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전남 화순 노루목 적벽

醉月 2014. 10. 16. 08:23


30년만에 출입이 허용되는 전남 화순의 노루목 적벽 일대의 모습. 오른쪽 산 아래 수면위의 붉은 바위가 화순의 적벽 네 곳 중 가장 웅장한 노루목적벽이다. 먼발치에서 본 모습이라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적벽 아래쪽에 지붕만 살짝 보이는 망향정 앞에 서면 적벽의 위용이 느껴진다.


전남 화순의 ‘노루목 적벽’. 그 앞에 선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입니다. 같은 자리 똑같은 풍경을 다시 마주보고 이렇듯 정반대의 생각을 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섬진강 지류 가운데 하나인 동복천 상류 창랑천 변에 우뚝 일으킨 노루목 적벽. 수년 전 그 앞에 처음 섰을 때의 느낌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곳이 자물쇠로 닫혀 있다는 게 아깝고 또 억울했습니다. 문을 닫아건 지 30여 년 만인 오는 23일부터 빗장을 풀기로 했다는 소식에 다시 찾아간 노루목 적벽 앞에서는, 그러나 환영의 마음보다 걱정스럽고 한편으로 아쉬웠습니다. 백지같이 비워졌던 공간에 찍히게 될 어지러운 발자국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지요. 처음의 생각이 ‘손에 쥐지 못한 것을 탐하는 마음’이었다면, 나중의 생각은 ‘막상 가지자니 손때 묻을 것이 저어됐던 마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쯤이면 더 수다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노루목 적벽의 아름다움이 짐작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 닫혔던 길을 열어 노루목 적벽 앞에 서다

전남 화순이라면 지금이야 천불천탑의 운주사나 삼층 목탑 형식의 대웅전을 가진 쌍봉사부터 떠올리지만, 오래전에는 ‘화순 적벽’이 맨 앞에 섰다. 일제강점기에 당당히 ‘조선 10경(景)’의 하나로 꼽혔을 정도니 적벽은 화순 지역이 아닌 나라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소였다.

화순 적벽이란 화순의 창랑천 물길이 굽이쳐 흐르며 거대한 항아리 형상의 옹성산 몸체를 깎아 만든 4개의 절벽 군(群)을 한꺼번에 이르는 이름이다. 기묘사화 때 이곳으로 유배됐던 선비 최산두가 기암의 절경을 보고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赤壁)에 버금간다 해서 이름 붙인 이래 ‘내로라’하는 호남의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들었다. 제봉 고경명은 무등산 기행문에다 화순 적벽을 본 감격을 보탰고, 임억령은 이곳을 두고 ‘신선이 사는 곳’이라며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칭했다. 하서 김인후는 여기서 ‘적벽시’를 썼고, 화순 현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화순에 왔던 열여섯 나이의 다산 정약용도 여기서 감흥에 젖어 시를 읊었다. 전국을 떠돌던 김병연(김삿갓)도 말년에 화순으로 내려와 적벽을 드나들다가 생을 마쳤다.

화순 적벽으로 불리는 적벽 네 곳은 노루목 적벽, 보산 적벽, 창랑 적벽, 물염 적벽이다. 이 중에서 최고로 꼽혔던 곳이 바로 노루목 적벽이었다. 그런데 하필 가장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을 품고 있던 노루목 적벽이 보산 적벽과 함께 한순간에 철조망 뒤편으로 숨고 말았다. 1985년 광주시민들의 식수원 공급을 위해 창랑천 물길을 닫아 동복호가 만들어지면서 노루목 적벽이 물에 갇히고 만 것. 동복호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고, 노루목 적벽과 보산 적벽으로 가는 길은 닫히고 말았다. 동복호에 물이 차오르면서 노루목 적벽을 끼고 있던 16개 마을이 수몰됐고, 적벽과 기암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길가 쪽의 창랑 적벽과 물염 적벽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노루목 적벽의 위용에다 대면 어림도 없었으니 화순 적벽의 명성은 곧 잊어졌고,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적벽은 과거형 시제 속의 추억담으로만 남게 됐다. 노루목 적벽으로 가는 문은 늘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간혹 찾아드는 성묘객들에게만 인색하게 문을 열어주다가, 음력 시월 초하루 무렵 딱 하루만 문을 열었다. 그날이면 뿔뿔이 흩어졌던 수몰민들이 적벽 앞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고향마을 잔치를 열었다.

