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중국음식 기행_03

醉月 2011. 9. 14. 07:13

제갈량의 은둔지이자 삼국시대의 주무대 숨은 맛집을 찾았다

후베이성 우한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  
감수 신계숙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

▲ (좌) 우한 샹어칭 식당의 둬쟈오위터우
(우) 난장현의 쓰하이양좡 식당의 양갈비 구이
창장 싼샤를 거쳐 이창(宜昌)에 도착하는 여정에서 후베이(湖北) 음식을 소개했으니 이제 후베이성 몇 곳을 유람할 차례입니다.
   
   후베이성은 지리적으로 보면 서쪽은 산지이고 중부와 동부는 평원입니다. 충칭에서 흘러온 창장이 이창과 형주(荊州)를 지난 다음, 남쪽에서 흘러온 네 개의 지류가 합쳐진 동정호(洞庭湖)에서 창장과 다시 합쳐지고, 후베이성의 수도인 우한(武漢)을 거쳐 동으로 동으로 흘러갑니다. 지명의 후(湖)가 말해주듯 내수면이 많은 지역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 조조·손권·유비라는 세 영웅 사이의 결탁과 배신이 교차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전략요충지였고, 소설 삼국지의 애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갈량이 세상에 나서기 전까지 은거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후베이 여행에서 삼국지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제갈량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유비를 만나 세상에 나서기 전에 살았던 곳은 후베이성 샹판(襄樊)시 외곽의 룽중(隆中)입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융중대책’이라고 하는데, 그 융중이 바로 제갈량이 살던 마을 이름입니다. 지금은 구룽중(古隆中)이라고 부르지요.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제갈량입니다. 소설 삼국지의 전반부는, 당시 최강의 군벌인 조조를 간웅 내지 악마로 몰아세우고, 덕으로 포장한 유비를 비참하고 곤궁하게 묘사함으로써 제갈량이 극적으로 등장하게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지요. 소설의 후반부는 제갈량이 등장해서 신출귀몰한 지략과 애틋한 충정으로 자신은 칼 한번 잡지 않고도 삼국쟁투의 양상을 좌지우지합니다.
   
   제갈량은 총명함과 충성으로 인해 중국인에게 오래도록 추앙받고 있습니다. 백성은 자기 자식이 그의 총명함을 배워오기를, 황제는 신하가 그의 충성심을 본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대중의 흥미와 권력자의 요구가 반영된 탓에 제갈량은 인간을 넘어서서 귀신의 경지를 수시로 넘나들었고, 남만(南蠻)왕 맹획을 사로잡고 풀어주길 반복하는 칠종칠금(七縱七禽) 대목에서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일인자의 자리에 올라설 기회도 있었지만 스스로 이인자의 자리에 충직하게 남음으로써 CEO(최고경영자) 가운데서도 가장 모범적인 CEO로 꼽히게 되어 21세기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구룽중에서 제갈량을 감상하고 나오면 근처에 많은 식당이 제갈량과 연관된 간판을 붙이고 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뜨내기 장사를 하는 탓에 찾아 들어갈 만한 식당은 없습니다. 피치 못해 간단한 식사를 한다면 궁밍차이(孔明菜)라는 이 지역 특산 나물을 맛보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가능하면 샹판 시내에서 좋은 식당을 찾기를 권합니다. 그 가운데 샹판 기차역 맞은편 골목 안쪽에 있는 와강자이(佤崗寨)는 음식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실내 장식도 깔끔해서 누구에게나 권할 만합니다.(문의 710-306-8199) 후베이 후난의 음식들이 꽤 깔끔하게 올라오지요. 메뉴에 사진도 잘 갖춰져 있으니 눈에 들어오는 음식을 자신 있게 주문해도 좋습니다.
   
   샹판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삼국지 인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분량으로 보면 단역에 지나지 않지만 비중과 무게로서는 핵심적인 조연의 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마휘, 곧 제갈량과 방통의 스승이지요. 후베이가 삼국이 정립된 다음 치열한 각축장이 되기 이전에 전란은 주로 황하 유역의 북중국을 휩쓸었고, 후베이 지역은 형주의 유표가 지식인을 우대했던 탓에 많은 지식인이 모여들었던 곳입니다. 이 가운데 훌륭한 스승으로 추앙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사마휘였습니다.
   
   사마휘가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던 집을 그의 호를 따서 수경장(水鏡莊)이라고 하는데 후베이성 샹판 서남쪽 40㎞ 거리인 난장현(南漳縣)에 있습니다. 작지만 수려한 위시산(玉溪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이수이(彝水)가 흐르는데, 세상에서 한발 떨어져 후학을 가르치며 은거하기에 어울리는 곳입니다.
   

▲ (좌) 샹판 와강자이 식당의 가지 요리
(중) 우한의 샹어칭 식당 정문
(우) 샹판 와강자이 식당의 매운 새우 요리


   유비가 아직도 용병에 가까운 무장 집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떠밀려 다니던 시절, 자신을 해치려던 함정에서 도망쳐 돌아가는 길에 이 수경장에서 사마휘를 마주치게 됩니다. 이때 사마휘가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둘 중의 하나만 얻으면 세상을 얻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제자인 제갈량과 방통을 추천했지요. 우여곡절 끝에 유비가 제갈량을 전략가로 초빙하여 비로소 무장집단에서 좀더 체계가 잡힌 군벌로 발전해 가게 됩니다.
   
