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의 영지 기행_09

醉月 2012. 9. 17. 08:34

한국 산신 신앙의 메카 설악산 봉정암

설악 기운의 정수(精髓)에 해당… 해발도 높아 천기(天氣) 호흡하는 느낌 들어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사람은 이때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선택이 갈린다. 한쪽은 자살하고, 다른 한쪽은 기도(祈禱)를 시도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지니는 독특한 깊이가 있다. 문제는 어떤 장소에서 기도를 하느냐이다. 장소에 따라 기도발(祈禱發)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리고 영험한 장소의 결합 정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발 잘 받는 영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삶의 지혜다.

우리나라 한민족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세 가지 종류의 기도노선이 있었다. 그 세 가지 노선은 산신(山神)기도, 용왕(龍王)기도, 칠성(七星)기도였다. 나는 한민족의 기도발 3대 원형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삼신(三神)신앙이다. 이 삼신 신앙의 한참 선배가 도깨비와 민화를 연구한 고(故) 조자용 선생인데, <삼신민고>(三神民考)라는 책을 내면서 우리 민족의 ‘삼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당신의 관점을 피력한 바 있다.

산신, 용왕, 칠성은 한민족의 3대 종교적 원형이다. 한민족은 수천 년간 삶의 덫에 걸리면 여기에 대고 빌었다. 수천 년간 그 신앙이 이어져 온 것은 영험이 있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사람의 기질에 따라, 그리고 그 기도자의 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산신기도가 효험이 있을 수 있고, 용왕이나, 칠성이 더 영험을 지닐 수 있다.


▲ 봉정암 주변은 엄청난 골산으로 이뤄져 강력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 인제군청 제공

필자의 어머니는 평생 새벽마다 부엌에서 대접에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칠성기도를 드렸다. 칠성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기도를 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해, ‘과연 저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가?’, 마지막에는 ‘인간이 저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북두칠성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시계이다. 우주의 시계가 북두칠성으로 생각했다. 북두칠성은 매일 시간대마다 6번째와 7번째 별의 방향이 바뀐다. 시계바늘처럼 회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밤 10시쯤 하늘에 걸린 ‘두병’(斗柄,북두칠성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표현)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대강 ‘몇 시쯤 되겠구나’를 짐작했다.

칠성을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의 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사람, 시간이 다 된 사람은 이 칠성신에게 빌었다. ‘나에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시간을 늘려주십시오’라는 부탁이었다. 즉 수명이 짧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칠성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군대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칠성판(七星板) 위에 누인다. 마지막 죽을 때는 칠성판에 눕게 되는 셈이다.

산신·용왕·칠성은 한민족 3대 기도 원형

왜 칠성판인가? 북두칠성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이다. 이제 시계태엽이 다 풀어졌으니 북두칠성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태엽을 감고 인간세계에 돌아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어디로 가셨다는 뜻인가?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존재의 시간은 칠성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시간이 끝나면 처음 출발했던 장소인 칠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으리라 본다.

▲ 봉정암에서 기도객들이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찰에 있는 칠성각(七星閣)은 이 칠성기도를 드리는 장소였다. 자식이 무병장수해서 명 길어지라고 어머니들이 드렸던 기도가 칠성기도이다. 용왕기도는 바다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배를 타고 바다에 많이 나갔던 어부나, 무역상인,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海軍)이 주로 드렸던 기도가 용왕기도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 용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나중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 토속적인 용왕기도는 해수관음(海水觀音) 기도로 변했다. 불교에서 용왕을 포섭한 셈이다.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바다의 꿈틀거리는 커다란 용의 등에 올라타 서 있는 모습의 그림이 해수관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동해안에는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에는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안에는 남해도의 보리암, 여수의 향일암 같은 곳이 한국의 대표적인 관음기도 성지에 해당한다. 그 관음기도의 밑바닥에는 수천 년 동안 한민족에 면면히 내려왔던 용왕기도가 깔려 있다. 용왕은 무엇인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기(水氣)이다. 수기가 인체에 들어오면 미묘한 작용을 일으킨다. 미묘한 작용이란 무엇이겠는가. 종교적 영험으로 귀결된다. 칠성, 용왕보다 더 한민족에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이 산신기도이다. 한민족의 무의식 저 밑바닥에는 산신신앙이 각인되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이 산신신앙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단군(檀君)이 바로 산신이다. 고대 상고사를 보면 역대 단군들은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

설악산 봉정암은 한국 산신 신앙의 메카이다.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봉정암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도처이다. 전국에 수많은 산신 기도처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첫손가락에 꼽는 기도도량이다. 물론 지금은 불교신앙의 성지로 바뀌었지만, 원래 밑바닥에는 토속적인 산신 신앙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속신앙은 불교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 종교적 영성의 가장 밑바탕에는 한민족 고유의 산신이 자리 잡고 있다. 종교는 시대에 따라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본다. 옷만 갈아입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산신이면 어떻고, 하느님이면 어떻고, 부처면 어떻고, 여호와면 어떻고, 알라신이면 어떤가. 이름 따라 뭐가 달라지는 것인가? 문제는 바위에 있다. 바위에서 영험이 나오고, 영험 때문에 여러 이름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종교적 영성의 비밀은 바위에서 제조되는 것이다.

