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만 보면 눈물이…
한여름의 불청객, ‘수마(水磨)’.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는 이맘때가 되면 나는 은근히 긴장되곤 한다. 문명이 진보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점점 세어지기만 하는 수마의 힘은, ‘용가리’의 힘보다 한 수 위임은 분명하다.
용가리나 수마나, 사람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별 다를 게 없겠지만, 용가리야 엄연한 생명체니 어떻게든 죽일 방법은 있다손 치더라도, 수마는 제풀에 꺾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 생각만 해도 난감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수마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수중고혼이 되었던가. 그러기에 수마가 찾아오는 장마철이 되면, 하늘에 낀 비구름만 봐도, 가슴이 털컥 내려앉고 만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중고혼이 될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내가 미국 뉴저지 후암정사에 있었을 때, 한 여인이 근심어린 얼굴로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여인은 지금도 빗줄기만 보면 눈물이 난다면서 힘들게 말을 꺼냈다.
“수십 년 전 일입니다. 갑작스런 물난리에 아버지만 빼고,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이 모두 굵은 물줄기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지요. 저는 때마침 그때 집에 없어서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얘기인즉, 그녀는 아버지는 단 한번도 가장노릇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백수중의 백수로, 매일같이 술에 취해 어머니와 동생들을 때리는 게 하루 일과셨던 분인데, 하필 그런 아버지만 살아남고, 그 착하기만 했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죽게 되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엔 그런 아버지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병수발까지 그녀 몫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 몸 안에 언제나 물이 차 있어, 매일같이 호스로 물을 빼내고는 있지만, 아버지 본인의 고통도 클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의 고통도 커, 마지막 방법으로 나를 찾아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수해로 가족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데, 이제는 아버지 몸에 차오르는 물 때문에 고생해야 한다니…. 그녀는 이젠 ‘물’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제발 ‘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며 구명시식을 요청했고, 며칠 뒤, 그녀를 괴롭히던 ‘물’의 정체는 낱낱이 밝혀지게 되었다. 바로 구명시식에 찾아온 그녀 어머니 영가께서 ‘물’에 얽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으셨던 것이다.
“갑자기 거센 물살이 우리집을 덮쳤단다. 우린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 그런데 천행으로 널찍한 널빤지 하나가 떠내려오지 뭐니? 그래, 나와 니 동생들을 얼른 널빤지에 태웠단다. 아버지도 얼른 타더구나. 그렇게 얼마나 떠내려갔을까…. 물살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마침내 그 널빤지마저 가라앉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온힘을 다해, 애들을 데리고 널빤지 끝으로 올라갔는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애써 기어올라간 그 자리엔 자신의 남편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더라도 애들만큼은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남편을 설득했지만, 남편은 그럴 순 없다며, 겨우겨우 매달려 있던 아내와 자식들을 거센 물살 속으로 밀쳐버리곤, 혼자만 널빤지를 차지하는데 성공, 무사히 구조된 것이었다.
현장에 없었던 그녀는 그 얘기에 그만 까무라치고 말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가족들은 헌신짝 취급을 해왔어도, 설마 혼자만 살겠다고 가족들을 죽이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앉아있던 그녀는 마침내, 울분을 토해내며,“어머니, 그래도 아버진데, 저보고 어쩌라구요! 지난 날은 모두 잊고, 제발 아버지를 살려주세요…흑흑”하며,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써 호소하는 게 아닌가.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께서 고통없이 가족들이 기다리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이는 그녀의 한마디, “어머니께서 아버질 용서해 주신 걸까요?”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I don't know"라고 말이다…
성공을 위한 삶의 지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모든 만남엔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누구와 언제, 어떻게 만났건 간에 아무리 사소한 이유에서 만난 사람이라도 내겐 모두 아름답고 소중할 따름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사람들과의 만남…. 매일같이 반복되는 빡빡한 하루일과 때문에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고운 인연의 실이 만남이란 실타래에 촘촘히 감길 생각을 하면, 하루의 시작이 마냥 즐겁기까지 하다.