   그렇게 총명한 제자들을 가르쳐낸 사마휘는 소설 삼국지를 통해 가장 현명하면서도 세상에서 한발 떨어진 은자로 등장하여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사마휘는 어디 있을지, 누구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경장이 있는 난장현이란 작은 도시에는 겉으로는 소박하고 속으로는 알찬, 아주 맛있는 쓰하이양좡(四海羊莊)이란 식당이 있습니다.(문의 710-517-0218, 1399-576-3846) 이곳은 현지에서 운전기사가 추천해주어 찾아갔던 식당인데 양갈비 구이가 아주 훌륭합니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닌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소도시에 숨어있는 보물 같은 식당입니다. 인위(銀魚)라고 부르는 작은 민물고기를 계란과 함께 조리한 것을 꼭 맛보길 권합니다.
   
   후베이는 손권이 유비와 연합한 다음 조조의 대군를 맞이해서 소수 병력으로 대승을 이끌어낸 적벽전과, 동맹군이었던 유비와 갈라선 다음 조조와 연합하고는 유비의 군대를 격파한 이릉전이 벌어진 곳으로서 손권이야말로 삼국시대 후베이 지역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베이의 수도인 우한은 우창(武昌)·한커우(漢口)·한양(漢陽) 세 지역을 묶은 도시입니다. 그 가운데 우창은 창장의 이남 지역으로, 손권이 적벽전 승리 이후 수도를 난징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무로 치국하여 번창하겠다(以武治國而昌)’는 뜻에서 명명했습니다. 국력을 최대로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내부의 어떤 부하에게도, 나라의 생존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방 누구에게도 몸을 굽혔던 손권은 가히 ‘몸을 굽혀 천하를 얻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후베이의 남부를 흐르는 창장 강가의 적벽(赤壁)과 그 창장의 하류인 우한의 황학루(黃鶴樓)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돌아볼 만한 삼국시대 유적지들입니다. 적벽에서 최강 조조군에 맞서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여 지리의 이점과 섬세한 지략으로 승리한 명장 주유를 감상하고 후베이성의 수도 우한으로 돌아와 창장의 주군 손권의 황학루를 돌아보았다면 이제 우한의 음식을 맛볼 차례입니다.
   

▲ 샹판 와강자이 식당의 연근 요리.

우한에서는 샹어칭(湘鄂情)이라는 식당이 찾아갈 만합니다. 샹(湘)은 후난성의 약칭이고, 어(鄂)는 후베이성의 약칭으로, 후베이 남자와 후난 여자 부부가 경영하는 식당입니다. 샹어칭은 귀한 손님에게 정중한 식사를 대접할 만한 곳으로 고급스럽지만 과도하게 비싸지 않아서 여행객 누구든지 즐길 만한 곳입니다. 게다가 전국 대도시마다 분점이 있어서 어디를 여행하든 이 식당(www.xeq.com.cn)을 기억해둘 만하지요. 우한에는 이 식당의 싼양루점(三陽路店)이 있습니다. 주소는 ‘武昌區 體育館路特1號 洪山體育館內’이고, 전화는 027-8732-0929입니다.
   
   이 식당의 대표적인 음식은 둬쟈오위터우(䤪椒魚頭)입니다. 주로 머리가 큰 생선인 팡터우위(胖頭魚)를 이용하지요. 팡터우위 대가리에 다진 고추를 듬뿍 얹어 찐 것인데, 생선 볼살이 유난히 부드럽고 다진 고추의 매콤함에 지느러미까지 쪽쪽 빨아 먹게 되지요. 생선 대가리를 다 먹으면 뼈를 건져내고 삶은 국수(水面)를 말아 먹어도 좋고, 사기그릇 하나하나에 따로 쌀을 넣고 찜통에서 쪄낸 보판(鉢飯)과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제가 10여년 동안 중국 곳곳을 다니면서 중국음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한국 사람들을 위해 첫 번째로 선택하는 게 바로 이 요리입니다. 결과는 거의 100점입니다. 이 요리는 후베이 후난이 아니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중국음식이 느끼해서 상큼한 것이 생각날 때 입맛을 되살리는 요리로 기억해둬도 좋습니다.

“매운맛을 보여주마!”

후난성 창사

1인당 고추 소비 연간 10㎏
모든 요리를 맵게 더 맵게

▲ (좌) 후난 스타일의 동파육. 느끼한 맛이 별로 없고 매운맛이 입안에 퍼진다. (우) 창사 ‘신위에거’ 식당의 오리고기 요리인 융저우쉐야.
오늘은 매운맛으로 유명한 후난성(湖南省)으로 가려고 합니다. 후난성은 동정호(둥팅호·洞庭湖)라는 호수의 남쪽에 있어 후난(湖南)이라 부릅니다. 후난성 성도인 창사에는 남에서 북으로 샹장(湘江)이 흐릅니다. 이 강 이름을 따서 후난성 약칭을 샹(湘)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식당 이름에서도 샹(湘)자가 보이면 후난 요리집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매운맛을 유별나게 즐기는 지방으로 쓰촨과 후난을 꼽는데, 두 지방 사람들이 매운맛 사랑을 놓고 다투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쓰촨 사람과 후난 사람이 만나서 자신들이 얼마나 매운맛을 즐기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 쓰촨 사람이 외칩니다.
   
   “부파라(不辣)!”
   
   ‘나는 매운맛이 무섭지 않다’입니다. 그러자 후난 사람이 세 글자를 순서만 바꿔서 강력하게 응수합니다.
   
   “파부라(不辣)!”
   매운맛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맵지 않은 것이 무섭다’는 말이지요!
   
   후난 사람들의 매운맛 소비는 통계로도 잘 나타납니다. 후난성에서 생산되는 고추가 30여만t, 외지에서 들어온 고추가 30여만t인데 인구는 6000여만명이니 1인당 연간 고추 소비량이 10㎏을 넘습니다. 이 양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요? 우리나라 연간 고추 소비량이 18만t, 4800만 인구로 계산하면 3.75㎏이니 후난성에서 고추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고추를 사용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다릅니다. 중국은 말려서 조리용으로 사용하는 게 많고, 우리는 가루로 만들어 거의 대부분을 섭취합니다.
   
