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내 만화 재미없다 하면 바로 때려치울 것” | ||||||||||||
겨우 5년 전만 해도, 이 젊은 만화가가 이토록 ‘거물’이 되리라 짐작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수백, 수천만 팬을 ‘스크롤의 압박’에 빠져들게 만드는 강풀과의 인터뷰. | ||||||||||||
처음 그와 통화가 됐을 때 그는 “제게 뭘 물어볼지 압니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영화 <29년> 이야기였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을 그린 강풀의 원작 <26년>을 소재로 한 영화 <29년>-강풀이 연재할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09년 개봉할 예정이었으므로 영화 제목은 26년이 아니라 ‘29년’이다-의 촬영이 왜 미뤄지는지 물어보리라는 강풀의 짐작이었다. ‘항간에 떠돈 것처럼’ 뒷말이 무성했던 모양이다. “워낙에 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합니다. 최근 <순정만화> 개봉 전 영화사에서 주선한 인터뷰에만 응했지, 다른 인터뷰는 안 했어요. ‘시사지’인 만큼 <29년>이 왜 표류하고 있는지 물어볼 게 뻔한데, 제가 인터뷰에 응한답시고 나가선 ‘노코멘트’라고 하면 서로 그렇잖아요. 차라리 인터뷰를 안 하고 말지.” <29년>에 대해 ‘노코멘트’ 하는 이유 배려가 깊다고 해야 할까, 다소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그는 <29년>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사코 영화 제작사인 청어람 측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청어람 측에 문의했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항간에 떠돈 것과 달리’ 지난 정권 관계자의 외압 때문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한국 영화 침체기 속에 투자 여건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어람 측 관계자는 다만 “영화가 표류한다는 듯한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29년> 제작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조금 김이 샜다. 그 정도 이유라면 굳이 입을 닫을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도리어 ‘영화판 자본’이 <29년>처럼 사회적 의미가 있는 영화를 외면하는 문제를 작가로서 성토할 법도 하다. 이래저래 구슬려보았지만, 그는 끝내 ‘의리’를 지킨다. “만화 <26년>에 대한 건 제가 얼마든지 오픈할 수 있지만, 영화 <29년>에 대해선 영화사 쪽의 말을 듣는 게 맞아요. 제가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말을 하는 건 이기적인 것 아닐까요. 영화사가 나름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중인데, 원작자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강풀이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어쩌면 이런 고집스러움 탓인지도 모른다. <26년> 연재와 그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연재 막바지 너무 바쁜 나머지 동료 작가의 손을 빌려 작품을 완성했다. 문제는 강풀이 ‘환호성을 지를 만큼’ 동료 작가의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는 데 있었다. 그냥 넘어갔을 법한 일이지만, 강풀은 고민 끝에 연재를 뒤로 미뤘다. ‘자기 만화’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완성한 작품을 모두 버리고 자기 손으로 작업을 다시 했다. ‘마감의 고통’을 아는 이라면 쉽사리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다. 강풀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 최고의 온라인 인기 만화가다. 인터넷을 할 줄 아는 한국인치고 그의 만화를 접하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강풀의 만화가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첫 화면에 그의 만화가 뜬다. 그의 만화를 모르던 이들도 한 바퀴, 두 바퀴 마우스의 ‘휠버튼’을 굴려가며 ‘스크롤의 압박’을 즐긴다. 오프라인 독자가 책장을 넘기듯, 한참이나 남은 스크롤에 가슴 설레며,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스크롤에 아쉬워하며 그렇게 한국의 누리꾼은 강풀 만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6000만 페이지뷰’(<순정만화>)라는 대기록은 그의 만화에 열광하는 이에게는 보잘것없는 수치인지도 모른다. 그가 ‘최고’라는 수식을 받는 건 그의 작품이 책·영화·연극·드라마 등 전방위 장르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가 이미 영화화한 데 이어 <타이밍> <이웃사람>도 영화화가 예정돼 있다. <순정만화> <바보> 등은 연극 무대에도 올랐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드라마화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이야기꾼’으로서 강풀만큼 커다란 호응을 얻는 이도 없다. 대중문화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호칭도 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꼭 그만큼 부담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 부담은 <29년> 제작팀에게 그랬듯, ‘이웃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영화가 꼭 ‘강풀 원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거든요. 하지만 잘 못 만든 영화 때문에 제 이미지가 훼손될까 하는 부담은 아니에요. 영화가 제작되는 걸 보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목숨 걸고 그 일을 하는지 알겠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잘됐으면 좋겠고,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부담이죠.” 좌빨? 운동권? 난 그저 만화를 그릴 뿐 강풀은 코믹과 순정에 능하다. 작가 생활 초기,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 상당수가 생활 속에 일어나는 코믹한 소재를 다룬 만화였다. 반면 <순정만화>는 한없는 순정과 박애로 ‘무장’한 작품이다. 그런 강풀을 다시 보게끔 만든 작품이 <26년>이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5·18 광주항쟁의 피해자들이 지금 ‘살아 있는’ 학살의 원흉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이미 충격적이었다. <26년>에는 코믹이나 순정 요소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스토리는 긴박하고, 등장인물의 눈에는 핏발이 선다. 작품을 보노라면 이 작가가 1980년 5월의 ‘분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작품에 임했다는 짐작마저 절로 든다. 코믹과 순정의 달인이었던 그의 가슴속에 대체 무엇이 담겼기에 이런 작품을 그린 것일까. 2년 전 일이지만, 그는 방금 막 연재를 끝낸 것처럼 입을 연다.
