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45년만에 베일 벗는 토왕성폭포

醉月 2015. 12. 2. 17:19

비룡폭포 위쪽에 새로 놓은 전망대에서 바라본 토왕성폭포의 위용. 전망 지점의 높이가 폭포 정상보다 200m쯤 낮아서 물줄기가 시작되는 화채봉이 보이질 않는다. 산 정상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가장자리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한 폭포는 겨울이 더 깊어지면 몸집을 불려 거대한 촛농 형상의 얼음기둥이 된다.


설악의 토왕성폭포.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그 폭포의 물줄기를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섰습니다. 이른 폭설로 희끗희끗 눈이 뒤덮인 협곡 사이로 이제 막 가장자리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폭포가 흰 실오라기처럼 가는 물줄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까마득한 높이의 암릉 사이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범접할 수 없는 위용. 그러나 삼단을 이뤄 320m를 쏟아진다는 폭포는 아쉽게도 실타래처럼 물줄기가 풀어진다는 삼단 아래쪽이 능선에 가려졌습니다. 폭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쉬웠던 건,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을 겁니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 지난 1969년 12월. 그날 이후로 토왕성폭포는 금단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웬만한 배포와 장비 없이는 다가갈 엄두조차 내기 힘든 곳이었으니, ‘토왕성’이란 곧 경외의 이름이었습니다. 간혹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빙폭 등반 훈련을 위해 허가를 받아 폭포를 찾기도 했지만, 예기치 않은 눈사태나 실족으로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강철같은 근육의 산악인들마저 목숨을 바쳐야 했을 정도이니, 보통사람들에게 ‘토왕성’은 두려움이었지요. 그저 이따금 장마철에 속초에서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명주실처럼 늘어뜨린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를 먼발치서 쳐다볼 따름이었습니다.

토왕성폭포가 오는 5일부터 개방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폭포가 개방되는 것이 아니라, 폭포를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새로 놓인 것입니다. 비룡폭포에서 가파른 능선을 숨 가쁘게 치고 오르는 410m 길이의 나무 덱을 놓고 그 끝에다 전망대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설악 소공원에서 걸어서 1시간 30분 남짓. 그 정도의 노고만으로 토왕성폭포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짧은 길로 경외와 금기의 공간으로 들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그 길을 먼저 가봤습니다. 전망대 끝에서 만난 토왕성폭포는 마른 붓질로 그려낸 듯한 여윈 모습이었습니다. 겨울이 하루하루 더 깊어지면 폭포의 물길이 얼어붙으면서 몸집을 불려 거대한 얼음기둥을 만들겠지요. 얼어붙은 폭포의 위용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겁니다. 장맛비로 우레처럼 폭포수가 쏟아지는 여름날의 토왕성은 또 어떨까요. 토왕성폭포를 향해 오를 때도 그랬지만, 전망대 아래 비룡폭포와 육담폭포를 되짚어 걸어 되돌아오는 길에서 다른 계절에 만날 토왕성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설악산 권금성의 봉화대 정상의 조망. 저항령과 황철봉, 울산바위 쪽을 사진으로 담았다. 여기서는 공룡능선과 만물상, 나한봉, 마등령, 세존봉, 장군봉도 한눈에 들어온다. 저항령 방향에서 뒤돌아보면 멀리 토왕성폭포의 상단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 진부령을 따라 폭설이 쏟아진 북 설악을 넘다

이른 폭설이 쏟아지면서 설악산은 이미 깊은 겨울 한복판에 있다. 홍천에서 44번 국도에 올라 인제 땅으로 들어서자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악의 능선이 먼저 마중 나왔다. 산자락에는 아직 침엽수림이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는데, 산정과 능선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설악의 토왕성폭포를 찾아가는 길. 미시령 터널과 한계령 대신 진부령을 넘기로 한 것은,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은 길을 딛고 가는 것이 미답의 땅, 토왕성으로 향하는 여정에 맞춤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제의 용대리까지는 미시령 터널을 바삐 넘나드는 차량으로 분주했지만, 진부령 쪽으로 방향을 잡자 오가는 차들이 뜸해졌다. 백두대간의 등뼈에 다가설수록 쌓인 눈은 더 깊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진부령 정상 인근의 북 설악 자락인 마산봉 아래에 알프스 스키장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스키장으로 이용되다가 지난 1976년 대관령의 용평리조트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개장한 스키장이다. 스키장은 지난 2006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여러 차례 재개장이 추진됐으나, 결국 폐허로 남은 곳이다.

