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차향만리_03

醉月 2013. 2. 2. 01:30

새하얀 차꽃, 신부의 고상한 품격 혼례 부케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차꽃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  

 

이맘때면 전남 보성의 오선봉이나 지리산 화개골 같은 남쪽 땅 차밭은 차꽃으로 황금물결을 이룬다. 겸손한 듯, 수줍은 듯 찻잎 속에 살포시 숨어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차꽃은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신부 같다. 그 은은한 향기와 소박한 아름다움이 국화에 견줄 바가 아니다.

“우거진 잎 모진 추위와 싸우며 겨우내 푸르고, 하얀 꽃 서리에 씻겨 가을 정취 빛내누나(密葉鬪霰貫冬靑 素花濯霜發秋榮).”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쓴 우리나라의 유명한 차 책 ‘동다송’의 첫 구절이다. 가을 차꽃을 보지 않은 이에게 차꽃의 잎새와 황금 꽃술의 아름다움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10월부터 12월까지 찬 서리 속에서 꽃술이 더욱 영롱해지는 차꽃을 운화(雲華)라고도 했다. 게다가 차나무는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면 그다음 해 열매가 영그는 철에 다시 꽃이 핀다. 이 때문에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는 의미에서 차나무를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도 한다.

 

흰색 꽃잎은 백의민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군자에게는 지조를, 여자에게는 정절을 상징했다. 또 꽃잎 다섯 쪽은 고(苦), 감(甘), 산(酸), 삽(澁), 함(鹹)의 의미를 담고 있다. 너무 인색(鹹)하지 말고, 너무 티(酸) 내지도 말며,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하게(甘)도 말고, 그렇다고 어렵게(苦)도 말라는 깊은 뜻이다.

 

명나라 때 중국 절강성 항주에 살았던 허차서(許次·1549~1604)가 쓴 ‘다소(茶疏)’에 “차는 원래 옮기지 못하니(茶不移本), 심은 것은 반드시 씨앗에서 태어난다(植必子生), 옛사람이 결혼에 반드시 차로써 예를 삼은 것은(古人結婚必以茶爲禮), 옮기지 말고 자식을 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取其不移置子之意也). 지금 사람 역시 그 예를 하차라 했다(今人猶名其禮曰下茶). 남녘 사람들의 혼인에는 반드시 차가 없어서는 안 된다(南中夷人定親必不可無)”고 했다. 말하자면 결혼을 ‘하차’라고 했다는 말이다.

 

차나무는 외뿌리 직근성으로, 옮겨 심으면 잘 살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시집가는 신부가 시가에 차를 예물로 가지고 갔고, 시어머니 또한 새 며느리에게 차나무 씨를 선물했다. 차나무처럼 일부종사(一夫從事)로 가문을 잇겠다는 양가의 말 없는 약속이었다. 신부가 친정에서 마련한 차와 다식을 시댁 사당에 올리는 것을 ‘예서(禮書)’ 혼례편에는 ‘사당다례’라고 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봉차(奉茶) 풍습은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행해졌으나, 차가 자라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봉차라는 이름 대신 봉채(奉采)라는 이름으로 행했다. 남쪽 지방이 아니면 차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85년 10월 5일 신부 박형희 씨(당시 27세)는 서울에서 혼례를 치렀다. 차인이었던 시어머니의 고집으로 멀리 경남 사천 다솔사에서 따온 차꽃으로 부케를 만들었다. 신부가 차려 입은 흰색의 웨딩드레스에 희디흰 꽃잎과 초록빛 잎새, 황금색 꽃술로 어우러진 부케는 환상적인 매칭을 선사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차꽃이 피는 가을에 혼례를 하는 신부는 구할 수만 있다면 차꽃 부케를 만들어보라. 고상한 품격의 새하얀 차꽃이 신부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거기다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쓴 차 맛처럼 긴 세월을 부부가 함께하면서 인생의 굽이굽이를 잘 이겨 회로할 것을 다짐하는 의미도 있어 뜻 깊은 혼례가 될 것이다.

 

양질의 카페인… 졸음 쫓는 데 딱!

 

고3 수험생이 있는 집은 ‘고3병’이라는 고질병을 앓는다. 입시와의 전쟁을 치르는 수험생을 위해 가족 모두가 전투 분위기에 돌입해야 한다.

수험생에게는 무엇보다 양질의 차를 권하고 싶다. 차는 수험생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두뇌를 활성화시켜주는 묘약이라 할 수 있다.

 

수험생에게 천적은 졸음이다. 잠을 쫓으려고 수면제나 커피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피로만 쌓이고 자신도 모르게 중독될 우려가 있다. 반면 졸음을 쫓아주고 체력까지 도와주는 금상첨화 마실거리가 바로 차다.

 

일회용 티백 차보다 잎차가 효능이 좋고 맛도 더 좋다. 한 티스푼 정도 분량의 녹차에 물 100cc를 붓고 2분 후에 따라 마신다. 세 번을 거듭 우려도 맛은 그대로다. 아침밥 먹기가 껄끄러운 학생에게는 가루차 수프를 권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수프를 구해 끓인 다음 가루차를 한 티스푼만큼 넣고 휘저어 먹으면 맛도 단백하다. 영양을 고려한다면 전복죽에 가루차를 섞어도 좋다. 고소한 맛과 쌉싸래한 맛이 어울리고, 비타민C 덩어리인 차와 영양소가 풍부한 전복은 궁합도 잘 맞아 속이 든든하다.

 

차에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칼슘 등 수험생에게 꼭 필요한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돼 있다. 무엇보다 양질의 카페인이 커피만큼 들어 있어 뇌세포를 활성화시키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피로가 가신다. 게다가 찻잎에 든 카페인은 일반 카페인과 달리 수용성이라서 중독될 위험성이 없다. 카페인과 비타민C는 녹차에 많고, 반(半)발효차인 중국차와 완전 발효차인 홍차에는 타닌 성분이 많다. 타닌은 소화를 돕고 입 냄새를 없애준다.

 

그런데 따뜻한 물만 있으면 간단히 우려 마실 수 있는 차도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빈 속에 차를 많이 마시는 건 좋지 않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경우, 찰떡을 꿀에 찍어 다식(茶食)으로 먹거나 팥소를 넣은 달콤한 찹쌀떡 혹은 카스테라 같은 것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이렇게 하면 차를 많이 마셔도 위가 상하지 않는다. 또 찹쌀로 만든 떡은 소화도 잘 된다.

차는 예부터 글을 많이 읽는 선비나 귀족층이 즐겨 마셨다. 중요한 국가 정책을 다루는 부서에는 임금이 차를 내려주기까지 했다. 국사를 논하기 전에 정신을 맑게 하라는 취지였다.

 

기원전 책 ‘이아’나 ‘광아’, 당나라 때 육우가 쓴 ‘다경’, 조선 말 초의선사가 쓴 ‘동다송’ 등 예부터 내려오는 차 관련 책의 첫머리를 보면 “기음성주 영인불면(其飮醒酒令人不眠·그것을 마시면 술이 깨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없게 한다)”이라고 했다.

조선왕실에서는 왕세자가 공부하기 전 조청(물엿) 두 숟갈과 차를 마셔 머리를 맑게 했다고 한다. 공부로 소모되는 뇌 에너지를 조청이 보충해주고 초조한 마음은 차로 다스린 것이다. 왕실의 이 같은 섭생은 자연스레 일반 백성에게까지 알려져 과거를 보는 선비에게는 조청 단지와 작설차가 필수품이었다. 입시 날 엿을 먹거나 교문에 붙이는 풍습도 옛 선인의 이 같은 지혜로움이 시대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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