체방위군)은 자기감시기능도 철저히 한다. 이동, 매복, 순찰기능을 한다. 면역세포들은 혈액을 타고 조직을 지나 림프액을 돌아다니다가 고장 난 세포나 감염된 세포를 찾아낸다. 사람의 몸은 고정된게 아니고 죽는 날까지 계속 세포분열을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세포도 실수를 할 때가 있고 DNA 복제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로 누구나 하루에 몇 개씩의 암세포는 생겨난다.
또는 다른 요인(환경호르몬, 활성산소)으로 인해 정상DNA가 공격을 받아 암세포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럴 때 인체방위군은 이 고장 난 암세포들을 찾아내어 파괴한다. 그 고장 난 것들이 '암(癌)'이라는 질병을 이룰 만큼 자라지 못하고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면역세포(기동타격대)의 능력인 것이다.
이처럼 면역은 우리 몸을 24시간 지키는 인체방위군 상황실, 기동타격대, 이동순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혹 침투가 되었다 하더라도 즉시 거기에 합당한 방위군을 파견하여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면역(免疫)을 마신다_황토상황버섯
▲ 황토상황버섯을 스테인레스 주전자로 달인다. 표고버섯, 대추를 가미하여 처음 센불로 하고 팔팔 끓인 다음 약한 불로 낮추어 물의 양이 반으로 줄어들도록 달인다. 세 번 울궈낸 후 까맣게 탈색이 된 상황버섯. |
매주 한번씩 집 마당에서 한바탕 벌이는 작업이 있다. 황토상황버섯을 20g잘게 편으로 잘라 마른 표고버섯 2~3개와 대추를 넣고 우려내는 일을 한다. 1주일 우리집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내가 자궁경부암으로 투병중이기도 하고, 식구들의 건강을 위하여 일상음료도 대용하고 있다.
치료목적이라기보다 범용으로 우리가족 일상의 패턴을 바꿔보고 상황버섯과 표고버섯의 물성을 고스란히 맛보고 식구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밥을 할 때에도 맨 마지막 밥물로 쓰기도 한다.
면역을 마시는 거다.
예전에는 약과 음식의 경계가 없이 식약동원(食藥同源)으로 보았다. 즉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고 본 것이다. 1431년(세종1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에서는 임파선 질환과 유방암 계통에 효능이 있다 했고 1610년(광해2년) 동의보감에서 명의 허준은 쌀과 함께 죽을 끓여 복용하면 각종 종양에 좋다고 하였다.
동양의학 대사전에서는 복통과 오장을 비롯 위장에 좋다 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본초학자(本草學者) 김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서는 남자의 오장에 좋다 하였고 양기에 좋다고 기록했다. 현대의 의학에서도 항암과 면역활성화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면 상황버섯은 우리인체의 어떤 특정부위에 작용하는 기전이 아니고 인체 방위사령부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하겠다.
늙은 농사꾼의 작은 소망
▲ 부부금술이 좋게 백년해로중인 류병창내외 모습이다. 부부는 아주 정확하게 닮아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웃는 모습, 선한 인상, 부드러운 표정이 닮았다. |
대대로 의성에 살아온 류병창씨는 7남매를 두었다. 아들 다섯에 딸 둘.
농촌에서 애들 여럿을 키우려면 소득을 올려야 했다. 당시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농사규모를 늘리다보니 50마지기이상 벼농사를 지었다. 1970~80년대에는 통일벼를 재배하면서 하루 종일 병충해 방제하느라 농약구덩이에서 살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고독성 농약을 썼다.
차츰차츰 음식을 먹으면 속이 매스껍고, 구토도 나고 시름시름 몸에 힘도 빠지고 느낌이 이상했다. 급기야는 '농약중독'이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한참 이농현상이 심하고 식량증산으로 농산물값을 저렴하게 유지해야 했던 정부의 정책이 불을 붙기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다. 대다수 우리의 농민들은 그렇게 농약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다.
더군다나 젊은 일꾼들이 다 도시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저히 큰 규모의 벼농사는 불가능해지기 시작했고 모종의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시점이 그에게 다가왔다.
40년 동안 벼농사만 짓던 그는 경북농업기술원에서 6년간 연구하여 2001년 개발한 '천년상황버섯'을 기술이전 받아 황토가 많은 토매리의 지역특성을 살려 황토상황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무농약인증을 받고 황토의 고유한 기운이 상황버섯종균을 품어서 길러내도록 모든 열정을 기울였다.
"인생의 모든 출발은 마음(心)에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하여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거라 그러면 끝까지 교육을 시켜주마" 라고 선언했고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잘 자라나 7남매 모두 가고 싶은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고 교사가 둘이 나왔고, 공무원이 셋이고 각자 자기 할 일 맡아서 잘살고 있다.
