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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인들

醉月 2009. 1. 1. 08:21

대덕 핵융합연구장치 <KSTAR> 섭씨 1억도의 핵융합 부품 기술, 30여 기업·연구소 참여해 개발
거대과학 분야 첫 원천기술 '눈앞'
 
 

한국 과학이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하면서 수천억원이 넘게 들어간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줄을 잇고 있다. 거대과학은 그 자체로 모든 과학기술이 총집결된 결과물이자 일상생활에서 기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를 변화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거대과학의 현장을 찾아 미래를 향한 한국의 힘찬 맥박을 짚어봤다.

지난해 말 대덕 연구단지 국가핵융합연구소. 12년간 3090억원을 들여 독자기술로 만든 핵융합연구장치(KSTAR)에서 연구원들이 우주왕복선에 붙이는 내화(耐火) 타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흔히 보는 커다란 쇳덩어리 같지만 그 안에 미래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불'을 숨기고 있다. 바로 '인공태양'이다.

KSTAR은 태양처럼 수소 핵이 융합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양산한다. 수소 500g만으로 고리원전급 발전소 4기를 하루 동안 가동할 수 있고, 온실가스나 유독성 방사성 폐기물도 없다. 우리 기업들이 이 '무한 청정에너지원' 개발에 참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조선·건설·발전 경험으로 만든 인공태양
KSTAR의 진공용기 안에서는 섭씨 1억도가 넘는 상태에서 핵융합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극고온의 물질이 벽에 바로 닿으면 장치가 녹아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 벽 안에 영하 269도의 초전도 자석을 넣어 고온의 물질을 밀어낸다.

양 극한의 온도를 공존시키는 진공용기는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이 회사 박경호 부장은 "우리가 제안한 기술과 시제품이 수차례 퇴짜를 맞아 포기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역사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명감으로 계속 도전했다"고 말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현대중공업은 1억도 차이에도 버틸 수 있는 철강 구조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초전도체는 두산중공업이 담당했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흘러도 저항과 열이 발생하지 않는 물질이다. 발전소 건설로 잔뼈가 굵은 두산중공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용 초전도체를 시공할 수 있었다. 인공태양이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냉각수는 대우건설이 맡았다. KSTAR의 냉각수는 불순물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불순물은 전기가 흐르는 통로 구실을 해서 수만 볼트에서 가동되는 KSTAR에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 국가핵융합연구소의 KSTAR은 새로운 에너지원(源)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가 12조원을 투자하는 ITER사업에 KSTAR의 핵심 기술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덕=전재홍 기자 jhjun@chosun.com
50년 뒤 300억달러 시장 확보

이밖에 삼성중공업·고려제강·한국원자력연구원 등 30여 기업과 연구소가 KSTAR 건설에 참여했다. 참여 기업은 '국제핵융합로(ITER) 건설'에도 참여한다. 우리나라가 분담금 대부분을 KSTAR 건설에서 개발한 부품을 현물출자형식으로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

특히 ITER에 들어갈 진공용기의 20%를 우리 기업이 제작한다. 오차 10㎜ 이내의 초정밀 기기이다. 이케다(Ikeda) ITER 사무총장은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KSTAR을 건설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ITER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KSTAR는 우리 기업에 새로운 시장도 열어 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50년 후 극동지역에서만 상업용 핵융합발전소 수요가 최소 1000억달러(약 13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KSTAR에서 얻은 앞선 기술로 이 시장에서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

핵융합 같은 거대과학은 다양한 산업 부문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핵융합을 일으키는 초고온 상태의 플라스마.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플라스마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70%라는 분석도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수소발생장치, 태양전지 등에 응용되는 것까지 합하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백조 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핵융합연구소는 분석하고 있다.

경쟁분야서 원천기술 보유 첫 사례 될 듯

경제적 효과뿐만이 아니다. 핵융합연구소의 권면 박사는 "KSTAR 성공으로 세계에 새로운 에너지 양산 방식을 선보여 과학 한국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엄청난 이미지 제고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KSTAR의 1차 플라스마 실험 성공 이후 영국BBC방송 취재진이 한국을 방문,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각국이 경쟁하는 분야에서 처음으로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다. ITER사업단 한국 측 대표인 정기정 박사는 "한국은 핵융합에서만큼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면서 "KSTAR은 한국이 건국 이래 거대과학에서 후발 주자가 아닌 원천기술을 보유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융합 사업을 수행하면서 생긴 특허권으로 인한 수익 역시 보장받는다. 명실상부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인공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한국·미국·일본·러시아·EU·중국·인도가 공동으로 출자해 2018년 프랑스에 건설하기로 한 국제핵융합실험로. 국내 KSTAR의 초전도체를 활용한 핵융합 기술이 그대로 사용될 예정이다.


