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의 잦은 비로 온산에 물이 그득합니다. 가을산의 계곡마다 차가운 너럭바위를 타고 넘는 물소리로 청아합니다. 그 물소리가 충북 제천 일대의 폭포와 깊은 계곡을 찾아나선 길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계곡이 많기로야 험산 준령의 강원도가 첫손으로 꼽히지만, 구태여 충북 땅의 계곡을 찾아나선 건 이쪽의 물길이 유독 부드럽고 우아하기 때문입니다. 충북 제천의 금수산 자락에서 만난 용담폭포가 그려내는 느낌은 마치 바이올린의 선율과도 같았습니다. 네 개의 폭포가 층층이 내걸린 아래로 마지막 물줄기가 30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립니다. 용담폭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힘이나 규모가 아니라 운치입니다. 폭포라지만 한꺼번에 우당탕 쏟아지는 물줄기는 아닙니다. 힘차고 둔탁한 기운이나 벼락 같은 소리도 없습니다. 물줄기는 음악의 선율을 옮겨놓은 것처럼, 화선지를 지나는 우아한 붓질처럼 아름다운 선을 그려냅니다. 까마득한 협곡 저 아래의 물소리도 한없이 유순하고 부드럽습니다. 충북 땅에는 폭포와 계곡이 도처에 있습니다. 계곡의 아름다운 경관 아홉 곳에 이름을 지어 붙인 이른바 ‘구곡(九曲)’도 여럿입니다. 본디 구곡은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주자(朱子)의 ‘무이구곡’이 시작입니다. 주자는 중국 푸젠(福建)성의 무이산 계곡의 빼어난 풍경 아홉 곳을 가려 각각 이름을 붙이고 은거했지요. 그 뒤에 이를 본떠 비견할 만한 풍경에 구곡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남북한 통틀어 지금까지 확인된 구곡은 모두 105곳. 이중 27개가 충북 땅에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빼어난 계곡 네 곳 중의 하나가 충북에 있다는 것이지요. 충북의 구곡을 경관으로 순서를 매기면 괴산의 ‘화양구곡’이 첫손에 꼽힙니다. 하지만 숲의 깊이와 때묻지 않은 자연만으로 겨룬다면, 지난 30년간 외지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제천의 ‘용하구곡’이 으뜸이지 싶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월악산국립공원의 빽빽한 산군(山群) 한복판을 흐르는 계곡. 월악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84년부터 지금까지 용하구곡은 ‘자연보전지구’ 안내판과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습니다. 길을 알아도 갈 수 없는 곳. 그곳을 굳이 여기 소개하는 까닭은 실낱 같은 기대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이 지난달말 용하구곡을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지만, 명승으로 최종 지정된다면 닫혀있던 문이 혹 제한적으로나마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용하구곡의 통제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하류 쪽은 들러볼 수 있습니다. 구곡의 진면목이 그 너머에 있어 아쉽겠지만 계곡의 맑은 물색으로 그나마 위안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제천에는 또 한 곳의 구곡인 ‘능강구곡’이 있습니다. 구곡의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숲길의 맑은 기운도 좋고, 계곡 초입 갈림길에서 ‘조망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절집 정방사를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정방사에 오르면 충주호 너머로 첩첩이 이어지는 월악산 능선의 아름다움과 정면으로 마주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소리를 길잡이 삼아 가을산으로 드는 건 자연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길 위에서 자연에 이름을 새겨놓고 선비들이 지키고자 했던 삶의 도리를 만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 차고 맑은 가을산에서 만난 비단 같은 폭포 월악산국립공원 북단에 솟은 충북 제천의 금수산(1016m). 산 이름으로 ‘비단 금(錦)’에 ‘수놓을 수(繡)’를 쓴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유학의 큰 산인 퇴계가 붙여준 이름. 아름다운 경관의 칭찬에 ‘비단’을 들이대는 건 좀 지루하다. 그럼에도 금수산에서만큼은 비단이란 비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퇴계가 이 산에서 감탄했다던 단풍이 아니라, 금수산이 비밀처럼 품고 있는 용담폭포 때문이다. 용담폭포 물줄기의 우아한 자태를 묘사하는 데는 비단만큼 적당한 건 또 없겠다. 금수산에 걸린 용담폭포는 주능선에서 살짝 비껴난 망덕봉 오름길의 바위에서 한눈에 보인다. 폭포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만들어놓은 전망대까지는 산 아래 상천마을에서 15분이면 된다. 금수산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산이 품은 최고의 경관을 만나는 셈이다. 금수산 등산 코스를 밟아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적어도 6시간쯤은 잡아야 하는데, 30분이면 산이 품은 최고의 경관을 보고 나올 수 있으니, 등산에 그다지 취미가 없다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실 금수산 정상까지 다 오른대도 용담폭포를 뺀다면 이렇다 할 경관은 없다. 용담폭포의 물줄기는 계단을 이룬다. 폭포의 물줄기가 네 개, 그 폭포 아래 소(沼)가 또 네 개다. 