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이해
제1장 서 론
제1절 문제의 제기와 연구 방법
1. 자연관과 인간관의 관계
자연에 대한 되풀이되는 관찰과 종합 그리고 비판과 반성을 통하여 나름의 안목을 갖게되는 자연관은 단순히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인식되는 자연의 내용 즉 자연에 대한 주체적인 파악이며 철학적 자연관이 자연 과학의 탐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하며 자연 과학적인 지식의 축적이 철학적 자연관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인식은 거의 언제나 인간관이나 신관 등 철학적 주제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므로 자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대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자연관은 지역, 문화권,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나름의 독특한 체계를 갖고 변모해 왔으며 자연 환경의 차이, 자연 자체의 변화,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그 주요한 원인이 된다.
고대 그리스인은 대체로 자연은 살아있고 비종교적인 신성이 충만하다고 보았고,
기독교와 중세의 자연관은 피조물로서의 자연관이었으며,
르네상스를 거친 후에는 그리스적 견해에 반발하여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아니라 한낱 기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례론적 자연관'이 나타났으며, 19세기 이후에는 물리학적 연구의 새로운 업적 즉 양자 역학이나 불확실성의 원리 등에 의하여 지난 300여 년간 서구 사회를 주도해 온 기례론적 자연관과 그에 기초한 제반 철학 관념들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유기체적 자연관이 등장하고 있다.
자연관의 변화를 통해 가장 획기적으로 인간관이 변화한 것은 1859년 다원(C. Darwin)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때라고 할 수 있으며
강한 자는 생존하고 약한 자는 파멸한다는 '자연도태설'은 이제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신봉하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큰 충격이었으나
그후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있은후 자연을 탐구하는 방법이 그대로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인간은 이제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시대에 따른 자연관의 변천과 이에 근거한 인간관과 신관의 변화는 자연 자체의 변화보다는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그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서양의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위대하고 거룩한 데 반해 자연과 인간은 저열하거나 속된 것으로 자연 앞에 왜소해진 인간이지만
초자연적 존재에 호소함으로써 자신을 신성화시켜 가는 체결를 구축하기도 했던것과 달리 중국은 이와 다르게 인간은 자연 속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天·地와 더불어 3才를 이루는 고귀한 존재이며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인간에 종속시키거나 인간을 자연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천지와 더불어 3才가 되는 인간,
2 <주역>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을 탐구하는 이유
<주역>은 동북 아시아에서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모든 경전의 으뜸이요 철학 사상의 보고로서 그 권위를 지켜왔으며,
천지지도(天地之道), 만물지정(萬物之情),3재(三才)로 표현하는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자연을 포함한 세계의 양상들을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5經이었으며 5經에 관한 연구 경학(經學)이라하고
그들은 독서, 즉 5經을 읽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의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제자백가와 진의 시대를 거쳐 한무제 이후 유가사상이 국학의 권위를 누리게 되고,
사상계는 "위로 다른 가르침이 없고 아래로 다른 배움이 없다"고 하는 유교 독존 상태가 된다.
6경은 각기 한 분야씩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한대에 경학이 발달하면서 그 차례를 정하게 되었는데
금문가(今文家)는 그 수준의 깊고 얕음에 따라서,
고문가(古文家)는 시대의 선후를 가지고 배열했는데 어느 경우든 <역>을 시간에서 가장 앞서고 내용에서도 가장 심오한 철학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심성이 청결하고 안정되며 이치의 파악이 정밀하고 자세함", 이것이 <역>의 교화라 하고, <역>은 음양의 변화 즉 신화(神化)를 말하며,
"변화의 이치를 설명하기에 좋다"고 그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6경 가운데 특히 <주역>과 <춘추>의 관계에 대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역>은 숨은 것에 근거하여 그 은미한 이치를 모두 드러내며,
<춘추>는 나타난 현상을 통하여 그 숨은 이치를 알게 한다 "(易本隱以致顯 春秋推顯以知微)고하여 양자를 대비하여 언급했다.
또한 근래의 학자들도 "<역>은 천도(天道), <춘추>는 인사(人事)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역>과 <춘추>는 은(隱)·현(顯), 체(體)·용(用),천(天)·인(人), 기(氣)·이(理)의 관계가 된다.
<역>을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며 기본이 되는 경전으로 보는 漢 대의 견해는 이후의 경학사에서 하나의 관례가 되었고
중국이나 한국의 국학에 설치된 교과 과정에서도 거의 예외없이 최고 과정에서 가르쳐 왔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도 <역>은 모든 경전의 모리에 놓이며, 13경을 논할 때도 <역>을 먼저 다룬다.
송대의 성리학 <역>과 4서의 새로운 해석에서 출발하였으며 한국이나 중국의 성리학자들은 <계사전>을 중심으로 한 <易傳>의 천지지도(天地之道), 만물지정(萬物之情), 궁신지화(窮神知化), 태극(太極),음양(陰陽), 궁리(窮理), 치명(致命) 등 우주 자연관과 그 생명 철학 및 탐구 방법론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역전>의 사상은 도가의 새로운 자연관을 유가가 수용하여 전통적인 덕성론으로 해석해 낸 새롭고 독창적인 유가 철학이라고 평가되었으나 송의 이학자들에 이르러 비로소 빛을 보게 되며, 이에 근거한 이학은 이후 7백여 년간 한·중·일의 사상계를 주도하게 된다.
이상을 요약하면
①동북 아시아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철학적인 모든 문제가 경전의 해석을 통해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②<역>은 모든 경전 가운데 시간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내용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는 것이어서 '오경지원(五經之原)' 또는
'오경지전체(五經之全體)'로 인식되었다.
③<역>의 내용은 '신화(神話)', '음양(陰陽)', '장어변(長於變)' ,'설천(說天)' 등의 규정에서 알수있듯이 자연의 해명을 그 1차적 과제로 삼고 있다.
④<역>은 한대의 경학에서만이 아니라 송대의 신유학 발흥에도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준 경전이다. 송학은 그 성격상 <역전> 특히 <계사전>이 형성되던 시대와 여러 점에서 유사성을 지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역시 자연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⑤<역>은 동양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그리고 거의 모든 유파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속적으로 누려 온 경전이다.
3. 연구의 방법과 그 범위
전통적으로 <역>의 해석은 '이전해경(以傳解經)'의 방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즉 유가역 또는 <역전>이라 일컬어지는 십익을 바탕으로 <역경>이 해석되었던 것이다. '천지(天地)' , '신(神)·귀신(鬼神)','인간(人間)', '시(時)·위(位)'의 네 분야는 '역학의 핵심적 과제이며
<역>을 옳게 이해하는데 관건이 된다.
'천지(天地)'는 역도(易道)의 준거이고,
'신·귀신'은 <역>의 종교성(卜筮的 본질)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며,
군자·대인으로 제시되는 역학의 이상적 인간상은 의리역(義理易)의 본원이 되고,
'시(時)·위(位)'는 변통(變通)의 사업을 통하여 이(利)를 극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인 동시에 중(中)·정(正)으로 표현되는
특히 '천지', '귀신'은 전국 시대와 송대 이학의 핵심 과제였고,군자·대인, 시중(時中)·정위(正位)는 선진 시대 이래 유학자들이 추구해 온 변함없는 이념이었다.
제2절 역학 사상의 본질과 그 전개
1. <역>의 종류와 先秦 역학의 특색
<역>은 <주역>이외의 여러 명칭이 있는데 '천지 자연의 역' - 자연 현상 그대로가 역도를 나타낸 것으로 화전역(畵前易)이라고도 한다,
'복희의 역' - 천지 자연의 이치를 보고 이를 괘도(卦圖)로 나타낸 것으로 괘도역(卦圖易)·부호역(符號易)이라고도 한다,
'문왕·주공의 역' - 복희의 역을 연신(衍伸)하여 점사(占辭)를 붙여 길흉을 판별함을 주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문자역(文字易) 또는 서술역(筮術易)이라고 한다,
'공자의 역' - 문왕·주공의 역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하여 의리역(義理易)·철학역(哲學易)이라 한다,
그리고 아직 형체를 갖추지도 않고 드러나 있지도 않은 역 등이 그것이다.
문왕·주공의 역과 공자의 역은 모두 주대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주역(周易)>이라 하고 문왕·주공의 역은 경(經), 공자의 십익은 전(傳)이라 하며, 한대이래로 십익을 통하여 경문을 해석하는 이전부경(以傳附經)또는 이전해경(以傳解經)의 바람이 일어나 경과 전을 하나의 책으로 묶게 되었다.
복희역, 문왕역, 겅자역을 흔희 선진 역학이라 하는데 이는 시대에 따른 구분이기도 하고 성격의 차이에 따른 구별이기도 하다.
복희역은 천역(天易), 문왕역은 죽역(竹易), 공자역은 인역(人易)이라고 하며 원역(原易)이라고 할 수 있는 복희역은 8괘의 배치도만 전해지고 있어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계사전>에서 복희의 작역(作易)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을 통하여 짐작해보면
천문과 지리를 관찰하고 가까이는 몸에서(近取諸身), 멀리는 사물에서 이치를 취하여(遠取諸物) 이를 8괘로 나타냈으며 8괘의 象이 천(天), 지(地), 뇌(雷), 풍(風),수(水), 화(火), 산(山), 택(澤)등 자연 현상인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주초에 이르러 8괘는 64괘 384효로 늘어나고 괘(卦)·효사(爻辭)가 덧붙여지면서 서술(筮術)로 그 성격이 변하였다.
서주로부터 동주의 춘추 시대까지 약 600여 년간이 서술역(筮術易)의 시대였으며 8괘 자체가 우주 만물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치를 구비하고 있으며, 괘상(卦象)·효사(爻辭)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여 표현상의 융통성을 지닐 수 있고 문왕 당시 복법(卜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새로운 방식에 의하여 신의(神意)를 전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자연 물상을 나타내던
부호이던 8괘가 서술(筮術)의 수단으로 변모한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 할 수 있다.