마산봉 일대가 일제강점기부터 스키장으로 이용됐던 건 워낙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때 이른 폭설에 문 닫은 스키장은 눈으로 갇혔다.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을 딛고 여기까지 온 것은, 문 닫은 스키장이 아니라 마산봉을 보기 위함이다. 금강산 1만2000봉 중에서 남한 땅의 제 2봉인 마산봉은 설경으로 유명하다. 강원 고성이 꼽는 ‘고성 8경’의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다. 눈 덮인 소나무 뒤로 이국적인 리조트 건물과 그 뒤로 우뚝 솟은 마산봉의 모습은 ‘8경’의 이름값쯤은 넉넉히 하고도 남았다. 마산봉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산머리곡산과 향로봉의 긴 능선의 설경은 여백으로 겨울을 그린 한 폭의 두루마리 그림이었다.

마산봉은 또 백두대간 종주의 출발지이자 종착 지점이기도 하다. 국도에서 마산봉으로 드는 길 입구 쪽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한 중소기업이 지난 1994년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이다. ‘가자 백두산으로’라는 글귀가 적힌 깃대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이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이 치렁치렁하게 걸려있다. 백두대간의 총 종주 거리는 자그마치 1200㎞. 남쪽부터 걷기 시작했다면 이곳이 긴 산길을 다 딛고 당도하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고, 북쪽에서 시작한다면 첫걸음을 떼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을 다 걸은 이의 감회와 새로 걸음을 시작하는 이의 결기가 마산봉 아래 형형색색의 리본으로 매달려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 겨울 고성, 새로운 시작, 혹은 이별과 결말.

▲ 강원 고성 건봉사의 불이문과 500년 수령의 팽나무. 6·25 전쟁통에 766칸이나 되던 건봉사의 건물들이 모조리 불타버리는 와중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들이다.

진부령을 넘고 굽이굽이 눈 쌓인 협곡을 지나서 고성 땅으로 내려서면 금강산 자락의 절집 건봉사가 있다. 한때 전국 4대 사찰로 꼽히던 거찰이었던 건봉사는 화재와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가 20여 년 전부터 하나둘씩 복원 중이다. 겨울 건봉사의 주인은 바람이다. 겨울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바람이 끌고 온 소리가 다른 소리를 다 집어삼킨다. 얼어붙은 민통선의 초소를 넘어 겨울 건봉사에서 만나는 것은 비장함이다. 그 비장함의 중심에는, 치열한 전투에도 유일하게 불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한 500년 묵은 팽나무와 766칸 절집 건물이 모두 잿더미가 되는 와중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이문이 있다. 안내판에는 불이문이 무사했던 건 오래된 팽나무의 기운 덕이라 씌어있다. 모두 다 불태워지던 시절에 ‘죽고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 ‘살아남아 있는 것’에 이유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겨울 건봉사는 인적이 드물었다. 바람 소리만 절집 마당을 가득 채우는데, 단정한 차림의 노보살이 적멸보궁에서 불경을 펼쳐놓고 정물처럼 앉아있었다. 그쳤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고성에서 바다를 끼고 7번 국도를 따라 설악으로 가는 길. 거친 파도로 고성과 속초 일대의 포구에는 사흘째 어선들의 발이 묶였다고 했다. 며칠째 배가 나가지 못하니 겨울이면 포구마다 흔전만전인 도루묵이며 양미리도 귀하다. 드럼통에 모닥불을 지피고서 삼삼오오 모여선 어부들이 ‘올해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울 것 같다’며 걱정 섞인 이야기들을 나눴다. 고성 일대의 겨울 바다는 늘 거칠다. 바다는 모성(母性)이라지만, 이쪽의 겨울 바다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집채만 한 파도가 해안도로까지 넘실거리는 일쯤은 예사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고성의 바다를 찾는 건 겨울의 비장미 때문이다. 안락한 일상의 반대편에 있는 야생, 혹은 날 것의 거친 모습이 고성의 바다에는 있다. 그래서일까. 고성의 겨울 바다는 다치고 상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여행지다. 안락한 일상과 정반대의 풍경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눈 덮인 겨울의 마산봉이 백두대간의 끝이자 시작이듯, 고성의 겨울 바다도 새로운 시작 혹은 결말에 썩 잘 어울린다.

