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겨울이 더 아름다운 체코 프라하

醉月 2015. 12. 23. 17:26

중세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체코 프라하는 밤이 오면 마법에 걸린 듯 변한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세밑에는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도시 전체가 더욱 화려해진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내년 1월 2일까지 운영한다.



체코의 프라하는 해외여행지의 로망과 관련한 어떤 질문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시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질문.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가장 낭만적인 도시’ ‘가장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야말로 모든 여행자들이 꿈꾸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프라하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계절은 늦봄부터 가을까지입니다. 5월부터 10월. 그 중에서도 7, 8월이 가장 관광객들이 붐비는 때입니다. 고백하건대, 일생에 단 한 번 프라하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계절은 마땅히 가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겨울의 프라하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벨벳 같은 부드러운 어둠이 드리운 구시가 광장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한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비스듬히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은 차가운 겨울 안개에 휩싸인 중세의 뒷골목을 걸으면서, 카를 다리 위에서 오후 4시에 블타바 강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강물 위에 정물처럼 떠 있는 순백의 백조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프라하 최고의 계절이 어쩌면 겨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유럽의 긴 겨울밤이 프라하의 낭만적인 야경을 오래 마주 볼 수 있게 하니 말입니다. 누군들 이런 풍경 앞에서 감성이 촉촉하게 젖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겨울밤, 이르게 당도하는 어둠은 프라하를, 또 그 프라하를 찾아온 여행자들을 신비한 마법처럼 휘감았습니다. 이런 매력을 일찌감치 알았는지, 성탄을 앞둔 프라하의 관광명소인 카를 다리며 프라하 성, 구시가지 광장은 물론이고 중세건축물의 뒷골목까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가득했습니다. 관광객들은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면서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의 골목을 거대한 물결처럼 흘러다녔습니다. 여기 펼쳐 보이는 건, 그 물결에 합류해서 겨울 프라하의 매혹적인 풍경을 둘러본 며칠 동안의 기록입니다.

# 프라하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부드러운 어둠

겨울 체코의 프라하에 드리운 어둠은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어둠이었다. 어둠은 마치 주술사의 마법 같았다. 어둠은, 어떤 공간에서는 환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나게 했고, 또 다른 공간에서는 도시를 중세의 공간으로 단번에 되돌렸다. 사각의 돌을 촘촘히 박아 포장한 뒷골목으로 실크 해트를 쓰고 검은 망토를 입은 마부가 모는 마차가 정연한 말발굽 소리를 이끌고 지나갔다. 중세 건축물의 첨탑이 늘어선 그 골목길에서 만났던 건 의심할 나위 없는 ‘중세의 시간’이었다.

체코의 프라하는 한때 연금술사의 도시였다. 16세기 체코 땅을 다스렸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2세. 그는 연금술에 매료됐다. 구리를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을 믿었던 그는 연금술사와 마법사를 프라하로 불러들였다.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이 그림자처럼 출몰하던, 주술과 마법이 현실로 믿어졌던 그때의 프라하 풍경은 그대로 남아있다. 겨울 어둠이 내린 뒤의 간접조명의 불빛으로 떠오르는 중세건축물이 과거의 시간을 호명한다.

겨울, 프라하의 밤은 길다. 오후 4시쯤이면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든다. 다른 계절보다 더 오래 중세의 시간과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다른 도시라면 여행자의 입장에서 겨울의 짧은 해가 아쉬울 테지만, 프라하는 다르다. 프라하의 겨울은, 그것도 마침 세밑을 앞두고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는 시기라면 축복에 다름 아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보석과도 같다. 푸르게 녹이 슨 오래된 도시의 기품과 그 도시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성탄 장식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다. 오래된 시간의 유물에다가 반짝이는 보석을 받아놓은 형국이다. 프라하는 ‘낭만의 도시’지만, 그 낭만을 극대화하는 계절은 단연 겨울이란 얘기다.


겨울의 짧은 해가 막 넘어가자 블타바 강 너머로 조명을 받은 프라하 성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밤이면 중세 건물들이 은은한 조명 속에 떠올라 관광객들을 중세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오른쪽의 다리가 프라하를 대표하는 명소 중의 하나인 카를 다리다.



