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과 영성
미래 세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최근 서점에 가보았더니 밀레니엄에 관련된 책코너가 신설될 정도로 미래를 예견하는 소위 ‘밀레니엄 예견서’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차곡차곡 전시도니 책들을 짚어 읽어보면서 필자는 웃고 말았다. ‘과학이 발전한다’ ‘정보세계가 도래한다’ ‘글로벌 시대가 올 것이다’ 등등의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예언같지 않은 예언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은 이처럼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엔 어떤 시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발을 딛고 산 이래 인류 역사는 노동력의 시대, 산업력의 시대, 기술력의 시대, 정보력의 시대를 거쳐왔다. 그럼 그 다음 시대는 무엇일까.
노동력의 시대는 인류역사의 초기 단계, 인간이 가진 육체적인 물리력이 사회발전과 역사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를 바탕으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가 형성되어 왔고 중세와 근세를 거쳐, 인류는 ‘근대’라는 빠른 성장기를 겪게 된다.
곧, 산업혁명이 찾아온 것이다. 인류의 지식이 확장되고 과학기술이 축적되면서 인류는 근대 초입 증기기관과 방적기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로 재빠르게 진입하게 된다. 산업국가로 발돋움하지 못한 국가는 빠른 쇠퇴를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절대 패권은 영구에게로 돌아가 영국은 제국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영국은 미국에게 패권을 넘기게 되고 그와 동시에 산업시대를 종결, 드디어 기술력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기술력의 시대에는 한 국가나 한 기업의 생존 자체가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던 시대로 미국과 일본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다, 1980년대로 진입하면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대 변혁을 맞게 된다. 바로 정보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정보제일주의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이 정보력의 시대에도 기술력의 가치는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력의 근간을 정보 또는 지식체계의 집약으로 파악했으며, 곧 기술과 함께 ‘공학적 기술을 있게 하는 제반 지식의 두께’ 또는 ‘지식의 체계’ ‘기술의 내용과 형식’등을 정보라고 파악했다.
이렇게 볼 때 정보는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이는 결코 기술과 정보가 서로 떨어져 있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보력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컴퓨터와 통신기술에 있다 하겠다.
컴퓨터는 현대 인류 문명을 초속단위로 바뀌게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컴퓨터의 발명은 인류역사에서 ‘불’의 발명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이다. 통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영역을 무너뜨린 인터넷은 미래에는 전화기처럼 필수불가한 요소가 될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 여기에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통신까지 가세, 인류는 초고속 정보화사회속에서 미래를 맞게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미래는 과연 어떤 시대일까.
필자의 미래느낌으로는 미래는 ‘창조력(創造力)’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는 혁명적 세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물리적 힘의 세계에서 정신적 세계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창조력과 함께 인간의 영혼의 세계에 대한 지력이 함께 확장되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실체는 신에 의해 탄생되어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간이 달려온 험난한 길은 결국 신을 닮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래는 신의 능력을 가장 많이 닮은 능력인 창조력과 신의 세계에 대한 지혜인 영성을 이용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역사는 힘(power)에서 아이디어(idea)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아이디어’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는 사회는 진정으로 영적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창조성과 영성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I.Q를 최고로 생각하던 우리나라가 S.Q나 E.Q를 중요시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는 것과 선을 같이 한다 하겠다.
미래가 창조력과 더불어 영성의 세계가 될 것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문화공동체 1순위, ‘몽고’
지금부터 필자가 하는 이야기는 어떤 구체적인 논증이나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까닭은 나중에 어떠한 책임을 지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단편적으로 느꼈던 것을 적고자 할 따름이다.
한 가지 부연할 것은 필자가 쉽게 표현하고 쉽게 한 말일지라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공부한 영혼의 세계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있다. 이것은 영혼과의 대화중에 내가 배운 것이기도 하다.