류병창씨 내외에게서 70년~90년대를 관통한 농촌에 근거했던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았다. 자신은 죽도록 고생할지라도 아이들은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서 세상에 내보내고 말겠다는 강한 교육열에 불타는 아버지들의 모습 말이다.
류병창씨의 농사스타일
▲ 논농사와 밭농사도 일부 같이하는데 열, 간격, 크기등이 질서정연하기 그지없다. 밭이나 논을 보면 대게 그 밭 농부의 성향이 보인다. |
필자의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목수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논이며 밭이며 장소 구분 없고, 파종이며 모종이며 절기 구분 없이 나무에 먹줄 튕기듯이 바둑판처럼 칼같이 농사를 관리했다. 우리는 늘 아버님다운 모습이라며 웃곤 했다.
마찬가지다. 류병창씨도 농사 관리하는 모습과 상품주문시 배송포장하고 그 위에 부착물을 붙여 보낸 손맛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정성스럽게 매만진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마디로 각이 잡히는 일맵씨를 보여준다. 버섯농사도 그런 기준으로 빈틈없이 농사를 짓는다.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이 어디로 가겠는가? 고스란히 작물로 가고 그 에너지는 다시 소비자들에게로 갈 것이다. 황토상황버섯농장에서는 그린음악이 잔잔하게 음율(音律)을 탄다. 살아있는 것들을 위한 류병창씨의 서비스인 셈이다. 버섯들은 어릴 때부터 농부의 그 마음을 받아 들고 기꺼운 마음으로 제 성질 마음껏 채우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출발은
마음(心)에 있는 것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아라
농사짓는 그 마음 어디로 가겠는가?
고스란히 상황버섯에게 가고
그 에너지는 다시 먹는 사람에게로 간다
그린음악 들려주며
대화하는 농사꾼
살아있는 것들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
늙은 농사꾼의 작은 소망
'가족건강 지킴이'
버섯들은 어릴 때부터
그 농부의 마음을 받아 든다
기꺼운 자세로 제 성질 마음껏 채워가며
야물게 자라난다
감 중의 감 - 청도 이준수 반건시
유년시절 소풍 갔을 때 제일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보물찾기'이다. 이를 앙다물고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쪽지)'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발견해서 기쁘기도 했고, 끝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안 잡혀서 서러웠던 기억, 지금 생각해도 즐겁다. 입에 침이 돌 듯 머릿속에 추억이 돈다.'보물섬'이란 잡지도 있었고, 즐겨 읽은 소설들중에 보물섬, 보물지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물의 느낌이 자꾸 축소되어가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속에 가득 널려 있었던 보물, 내 마음속 전부를 다 채우고 있던 보물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꾸 물질적이고 계량적으로 되어버렸다. 나라의 유형문화재중의 하나로 '보물'이란 개념을 배우고 나서는 낭만적이고 꿈결 같았던 컨셉이 고정화 되어버려 아주 작아져 버린 것이다.
어릴 때는 '가치(價値)' 였다가 점점 더 '물건(物件)' 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物件)'으로 보기도 하고 '아주 귀중히 여기는, 가치 있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나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시공간을 아우르고,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귀중한 가치'를 보물이라고 이야기 하는게 맞다.
감, 감꽃
▲ 납작한 청도반시 |
▲ 암꽃(좌)은 감 열매를 품고, 수꽃(우)은 땡땡땡 종모양으로 생겼다. |
감꽃이 필때쯤이면 뻐국새도 와서 울기 시작하고 촌에서는 모질고 모진 보릿고개가 막바지에 이른다. 배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조금만 기달리거라! 감꽃이 피었으니 열밤만 자고나면 햇보리를 먹을 수 있단다." 손짓몸짓 건네며 녀석들의 성화를 달래야했다.
감자밭에 노고지리가 알을 낳고 재수 좋은 놈은 못자리에 넣을 갈풀 베러 산에 갔다가 꿩알도 열두개씩 주워오기도 했다. 감꽃이 피는 것은 힘든 보릿고개가 끝난다는 신호였고 가난한 농촌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감꽃 이었다.
그렇게 감 꽃은 슬프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한 채 우리 곁으로 해마다 다가섰다.
추억을 머금고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채 우리에게 오곤했다.
