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객들의 축적되는 모험담과는 별개로, 여전히 남미 여행은 대중화되기엔 물리적 거리가 멀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이 전파한 페루의 신비한 이미지는 유럽과 북미 지역 관광객들에겐 오래전부터 소비되던 것이었다. 이는 마추픽추뿐만 아니라, 에콰도르와 브라질, 그리고 페루를 거쳐 흐르는 아마존강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세 나라 중 페루는 아마존 저지대 탐험의 안내자를 가장 앞서 자청해왔다. 주요 여행사들은 이미 1960∼1970년대에 설립돼 ‘정글 라이프’를 맛보려는 이방인들을 유혹해왔고, 이제 가장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손짓한다. 이 ‘미지의 세계’는 마치 새롭게 열린 문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강. 2008년 페루 리마의 지리학회는 아마존강의 길이를 7062㎞라고 발표했다. 폭은 331㎞로 서울과 대구 사이 직선거리보다 길다. 형형색색의 새들과 곤충, 낯선 동물들, 끝없이 펼쳐진 숲과 붉은 강줄기, 그리고 ‘나’와 다른 원주민. 여행이라는 건 상상하던 많은 것들의 실재와 부재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환상은 환상일 뿐 실제완 다르다. 관광지로 개발된 아마존 열대우림에 들어가 보면 이 명제를 처절히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욱 이 지구의 ‘허파’에 발 디딜 이유가 생긴다. 지구 전체 담수량의 20%를 품고 있는 아마존에서는 이 별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 종의 3분의 1이 숨 쉬고 있다. 적당한 환상을 버무려 관광객을 기쁘게 하는 ‘가짜’. 이를 통해 아마존은 그 어떤 ‘진짜’를 지키려는 걸지도 모른다. # 믿으라. 물 위, 아니 숲 위를 걷게 되리니 “바닥 말고 옆도 좀 봐라.” 네 번째 플랫폼에서 누군가 외친다. 아마존 어드벤처의 시작은 심심한 걷기 투어다. 목적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인 건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14개의 ‘흔들다리’ 중 세 번째 플랫폼을 지날 때엔 이미 취지를 잊었다. 캐노피는 높은 나무 위의 식생을 연구하기 위해 남미와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 많이 만들어진 다리다. 아마존 대표 여행사인 익스플로라마 리조트의 캐노피는 1991년 세워졌는데, 총 길이는 400m, 가장 높은 지점은 약 40m에 이른다. 숲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내려다보며 걸으니 그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다들 긴장한 듯 보인다. 어떤 이는 다리를 살짝 떠는 것도 같다. 믿음이 약해져 발을 보면 재미없다. 울창한 나무와 내 키가 같아졌으니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자. 숲 위를 걷는 공중 체험이다. 어딘지 좀 못생긴 ‘카푸친’(흰목꼬리감기원숭이)도 만났다. 나무 꼭대기에 고운 빛의 꽃도 피었다. 무엇보다 숲 위는 고요했다. 익스플로라마는 이키토스 아마존에 여러 개의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캐노피 워크를 하려면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세이바톱 로지에서 가장 먼 익스플로나포 로지로 이동해야 한다. 고속 보트를 타고 1시간 남짓을 달렸고, 다시 30분을 걸었다. 익스플로나포의 로지들은 페루 아마존 원주민들의 집과 흡사했다. 벽의 3분의 1이 뚫려 있어 숲의 바람이 드나든다. 에어컨과 개별 화장실이 없어 좀 더 문명에서 멀어진 ‘낭만’이 있지만, 자연 친화적인(그것도 매우) 재래식 공동 화장실을 본 후엔 대뜸 “여기 묵는 건 얼마냐”고 물었다. 리조트 측이 부담할 비용이 적어 보여서다. 나흘간 아마존을 안내한 가이드 세사르의 대답은 의외였다. “가장 비싸. 배를 타고 더 멀리 오니까 기름을 더 쓰잖아.” 아마존 원시림에 더 깊게 들어가는 일. ‘환경부담금’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설득이 된다. 또 캐노피 워크가 근거리에 있는 것도 가격을 올린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아마존의 민낯을 온전히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밤중 모기떼가 우글거리는 재래식 화장실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황열병 주사(페루 북부는 황열병 예방접종 권장 지역이다)를 반드시 맞고 다음 기회에 ‘극복’하도록 하겠다.