# 성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함

크리스마스는 체코의 최대 명절이다. 올해 프라하의 크리스마스는 여느 해에 비해 좀 특별하다. 체코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종교개혁가 얀 후스. 올해는 교회의 진실과 도덕을 주장하다 끝내 죽임을 당했던 그를 기리는 ‘후스의 해’이기 때문이다. 순교 500년을 기념해 구시가지 광장에 세워진 후스의 동상 앞에는 올해도 성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광장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고, 붉은 천막을 치고 성탄 장식이며 전통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가득 들어섰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규모는 독일의 도시들이 더 크다지만, 화려함으로 보자면 조명을 받은 중세 건축물을 담처럼 둘러친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 수 위다.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넓은 광장에 들어섰는데도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걷는 게 아니라 떠밀려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붐빈다. 관광객들은 광장 전체를 수놓은 불빛 장식과 크리스마스 트리의 화려함에 입을 딱 벌리지만, 사실 얀 후스가 주창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보자면 베들레헴의 말구유 같은 소박하고 수수한 장식이야말로 이 도시와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추위를 잊게 하는 것으로는 술 만한 것이 없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스바쟉과 메도비나다. 스바쟉은 레드 와인에다 과일과 설탕을 넣고 데워서 내는 음료인데,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글뤼바인’이라고 부른다. 추위로 시린 손과 움츠린 몸을 단숨에 녹이는 음료다. 뜨겁게도, 또 차갑게도 마시는 메도비나는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전통 술이다. 여기다가 크리스마스에만 맛볼 수 있다는 와인과 럼주를 섞고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은 바노츠니 펀치가 있다. 마켓의 음식 중에서는 가장 이색적인 게 잉어튀김이었다. 체코의 크리스마스에는 칠면조 대신 잉어튀김이란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체코에서 생선은 그만큼 귀한 음식일 터. 재료는 특이했지만, 맛은 그냥 바닷생선을 튀겨낸 영국음식 ‘피시 앤드 칩스’와 구분이 안 됐다.


# 낮에 프라하 성에서 보는 한 장의 그림엽서

▲ ① 프라하 성의 언덕에서 이른 아침 구시가지 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다양한 건축양식의 첨탑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② 카를 다리 위에 세워진 성인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체코의 수호성자’다. ③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전통 소시지를 사고파는 모습. ④ 프라하 뒷골목의 떠들썩한 선술집에서 펼쳐진 공연. 프라하에서는 실내악 공연부터 오페라, 재즈, 인형극까지 다양한 공연이 매일 밤 곳곳에서 열린다.


이제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차례다. 프라하는 블타바 강을 경계로 두 구역으로 나뉜다. 강 서쪽에는 언덕을 끼고 있는 프라하 성이 중심이고, 강 동쪽에는 틴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 광장이 중심이다. 이 두 지역을 잇는 게 카를 다리다. 프라하의 이쪽 구역에는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의 위압적인 풍경이 없다. 대신 푸르스름한 녹이 낀 돔과 붉은 지붕의 오래된 건축물들만 가득할 뿐이다. 그러니 따로 포인트를 짚어주지 않아도, 멈춰선 어디서나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프라하 성 일대부터. 1200여 년 전 처음 세워진 프라하 성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뒤섞였다. 오랜 시간을 건너오는 사이에 유럽 건축사가 한 건물 안에 다 압축적으로 구현된 셈이다.

사실 프라하 성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성 안의 성당과 옛 왕궁, 수도원, 정원, 대통령 관저 등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니 하나하나 구석구석 보자면 온전히 하루쯤을 투자해야 한다. 성 비트 성당의 압도적인 규모감이며 프라하에서 가장 예쁜 거리라는 황금 소로는 물론이고, 성 뒷문의 계단 길까지도 모두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것들이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오전에 이쪽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겨울 아침의 환한 햇살을 받아 풍경이 더욱 빛나니 말이다.

언덕 위 프라하 성의 압권 중 하나는 거기서 보는 프라하의 전경이다. 고딕 양식의 첨탑들과 파스텔 톤의 외벽을 한 건축물의 붉은 지붕 너머로 블타바 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겨울 안개 속에 떠오르는 구시가의 전망이 마치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이쪽에서 보는 강 건너의 풍경만큼이나 강 저쪽에서 보는 이쪽 프라하 성의 모습도 좀처럼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막 해가 저물고 난 뒤 푸른 어둠 속에서 언덕 위에 또렷한 조명으로 되살아나는 프라하 성의 모습은 마치 조형예술을 보는 듯 하다.

프라하 성 쪽에서 블타바 강을 건너 구시가지 광장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그 유명한 카를 다리다. 프라하 성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명소 중의 하나다. 본래 나무로 지어졌다가 12세기에 돌로 지었으나 홍수로 유실돼 1402년 다시 완공됐다. 520m 길이의 보행자 전용 다리는 도시의 경관을 보는 훌륭한 조망대 역할을 한다. 다리 난간에는 30개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머리 뒤로 다섯 개의 별을 후광으로 두르고 있는 신부의 석상 앞에 유독 관광객들이 몰린다. 고해성사로 알게 된 왕비의 비밀을 왕에게도 발설하지 않아 죽임을 당했다는 신부다. 동상 아래 동판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을 믿는 관광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 윤이 난다.