춘추 말기에 이르러 역학에도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을 더욱 중시하는 인문주의 사고의 반영으로 점을 친다 하더라도 그 점사(占辭)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해석을 취하게 되었고 나아가 덕이 있으면 점을 치지않아도 그 길흉을 판단할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신명(神明)한 덕을 지닐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에 출현한 것이 이른바 십익(十翼)으로 본래 예(禮), 인(仁), 의(義) 등 인사(人事)의 도와 덕에 치중했던 유가 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서술역을 근거로 자연·신·인간을 하나로 관통하는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한 것이라 하여 유가역이라고도 한다.
또한 십익은 <역경(易經)>에 대한 해석이라는 뜻에서 <역전(易傳)>이라 부르며 십익에 의하여 <역>은 서술筮術(점복占卜)과 사상思想(철학哲學)으로 분기되고 전통적인 서술이 여전히 시행되는 한편, 의리에 입각한 성덕론(成德論)이 <역>의 권위 아래 새롭게 개진되어 갔다. 십익은 그 속에 도가적 자연 철학과 유가적 인생 철학이 잘 융합되어 있어 선진 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선진 시대의 역학의 특징은
①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고 고정 불변의 원리로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역량, 곧 덕을 강조하는 것이며
② 역의 이치가 양의(兩儀)·4상(象)·8괘(卦)·64괘(卦)· 384효(爻)로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결국 음양론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질박하다고 할 수 있고 서술(筮術)의 경우 의심을 결단하기 위해서 점을 칠 수 있으며, 그 결과 주어진 상황에서 마땅히 행할 도리와 그 일의 결과를 길흉회린(吉凶悔吝) 등의 점사로써 구체적으로 제시한데서 실용적임을 알 수 있으며
③ 천지의 덕을 생명의 창달로 보는 것과 생명의 부단한 계승을 <역>의 핵심으로 보는 것, 또는 건원(乾元) 곤원(坤元)을 각각 만물의 자시(資始)와 자생(資生)으로 보는 것 등이 모두 <역>이 생명을 찬양하고 있다는 증거들이고
④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으로 규정하고 고무시키고 있어서 인간은 천지 안에 존재하는 한낱 피조물로 그치지 않고 3才의 일원, 천지의 만물 화육에 참여하고 그것을 돕는 존재가 되어 천지와 인간은 능생(能生)과 소생(所生)의 관계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대대(對待)의 관계가 된다고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2. 역학의 본질을 이루는 占筮와 成德
(1) 占筮로서의 <역>
<역>의 본질은 복서(卜筮)와 철학으로 구별되지만 본래 기능은 점서(占筮)에 있었고, 이 점서(占筮)의 사(辭)에 대한 유가적 해석에서 '학역(學易)'이 나왔다. 서술(筮術)을 본래 기능으로 했던 문왕역(文王易)에서 이에 대한 해설서인 <역전>이 나온 만큼 시대적으로 점역(占易)이 학역(學易)에 앞선다.
천지 신명, 즉 상제를 섬기는 행위는 천신과 조상에게 나의 정성을 바치는 제사(祭祀)와 천신의 뜻을 청하는 복서(卜筮)였으며 복서(卜筮)는 천명을 청(請)하거나 청(聽)하는 것이지만 일의 공정성과, 성패와 화복의 예측 불허라는 두가지의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주역>의 본질이 점서(占筮)에 있음은 <계사전>의 대연지수장(大衍之數章)에서 실제의 서법(筮法)을 소개하고 있는 것과 역의 64괘가 길흉을 나타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으며 점을 쳐서 미래를 알고 기미를 아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길흉을 아는 것은 대업을 이루기 위함이요, 기미를 아는 것 역시 변통(變通)의 때를 포착하여 이로움을 그대화하기 위함이요, 허물을 보완하고 그것을 돌이키기 위함이다. 대업을 강조하고 무구(无咎), 무회(无悔)를 괘·효사에서 자주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무구(无咎)를 강조함은 이미 <역>이 국가 대사를 점치는 제한된 용도에서 벗어나 만인의 우환을 해결하는 보편적 도구가 되었으며 그것이 도덕적인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수단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哲學으로서의 <역>
문왕에 의한 <역>은 비록 '통지(通志)', '정업(定業)', '단의(斷疑)'로 정의되는 점서(占筮)의 용도에서 그 본질을 규정할 수 있으나, 십익에 이르러서는 철학 사상서 또는 성덕(成德)의 지침서로 그 성격이 바뀐후 이전해경(이전해경), 즉 십익에 의하여 역의 괘·효사를 해석하는 전통이 수립되면서 복서(卜筮)로서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계사전>에서는 역의 용도를 언역(言易), 동역(動易), 제기역(制器易), 복서역(卜筮易)의 네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후대 사람이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언역(言易)'으로 언역(言易)에서 숭상하는 것은 괘·효사, 즉 계사(繫辭)이고 십익중의 <계사전>은 이 계사에 대한 해석이다. <계사전>이 <역>을 철학 사상서, 성덕(成德)의 지침서로 전환하게 한 발단이 된다.
의리역, 즉 철학서로서의 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易>의 괘·효사를 연구하면 그 속에 상수와 의리가 모두 담겨 있으며, 나아가 역의 도는 단지 언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덕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여 易을 배우는 것은 결국 의리의 탐구, 성덕(成德) 공부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철학 사상, 즉 聖德의 관점을 가진 역학에서는 이제 점을 지양하며 덕 있는 자의 가르침은 점의 결과와 같다고 하여 易을 더욱 보편적인 도구로 만들었다. '점서'에서는 목욕 재계하여 신명의 경지에 이르지만, '학역(學易)'에서는 德書의 함양을 그 목적으로 하며 이때 함양된 성덕(成德)은 신명의 차원이다. 괘·효사에 많이 나오는 '무구(无咎)'라는 점서(占筮)로부터 <易>은 이제 보과지서(補過之書), 개과천선지서(改過遷善之書)가 되었고, 그 방법으로 궁리(窮理)와 진성(盡性)과 같은 의리의 탐구, 聖德의 공부를 강조하게 되었다.
(3) 占·學 일치의 역학관
易의 본질을 복서(卜筮)와 철학으로 구분하여 그 종교성과 의리성으로 분류하지만 그 경계가 뚜렷이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며 본래 복서(卜筮)의 집적이라고 생각되는 괘·효사에 대한 해석이 <계사전>을 비롯한 <역전>이요, <역전>을 근거로 하여 <역>의 철학 사상이 배태되었으므로 양자의 상호 연계성은 긴요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다. 주자는 그의 문집에서 '역'의 원의가 복서(卜筮)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천명한 관계로 흔히 상수역학(象數易學)을 강조 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占·學일치의 역학관을 지니고 있어 <역>의 본질은 복서(卜筮)에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다만 의리로써 그 도를 밝히려 했기 때문에 혼란이 생겼다고 말하여 당시의 의리역 일변도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했다.
청의 왕부지(王夫之)는 점역이든 학역이든 모두 성인이 역을 활용한 방안이므로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다른 한쪽을 폐해서는 안되며 둘을 함께 행하여야 한다고 하며 점(占)과 학(學)이 한가지임을 주장한다. 거(居)와 동(動), 유사시(有事時)와 무사(無事時)시를 막론하고 언제나 <역>을 가까이하고(易之爲書也 不可遠), 이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된다. 평소에 꾸준히 수덕(修德)하고 진덕(進德)하여 신명의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하며, 커다란 우환에 처했을 때는 목욕 재계로 마음을 닦아 占筮함으로써 신명의 경지를 체험하는 길이 易을 배우는 길이다.
3. <역전>과 유가·도가와의 관계
한대이래로 역학은 '이전해경(以傳解經)'의 길을 걸어 왔으며 <역전>의 저자는 사마천(司馬遷)의 <史記>에 근거하여 오랫동안 인식되어 온 공자에 회의가 있으나 <역전>이 어떤 형태로든 공자와 관련이 있으며, 공자 이후의 유가에 의해 이루어진 <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는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학자들은 <역전>이 도가의 영향을 받은 전국 시대 말엽 또는 진한 시대 초엽의 유가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으며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공자는 성(性) 및 천도(天道)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2) <논어>에서 "몇년을 더 살아 五와 十으로(마침내) 역을 배우면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 "(子曰加我十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고 한 말을 들어 <역>과 공자의 관계를 말하려 하지만 魯의 <논어>에 의하면 이때의 '역(易)'字는 '역(亦)'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3)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지은 것만 말하고 <역>의 경이나 전에 대하여 언급한 바 없다는 것이다.
(4) <계사전>이나 <문언전>의 '자왈(子曰)'은 모두 공자의 말이 아니고 설명자의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5) <좌전(左傳)>, <순자(筍子)>에서 <역>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가의 경전으로 취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6) <위장자(僞莊子)>,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역학파와 공자학파를 구별하여 서술하고 있다.
(7) 기원전 213년에 이루어진 이사(李斯)의 협서율(挾書律)의 시행에 따른 분서(焚書)에서 <역>은 복서지서(卜筮之書라)는 이유로 화를 면했다는 것은 전(傳)이아닌 경(經)만으로 <역>을 보았음을 의미한다.
(8) 漢대의 인물로서 공자학에 가장 먼저 기운 인물이 매훤(賣糾)인데 그가 <역>을 수용했고, 후에 <역>을 유가의 경전으로 다루었다.
(9) 공자는 '정명(正名)'을 말했는데 이는 <역>의 요지인 변화론과는 상치된다
(10)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말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합리주의자이지만 역은 본질적으로 초합리적이라는 것이다.