그만그만한 높이의 폭포가 포말을 일으키며 상탕과 중탕, 하탕의 소를 만들고, 마지막 네 번째의 폭포가 30m 높이에서 떨어진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그러나 위압적이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슬쩍 뒤로 기울어진 너럭바위를 미끄러지는 물이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비단자락같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폭포가 그려내는 선은 다분히 동양적이다. 흰 수염의 신선이나 날개옷의 선녀가 목욕을 하는 자리가 어딘가 있다면, 꼭 이런 모습일 것이다. 폭포 전망대에서는 용담폭포의 모습이 다 보이지 않는다. 목욕 중인 선녀를 위해 커튼을 쳐 둔 것처럼 중탕의 물줄기를 나뭇가지가 슬쩍 가린다. 전망대에서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서 만만해보이는 바위 위로 기어올라서야 비로소 수묵화로 그려낸 것 같은 폭포의 모습이 눈에 다 들어온다. 기왕 놓을 생각이었다면 좀 더 높여서 전망대를 들이는 것이 나았겠다. 폭포의 물줄기가 내걸린 바위에는 용이 지나간 자취처럼 길게 홈이 파여있다. 상천마을 주민들은 용이 하늘로 오르면서 남긴 비늘 자국이라고 했다. 폭포 아래 깊은 못에서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른 건 중국 주나라의 황제가 금수산의 최고 명당에다 묘를 썼기 때문이란 전설이 전해진다. 늘 중국을 우러르던 벼슬아치들의 입장에서는 근거없는 전설이라도 중국의 황제가 우리 땅에 묘를 썼다는 건 감읍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던 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전설 속의 금수산 용에게는 중국 황제가 묘를 쓴 건 일종의 모독으로 간주된다. 노한 용은 ‘산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며 청천벽력과 함께 폭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전해진다. # 신선의 세계 찾던 선비가 머문 능강구곡
그가 능강구곡을 그린 그림에다 덧붙인 글의 한 대목이 이렇다. “나는 젊어서 세상이 요구하는 인재가 아니었고, 늙어서는 굶주림을 참아야 하는 처지를 받아들여야 하니 산 그림자 아래 물이 굽이치는 계곡에서 조용히 홀로 지내는 것을 어찌 근심하랴.” 그리고 덧붙이길 “이 몸이 이 세상에 붙어있는 건 한바탕 미처 깨어나지 못한 꿈”이라고 했다. 그림에는 죽장을 짚은 인물이 유독 가늘고 간결한 선으로 그려져 있다. 아마도 스스로의 모습을 그린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능강구곡으로 들어서서 물소리를 따라가는 내내 세상을 등지고 죽장을 짚은 채 홀로 걸어가는 노선비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능강구곡의 입구는 제천의 청풍대교에서 충주호를 끼고 하천리로 이어지는 길에서 만나는 자그마한 다리, 능강교에서 시작한다. 능강구곡의 물길은 근래에 제천이 조성한 도보여행길인 자드락길 3코스 ‘얼음생태길’과 딱 겹친다. 능강구곡의 제1곡부터 9곡까지 거리는 5㎞ 남짓. 1곡 쌍벽담과 2곡 몽유담은 충주호를 건설하면서 다리를 놓고 삽날을 꽂아 마름무더기와 잡목으로 경관이 죄다 흐트러졌지만 3곡 와운폭에서부터 진면목을 보인다. 여름 내내 가뭄으로 물줄기가 가늘었는데, 가을 초입에 연일 내린 비로 수량이 늘어 물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너럭바위가 펼쳐진 8곡 만당암을 지나면 최고의 경관인 9곡 취적대가 있다. 암반에 걸린 취적폭포와 그 아래 취적담의 진초록 물빛이 운치가 넘친다. 자드락길은 여기서 더 올라가 능강구곡의 발원지인 얼음골까지 이어진다. 얼음골에는 너덜돌 틈에서 냉기가 나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곳이다. 자드락길 3코스 입구에 두 갈래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이 능강구곡의 9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자드락길은 얼음골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 나오는 3시간 코스. 다 내려와 다시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왼쪽 길을 택해 정방사를 들러보자. 정방사까지는 구태여 걷지 않아도 차로 절집의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 정방사는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조망이 일품인 절집이다. 바닷가 절집에서나 보는 해수관음상이 정방사에 세워진 것도 충주호 때문이다. 하지만 정방사에서는 ‘호수’보다 ‘산’이다. 충주호 너머로 월악산 정상인 영봉을 필두로 일대 산의 무리들이 중중(重重)하게 그려내는 선들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마침 햇살이 비끼는 해질 무렵이라면 법당 앞의 난간에서 해가 다 넘어가도록 발길을 떼기 어렵다. # 30년 동안 닫힌 금단의 계곡, 용하구곡 지금 물이 그득한 가을의 월악산의 계곡 중에서 마땅히 가장 앞세워야 할 곳은 사실 제천 덕산면의 ‘용하구곡’이다. 계곡의 깊이와 경관은 아름답고, 명소마다 붙인 중의적인 이름과 그 이름을 지은 이의 뜻까지도 모두 선명하다. 그럼에도 소개가 뒤로 밀려난 것은 그곳이 굳게 닫혀있기 때문이다. 일대가 월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84년 이후 용하구곡은 내내 출입금지였다. 지역주민들만 버섯따위를 따러 드나들었을 뿐 30년 동안 외지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지금도 민박을 받는 용하문은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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