   
   6개월만 살면 매운맛에 중독된다
   
   후난성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매운맛을 좋아할까요? 중국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후난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매운맛 띠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띠는 남미~태평양 군도~동아시아~유럽 동남부~북부 아프리카로 이어지며, 매운맛을 좋아하는 지방을 연결한 것이랍니다. 후난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인도 벵골만의 기류와 태평양 기류가 부딪치는 곳으로서 연강수량이 1300~1800㎜로 많습니다. 후난성 북부에는 ‘800리 동정호’가 있고, 샹(湘), 쯔(資), 위안(沅), 리(澧)라는 네 개의 강이 후난 전 지역을 흘러 동정호로 합쳐지지요. 집중호우가 잦은 탓에 침수로 인해 내해가 많이 생겼고 습기가 많습니다. 큰 비로 인한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고, 기온차도 큰 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몸에서 한기와 습기를 내보내는 매운맛의 고추가 자연스럽게 식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보여집니다. 게다가 아열대 식물이 성장하기 좋은 기후라 고추의 생산량도 많기 때문에 소비량 역시 더욱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난에서 매운맛은 여러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커다란 붉은고추를 식초와 함께 단지에 넣고 밀봉하여 쏸라(酸辢)를 만들고, 붉은고추에 산초와 통마늘을 넣고 숙성시키면 마라(麻辣)가 됩니다. 붉은고추를 다진 다음 소금을 넣어 발효시키면 셴라(咸辣)가 되고, 고추를 다져서 쌀가루에 섞은 다음 소금을 뿌려 단지에 밀봉해서 쭤라(胙辣)를 만듭니다. 이런 다양한 매운 양념이 센 불에서 갖가지 식재료와 만나 매운맛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매운맛을 즐기다보니 후난성 서부의 먀오족(苗族)들은 손님에게 고추로 볶은 고기를 내놓으면서 ‘고기’를 드시라는 말 대신 ‘고추’를 드시라고 말한답니다.
   
   후난은 동정호를 중심으로 내수면이 많은 후난성 북부와 장자제(張家界)를 비롯한 산지가 대부분인 서부, 구릉지대인 중부의 음식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이 가운데 중부 구릉지역의 중심이 바로 후난성의 수도인 창사(長沙)입니다. 요즘은 한국인들이 장자제를 가기 위해 창사를 경유하는 경우도 많은데, 창사에서 후난 음식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고급스러운 후난요리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4~5인에 500위안이면 충분
   

▲ (좌) 간장에 매운 양념을 한 마스라자오. 샐러드 소스나 흰밥에 비벼 먹는다. (우) ‘신위에거’ 식당의 가정식 볶음요리인 레이라자오차오다펜러우.


   창사의 신개발 지역에 있는 ‘신위에거(新悅閣)’는 객단가가 100위안 내지 150위안 수준의 고급식당입니다.(주소 長沙市星沙大道商業樂園B棟, 문의 0731-8401-0000) 이 식당의 대표적 음식은 융저우쉐야(永州血鴨)입니다. 이 음식은 융저우 지방의 토속음식에서 발전한 것인데, 오리고기를 요리할 때 오리의 피를 함께 조리해서 오리고기가 검붉은 색을 띠지요. 매콤한 맛과 오리고기의 독특한 식감이 훌륭합니다.
   
   레이라자오차오다펜러우(擂辣椒炒大片肉)는 전형적인 후난 음식인 매콤한 가정식 볶음요리입니다. 큼지막하게 썬 돼지고기가 식욕을 자극합니다. 샤궈셴루쑨(砂鍋鮮芦筍)은 아스파라거스(芦筍)를 돌냄비(사궈·砂鍋)에 넣고 요리한 것으로 신선한 아스파라거스가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그만인데, 여성들이 아주 좋아할 만합니다.
   
   이 식당에서는 후난 스타일의 동파육(東坡肉·둥포러우)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구파정투화주러우(古法蒸土花猪肉)라는 생소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후베이나 저장의 동파육과는 사뭇 다르게 느끼한 맛이 별로 없고 매운맛이 입안에 퍼집니다. 후난차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그리고 채소요리를 하나 추가한다면 칭차오쿵신차이(淸炒空心菜)도 무난할 것입니다.
   
   이 식당의 보물 요리는 마스라자오(馬氏辣椒)입니다. 간장에 매운 양념을 한 것인데, 신선한 치커리 샐러드의 소스로 쓰기도 하고, 하얀 쌀밥에 살짝 얹어 비벼 먹어도 그만입니다. 날아갈 듯 경쾌한 매콤한 맛은 입맛을 자극하기에 최고입니다. 이 정도의 상차림에 차와 음료 등을 마신다고 해도 4~5인에 500위안이면 충분합니다. 창사를 여행한다면 그 가운데 한 끼 정도는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장식된 깔끔한 식당에서 매콤한 후난 음식을 여유 있게 즐겨볼 만합니다. 다음 편에서 창사의 다양한 음식들을 좀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족 하나. 쓰촨과 후난 사람의 매운맛 논쟁에서 “부파라(不辣)!” “파부라(不辣)!”라고 하자, 동석했던 한국 사람이 한마디를 덧붙였답니다. “더우부파(都不)!” 매운 게 무섭지 않든, 맵지 않은 게 무섭든, 나는 너희 둘 모두 무섭지 않다는 소리인 게지요. 한국인의 진득한 매운맛 사랑과 도도한 자신감까지 재치 있게 함축한 말입니다.