(11) <논어>는 공자와 그의 문인 및 당시 사람들 사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으나, <역전>은 <노자>, <장자>의 경우처럼 대우구(對偶句)로 되어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儒家가 <역>을 수용한 것은 대체로 기원전 213년에서 168년 사이이며, 이후에 <역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나오므로, <역>은 공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 가운데 일부에서 수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 <역전> 저자들은 자사, 순자, 맹자와는 다른 계열이며 익명의 유가 철학자들이다.
2) <역전>의 내용은 天道를 근거로 인간의 도리를 논한 것이며, 음양론을 도입하여 道家의 자연 철학과 儒家의 德性 철학을 잘 연결시킨 것으로서, 공자 이후의 유가 철학을 한 걸음 발전시킨 동시에 선진 시대 유가 천도론의 총결산이다.
3) <역전>은 <역>을 술수(術數)나 점서(占筮)에서 철학 사상으로 발전시켰으며, '천일 합일'이라는 중국 철학 최대의 과제를 다른 문헌이다. 특히 춘추 전국 시대의 사상계의 쟁점은 우주 자연의 문제에 있지 않고 온갖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아졌는데, 공자는 천인 합일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쳤고, 맹자는 하늘과 사람이 교류하는 장소를 그의 성선설에 근거한 호연지기(浩然之氣)등으로 마련했으나 천(天)보다는 인간에 편중하였으며, 순자는 아예 인간을 지향했다. 장자는 반대로 인간에서 천(天)으로 회귀하여 천(天)에 대한 용력(用力)이 지나쳤으며, 노자 역시 자연에 편중하여 인문의 비중을 약화시켰다. <역전>은 이러한 두가지 경향을 잘 지양함으로써 중국 철학사에서 최고의 문헌이 되었다. 유가는 인간 사회에 관심을 갖는 반면, 도가는 자연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할수있으며 유가는 인륜을 중심 과제로 설정하여 의리론을 전개하고, 도가는 자연의 변화 또는 그 법칙을 탐구하며 이해(利害) 관계를 깊이 다루었다.
제3장 역학의 자연관 II : 신· 귀신
제1절 <주역>과 신·귀신
神·鬼神은 자주 쓰이는 일상 용어이며 또한 신비의 세계, 초자연의 세계와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학술적 용어라는 느낌이 별로들지 않는다. 그러나 <역전>과 송대의 이학에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자연 철학적 학술 개념이었다. '역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신·귀신뿐만 아니라, 神明이나 음양의 개념 및 이들 개념에 의하여 형성된 사유 구조를 잘 이해하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용어가 역학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신 혹은 귀신에 대하여 언급한 곳은 모두 34군데이며, 鬼만 단독으로 말한 곳은 4군데 이다. 귀신이라 한 경우와 神만 따로 말한 경우 또는 神明, 神物 등으로 연결된 용어는 구별된다. 귀신이란 용어가 나오는 곳은 6군데 이다.
<역전>에 나오는 神은 다음 네가지의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다가올 일을 알거나 기밀을 알아내는 신묘한 작용을 뜻하는 경우이다. 이는 주로 德性을 가르킨다. 즉 神明과 관련된다. 신으로써 다가올 일을 안다. (神以知來.) 일의 기미를 아는 자는 신인가? (知機其神乎.)
둘째, 자연과 만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배후의 주체를 뜻하는 경우이다. 변화의 법칙을 아는 자는 신이 하는 일을 아는 자인가?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 신이란 것은 만물의 생성하고 변화의 오묘한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음과 양의 헤아릴 수 없음을 일러 신이라 한다. (陰陽不測之謂神.)
셋째, 기용(器用) 또는 지용(致用)을 뜻하는 경우이다. 미묘한 의리를 엄밀히 易을 求하여 신비로운 조화의 경지에 도달하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된다. 이것은 바로 역을 가장 절실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精義入神 以致用也.) 백성이 다 사용하는 것을 일러 신이라 한다. (民咸用之 謂之神.)
넷째, 魂과 합쳐서 일반적인 의미의 神靈을 뜻하는 경우이다. 이는 전통적인 소박한 우주론적 개념으로서 주로 길흉의 주재자로 인식되어 왔다. 무릇 대인은 ..... 귀신과 더블어 그 길흉을 함께한다. (夫大人者 與鬼神合其吉凶.) 귀신은 가득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준다. (鬼神害盈而福謙.) 이상 네가지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것은 첫째와 둘째 경우로 첫째 경우는 우리가 占筮와 成德의 지침서로서 <易>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경우는 전통적인 귀신의 용어를 빌려서 <易>의 새로운 우주 자연관을 구성하는 경우이다.
첫째 경우가 주로 神明과 관계되는 것으로 내재적인 신이라면, 둘째 경우는 주로 외재하는 자연 법칙 또는 자연의 생성 변화의 주체로서 인식론적으로 파악되는 대상인 것이다. 이처럼 <역전>에 쓰이는 신과 귀신은 천지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학술 개념으로 중국이나 한국의 성리학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귀신과 死生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주자의 철학에서는 귀신론이 이기론과 더불어 본체론과 우주론의 양대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귀신론을 탐구하지 않고서는 그의 이기론적 우주관을 해명할 수 없다.
제2절 음양론적 신 귀신관의 형성
1.상고대와 공자의 귀신관
공자는 卜이나 筮의 神聖性은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지혜에 더욱 의존하도록 권고하는 타협책으로서 '敬鬼神而遠之'를 강조하였다. <논어>에서 공자의 귀신관을 살필 수 있는 몇 구절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의 조상신이 아닌데 거기에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라고 한 부분,
둘째 知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할 때, "사람으로서 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경앙하되 멀리하라"는 부분,
셋째 공자가 질병이 생겼을 때 제자인 子路가 기도드릴 것을 청하자 자기가 기도해 온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대답한 부분,
넷째 季路가 귀신 섬김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사람 섬기는 것도 다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느냐고 한 부분,
다섯째 공자는 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부분 등을 들 수 있다.
논어에서 찾을 수 있는 공자의 鬼神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수 있다. 먼저 '述而不作'이라는 공자의 학문 태도가 귀신관에도 적용된다. 즉 귀신의 관념에 대하여 점진적 전환의 방식을 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사를 드려 복을 구하는 풍습은 당시 일반적이었는데 공자는 이를 전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명확하지 않은 것은 판단의 유보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위의 예 가운데 앞의 세가지는 비합리적인 구복을 버리고 일상적인 도리(義)에 힘 쓸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敬鬼神而遠之'라 하여 경건히 섬김과 멀리함이라는 이중 구조를 취한 까닭은 지나치게 귀신을 섬기다 보면 미혹되기 쉽고, 그렇다고 불신하면 경건하지 못하게 되어 慢重의 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귀신에 관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그의 지적 정직성에 비추어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느 것이 참된 앎" 이라거나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법" 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에게 神은 아직 祖上神이며 姓命이 있는 神이다. 아무데나 제사함을 아첨이라 규정하여 경계한 데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2. <역>의 음양론 수용과 전개
전국 시대 이래로 <역>은 음·양의 철학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은 바로 음양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장자>에 "역은 음양을 말하는 것 "(易以道陰陽)이라 하였다. 주자도 역은 "다만 음양 두 글자로써 다 포괄할 수 있다. (易只消道陰陽二宇簪盡.)", "역은 음과 양일 따름이다. (易者陰陽而已)" 라고 말하고 있다. 송대에서는 <역>과 그 괘 효를 각기 음양의 도, 음양의 물, 음양의 운동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상 <역>을 음양론이라고 함은 역학자 대다수가 거의 동의하는 견해이다. 역이 음양론일 따름이라는 주장의 논거는 주로 역전이다. 역의 경문에는 음·양이란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역을 음양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역전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주목한다. 한 번은 음이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일러서 도라고 한다. 一陽一陰之謂道. 음과양의 작용의 헤아릴 수 없음을 일러 신이라 한다. 陰陽不測之謂神. 하늘의 도를 말하여 음과양이라 한다. 立天之道一陰與陽. 道, 天道, 神 등 주요 개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 <묵자>, <순자>, <중용>, <대학>에도 음양이란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순자는 맹자와 달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만물이 생기고 음과 양이 만나 변화가 일어난다. 天地合而萬物生陰陽接而變化起. 이것이 천지와 음양의 변화이다. 是天地之變 陰陽之化. 여기서 음·양은 천.지와 동일한 뜻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장자> 天下편에서는 易은 음양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장자> 天下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예기 편에 "옛날 성인이 음양 친지의 실정을 파악하여 易을 만들었다" 는 말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마치 <易>이 음양 사상의 발원처인 것처럼 생각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음양사상을 이용하여 <역>을 해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계사전>과 <설괘전>에 나타나는 음양은 거의 모두 자연의 창생과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성질이 서로 반대이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음과 양을 만물을 구성하고 생멸시키는 두 개의 원소로 삼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司馬遷이 <史記>에서 "易은 천지.음양.사시.오행을 들어낸다. 그래서 변화의 이치를 설명하기에 좋다"고하여 <역>을 변화의 문제와 관련지어 언급하고 있고, <설괘전> 1장에서도 "음양의 변화를 보아 괘를 그렸다"고 하여 역시 음양과 변화를 연결시켜 <역>과 괘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곧 음양론이 '번역'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3. 神 鬼神論의 음양론적 변용
<시>, <서> 및 춘추시대 공자가 이해한 신·귀신은 아직 인격과 의지를 지닌 것이었으나 노·장에서 말하던 조물자는 음양론으로 바뀌었고, 이 음양론을 수용한 역학, 즉 <역전>에서 말하는 귀신은 이제 더 이상 소박한 인격적인 귀신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의 주체이고 배후이며 신비적이고 唯氣的인 존재이다. 한대 역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象數易도 음양론에 의거한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인 孟喜가 卦氣說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볼 때 한나라 때에 음양설에 입각한 기론이 크게 성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양론과 기론이 유가에 의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됨으로써 <역전>을 더욱 새롭게 인식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공자·자사·맹자에 이르는 선진 시대 유가의 이념을 새롭게 천명하게 된 것은 송대에 이르러서이다. 귀신을 음양론 또는 기론으로 환원하여 우주의 발생과정과 사물의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하고 인간의 김겅과 도덕을 논한 것이 송대 성리학자들이다.