동복천을 끼고 있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둔동마을. 어찌된 셈인지 올해 둔동마을에는 단풍이 일찍 당도했다. 벌써부터 천변의 아람드리 나무들이 붉고 노란 빛깔로 화려하게 불붙기 시작했다.



# 닫힌 길의 아쉬움과 열린 길의 근심

이렇게 동복호의 물에 갇혀 꽁꽁 닫혀 있던 노루목 적벽이 오는 23일 드디어 문을 연다. 동복호는 광주시민 가운데 60%가 마시는 물이다. 광주시민들에게 매일 물을 대느라 이곳 동복호의 수위는 하루 4㎝씩 내려간다. 대체 상수원 개발이 요원한 상황에서 노루목 적벽은 상수원 보호를 이유로 영원히 개방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거듭된 화순군의 요청에 광주시가 화답하고 환경부가 승인하면서 개방이 결정됐다.

하지만 개방은 제한적이다. 일단 23일 적벽제를 시작으로 25일부터 매주 수, 토, 일요일에 문을 연다. 적벽 입구에서 노루목 적벽을 마주보는 망향정까지 5㎞ 남짓의 비포장 구간에는 승용차 출입을 막고 셔틀버스로만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셔틀버스 요금 2000원만 내면 된다. 사전 예약을 받아 33인승 버스를 하루 12번 운행할 예정이어서 입장인원은 396명으로 제한된다. 관람객들은 셔틀버스로 들어가서 그 차를 타고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입구에서 적벽을 관람하고 되돌아 나오기까지 딱 1시간 30분의 시간만 주어진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일단 11월 말까지 적벽을 개방하고, 동절기에는 다시 문을 닫은 뒤 내년 3월에 다시 개방하게 된다.

이렇듯 제한적으로 관람을 허용하는 데도 벌써부터 예약과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관람 예약은 관람일 2주일 전 오전 9시부터 화순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받는데, 오는 25일 첫 예약 신청이 3분 만에 끝났을 정도다. 26일 예약신청도 단 7분 만에 마감됐다. 불편하기야 하지만 꽁꽁 닫아 두었을 때에 비하면, 또 노루목 적벽의 빼어난 경관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이라도 어딘가. 한편으로는 이만한 불편함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숨겨져 있던 풍경에 때가 묻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적이 안심이 되기도 한다.

# 적벽 앞에 배를 띄우다

▲ 적벽의 이름을 처음 지어 붙인 신재 최산두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도원서원 아랫마을 화순군 동복면 연원리의 빨래터. 주민들이 배추도 씻고, 빨래도 하는 옛 모습 그대로다.

개방을 앞두고 적벽을 찾은 수몰민들은 물을 가둬 호수가 되기 전, 적벽 아랫도리가 굽이치는 창랑천의 물길이었을 때 ‘뱃놀이의 풍류’를 먼저 기억했다. 삿대를 저어가며 적벽 가까이에 붙어 까마득한 수직의 벼랑을 올려다보는 맛이 그만이었다고 했다.

동복호 담수로 적벽 아래가 물에 잠기기 전에 적벽은 훨씬 더 거대했다. 적벽 아래에는 제법 위용을 자랑하는 폭포도 있었고, 그 너머로 바위 협곡 틈에는 한산사라는 서늘한 절집이 있었다. 해마다 사월초파일 밤이면 장정들이 적벽의 꼭대기에 올라가 불꽃을 날리는 낙하놀이는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고 기억했다. 봄밤에 불꽃이 적벽에서 창랑천의 차가운 물 위로 떨어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적벽 아래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광주시 상수도 사업본부의 협조를 받아 순시선에 동승했다. 물에서 보는 적벽의 경관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맑은 물빛이었다. 푸른 하늘이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더 짙은 군청색으로 내려앉았다. 1급수의 맑은 물빛은 상수원보호구역의 철저한 통제로 이뤄진 것이었다.

