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周王山엔 가을이 살포시

醉月 2014. 8. 27. 17:45


가을 초입의 잦은 비로 지금 경북 청송의 주왕산 계곡마다 물이 그득하게 담겨 있다. 주위를 까마득한 석벽으로 둘러친 협곡의 깊은 물길을 따라 용추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용추폭포는 일제강점기 이후 ‘제1폭포’로 불렸다가 최근 옛 이름을 되찾았다. 용추폭포 위쪽의 제2폭포도 절구폭포로, 제3폭포도 용연폭포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북 청송(靑松). 이름으로 삼은 글자의 뜻이 땅에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푸를 청(靑)’에 ‘소나무 송(松)’. 청송 땅은 어디든 ‘푸른 소나무’처럼 푸르고 청정합니다. 주왕산으로 대표되는 웅장한 바위의 기운에다 수많은 물굽이마다 우뚝 일어선 석벽의 소나무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기암의 산과 부드러운 구릉이 계곡과 물길을 품고 있어 맑고 청량한 기운을 뿜어내는 곳. 청송이야말로 일찍 당도하는 초가을의 맑고 찬 기운을 마중하기에 맞춤한 곳입니다.

누가 뭐래도 청송의 으뜸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주왕산입니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 그가 주왕산을 보고 남긴 감상이 이렇습니다. ‘골이 모두 돌로 돼 있어 몸과 마음을 모두 놀라게 한다.’ 수백년 뒤에 주왕산에 든 이들의 감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름의 한 고비를 넘겼으되 녹음의 초록이 아직 빛을 잃지 않은 이맘때가 주왕산의 청정한 계곡미를 즐기는 데 더없이 좋은 시간입니다. 아름답기로야 암봉 주위로 붉은 단풍이 화르륵 타오를 때가 더 낫다는 데는 백 번 동의하지만, 행락객들로 온통 북적이는 그때보다는 이즈음의 계곡이 호젓한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더 낫습니다. 같은 이유로 폭포를 따라 관광객들이 즐겨 오르는 주방천코스는 용추폭포까지만 짧게 끊어서 다녀오는 대신, 물줄기에 딱 붙어 이어지는 절골의 계곡을 따라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물로 그득한 절골에 닿기 전에 만나는 저수지 주산지 역시 오랜만의 만수위로 버드나무 군락들이 아랫도리를 물에 담근 채 초록의 녹음을 뽐내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청송에서 주왕산 말고도 꼭 다녀와야 할 곳이 병암계곡에서 얼음골을 지나 영덕으로 이어지는 932번 지방도로입니다. 청송에서 영덕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이 길은 얼음골과 항리계곡, 옥계계곡으로 이어집니다. 물길을 따라 이 길에 펼쳐지는 협곡의 아름다움은 ‘내륙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 길’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사과밭 너머 청송 땅에 묻힌 옛 유랑극단 배우가 생전에 지었다는 노래 ‘황성옛터’의 노랫말도 풀벌레 우는 가을날이 알맞고, 옛사람들이 물굽이마다 제 뜻을 세우듯 지어낸 정자와 별서들을 둘러보는 것도 초가을의 여정에 딱 맞습니다. 올가을 유독 굵게 익어가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고 달콤하게 익어가는 가을을 맛보아도 좋겠고, 한낮의 볕이 아직 뜨겁다면 솔숲 그늘의 계곡에 앉아 탁족을 해가면서 둘러보아도 좋겠습니다. 청송. 그 이름처럼 맑고 청량한 땅에 지금 막 도착한 가을이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습니다.

경북 청송의 풍경은 푸르고 맑다. 푸른(靑) 소나무(松)란 지명에 능히 값한다. 청송 땅에 들어서려면 어느 쪽에서든 높은 고갯마루를 넘어야 하는데, 경계 안쪽으로 들어서면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청송읍에서 부남면으로 가는 길에서 솔숲 너머 산자락에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만났다.




# 주왕산…번잡한 세상에서 물러나 앉은 자리

경북 청송이 품고 있는 맑고 푸른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진 곳. 거기가 바로 주왕산이다. 주왕산이야말로 지세와 느낌으로 본다면 가장 ‘청송다운’ 곳이다. 희게 빛나는 암봉의 이마를 두르고서 초가을의 아침이면 송림 숲의 골짜기마다 흰 안개를 피워 올린다.