“20세기 미국은 샌프란시스코가 개항하고부터 세계의 종주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렇지만 21세기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38선은 몽고의 38선으로 지가가 변동할 것이다.”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반발하실 분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 필자가 하는 얘기를 잘 듣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한국인에게는 공통된 마음의 고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백두산이다. 중국과 국교를 맺자마자 한국인들이 뛰어간 곳도 이 백두산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백두산은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의 성지가 된 지 오래이다. 어느덧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 일대가 민족의 성지처럼 순례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지순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해 만주 용정시에 가서 윤동주 시인의 유물, 유적을 붙들고 우는 사람들, 그리고 백두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옛선조들의 문화를 회고해 보며 감격해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 땅이 중국의 땅이지만 과거에는 명백히 이 일대가 우리나라의 땅이었고 지금도 앞으로 어느 시기에 가서는 우리나라의 국토가 된다는 희망으로, 또는 결심으로 그들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 만주지역에 대한 ‘우리 땅’ 정신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그곳에 가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우리땅’ 콤플렉스 때문은 아닐까.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좁은 땅덩어리마저도 가진 사람들만 많이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손바닥만한 땅덩어리도 못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유난히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한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콤플렉스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단 하나 지금 우리나라와 몽고가 합쳐 하나의 통일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 잠실인 삼전도. 그 삼전도에서 조선시대 인조는 청나라 군대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 고려는 약 156년간 몽고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자, 이제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를 환원시켜야 할 때가 왔다. 피의 복수가 아닌 공존공영의 새로운 화합과 통일의 신념을 안고 말이다.
지난 1988년 바로 몽고가 치욕을 안겨준 삼전도 인근 잠실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그것은 바로 이민족에 의해 더럽혀진 굴욕의 당이 영광의 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바로 1988년은 올림픽을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가진 8자가 두 개나 붙어 있었지만 더욱이 몽고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종적으로 몽고는 우랄알타이족에 속해 몽고인과 우리는 언뜻보기에 하나처럼 보인다. 아마도 지난 고려의 몽고섭정기인 200년간 몽고와 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몽고와 공유하는 문화는 한두개가 아니다. 시집갈 때 새색시의 머리를 장식하는 족두리에서부터 된장문화에 이르기까지 몽고와 한국은 사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문화권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몽고는 한반도의 22배나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0만의 적은 인구만이 그 광활한 영토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귀중한 광석이 무한정 널려 있고 호수에는 천연수자원들이 매장되어 있다. 몽고 역시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에겐 이러한 천연가치들을 고가의 제품으로 바꿔놓을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칭기스칸의 무덤을 찾아준다는 미명 아래 몽고개발을 준비해 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몽고와 한 국가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최선의 방책이며, 그렇게 될 때 남북한의 통일도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21세기 세계 5대 강국으로서의 고려(KOREA)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몽고와의 공식, 비공식 접촉을 증가시키고 사회간접시설 등을 기술로써 지원하는 방책을 적극 펼치며 동시에 몽고는 우리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양국간의 교류가 무르익었을 때 양국 정부는 고려국 건국위원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민주헌법과 체제 형태를 정한 후 이를 발표해야 할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와 몽고는 하나의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참여하며 우리나라와 몽고는 각 계층간에는 철저하게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몽고와의 합중국을 성사시킬 때, 우리의 운명, 고려인들의 운명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며 세계를 주도하는 선민으로서 탄생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 기적을 이루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고려인들과 몽고인들이 슬기롭게 미래를 보면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가자, 약속의 땅 남미로
한민족의 미래 시장은 남미 대륙이다.
남미(南美)는 한민족에게 열려진 꿈이다. 이곳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도전의 땅일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의 꿈을 펼쳐야 하는 주요무대가 될 것이다. 20세기에는 미개발과 낙후된 땅일지는 모르지만 21세기에는 한민족이 앞장서서 개척해, 우리의 미래를 일궈나가야 하는 ‘약속의 땅’이 될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땅을 원하고 있다. 새로운 무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호흡할 새 역사를 창조할 땅으로 적도 아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남미대륙은 우리가 필요로 했던 황금의 땅, 약속의 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미가 21세기 한국인들의 도전장이 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미는 경제적 요충지다. 즉, 남미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거대한 시장이자 동시에 생산기지이다. 남미대륙은 북미대륙에 버금가는 크기와 자원을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적자원과 기술력으로 해외의 인력과 자원을 반기고 있다.