몇 달 전, 헤어스타일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에 이발관을 찾은 일이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머리는 이용사에게 맡긴 채 조용히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이용사가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실례하지만,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하고 물어와, 미소를 지으며, “저는 영혼을 부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더니,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어머, 그럼 손님도 차길진 법사님같이 영혼을 부르시는 분이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놀라는 쪽은 나였다. 하지만, 조금도 놀라지 않은 척, 아주 태연하게 “차길진이란 사람을 어떻게 압니까?” 하고 슬쩍 건넸더니, 그 이용사 왈. “저는 차길진 법사님 팬이에요. 그분이 쓰신 책은요, 빼놓지 않고 다 사서 읽었구요. 요즘에 신문에 나오는 연재코너도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는걸요?”라고 말하며 신나게 가위질을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래, 조심스레 “그럼, 차길진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용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도 마세요! 그분 만나려고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그런데 그분 만나려면 1년도 더 기다려야 한다잖아요. 언젠가 꼭 뵙고 싶은데…”하면서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정말, 뜻밖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가 차길진 법사요!’라고 어떻게 털어놓겠는가. 그래, 왜 그렇게 만나고 싶은지 알고나 가야겠다는 생각에 “왜 만나고 싶은데요?”하고 물어보았다.
그 말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가위질, 언제까지 해야하냐고 붇고 싶었죠”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당장에라도 의자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부모님이요, 또 하나는 자신의 직업이다. 어떤 분들은 "도대체 부모님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자수성가를 ‘훈장’처럼 여기기까지 하는데, 단연코 그 성공은 오래갈 수 없다. 비록 내 어머니가 문둥병 환자라 할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하나,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예전에 모 프로그램에서 분뇨청소를 하시는 분께 “그만두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그분은 역정을 내시며 “애인 얼굴 닦아주는 일을 어떻게 그만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더럽다고 피하는 일을 이분은 애인얼굴 닦아주듯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바로 이런게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 이용사 역시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고민없이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용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한 뒤, 그곳을 떠났다. 그녀는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차길진이었단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오늘에서야, 이 글을 읽고 알아차렸을지도 모를 그분과 같은 생각을 했던 독자분들을 위해 정중히 말씀드리고 싶다.
“성공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고 말이다.
자연의 복수
요즘 인기 있는 인테리어 잡지나, 건축잡지들을 보고있으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특집코너’가 하나 있다. 바로, <전원주택에 대한 모든 것>. 그 코너에 등장하는 기사들을 읽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서울 외곽 전원주택단지로 달려가 좋은 자리 하나 맡아놓고 여생을 질기고 싶어지지만, 그럴때마다 ‘그때 그사건’이 발목을 잡는 탓에 언제나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몇 년 전 일이다. 모 대학 교수라는 분이 나를 찾아와 ‘조용한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려 한다’며 내 생각을 물어오길래, 왠지 불길한 생각에 “새 집을 지으면 걱정거리가 많이 생길텐데요”라 했더니 “새집이라 귀신도 안 살텐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껄껄 웃으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노교수의 얼굴에 번지는 넉넉한 웃음속에서 얼핏 스치는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곤 “절대로 전원주택을 지어선 안 됩니다”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노교수는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을 막지 말라’며 버럭 화를 내며 나가더니 그 후론 연락조차 끊고야 말았다.
그리고 약 1년이나 지났을까. 어떤 노부인이 하얀 소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법당에 찾아와 ‘아무개 교수를 아느냐’며 눈물을 뚝뚝 흘리시기에,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잡아드리자, 노부인은 “우리 부부, 고작 십여년도 채 남지 않은 인생, 고즈넉한 집에서 한번 살아보다 한날 한시에 죽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는데, 그 집에 이사온 뒤 얼마 안돼 영감이 그만….” 통곡하는 그녀를 보고, ‘그때 더 적극적으로 노교수를 설득했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
사실,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 위해 노교수 부부처럼 많은 분들이 새집을 짓곤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중 상당수가 집짓고 3년안에 변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것은 바로 자연의 뜻을 거스른 채,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이 과연 누구의 것이라 생각되는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것이다. 여러분이 그 집에서 살기 위해, 집터를 형성했던 원시 ‘흙’속에 살고 있던 수많은 미생물들의 삶터를 빼앗았으며, 그 땅을 지키고 있던 신의 영역까지도 침해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지….