계절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금강산처럼 주왕산도 이름이 여럿이었다. 암석이 병풍을 펼친 것 같다고 해서 석병산(石屛山)이라고 했고, 난리가 날 때마다 숨어든 사람들이 많아 대둔산(大屯山)이라고도 했다. 숨어든 이들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산 이름도 있다. 주방산(周房山)은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 김주원이 여기 와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지금의 주왕산이란 이름도 중국 당나라에 쫓겨온 멸망한 진나라 장관급 벼슬아치의 8대 손인 주왕이 숨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주왕산의 곳곳에는 신라 왕의 자리를 빼앗긴 김주원이 여기서 난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며, 진나라의 재건을 꿈꾸며 숨어들었다는 중국 주왕의 시시콜콜한 행적이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구전일 뿐 남은 기록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연대도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꾸며진 이야기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 몸을 피하려 한다면 주왕산이야말로 딱 알맞은 자리였을 것이란 점이다. 거칠고 비범해 보이는 산세 때문이란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이야 시멘트를 발라 유모차도 드나드는 순한 탐방로가 놓였지만, 길을 놓기 전까지만 해도 주왕산은 감히 접근이 어려웠던 산이었을 것이었다. 까마득한 석벽이 수직으로 서고, 암릉 계곡의 물길이 협곡 사이의 아슬아슬한 길을 끊었다. 하지만 구태여 이곳으로 몸을 피한 이유가 길이 거칠다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거친 협곡 너머 안쪽의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빼어났을 테니, 거기서 자연이 빚어낸 이상향을 보았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산으로 들어온 뜻은 급박한 ‘피신’이었다기보다는, 물러나 앉은 ‘은거’라고 해야 더 적당하리라.

주왕산이 품고 있는 ‘피신 또는 은거’의 의미는 어쩌면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러니까 2005년 중반까지 주왕산 골짜기 깊은 골의 안쪽에는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진 내원동이 있었다. 나중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이 모여들었고,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이주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오래전의 내원동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상처 입은 이들이 세상을 등지고 찾아든 마을이었다. 그들이 이 깊은 산중으로 찾아든 건 자연이 품은 ‘치유’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유순한 탐방로가 놓인 지금도 주왕산은 가을 단풍철만 뺀다면, 인적 드문 호젓한 계곡을 따라 걸으며 반나절쯤 세상에서 물러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걸 요즘 말로 하자면 ‘힐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만수위의 주산지에서 그림 같은 반영을 만나다

주왕산을 오르는 두 개의 길. 그중 하나가 주왕산 아래 절집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 계곡을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건 폭포와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 때문이다. 누구나 주왕산을 처음 찾은 이들은 이 길을 택한다. 이쪽 길에서 만나는 절정의 풍경은 용추폭포다. 대전사에서 폭포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30분쯤. 유모차를 끌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순하다. 고무신을 신은 노인이나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도 눈에 띌 정도다.

용추폭포는 문처럼 열린 협곡의 바위 너머에 있다. 사방을 석벽으로 둘러친 공간 안쪽으로 삼단 폭포가 흘러내린다. 1단 폭포 아래 선녀탕이 있고, 2단 폭포 아래는 구룡소가 있다. 폭포와 주변 풍경은 다른 비슷한 곳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수묵 풍경화로 그려진 상상 속의 풍경이 구현된 듯한 느낌이랄까. 용추폭포를 지나면 숲길과 계곡길이 번갈아 이어지는데, 그 길에 몇 개의 폭포가 더 있다. 과거 2폭포로 불리던 절구폭포와 3폭포 용연폭포다. 하지만 1폭포인 용추폭포에 비길 만한 절경은 더 없다.