이들에 의하여 역전의 귀신 사상은 새로운국면을 맞게 되었다. 실로 역전사상을 계승하는 데 커다란 진전이 이루어졌으며 유가 사상 자체에 일대전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제3절 신 귀신론의 자연 철학적 이해 1.신 귀신에 대한 경험론적 인식 흔히 神을 인식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눈앞에 전개되는 사물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다른 그 하나요, 인간의 내적 정신에 의하여 파악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인간의 정신은그 자체가 예지적인 것이어서 인간을 神의 母象이라고 한다. 곧 인간의 정신 속에 신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周易>에서 신·귀신을 인식하는 것 역시 사물의 세계에서 유추하여 내는 것과 인간의 정신 속에서 파악하는 두 방식이 모두 제시된다. 예컨데 주자가 窮理의 일에 속한다고 했던 "천문과 지리를 살펴 흉명의 까닭을 알고, 原始反終을 통해 死生의 이치를 알며, 정기가 모여 사물이 되고 혼이 떠남으로써 변화가 생기는 것을 통해 귀신의 情狀을 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귀신을 '조화의 자취', '천지의 功用'으로 보는 이는 정자이며, 이 견해는 주자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神이란 것은 만물을 극묘하게 함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뢰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만물을 흔들어 널리 퍼뜨리는 것은 바람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만물을 마르게 하는 것은 불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 만물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못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만물에 윤기를 주는 것은 물만한 것이 없다. 만물을 시작하게 하고 만물을 끝내게 하는 것은 산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물과 불은 하나의 대상을 위하여 공헌하고, 우뢰와 바람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산과 연못은 서로의 기운을 나눈다. 이런 방식으로 변화하여 만물을 완성한다.
2. '通' 개념인 '神'과 2氣의 良態인 鬼神
송대 이학에서 논의되는 우주론은 태극 음양론이나 이기론 외에도 상당수가 다시 귀신론으로 환원되어 전개되고 있다. 상고 시대 吉凶 禍福의 주관자로 보아 종교적 성향이 농후했던 귀신이 춘추 시대에 이르러 儒家에서는 윤리적 차원으로, 道家에서는 자연주의 또는 기계론이라고 오해될 만큼 기론으로 바뀌었고, 周易에서는 음양론에 따른 철학적 개념으로 변했다. 그러나 통속적 의미의 귀신 관념은 여전히 잔존했으며, 이는 불교의 사생설과 잘 결합되었다. 성리학이 발흥 전개되는 동기는 이단의 배척과 정학의 선양이라는 측면에서는 찾을 수 있다.
불교적 사생관과 결부된 세속적 귀신론은 이런 점에서 성리학자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역전에서 3대 탐구 과제로 설정한 <유명, 사생, 귀신>이 문제를 음양론으로 환원시킬 때 통속적 귀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불교적 사생관도 아울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우주 본체의 작용인 귀신
주자의 귀신론은 이기론과 더블어 그의 우주 본체론 또는 형이상학의 양대구조를 이룬다. 이점은 일찍이 "이기론과 귀신론을 따로 떼어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주자 우주론의 조화에 대한 참된견해 라고하여 주자의 귀신론을 해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음양에 대한 언급은 그대로 태극론과 연결되고 태극, 음양론은 다시 理 氣論으로 정리된다.
주자에게 귀신론은 격물 궁리론의 한 과제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사생 윤회설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였다. 앞서 논한 공자의 귀신관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덧붙여 송학 특유의 음양론적 귀신론으로 전개 함에 주자 귀신론의 특색이 있다고 할 것이다.
제4절 신 귀신론의 덕성론적 이해
1.德의 極致인 神
<주역>에는 자연의 변화, 자연의 물상을 중심으로하여 신 귀신을 설명한 것 외에 인간의 덕성을 신 , 신명 또는 귀신과 연결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바램도 있다. 이는 곧 인긴이 내적 정신을 통해 신 귀신을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논한 바와같이 주역에서 易과 神이 거의 동시 개념임을 생각한다면 易이 인간의 마음의 발현이라는 것도 같은 것에 대한 다른 측면임을 알 수 있다. 즉 역이 대상적 진리 개념이라면 신은 주체적 用의 개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에서 말하는 지극한 신은 최고의 원리를 가리키는 동시에 경인의 경지를 의미한다. 신령하여 밝게 함은 그 사람의 덕이 달려 있다. 神而明之 存乎其人.
2.신명과 知來, 知幾
문언전에는 大人을 예찬하는 글 가운데 天地와는 德, 日月과는 밝음, 四時와는 질서, 귀신과는 그 길흉을 협력하여 이루어 낸다고 한 글이다. 德의 成大함은 神明으로도 형용된다. 실로 주역에서는 덕의 신명 또는 신명의 덕을 지닌 인간에 대한 언급이 결코 적지 않다. 역을 지은 동기가 바로 신명의 덕과 소통하기 위한 데 있다. 첫째, 신명의 덕과 소통한 자는 氣를 안다.
둘째, 신명한 덕을 지닌 자는 또한 변화의 도리를 깨닫는다.
셋째, 신명한 덕을 지닌 사람은 通志와 成務밑 通故를 하는 자이다. 넷째, 신명한 덕을 지니는 자는 신화를 돕는다.
3.재계, 세심, 고부
역은 신명한 힘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주체를 인간이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역을 배우는 군자가 그 주체이다. 구 무는 사람들이 각기 신명을 다하고 자아를 완전히 기능기키기 위한 존재론적 측면에서도 간절히 요구되는 사항이라 할 수있다. 문제의 구절 바로 앞에서 글을 말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나타나지 못한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고하여 언어 문자의 제약고 한계를 지적한 후에 입상, 설괘 등과 일직선상에서 고무가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오늘의 예슬 개념으로 보아도 논리상 큰 무리가 없다.
4. 至神의 개방성과 원융성.
앞에서는 신명을 주로 기능 공용의 측면에서 고찰했는데 이제 존재론적으로 생각해 보자. 신명의 덕을 지닌 존재는 본질상 규정이 불가능하다. 서구 신학에서도 신은 무엇이다라고 말하기 보다 신은 무엇이 아니다는 식의 부정적 규정이 신에 대한 이해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는 길이라 한다. 역에서 신에 대해 규정한 것들 역시 대부분 무규정적이다.
첫 번째는 자연 변화가 헤아릴 구 없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신이 없다는 것은 개방성, 보편성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역설의 논리적 설명이다.
제4장 역학의 인간관
I : 군자·대인
제1절 역학에 나타난 인간론
역도는 천지에 준거하고, '신(神)' 또는 '신명(神明)'은 역학이 제시하는 최고의 경지이다. 그런데 <역>의 진리, 즉 신명의 경지는 모두 인간에 의해 구현되고 이루어진다. <계사전> 상하권을 막론하고, 이 '역(易)'·'간(簡)'의 덕에 따라 신명의 덕과 변통(變通)의 사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계사전> 상 12장에서 "신명하게 됨은 사람에 의해서이고, 묵묵히 이루어지며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은 덕행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주자는 "괘효를 변통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이 신명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그 덕 때문이다"고 하여 변통을 통한 대업의 주체는 인간이요, 신명에 의해 앞일을 아는 것은 덕행에 있다고 했다. 이는 '역학'이 인간론, 성덕론(成德論)에 귀착됨을 말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하는 인간은 천지의 도, 천지의 덕과 관련을 갖고 있는 인간이란 점에서 <논어>의 인간과 차이가 있다. <역>에서 말하는 인간은 3才, 3極의 이념 속에서 이해되고 있다.
3재론이든 천인론이든 <역>에서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인도의 중요성이 천도보다 훨씬 강조되는 것이 역학이 지니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는 헛되이 행하지 않는다"라든가, 역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덕행에 의존한다는 말이 이를 나타낸다. 정자에 따르면 "하늘은 위에, 땅은 아래에, 사람은 그 가운데 자리한다. 사람이 아니면 천지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역은 진리 또는 진리를 체득한 성인이라 할 수 있으며 진리를 체득한 성인이 아니라면 건·곤·천지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덕(盛德)과 그에 근거한 대업이 바로 3재로서의 인간에 이르는 관건이다. 역학에서는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군자요, 이를 이룬 사람이 대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학의 방법은 대개 눈데 띄는 인간의 어떤 특성에서 시작해서 이런한 특성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의미있는가, 또 없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본질을 창조해 내는가 하는 것을 문제삼는다. 헤르더는 직립 보행을, 키에를케고르는 실존적 불안을, 마르크스는 노동을, 뢰비트는 질문 능력을, 볼노는 장치, 학습능력, 수치심을, 야스퍼스는 한계상황을, 하이데거는 배려(Sorge)와 피투성(被投性)을 각각 인간 이해의 출발점으로 보았는데,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역학적 인간의 특성은 '선보과(善補過)' 즉 허물을 고칠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절 역을 배우는 군자와 진덕(進德), 수업(修業)
1. 성덕지인(成德之人)의 군자
군자는 본래 지도자를 의미하는 신분 개념이었으나 훗날 도덕 수양에 초점을 둔 인격 개념이 되었으면 반드시 지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 공자는 "군자의 도에 세 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자신이 없다.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여 군자를 인격적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주자는 "덕을 이룬 자의 이름"(成德之名) 또는 "재능과 덕망이 출중한 자의 이름"(才德出衆之名)이라고 했다.
