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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게놈의 기적

醉月 2009. 1. 4. 08:45

나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게놈의 기적

100만원으로 개인의 게놈을 해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의학자들은 해독된 게놈 자료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 중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피 한 방울로 자신의 유전 정보를 읽는 시대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간단한 피검사만으로도 자신의 질병·경쟁심·지능·수줍음·모험심 등을 훤히 들여다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문’을 열어준 것은 인간 게놈 해독이다. 이 경이로운 업적은 ‘달 착륙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난해한 게놈의 이론과 용어에 얼떨떨해하는 사이, 과학자들은 이미 유전자 검사를 통해 1300여 가지 질병을 미리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질병 치료도 실용화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인류의 건강과 역사를 바꾸어놓을 게놈과 유전자의 어제·오늘·내일을 들여다본다.

인간은 세포 60조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세포 하나하나에는 씨앗처럼 핵이 들어 있고 그 속에는 다시 염색체 23쌍이 들어 있다. 경이로운 점은 염색체 23쌍에 실패에 감긴 실처럼 뉴클레오티드 약 30억 개가 이중 나선으로 들러붙어 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이 DNA다). 뉴클레오티드는 염기 4개(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에 당과 인산기가 부착된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세포는 도서 전집이고, 염색체는 그 전집 중 한 책이고, 유전자는 그 책의 한 문단이고, 뉴클레오티드는 글자이다. 그러니까 게놈은 책+문장+글자를 말한다.

게놈 해독비 1000달러 시대 도래
17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그 책 속의 글자가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 그 비밀을 밝히려고 1990년에 30억 달러짜리 사업이 시작되었다. 여섯 나라 과학자와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이 전개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였다.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과학자가 머리를 맞댄 지 13년. 드디어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익명의 여자 세 명과 남자 두 명의 DNA 샘플을 이용해 인간 게놈 99%의 지도를 완성하고, 염기 32억 개의 서열을 낱낱이 밝혀낸 것이다.

100달러로 게놈 해독하는 기술 연구 중


과학자들은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10만 개로 알고 있던 인간의 유전자(DNA 염기 수천~수만 개 덩어리. 체내에서 단백질 합성 등을 주관한다) 수가 3만여 개로 밝혀진 것도 그 중 하나다. 이같은 성과는 인간의 달 착륙을 능가하는 쾌거였다. 왜 사람이 특정 질환에 노출되는지 이유를 규명하고, 특정 유전자를 인간에게 이롭게 교체하거나 조작하고, 각 환자에게 맞는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시 몇 년이 흐르는 동안 게놈 연구는 성큼성큼 진보했다. 2003년에는 1953년 DNA 나선형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 박사의 개인 게놈까지 해독되었다(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남녀 다섯 명의 DNA를 합쳐 해독했다). 뒤이어 크레이그 벤터 박사(셀레라제노믹스 회장), 양후안밍  베이징유전체연구소장 개인 게놈도 해독되었다. 그 과정에서 게놈을 해독하는 비용과 시간은 대폭 감소했다.

   
ⓒ시사IN 백승기
김성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장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게놈을 해독하는 데 30억 달러·11년을 소모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6만 달러·6주일만 투자하면 개인 게놈을 해독할 수 있다. 2~3년 뒤에는 이마저도 굼뜨고 비싸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100달러·24시간에 게놈을 해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동수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장은 “100달러로 게놈을 해독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1000달러 시대는 늦어도 3년 안에 도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게놈 지도 완성
지난 12월 초에 자신의 게놈 지도를 공개한 김성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장(54)은 이같은 신기술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가 사용한 기계는 8억원짜리 솔렉사. 이 기계를 이용해 그의 백혈구에서 DNA를 채취해 해독했다. 분석에서 해독까지 걸린 시간은 8개월. 비용도 2억5000만원(18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김성진 원장은 “표준 인간 유전체 게놈의 약 7.8배의 염기(30억×7.8=234억 개)를 분석해, 단일염기다형성(SNP) 324만 개를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김성진 원장, SNP 320만 개 발견

인간은 DNA 염기(30억 개) 서열이 99.9% 똑같다. 나머지 0.1% 정도는 염기(A-T·C-G)의 철자가 뒤바뀌는 식으로 변이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SNP(스니프:인종별·개인별 염기 차이)이다. 0.1%의 차이가 인종과 피부색, 눈동자 색과 체질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SNP가 다른 사람과 많이 겹치면 겹칠수록 인종·개인 간 관계가 가깝다. 김 원장의 SNP (324만 개) 중에서 양후안밍 박사와 겹치는 SNP는 114만5175개. 반면, 왓슨 박사와는 72만1928개가 겹쳤고, 벤터 박사와는 91만7539개가 겹쳤다. 그러니까 김 원장은 인종적으로 양후안밍 박사와 가장 가깝고, 왓슨 박사와 가장 먼 셈이다.