그뿐 아니다. 집이라는 것은, 원래 시멘트와 철제, 그리고 목제 등 가장 기가 센 것들로만 골라 지어진 것이기에 그 강한 기에 압도되기 시작하면,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고 만다. 대형빌딩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 중에 유난히 심장이 약한 분들이 많은데, 그 이유 역시 낮에는 사람이 많아 건물에서 발산되는 강한 기를 분산 흡수하지만, 밤에는 그 엄청난 기를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그 외 새집으로 오기 위해 받는 금전적 스트레스도 심신허약에 일조함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위의 이유들 중 멀쩡한 새 집이 흉가로 변신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첫 번째 “자연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연은, 단순한 무생물이 아닌 거대한 기(氣)의 집합체이다. 즉, 우리의 신체와 같은 형상이어서, 단 한군데라도 기가 막힌다거나, 또 너무 그 발산 정도가 커진다면 전체적인 균형이 파괴, 단숨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끔찍한 결과는 주로 ‘자연의 복수’ 형태로 행해지곤 하는데, 흔하게는 자연의 터를 짓밟은 집을 흉가로 만들기도 하고, 산허리 골프장을 만든 기업을 도산하게 만들기도 한다. 봐라, 소위, ‘잘나간다’는 기업들 중, 골프장에 손을 대 도산한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는 노부인에게 나는 마지막 인사말로 “앞으론 자연과 벗하며 사십시오”라 하자, “영감도 진작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요”라 말하며 돌아서는 그녀에게 황혼의 깊은 외로움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제사 알고 지냅시다
제사 때만 되면 남자분들은 슬슬 주머니 사정이 걱정스러워 질테고, 여자분들은 제사상 준비에 눈앞이 캄캄해지실 듯 한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분들이 ‘제사’와 ‘차례’에 대해서 잘 모르신다는 점이다.
질문들 중 베스트 1위는 “제사는 돌아가시기 전날을 기준으로 지내는 것인가요?” 먼저 대답은 “NO!"다. 돌아가시기 전날이라 함은, 엄연히 ‘살아계신 날’인데, 어떻게 살아계신 날을 기준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인가. 제사는 반드시 돌아가신 날이 막 시작되려는 무렵인 ‘자정’에 지내야 맞다 하겠다. 이러면, “왜, 불편하게 자정에 제사를 지내요?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일찍 끝내고, 일찍 귀가하면 좋잖아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시곤 하는데, 바로 이런 분들을 ‘주객전도형’이라 한다.
인간과는 그 생리가 다른 영의 왕성한 활동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그런데, 이런 영의 생리를 무시하고 초저녁에 후딱-제사를 올렸다고 생각해 보라. 과연 제사상의 주인공이 제대로 제사상을 잡수실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다음부터는 이 점을 꼭 명심하시고, 제사는 반드시 자정에 올리는 것, 잊지 마시길 바라며.
베스트 질문, 그 2위는 “왜 제사상에는 조,율,시 세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하나요?” 사실, 제사상을 자세히 보면 다른 음식들은 선택과목인데 반해, 조율시는 필수과목이란 것에 의문을 가질 법도 하셨을 것이다. 첫째, 조, 즉 대추를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는 ‘자손의 대를 끊지 말라’는 뜻이고, 둘째, 율, 밤을 올리는 이유는 다른 모든 식물의 씨앗은 본 형태를 잃어버리면서 새싹을 돋는 데 반해, 밤이라는 것은 새싹이 돋아도 본래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 장례식 때 사람의 시신이 없을 경우, 시신을 대체하기 위해 밤나무를 사람모양으로 깎아 관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 감은 주로, 홍시를 가리키는데, 홍시가 없을 경우엔 곶감으로 대치하면서까지 제사상에 올리는데, 그 까닭은 감씨를 심으면 감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염이라는 것이 나오며, 또 감나무는 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나 접을 붙여줄 수 있는 식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나무의 생존형태는 사람에게도 교훈을 주어 ‘사람이 태어났다고만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배워야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은근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베스트 질문, 그 3위는 “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3년상을 치러야 하는 건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만 2년. 햇수로 3년동안 일명 ‘3년상’이라는 것을 치른다. 물론 ‘탈상’의 시기가 49제후가 될 수도 있고, 백일 후도 될 수 있지만, 왜 3년상이 기본인지만큼은 알아야 되기에 오늘 살짝 얘기해 보면, 우리가 자식을 낳고 키울 때, 자식을 낳고 만 2년 정도가 흘러야지만 그나마 인간처럼 대소변도 가리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몸의 골격이 잡혀지며, 병이라는 것에 면역이란 것도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만 2년 동안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그 연약하디 연약한 자식을 안고, 이리저리 예방접종을 맞추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며, 대소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원치 않은 매를 드신 분들도 계셨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게 된 ‘만 2년 동안’ 키워주신 부모님의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만 2년인 3년상을 치르는 것이다.