# 밤에 구시가지 광장에서 보는 건축과 역사

카를 다리 건너 편 구시가지 일대의 중심은 야경이 핵심이다. 겨울밤이 길어서 카를 다리를 건너 강변 쪽에서 블타바 강 수면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다 감상하고 난 뒤에, 느린 걸음으로 찾아가도 넉넉하다.

구시가지의 중심은 구시가지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체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구시가지 광장 주위는 중세의 첨탑과 붉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로마네스크에서 아르누보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으면서도 조화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두 개의 첨탑과 그 첨탑이 거느린 여러 개의 탑으로 솟아 있는 틴 성당이다. 화려한 성당의 외관은 차가운 흰색 조명이 켜지는 밤에 훨씬 더 아름답다. 조명이 켜지고 어둠이 짙어지면 성당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프라하의 가장 낭만적인 야경으로 카를 다리, 프라하 성과 함께 틴 성당이 꼽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매시 정각이 되면 그 앞에 관광객들을 구름처럼 끌어모으는 천문시계탑도 구시가지 광장의 명물이다. 1410년에 만들어진 시계가 지금도 작동 중이다. 매시 정각에 종소리와 함께 암탉과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가 작은 창문에 차례로 나타나고 시계 숫자판 옆의 해골과 천사 인형이 움직인다. 그 시간이 고작 10여 초. 그 짧은 시간을 위해 관광객들이 시계 앞에서 목을 빼고 기다린다. 천문시계는 아침과 저녁, 밤과 새벽, 그리고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과 함께 다양한 조각물로 제법 묵직한 메시지를 은유로 전한다. 시간 너머의 죽음 앞에 있으면서도 부질없는 욕망을 꿈꾸는 인간을 꾸짖는 것이다. 지금은 천문시계탑과 틴 성당,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체코인들의 삶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여기서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화형이 이뤄졌고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했던 신교도 체코인 귀족들이 처형당했다. 천문시계탑 오른쪽 골목의 도로 위에는 이들의 사형 날짜와 스물 일곱 개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그 앞의 동판에는 사형당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 풍경만으로 여행자를 매혹하는 곳

인구 130만 명의 도시 프라하는 그리 크지 않다.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프라하를 여행하는 게 관광 명소의 경관만을 소비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행의 경험을 풍성하게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마다 촘촘하게 여행의 세부계획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프라하의 가장 큰 매력이 ‘세계 2차 대전의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은 중세의 도시’라는 것이지만, 프라하에는 중세의 건축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프라하에는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가 있고, 저렴한 식사와 맛있는 맥주가 있으며, 성당과 교회에서 매일 밤 열리는 실내악 공연이 있다. 수준급의 오페라도, 전용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마리오네트 인형극도, 미국 대통령이 들렀다는 선술집에서 떠들썩하게 즐기는 재즈 공연도 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브라스 밴드와 댄서들이 등장하는 유쾌한 펍에서 민속 음악 공연을 즐기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어디 이뿐일까. 프라하에는 알폰스 무하의 섬세한 그림도, 들라크루아와 모네, 드가, 고흐, 고갱, 에곤 실레, 클림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도 있다.

누구나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 충분한 프라하의 경관이야 모든 여행자들이 고루 나눠 갖는 것이지만, 그 여행의 경험을 특별함으로 남기는 건 여행자의 목적과 촘촘한 계획의 여부로 좌우된다. 사실 모든 여행이 그렇지만, 유독 체코의 프라하로 떠나는 여정에 이런 첨언을 보태는 건, 그곳이 단지 풍경 하나만으로도 여행자를 충분히 매혹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여행이 밤이 긴 겨울에 동유럽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말이다.

 

 

여행정보 = 인천공항에서 체코 프라하까지는 직항편이 운항되고 있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로 보면 터키항공이 훌륭한 대안이다. 터키항공은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해 프라하까지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 안팎. 이스탄불에서 프라하까지 비행시간은 2시간 40분. 유럽의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터키항공은 비수기 기준으로 유럽 도시 왕복항공료가 최저 70만 원대까지 낮아지기도 한다.

유럽연합(EU) 가입 국가지만 정식 통화는 코루나. 1코루나는 47원 정도다. 대부분의 상점과 레스토랑에서는 유로화도 받는다.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이다. 프라하의 물가 수준은 다른 유럽국가는 물론, 우리보다도 저렴한 편이다. 프라하에는 매일 저녁 실내악부터 오페라, 재즈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현지에서 당일 표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여행일정이 확정된 뒤 인터넷(www.pragueticketoffice.com)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