   
개인의 차이를 나타내는 SNP는 다른 인종·사람과의 유전자를 비교해야 발견할 수 있다(위).
김 원장에 따르면,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번 게놈 해독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우선, 한국인의 게놈 지도를 만들었다. 그동안 한국은 다국적 게놈 프로젝트에 단 한 번도 들지 못했다. “그만큼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게 됐다”라고 김 원장은 자평했다. 둘째, 암 치료제가 왜 어떤 환자에게는 듣고, 어떤 환자에게는 안 듣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게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자극을 준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김 원장 스스로 질병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 그 병에 대비할 수 있게 된 것도 소득이었다.

유전자를 보면 질병이 보인다?


 유전자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는 천식·건선·알코올중독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제1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아주 조금 있었고, 하지불안증후군의 발병 위험은 일반인보다 1.44배 높았다. 문제는 노인성 황반변성.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8.2배나 높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발병이 미래의 일이어서 식습관을 바르게 유지하고, 운동을 적당히 하면 피해갈 수 있으리라 믿어서이다.   

질병 관련 유전자 1500여 개 발견
한발을 더 내디뎠지만, 한국의 게놈 연구 속도는 세계 수준에 비하면 아직 더디다. 반면 선진국 과학자들의 발걸음은 발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재다. 이미 질병 관련 유전자를 1500개 정도 찾아냈다(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에는 100여 개밖에 몰랐다). 이 정도면 “유전자를 보면 질병이 보인다”라는 말이 무색지 않다.

   
ⓒ박성남 그림
유전병으로 유명한 헌팅턴병(특정 뇌 부위의 퇴행을 초래해 치매에 이르는 유전병)이나 낭포성 섬유증(폐나 내장 기관에 섬유증이 생기는 유전병), 뒤센형 근위축증(근위축이나 운동기능장애가 생기는 유전병)의 관련 유전자는 이미 몇 년 전에 발견되었다. 2007년에는 녹내장·정신분열증·당뇨·심장병·전립선암·고혈압 같은 난치병 관련 유전자도 대량 발견했다. 이들 유전자가 특정한 변이를 일으키면 질병이 발생한다. 하나 둘 드러나는 질환의 정체 그리고 그것을 사로잡을 비법의 발견…. 이같은 기술적 성과는 미래에 쏟아져 나올 기술혁신의 서막에 불과하다.

DNA를 오리고 붙이다
이로써 몇몇 질환은 고위험자를 찾는 진단법이 개발되면, 치유도 가능하게 되었다. 원인을 알면 치료는 비교적 쉬운 법이다. 예컨대, 헌팅턴병은 유전자(DNA 뭉치)의 특정 장소에서 특별한 염기 서열(C-A-G)이 몇 번 반복되느냐에 따라 발병한다.

놀라운 것은 그 숫자에 따라 발병 연령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39번 반복되면 75세 이전에  걸리고, 41번 반복되면 54세에 걸린다(매트 리들리의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게놈>). 물론 반복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발병 나이는 줄어든다. 50번 반복하면 심지어 27세에 걸리기도 한다.

만약 의학자들이 유전자 치료법으로 이 병을 치료한다면, 문제가 되는 염기 서열(C-A-G)을 병과 상관없는 염기 서열로 바꾸면 될 것이다(대부분의 병을 이렇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제자리에 있어야 할 염기가 없어서 생긴 병이라면 필요한 염기를 오려 붙여야 할 것이다). 이미 DNA를 오리고 붙이는 ‘가위(제한 효소)와 풀(리가아제)’이 있으므로, 이 치료법은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 1972년에 시험관 안에서 바이러스 DNA를 자르고 붙이는 실험에 성공했다(GMO 식품은 이같은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작한다).