거대과학
우주왕복선 개발처럼 대규모의 과학자, 엔지니어를 투입해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R&D) 과제를 의미한다.

 

 휴대폰에 MP3·디카 결합… 뭐든지 버무려 새로운 걸 창조

한국인에겐 '한데 버무려' 이질(異質)을 동질(同質)로 만드는 독특한 문화적 소화 효소가 있다. 휴대전화에 MP3와 디지털 카메라를 섞고, 위성방송 수신 기능까지 얹어 세계 최초 제품을 잇따라 내놓는 것은 하이브리드(hybrid·혼합)형 '비빔밥 DNA'가 한국인의 핏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하이브리드 속성은 염색체부터 시작된다. 김욱 단국대 교수가 한국인의 미토콘드리아(모계로 유전되는 세포조직)를 분석해본 결과 70~80%는 북방계이고, 20~30%는 남방계였다. 김 교수는 "미국은 시간이 흘러도 백인종·흑인종이 따로 살지만, 우리는 같은 지역 안에서 완전히 섞였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미국 뒷골목 문화의 원조인 비보이(브레이크댄서)는 한국에서 국악 타악기 리듬과 농악의 몸짓을 받아들였고, 외래문화인 사우나는 한국에서 온돌과 만나 찜질방 문화를 창조해냈다.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따낸 야구 금메달은 한국식 하이브리드 야구의 성과다. 파워로는 미국에, 정교함으로는 일본에 못 당하지만, 이승엽 같은 파워 타자와 이종욱(두산) 같은 정교한 타자의 유기적인 화합이 세계 최강 신화를 만들었다.
한국식 하이브리드 문화는 위기 극복 때마다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10조원의 빚더미에 허덕이던 하이닉스는 혹독한 미국식 구조조정으로 회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살아난 하이닉스는 그동안 못 받았던 보너스를 모든 직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눴다. 성과주의와 평등주의의 절묘한 결합이다. 하나투어는 65세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실력에 따른 철저한 성과급과 입사 6개월 이상 된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나눠 준다. 실력주의와 종신고용이 결합된 한국형의 '실력 종신주의' 모델이다.

미국식 심층면접 입사제도는 한국에 들어와 1박2일씩 합숙하며 팀워크를 판단하는 도구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실패한 연봉제가 한국에서 정착됐고, 일본에선 사라진 회식 문화가 한국엔 살아있다. 성과를 높이면서도 조직의 단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비빔밥 DNA는 우리 기업의 해외 개척 전략의 핵심이다. 브랜드와 자본력이 약했던 현대차가 불모지 인도에 진출해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부품의 90%를 현지 조달하는 등 과감한 현지화를 통한 한국식+인도식의 혼합 전략에 있다. 밥(공동체)만 있으면 종교조차 비빌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불교(23%·2005년), 기독교(18%), 천주교(11%)의 3대 종교에다 원불교·통일교, 이슬람 신도까지 섞여 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多)종교 국가다.

 

 중동서 횃불 켜고 공사… 한번 불 붙으면 아무도 못 말려  신바람·光速 문화

일주일에 두 개꼴이다. 삼성전자 애니콜의 신제품 수다. 작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 100개 이상의 신제품을 내놨다. 시시각각 바뀌는 소비자 기호를 살펴 음악 기능도 확대하고, 스크린의 크기도 바꿔 넣었다. 수백 개 부품이 들어가는 데다 제품 수명도 6개월 안팎이니, 개발자 입장에선 숨이 턱턱 막히는 속도와의 싸움이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작년 50여 개국에 2억 대 이상을 팔아 휴대폰 세계 2위를 지켰다. 2006년만 해도 3위권에 머물면서 2위인 모토로라에 큰 차이로 밀렸던 위기를 탈출한 데는 광속(光速)의 스피드가 큰 몫을 했다. 지금도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엔 10개가 넘는 신제품 개발팀이 가동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용화 수석연구원은 "후발주자로 산업화에 성공한 우리는 스피드엔 강박증이 생길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기회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에는 신바람과 광속(光速)의 유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신바람이 붙으면 광속으로 질주하는 우리를 누구도 막지 못했다. 기술력 없다던 기업들이 마음 먹고 나서자 단번에 세계 4위의 특허국에 올랐다. 국제특허출원 건수는 1984년 10건에서 2007년 7061건으로 700배 넘게 성장했고, 2007년엔 과학강국이라는 프랑스도 제쳤다. 우리 앞엔 미국·일본·독일뿐이다.
신바람의 유전인자는 1인당 경제적 부가가치(EVA)라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종업원이 얼마나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순익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몰입도 수치인데, 한국 100대 기업들이 글로벌 100대 기업들보다 16% 높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분석했다.