일본은 이를 재빠르게 이용, 페루에서 일본계 대통령이 당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남미는 아직도 수많은 개발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처녀지다. 따라서 이를 잘 이용, 적극적인 남미 이민 정책을 시행해 나간다면 한국이 갖고 있는 영토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둘째는 다소 종교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남미는 우리 한국인을 원한다. 남미의 원주민들은 이미 아시다시피 우리와 피를 같이한 황색인종이다. 아시아의 텐산산맥 북쪽에서부터 이동해 해뜨는 황금의 나라 잉카를 건설한 위대한 민족인 이들과 우리는 한핏줄을 갖고 있는 형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들에 의해 잔인한 탄압을 받아왔다. 따라서 남미는 백인들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미를 최초로 건설한 인종인 아시안들의 노력과 정성에 의해서만 21세기 미국을 대신하는 새로운 신천지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남미는 21세기 한국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지역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인다.
남미 외에도 가능성을 갖고 있는 후보지역들은 나머지 다섯 지역이다.
먼저 몽고는 과거 고려시대 우리를 무려 200년간 지배한 강대국이었지만 현재는 낙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가깝고 개발의 여지가 많으며 몽고 스스로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고 있어 고려시대와 반대로 한국인들에 의한 몽고개발이 점쳐진다.
두 번째, 아랍지역을 들 수 있다. 아랍은 한국인들의 명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은 곳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5억의 회교권 아랍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접근이 이워진다면 단순한 건설시장뿐 아니라 한차원 높은 아랍세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동남아시아 지역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한국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지역으로 경제와 외교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보다 전략적인 투자와 개발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넷째, 인도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나라로 10억에 육박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매력만점의 국가이다. 특히 인도는 식민지 통치를 철저히 받았던 나라이기 때문에 백인에 대한 반감이 두터운 상황에서 보다 책임을 수반한 상호발전을 전제로 한 진출을 이끌어 간다면 21세기 인도의 거대한 시장은 한국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이 땅은 한국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바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가. 냉장고와 에어컨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들일 수 있는 대륙, 바로 아프리카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상품시장으로서의 진출보다는 아프리카에 대한 공동개발과 함께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륙전체를 볼 필요가 있는 마라톤 코스라 하겠다.
21세기에는 아마도 미국의 급속한 쇠퇴가 예상된다. 반면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국가들이 세계사의 또 다른 주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미지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한국인들의 손과 발을 거대한 남미대륙은 원하고 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
과학은 영혼을 모른다
과학은 인류가 구축한 최고의 지적 금자탑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피땀을 흘려 과학적 사실을 실험하고 증명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즐길 수 있는 문명세계를 물려주었다. 연금술을 기반으로 근대 화학을 태동시켰던 고대 아랍인들, 현대 과학의 기포를 세운 근대의 유럽인들, 종이와 화약을 발명시킨 아시아인들 모두 인류의 20세기 문명을 형성시킨 주인공들이었다.
수천년 동안 과학의 역사를 만들어 갔던 이들이 아니었으면 현재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은 인류역사에서 매우 큰일을 해오고 있고 또 현재도 하고 있다. 과학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하고 또 과학자들은 높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인류생활의 전체를 모두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과학이 가져야 하는 내재율이 있다. 바로 실험과 증명에 의해서 이성적으로 확인되는 진리만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과학의 최대 강점인 동시에 또한 한계이기도 하다. 과학은 문학과 예술, 종교와 같이 추상적이고 확인되지 않으며 논리적 비약이 인정되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부정한다. 신과 신의 의지가 공식적으로 과학의 세계에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아인슈타인도 말년 자신의 상대성 이론이 양자역학에 의해 ‘절대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불확정적 원리라는 탁월한 물리학적 진리를 반대하는 말이지만 세계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마저 ‘정말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지’ 아니면 더 나가서 ‘왜 던지지 않는지’ ‘주사위를 던지는 신의 손은 어떻게 생겼는지’ 등에 대해선 밝히지 못했다.
결국 수많은 과학자들이 19세기를 화학의 세기, 20세기를 물리학의 세기, 21세기를 생물학의 세기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학은 이제 물질과 존재의 원인규명에서 실체적인 생명현상의 근본을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수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생명현상 가운데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영혼세계가지를 과학적으로 추구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인간 생명 현상의 핵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영혼의 세계에 대해 과학이 명쾌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답은 21세기, 아니 인류역사가 아무리 전진에 전진을 더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영혼 현상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하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영혼 현상에 대해 어느 정도해석가지는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말이다.