# 그들이 아마존을 사는 법
캐노피 워크를 마치고 다시 30분 진흙 길을 걸었다.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메디슨 플랜츠’, 일명 ‘의료 농장’이다. 샤먼이라. 좀 더 그럴싸한 복장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정글 보이’ 세사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차림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세사르는 “병원도 약국도 없이 정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며 샤먼을 소개한다. 농장에선 240여 종의 약초를 키우고 있었다. 사냥을 나갈 때 사람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온몸에 잔뜩 발랐다는 마늘 향 식물, 뱀에게 물렸을 때 해독 효과가 있는 뱀처럼 생긴 나뭇가지…. 흥미롭게 빠져들다가 샤먼이 ‘용의 피’라 불리는 지혈제를 높이 들고 설명을 시작하자 이내 패키지 투어의 쇼핑처럼 느껴진다. 아마존의 민간요법이 ‘약장수’의 입담처럼 느껴지는 건 순전히 이 도시인의 마음이 불순한 탓이리라. 아마존에도 사람이 산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마존을 산다. 아마존 트레킹의 관문인 이키토스엔 90만 명이나 산다. 1880∼1900년대 초반까지 고무산업으로 흥했던 도시다.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만 그 덕에 비옥한 땅을 얻어 지금도 풍요로운 농경생활을 한다. 밀림으로 들어가면 영어를 잘하고 청바지를 좋아하는 샤먼도 있다. 또 일명 ‘레드 피플’로 불리는 페루 북부 원주민 야구아족도 있다. 이들은 여전히 부족생활을 한다. 전체 수는 6만에 달한다. 빨간 치마를 두른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달려왔다. 6세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내민다. “안돼 나는. 사진 찍어야 해.” (당연히) 못 알아듣는다. 빤히 보다가 웃더니 민망해진 양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는다. 또 웃는다. 에라 모르겠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발을 맞춘다. 관광객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갈아입었지만, 평소엔 그들도 ‘문명화된’ 옷을 입고 생활한다. 그러나 블로건(blowgun)을 사용한 전통 사냥 방식은 아직도 남아있다. 야구아족 남성들이 1m가 넘는 긴 블로건에 화살을 넣고 입으로 불어 과녁을 명중시킨다. 관광객들도 따라 해 본다. 될 턱이 있나. 아쉬운 대로 기념용으로 만든 블로건을 구입한다. 로지 인근에는 마을도 있다. 이름이 재밌다. 인디아나. 남미 대륙의 본래 주인이 인디언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가이드에 따르면 이 인디아나는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를 따라 지은 것.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공부를 하고 ‘성공’해 돌아온 어느 부잣집 아들에 의해 붙여졌다. 5000명가량이 거주하는 인디아나에선 매일 오전 5시에 장이 선다. 숙박시설도 없고, 여행사도 없고, 블로건과 ‘용의 피’도 없지만 세이바톱 로지에 머무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 스무 번 던져 드디어 ‘손맛’…이름도 멋진 아마존 피라냐 낚시 낚싯줄이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미끼가 작아지다니. 깨끗한 낚싯바늘만 올라온다. 스무 번쯤 그렇게 농락당하고 나니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일행은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적도의 태양은 거침이 없다. 정수리를 출발한 땀방울이 발등에 떨어진다. 또다시 강에 낚싯대를 들이민다. 한국에서도 안 하던 낚시질을, 도대체 멈출 수가 없는 건 시공을 초월했다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다. 삼각형의 날카로운 이를 가진 피라냐.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아마존의 ‘흔한’ 물고기. 미끼를 던지는 족족 3초가 되지 않아 낚싯대가 묵직하게 기운다. 마치 피라냐 수족관에 배를 띄운 듯 끊임없이 미끼를 입에 문 피라냐가 (타인의) 낚싯줄에 걸려든다.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그 어떤 순간엔, 평소 그다지 발현되지 않는 끈기도 생기는 법. 오늘 아마존에서 피라냐 회를 떠 먹으리. 해괴망측한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나. 세사르는 “피라냐는 주로 튀김으로 해 먹지. 원하면 오늘 점심에 해줄게”라고 한다. 새끼손가락만 한 쇠고기 미끼를 살살 꿰어 강에 던진다. 하나 세고 둘이 되기 1000분의 1쯤 되는 찰나. 잽싸게 손목을 틀었다. 어, 어, 우와. 됐다. 잡았다. 15㎝쯤 되는 이 피라냐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무 번 입질을 당한 후에야 ‘손맛’을 봤다. 그 기쁨을 어찌 표현할까. 섭씨 33도, 습도 90%. 한증막 같은 날씨가 순식간에 시원해지는 순간이다. 세상엔 반드시 해봐야 하는 것과, 굳이 안 해봐도 알 만한 일이 있다. 피라냐 낚시는 단연코 전자다. 아마존에는 25종의 피라냐뿐 아니라 2300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낚시 포인트로 오는 도중엔 어렴풋하게 분홍 돌고래도 보았다.세사르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불러 내 보자”며 “휘파람 연습을 좀 더 해 두라”며 웃는다.