신바람과 광속의 유전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입증됐었다. 1974년 6월 28일, 울산의 허허벌판에 현대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세계 기업사(史)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60만평 부지에 불과 2년3개월 만에 조선소 준공식과 26만t짜리 유조선 2척의 진수식이 동시에 열린 것이다. 당시 현대는 조선소도 없이 배부터 주문받았고, 크레인도 없이 독(dock)을 만들어 냈다.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제다에서 공사 중이던 삼환기업의 근로자들은 공기(工期) 단축을 한다며 횃불을 켜고 철야작업을 했다. 지나가던 파이잘 국왕이 "저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공사를 더 주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우리의 신바람 문화는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건설적 활기를 수반한다. 그래서 '빨리빨리'가 아니라 '쌩쌩(활력있게 질주하는 것)' 문화로 불린다.

대한민국, 위기 때마다 성장했다

 

1990년대 말,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었다. 재고는 쌓이고 딜러망은 붕괴돼 갔다. 현대 브랜드는 싸구려의 대명사였다. "내 시계가 당신의 현대차보다 비싸다"는 식의 조크가 TV 토크쇼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현대차 한국 본사는 IMF 사태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최후의 카드가 던져졌다. '10년간 10만 마일 무상보증'. 경쟁업체의 보증기간이 '3년간 3만 마일'이었으니, 무모한 도박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대차 직원들에겐 배수진을 친 셈이 됐다. 10만 마일 보증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도 힘들었던 '품질의 벽'을 돌파한 것이다. 지금 현대차의 각종 경영 지표는 세계 톱 클래스다. 부채비율·영업이익률에선 세계 최강이라는 일본 도요타마저 능가한다. 위기가 아니었으면 현대차는 아직도 그저 그런 싸구려 메이커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 ‘취업 전쟁’을 뚫고 입사한 IBK기업은행 신입사원 200여명이 새해를 하루 앞둔 31일 경기도 기흥 연수원에서 새해 소망을 담아 함성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밝고 희망찬 얼굴에 11년 전 IMF외환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든 우리 국민의 저력과 자신감이 담겨 있는 듯하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한국 경제는 위기에 강하다. 그저 강한 게 아니라 위기 때마다 새롭게 성장하고,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한다. 한국이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현대중공업·SK텔레콤 같은 글로벌 기업군(群)을 갖게 된 것도 IMF 위기 덕분이었다. 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탈바꿈했다. 한국경제에게 IMF 사태는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던 셈이다.

2000년 8월 4일 미얀마 수도 양곤. 트레이더스 호텔 대회의실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 임채문 이사(현재 부사장)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미얀마 서해안 가스전 공구의 독점 탐사권을 따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쁨보다 긴장감이 더했다.

당시 대우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있었고, 자금난에 시달렸다. 수백억원이 소요될 탐사에 실패하면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대우에게 주어진 시추 기회는 사실상 한 번뿐이었다. 제주도만한 바다에서 지름 1m짜리 시추공을 내려 단번에 가스전을 찾아야 했다. 해저 3200m까지 내려가는 시추공 하나 뚫는 데 1500만 달러가 들었다. 하나 뚫다 실패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고(Go)!" 사인이 떨어졌다.

그 후 3년5개월이 지난 2004년 1월 7일. 서울 본사의 임 이사에게 미얀마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가스층을) 확인했습니다." 3년간 마음 졸이던 임 이사 입에서 그제서야 환성이 터졌다. 이 가스전에선 우리 국민이 3년 쓸 양이 발견됐고, 대우인터내셔널도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경제성장 자체가 위기 극복의 역사였다. 한국 경제의 도약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위기 국면에서 이뤄졌다. 70년대 오일쇼크 때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80년대 후반 임금 폭등 때는 OEM(주문자 생산방식)에서 ODM (생산자 개발방식)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했다. 2000년대 중국의 추격에 쫓기자 글로벌 브랜드 전략으로 또 한 차례 도약했다.

한국 경제는 공격수 스타일이다. 위기일수록 공격에 나선다. 70년대 오일쇼크를 맞은 우리는 적진 깊숙이 파고드는 전략을 펼쳤다. 오일 달러가 넘쳐나는 중동에 해외건설과 노동자를 수출해 기름 사올 달러를 벌어들였다.

포스코는 위기 때일수록 더 많이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차 오일쇼크 직후인 80년대 초에 광양제철소를 세웠고, 선진국 저성장으로 촉발된 91년 위기 때는 당시 국내 제조업 총 투자액의 10%를 혼자 투자했다. IT버블 붕괴로 미국에서 34개 철강사가 파산했던 2000년대 초에도 매년 1조8000억원씩 투자했다. 덕분에 남보다 많은 과실을 누릴 수 있었다.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인에겐 위기에 강력히 반응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삼국시대-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국난(國難) 때면 항상 민족적 에너지가 분출돼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곤 했다는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우리는 위기에 강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좁은 국토에 경쟁밀도가 높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이노베이션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 세밑 희소식이 하나 더 들려왔다. 지수 산출 기관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는 새해 한국 기업들의 주당 순이익 증가율이 10.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만(-38.1%)·홍콩(-10.7%)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앞지르는 수치다. 한국 경제가 그만큼 위기에 강하다는 얘기였다.