특히 여기에는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뇌에 관한 연구, 신경과학, 인지과학 등이 새로운 접근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영혼의 세계에 완전히 접근할 수는 없다. 이것을 신경과학의 한 사실을 빌려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되어 있다. 그런데 참 기이하게도 이 좌뇌와 우뇌는 하는 역할이 특화되어 있다. 하나는 수리와 이성, 하나는 개념, 도덕, 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본능, 감정, 감각과 같은 보다 원초적인 것을 컨트롤한다. 인간의 머리 안에 들어있다는 뇌, 그리고 그 뇌가 좌우로 나누어져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좌뇌와 우뇌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뇌가 생각할 때 아, 저 좌뇌라는 친구가 순두부같이 생겼구나라고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둘은 인간의 생명현상을 유지하는데 철저하게 역할 분담을 하면서도 잘도 협력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이요, 하나는 죽은 것이다. 인간은 실제 이 두가지 영역을 왔다갔다 할 뿐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으로 출산을 하게 되면 생명을 받고 살아나오는 것이요, 오래 살다 육체의 물리학적 생물학적 기능이 쇠퇴하거나 사고를 당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는 여기서 바로 죽음의 세계에 속해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 아니 살아있는 순간에도 영혼은 인간과 함께 생명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 영혼은 죽음에 이르면 육체와 분리 현상계, 곧 물리적인 3차원의 세계와 다른 존재 법칙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살아있는 자들은 아무리 죽음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절대로 알 수 없다. 좌뇌와 우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절대 알 수 없는 것과, 중이 제머리 못 깎는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삶과 죽음은 실제 생명과 자연계의 두 가지 속성이다. 이것은 실제 완전히 다른 것 같고 삶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손바닥의 위아래와 같이 삼라만상 현상계를 형성하는 두 가지 측면이다.
과학은 눈에 드러나는 현상계의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현상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가를 찾아나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 이승의 세계에서 저승의 세계는 ‘절대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또는 특수한 영혼의 작용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 영혼의 세계를 부분적으로 체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은 후 어떤 환경에 놓이는가, 어떤 영혼의 모습을 보일까에 대해서는 진실로, 인간이라는 탈을 썼다면 죽음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영혼의 세계는 느낌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 느낌만이 바로 영혼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통로이며, 결코 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이나 신경 과학의 뉴턴 이론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아니 그 이후의 인류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영혼의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없다. 천하만물 현상계를 만드신 신이 우리를 그렇게 중이 제머리 못 깎게끔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미래는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이런 이야기는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모두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미래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진실로 컴퓨터가 인간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될 것만 같다.
주위를 돌아보자. 컴퓨터가 안 쓰이는 곳은 거의 없지 않은가. 한 국가의 정보통신망부터 핵발전소의제어기까지 컴퓨터가 들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단 인간이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인간을 다루는 세계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실제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의 부정적인 부분을 확대해서 볼 대, 컴퓨터의 인간지배론을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 컴퓨터의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되면 컴퓨터가 만드는 천국도 생각해 낼 수 있다.