<논어>에서도 군자를 이상적 지도자로서 지위와 권한 그리고 책임을 지닌 신분으로 말한 곳도 있다. "공자가 자산에게 이르기를 군자의 도에 네 가지가 있다. 그 몸가짐은 공손하며, 윗사람을 敬으로써 섬기며, 백성을 은혜로써 기르고,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義로써 한다"에서의 군자는 지도자로 대치할 수 있다. 군자는 도덕 수양을 통해서 이웃, 사회, 국가로 그 영향력을 파급시킨다는 뜻으로 첫 번째 '修己以敬'와 두 번째 '修己以安人' 단계는 정치적 지위가 없어도 가능하나 세 번째 '修己以安百姓' 단계는 반드시 그 지위를 요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 자기 수양(修養)은 필수적이다. 즉 군자의 본질은 '수기(修己)'에 있다.
군자의 '순천명(順天命)'은 그가 지닌 성대한 덕에 기인한다. 다만 점치지 않고서도 '지명(知命)' 또는 '순명(順命)'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옛날에 점치던 사람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신을 탐구하고 조화를 아는 것은 덕이 큰 것이다", "易·簡의 좋은 점은 지극한 덕과 짝을 이룬다"는 구절은 지덕자(至德者) 또는 성덕자(盛德者)는 신화(神化)를 알고 건곤의 공능을 지닌다는 것으로서, 곧 성대한 덕의 공효를 나타낸 것이다.
2. <주역>에 나타난 소인과 '民'
군자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民(만민, 백성)과 소인을 들 수 있다. 민의 경우 인격 개념으로 사용된 적은 없고 오늘날의 국민, 민중을 의미한다.
효사에 보이는 소인은 식견이 좁고 능력이 적어 큰 일을 할 수 없는 서민을 가리키며 사괘(師卦) 상효(上爻)의 소인은 상황을 처히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해괘(解卦) 오효(五爻)의 소인은 지도자의 지도력으로 인해 혜택을 누리는 백성, 혁괘(革卦) 상효(上爻)의 소인은 지도자의 변화하는 모습을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소인에게만 인내와 포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즉 소인이 참고 견디면 그에게 행운이 되지만 동일한 행위도 군자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될 수 있다. 부괘(否卦) 육이(六二)의 "포용하고 받든다.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막힌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괘·효사에 나타난 소인은 무능한 사람을 의미하지만, <역전>에서 소인을 말할 때는 대체로 패덕자를 의미한다.
소인은 소민(小民), 하민(下民) 등 신분적 의미 이외에 패덕한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지만, 民(만민, 백성)은 인격적 평가가 개입되지 않은 신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역전>에서 民이 주체로 인식되는 경우는 없지만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천하의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길, 民이 소망을 해결해 주는 수단임을 밝힌 경우는 있다.
지도자는 신도(神道)에 의한 정치를 해야 한다. '변통(變通)'으로 권태를 떨치고, '신화(神化)'로써 각기 자기가 행할 마땅한 도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계사전> 하 5장의 교훈은 민의 생리를 잘 지적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자는 민의 몸을 편안히 한 뒤에 움직이고, 민의 마음을 편안히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튼 후에 구한다. 군자는 이 세가지를 힘쓰기 때문에 온전하다. 위태롭게 움직이면 민은 그와 한편이 되어 주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민은 호응하지 않으며, 사귐없이 구하면 민은 참여해 주지 않는다. 참여해 주지 않으면 해칠 자가 온다. <역>에 이르기를 "유익함이 업으리라, 혹 칠 것이다. 마음에 항상됨이 없으면 흉하다"고 하였다.
<주역>에서 말하는 민은 군자(지도자)의 정치 교화의 대상이다. 그러나 민은 우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겸손과 맑은 형벌과 균평과 시의와 실정에 맞는 공정한 정치를 바라고 이를 기뻐하며 그런 지도자에 호응한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함꼐 성취하려 한다.
3. 역을배우는 군자의 2대 과제인 진덕(進德)과 거업(居業)
군자의 두 가지 큰 과제는 진덕(進德)과 거업(居業)이라 할 수 있다. 건괘(乾卦)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 <계사전> 상 1장의 '현인의 덕'과 '현인의 업', <계사전> 상 5장의 "성덕 대업이 지극하도다. 많이 갖는 것이 대업이요,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성덕(盛德)이다", <계사전> 상 7장의 "무릇 역은 성인이 덕을 높이고 사업을 넓희기 위한 것이다" 등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덕과 업을 병거하여 군자의 두 가지 큰 과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주자는 "진덕수업(進德修業) 네 글자야말로 모든 도리를 포괄한 것이니 잘 완미하여야 한다"고 했다
(1) 수기(修己)를 뜻하는 진덕(進德)
지위는 시(時)와 명(命)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군자의 본질이라 할 수 없다. 공자처럼 지위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군자는 숭덕(崇德) 또는 성덕(成德)에 한시도 소홀할 수 없다. 만일 지위가 주어진다면 그는 마땅히 도를 행하여야 한다. 지위가 주어지지 않아도 학문의 연구와 전수에 더욱 진력해야 한다. 덕을 쌓는 것이 군자가 본래 힘 쓸 일임은 건괘 <문언전>에 "군자는 덕을 이루는 것으로 행위의 목표를 삼는다. 덕행의 목표는 평일에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표준을 삼는다."라고 잘 나타나 있다.
덕을 향상시키는(進德) 방법으로는 건괘의 괘사에서 군자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서 쉬지 말 것과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으로 마음 속에 한 생각의 사특함도 없도록 힘쓰고 밖으로 의(義)의 실천에 주력하라고 하는 권고를 볼 수 있다. 건괘 <문언전> 구이(九二)에서는 "배워서 지식을 쌓고 물어서 명확하게 분별하고 너그럽게 처신하고 사랑으로 일을 한다"고 하였는데, 덕을 쌓는 관건을 학취(學聚), 문변(問辨), 관거(寬居), 인행(仁行)으로 본 것이다. 곤괘 육이(六二)에서는 "곧고 바르고 크다"(直方大)고 하였는데, "경건함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義를 실천으로 행실을 바르게 한다"는 내외의 공부가 부단히 쌓여 가면 마침내 덕이 커지고 仁이 익어서 덕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2)치인(治人)을 뜻하는 거업(居業)
거업(居業)과 광업(廣業)은 군자의 두 가지 과제중의 하나로, 덕이 안으로 충신(忠信)에 힘쓴 결과요 천지를 본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업이란 천지 안에서 인간이 할 일에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덕과 업은 본래 체(體)·용(用) 관계에 있으며 군자가 행할 사업이란 그가 터득한 진리를 온 인류에게 시행함을 말한다. 즉 홀로 그 몸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獨善其身)이라기보다 세상을 두루 바르게 하는 것(兼善天下)을 의미한다.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성덕이라 한다"(日新之謂盛德)는 말의 대구가 "천하에 널리 소유하는 것을 대업이라 한다"(부위지위대업)는 말이다. 덕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여 시간상으로 말했고, 업은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지역에 미친다고 하여 공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업의 효과가 천하에 미칠 때 이를 일러서 대업이라 한다. 그런데 업 또는 사업이란 역리적으로 변통(變而通之)을 의미한다.
數를 극진히 펼쳐서 장래의 변화를 아는 것, 이것을 점이라 하며, 변화의 이치에 통달하여 변화를 꾀어서 소통하게 하고, 소통하게 하여 오래 가게 함을 가리켜 일이라 한다. - <계사전> 상 5장
점을 쳐서 다가올 일을 안다. 점을 쳐서 미래를 아는 것은 '知來者逆'이라 하듯 그 결과를 맞을 준비를 하는데 일차적 목적이있다. 점치는 사람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다가올 일을 맞이함에 그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변통시켜 길하면 더욱 확대하고, 흉하면 축소하거나 이를 피하려 한다. 점의 결과를 통해 지난 허물을 반성하고 잘못을 고쳐 선으로 나아간다. 또한 일의 결과가 확정되기 이전에 개입하여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맞으려 한다. 일이 막히면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며,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통로가 생기고, 그렇게 됨으로써 더욱 오래 지속된다. 사람의 일로 말한다면 일이 궁지에 처했을 때 변화를 일으켜 소통시키면 오래 가게 된다. 모든 일이나 제도는 오래 되면 다시 궁색하게 된다. 변통이란 요컨데 막힌 곳을 뚫어 소통하게 함이요, 氣가 흐르게 함이다.
특히 언행을 삼가야 하며 그 이유는 언행을 통해 은밀한 의도가 누설됨으로써 방해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幾事)'는 진밀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해야 할 말을 않으면 사람을 잃고(失人),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 실언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생명까지도 잃는다(失命). 말을 하거나 않는 것이 상황에 적절해야 변통과 대업이 가능하고 그 결과 3재 가운데 위치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제3절 역학에서 이상적 인간인 대인
1. 대인과 3才 가운데의 인간
<역>에 지도자를 만나 가르침을 구하라는 강력한 권고가 있는데 그것은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그리고 대인이 요청되는 일련의 상황이 있다.
대인의 인격을 살펴보면 <논어>에는 군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천명과 대인과 성인의 말씀 이렇게 세가지이다. 주자에 따르면 이때의 대인은 지위가 있고 덕이 있으며 나이가 많아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천자나 제후등 정교자(政敎者)로 보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두 군데에서 대인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나는 인군(人君)을 섬기는 사람, 사괴를 지키는 사람, 천리를 따르는 사람(天民)과 함께 대인을 거론한 것으로, 대인을 "자기를 바르게 함으로써 그 주변의 것드도 바르게 하는 자"(正己而物正者)로 규정한다. 즉 수양을 통하여 자기를 바로잡으니 의도하지 않다도 그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 저절로 감화되어 바르게 되는 그런 인격이 대인이다. 위에 든 네 가지 유형의 인간중에서 최고의 인격이다. 또 다른 곳에서 맹자는 인간을 善·信·美·大·聖·神의 6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는 대인을 안으로 충실한 덕을 쌓아서 밖으로 광채가 드러나는 인격이라고 규정한다. 대인은 '大而化之'의 성인이나 '聖而不可知之'의 神人보다는 낮든 단계이지만, 善人, 信人, 美人보다는 상위에 있는, 즉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중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자이다.