당연히 유전자를 조작해 질환을 예방할 수도 있다. 심장질환도 마찬가지이다. 심장 질환과 관련이 있는 E2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을 멀리 함으로써 병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또 태아의 게놈을 해독해서 미리 지능을 높이는 유전자를 ‘이식’하거나, 체형이나 건강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유전자를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유전자 차별’ 논쟁이나 생명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켜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자폐 증세, 16번 염색체 유전자 탓

한 인간의 지능과 성격, 질환과 호기심, 수줍음과 모험심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전자도 속속 발견된다. 자폐를 유발하는 유전자도 그 와중에 찾아냈다. 발견자는 미국과 아이슬란드의 과학자들. 그들이 자폐 증상을 보이는 아이 2000명을 조사한 결과, 그 원인이 염색체 16번에 있었다. 그곳에 있는 유전자가 삭제되거나 중복된 아이들에게서 자폐 증세가 발현되었던 것이다(<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2008년 1월19일자). 만약 과학자들이 그 유전자를 헌팅턴병처럼 치료한다면 자폐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수는 급격히 줄 것이다.

   
벤터 박사(위 왼쪽)와 조지 처치 교수(위 가운데)는 게놈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다. 위 오른쪽은 이희구 박사. 왓슨 박사(오른쪽)는 자신의 게놈 지도를 CD에 담은 첫 인간이다.
피 한 방울로 암 찾는다
곧 출간될 <새로운 비트가 온다-NBIT 융합 & 창조 비즈니스>에서 차원용 박사(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는 “혈액을 이용해 DNA를 분석하는 유전자 칩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 칩은 반도체 칩의 DNA 버전. 좁은 면적 위에 고밀도로 DNA를 집적해 생물학적 정보나 유전자 정보를 읽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의료용 DNA 칩을 사업화하고 있다. 당뇨병 측정 칩을 개발해 당뇨병 관련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2007년 말에는 혈액 속의 종양 세포를 감지하고, 그 수가 몇 개인지 세는 마이크로 칩도 등장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메멧 토너 박사와 대니얼 하버 박사는 아주 적고, 크기가 미미해 측정하기 어려운 혈중 종양 세포들을 감지·분리하고, 그 수를 세고 분석까지 하는 고감도 마이크로 칩을 개발했다. 2006년 6월에는 국내에서 에이즈 진단 칩까지 발명되었다. 벤처기업 시드바이오칩스가 어렵게 거둔 결실이었다. 

정연준 교수(가톨릭의대·미생물학교실) 팀은 대장암과 관련 있는 CAMTA1 유전자를 진단하는 검사법을 연구 중이다. 2년 전, 정 교수 팀은 대장암 환자 59명의 암 조직 유전자를 조사해 대장암 발병과 관련이 있는 후보 유전자 53종을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연구팀은 CAMTA1 유전자의 기능을 새롭게 확인했다. 지금까지 이 유전자는 신경계 암에서 암세포를 억제하는 기능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대장암 환자 59명 중 65%가 CAMTA1 유전자가 저하되어 있었다. 이는 이 유전자가 대장암 발현 억제와 관련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정 교수 팀이 그 유전자를 이용해 대장암 진단법을 개발한다면, 뉴스거리가 될 전망이다.

이희구 박사(줄기세포연구단·책임연구원) 팀도 비슷한 연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백질 MAC2BP를 이용한 위암 진단법이다. 정상인과 위암 환자의 혈액에서 MAC2BP의 함량을 측정한 결과, 둘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 박사 팀은 MAC2BP를 위암 종양 표지자로 사용하려고 특허도 출원했다. 만약 검사법이 개발되면 MAC2BP의 양을 측정한 뒤, 그 양의 많고 적음을 보고 위암 여부를 가늠하게 될 수도 있다. 

게놈 연구는 질병 치료나 인류사 복원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농수산물 생산이나 의료 기술 혁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박홍석 박사(유전체연구단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해독한 게놈은 모두 20여 종이다. 그 중 미생물이 아닌 것은 단 하나. 박홍석 박사가 규명한 침팬지 게놈이다(딸린 기사 참조). 미생물이나 감자·배추 등의 게놈을 해독하는 이유는 하나, 질병에 강하게 만들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게놈 연구의 남은 숙제
게놈 연구에 파란불만 켜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장애물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95% 유전자의 기능을 모르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새롭게 밝혀진 120개의 암 유발 후보 유전자도 과학자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질병 발생이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도 검증해야 할 숙제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정상인에 비해 1.5인 데 비해, 비만(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당뇨 발병 확률은 1.7배나 된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질병 예측의 신뢰도가 낮은 것도 문제다. 조남한 교수(아주대 의대·예방의학)에 따르면,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질병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맞을 확률이 30% 안팎이다. 한 프로그램에 개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입력하고, 그 결과에서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1.5배’라고 나온 사람이 10명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 중 2~3명만이 1.5배 확률 예측이 들어맞는다.