자, 이쯤되면 그동안 궁금해하셨던 것들에 대한 의문은 풀리셨을 터. 사실, 이것들은 우리가 조금만 배우려고만 했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제사’라 함은 영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이며, 영과 인간이 함께 하는 자리임을 생각해 볼 때, 지금 알려드린 내용정도만이라도 ‘영의 세계’를 이해하신다면, 다음 제사상은 예년보다 더욱 정성스런 상차림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녀는 왼손잡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전생신드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현대인들의 왜곡된 욕망이 발현된 현상이라고들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을 보다 심층적으로 심화시키는 일련의 현상들이라고들 한다. 어떤 것이 맞건 간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영매자이고, 그 누구보다도 ‘전생’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다양한 체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 까닭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생을 기억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아주 가끔은 자신의 전생에 대해 희미한 기억을 안고 나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1998년 5월의 일이다. 잠실 법당으로 한 미모의 여성이 상담차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문에 난 법사님의 글을 읽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꺼낸 그녀는 딱 보기에도 세련된 옷차림과 깔끔한 매너가 몸에 밴 엘리트 여성의 전형이랄까.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전형적인 상류층 집안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공주’처럼 커, 결혼 역시 어느 명문가의 자제와 해 주위의 시샘을 받으며 신혼생황을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결혼 전에는 전혀 몰랐던 남편의 도벽이 재발, 결국 이혼하게 되었고, 그 직후부터 생기게 된 ‘후유증’을 달래고자 법당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사님. 제가 이곳을 찾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라고 답했더니,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법사님도 제가 낯설지 않군요? 분명 오늘 처음 뵙는 건데, 혹시 전생에 뵌 건 아닐까요?”
그 말에 나는 조금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분명 희미하게나마 전생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전생이 보이는 것도 아닐뿐더러, 봤다 해도 그것을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영매자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 그러나 그녀의 순탄했던 삶에 ‘이혼’이라는 검은 파도가 휘몰아쳤던 것은 모두 그녀의 ‘전생’에 얽힌 인연 때문이었기에, 조심스레 전생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전생에 해남 마산면에 살았던 양반댁 규수로 그 근방에 살던 명문자제와 혼인했는데, 신기하게도 현생의 전남편이 그랬듯, 그 남자 역시 도벽이 심해, 매일 마작으로 시간을 보내는 한량 중의 한량이었답니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마저 당신을 심하게 구박하다 결국엔 당신을 쫓아내고 말았지요.”
그 당시 시집에서 쫓겨난 여인네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하나, 은장도로 목숨을 끊는 것. 그러나 그녀는 생을 포기하지 않고 억새풀처럼 살아남아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까지 몰아넣었던 남편과 시어머니마저 용서한 뒤, 한 조그마한 암자로 들어가 평생 공양주보살로 살다 절에 많은 복록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랬군요… 그럼, 그 사찰에서 법사님을 뵈었었나 보죠?” 그 말에 나는 미소로 답해주며, ‘혹시 전생에 살던 곳이 궁금하면 이리로 찾아가 보라’며 그녀가 전생에 살았던 마을의 이름과 지리, 그리고 그녀가 있었던 사찰 이름을 종이에 적어주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날. 그녀는 나를 다시 찾아와, 작은 풀꽃이 담긴 화분을 건네주며 “그 암자가 아직까지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이 풀꽃도 제가 전생에 심어놓은 게 아니었을까요?” 하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화분과 함께 주었던 작은 카드를 가끔씩 읽어본다. 나 역시 전생에 나와 인연이 있었던 이와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 일상적인 감사의 인사말이 적혀 있는 카드를 읽어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녀는 이 카드를 평소처럼 왼손으로 썼겠지? 전생에도 왼손잡이였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가을의 드라이브
요즘 부쩍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낙엽’. 벌써부터 도로변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올해 단풍은 정말 눈 깜짝할 새 져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기우에 왠지 마음이 쓸쓸해져 버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십 번의 가을이 지나갔어도, 나에겐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보낸 가을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로 이맘 때만 되면, 유난히 빨리 찾아오는 가을 탓에 그곳 단풍은 절정을 이루었고, 단풍만큼이나 내 마음도 설레어 으레 근처 팔레사이트 파크로 달려가 함뿍 낙엽을 맞으며 산책하거나, 도로변에 뒹구는 낙엽들 사이로 드라이브를 가곤 했고, 그것이 유일한 나의 행복이었다.