 

마오의 고향 곳곳에 ‘마오풍’ 식당들 인민군복 종업원이 저렴한 가격 자랑

후난성 창사

▲ ‘밥도둑’으로 불리는 초어 조림, 가지와 콩을 볶은 더우자오.
오감을 깨우는 듯한 매운맛과 화려한 색상의 대비가 매력적인 후난요리. 이 후난은 음식과 관련해서 우리와도 좋은 인연이 있습니다. TV 드라마 ‘대장금’을 중국에서 맨 처음 방송한 곳이 후난TV입니다. 그 이후 중국 전역에 대장금 열풍이 일었지요. 중국에서 대장금이 방송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행길에서 만난 초면의 중국 여인들은 대뜸 “다장친(大長今)! 리잉아이(李英愛)!”라고 반갑게 외치기도 합니다. 시골의 식당에 가끔 대장금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볼 수 있고, 배우 이영애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는 식당은 부지기수지요.
   
   맛있는 후난이 맛있는 한국 드라마를 알아보고, 중국 전역에 한국의 맛을 널리 알려주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밥도둑인 ‘초어 조림’
   
   오늘 소개할 창사(長沙)의 후난차이 식당은 이런 인연에 닿아 있는 곳입니다. 창사 시내의 악록산 근처에 있는데, 이름이 샹푸한청(湘府韓城)입니다.(주소 長沙市 岳麓區 阜埠河路 大學城天馬公寓 19棟, 문의 0731-228-2868) 후난(湘)과 한국(韓)이란 말을 복합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탕탄총(唐坦聰)씨는 후난 요리를 하는 이 식당 이외에 권금성(權金城)이란 한식당도 운영하는 한국통입니다.
   
   이 샹푸한청에서 만날 수 있는 후난차이 몇 가지를 소개하지요. 커우웨이찬쭈이위(口味饞嘴魚)는 초어(草魚)를 조린 것인데, 붉은고추와 땅콩, 그리고 콩을 염장해서 검게 보이는 옌황더우(醃黃豆)를 넉넉하게 얹은 것입니다. 커우웨이(口味)는 ‘맛’이란 뜻으로, 음식 이름에서는 ‘우리 식당 고유의 맛’이란 의미입니다. 상큼하고 알싸하게 매운맛이 깔려 있고 생선살이 보드라운 것이 정말 훌륭합니다.
   
   고기를 먼저 먹은 다음에 함께 나온 면을 육수에 비벼 먹으면 이 또한 일품입니다. 국수가 아니라 흰쌀밥에 얹어 먹어도 그만입니다. 이 음식을 가리켜 주인장에게 “한국말로 ‘밥도둑”이라는 뜻이라며 “미판샤오터우(米飯小偷)”라 말했더니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후난에서도 밥과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친답니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 셴차이(莧菜)를 밑에 깔고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얹어서 요리한 메이차이커우러우(梅菜扣肉)도, 고추를 듬뿍 얹어서 소고기를 볶은 예산자오차오뉴러우(野山椒炒牛肉)도 전형적인 후난 음식입니다.
   
   차여우투지왕(茶油土鷄王)은 묵직한 솥에 담겨 나오는데 식탁 위에서도 작은 불로 데워가면서 먹습니다. 채소 요리로 탕을 겸할 수 있는 피단주홍셴차이(皮蛋煮紅莧菜)도 추천할 만합니다. 홍셴차이(紅莧菜)는 채소에 삭힌 오리알(피단)을 넣고 끓인 것으로 발갛게 우러나오는 채소의 색깔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탕탄총씨가 운영하는 권금성이란 한식당은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식 불고기 체인점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창사에서는 우이광창(五一廣場) 근처의 유명 백화점인 둥팡바이롄(東方百聯)의 5층에 있습니다. 중국여행 중에 한식이 생각날 때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창사를 여행한다면 메모해 둘 만하지요.
   
   이 권금성의 불고기는 중국 현지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서 우리 불고기와는 약간 다릅니다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습니다. 밑반찬으로 쿠과(苦瓜)가 나오는데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입니다. 쿠과나 쿠차오마이(苦蕎麥)는 후난차이에서 자주 접하는 쓴맛 음식입니다. 쓴맛은 열을 식혀주고 습한 것을 제거해주며 위를 건강하게 해준다고 하지요.
   
   후난차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마오쩌둥입니다. 마오쩌둥의 고향이 창사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60㎞ 정도 떨어진 샤오산(韶山)인데,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가는 지금도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입니다. 마오쩌둥은 그야말로 중국 전역 어디에나 있습니다. 작은 캐릭터에서 사진이나 그림, 기념품, 그의 저작까지 무수하게 많은 상품이 있어서 ‘마오쩌둥 산업’이라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오자차이(毛家菜)입니다. 후난차이를 중심으로 마오쩌둥이 좋아하던 음식을 말하는데, 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도 있습니다. 마오자완(毛家灣)과 같이 식당 이름에 마오(毛)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마오가 좋아하던 후난 음식 마오자차이
   
▲ 차여우투지왕, 창사의 한 식당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 시대의 포스터.

   마오자차이에는 둬자오위터우(刴椒魚頭), 더우자오츠쑤훠베이위(豆辣紫蘇火焙魚), 마오스홍샤오러우(毛氏紅燒肉), 주텅파이구(竹筒排骨), 쏸더우자오러우니(酸豆角肉泥) 등이 유명합니다. 대부분 후난 음식이지요.
   