95%의 유전자, 아직 기능 몰라


몇 년 뒤 게놈 연구는 더 경이로운 결과물을 내놓을지 모른다. 2008년 초 영국 생어센터와 미국 국립보건원이 1000명의 개인 게놈 지도 작성에 나서고, 조지 처치 교수(미국 하버드 대학)가 구글 사와 합작으로 10만명의 게놈 해독에 나섰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 정부와 컴플리트 지노믹스 사(미국)는 2010년부터 2만명의 게놈 지도 그리기에 나서 게놈 표본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과학자들에게 큰 선물을 안길지도 모른다.

과연 이 모든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과학자들은 샴페인을 터트리게 될까? 그렇게 되어서 인류는 바람대로 무병장수하고, 더 멋진 인생을 살게 될까. 아쉽지만 아직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 가운데 게놈 혁명이 몰고 올 역효과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42쪽 딸린 기사 참조). 무엇보다 게놈이 예지하는 것이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가능성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모든 ‘게놈 프로젝트’는 아름답다.

 

논문 게재 안 하고 발표한 사연

   
ⓒ시사IN 백승기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이 보유한 게놈 해독기 솔렉사.
생명과학도들의 토론장인 브릭(gene.postech.ac.kr/community)은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김성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장이 지난 12월 초에 발표한 ‘한국인 게놈 염기 서열 분석’의 진위 여부를 두고 토론을 벌였고, 나름 해답도 얻은 것이다. “너무 성급했고, 믿기 어렵다. 다시 검증해야 한다”가 이들이 내린 결론이다.  왜 이같은 결론에 이르렀을까.

ID ‘관련전’은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새로운 SNP의 개수(320만 개)가 너무 많다”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이 사용한 기계(solexa)는 잦은 에러 때문에 염기 분석을 20배(600억 개) 정도 해독해야 하는데, 234억 개만 해서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는 말이다. ID ‘매드’는 아예 “새로 발견된 SNP 개수가 너무 많아 사람을 해독한 건지, 침팬지를 해독한 건지 알 수 없다”라며, 재검증을 하면 상당수가 가짜 SNP로 밝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김성진 원장은 <네이처> 지에 6배(180억 개) 이상이면 정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논문이 실렸다며,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의 저명한 연구자는 “솔렉사 기계로 7.8배를 해독했다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 게재도 안 하고 발표부터 한 것도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이미 국제적으로 ‘선 보도, 후 게재’된 사례가 두 번 있었다며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제임스 왓슨과 양후안밍 박사도 언론에 보도하고 1년 뒤 논문을 게재했다.” 덧붙여 그는 마크로젠이 먼저 한국인 게놈의 염기 서열을 분석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자신은 ‘처음’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고 한 뒤)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인정받으려면 여러 자료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제껏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브릭의 토론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김성진 원장이 발표한 자료가 인정받으려면 두 가지 방식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기계로 김 원장이 확인한 ‘새로운 SNP’ 검증, 다른 ‘한국인 게놈’과의 비교 분석이다. 두 번째 방법의 경우,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개별적으로 수행한  데이터를 총합해 비교 분석하면 된다. 그런데 김성진 원장은 누군가 이 제안을 하면 받아들일까.

 

침팬지 게놈 속에 감추어진 ‘비밀’
지금까지 게놈이 해독된 생명체는 약 180가지. 그 중에는 모기나 초파리, 선충까지 끼어 있다. 왜 생명공학자들은 굳이 여느 생명체의 게놈까지 낱낱이 읽어내려는 것일까.
   
제인 구달과 침팬지. 침팬지의 게놈은 인간의 게놈과 98.8% 똑같다. 600만 년 전에는 인간과 같은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게놈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 탓에 다양한 생물체의 게놈도 과학계에서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현재, 호기심 많은 생명공학 덕에 180여 생물의 게놈이 해독되었다. 그 중 대다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이지만 침팬지·쥐·초파리·모기·선충·오리너구리 같은 유기체 동물도 있다. 인간의 게놈처럼 각 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파악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왜 과학자들이 그 일에 매달릴까. 