사실, 난 운전을 못 한다. 앞서 밝힌 대로,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영가들 덕분에 면허가 있어도 운전을 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뉴욕에서만큼은 내가 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바로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 멋진 뉴욕의 가을비경 속을 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가을이 막 시작되려고 할 무렵. 뉴저지 법당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잎이 다 떨궈진 채 겨울을 맞는 앙상한 고목이 연상됐다. ‘곧 꺼져갈 한 생명이 마지막 위안을 얻기 위해 내게 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보기보다 담담한 그녀의 질문을 받는 순간,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 말꼬리를 흐리자,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전요, 자식도 없고, 남편도 사랑하지 않아요. 저, 미국에 와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돈 좀 벌었다 싶을 때, 밍크코트랑 다이아몬드 반지, 그리고 벤츠부터 샀어요. 무시받지 않으려고요. 그런데, 제가 배 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 저보고 뭐라고 했는줄 아세요? 위암 말기래요, 위암 말기….”
미소속에 번지는 그녀의 눈물. 그녀는 한참을 눈물속에서 침묵하더니, 미소 반, 눈물 반의 간절한 어투로 “법사님, 저 수술하면 빨리 죽을 것 같아요. 뼈밖에 안 남은 몸에 칼까지 대면 얼마나 보기 흉하겠어요? 그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그녀가 흐느끼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말해도, 나는 왠지 그녀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제가 죽음을 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시간날 때 드라이브나 시켜주시겠습니까?”
그때부터 4개월 동안 계속된 우리의 드라이브. 나는 그때 뉴욕의 가을이 아름답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서툰 운전이었지만, 그녀 역시 좋은 곳을 가기 위해 지도를 보면서 운전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 그 덕분에 뉴욕 곳곳의 가을 정취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날 그녀는 드라이브 중에 “법사님, 저 살찐 거 같지 않아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위암 말기 환자가 살이 찌다니… 나는 ‘설마…’하는 생각에 그녀를 문득 바라보았는데, 정말 예전보다 살이 통통하니 올라있었다.
“위암 말기 환자가 살쪘단 소리 들어보셨어요?” 그 말에 미소로 답하자, 그녀는 “의사말대로라면 운전은 커녕,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이렇게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드라이브를 하지 않나, 살쪘다고 고민하지 않나… 우습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법사님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차비를 제게 내셨어요. 덕분에 죽는 것도 제 맘대로 못하게 되었지만요.”
우리의 드라이브는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레 내가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플로리다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죽게 된다면, 그곳에서 죽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플로리다에서 온 편지 한통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녀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 편지엔 나의 안부를 묻는 몇 줄의 글과 함께 ‘아직도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어요. 혹시, 그때 위암 말기란 진단이 오진이 아니었을까요?’라고 씌어 있었다.
병 고치는 영혼치료
우리나라는 한이 많은 나라다.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탓이다. 와중에 무수한 생명들이 사라졌고, 한 맺힌 영혼들이 양산됐다. 그럼에도 영혼세계를 인정하는데 몹시 인색하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도 영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영국 의회 또한 심령 세계를 인정한다. 프랑스는 영혼치료사를 인정하고 독일과 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필자를 ‘영혼의 치료사’로 칭한 사람은 전홍준 박사(조선대 의대교수)다. 그는 숱한 난치병을 접해왔다. 와중에 영혼의 개입이 질병과 사고의 원인이 된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르네상스시대 의학자 파라셀수스는 거의 모든 병은 몸없는 의식체 또는 상념체(엘리멘터리)의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선진 의학계 일각은 이 이론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소립자 물리학자 카프라는 물질계의 모든 원리는 의식탐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한계를 벗어나 발전하려면 샤머니즘에 다시 주목할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
전박사가 필자를 묘사한 글 중 일부다. 공감한다.