경관이 빼어난 만큼 주방천코스는 붐빈다. 암봉마다 단풍이 불붙는 가을이라면 아예 길게 줄을 서서 이동해야 할 정도다. 주말에도 이 길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주왕이 숨어들었다던 비밀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주왕산의 또 다른 길인 절골코스를 권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방천 길을 따라 용추폭포까지 다녀와서 다시 절골을 찾는 게 순서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청송의 구릉은 죄다 사과밭이다. 올해 청송의 사과는 여느 해보다 굵다. 만수위를 기록하고 있는 주산지의 물에 잠긴 왕버들 모습. 임하댐 상류 습지의 보(洑) 위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진보면 야송미술관에 전시된 청량대운도. 가로 46m에 이르는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따로 전시관을 지었다.


절골코스는 주왕산의 동쪽 능선의 협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계곡 물길이 끝나는 대문다리까지 3.5㎞ 구간의 모든 코스가 물길과 바짝 붙어서 간다. 길을 내기 어려운 깎아지른 협곡에는 나무덱을 놓아두었다. 이 길 위에서는 단 한 번도 계곡의 물소리가 끊기는 법이 없다. 이쪽 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다. 소나무와 활엽수 우거진 협곡을 물소리와 새소리만 데리고 걷는 맛이 그만이다. 이 코스를 두고 더러 ‘지루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오감을 열고 걷는다면 지루할 틈이란 없다. 등산이 목적인 이들은 이쪽 길로 대문다리를 지나 가메봉에 올랐다가 내원마을을 거쳐 주방천 길을 따라 대전사로 내려서는 6시간짜리 코스를 택하기도 하지만, 굳이 가파른 가메봉을 오를 것 없이 그냥 대문다리까지만 가서 길을 되짚어 내려온대도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절골 입구에서 대문다리까지는 왕복 세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주왕산 절골 부근에는 주산지가 있다. 아랫도리를 물에 담근 150년 수령의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알려진 이곳의 경관은 매혹적인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사진 속 풍경을 기대하고 주산지를 찾은 이들은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수지가 만수위가 돼야 수몰 나무가 반영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데, 수위가 낮은 날이 대부분이라 그런 모습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의 실망과 항의가 얼마나 잦았던지 청송군청에서 아예 저수지 한쪽에 ‘수위가 낮아 제대로 경관을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입간판을 세워놓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안내판이 치워졌다. 여름 끝에 내린 잦은 비로 주산지가 만수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찾아가면 녹음으로 우거진 초록의 숲과 주산지의 물빛이 신비롭게 어우러지는, 흔지 않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청송 계곡의 아름다움을 드라이브로 만나다

청송이 품고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차로 달리면서 느낄 수도 있다. 청송에는 지금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한여름 볕이 따가웠던 탓일까. 청송의 사과는 어느 해보다 알이 굵다. 청송에서는 어디로 길을 잡든 구릉마다 사과밭이 펼쳐진다. 가지가 휘어질듯 사과를 달고 있는 과수원 곁을 달리면 차창 안으로 달큰한 사과향이 밀려 들어온다. 과수원 옆을 달리다 한창 수확 중인 농부들에게 갓 딴 사과를 구입해 맛볼 수 있다. 탐스러운 사과의 선홍빛에 반해 차를 멈추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사과를 따던 이가 “눈이나 사진기로 어찌 맛을 알겠냐”며 뽀얀 당분이 오른 사과 몇 알을 그냥 내주기도 했다.

청송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길은 부남면의 병암계곡쯤에서 얼음골과 항리계곡을 지나 영덕의 옥계천 계곡으로 이어지는 932번 지방도로다. 이 길을 끼고 달려보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맑은 계곡의 풍경에 탄성을 지르게 될 게 틀림없다.

특히 얼음골에서 항리계곡을 지나 군 경계를 넘어 영덕 옥계리까지의 구간이 단연 압권이다. 옥계리는 청송과 영덕, 포항의 끝자락이 물길로 만나는 곳. 청송의 주왕산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여기서 포항의 동대산과 내연산의 물길과 만난다.