# 파란 나비,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너희가 주인이구나 ‘숲의 정령’을 만난 건 아마존을 떠나는 날이었다. 세사르는 전날 저녁부터 “내일 아주 깜짝 놀랄 일이 있어”라며 폼을 잡았다. 일행 중 한 명은 “뭔지 이미 알 것도 같다”고 했다. 그래도 끝내 말해주지 않은 그가 고맙다. 우연히 마주할 ‘극적인 감동’. 20시간을 날아 페루 아마존에 온 주된 목적이 있기에. 세이바톱 로지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 마치 푸른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얼핏 선명한 파랑이 스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간다. ‘모르포’다. 남미 지역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대형 나비로 날개에서 푸른 빛이 난다. 우거진 녹음을 유유히 활보하는 파란 나비. 아, 이 사진은 아마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어쩌면 넘칠지도)하다. 욕심이 난다. 셔터를 눌러댔지만 한 번 날갯짓에 1m를 왔다 갔다 하는 이 작은 생명체를 담기엔 역부족이다. 쫓아가고 멈추고, 쫓고, 그러다 놓치고 또 찾고…. 그러다 세사르가 말한 ‘서프라이즈’ 지점에 다다랐다. 높이가 80m에 육박하는 ‘자이언트 세이바 트리’다. 나무 꼭대기 가지는 팔각을 그리며 뻗었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니 왕관 형태다. 그래, 이 구역의 주인은 너로군. 세이바 트리는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판자과 나무로, 상업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카폭 섬유의 주재료다. 세이바톱 로지의 이름은 바로 이 거대한 나무에서 유래한 것. 사실 로지 인근에서 배를 타고 다니다 보면 하늘로 삐죽 솟아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볼 수 있는 나무였다. 세사르는 “예정에 없던 특별 투어”라고 했지만, 사흘 내내 눈앞에 있던 존재를 몰랐다는 게 오히려 ‘서프라이즈’ 아닌가. 숲의 정령처럼 로지를 지키는 세이바 트리는 사실 페루 아마존에서 흔한 나무였다. 하지만 벌목꾼들에 의해 방대한 양이 베어졌는데, 특히 공장으로 운반되기 쉬운 강변 인근에서 많이 잘려나갔다. 마지막 날 세사르의 ‘스페셜 투어’는 아마존을 여행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다. 뒤늦게 사진을 확인한다. 블루 버터플라이는 발광(發光)하는 푸른 점으로 찍혔다. 선명하고 아름답지만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아마존에서의 나흘이 그렇게 점으로 박힌다. # 푸르다가 검어지더니…곧 붉어졌다 반드시 창가 좌석에 앉아라. 이키토스 아마존을 떠날 때 비행기를 탄다면 말이다. 창가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다면 누군가에게 사정을 해서라도 바꿔라. 이유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창밖을 보지 않으면 멀미를 한다거나, 수년간 돈을 모아 아마존 취재를 온 사진작가라고 허풍을 떠는 건 어떨까. 창가는 중요하다. 어제 아침 잡아 올린 수십 마리의 피라냐 보다, 두려움을 극복한 캐노피 워크보다, 파란색 나비를 따라 거대한 세이바 나무를 만난 것보다, 원주민 소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춘 일보다, 그것도 아니면 청바지를 입은 샤먼이 유칼립투스 잎사귀로 불운을 떨어내 주었던 것보다. 감히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을 (비록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일이다. 강을 둘러싸고 평평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숲 (우린 이미 그 위를 걸었다)은 짙푸르다. 이키토스는 아마존강과 나나이 그리고 이타야 세 강이 만나는 지점에 발달한 도시다. 둘이 만나 쇠발굽 모양을 그리는 나나이와 이타야강은 기름처럼 검다. 세사르는 이를 “블랙 티”라고 했다. 아마존은 확연히 흙탕물이다. 세사르는 이를 “커피”라고 했다. 커피색은 생명력이 덜하니 차라리 붉은 걸로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마존은 그렇게 푸르다가 검어지더니 이내 곧 붉어져 하나의 색으로 흘렀다. 비행기가 다시 크게 원을 그린다. 나나이와 이타야가 사라지고, 거대하게 굽이치는 아마존이 점점 길어진다. 아마존 정글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이미지와 환상. 그중 실재한 것,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행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절반이 관광용으로 다듬어진 페이크(가짜)다. 중요한 건 실재냐 부재냐의 결론이 아니다. 기억을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환상을 존속시키는 일이다. 그것이 미약하게나마 ‘지구의 허파’를 지켜낼테니. 하늘에서 아마존을 조감하는 일은 바로 그 방법 중 하나다. ◇어디서 묵고 무얼 먹을까 = 1965년에 건립된 익스플로라마 리조트는 아마존강을 따라 세이바톱 로지, 익스플로라마 로지, 익스플로나포 로지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가격은 정글 트레킹, 캐노피 워크, 피라냐 낚시 등의 체험프로그램을 포함해 1박에 1인당 290∼400달러(그룹 인원수에 따라 달라짐)이고, 야간 투어를 선택하면 100∼130달러가 추가된다. 선착장에서 가장 먼 익스플로나포 로지는 4박 이상이라야만 묵을 수 있다. 리조트 내에선 정글에서 채취하는 토마토과의 코코나 주스와 치킨 샐러드, 파스타 등 무난한 글로벌 식단이 신선한 재료로 요리되어 나온다. 정글을 벗어난 다음엔 페루를 대표하는 세비체와 잉카콜라를 잊지 말자. 세비체는 페루식 물회다. 생선이나 조개, 새우 등을 레몬이나 라임즙, 고수 같은 향신료와 버무려 먹는다. 코카콜라가 사들인 페루 토종 잉카콜라는 노란 빛깔로 골드 콜라라고도 불린다. 코카콜라보다 비싸고 더 인기가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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