어느 날 중년부인 M씨가 찾아왔다. 오십 평생 머리 아프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두통에 시달려왔다. 구명시식을 하니 M씨 친어어머니 영가가 나왔다. 생전의 어머니는 ‘뇌신’을 항상 복용했다. 머리 아프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먹는 마약과도 같은 약이었다. 어머니 영혼은 구명시식 현장서도 ‘얘야, 뇌신 하나만 다오’라며 딸을 괴롭히고 있었다. <부모은중경>과 기도문을 들려줬다. 그 후 그녀의 두통은 사라졌다.
S라는 남자도 있었다. 면담만 하고 돌아갔는데도 고질병을 고칠 수 있었다고 했다. 일종의 망상증 환자였다. 늘 산만하고 어떤 생각에 빠지면 끝이 없었다. 그에게 기를 넣은 사과를 먹게 했다. 그 날 밤 그는 새벽 2시쯤 잠들었다.
그런데 꿈에 자기 몸에서 시커먼 것이 빠져 나오더니 자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다 다시 몸으로 들어오려 했다. 순간, 필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자기를 끌어안더니 ‘지켜주겠다’고 했단다. 깨보니 아직 새벽. 그런데 머리가 매우 상쾌했다. 그날 새벽 이후 머리가 띵하고 어수선한 증세가 없어졌다. S씨는 구명시식을 청해놓은 상태다. 그의 경우는 아직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시 영적인 질환을 앓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이처럼 영적인 병만 고칠 수 있는 사람일 따름이다.
최후의 한 생각이 최초에 한 생각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업문제로 면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폐증에 관해 물어오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폐증이라는 병은 현대의학도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지 못한 질병이다. 대부분 자폐증을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치료하고 있을 따름이다.
기업체 임원인 T씨가 아들을 데리고 왔다. 열 살이 다 됐다는 아이는 대여섯살 아이의 체구였다.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가끔 괴성만 지를 뿐이었다.
술에 취한 듯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뒤로 자빠지고 뒤틀면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마음도 불안한 듯 몹시 못 견뎌했다. 자신을 업고 있는 아버지 T씨의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를 질러댔다.
구명시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이의 부모는 유명 병원이란 병원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아이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을 멈춘 채 증세만 더욱 악화돼 갔다. 마지막으로 매달려 본다는 심정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필자는 의사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진단하는 의사와는 다르다. 오직 영적인 시각에서 상담하고 도움을 준다. 영적 진단이 잘 맞는 이는 병이 잘 낫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필자가 병을 아주 잘 고치는 것으로 알려져 소문 듣고 무작정 찾아오는 분들에게 이러한 점을 먼저 말해주고 싶다. ‘오죽하면 찾아왔을까’하는 마음에서 성심껏 노력해 원인을 찾으려 한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아들이 자폐아가 된 시원(始原)을 조금 알 수 있었다. T씨 아버지는 10년 전 암으로 별세했다. 대개 암환자는 고통속에 죽어간다. 그래서 자식된 도리로 고통을 면하게 하려고 진통제, 즉 모르핀 주사를 계속 놓는다. 고통은 면하나 환자는 결국 중증의 마약중독으로 죽고 만다.
최후의 한 생각이 최초에 한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잘 죽어야 다음 세상에 잘 태어나듯 그의 아버지는 당장 암의 고통은 면했으나 또 다른 고통속에 운명한 것이다. 그 후 태어난 T씨의 자폐증 아들은 그러한 업과 인자를 고스란히 받았다.
이러한 영적 이유외에 자폐증 아이의 모체도 영향이 크다. 현대인은 오렌지 주스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이런 음식물은 화학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화학 처리된 식품들이 장에 오래 있으면 부패한다. 그 부패된 성분은 마약 성분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그런 모태에서 생겨난 아이는 자연 그러한 인자와 업을 지니고 출생하는 것이다.
결국 자폐아 치료는 정신의학적 뿐 아니라 영적 치료와 음식물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연구해야 근본 원인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
죽었다 살아난 여자
작년 11월 27일 MBC TV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에서 필자의 얘기를 축소 방송했다. 엄청난 파장을 우려한 MBC가 방송 보류 한달 만에 내린 처방이었다. 너무 ‘잘라 내’ 우스운 꼴이 돼 버렸다고 만나는 이마다 한 마디씩 했다.