# 비룡폭포 너머 토왕성폭포를 찾아가는 길

▲ 설악산 토왕성폭포 아래의 비룡폭포. 그동안에는 여기까지만 출입이 가능했으나, 5일부터는 여기서 나무 덱을 딛고 올라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속초에서 설악동을 지나 토왕성폭포를 찾아가는 길. 탐방지원센터에서 쌍천의 물길을 건너자마자 꽁꽁 얼어붙은 흙이 발밑에서 버석거렸다. 토왕성폭포는 비룡폭포의 물길 너머에 있다. 비룡폭포는 지금이야 설악의 비경 축에도 못 끼는 신세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설악의 명소였다. 당시만 해도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은 이른바 산악인들만 오르내렸다. 적어도 대학교 산악부 정도는 돼야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등반 장비는커녕 변변한 등산복이나 등산화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코스가 흔들바위였고, 체력을 자신하는 이들은 거기서 울산바위까지 올랐다. 등산에 영 취미가 없는 이들은 길이 훨씬 더 순한 탐방로를 걸어 비룡폭포를 찾았다. 그마저도 귀찮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단숨에 권금성에 올랐다.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등산코스도 있었지만 귀면암이나 양폭을 코앞에 두고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게 영 마뜩잖아서인지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대청봉은 물론이고 공룡능선이며 서북 능선까지 가볍게 넘나들게 되면서부터 비룡폭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울산바위도 비슷한 신세였지만, 그래도 울산바위는 미시령을 넘나들 때면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것으로나마 제 존재를 과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룡폭포는 거기까지 가는 2.4㎞가 탐방 코스의 전부였으니 일부러 찾아가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그만 잊히고 만 것이다.

탐방로는 비룡폭포에서 끊겼지만, 그 너머에 토왕성폭포가 숨어있었다. 까마득한 직벽을 타고 300m가 넘는 삼단의 물줄기가 타래 풀린 명주실처럼 쏟아지는 토왕성폭포야말로 설악이 감추고 있는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그러나 토왕골은 너무 깊고 험해서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금단의 땅으로 닫혀있었다. 간혹 훈련 장소를 찾는 해외 원정등반대나 장비사용허가서를 제출한 베테랑 암벽등반인들에게만 접근이 허락됐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토왕성폭포 부근에서는 눈사태와 낙석, 그리고 실족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깊은 협곡과 아찔하게 치솟은 암봉은 사람의 목숨을 예사로 가져갈 만큼 험하고 거칠었다.

가장 끔찍했던 사고는 1998년 1월에 발생했다. 경북대 산악부 학생 여섯이 토왕성폭포에서 빙폭 등반 훈련을 하던 중 불과 이틀 사이에 자그마치 1.4m의 눈이 내리면서 눈사태로 연락이 두절됐다. 야영 중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간 두 명의 젊은이들이 구조에 나섰지만, 2차 산사태로 8명 모두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감격과 두근거림. 토왕성폭포를 찾아가는 기분이 그랬다. 토왕성폭포가 얼어 얼음기둥을 이루는 겨울철이면 연중 딱 하루만 개방되던 행사가 2년째 취소된 뒤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겨울 설악에서 만난 것들의 비장한 아름다움