2. 대인의 대덕(大德)과 광업(廣業)에 이르는 길
(1) 直·方·大
대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의 덕이 성대하고 사업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大'라고 했으나 그 속에는 '廣'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애딘의 대덕광업(大德廣業)은 천지의 광대함과 같다고 한다. 大와 廣은 각각 건과 곤의 속성이다.
마음이 곧고 행실이 바르면 그 덕은 점차 커져서 주변의 모든 사람을 감화하고 그들에게 은택을 준다. 이처럼 대자적 성실성과 대타 또는 대물적 적선성과 합리성을 갖추면 그 덕은 날로 성대하게 유행하게 된다. 그러면 아무런 시행 착오도 없이 하는 일마다 모두 잘 성취된다. 의심없이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直·方·大의 '大'가 성덕의 유행에 의한 '德不孤'를 의미함과,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 성대한 덕과 神明한 덕을 지닌 경지에서 점을 치지 않고서도 다가올 일을 알아 모든 의구심을 결단해 버린 상태로, 일을 하여 초길·계벽에 이르는 경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直·方·大야말로 역학적 인간의 이상, 유가의 이상적인 인간 완성의 길이라 할 수 있다.
(2) 窮理·盡性·至命
대인에 이르는 길은 또한 窮理·盡性·至命으로 제시되고 있다. <설괘전>에서 "옛날에 성인이 역을 지으심에 그윽히 신명을 도와... 궁리·진성하여 이로써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구절은 의리 역학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며, <역>의 의리서을 부각시키는데 자주 거론된다.
<주역정의>에서는 궁리는 만물의 깊고 오묘한 이치에 대한 탐구이고, 진성은 모든 생명체가 품수한 性에 대한 규명이며, 이 物理와 生性에 대한 탐구가 다하면 한 존재자에게 부과된 命을 알게 되어 그 장단과 길흉을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해석이 갖는 특징은, 첫째 궁리와 진성은 각기 사물과 생명체에 대한 탐구라고 한 점, 둘째 이 두가지 공부가 지극해야 至命할 수 있다고 본 점, 셋째 命을 인간이 품수한 定分으로 보았다는 점 등이다. 정자의 해석은 이와 다르다. 정자는 窮理·盡性·至命 이 세가지는 일시에 완성된다고 하여 차례를 두지 않았다.
말에는 차례가 있으나 내용에는 전혀 다름이 없으니 궁리가 곧 진성이요, 진성이 되면 곧 지명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논거로는 理, 性, 命이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정자에게 '命'은 천명이요 천리요 천도이다. 물론 用의 측면에서 '命'이 조화임을 긍정한다. 이에 공영달과 해석의 차이가 나타난다. 장횡거는 정자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窮理·盡性·至命에는 차계가 있다는 것이다. 궁리가 되어야 자기의 性을 알고, 자기의 성을 다 깨달아야 이를 미루어서 타인의 성, 나아가 만물의 성을 알게 되며 그렇게 되어야 천도에 이를수 있다고 한다. 주자는 <역>을 통해서 窮理·盡性·至命을 하는 것이지, <역>을 떠나서 일반론으로서 窮理·盡性·至命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窮理·盡性·至命을 주자가 말한바와 같이 이해한다면, 이는 그대로 대인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말한 궁리와 진성의 내용은 진덕(進德)에 의한 성덕·대업이 여기에서 충족되며, 특히 지명의 일이 그대로 천지의 화육에 참여하는 3재의 경지임이 이러한 논거를 통해 더욱 확고해진다.
3. 이견대인(利見大人)과 대인이 요청되는 상황
64괘 중에서 '이견대인(利見大人)', 즉 대인을 만나 그 지도를 받을 것을 권유한 것이 5괘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견대인(利見大人)'리라 하지는 않았으나 대인이 아니면 문제의 해결이 곤란한 상황이 몇 군데 있다. '이견대인(利見大人)'이 나오는 경우는 건괘 2효와 6효에서, 나머지는 괘사와 효사에서 나온다.
64괘 384효는 64개, 384개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상황에 비할 때 인격적 지도력에 대한 언급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惻術易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다 점서로써 각자의 의심을 결단하고, 천신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 까닭에 지도자가 덜 필요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리를 탐구하고 덕을 이루어 지명(至命)하고자 하는 새로운 <역>에서는 만인이 스스로 대인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일부의 성인과 대인에 의하여 예악으로 표현되는 일체의 행의 규범, 질서와 제도가 구축되면 범인은 단지 이에 따르면 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역>은 만인이 다 성덕을 쌓고 대업을 이루며 우주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고 기미를 아는 대인, 즉 신명의 경지에 이르고 천지와 더불어 3才가 되는 인간을 그 이상으로 삼는다.
제4절 역과 인간의 우환
1. 역을 지은 자의 우환
인간의 실존적인 삶 자체가 우환과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 인류는 일찍부터 우환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주역>은 우환 속에 지어졌다고 한다. 즉 <역>은 근심을 해소하고 환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다.
<맹자>에 따르면 인간은 도척(盜甁)과 순(舜)이라는 두 유형으로 분류된다. 즉 종일토록 어떻게 하면 자기를 이롭게 할까 하는 점을 생각하는 인간과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까 하는 점에 힘쓰는 인간이 그것이며 전자는 도척의 무리, 즉 소인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그것은 모든 일반인의 모습이다.
역을 지은 자에게는 우환이 있었다는 구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첬째는 역을 지은 자 자신이 우환에 처했다는 해석이며 둘째는 일반 서민이 도탄에 빠짐으로써 역을 지은 자가 우환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며 전자의 해석이 더 일반적이다.
왕부지는 역학을 우환에 임하는 자의 도리를 제시한 것으로 본다. 역을 지은 자에게 우환이 있었다는 것은 곧 우환이 있는 자는 누구나 다 <역>을 통해서 그 우환을 극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역을 지은 자의 우환은 은대처럼 제신(祭神)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주어진 일을 더욱 완전하게 성취해 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우환이다. 이를테면 "일을 당해서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잘 도모하여 성취해 내고자 하는" 우환이다. 이런 의미의 우환이 <역>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한편 역을 지은 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우환은 자기 자신의 곤경을 극복하려는 것보다는 일반 서민이 겪는 곤경에 대한 우환이다. 즉 성인이나 대인이 천하 내세에 대하여 갖는 우도(憂道), 우민(憂民)이라고 볼 수 있다.
근심에서 벗어나고 환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덕행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 역을 지은 자가 지닌 탁월한 견해이며, 이는 이후 중국 문화 전통 속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2. 소인의 일조지환(一朝之患과) 군자의 종신지우(終身之憂)
역을 지은 자의 우환은 그 자신의 우환이 동시에 만인에 대한 우환이다. 성인은 실상 자신에 대한 우환은 이미 해소한 자이다. 다만 뒷 사람들이 도를 얻지 못할까 염려할 따름이다. 역을 지은 자는 서민들이 그들의 우환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덕을 닦도록 권고했다. 역을 지은 자의 이러한 견해는 공자의 생각과 비슷하다.
덕을 닦지 못함, 학문을 익히지 못함,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에 옮길 용기가 없음, 잘못인 줄 알면서도 능히 고치지 못함, 이 네 가지가 나의 근심거리이다.
현실적으로 부딪혀오는 숱한 우환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유가의 입장에서 볼 때 덕을 쌓는 일이다. 공자는 네 가지 조항으로 자기의 근심을 말했지만, 요약하면 수덕(修德)과 득도(得道)에 대한 염려이다. 수덕(修德)의 목표는 물론 공자학의 최고 이념인 '인(仁)'이다. 수덕(修德)이 인자(仁者)가되는 데 목적을 둔 것이라 할 때, 그의 근심은 평생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증자도 말했지만 인(仁)의 실현을 자기의 책무로 삼는 자는 그의 생명이 끝나야만 비로서 그 임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군자의 우환은 글자 그대로 평생의 근심이라 할 수 있다. 군자의 우환은 '종신지우(終身之憂)'이지 '일조지환(一朝之患)'이 아니다.
군자의 종신지우(終身之憂)가 순과 같은 성인이 되려 하는데 있다든가 '仁'에 이르는 길을 걷는 것이라면, 일조지환(一朝之患)이란 소인의 근심, 즉 대다수 일반인이 지닌 근심이다. <역전> 및 <논어>에서 말해지는 소인은 패덕한 사람, 이윤의 추구에 혈안이 된 자들이다. 소인의 일조지환(一朝之患)이란 안연과 같은 지사(志士)나 인인(仁人)은 문제삼지 않는 빈천, 궁핍에 관한 근심이다. 이러한 소인의 근심은 비록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욕의 마음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따라서 소인 역시 평생토록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인들의 근심은 역을 지은 자나 역을 배우는 군자에게 우환의 대상이다. 경제 문제를 최대 관심사로 알고 사는 사람들(以食爲天)에게 그 소망을 해결해 주는 것은 군자의 책무에 속한다. 안인(安人), 치인(治人), 안백성(安百姓)은 본질적으로 유가가 표방하는 군자학의 중심 이념이다. 군자와 서민의 우환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서민의 우환이 비록 낮은 차원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방기하거나 비판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들의 요구를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켜 주어야 한다. 경제 문제를 해결한 후에 인간됨을 추구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富之敎之)는 교휸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역>은 음양론이요, 음양은 기이며, 인은 천지와 혼연히 일체가 된 상태이다. 또한 <역>은 신명한 덕으로 천지와 근원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실존적 인간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인 불우(不憂)와 만물에 대한 사랑인 능애(能愛)가 이렇게 이어진다. 역학의 氣, 仁, 愛는 소유라기 보다 존재와 향유의 체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제5장 역학의 인간관 II : 時·位
제 1절 역학과 지시 직무
1. 역을 아는 자와 時·位의 변동
역의 64괘와 384효 및 그 괘효사와 상·상은 64개, 384개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취할 바른 도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을 배우는 군자는 64괘, 384효로 나타나는 구체적 상황 가운데 어느 하나에 처한다. 그런데 그 만나는 시와 처하는 위가 다르므로 거기에 무궁한 변화가 있게 된다. 또한 역의 괘,효,단,상의 의미만 알고 , 그 무쌍한 운용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또한 역이 아니다. <역>은 길흉을 판단하게하여 대업을 이루게 한다. 역을 배우는 군자 또는 대인이 번역하는 시위에서 주체의 창조적 역양을 조화시켜 야만 대업이 가능하다.