아프지만 살가운 기억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에게는 슬프고 가슴 저미는 '아픔의 꽃'이었지만 소위 386세대라 일컫는 필자 세대(50세 전후)에게는 배고프기는 했지만 아련한 '추억의 꽃'으로 남는다. 배고파 초근목피 모진 고생은 어른들이 했고 아이들이었던 나는 나름대로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2년전 필자는 한국농업대학 영농조합법인 사장으로 일했다. 그 무렵 청도반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졸업생 스토리를 기획하고 청도반시 이야기를 UCC로 녹여내는 과정에서 청도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싸움'과 '씨 없는 감' 청도반시의 내력을 공부하면서 "아! 그랬구나!" 하는 새삼스런 느낌으로 청도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2010년, 다시 청도감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생겨서 청도감 영농조합법인(대표 이준수)을 만났다.
청도소싸움
▲ 청도 소싸움 |
소싸움에서 인생을 배운다. 한물갔다고 평가되는 싸움소들이 당당히 재기해 상을 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꼭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인생에도 많은 굴곡이 있을 수 있지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싸움소들에게서 찾아낸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많은 이웃들이 있겠지만 우직한 소처럼 다들 꿋꿋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소싸움은 이 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또는 씨족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어왔다.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면서 소싸움으로 발전했다.
▲ 수원시 입북동 영인목장에서 키우는 싸움소 두마리 |
가까이서 만난 싸움소의 위세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그들의 풍채 앞에서 은근히 위축이 되었다. 일체의 간사함과 졸렬함을 거부하는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이 친구들은 장소를 이동하기 위하여 차를 대면 기꺼이 올라탄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한우들은 차를 들이대면 머뭇거리고 꺼린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온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한우가 이동하는 경우는 도축장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동창천 다리 너머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
청도의 감나무밭은 동창천을 따라 양 옆으로 시작이 되서 동창천에서 끝난다.
동창천을 '비단내' 한자어로 금천(錦川) 이라고 한다. 금천이란 이름처럼 동창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은데다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운문댐이 생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 청도감영농조합법인 이준수대표(40) |
오늘도 아이는 식전 댓바람부터 분주 합니다. 아침 일찍 산으로 일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가기 위해서 입니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게에다 거름을 잔뜩 지고 손자의 고사리 손을 잡고 감 밭으로 향합니다. 얼마 전에 심어 놓은 감나무에다 거름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이 산길을 다닙니다. 청도반시는 씨가 없는데 어릴 때부터 씨 있는 감을 보지 못했기에 감에는 원래 씨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건실한 청년이 되었고 내 고향 씨 없는 청도반시가 '보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청도반시로 감말랭이 곶감 사업을 생각하며 귀농이라는 꿈을 안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농촌생활을 시작합니다. 청년은 귀농을 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귀농사업을 준비했습니다. 대형할인점 직거래를 하면서 경영과 유통물류를 배우고 소비자도 공부했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시행하는 귀농인 교육을 수료하고 친환경농산물, 추적이력관리 인증을 받고 홈페이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유통관리사, 농산물품질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대부분 농민들의 생각은 생산은 얼마든지 하는데 판매하기가 어렵다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좋은 품질의 감말랭이를 저렴하게 많이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맛있는 감말랭이를 경쟁력 있게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판매는 제품 자체가 한다고 자신합니다. [이준수대표의 회고] |
청도감영농조합법인 대표 이준수씨는 고향이 청도 매전면이다. 중학교까지 나오고 고등학교는 경산에서 다녔다. 대학에서는 전산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회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다가 사돈의 요청으로 이마트 울릉도 오징어 납품회사를 맡아 경리부터 경영까지 8년간을 일했다. 자금의 흐름, 거래처관리, 매장관리, 세무회계관리, 직원관리방법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2005년도였던 그 무렵, 고민에 빠졌다.
사돈은 온천지가 오징어인 울릉도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사업을 하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삶이란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것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래! 나도 사방천지 감으로 둘러싸인 고향 청도로 내려가 감 사업을 하자"
어렸을 때는 감을 돈이라고 안 봤다. 친구들하고 감도 집어 던지며 놀았고 발에 채이는게 감이었다. 하지만 약 2만평의 감나무 밭이 있고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역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매전면에 감말랭이 지원사업으로 자금이 내려왔고 아버지가 신활력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사돈어른 회사일을 하면서 인연 맺은 거래처에 감말랭이와 반건시 납품을 시작했다. 전산실 근무덕에 홈페이지도 직접 제작해서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사업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청도감
우리나라에는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선물 '감'들이 다양하다. 상주둥시, 청도반시, 의성사곡시, 산청단성시, 구례장둥이, 영동월하시, 도근조생, 함안대봉시, 경산반시, 평핵무……. 하나하나 독특한 특성으로 우리들의 입맛과 함께 해왔다.
