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떠난 곳이 바로 충남 태안입니다. 태안의 서해안을 따라 가로림만을 끼고 있는 북쪽 만대포구부터 학암포, 만리포를 지나고, 안면도의 해안을 짚어 남쪽 영목항까지 두루 들러봤습니다. 태안의 낙조풍경이라면 안면도 꽃지 해변을 첫손으로 꼽지만, 구례포에서 신두리 사이쯤의 먼동해변 낙조도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어떻겠습니까. 구름포, 파도리, 바람아래, 샛별…. 낭만이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가진 해변에서 맞이하는 세밑의 해넘이는 가슴을 저릿하게 해주기 충분합니다. 태안에는 파도소리와 소나무 향기가 출렁거리는 ‘걷는 길’이 있습니다. 바다가 멀리 물러나면서 드러난 백사장과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곰솔의 오솔길을 교대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마침 그 길에서 흩날리는 눈발을 만났습니다. 아우성처럼 비산하는 눈발 속에서 해안을 따라 걷는 맛이 어찌나 운치 넘치던지요. 그 길에 서서 차가운 바다 위로 분분히 날리는 눈발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쯤에서 온 하늘을 붉게 달구면서 수평선을 넘어가는 노을과 마주치게 된다면 저무는 것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썩 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해로 떠나는 낙조여행에는 필히 동행이 있어야 할 겁니다. 마지막 남은 빚을 길게 끌면서 저물어가는 낙조 앞에 서면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과 저무는 것의 쓸쓸함에 행여 마음을 다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해의 끝에서 다시 위안과 희망은 사랑입니다. 저무는 것 앞에서 다시 살아갈 날들의 대한 희망을 꺼내보게 만드는 것. 차가운 겨울바다에서도 가슴을 따스하게 덥히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겠지요.
# 겨울바다, 로망의 공간을 태안에서 만난다. ‘겨울바다의 낭만’을 로망처럼 가슴에 담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 만나는 겨울바다는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한 겨울의 바다는 찬 바람이 지배한다. 여민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든다. 낭만은커녕 어찌나 추운지 눈물마저 찔끔 날 정도다. 텅 빈 해안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 혼자 딛는 백사장의 발자국, 허공을 가르는 갈매기, 여기다 향긋한 커피향 따위를 더한 풍경쯤으로 겨울바다를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진짜 겨울바다는 여간해서는 그냥 서 있기 조차 힘들다. 겨울이면 억센 이빨을 드러내며 거칠어지는 동해 바다가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충남 태안 쪽의 서해는 좀 다르다. 복잡하게 들고나는 해안을 이룬 이쪽의 바다는 한결 순하고, 썰물 때 바다가 멀리 물러가면서 드러나는 백사장은 부드럽다. 해안 뒤편으로는 어김없이 한가운데로 오솔길이 지나는 솔 향기 짙은 곰솔숲이 있으며, 바다에 잇닿아 있는 포구의 마을들은 정겹다. 매운바람도, 거친 파도도 드무니 겨울의 바다여행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이맘때면 태안 일대에는 눈이 잦다.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 위로 꽃송이처럼 눈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색다른 정취를 보태준다. 뭐니뭐니해도 겨울 태안으로의 여정의 정점은 낙조다. 서해안의 해넘이야 언제든 볼 수 있지만, 한 해 중에서 대기가 청명해지는 겨울철의 낙조가 가장 색이 붉고 화려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세밑이라면 한 해를 보내는 감상이 겹쳐져 일몰의 풍경이 더욱 장엄해진다. 묵은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해의 첫날을 맞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서해로 떠나볼 일이다. 인파가 몰리는 동해안의 명소에서 떠들썩하게 마주하는 일출도 새로 맞는 해의 두근거림과 희망을 안겨주지만, 서해안에서 차분하게 묵은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저마다 가슴 속에서 작은 희망 하나를 꺼내보는 일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 투박해서 더 아름다운 바닷가 오솔길…솔향기길 충남 태안의 바닷가에 두 개의 ‘걷는 길’이 놓였다. ‘솔향기길’과 ‘해변길’이란 이름의 두 개의 길이다. 겨울에, 그것도 바람이 찬 바닷가에서 웬 걷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태안의 서해안을 따라 놓여진 길은 다른 계절도 물론 그렇지만, 겨울철에 걷기에도 딱 좋은 길이다.
솔향기길은 태안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북쪽 해안가에 있다. 솔향기길의 매력은 그곳이 ‘본래 그대로’의 서해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투박한 해안길은 자연스럽기 그지없고, 그 길에서 만나는 어촌마을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태안 최북단 만대포구에서 출발해 허리춤에 바다를 끼고 걷는 솔향기 길은 총연장 길이가 40㎞가 넘는다. 한번에 다 걷기란 불가능한 거리다. 그래서 길을 10㎞ 내외로 쪼개 모두 4개의 코스로 나누어 놓았다. 4개 코스 중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코스가 만대포구에서 꾸지나무해변까지 이어지는 제1코스 10.2㎞ 구간이다. 길은 줄곧 해안을 따라간다. 하나의 해안이 끝나면 고개를 넘어 다음 해안으로 내려서며 이어진다. 말이 고개이지 높이가 자그마한 둔덕 정도에 불과하니 코스 중간쯤에 있는 악너머고개를 빼고는 여간해서는 숨이 찰 일도 없다. 도투매기 둔덕을 넘으면 큰어리골이 나오고, 와랑창 둔덕을 넘으면 여섬과 차돌백이 해안이 나오는 식으로 길이 계속된다. 솔잎이 깔린 숲길과 폭신한 백사장, 짜그락거리는 해안의 자갈길을 교대로 걷다 보면 해안에서 두꺼비바위와 용난굴, 칼바위, 삼형제바위 같은 소박한 풍광들을 만나게 된다. 탄성을 내지를 정도의 절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걷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의 풍경은 된다. 1코스가 바다의 풍경에 집중하는 길이라면 2코스와 3코스는 해안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더해지는 길이다. 이 두 코스의 명소라면 2코스의 구멍바위와 3코스의 소코뚜레바위를 꼽을 수 있겠다. 두 곳 모두 파도와 바람이 해안가의 바위에 구멍을 뚫어놓은 곳인데, 구태여 걷지 않더라도 이곳만을 썰물 때에 맞춰 목적지 삼아 다녀와도 좋을 곳이다. 3코스의 이원방조제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곳. 방조제 외벽에는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의 절망을 딛고 자원봉사자의 헌신으로 바다를 되살려낸데 대한 감사의 뜻과 환경의 소중함을 담아 손도장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 해안길의 두여전망대에 올라 용의 지느러미를 보다 태안의 두 번째 길은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가 태안의 서해안을 따라 내고 있는 ‘해안길’이다. ‘해안길’은 태안의 학암포 해변에서 시작해 몽산포를 거쳐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안면도의 최남단인 영목항까지를 잇는다. 총연장 120㎞에 달하는 긴 트레일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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