"역학의 요체가 시무 의 파악에 있다거나 때에 따라 변하면서 도를 따른다."는 주장은 근거 없이 나온 말은 아니다. <역>의 괘사나 효사 또는 <계사전>을 비롯한 <역전>에서'時' 또는 '時'자와 조합되거나 연관된 용어들을 적지 않게 대할 수 있다. '位' 또한 <역>에서 그 의미를 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 개념이다.
2. 終始를 나타내는 괘와 時物을 나타내는 효
<역>이 시간적 관점에서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은 <계사전> 하에서 알수 있다. 각 효, 즉 6위?에서 시간적 사유가 개입되어 있다. 乾 노 同人, 성,차 등의 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주목할 것은 <역>의 終始 관념이다. <역전>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만물에는 본말이 있고 만사에는 시종이 있다." 라 하고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 고하여 본말론과 더불어 終始 先後를 말하고 있다. 종시적 관념이 '天行', 곧 자연의 법칙을 나타냄은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천도의 운행"인라거 한 데서 알 수 있다.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의하여 시간의식이 성립한다. 줄어들고 늘어나고 차고 기움을 변화라 하는데,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시간 개념이 성립되는 단처는 계절이다. <역>에서도 時가 계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시'는 본래 씨뿌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3. 勢와 理
정자는 시와 함께 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역>에서 말하는 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경우는 곤봉 상혜에서 지무곤이라고 한 것밖에 없다. 그러나 무가 중시됨을 여러 경우를 통하여 알 수 있다.태봉와 불봉에서도 음양 소장의 무를 본다. 주자 역시 이와 세를 대비한다. 태양이 밝지 않은 바 아니지만 구믈에 가리면 그 밝은 지상에 닿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2절 시조가 강조되는 상황
1. 시의를 강조한 괘
①豫 (16번째의 괘이다.): 豫은 안화 열락의 의미를 갖는다.
② ( 은 물러남, 피함, 가 버림을 뜻한다.) 그때와 그 행위가 간는 중대상을 강조했던 것이다.
③始 (始는 만남을 의미한다.) 구괘의 단사는 한편 하늘과 땅에 서로 만남을 상징한다.
④旅 시중의 중요성이 강조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 時用을 강조한 괘
①次: 次는 험한 상황에 빠짐을 뜻한다.
② : 는 서로 어긋나고 흩어지며 사이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규의 때와 쓰임이 크다고 찬양한 것이다.
③한: 한 역시 위험과 장애의 뜻이다. 반신 수덕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3. 시를 강조한 경우
①신 (기른다는 뜻)
②대과 (역시 단사에서 "대과의 때가 중요하다."고 했다.
③해 (모든 일은 ?까지 어려움 속에 있지 않고 풀리게 마련이다.) 어려운 일이 풀릴 때는 지난 날 의 잘못에 대하여 관대하게 다스려야 한다.그래야 인심이 안정된다.용서는 모든 한의 응어리를 풀어 버린다.
④혁 (변혁)
⑤수 (여기서는 '때를 따름'을 예찬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길한 것에 속한다. 단사에서는 천하에 따라야 할 것이 시이기에 수시의 뜻을 찬미한다고 하였다.
이상 12괘의 경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64괘 중에서 시간의 요소가 어느 곳에나 같은 비중으로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경우에 시간의 요소가 강조되며 부여되는 의미 또한 크지만 그 이외 다른 인자나 요소가 더울 강력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제3절 雙通과 利의 극대화
1. 시구와 시중
많은 사람들이 역학의 본령은 시중에 있다고 한다. 만물, 만사에 때가 있음과 이 때에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주역>도처에서 발견된다. 시는 인간에세는 하나의 과제 혹은 예정된 명과도 같다. 어떤 구체적 상황 속의 시에 대한 태도에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있다. 시와 조화를 이룬다면 성공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와 함께한다면 그 일의 성취는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여러 의미의 시가 있다.
① 먼저 때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②자기 나름의 시간, 곧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때가 있다.
③주어지는 때에 대한 응답의 경우도 있다.
<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중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몽봉의 단사이다.
2. 조시, 쌍통, 진리
<주역>은 해위의 결단을 위한 것이요, 인간의 우환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역>에는 경세론이 있다. 시의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가 그 일의 결과를 좌우한다. 이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변통이 요구된다. 변통이란 雙과 通 두 개념이 언결된 것이다. 인간의 일인 변통은 자연의 변통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변통은 역시 사계절의 순환이다. 때를 탄다든가 때에 맞게 한다고 할 때의 내용은 곧 변통의 人事이다. 즉 변통하는 일이 때에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변통과 취시는 떨어질수 없는 관계이다. 변통론은 경세론에 자주 원용된다.
3. 변통의 '때'를 뜻하는 '계'
이의 극대화는 진리의 구현 정의의 실현에는 변통의 '때'를 잘 포착 하여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역의 시상이다. 변통의 때는 '역'에서 '계' 또는 '개'로 표현된다.
변화의 내적인 계기는 마련되어 이미 움직였으나 아닉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계이다. 계에 의하여 일의 방향이 결정된다. 개의 의미 역시 계와 비슷하다.
제4절 정위와 수위
1.군자의 안위와 신명
구체적 행위의 성패를 좌우하는 때의 중요성 못지않게 강조되는 요인이 지위이다. 일의 길흉을 미리 판단하여 이에 대비하거나 적당한 시기에 변통을 가함으로써 대업을 이루려 하는 것이 <역>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위'도 '시'처럼 하나의 명으로 생각하였다.
"시의 경우 각각의 때에는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이 주어졌듯이 위의 경우에도 각기 고유한 임무가 있다. 따라서 그 자리가 요구하는 능력, 그일에 필요한 힘, 그 자리에서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2. 바른 자리와 바르지 못한 자리
가인괘이므로 사회적 위치, 즉 군신상하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으나 그내용이 논어의 정명사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음을 알수 있다. 바른 자리 즉 자기?에게 부과된 소임에 충실하는 것은 곧 명을 다 완수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비록 부당한 자리이지만 뉘우침에 따라 흉을 면하고 허물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부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 그것이 주는 괴로움은 너무 크다. 그래서 역을 지은 자는 주어지는 위치를 넘어서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3. 겸허와 지위의 보존
역은 정위 당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지위를 지키는 방법 또한 강조한다. 때를 기다리던 자가 때가 왔을 때는 이를 활용하여야 하듯, 지위가 주어지면 역할을 수행하며 지위를 일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역이 제시하는 지위 유지의 방법은 겸허의 덕이다.
제 6 장 역학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제1절 자연·인간 관계의 세 가지 유형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동북아의 철학 사상은 자연, 인간, 그리고 문화적 성취라는 세 가지 과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가나과 인간 사이의 화해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화해를 중시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탐구하여 실천에 주력한 데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첫째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속, 둘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셋째 자연과 인간의 화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며 자연의 일부를 이룬다. 자연의 이법은 인가나을 지배한다. 자연사는 그대로 인간사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의해서 제약당한다든가 자연의 개념이 인간에 의해서 제약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인간의 역사는 자연 및 자연의 사건으로부터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을 자연에 동화. 예속시키려 했던 경우를 우리는 道家에서 볼 수 있다. 노자는 "이미 그 어머니를 아니 그 자식을 안다. 그 자식을 알고는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킨다(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대자연 즉 道요, 자식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라 할 수 있다. 道를 통해서 만물을 알고 만물을 안 다음에 결코 道, 즉 대자연을 망각하지 않아야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 노자의 교훈이다.
장자는 자연과 인간의 분별에 더욱 깊은 관심을 지니고 이를 명확히 인식했던 인물이다. 자연과 인간의 차이 그리고 그 분별에 대한 추구는 '知天', '知人' 으로 전개되었다. 인간이 지니는 지식의 불확실성을 제기하여 우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나 眞人은 眞知를 지닐 수 있다라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는 진인이란 "마음으로 도를 손상하지 않고 인위로써 자연을 조장하지 않는" (不以心損傷 不以人助天) 사람이다. 자연과의 화해는 天樂이라 하고 인간과의 화해는 人樂이라하며 자연의 덕을 알아 그와 화해할 수 있어야 천하를 고루 화해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장자의 사상은 인간을 자연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자를 비판하고 나선 인물은 유가의 순자이다. 그는 인간이 천지의 위대성을 찬양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고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자연에 대한 어떤 주의 주장도 반드시 인간에 의하여 증험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견해이다.
장자와 순자로 대표되는 선진 시대의 '知天'(자연주의), '知人'(인문주의)의 두 경향은 한대에 이르러 절충되고 지양된다.