옥계천을 끼고 가는 지방도로 바로 옆에 정자 침수정이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선비인 손성을이 지었다는 정자인데, 현판에다 ‘베개 침(枕)’에다 ‘양치질할 수(漱)’ 자를 이름으로 얹었다.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소박한 풍류를 즐겼던 선비의 검박한 삶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물길의 풍경이 가히 선경이다. 정자 주변에는 서른일곱 개의 빼어난 경치가 숨어 있다는데, 찾아낸 건 고작 대여섯 개에 불과했다. 하기야 그걸 하나하나 가려내서 무얼할까. 이렇듯 한눈으로 바라보는 경관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감격이 차고 넘치니 말이다. 정자 건너편 바위 벼랑에는 ‘산수주인 손성을(山水主人 孫星乙)’이란 음각의 글씨가 뚜렷하다. 절묘한 자리에 정자 하나 짓는 것으로 ‘산수의 주인’을 자처한 셈인데, 정자 툇마루에 앉아 주위를 바라보노라면 진짜 ‘산수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황성옛터의 애잔한 노랫말을 따라가는 길

청송에서 가을에 들러볼 몇 곳을 더 보탠다면 그중 한 곳이 바로 왕평묘소다. 왕평 이응호. 그는 ‘황성옛터’의 작사자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가사와 구슬픈 곡조의 노래 ‘황성옛터’는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최초의 대중가요이기도 하다. 경북 영천 출신인 그는 1924년 열여섯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조선배우학교를 졸업한 뒤 극단 ‘조선연극사’ 소속으로 전국을 떠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평안도 강계에서 공연 중 쓰러져 세상을 떠난 그는 부친이 살던 청송의 수정사 절집 기슭에 안장됐다. 절집 인근 안내판을 따라가면 황성옛터 노랫말 그대로 덧없는 시간을 상징하듯 자그마한 무덤이 있다. 왕평의 묘가 있는 수정사 입구의 국도변 신기리와 어천리에는 임하호 상류의 습지가 펼쳐진다.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습지 주변 경관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빼어나다.

여기까지 갔다면 인근 진보면 신촌리의 야송미술관도 들러보자.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한국화가 야송 이원좌 화백의 그림을 전시한 곳인데, 이곳에 세계 최대의 수묵화가 걸려 있다. 높이 7m, 길이 46m에 달하는 ‘청량대운도’의 그림 앞에 서면 ‘압도’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굵은 붓질로 그려낸 거대한 산과 운해, 소나무의 기운찬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무릉하운도와 주왕산 8폭 병풍 등도 만만찮은 규모의 작품들이다. 세종대왕의 왕후 소헌왕비의 본향을 기리는 뜻에 근래에 복원한 소헌공원 안의 찬경루와 객사 운봉관 등도 가볍게 들러볼 만한 곳이다.


청송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안동 나들목까지 간다. 서안동에서 나와 안동을 지나 국도를 타고 청송 방면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청송 어디서나 주왕산 방면 이정표가 잘돼 있다. 주왕산의 절골 탐방로는 비가 내리면 자주 통제된다. 비가 내린다면 미리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청송 얼음골에서 영덕 침수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부남면에서 6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구천삼거리에서 930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청송과 영덕의 경계에서 침수정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청송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한옥체험숙박시설인 ‘민예촌’(054-874-0101)이 청송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8동의 한옥 독채 건물을 빌려주는데 화장실과 욕실 등이 딸린 방 두 칸짜리 아담한 한옥을 9만∼10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방 8개짜리 가장 큰 한옥 독채가 36만 원이다. 민예촌에는 청송백자 체험관 및 생활관, 심수관 도예 전시관, 수석 박물관 등의 부대시설도 있다. 주왕산 입구의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과 청송군청 인근의 힐모텔(054-873-8880)도 괜찮다.

청송읍 내의 한일식당(054-873-2696)은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의 칼국수로 이름난 곳. 골부리(다슬기)조림을 내는 청송시장 근처의 만보식당(054-873-1243)도 괜찮다. 청국장과 쌈밥을 내는 수궁식당(054-872-3010)도 추천할 만하다. 진보면 신촌리의 신촌약수탕 부근에는 닭불고기로 유명한 식당들이 몰려 있다. 약수에 한약재를 넣어 백숙을 고아내거나 살을 발라낸 닭고기를 고추장양념에 버무려 숯불에 구워낸다. 신촌식당(054-872-2050)이 원조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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