또 한 가지 컴퓨터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된다고 해서 결코 사람 살림살이가 딱딱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 시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종교와 예술과 같은 자유롭고 심오한 영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그때 가면 오히려 더욱 가치를 발휘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의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신의 영역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훌륭한 과학자들 중에는 훌륭한 종교인들이 많다. 이런 분들 중에는 종교를 밥벌이로 생각하는 전문적인 종교인들 못지않은 뛰어난 영성을 지니고 있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까지 인간들이 이룩해 온 과학과 기술의 수준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질서를 부여한 신의 위대한 능력 앞에 먼지와 같은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과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컴퓨터가 온 세상에 넘쳐나는 시대’가 될지라도 인간의 생명이 가진 가치와 자연의 위대함은 언제까지라도 최고의 가치로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미래세계는 물질적인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신적인 종교가 인간생활에 제일 중요한 부분으로 대두될 것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반대영역인 종교가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실제 인류역사는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종교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해 향후 인류의 미래생활이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기가 되면, 또 그 현실에 맞는 새로운 종교가 나와서 인간의 새로운 가치와 위대한 신의 은총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종교를 컴퓨터 분야의 말로 다시 풀면 일종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질서에 대한 ‘길’을 가르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간이 어떤 원인으로 이 자연계에 태어났으며, 지금 어떤 영향력에 의해서 어떤 목적으로 살고 있으며 죽으면 어떻게 되고 또 물리적인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프로그램이자 소프트웨어인 종교는 물론 하드웨어인 인간의 몸과 마음을 기본 단위로 하고 있다. 종교의 교리와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실제 인간이 현상계에 물리적으로 드러내고 사는 육체와 마음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하드웨어인 인간 자체와 소프트웨어인종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한 위대한 신의창조력이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위대한 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실제 천하만물과 우주, 그리고 현상계를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 모두는 단 하나의 원인자인 신의 은총과 의지 그리고 그분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는 늘 진화해 오고 또 진화해 갈 것이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전래과학과 학문에 능통했던 과학자였다. 당신이 펼친 인간의식의 문제인 6근5식론 등은 실제 지금까지도 인도의 전래 의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연치유학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옛 성인들이 종교인이자 과학자였다는 것은 공자님에게서도,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들은 우수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 세계관, 내세관, 신간을 이야기 했다. 새로운 과학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서 ‘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이것을 풀어 말하면 향후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계가 되면, 아니 컴퓨터가 인류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사회가 되면 당시에 맞는 새로운 종교가 다시 출현할 것이라는 뜻이다.
역사와 사회의 현실에 맞는 종교가 다시 새롭게 인간의 가치와 자연의 질서, 그리고 위대한 신의 은총을 새기면서 인간 생명의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가르침을 펼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신에게서 선택받은 유일무이한 생명체이다. 그리고 신은 우리 인간에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진화해갈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수도와 훈련이라는 일단의 과정에 의해 신적인 경지에 올라설 수 있는 능력을 한꺼번에 주셨다.
인류에게서 성인이 나고 조사와 선사, 그리고 종교적인 천재들이 나는 이유도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정신적 고양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컴퓨터가 온 세상에 넘쳐나는 세상이 되어도 일반이 우려하듯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발달한 컴퓨터가 인류를 더욱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세상이 될 것이다.
컴퓨터는 전화와 텔레비전과 같이 인류생활의 한부분이 되어 ‘친구와 같이’, ‘연인과 같이’ 인간생활을 살찌우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성과 과학기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한때 컴퓨터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컴퓨터는 인간의 성(性)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까지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빌게이츠 회장이 어떤 의미로 ‘컴퓨터의 성적인 기능’ 이야기를 했던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앞으로 미래 세계에 컴퓨터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적인 면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면 과연 인간에게 성적인 만족을 주는 도구가 될까.
나에게 빌 게이츠 회장의 이야기는 100% 맞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맞을 수도 잇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 성이라는 것은 결코 여타 분야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종족 번식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있다. 또한 이러한 기능 이외에 가진 또 한가지 기능은 가장 높은 차원의 기쁨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은 남녀간에 서로 이러한 기쁨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가정을 이루고 또 자녀를 번식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실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인들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인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계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재율(內在律)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이 가진 성스러움과 천박함의 두 가지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높은 수준의 기쁨이지만, 결코 이성으로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성과 남녀간의 사랑은 진실로 고귀한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행복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안락함과 존재감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사랑이 나쁘게 쓰이고 개인의 욕망이 악한 방향으로 흐를 때는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천하고 욕된 것이 되고 만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바르지 않게 뿜어져 나오는 성적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는가.
절제되지 않은 성적 욕구의 발산은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을 망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킨다. 또한 사회의 근간을 흔들게 만들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망하게 한다.