제 2 절 자연과 인위의 화해
1. 자연성의 보존과 문명 비판
인간은 자기의 본능과 본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확인되거나 그것이 기존의 제도, 관습, 이념과 상충됨을 알고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유가나 도가가 모두 인간의 천연성, 즉 본연의 상태를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것의 완전한 구현과 유지를 위하여 노력한다. 도가에서 '知人'이라 했을 때의 '人' 은 인간이라기보다 인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의 인위는 일체의 문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거부되고 부정된다. 그러나 유가에서 '知人'이라 할 때의 '人'은 인위라기 보다는 인간, 인간성 또는 인간의 본연성이다. 도가가 부정하는 인위는 대체로 개념화, 이념화, 그리고 機器의 이용이라 할 수 있다.
2. 자연성을 구현하는 <주역>의 문화관
<주역>은 인간의 자연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의 구현을 강조한다.
"도를 이어가는 것이 선이요 도를 완성하는 것이 성이다"는 말이 그것이다. 또한 노자나 장자처럼 '개념화'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一陰一陽의 도를 사람에 따라 '仁'이라고도 하고 '知'라고도 한다. 또 이를 무엇이라고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개념 규정을 하되 결코 절대화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주역>은 기기에 의한 이요과 후생을 강조한다. 기기에 대한 긍정은 <역>의 네 가지 용도 가운데 하나로 "문명의 이기를 만들려는 자는 괘효의 사아을 중시한다" (以制器者 尙其象)는 말을 하고 있는 것과, <계사전>에서 확인된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그럼으로써 후생을 도모하되 대자연의 근원적 생명력을 손상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유가적 자연관의 한 특징이다.
제 3 절 개체와 전체 사이의 화해
1. 자연을 이해하는 두 가지 시각
서구의 경우 근세 이후 과학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법칙의 탐구라고 생각되었다. 17세기 데카르트 이후, 물질은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인간의 정신, 인식의 주체와는 별개로 다루어졌고 뉴턴의 물리학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또는 제각기 다른 객체의 군집으로 보게 하였다. 데카르트와 뉴턴에 의하여 구축된 자연관은 19세기말까지 서구의 거의 모든 사고의 기초가 되었다. 근세 이후 자연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면서 자연을 이용하고 정보하는 대상으로 보아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역>의 경우 자연은 우선 그 충만한 생기를 특성으로 들 수 있다.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광대한 영역에 걸쳐 만물을 생성한다. "낳고 또 낳음을 일러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 "천지가 지닌 큰 덕은 곧 생명력이다"(天地之大德曰生)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은 광대한 생명의 흐름이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사는 인간이야말로 이 대생명의 과정에 참여하여 화육하는 이른바 공동의 창조자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은 대립자가 아니다, 양자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2. 개별성과 전일성
감각에 비치는 모든 사물과 사건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 실재(太極)의 서로 다른 양상 또는 현시에 지나지 않는다. <맹자> <중용>에서의 '知天'이나 <주역>에서의 '至命'은 여러 이치의 종국적 유래에 대한 탐구이며 이는 곧 태극에 관한 탐구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은원성, 전체성 유기적 통일성에 대한 추구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萬有一太極 萬有名有太極'이다.
제 4 절 천. 지. 인 3才 가운데 하나인 인간
1. '역도'와 자연. 인간
역학은 天. 地. 人 3재론이다. <역>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논하며 그 논의의 결과를 易理, 易道로 나타낸 것이다 3재라 하지만 단순히 천. 지. 인을 의미하지 않고 각가의 至理를 3재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3才를 3極이라고도 한다. 3極은 3才가 가기 하나의 태극임을 의미한다. 천도의 음양론, 지도의 가유론, 인도의 인의론을 통하여 구명된 이치를 우리는 태극이라 한다. 사물에 있어서는 理로, 인간에 있어서는 性으로, 하늘에 있어서는 道 또는 命으로 나타난다. <역>이 3재, 3극론이라는 것은 곧 음양 인의로니을 통하여 理, 性, 命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3재라 하더라도 천과 지는 하나로 묶여 자연을 의미한다. 3재론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 정리된다.
<주역>은 인간과 자연의 일체화 또는 화해의 방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역도이다. 역도가 천지와 齊準하는 까닭은 역을 지은 근거가 천문과 지리의 관찰, 近取諸身 遠取諸物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도는 6合에 周流하고 變動不居한다. 여기서 궁리의 조항으로 제시한 것은 知幽明之故, 知死生之說, 知鬼神之情狀이다. 이는 모두 음양론에 수렴되고 다시 태극론에 귀착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천지, 타인, 만물의 관계를 살펴보면 인간을 중심으로 하늘과 타인과 만물의 관계가 구별될 수밖에 없다. 즉 인간과 천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성명의 理를 따름이 될 것이다. 탐구의 관점에서는 窮理, 盡性, 至命이라 했지만 행위의 관점에서는 이 세 가지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덕목이 敬天, 愛人, 利物로 나타난다.
2. 3才 가운데 하나인 인간의 의의
3재 가운데 하나인 인간은 천지의 화육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천지의 덕을 몸에 지니고 있으며, 시니명의 힘을 지녀 일체의 형체적 제약을 극복한다. 그러나 덕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의 모습에서 樂天知命과 安土敦仁에 의한 不憂와 能愛가 그것이다. '지명'이 "명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믿고 받아들임"이며, 거기서 주어진 처지를 편안히 여길 수 있는 힘과 남을 도탑게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와 우주 안의 일체만물을 사랑 할 수 있게 된다. 자기의 본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자는 그 영향력이 타인과 만물에까지 확충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천지의 화육을 돕게 되며 (可以贊天地之化育), 이때 비로서 천지와 나란히 3재가 된다고 하였다.
수덕, 진덕, 궁리, 진성의 공효가 깊어지고 확추이되리수록 그 나타나는 사업(덕화)의 크기에 따라 자기의 존재 의의가 규정될 것이다.
참고자료 : "주역의 이해" (곽신환 著 서광사 刊 1990)
易學의 기초
1) 易
① 역은 우주와 함께 대자연속으로 생성사장(生盛死藏)의 원리가 담긴 학문이다. 바뀐다(change) 변화한다. 형상을 나타낸다.
② 역은 日과 月로 구분하며 陰陽變化를 의미한다. 陰陽調和에 따라 우주 삼라만상의 생장성쇠(生長盛衰)와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변화를 체계화한 학문.
③ 대자연의 섭리와 그 오묘한 이치를 관측 연구하는 형이상학적 학문,易理 : 역의 근본원리 易象 : 易理上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形(눈에 보이는 부분)象(눈에 안 보이는 부분)
④ 역의 대원칙 : 모든 것은 변한다.
⑤ 日(도마뱀 머리) + 勿(몸체) : 도마뱀은 하루에 열 두 번 색깔이 변함 (十二時蟲) .
⑥ 원래 占書였던 것이 → 義理로써 풀이 → 哲學, 修養書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⑦ 형이상학적이고 실천 도덕적인 해석으로 우주관과 인생관이 밝혀진 철학 → 삶의 지침 → 修養에 필요.
⑧ 사마천(司馬遷)의 『史記』「孔子世家」- 공자가 만년(晩年)에 易을 읽느라고 위편(韋編)이 삼절(三絶)했다는 기록이 있음.
⑨ 주역은 운명을 다루는데 근본적 원리는 운명에 얽매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운명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척시킬 수 있다.
⑩ 팔괘와 음양 二元의 조화로써 천지현상과 인간관계의 온갖 이법을 규명한 책.
⑪ 주역은 천문과 지리를 살펴 천지자연의 법칙을 알아내고 그것을 인간에 옮겨 생각한것. 法象은 莫大平天地. 變通은 莫大平四時 縣象著明은 莫大平日月 - 繫辭上 10章
⑫ 천지자연과 인생의 도가 포함되어 있으니, 천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생활에 실천한다면 , 인간의 생성변화, 발전, 길흉화복, 흥망성쇠 등이 천지자연의 도에 합치한다.
⑬ 주역은 三經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책이다.
◎ 易의 종류
(夏代) 連山易 : 염제신농씨(BC 3218∼ 3078)때사용 , 艮卦를 首位로 삼음. (세상이 모두 산으로 連했다는 뜻)
(殷代) 歸藏易 : 황제 헌원씨(B.C.2692~2592)때사용, 문자가 만들어지고 일월성진의 운행을 측정하는 천문학과 수리학이 크게 발달.
坤卦를 首位로 삼음 (만물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는 뜻)
(周代) 周易 : 주나라 文王이 규장(奎章)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괘상을 만들었다. 64괘를 만듦. 乾卦를 首卦로 함.
(우주만물이 하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
(朝鮮時代) 正易 : 조선시대 連山땅에서 金一夫 선생이 만듦. 자연변화의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음.
계절과 기후의 변동 내용까지 자세히 밝혀놓고 있다.
◎ 易의 세 가지 뜻
變易 : 우주간의 현상과 사회의 모든 일은 한없이 변화하여 쉬지 않고 움직인다.
不易 : 이 변화는 변화하는 가운데에 일정불변의 질서적 정연한 이치가 있다.
簡易 : 동시에 이 理法은 간이하고도 명백하다.
♣ 五行<五行 : 運動原質, 運(생명력 있는 象)>
木氣 : 잠복한 일양이 탈출 및 용출하려는 작용 /生, 湧出, 勇力 /土의 인력에 끌리지 않고 도리어 木剋土하여 土를 영양으로 발전
火氣 : 분산 및 발산
土氣 : 도는 무제한적인 성장이나 수축을 허용치 않음. 五行은 만물을 입체적으로 조명. 그 중심이 土. 金火相爭을 막아줌.중재하여 生하게 함.
金氣 : 잠복(潛伏)하려는 수장(收藏)의 최초단계.
水氣 : 통일과업(統一課業)을 완수(完遂)케 함. 새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陽을 완전히 수장(收藏). 얼음 덩어리. 火가 없는 水는 土의 인력(引力)에 의해 얼어붙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