창랑천에 하필 동복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빼어난 명소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상수원보호구역이 아니었더라면 보나마나 수변에는 일찌감치 모텔과 음식점들로 가득 찬 유원지가 됐을 것이다. 30여 년의 시간을 온전히 지키게 한 것은 그곳이 금단의 땅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동복호를 가로지른 배가 적벽 가까이로 붙었다. 가까이 다가서 본 적벽은 입이 딱 벌어질 만했다. 물길이 감입곡류하면서 빚어놓은 수직의 벼랑은 장쾌했다. 그 석벽의 까마득한 높이쯤에서 단풍나무 몇 그루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적벽 건너편 물가에서 제 그림자를 수면에 그대로 찍어내고 있는 정자 송강정의 자태도 빼어났다.

적벽에 띄운 배 위에서 옛사람들이 읊었다는 적벽팔경의 장면을 떠올렸다. 한산사의 저녁 종소리, 금빛 모래에 내리는 기러기떼, 학탄에 돌아가는 돛대, 적벽의 밤 낙하놀이. 부암 앞의 고기구경, 고소대의 맑은 바람…. 창랑천 석벽 아래 긴 모래사장이 깔려 있었다는, 이제는 수몰돼 사라져버린 옛 마을의 모습은 아마도 눈물나도록 아름다웠으리라.

동복천이 주암호와 합류하는 지점에 만개한 억새꽃. 오후 나절에 이곳에 가면 순백의 억새가 물결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동복천 물길에서 가을빛을 만나다

노루목 적벽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보산 적벽이고, 멀지않은 자리에 두 곳의 적벽이 더 있다. 물염 적벽과 창랑 적벽이다. 노루목 적벽과 마찬가지로 창랑천의 맑은 물을 따라 붉은 기운의 직벽이 우뚝 일어선 곳이다. 도로를 끼고 있는 이 두 곳의 적벽은 어김없이 키높이에 좀 못 미치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뒤로 몇 발자국만 물러나 고개를 치켜들어 적벽을 감상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노루목 적벽을 보았다면 물염 적벽은 필시 시시할 것이고, 그나마 철조망 너머로 너른 병풍처럼 펼쳐진 창랑 적벽이 볼 만하겠다. 창랑 적벽에는 아슬아슬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달라붙은 노송들이 몇 그루 있는데, 마을 주민들은 눈 내리는 날 눈이 달라붙은 창랑 적벽에 가지를 뻗고 있는 청정한 소나무의 모습이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를 방불케 한다고 했다. 물염 적벽의 감동을 대신하는 건 적벽 앞에 조선 중종 때 지어졌다는 정자 물염정이다. ‘물염(勿染)’이란 뜻을 풀이해보면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이름대로 물염정에는 세상사의 욕망에 물들지 않고 전국을 떠돌며 방랑했던 김삿갓이 자주 올라 시를 짓곤 했다고 전해진다.

창랑천의 물은 동복호에 담겼다가 다시 무넘이를 넘쳐서 동복천이란 이름을 달고 흘러내린다. 동복천의 물길은 적벽의 하류 쪽에서도 못지않은 경관을 펼쳐 보인다. 적벽의 경관이 규모와 형태라면, 그 아래 동복천 경관의 핵심은 색감이다. 이즈음 화순 땅에서는 그 물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가을 여정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동복호를 흘러내린 물길을 따라가다 첫 번째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동복면소재지를 지나 822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둔동마을이다. 둔동마을에는 500여 년을 보존해온 마을 숲인 숲정이가 있다. 다리 건너 물가를 따라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호랑버들,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수양버들, 이태리포플러들이 한데 어우러진 숲이다. 천변의 홍수를 막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비보의 풍수로 조림한 숲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숲이 좋긴 하되 규모가 크지 않아 다른 계절이라면 ‘감동할 만한 풍경’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가을만큼은 다르다. 한데 어우러진 다른 수종의 거목들이 제각기 다른 색의 가을 단풍으로 물들면서 화려한 전통 매듭과 같은 색감을 펼쳐 보인다. 올해는 둔동마을에 유독 일찍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으니 지금이 딱 그때다.

둔동마을 건너편의 구암마을은 감삿갓이 쉰일곱의 나이로 숨을 거둔 자리다. 평생을 떠돌던 김삿갓은 말년에 이곳 구암마을의 압해 정 씨 종갓집 사랑채에 기거하며 일대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시를 썼다. 그때 쓴 시의 한 구절. “이 세상 모든 일은 낙화 보듯 세월 흘려보냈고 / 일생을 밝은 달밤처럼 흐릿하게 살았도다.” 아무리 달이 밝더라도 밤은 늘 흐릿한 법. 스스로 자신의 삶을 ‘어둠 속에서 달빛을 길잡이 삼아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떴다.