성이 잘못 쓰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제는 결코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녀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가정과 사회, 국가 모두를 병들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무분별한 성적 타락은 모두 성적 욕심이 무절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빌 게이츠와 같이 물질의 발달로 어떤 물질이나 시스템 또는 도구가 인간의 성적 욕구를 대신해 준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물질이 발견되고 도구가 만들어져도 실제로는 ‘어디 나사 한쪽이 빠져 있거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도구나 시스템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이야기한 컴퓨터의 성적 도구화는 아마도 컴퓨터가 항간에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저급한 모양의 성적도구로 변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향후 컴퓨터가 인류세계의 전반에 퍼져나가도 인간의 성적 욕구를 대체하는, 성적 욕구를 발산하는 구체적인 도구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컴퓨터를 팔아먹는 그의 욕심이 앞섰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최첨단화된다 해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절대 인간 남녀 상대가 아니면 대체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신이 내린 천명(天命)이며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천기(天機)이다.
인간이 가진 성적 욕망 등 무절제한 욕망을 해소하는 데는 굳이 미래 컴퓨터가 필요치 않다. 지금이라도 당장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한 숟가락 먹으면 된다. 경험자의 말을 빌리면 ‘세상 끝까지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데 보통 사람들은 이를 알면서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절제하는데 진실로 인간됨이 있는 것이요. 신이 주신 최대의 선물인 사랑도 바르게 써야만 제 값어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 무용가였던 채시라
“안녕하세요?”
작년 여름, S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채시라씨는 힘든 과거사를 뒤로 한 밝은 얼굴로 필자에게 인사했다. 필자는 채시라를 보면 늘 MBC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필자의 아버지 차일혁 총경을 모델로 했던 장하림의 연인이었던 ‘여옥’이 삶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던 채시라씨의 연기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 여름 ‘한 사람의 연인’에서 ‘만인의 연인’으로의 탈출선언을 했을 때, 세간에서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용감했고 현명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필자는 그녀의 전생을 볼 수 있었기에….
1926년 3월 21일. 열여섯 살의 한 소녀가 오빠로 보이는 청년의 손에 이끌려 경성 공회당을 찾았다. 경성 공회당 입구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 신무용가 - 이시이 바꾸 공연>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영문 모르게 따라온 소녀는 오빠에게 무슨 공연이냐고 물어보았고 오빠는 또박또박 말했다.
“이 공연은 니 인생을 바꿔놓을 공연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공연이 끝난 뒤,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오빠, 나 무용가가 되고 싶어.”
청년은 동생의 말을 듣자마자 무대 뒤 분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운명이 결정되는 노크소리였다. 그곳에는 화려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이시이 바꾸가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이시이는 갑자기 출현한 조선인 남매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청년은 이미 준비해 놓은 소개장을 건네주며 동생이 무용을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 말에 이시이는 유심히 열여섯의 소녀를 주시했다. 순간, 그는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 니 이름이 뭐지?” 그러자 소녀는, “최승희입니다.”
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이시이 바꾸는 웃음 띤 얼굴로 소녀에게 말했다.
“10년 후 너는 분명히 훌륭한 무용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10년 후, 소녀는 거짓말처럼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었다.
예언처럼 그녀를 세계 최고의 무용가로 만든 사람, 이시이 바꾸가 바로 채시라씨의 전생이다.
일본의 동북 지역인 아키다 현에서 태어난 그는 동경제국 극장 오페라 발레단 제일기생으로 무용인생을 시작, 유럽에 유학하여 이사도라 던컨의 무용을 배운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무용가였다. 그러나, 그는 무용뿐 아니라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일본의 진보적 인텔리였다.
그런 그의 영향을 받으며 무용가로 만들어진 최승희가 이시이 무용연구소에 들어온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던 이시이 앞에 최승희는 무릎을 꿇고 독립을 선언했다. 그 당시 이시이는 영화 촬영시 강렬한 조명을 장시간 쪼이는 바람에 절체 절명의 실명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이시이 무용연구소가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친딸 같은 최승희의 독립선언은 비난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이시이는 말없이 그녀를 조선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받아들일 때는 받아들이고, 보내 줄때는 말없이 보내주는 ‘때’를 아는 예술인, 이시이 바꾸의 참모습이었다. 그것은 4년후 피폐해진 몸으로 다시 돌아온 최승희를 받아 줄 때도, 그리고 2년 후 다시 그녀가 독립하도록 도와줄 때도 한결같이 보여 주었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참으로 강한 인내력과 이해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런 끈끈한 사제의 정이 후세에도 이어진 것일까. 재작년, 채시라는 MBC TV <최승희>라는 드라마에서 ‘최승희’역으로 열연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제자인 ‘최승희’역을 하다니!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 아닌가.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삶은, 전생의 춤보다 더 아름다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주명기 고두심
26년간 <전원일기> 등에서 쌓아온 후덕한 맏며느리 이미지를 훨훨 벗어버리고 새로운 이미지 만들기에 재미붙였다는 고두심. 그녀는 필자와는 돈독한 사이이다.