   그런데 마오자차이를 파는 식당에는 공통적 특징이 있으니 마오쩌둥 시대의 분위기를 많이 연출한다는 것입니다. 마오쩌둥을 비롯해 중국 원수의 초상화나 사진을 걸어놓는다든지, 종업원들의 복장을 마오쩌둥 시대의 인민복이나 인민군 군복 스타일로 한다든지,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적 구호들을 패러디해서 실내장식을 한다든지, 식당 이름을 그렇게 짓는 것 등입니다.
   
   창사에서도 이런 마오쩌둥풍의 식당을 찾아 21세기 중국 사람들의 음식 문화 속에 마오쩌둥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요. 창사 시내의 잉판루(營盤路)와 차이어베이루(蔡鍔北路)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차이어베이루 쪽으로 50m 정도 들어가면 2층에 장난런민궁쓰(江南人民公司)라는 식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식당의 이름에 있는 인민공사는 마오쩌둥이 1958년 소위 대약진운동 시기 농촌의 집단농장을 묶어서 만든 대규모 집단농장입니다. 농업발전을 목표로 한 급진적 정책으로 강력 추진했으나 결과는 실패였지요. 결국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고 1978년 책임생산제를 시행하면서 폐지됐습니다. 실패한 정책이고 이미 30여년 전에 완전히 폐지됐지만, 현재에는 특별한 호불호 없이 단지 마오쩌둥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식당에 들어서면 메뉴와 식당 안쪽 벽에 인민공사 시절 정치적 포스터를 패러디한 그림들이 많이 걸려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공사(新公司) 어록 - ‘좋은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민에서 나온다, 바로 백성들의 집에서!”라는 슬로건이 있는데 ‘좋은 음식’이란 말 대신 정치적 구호를 넣으면 바로 1950~1960년대 마오쩌둥 시대의 급진좌파들의 정치구호가 되는 것이지요.
   
   이 식당은 중저가로서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객에게 딱 어울리는 식당입니다. 후난 음식의 가장 대표적 생선요리인 둬자오위터우는 35위안(元)으로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도 훌륭합니다. 보통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이 식당에서는 작은 고체연료로 데워가면서 먹을 수 있게 올라옵니다. 이 식당의 둬자오위터우에는 생선 대가리 아래 당면이 깔려 있어서 따로 면을 주문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너무 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체쯔(茄子·가지)와 함께 볶은 더우자오(豆角)는 길이가 30㎝까지 자라는 콩인데, 가지의 보라색과 더우자오의 녹색, 고추의 붉은색의 선명한 대비가 유별나게 멋진 음식이지요.
   
   이 식당에서 추천할 만한 또 하나의 요리는 태국식의 항아리 고기구이 탄쯔카오러우(壇子烤肉)입니다. 이것은 작은 항아리의 주둥아리 안쪽으로 적당한 크기로 썬 고기를 매달고, 항아리 안 바닥에 향목(香木)으로 작은 불을 피워 구워낸 것인데, 윈난 남부 시솽반나(西雙版納)의 태국 계통 민족(傣族)들이 고기를 굽는 전통적인 방식이랍니다.
 

국빈 연회에 오르는 명품 닭요리 ‘둥안지’의 고장

후난성 창사

▲ (좌)한 상 가득 차려진 샤오츠. (우)카트에 담긴 음식들.
매운맛의 미식이 풍성한 후난성의 수도 창사를 조금 더 돌아보려 합니다. 혹자는 후난차이로 분류되는 음식을 800여가지라고 합니다. 그만큼 음식문화가 풍요롭게 발달한 터라 저도 금방 떠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후난차이를 여행하면서 둥안지(東安鷄)를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둥안(東安)은 후난성의 서남부 융저우(永州)에 속하고, 둥안지는 이 지역의 특산 요리입니다. 우선 뼈를 발라낸 닭다리를 끓는 물에 넣어 살짝 익힌 후 빨리 건져냅니다. 산초를 식성에 따라 원하는 만큼 갈아서 준비하고 생강과 파, 산초 고추를 넣고 식용유에 볶아 향을 냅니다. 여기에 끓는 물에 데쳐 놓은 닭고기와 간장, 식초, 쌀로 만든 술을 넣고 달달 볶아 냅니다. 암탉의 살코기를 결 따라 찢어서 요리한 것으로 육질이 곱고 부드러우며 신맛, 매운맛과 얼얼한 맛이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둥안지는 식당에서뿐만 아니라 진공포장으로 만들어져 일반 상점에서도 후난 특산품으로 많이 팔립니다.
   
   
   1700여년 전 실수로 만들어져
   
   요리의 역사도 유구합니다. 서진 시대에는 천추지(陳醋鷄)라고 불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290년 둥안에 부임한 현령의 축하연회에 닭요리가 올라왔는데,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신맛이 향기롭더랍니다. 연회가 끝난 다음에 신임 현령이 주방장을 불러 어찌하여 닭에서 신맛이 나는 것이냐고 물으니 주방장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실은 식초를 조금만 넣어야 하는데 제가 부주의해서 많이 들어갔으니 용서해달라고 하더랍니다. 신임 현령은 주방장을 일으켜 세워 그 맛을 칭찬했고, 그 이후 이 요리의 조리법이 민간에 널리 퍼져 둥안의 명품 요리가 되었답니다.
   