강풀은 ‘성선설’을 믿는다.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쁜 사람’이 <26년>에 등장하는 전직 대통령일 정도다. 작품 속에서 그는 전 대통령의 ‘주구’인 경호실장에게조차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그를 일컬어 ‘좌빨’ 작가라고 부르며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절더러 좌빨이니, 운동권 만화가니 해도 중요한 건 지금 제 머릿속에 뭐가 있느냐잖아요. 과거엔 진보였다가 지금 보수로 바뀐 사람도 얼마나 많아요. 전 제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오른쪽에 서 계신 분들이 보기엔 제가 왼쪽인 것으로 보이겠죠. 그렇다고 굳이 ‘난 진보가 아니야’라고 나서서 부인하고 싶지도 않아요, 난 그냥 만화만 그리면 되니까요. 지지 정당도 없어요. 다만 한나라당 싫어하고 노회찬씨, 심상정씨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꼭 지지 정당이 있는 것 같지만(웃음) 정말 없어요. 작가로서 정치적 중립 때문은 아닙니다. 옛날엔 대놓고 노사모 만화가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그때 ‘노빠’라고 욕 엄청 먹었습니다.” 지금이야 최고의 반열에 올랐지만, 만화 작가로서 강풀의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총학생회 활동을 하던 대학 시절, ‘어떻게 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대자보를 열심히 읽게 만들까’ 고민하다 만화 대자보를 만든 것에서 비롯한 그의 ‘만화 인생’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다. 전교조와 참여연대 기관지 등에 ‘돈 안 되는’ 만평을 연재하긴 했지만, 대학 졸업 후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반백수로 지내야 했다.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불러주는 데가 없었죠. 인맥도 없고, 경력도 없고, 무엇보다 그림 실력이 없었어요. 그러니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요. 교보문고 잡지 코너에 가서 편집장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베껴와서 직접 다 돌아다녔어요. 그림 좀 그리게 해달라고. 이력서 뿌린 것만 수백 장이에요. <시사IN> 전신인 <시사저널>에도 찾아간 적이 있다니까요.” 잡지사와 출판사로부터 퇴짜 맞기를 수백여 차례, 보통 사람 같으면 때려치웠을 법도 한데 강풀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기성 매체가 자리를 내주지 않자 2002년 6월, 강풀은 아예 자기 홈페이지(www.kangfull.com)에 스스로 작품을 올리기 시작한다. 홈페이지를 연 날이 만화가로 데뷔한 날인 셈이다. 결국 그의 ‘그림’이 아니라 만화 그 자체를 사랑해준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그는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풀은 “만화가 좋았고, 만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아마 온라인에서 잘 안 됐어도 어떻게든 만화를 계속 그렸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강풀은 이제 한국 만화계에서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8년 전, 습작 원고를 들고 잡지사를 전전하던 강풀은 이제 없다. 더욱이 그는 기성 시스템을 벗어나 오직 온라인에서 성장한 1세대 작가다. 그런 만큼 온라인 만화가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관련해 만화계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그는 업체뿐 아니라, 작가의 분발도 함께 촉구한다. “만화의 위기를 작가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로 작가 개개인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실력을 키워서 어느 정도 재미있고 수준 있는 만화를 그린 뒤에 뭔가 요구해야지, 자칫 생떼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결국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를 만족시키는 만화를 그린 뒤에야 뭔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철저하게 ‘대중성’을 중시한다.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자세다.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손’을 얻지 못하는 대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둔 ‘가슴’을 얻은 그는, 태생적으로 소수의 마니아보다는 여러 독자를 매료시킬 재능을 타고난 작가다. “언젠가 내 만화가 독자로부터 외면받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요. 내가 재미없게 그려서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그런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때려치울 거예요. 밥벌이 같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을 겁니다.” 만화가 강풀, 그는 매순간 그렇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배수진을 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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