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의 영지 기행_08

醉月 2012. 9. 5. 08:32

기운 뭉치고 기운 감싸는 勝景터 괴산 環碧亭

달 감상하기에 기막힌 곳… 상류가 바로 화양구곡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산을 가장 좋아한 문파는? 정답은 도가(道家)이다. 법가, 소설가, 종횡가, 음양가 등의 문파들은 그렇게 산을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들은 도시를 좋아하고 문명을 좋아했다. 그러나 도가는 달랐다. 주로 산에서 밥 먹고, 집 지어놓고 놀았다. 산에서 생각을 다듬고, 산에서 사상을 만들어 냈고,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경물중생’(輕物重生)의 인생관을 가졌다. ‘돈과 권력 좇는다고 건강, 시간, 목숨까지 바치는 삶보다는 유유자적하면서 내 인생을 평화롭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인생관이 경물중생의 인생관이다. 그러므로 도가는 ‘산팔자’(山八字)였던 것이다.

 

한자문화권의 이름 높은 도관(道觀)들은 한결같이 그 풍광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들이다. 한국의 경우는 무슨 무슨 ‘동천’(洞天)이라는 지명이 있는 곳들이 도가에서 연유된 이름들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10대 동천(洞天), 36소동천(小洞天), 72복지(福地)가 있다. 한결같이 저녁노을과 운무가 끼어 있는 풍광 좋은 명산에 자리 잡은 명당들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는 사회적 욕구와 자연적 욕구가 있는데, 도가는 사회적 욕구를 포기하고, 자연과 가까이 하고, 자연 속에서 만족을 얻는 자연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다 갔다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사회적 욕구와 자연적 욕구,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택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을 택하겠다는 결단의 소유자들이 바로 도가였던 셈이다. 천하의 명산대천은 도가의 소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괴산 환벽정에서 주변을 감싸고 있는 괴산호를 내려다본 전경은 한눈에 봐도 장관이다.
필자도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지은 ‘휴휴산방(休休山房)’에서 살아보니까, 밤문화를 알게 되었다. 낮보다는 밤에 뜨는 달이 좋아졌다. 음력 14·15·16일은 둥근 달이 뜬다. 밤에 산속에 앉아서 앞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는 것은 행복이다. 행복이 다른 게 아니다. 산에서 보름달 보는 것이 행복이다.

 

보름달을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충만해지고 포근해지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요점이 정리되었다. 우선 달을 보면 ‘해 놓은 것도 없이, 놀아 보지도 못하고 어느덧 나이만 먹게 되었다’는 허무감이 줄어든다. ‘아니다. 그래도 인생 살아볼 만한 것이다’는 느낌이 들어온다. 중년의 허무감, 이거 그냥 놔두면 우울증으로 가는데, 밤에 동산 위에 천천히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는 것 만한 치유가 없다. 보름달이 주는 그 환한 불빛이 좋다. 낮에 뜨는 태양은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지만, 달이 주는 그 은은한 밝음은 그대로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 달빛이 돌아오지 않는 세월을 무이자로(?) 보상해 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도 중년이 되면 달을 숭배했다. 나이가 들어야만 달을 알 수 있다. 농월정(弄月亭), 요월정(邀月亭), 해월정(海月亭)의 정자 이름들이 그걸 말해 준다. 달을 보는 포인트들이다. 달을 보면 낮 무대가 끝나니까 밤무대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철리(哲理)를 어렴풋이 느낀다.

 

필자가 ‘환벽정’ 이름 지어

 

충북 괴산에 있는 ‘환벽정’(環碧亭)은 달을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춘 명소이다. 환벽정은 2011년에 괴산군수가 독지가의 협조를 받아 새로 지은 정자인데, 그 위치를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다. 정자 주변을 괴산호(槐山湖)가 둘러싸고 있다. 괴산호의 물이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각도가 180도가 넘는다. 250도 정도의 각도라고나 할까. 정자를 거의 푸른 물의 호수가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필자가 정자 이름을 푸를 ‘벽’(碧)자를 써서 환벽정이라고 지었다. 푸르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둘러쌌다는 것은 정자에 앉아 있는 주인공이 푸르름 속에 파묻혀 있다는 말이다. 대자연의 색은 어떤 색인가, 바로 푸른색이다. 지금의 블루(Blue)가 아니다. 연두색보다는 진하고, 녹색보다는 약간 연한 색이 벽색(碧色)이다.