   이 둥안지는 청조 말기에 이름이 바뀝니다. 당시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조정으로부터 관보(官保)라는 칭호를 얻었던 후난성의 장군 석보전이 은퇴한 후에, 증국번과 좌종당이 석보전을 찾아왔답니다. 이때 이 요리가 올랐는데, 손님들이 석보전에게 음식의 이름을 물었으나 병약한 석보전이 우물거리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자, 증국번이 관보의 집에서 먹은 것이니 관바오지(官保鷄)라고 명명했답니다. 그 다음 중화민국 시대에 국민당의 탕성즈(唐生智) 장군이 사람들에게 둥안지라고 소개하면서 오늘날의 둥안지란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 주최의 연회에 둥안지가 소개되어 미국뿐 아니라 서양 각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죠. 이 정도라면 후난성을 여행하는 가운데 한 끼는 둥안지를 주요리로 올려놓고 맛과 역사를 한꺼번에 음미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주전부리 ‘샤오츠’ 전문식당 즐비
   
   둥안지는 창사의 어느 식당에서든 쉽게 볼 수 있지만 창사의 젊은이들이 자주 가는 식당을 한번 가보시지요. 쓰완핑투지라오뎬(四方坪土鷄老店)이란 곳입니다.(주소 開福區 四方坪四季美景17號, 싼이다다오(三一大道) 주유소의 대각선 건너편에 있습니다.) 후난차이는 요리만 아니라 샤오츠(少吃)에서도 그 명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샤오츠는 일종의 주전부리 격입니다. 창사에서라면 훠궁뎬(火宮殿)을 꼭 찾아보길 권합니다. 이 샤오츠 전문식당은 창사 시내의 포쯔제(坡子街)에 있는데, 차 없는 보행가에서도 가깝습니다. 훠궁뎬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흔히 여덟 가지 샤오츠, 열두 가지 요리(八小吃十二名肴)로 알려져 있습니다. 훠궁뎬은 당초 불의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1747년에 지어졌으니, 2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2001년 대대적인 보수와 확장을 거쳐 지금은 샤오츠의 명소로 유명합니다.
   
   중앙의 광장에서 매일 민속공연이 열리고, 불과 재물의 신을 모시는 사당에서는 복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쪽으로는 1층에 샤오츠 전문점과 2, 3층에 전문식당이 있습니다. 서민의 음식과 민속 문화가 복합된 공간인데, 음식을 제외하고는 전부 무료로 개방된 곳입니다. 매년 음력 6월 23일에 대규모 민속행사가 열리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길거리는 축제의 물결을 이룹니다.
   
   그럼 창사의 여덟 가지 샤오츠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코앞까지는 역겨운 냄새가 나지만 입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달게 녹아드는 별미 두부인 처우더우푸(臭豆腐), 선지해장국으로 보이는 룽즈주쉐(龍脂猪血), 꽈배기의 일종인 주싼쯔(煮子), 쌀밥에 여덟 가지 과일이나 견과를 넣고 지은 바바오궈판(八寶果飯), 달콤한 설탕이 속에 들어 있는 쌀로 만든 완자 제메이탄쯔(姉妹子), 누에콩을 갈아서 묵처럼 만든 허란펀(荷蘭粉), 간장을 얹어 붉은빛이 돌게 조린 홍샤오디화(紅燒蹄花), 돼지고기와 표고로 소를 만들었지만 피는 두부로 만든 영양 만점의 싼자오더우푸(三角豆腐) 등입니다. 우리에겐 모두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하나씩 맛볼 만한 것들입니다.
   
   열두 가지 요리로는, 위에서 설명한 둥안쯔지(東安子鷄), 소의 양 안쪽에 쭈글쭈글한 부분을 볶아낸 파쓰바이예(髮絲百頁),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꿀에 담근 미즈훠투이(蜜汁火腿), 돼지다리 윗부분을 간장을 넣어 만든 장즈투쯔(醬汁子), 소금에 절인 육류를 굴뚝에 걸어 훈제한 라웨이허정(臘味合蒸), 닭고기, 삼겹살, 샥스핀을 함께 끓여낸 쭈옌위츠(組庵魚翅)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샤오샹구이양(瀟湘龜羊), 훠궁뎬 더우푸(火宮殿豆腐), 홍샤오수이위췬좌(紅燒水魚裙爪), 홍웨이뉴디진(紅牛蹄筋), 마오자홍샤오러우(毛家紅燒肉), 홍샤오거우러우(紅燒狗肉) 등이 있으니 골라 드셔보세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중국의 분식점
   

▲ (좌)창사의 훠궁뎬 샤오츠 전문식당 (우)둥안지


   샤오츠를 즐기려면 1층 홀에 들어가서 빈 자리를 찾아 앉으면 됩니다. 자리가 없다면 식사가 곧 끝날 것 같은 테이블 근처에 서서 기다리면 됩니다. 손님들이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테이블 옆에서 기다린다고 해서 굳이 민망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테이블 사이로 음식 카트가 돌아다닙니다. 요리를 직접 보고 고르기 때문에 음식 이름을 몰라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생과일도 있고 신선한 채소도 있는데, 채소는 그 자리에서 끓는 물에 데쳐줍니다. 접시를 골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종업원들이 알아 서 체크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식대를 계산해 줍니다. 샤오츠라고 해서 가격이 모두 저렴한 것은 아닙니다.
   
   워낙에 손님도 많고 음식 카트들도 부지런히 돌아다니기 때문에 식당 분위기는 시끌벅적합니다. 혹시 조용하게 두루두루 맛을 보고 싶다면 2층의 방으로 가면 됩니다.
   
   창사에서 20대 후반의 젊은이 한 무리에 샤오츠 잘하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꽤 긴 시간 동안 토의해서 종류별로 전문식당을 하나씩 추천해주더군요. 초면의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도 먹는 이야기는 수월하게 마음을 여는 화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는 샤오츠별 식당명과 주소입니다.
   