방영되지 못한 내용들은 뇌사상태에 빠진 김모씨가 필자의 구명시식 현장에 출현한 혼령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것, 필자가 영혼들과 대화하는 장면, 필자가 일러준 자신의 전ㅅ행을 일본서 확인한 연극인 이윤택씨의 체험 그리고 필자의 법당에 영혼들이 오시는 순간 작동을 멈춰버린 방송사 적외선 카메라의 불가사의 등이다.
이중 가장 논란이 컸던 부분은 바로 뇌사상태서 살아난 김씨의 경우였을 것이다. 현대의학이 뇌사로 판정한 환자가 구명시식 후 지금까지 10여 년 간 생존해 있다는 사실. 하지만 후암정사에서 김씨 같은 케이스는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신비한 체험을 한 이들도 한 둘이 아니다. 만약 김씨 부분이 그대로 방송됐다면 장기기증 분야의 타격이 매우 컸을 것이다. 뇌사자가 살아난다면 누가 장기를 기증하겠는가. 필자를 만나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장기를 기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죽은 이를 향한 극진한 정성을 관습화해 왔다. 시신을 훼손한다는 것은 당연한 금기이다. 조상을 산소에 모시고 정성껏 받드는 풍토인 만큼 화장은 아직 일반화하지 못하고 있다. 조상 묘를 잘 모셔야 후손이 복 받는다는 인식이 고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제 변해야 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살릴 수 있다는 인간사라의 신념과 좁디좁은 국토가 묘지로 변해간다는 사실 앞에 장기기증에 관한 인식도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서도 화장이 관습이 되고 뇌사자 장기기증이 사회통념이 된다면 영혼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카르마는 생전에 쌓은 대로 가는 법. 영혼의 모습은 업대로 나타날 뿐, 시신(육체) 유무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뇌사상태서 회생한 김씨는 그녀와 조상들이 쌓은 선업과 영혼마저 감동시킬 만한 남편의 지극정성 그리고 구명시식의 힘이 합쳐져 가능한 경우였다. 이들 부부와 필자는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만날 것이다.
질투와 경쟁 사이
바야흐로 무한 경쟁시대. 경쟁이 날로 치열해져갑니다. 능력 경쟁으로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 없는 경쟁은 파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어느 샐러리맨의 살인사건이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중견 기업의 초급 간부 A씨가 귀갓길에 괴한에게 살해되었습니다. 도쿄 변두리 밤거리는 노상강도가 흔해서 경찰도 금품을 노린 단순 강도로 처리하려했습니다. 그런데, 한 말단 형사가 끝까지 추적한 결과 의외의 범인이 잡혔습니다. 같은 회사의 절친한 친구 B씨가 범인이었습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
절친했지만 승진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과장 승진후보로 나란히 올랐습니다. 회사에서는 승부근성과 집착력이 앞선 B씨를 내정해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B씨는 승진에 대한 경쟁심과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승진 발표를 앞두고 경쟁자 A씨를 청부살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경쟁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햇빛은 없습니다. 경쟁은 질투라는 이면이 있습니다. 넓게 보아서 모든 경쟁, 라이벌 관계는 질투심을 뿌리로 합니다. 질투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질투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억누르지 말고 잘 써야합니다.
경쟁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쟁심은 가지되 질투심으로 파멸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먼저, 질투와 선의의 경쟁을 구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차후에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당장 요절을 내고 승리해야겠다는 적개심을 가지면 질투가 됩니다. 자신을 최종 목적으로 삼아 경쟁 결과에 승복하면 선의의 경쟁이 됩니다. 경쟁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이전의 자기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는 확고한 철학이 평소에 뒷받침돼야 합니다. 궁극적 경쟁자는 자기 자신입니다.
경쟁은 차이의 산물입니다. 세상 만물에 왜 ‘차이’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차이를 무시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은 차이에 대한 모욕입니다. 반대로, 차이를 불평등 죄악이라 적대시하고 억지로 맞추려는 생각은 무지입니다. 평등 속에 차이가 있고, 차이 속에 평등이 있습니다. 무한한 그리고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차이가 존재합니다. 차이가 곧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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