토왕성폭포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비룡폭포 맞은편으로 나 있었다. 사실 비룡폭포까지 닿기 이전의 구간에도 제법 빼어난 경관이 있다. 그중에서 육담폭포의 굽이치는 물줄기를 발아래로 두고 건너는 출렁다리 일대 경관이 훌륭하다. 하지만 토왕성폭포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이런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비룡폭포까지는 1시간 남짓. 비룡폭포에서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는 쇠난간과 방부목으로 지은 가파른 덱을 걸어 20분쯤 더 올라야 한다. 비룡폭포에서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거리는 410m에 불과하지만, 45도는 족히 돼 보이는 경사라 숨이 보통 가쁜 게 아니다. 이윽고 전망대 정상. 맞은편에 토왕성폭포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이 덮여 희끗희끗한 석벽 사이로 실타래 같은 물길이 쏟아졌다. 물길 가장자리는 이미 얼어붙고 있었다. 320m 길이의 삼단폭포 중에서 상단 150m와 중단의 수직 폭포 80m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 아래 굽이쳐 흐르는 하단의 90m 물줄기는 아쉽게도 아래쪽이 능선에 살짝 가려졌다. 전망대와 토왕성폭포 사이의 거리는 어림잡아 1㎞ 정도. 지도를 짚고 예상했던 것보다 폭포는 멀었다. 슬며시 욕심이 고개를 든다. 더 높이, 그리고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석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의 여윈 물줄기는 마치 거친 종이 위에다 마른 붓질로 무심하게 쓱쓱 그려낸 듯했다. 이런 붓질의 그림을 어디서 보았을까. 그러고 보니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속의 거친 붓질을 꼭 빼닮았다. 세한도의 거칠면서도 맑은 기운의 뿌리가 붓질의 느낌과 비워둔 공간에 있듯이, 토왕성폭포의 기운도 주변의 거친 배경으로 인해 더 도드라졌다. 노적봉, 석가봉, 문수봉, 보현봉, 취적봉, 문필봉…. 이루 이름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봉우리가 치솟아 있었다. 폭포는 뒤쪽의 화채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쏟아지는 것인데, 전망대에서 올려다본 폭포의 상단이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마치 산정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토왕성폭포가 있는 토왕골 주위의 아슬아슬하게 치솟은 암릉과 까마득한 직벽에는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개척한 아찔한 길들이 있다고 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솜다리 추억’‘별을 따는 소년’‘그들과 함께라면’…. 가슴 철렁하고 현기증 나는 길에다 어찌 이런 서정적인 이름을 붙여두었을까. 두려움을 이기고 여기 길을 놓은 이들은, 이 길로써 과연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토왕성폭포를 만나러 나선 길. 겨울의 설악에서 만났던 건 비장미 넘치는 아름다움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모두 다 어떤 일의 시작과 끝에 다짐으로 삼으면 좋을 풍경들이었다.


토왕성폭포 가는 길 =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온다. 44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갈아타고 미시령 터널을 넘으면 이내 속초다. 한화리조트 설악 입구 사거리에서 척산온천 쪽으로 좌회전해 목우재 터널을 넘어가면 설악동이 나온다. 설악산 공원으로 들어가 쌍천을 건너 비룡폭포 탐방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비룡폭포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 비룡폭포에서 토왕성폭포까지는 30분이면 넉넉하다. 탐방로 입구에서 토왕성폭포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넉넉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권금성에서도 토왕성폭포의 상단폭포를 볼 수 있다. 권금성 정상과 토왕성폭포 상단의 해발고도는 700m 남짓으로 비슷하다. 토왕성폭포 전망대는 오는 5일부터 개방한다. 당초 11월 말에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잦은 비로 공사가 늦어졌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설악산을 목적지로 삼았다면 울산바위의 거대한 위용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는 델피노 골프 & 리조트가 최고의 선택이다. 울산바위를 베란다 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C동에 객실을 잡을 수 있다면 말이다. 울산바위 전망 객실에서는 거대한 위용에 숨이 턱 막히는 울산바위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잠이 들고 깰 수 있다. 아쉽게도 객실을 못 잡았다면 울산바위가 쏟아질 듯 다가서는 C동 1층 레스토랑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설악산이 있는 속초에는 이즈음 도루묵과 과메기가 제철이다. 속초 일대의 어느 포구를 가더라도 말린 과메기와 알이 꽉 찬 도루묵을 맛볼 수 있다. 과메기는 구이와 조림으로, 도루묵은 매운탕과 구이로 낸다. 과메기와 도루묵구이는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2만 원쯤 주면 도루묵 예닐곱 마리에다 과메기 열 마리쯤을 구워서 내준다.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중앙시장은 닭강정, 순댓국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