 

색(色)도 중요하다. 색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푸르름은 대자연의 생명력과 싱싱함, 그리고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다. 도가는 이 푸른색을 선호했다. 청자빛이라는 게 원래 신선들이 지향하는 선계(仙界)의 색을 나타낸 것이다. 환벽정에 앉아 있으면 호수의 물도 푸르고 주변을 둘러싼 산들도 푸르다. 온통 푸르다. 거기에 금상첨화인 것이 보름밤에 달이 뜨면 그 달이 괴산호수의 물에 비친다는 점이다. 달은 물속에 비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산 위로 떠오른 달이 1단계라면, 2단계는 그 달이 잔잔한 물속에 들어갈 때다.

▲ 원래 절벽 위 연 날리는 자리에 2011년 괴산군에서 산막이옛길을 조성하면서 환벽정이란 정자를 새로 지었다.
물도 여러 가지다. 바닷물, 강물, 호수의 물이 있다. 바다에 비추는 해월은 부산의 동백섬에서 본 적이 있다. 붉은 기운을 띤 쟁반 같은 커다란 보름달이 동백섬 건너편의 달맞이 고개 쪽의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시간이 멎어버린 듯한 태고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장엄한 광경은 시간이 정지한 정적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닷물에 뜨는 달은 스케일이 크다.

 

그 다음에는 강물이다. 중국 양자강을 여행하다가, 강변의 찻집에서 보름달을 본 적 있다. 강물에 비추는 달은 인간의 역사와 사연을 담고 있다. 순탄하면서도 서정적인 달이 아니라, 풍파와 흥망성쇠를 모두 담고 흘러가는 강물과 궁합이 맞는 달인 것이다.

 

가장 서정적이면서 인간 내면을 비추는 달은 바로 호수의 달이다. 호수의 달은 바다의 달과 강물의 달과 다른 고요함이 있다. 치유는 고요함에서 온다. 고요할 수 있느냐가 심리적 안정감의 기본인데, 이 자연이 주는 안정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광경이 호수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는 것이다. 깊은 고요함을 맛본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 내포되어 있는 숨은 의미를 감지한다. 우리나라 역대 곡(曲) 가운데 최고의 곡(曲)이 ‘월인천강지곡’이고, 달의 빛이 일천 강에 동시에 비추는 모습을 볼 때 거기에서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달을 보면서 인간은 깨닫는다. 일즉다(一卽多)와 다즉일(多卽一)의 이치를. 그리고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어슴푸레 맛볼 수 있다. 이 세상에 왔으면 이러한 이치들을 맛보기로라도 한 번 맛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이치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괴산의 환벽정이다. 그렇다면 이 환벽정은 영지(靈地)임에 틀림없다. 중년이 되면 어지간한 경치 좋은 곳은 가 본다. 경치 좋다는 선에서 끝나면 무엇인가 아쉽다. 거기에서 어떤 삶의 깨달음을 얻어야 깊은 여행이 된다.

▲ 환벽정에서 내려다본 괴산호의 설경. 사진 C영상미디어
바위 절벽 위에 있는 원래 연 날리는 자리

 

환벽정은 바위 절벽 위에 있다. 기운이 뭉쳐 있는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큰 바위가 놓여 있고, 이러한 바위들이 반도처럼 약간 돌출되어 있으면 풍수적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고 판단한다. 원래 이 자리는 ‘연천대’(鳶天臺)라는 자리였다. 하늘에 연(鳶)을 날리는 자리라는 의미다. 앞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환벽정 좌측으로는 군자산(君子山)이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군자산을 바라보면 삼각형 모양의 문필봉(文筆峰)으로 보인다. 그 지역에 문필봉이 포진하고 있어야만, 인재가 나온다. 인재는 덕이 높은 학자를 가리킨다. 학자가 나와야 인물이 나온 것이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지만, 한 번 학자가 나오면 수백 년간 그 명성이 전해진다. 퇴계나 율곡은 그 이름이 5백 년간 이어지지 않는가! 군자산은 학식 높은 군자가 나올 법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환벽정의 정면 앞으로는 병풍처럼 여러 개의 자그마한 봉우리가 일렬로 포진해 있다. 옥녀봉(玉女峰)이라는 봉우리다. 이 옥녀봉이 좋다. 환벽정의 정면을 적당한 높이로 막아주는 안산(案山)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앞에 막아주는 안산이 존재해야만 기운이 밖으로 빠지지 않고 그 터를 감싸게 된다. 이 옥녀봉은 적당한 높이다. 너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 정자에 섰을 때 가슴에서 눈높이 정도의 높이가 가장 이상적이다. 옥녀봉의 전체 모습도 궁궐에 걸려 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 나오는 형태와 비슷하다. 해와 달이 있고, 수화목금토의 다섯 개 봉우리를 압축시켜 그린 그림이 일월오봉도인데, 천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옥녀봉은 이 일월오봉도의 ‘오봉’ 형태를 연상시킨다. 필자처럼 풍수 마니아가 볼 때는 이 점이 아주 좋게 보인다. 옛날 연천대에서 놀던 우리 조상들도 이 옥녀봉을 바라보고 틀림없이 필자와 같은 감회를 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500년 전 조상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전망을 보면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분야가 풍수인 것이다.