갑작스런 이혼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예외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다른 연예인들은 ‘이혼’하면 으레 브라운관을 떠나거나 한동안 얼굴보기 힘든 냉혹한 연예계에서 그녀는 그와는 상관없이 변함없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만의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까지 한국의 어머니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 어머니상의 일인자였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여성적 매력보다 남성적 매력이 더 강하다고나할까. 마치 전생에 여자 대통령이라도 했던 사람인 양 거물과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과연 전생에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한국의 예술인으로 꼿꼿한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법사님, 전 전생에 남자가 아니었을까요?”
뜬금없이 자신의 전생을 물어오는 그녀에게 필자는 빙그레 웃으며 "남자는 아니었지만 남자 못지않은 호인(好人)이었습니다“고 말하며 참으로 즐거운 그녀의 전생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이 굵은 그녀는 제주도 태생이다. 현생뿐 아니라 전생에서도 그녀는 제주 사람이었다. 조선조 영조, 제주명기 만덕. 그녀가 바로 고두심의 전생이었다.
당시 제주는 혹독한 귀향처로 그곳에 사는 민초들은 낮에는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고 밤에는 왜적에게 수탈당하는 황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주민초들에게 기생 만덕은 따뜻한 온정으로 그들을 구제하고 보살펴 주었다. 그런 만덕의 선행은 영조의 귀에까지 들어가 영조는 그녀에게 금강산 관광을 시켜준 뒤, 한양에 살 것을 권유했으나 만덕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제주행을 택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그만큼 그녀는 제주를 사랑해 제주명기 ‘만덕’으로 남을 것을 원했던 것이다.
몇 해전 방영된 MBC TV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를 기억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그 드라마에서 고두심이 맡았던 역은 전생의 자신을 연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가얏고에 몸을 싣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 만덕.
그녀는 숭고한 예술혼을 품에 안고 환생해 지금의 고두심이 되었다. 전생의 그녀가 청아한 가얏고소리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듯이 후생에서도 괴로운 가정사를 깨끗이 접어버리고 안방극장에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담백한 연기자로 남길 바란다.
조선판 신데렐라 김영애
‘파도’ ‘백야 3.98’ 등에서 중견배우로서의 물오름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김영애.
그녀는 동기배우들이 하나둘 브라운관을 떠난 지금까지도 능력있는 커리어우먼, 기품있는 중전, 촌스러운 아낙, 억척스런 어머니 등 다채로운 배역들을 하나같이 자신의 삶인 양 깨끗이 소화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톱탤런트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온 여인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청자 앞에서는 그녀는 늘 반짝이는 톱탤런트이기 때문이다.
영도의 섬처녀에서 톱탤런트 자리에까지, 현대판 ‘신데렐라’로 살아온 그녀는 과연 전생에도 ‘신데렐라’였을까?
“법사님, 전 해보고 싶은 역이 딱 하나 있는데요….”
우연히 그녀를 만나 자리에서 김영애 씨는 어렵게 입을 뗀다.
“무슨 역인데요?” 필자는 이미 그녀의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움을 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장희빈 역이요. 전 안 해본 배역이 없지만 딱 하나 장희빈 역을 못해봤거든요. 장희빈처럼 요염한 역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전생에 뭐였기에, 장희빈 역만 유독 맡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장희빈 역을 맡고 싶어하는 이유를 필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미 그녀의 눈동자에서 품위있는 한 후궁을 만나 보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궁중 나인들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어린 소녀.