 

교육열 세계 최고… 미국내 유학생 수 한국이 1위 

 

스웨덴,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은 이들 나라들은 지난해 한국식 교육을 배우겠다며 교육부 장관 등을 한국에 보냈다. 우리 스스로는 과도한 교육열이라고 진단하지만, 밖에서는 한국의 인재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는 국가경쟁력지수(2006년)에서 한국을 총 25개국 중 인적 자본 경쟁력 5위로 꼽았다. 같은 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력평가 조사(15세 이상)에서 한국은 핀란드에 이은 종합 2위와 읽기 1위, 수학 2위, 과학 3위를 기록했다. 2003년 OECD의 학업성취도 조사에선 문제해결 능력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위기 극복에는 인재가 필수조건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인재 파워는 한국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지난해 현재 네팔·가나·탄자니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95개국에 뻗어 있는 한국 유학생은 무려 21만명(대학생 이상)에 달한다.

미국에 유학 간 한국인 학생은 10만3000명으로, 인도(8만8000명)·중국(7만2000명)·일본(4만1000명) 보다 월등히 많다. 미국 하버드대학에 재학하는 한국 학생 수는 캐나다·중국에 이어 3위다. 한국인 기술자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파워그룹으로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국인 공동체 가입인원은 750여 명에 달한다, 실리콘밸리 IT분야에 일하는 엔지니어 3~4명 중 한 명은 한국인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인재의 성장이 곧 한국의 성장이었다. 1948년 3900여 개였던 초·중·고교 수는 2007년 1만947개로, 34개였던 일반대학은 200개로 급증했다. 사흘에 하나꼴로 학교를 짓고, 석 달에 하나씩 대학을 만들었다. 지금은 고교졸업자의 80%가 대학을 가는 대학진학률 1위 국가다.

교육열이 최고의 인력을 낳았다. 외국 제품을 구해 분해해서 재조립하며 기술을 터득하는 '역행적(逆行的) 엔지니어링'은 뛰어난 문제 해결력을 지닌 한국의 인재만이 가능한 선진국 따라잡기 비결이었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생전 "한국은 '지식이 현대경제의 유일한 자원'이라는 명제를 실현한 최고의 모범국가"라고 극찬했었다.

 

공동체 에너지 ,강렬한 운명공동체 의식, 불가능을 기적으로 만들어


글로벌 경제 위기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일컬어진다.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은 경쟁자를 앞서고 있고, 인재 경쟁력과 공동체 에너지는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저력,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무엇인가.
태안 바닷가가 기름 범벅이 된 지 16일 만인 2007년 12월 22일. 기름을 닦기 위해 모여든 자원봉사자가 30만명을 넘어섰다. 일본이 자랑하던 후쿠이현 미쿠니(三國) 유조선 사고 때의 '3개월간 자원봉사자 30만명'(1997년) 기록은 그렇게 깨졌다.
태안에선 3개월 동안 미쿠니의 4배인 123만명이 모여들었다. 울릉도에서 온 부녀회 회원이며 시각장애인, 그리고 48일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으며 묵묵히 기름을 닦은 탈북자 등이 함께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기적은 자주 있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강릉을 강타한 날, 전국에선 3187명이 복구를 위해 모여들었다. 복구 3개월 동안 100만명 이상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800여만명의 국민이 1300억원의 성금을 모았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는 2개월 동안 349만명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225t(21억7000만달러 상당)을 모았다. 전체 가구 중 23%가 동참한 것이었다. 1년 뒤 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올리며 '금 모으기 운동'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렬한 운명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예외 없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집단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1973년 오일쇼크, 기름값이 5개월 사이 네 배까지 뛰었다. 사람들은 기름값 시위를 벌이는 대신 악착같이 기름 소비를 졸라 맸다. 그 이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73년(6.4%)의 5분의 1 수준(1.3%)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7.2%의 성장률을 유지했고, 수출은 무려 38%나 늘렸다.

한 발 더 나갔다. 기름 살 때 쓸 돈을 기름 파는 나라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1978년 한 해만 해도 14만명의 건설 노동자가 중동에서 땀을 흘렸다. 이렇게 해서 5년간 중동에서 205억달러를 빨아들였다. 수출의 40%를 담당한 셈이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에 필요한 달러가 필요하자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달러를 벌어 보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지하 1000m 막장에서 탄가루 묻은 검은 빵을 먹었고, 광부·간호사 1만8659명이 연간 1000만달러를 한국에 부쳤다. 1964년 12월, 독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 모국의 대통령 앞에서 이들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없이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