   처우더우푸(臭豆腐) 우아이제(五, 黃興南路55號 中國移動 對面)
   
   국수 위린미펀(玉林米粉, 烈士公園北門 外德雅路上)
   
   탕여우바바(糖油) 리궁먀오(李公廟, 百聯東方廣場 正對面 李公廟巷子 7號門面)
   
   궈자오(鍋餃) 샹췬궈자오(向群鍋餃, 三王街)
   
   도삭면 냉면 신화러우(新華樓, 五一大道 108號)
   
   새우요리 라부파(辣不, 火星鎭 路 53號 火星小學 對面)
   
   융저우쉐야(永州血鴨) 융저우쉐야관(永州血鴨館, 迎賓路 新華社 斜對面)
   
   샹궈(香鍋) 하오하오샹궈(好好香鍋, 五里牌)
   
   주자오(猪脚) 허시주자오왕(河西猪脚王, 岳麓區 河西銀盆南路 創遠花園 小區內)

 

미식과 문화의 고장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한눈에

후난성 웨양

▲ 동정호의 악양루
웨양(岳陽)은 후난성 북부에 있는 후난성 제2의 도시로서, 동정호(둥팅호·洞庭湖)로 인해 생겨났고 동정호와 함께 2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동정호가 제공하는 풍부한 수산물을 바탕으로 후난 음식의 한줄기를 이루고 있는 지방이기도 합니다.
   
   동정호는 후난성 남부에서부터 흘러오는 샹수이(湘水), 쯔수이(資水), 완수이(沅水), 리수이(澧水)가 차례대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엄청나게 넓은 내수면입니다. 동정호는 넓이가 2820㎢라 하니, 서울의 4.5배, 여의도의 330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합쳐진 물이 동정호 동북쪽의 웨양 부근에서 창장(長江)과 합류해서 동으로 흘러가게 되지요.
   
   이렇게 넓은 동정호의 다양한 수산물과 천혜의 조건 속에서 생산되는 미곡으로 인해 웨양은 예로부터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고 불렸습니다. 동정호 남북으로 자리잡은 넓은 평원지대는 연 강수량이 1300㎜가 넘어 쌀 생산의 최적지입니다. 웨양 여행의 중심이 동정호이고, 웨양 여행 하면 동정호를 바라보는 악양루(岳陽樓)가 제일 먼저 손에 꼽히는 이유입니다.
   
   
   오나라 노숙이 수군을 지휘하던 곳
   
   악양루는, 최초에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노숙이 이곳 동정호에서 수군을 지휘하고 열병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열군루(閱軍樓)라 불렸습니다.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전란이 잦아든 당나라 시대부터는 동정호를 조망하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거나 연회를 여는 등의 문화 명소가 되었습니다. “천하제일의 동정호, 천하제일의 악양루(洞庭天下水,岳陽天下樓)”란 말이 바로 이런 것들을 압축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악양루에서 동정호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문을 한두 개 찾아보는 것도 악양루에서 즐길 수 있는 인문기행이 되겠지요.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은 이곳에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고, 두보는 병으로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악양루에 올라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시를 남기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양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이백·한유·백거이·맹호연·육유·구양순 등 저명한 시인들 역시 많은 시부(詩賦)를 악양루에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송대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가 제일 유명한데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거워 할 것이니(先天下之憂而憂 后天下之樂而樂)”라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구절과, “먼 산을 머금고 긴 강을 삼켜, 넓고 넓어 막힘이 없어 물가에 끝이 없다(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无際涯)”고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구절이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곤 합니다.
   
   악양루는 후베이성 우한(湖北武漢)의 황학루(黃鶴樓), 장시성 난창(江西南昌)의 등왕각(滕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명루로 꼽혀왔습니다. 세 곳 모두 강의 풍광이 뛰어납니다. 현재의 악양루는 1984년 중수한 것으로 청조 말기에 지어졌던 것을 원형으로 하여 복원했습니다. 네 귀퉁이가 높이 쳐들린 비첨(飛䄡)이라고 하는 처마가 멋들어집니다. 악양루 경내에는 당·송·원·명·청(唐·宋·元·明·淸) 다섯 왕조 당시의 악양루를 청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 시대 건축의 차이를 약간은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청석판 골목길 따라 시간여행
   
   이 악양루를 구경하려면
▲ (좌)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차오바위 요리. 동정호에서 나는 민물생선을 매운 양념에 조린 요리다. (우)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두부 요리
동정호 호숫가의 바링광장(巴陵廣場)에서 동정호 호숫가를 따라 만들어진 옛 상가인 볜허제(汴河街)를 따라 500여m를 걸어가야 합니다. 이 볜허제는 가운데의 골목길, 호수를 보면서 걷는 길, 반대편의 길까지, 세 갈래 길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길가의 가옥들도 고풍스럽고 청석판을 깔아 놓은 골목길도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운데 골목길에는 직경 1.9m 정도의 800여년이나 된 자미수(紫薇樹)를 볼 수도 있고, 곳곳의 빈 공간에서는 아마추어들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전통음악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악양루를 감상하고 시간을 되돌아 나오는 볜허제에서, 동정호가 제공해주는 풍부한 민물고기로 만든 맛있는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민물생선 요리 전문식당을 위관(魚館)이라고 하는데, 위관이란 간판을 여러 개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현지에서 평판이 좋은 곳을 하나 추천하자면 볜허제의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小南方俏巴魚魚館)입니다.(주소 볜허제 8호, 문의 0730-829-6999)
   