▲ 괴산호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산막이옛길은 많은 사람들이 걷기코스로 즐겨 찾는 곳이다.
환벽정을 지은 괴산 군수에게 이 연천대 터에 대해 어떤 예지몽이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괴산호를 도는 ‘산막이길’을 완성하고 보니, 이 연천대 지점에 정자를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공사착공을 결심할 무렵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서너 명 나타나 “이 놈아 여기는 우리가 노는 놀이터인데, 네가 꼭 정자를 지어서 방해하려고 하느냐?”고 나무라기에, “여기에 정자를 지어야 군민들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고 대답하면서 꿈을 깨었다고 한다. 이런 꿈 이야기를 군수에게 직접 들은 필자는 또 한 가지 사례를 추가한 셈이다. 이런 영지는 반드시 꿈이 있다는 사실이다.

 

연천대 자리는 과거부터 여러 대감들이나 도인들이 경치를 감상하고 바둑도 두며 풍류를 즐기던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 자리를 인간이 정자를 지어서 훼손하려 하니까, 공사 책임자인 군수 꿈에 나타났고, 이 정자를 지은 목적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였다면 군수가 혼이 나겠지만, 공적인 목적이라면 면책사유가 된다. 영지에 함부로 공사를 해서 혼쭐난 사례도 여러 번 보았지만, 괴산군수처럼 군민 먹여 살리려고 지었다는데 조상 혼령들도 어떻게 하겠는가!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이 있으면 신명계(神明界)도 봐주는 것이다.

 

구곡은 조선 선비의 유토피아

 

환벽정이 들어선 일대의 계곡은 조선시대에도 알아주던 승경(勝景)이었다. 연천대 일대는 조선시대 ‘연하구곡’(煙霞九曲)이 있던 자리다. 1957년에 댐이 들어서면서 계곡을 막아 괴산호가 되었지만, 원래 호수 입구인 괴산군 칠성면에서부터 상류인 청천면 화양리에 이르는 30리 길이의 계곡은 조선시대에 여러 개의 구곡(九曲)이 집중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니고 있었다. 갈은구곡(葛隱九曲), 고산구곡(孤山九曲), 쌍계구곡(雙溪九曲), 선유구곡(仙遊九曲), 연하구곡(煙霞九曲), 풍계구곡(豊溪九曲), 그리고 우암 송시열이 정치적 풍파를 겪을 때마다 한발 물러나 마음의 때를 씻고 휴식을 취했던 화양구곡(華陽九曲)이 그것이다.

▲ 산막이옛길에 있는 전망대인 망세루.
‘구곡’(九曲)은 조선선비의 유토피아였다. 세상사와 뜻이 안 맞아 상처를 받으면 이 심산유곡에 있는 구곡으로 들어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구곡문화가 주로 조선시대 당파 중에서 기호학파(畿湖學派)인 노론(老論)들 사이에서 전승되어온 문화라는 점이다.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환벽정 상류에 화양구곡을 조성해 놓고, 그 바위절벽 위에 암서재(巖棲齋)라는 수양공간을 지어 놓은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영남학파의 남인들에게서는 잘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 구곡문화이다. 조선 후기 300년을 거의 집권했던 노론은 명산대천을 찾아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깊은 산 속의 계곡 일부를 구곡(九曲)으로 조성해 놓고, 이 구곡에서 기운도 받고, 인생의 시름도 달래고,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인생관을 구축한 것이다. 영남학파의 남인들은 정권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므로 이처럼 스케일 큰 구곡을 조성할 여력이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실용을 추구하자는 것이 남인들의 인생관이었다면, 노론은 명산대천을 유람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고나 할까. 구곡은 그 노론의 취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적이다. 괴산의 칠성면과 화양면 일대의 계곡은 조선 노론의 구곡문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지난달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전통춤의 명인과 색소폰 연주가, 노래 잘 부르는 가객(歌客)들과 함께 환벽정에서 달을 보며 자정까지 놀았다. 태양보다 달이 더 좋아진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다.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산속 정자에 앉아, 호수에 비치는 보름달을 보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상산(陸象山) 생애와 사상  (0) 2012.09.11
주역의 이해   (0) 2012.09.10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_02  (0) 2012.09.01
이기동 교수의 新經筵_05  (0) 2012.08.28
조용헌의 周遊天下_04  (0) 201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