▲ 청도반시는 넓적한 쟁반같이 생겼다 해서 반시(盤枾)라 하며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그들중 '감중의 감' 청도반시는 종자 자체가 씨가 없는게 아니고 청도가 해발 고도가 높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싼 분지형 지형이라 타 지역의 감나무 수꽃가루가 자연 유입되기 어렵고, 안개가 자주 끼는 지형적 특성으로 한참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벌의 수분 활동이 제약되는 등의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청도감나무도 다른 지방으로 시집가면 씨가 들어선다.
암수가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 간절하지만 육질이 연하고 당도가 높은 특성(18브릭스)이 있으며 씨가 없어 먹기에 편하고 가공에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청도감은 9월말경부터 완숙되기 전에 따기 시작하고 수확과 동시에 가공작업에 들어간다. 가공작업은 설날이전까지 지속된다.
원료감(수확 당시에는 딱딱하다) 연화 작업을 하루 정도 하고 껍질을 벗겨 숙성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건조실에서 수분을 빼고 냉동 보관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6~7일이 소요된다.
▲ 감말랭이(우), 청도반건시(좌) |
▲ 원료감(껍질 깐감)과 반건시(우측), 감말랭이는 1/4~1/5크기로 줄어들고 반건시는 1/3로 줄어든다. |
이 과정을 거치면 감의 수분이 날라가고 고유한 단맛, 그 정수만 남게 된다.
보기만해도 침이 넘어간다. 참 달고 맛 난다. 자연이 품은 단맛은 단순한 설탕 맛 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감이 내어준 단맛에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담겨 있으니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과일'임이 분명하다.
고유하다는 것
고유하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고 결과다
자연과
끊임없이 다투고 순응하면서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어느 시점, 어느 순간 최적의 상태이다
문화와
역사로 봐도 그렇고
사람과
문명으로 봐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고유한 것은
그 나름의 분명한 자기원인과 결과를 지니게 마련이다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반시 & 청도사람들
하나같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청도 여행을 하면서 단순하게 청도 감을 반건시나 감말랭이를 중심으로 한철의 특산품 컨셉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6월 내 눈앞에 보여진 청도의 감나무,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사람들 그리고 청도를 움켜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보려고 노력했다. 청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함부로 예단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되겠지 싶었다.
청도 매전면 예전리를 이루는 것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감나무농장과 홍시를 맛나게 드시는 어른들 |
조상들로부터 이어 내려온 내력이 가득했고 땅은 환경친화적인 재배방식으로 유기물질의 다양성이 존재했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가 홍시를 맛나게 들고 계신다. 이준수대표가 어린 갓난아기때부터 함께 해온 마을 어르신….
홍시는 이가 불편하신 어른들께는 아주 훌륭한 간식이고 영양식이었다. 쪼글쪼글 이 없는 볼살, 오물오물 마치 아이처럼 좋아라 하시며 평생 몸에 익은 홍시 맛을 즐기시던 할머니도 생각나고…. 어머님께 이번 가을에 제대로 된 홍시를 보내드려야겠다.
▲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오래된 지게와 가득 담긴 청도감, 전통과 문화와 살아가는 방식이 아직 남아있는 고향이다. |
▲ 보리밭전경과 살구가 한창이다. 살구 맛은 폐부 깊숙히 스며있는 맛이다. 난 톡하고 깔끔하게 과육과 분리되는 살구씨가 너무 기특하고 좋다. |
▲ 동창천에 고디(다슬기)가 많이 산다. 자연하천의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연륜이 깊은 감나무가 수두룩하다. |
다정다감 기분 좋게 만드는 먹을거리
▲ 출장 길, 주인장으로부터 받아 든 기억나는 감 |
왼쪽은 전남진도 김종북 농장에서 무화과와 같이 나온 감이고 오른쪽은 무주구천동 복분자 농장에서 받은 정감어린 홍시다. 맛도 맛이고 감이 갖는 선연한 이미지가 안먹어도 마음 가득 훈훈해진다. 감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고 조금은 서먹했을 관계도 단박에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이기도 했다. 주고받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청도반건시 |
감나무의 속명'Diospyros'는 '먹거리의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감나무를 일곱가지의 덕이 있는 나무 '칠덕수(七德樹)'라 부른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녹음이 짙으며
셋째 단풍이 아름다우며
넷째 열매가 맛있으며
다섯째 잎은 훌륭한 거름이 되고
여섯째 날짐승이 둥지를 틀지 않으며
일곱째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감을 선물하고 먹는다는 것은 7가지의 의미를 먹는 것이고 축복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청도의 고유한 먹거리 청도반시, 청도의 보물 청도반시.
보물섬 청도를 찾아 떠난 귀향청년 이준수를 만나는 여정은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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