   이 식당은 동정호에서 나는 차오바위(俏巴魚)로 요리를 하는데 식당 이름도 생선 이름을 따서 차오바위위관이라고 지었네요. 요리는 생선 차오바위를 소금에 절였다가 살짝 말려서 고추와 생강·산초 등 매운 양념을 풍성하게 넣고 뭉근한 불에 국물이 자작할 정도로 조려낸 것입니다. 절인 생선을 쓰기 때문에 짠맛이 깊고도 은은합니다.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쿠과(苦瓜)를 계란과 함께 볶은 쿠과차오지단(苦瓜炒鷄蛋)은 함께 곁들여서 맛볼 만합니다. 쿠과의 모양은 오이와 비슷하고 맛은 씀바귀를 닮았지요. 쿠과를 잘 씹어보면 입안에서 쓴맛이 싹 돕니다. 여름에 먹으면 더위를 물리치고 피로를 풀어주며 피부를 촉촉하게 해 줍니다. 계란의 부드러움은 쿠과에서 나오는 경쾌한 쓴맛과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쓴맛은 후난 음식의 특색 가운데 하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빈민촌에 둘러싸인 당나라 고탑
   
▲ (좌) 가오펑쉬안스푸의 고기고추볶음 (우)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입구

   식사를 하고 나오면 바링광장에서 웨양 시민들의 일상의 휴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해가 지면 이른 저녁을 마친 시민들이 유모차를 끌고 가족과 함께, 또는 연인이나 친구들과 느릿한 걸음으로 동정호의 석양을 감상하곤 합니다. 이 광장의 호숫가 쪽에서 출발하는 동정호 유람선을 탈 수도 있습니다.
   
   바링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둥팅난루(洞庭南路)가 있는데, 이 길은 남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점 더 허름해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약 800m 정도를 가면 우측에 우뚝 솟은 고탑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 자씨탑(慈氏塔)입니다. 너무 낡아서 탑신의 벽돌이 가끔씩 떨어지기도 하고, 탑을 포위한 듯 탑신 1m 거리까지 가난에 찌든 벽돌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유적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서민의 힘겨운 일상생활이 고탑을 완전히 둘러싸버린 꼴입니다. 입장료를 내야만 볼 수 있었던 다른 유적과 달리 빈민촌에 겹겹이 둘러싸인 옛 탑을 보는 느낌이 아주 묘합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번성했던 과거와 빈곤한 오늘이 묘하게 교차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으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층 건물이 전부 식당인 가오펑쉬안스푸
   
   웨양에서 좀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는다면 바링중루(巴陵中路)에 있는 가오펑쉬안스푸(高朋軒食府)를 권할 수 있습니다. 이 식당은 웨양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라서 택시기사에게 이름만 말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문의 0730-825-7777)
   
   3층으로 된 단독 건물이 전부 식당입니다. 1층은 홀이고 2, 3층은 방들로 되어 있습니다. 메뉴는 세련되지만 음식 사진이 없는 탓에 약간 불편합니다. 종업원들이 아주 친절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고기보다 고추가 많이 들어간 볶음 요리가 좋습니다. 또한 앞에서 후난성 음식으로 소개해온 것들을 주문하면 훌륭한 만찬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식당에서의 만찬이라면 복어탕(河豚滋補湯)이나 톈마둔라오거(天麻燉老䧻)라고 하는 탕을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1인분의 작은 그릇이 각각 38위안, 28위안이니 비싼 축에 속하지만 그 값을 충분히 합니다. 천마를 넣고 비둘기 고기로 끓여낸 톈마둔라오거는 맛이 담담한 가운데 입안에서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끔 탕에 감동을 할 때가 있는데,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조용한 감동의 물결이 온몸으로 퍼진다고나 할까요. 중국에서는 비둘기도 엄연이 요리의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맛보시길.
   
   
   매운맛의 고장 후난성을 떠나
   
▲ (좌) 가오펑쉬안스푸의 탕요리 (우) 후난성 백주

   화제가 많은 매운맛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후난성에서 네 편에 걸쳐 매운맛을 즐겨봤으니 이제 다음 지방으로 떠날 때가 됐습니다. 후난성을 떠나면서 매운맛에서 비약하여 역사를 음미해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겠습니다. 중국어 초급이나 중급 수준의 음식과 관련된 단원에서, 둥라시쏸난톈베이셴(東辣西酸南甜北咸)이란 구절을 배우게 됩니다.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고,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다는 말입니다. 중국 각 지방의 음식 특징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중국에서 매운맛은 서남부의 후난성과 쓰촨성이 대표적인데 왜 동쪽이 맵다고 했을까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서의 동쪽은 후난이나 쓰촨이 아니라 산둥지역을 말하는데 파와 마늘과 양파를 많이 써서 맵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동서남북의 중심은 중원이고, 한족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살던 허난성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동쪽이 산둥성이고 서쪽이 산시성(山西省) 남부와 산시성(陝西省), 남쪽은 창장 중하류 유역이었습니다.
   
   그러니 후난이나 쓰촨은 동서남북이 아닌, 그 바깥이었습니다. 한족들은 자신들의 세계 바깥에 있는 민족들을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면서 ‘오랑캐’라고 한 것이지요. 후난도 고대에는 삼묘(三苗)에 속하는 남만(南蠻)이었고 ‘원래의 중국’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중국은 왜 후난과 쓰촨뿐 아니라 신장과 티베트와 동북만주까지 포함하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동쪽 오랑캐란 소리를 들었고, 심지어 몇몇 사람은 스스로 동쪽의 오랑캐라고 자처하기까지 했을까요. ‘원래의 중국’은 어디까지였고 ‘원래의 우리’는 어디였을까요. ‘오늘의 중국’은 ‘원래의 중국’이 아니고, ‘오늘의 한국’은 ‘원래의 한국’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중국의 처지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음식을 주제로 중국 각지를 여행하지만, 한번쯤은 이런 동아시아의 역사 담론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이제 이 중국 음식 기행은 후난성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장시성(江西省)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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