그녀가 바로 김영애의 전생이다. 주위사람들이 모두 궁중행을 말렸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굳어진 지 오래였다. 궐에 들어가면 이미 ‘여자’임을 포기해야 하며 평생 혼자 살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궐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그녀는 혹독한 나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5년 후, 임금의 여인이 되어 후궁의 자리에 오른다. 일개 나인에서 화려한 후궁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 말 그대로 조선판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그녀의 소원은 단 하나 중전이 되어 보는 것이었으나 그녀에겐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후궁으로서 중전이 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녀 역시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학에 밝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던 그녀는 중전이 되는 꿈을 조용히 접고 늘 바른말로 임금에겐 사랑받는 여인으로서, 다른 궁중여인들에게는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궁중여인으로서의 삶을 택하게 된다.
평소 ‘장희빈 역을 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
아마 전생의 그녀가 후궁으로서 중전이 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1970년 대 대 히트작인 ‘민비’에서 ‘민비’를 맡는 등 궁중여인의 고위직(?)은 다 맡아본 그녀이기에 이쯤되면 전생의 한은 브라운관에서 다 풀린 셈이 아닐까 한다.
한국판 샤론스톤 이보희
섹시스타 이보희. 그녀의 이름앞에는 늘 ‘선정적’인 문구가 뒤따른다. 한국의 ‘샤론스톤’으로 통하는 그녀가 요즘은 얼굴보기 힘들어졌다. 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녀를 잘 안다는 모 호텔 지배인이 이보희씨의 전생을 물어왔다. 필자는 다시금 전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교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학생들만 가득한 교실에서는 가사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자, 여러분은 지금 ‘사춘기’랍니다. 사춘기 때는 엉덩이가 둥글어지고 허리에는 굴곡이 생기고 곡선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유방’도 매우 발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식기도 이때부터 상당히 발달하게 됩니다.”
“선생님! 질문 있는데요?”
“미치고, 해보세요.”
“아이는 어떻게 생기나요?”
장난기 있는 여학생의 질문에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생깁니다. 우스운 질문이었나요? 여러분은 이제 곧 엄마가 됩니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웃으면서 하죠?”
선생님의 대답에 교실은 이내 조용해졌고, 언제 웃었냐는 듯 수업이 진행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엄격한 이 가사 선생님이 바로 이보희 씨의 전생이었다. 그녀는 일제시대 명문여고인 B여고의 몇 안되는 조선인 선생 중 하나였다. 대부분이 일본인 선생이었고, 학생의 상당수 역시 일본인이었지만 늘 당당했다. 언제나 반듯하게 다림질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짧은 단발머리에 약간 비켜 쓴 패션모자. 여성교육의 불모지인 조선 땅에서 그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자부심으로 매사에 임했던 그녀는 상당한 엘리트였으며, 멋있는 여자였다. 조선인 선생을 번번이 놀리던 일본인 여학생들도 그녀를 존경했으니 한국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딩동댕~’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소리쳤다.
“선생님! 영화 보러 가요!”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무슨 영화 보러갈까?”하고 되묻는 그녀.
그녀 역시 학생들 못지않은 영화광이었던 것이다. 무슨 영화가 어느 극장에서 상영되는지 훤히 알고 있었고, 새로운 영화가 상영될 때 마다 개봉 첫날 첫 회에 상영하는 영화를 볼 정도로 열성적인 마니아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그레타 가르보. 가르보가 나오는 모든 영화는 두세 번씩 보는 게 보통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거울을 보면서 그레타 가르보의 연기를 남몰래 연습했다. 섹시하면서도 냉정하고 교만하면서도 유혹적인 그레타 가르보의 모든 것을 따라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그녀. 그녀의 꿈은 사실 선생님이 아니었다. 바로, 그레타 가르보 같은 뇌쇄적 매력을 갖고 있는 여배우가 그녀의 꿈이었다.
하지만 워낙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녀였기에 ‘배우’의 꿈을 접고 가사선생으로 얌전히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얼마후 그녀가 결혼하게 되자 교편마저 놓고야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기 많은 신여성의 인생이었다.
1983년 영화 <어우동>으로 38만명 동원이라는 엄청난 흥행으로 일약, ‘에로’스타가 된 이보희 씨. 그러나 그녀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다. 단지, 연기만을 해야 하는 배우이기에 ‘섹시’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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