959개 세포로 이루어진 꼬마선충. 이 벌레는 다세포생물(세균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식물) 가운데 가장 먼저 게놈이 해독되었다(1998년). 그 결과는 염기 9700만 쌍과 유전자 1만9000개로 남았다. 인간의 유전자가 3만 개쯤 되니까, 몸집이나 세포 수에 비하면 유전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과학자들이 하찮아 보이는 이 벌레의 게놈을 낱낱이 파악하려는 의도는 이 벌레가 모델 동물로 적합해서다. 과거에는 신경생물학적 실험에서 초파리가 가장 인기였다. 그런데 꼬마선충의 959개 세포 중 300여 개가 신경세포로 알려지면서 대우가 뒤바뀌었다. 꼬마선충의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인간의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페니실린의 원료인 푸른곰팡이의 게놈도 비슷한 이유로 2007년 9월 말에 해독되었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이 미생물은 염기가 3220만 개였고, 유전자는 1만3653개였다. 과학자들은 이들 유전자 정보까지 파악했다. 얼핏 생각하면 곰팡이를 뜯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의외로 꽤 도움이 된다. 항생제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내 그것을 조절하면 더 많은 환자들이 더 안전하게 페니실린의 효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항생제에 대항해 내성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 조절하면,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 모른다.

야생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에 따르면, 침팬지는 수화를 가르쳐주면 수백 단어를 외운다. 또 사냥한 음식을 나누어먹고, 돌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사냥도 한다. 인간과 얼마나 닮았기에 마치 예닐곱 살짜리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놀라지 마시라. 2003년 12월에 공개된 침팬지의 게놈 정보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8%가 똑같다. 이는 인간과 침팬지의 사이가 인간-생쥐 사이보다 60배 더 가깝고, 생쥐와 쥐 사이보다 10배 더 가깝다는 뜻이다(반면, 사람과 사람 간의 차이보다는 10배 더 멀다). 

   
3만8000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인간의 게놈과 99.5% 동일하다.
꿀벌의 게놈 해독이 준 ‘선물’


당연히 조상이 같았다. 600만 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는 전혀 다른 ‘진화의 길’로 들어섰다.  <사이언스>는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두뇌의 신경 축색 성장을 돕고, 뼈의 구조를 형성케 하는 등의 유전자의 진화가 가속화해 결국 인간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2년 전 침팬지의 Y염색체 염기 1270만 개를 해독한 박홍석 박사(유전체연구단 책임연구원)는 인간과 침팬지의 Y염색체를 비교하다가 인간의 Y염색체에서 매우 중요한 유전자를 발견했다. CD24L4 유전자다. “CD24L4는 면역 질환 및 감염증과 관련된 유전자인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삽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라고 박홍석 박사는 말했다. 그는 CD24L4 유전자가 인간과 침팬지의 면역 및 감염성 질환의 차이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리라 짐작한다. 그 비밀이 규명되면 침팬지와 달리, 왜 인간만 암이나 에이즈 등에 걸리는지 확인될 것이다.

더 드라마틱한 게놈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이다. 3만8000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이 원인(原人)은 인간의 사촌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같은 추론은 어디까지나 두개골 등을 분석한 결과이다. 인간과 원인의 관계는 여전히 덜 쓰인 추리소설처럼 미스터리 투성이이다. 그러나 그 비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생명과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의 대퇴골 부위 등에서 시료를 얻어 DNA 염기서열 수백만 개를 복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인간의 게놈과 99.5% 동일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스반트 파보 교수(독일 진화인류학 막스플랑코연구소)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네안데르탈인의 FOXP2 유전자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FOXP2 유전자는 인간이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온 뒤 계속 진화하고 있는 유전자로, 언어 사용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에서 FOXP2가 발견되면,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음이 드러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에 끝나는데, 그때쯤이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특이하게도 바늘두더지와 함께 현존하는 난생(卵生) 포유동물 오리너구리의 게놈도 해독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전세계 과학자 100여 명은 2008년 5월 <네이처>에 그 내용을  발표했다. 오리너구리의 DNA 염기는 22억 개(사람의 3분의 2), 염색체는 인간과 달리 성 염색체 10개를 포함해 52개였다. 이 작업에 참여한 크리스 폰팅 연구원(옥스퍼드 대학)은 “이 동물은 모든 포유동물이 알을 낳던 시대의 살아 있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리너구리의 게놈에 포유동물과 파충류 그리고 조류의 DNA가 고루 뒤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연구진들은 포유류와 파충류 중간쯤에 위치하는 오리너구리가 어떻게 깃털을 갖게 되고, 젖을 분비하고, 태생(胎生) 방식으로 새끼를 낳게 되었는지 밝힐 예정이다.