구암마을에는 김삿갓이 기거했던 정 씨 종갓집이 복원돼 있고, 후손들이 이장해 가기 전까지 3년 동안 시신을 묻어두었던 무덤자리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 단풍에서 억새까지 가을의 한복판으로 흘러가는 물길

둔동마을 앞을 흘러내린 물은 용리교 앞에서 다시 화려한 강변 풍경을 그려 보인다. 용리교를 건너자마자 ‘물사랑배움터’를 지나 다시 U턴하듯 시멘트 다리를 건너오면 그쪽에서 마치 한 폭의 유화 같은 강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둑방을 따라 하류 쪽으로 끊긴 길의 끝까지 가면 물길이 휘어 도는 강변의 습지가 나타난다. 오후 나절 슬쩍 빗긴 역광으로 은가루가 부서지듯 물살이 반짝거리는 모습이며 노란빛을 띠며 반짝이는 숲의 모습은 가을의 것이라기보다는 봄이나 여름의 색깔에 가깝다. 둔동마을의 오후가 단풍의 짙은 그늘이라면 이곳 용리교 일대의 오후는 따스한 가을볕으로 맑고 환하다. 강변에 앉아 기분 좋은 가을볕을 즐기는 기분이 그만이다.

용리교를 지나 원진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보성 땅으로 이어지는 16번 국도를 올라서면 이내 주암호의 상류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물이 주암호에 담기나 동복천은 웬만한 강보다 폭이 넓어진다. 이쪽에는 온통 물억새로 그득하다. 이제 막 피어난 억새꽃이 드넓은 천변을 가득 채우고 순백과 은빛의 중간쯤 색조로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다.

이런 모습을 가장 감동적으로 만나겠다면 이곳에 당도하는 시간을 오후 3시 30분 이후로 맞추는 게 좋겠다. 그때쯤이면 억새꽃이 햇볕을 정면으로 받아 가장 환하게 빛나는데, 시간에 맞춰 그 길을 지나게 된다면 누구든 차를 세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라. 그걸 배려해서 그랬을 리는 만무하지만, 이쪽의 도로에는 차를 세워둘 길어깨의 폭이 넉넉하다.

가을 해가 기우는 시간쯤에 그 길가에 차를 대고 서보면 가을 바람에 물결치는 억새군락이 때로는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맑은 물길이 이렇듯 다양한 계절의 풍경 사이로 흐르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화순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호남고속도로로 장성갈림목으로 가서 고창∼담양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담양분기점까지 간다. 담양분기점에서 우회전해 고서분기점까지 가서 창평 방면으로 좌회전해 다시 호남고속도로에 오른다. 이어 나오는 창평나들목으로 나가 좌회전한 뒤 고서우체국에서 우회전, 887번 지방도로를 따라 담양군 남면소재지를 지나고 이서면사무소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동복호가 나온다. 노루목 적벽 입구는 이서면사무소에서 월산리 쪽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다. 입구에서 노루목 적벽까지는 비포장도로로 일반 차량의 출입이 통제된다. 화순군청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니 차량을 입구 쪽 주차장에서 세워둬야 한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고 차비 2000원만 내면 된다. 동복천의 물길을 따라가려면 노루목 적벽에서 나와 동복면소재지까지 가야 한다.

무엇을 맛볼까= 화순의 먹을거리로는 두부가 유명하다. 동면의 달맞이흑두부(061-372-8465), 도곡면의 색동두부(061-375-5066) 등이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 두부보쌈이나 두부전골 등이 주 메뉴다. 전통 한정식을 차려내는 수림한정식(061-374-6560)과 보양식인 흑염소탕을 내는 약산흑염소가든(061-373-9292) 등도 이름이 났다. 장어구이와 다슬기회 등이 주메뉴인 동서남북가든(061-371-6800)과 추어탕, 숙회로 유명한 미꾸리 마을(061-375-1279), 숯불갈비가 대표메뉴인 영빈관버섯숯불갈비(061-371-8292) 등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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