농민들을 구하려고 생물의 게놈 정보를 해독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 27개 주에서는 꿀벌 ‘실종 사태’가 발생했다. 꿀벌은 꿀을 만들고 꽃가루받이 구실을 하기 때문에 과수원이나 콩밭·오이밭 등에 없어서는 안 될 곤충. 서둘러 과학자들이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질병 혹은 기생충 따위를 의심해봤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때 과학자들이 새롭게 찾아낸 방식이 게놈 정보 해독이었다. 그 결과 꿀벌의 DNA 염기가 약 2억6000만 개, 유전자가 1만157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꿀벌이 사라진 원인은 규명되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체내에 들어온 독성을 배출하고, 면역성 질환을 극복하는 유전자가 상실되고 없었던 것.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을 보면 때때로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꿀벌 게놈 연구처럼 그 결과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유전자 차별’에 울고 웃는 사람들

유전자를 통해 사람의 건강과 지능, 성격을 파악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소외되거나 낙오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시대는 빠르게 유전자 시대로 치닫는데 그 ‘그늘’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
당신이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DNA 칩이 상용화되면 피 한 방울로도 수천 가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 그쯤 되면 모든 사람의 게놈 정보는 CD에 담길 것이다. 이미 CD 속의 ‘또 다른 나’를 만난 사람들이 있다. DNA 나선형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 박사와 톰 하킨 미국 상원의원이다.

이들이 자신의 게놈 정보 덕을 얼마나 보고 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나쁜 유전자’가 게놈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우리도 똑같이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같은 내적 고뇌는 비극의 시작에 불과하다. 2020년께, 미래를 상상해보자. 20대의 강심장씨는 어느 날, 한 회사의 문을 두드린다. 입사 면접을 보러 온 것. 그 전에 강씨는 자신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CD를 이 회사 총무실에 보낸 터였다. 그가 면접관 앞에 앉자 면접관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묻는다. “r5381× 유전자에 이상이 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씨는 고개를 떨군다. r5381× 유전자는 전염성 강한 C형 간염을 유발하는 인자. 지난 일들이 강씨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학창 시절 격리되어 공부하던 기억, 보험 가입을 제한받던 기억….

당연히 강씨는 입사에 실패한다. 그럴듯한 대학을 나오고 성적도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혼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혼례 전에 유전자 정보가 담긴 CD를 교환하는 일이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고민 중이다. 우수한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훔칠지, 아니면 조작된 우수한 유전자가 담긴 CD를 살지…. 더 심각한 문제는 강씨같이 소외되거나 낙오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래의 강씨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강씨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부 학교에서 투렛증후군(틱)이나 주의력결핍증이 있는 학생을 격리 수업하거나, 일부 회사에서 간염 환자나 동성애자 등을 배척하거나 퇴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부 보험사는 당뇨병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 질환자의 보험 가입을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이같은 차별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 ‘유전자 결정론’이 세상 곳곳으로 확산되는 탓이다.  

유전자 결정론, 너무 믿으면 곤란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결정하고, 유전자를 해석하기만 하면 인간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과거에는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요즘은 기질적인 내향성·외향성, 스포츠의 활동성, 호색성과 지배성, 우울증, 심지어는 보수적인 성향과 자유주의 성향까지 유전된다고 이야기한다(그러나 이같은 특성의 유전 가능성에 대한 증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리처드 르원틴의 <DNA 독트린>). 

문제는 사람들이 그같은 말에 솔깃해한다는 점이다. 해법은 둘. 유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하고, 차별을 막는 것이다. 이미 발 빠른 나라들은 대책을 세웠다. 2008년 5월, 미국 하원은 ‘유전자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에 따라 앞으로 건강보험 회사는 가입 희망자의 유전자적 소인을 핑계로 보험 가입을 제한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라고 임동수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장은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칼도 다룰 줄 모르고, 보호받을 법도 없다면 그 결과는 너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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