▲ 봉정암 5층 석탑 앞에서 기도객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봉정암은 내설악 최고의 기암괴석군이라 할 수 있는 용아장성(龍牙長城)의 바위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용 이빨같이 날카로운 바위군(群)에 있다. 해발 1,244m에 이른다. 굉장히 높은 위치라 여름에도 시원하다. 겨울에는 엄청 춥다. 설악산이 어떤 산인가. 5월에도 설화(雪花)가 피는 산이다. 적어도 1년에 6개월 이상 눈이 덮여 있는 산이 설악산이다. 그래서 이름도 눈 설(雪)자가 들어간다.

홍련암·보문사·보리암은 용왕기도처가 변해

봉정암은 설악산 기운의 정수(精髓)에 해당한다. 먹을 것도 귀하고, 땔감도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접근하기 힘들었던 기도터가 봉정암이었다. 일반인은 쉽게 올 수 없었고, 올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소수의 승려들과, 약초 캐던 심마니들이나 올 수 있었던 암자였다. 1년에 반절은 눈이 쌓여 있어서 오기 어려웠던 것이다. 먹을 것도 없고 말이다. 접근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신성한 도량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성지는 아무래도 접근하기 어렵다는 데서 오는 신성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다가 산 전체가 거의 바위산이다. 엄청난 골산(骨山)에 해당한다. 골산은 뼈만 있다는 뜻 아닌가. 살이 없는 것이다.

살이 많은 육산의 전형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육덕이 좋은, 살집이 많이 붙어 있는 넉넉한 산이라면, 골산인 설악산은 뼈만 있는 강건한 산이다. 성질 날카로운 사람은 일단 지리산에 가서 노기(怒氣)를 풀어야 한다. 노기를 풀어내려면 최소한 3년은 그 산에 살아보아야 한다. 반대로 세상살이 하느라고 기가 빠져 배터리가 방전된 사람은 설악산에 먼저 가서 살아보는 게 효과가 빠르다. 온통 바위산인 설악에서 살다 보면 천지가 다 기운이다.
높이도 중요하다. 1,000m가 넘는 해발의 기도터는 초심자가 오래 머물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초심자는 해발 500m 미만의 위치에 거주하는 것이 무난하다. 고단자가 되어야만 800m 이상의 고지대에 머무를 수 있다. 800m 이상 되면 우선 지상과의 온도 차이가 5~6℃의 차이가 있고, 기압도 다르고 산소 함유량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고단자는 몸의 경락이 한 군데도 막혀 있지 않고 거의 열려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기압차이나, 온도 차이에도 크게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순환이 잘 되므로 심장의 기능도 우수하다. 그래서 800m 이상에 살아도 부담이 없고, 고지대에 살수록 하늘의 천기(天氣)를 호흡하는 데에 유리해진다.

봉정암이 해발 1,244m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여러 가지이다. 기압이나 온도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암자인 것이다. 고승이나 도사들을 보면 공부가 높아질수록 머무르는 암자도 해발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도인이 해발이 높은 데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뭐가 있어도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봉정암은 고단자가 머무를 수 있으면 좋은 터이다. 봉황의 정수리라는 봉정(鳳頂) 아닌가.

▲ 내설악 최고의 기암괴석군인 용아장성의 바위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봉정암은 설악산 기운의 정수에 해당한다.

필자도 2006년 무렵 건강이 좋지 않아서 봉정암에 1주일 정도 머무르며 기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봉정암에 있어 보니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쩔쩔 끓는 느낌을 주었다. 강력한 지자기(地磁氣)의 체험이었다. 하루는 암자의 주지스님이 배려해 주셔서 주지스님 처소에서 자 본 적이 있었는데, 약간 과장하면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운이 강하게 들어왔다. 잠을 잘 때에 머리를 어떤 방향에 두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다. 머리는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는 쪽을 향해야 한다. 바위 절벽 쪽이 기운이 들어오는 방향이다. 기운은 일단 머리부터 먼저 들어와서 발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필자처럼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하는 직업은 바위가 많은 곳에서 1주일에 하루는 자야 한다. 그래야 충전된다. 뇌세포를 혹사하는 직업들은 바위산에서 정기적으로 숙박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위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뇌세포를 활성화시켜 준다.

평일에도 하루 천여 명 이상 기도객 몰려

봉정암은 그 터도 대단한 자기장(磁氣場)이 형성된 볼텍스(vortex)이지만, 봉정암까지 올라오는 길도 굉장히 파워풀하다. 백담사에서 출발해 봉정암까지 오는 등산로는 통상 6시간 정도 걸린다. 이 6시간의 산길이 참 묘하다. 거의 계곡을 끼고 올라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끼고 올라오다 보면 계곡에서 흐르는 물의 수기를 받을 수 있다. 바위의 화기와 계곡물의 수기가 합쳐지면서 그동안 쌓여 있었던 탁기를 배출시키는 작용을 한다. 물로 씻어내고, 불로 충전시킨다. 물과 불이 모두 필요하다. 인간의 건강은 결국 파고 들어가면 물과 불의 문제이다. 6시간의 계곡 산행길은 물대포와 불대포를 모두 맞을 수 있는 천혜의 힐링로드인 셈이다. 수화쌍포(水火雙砲)가 설치된 곳이 또한 영지이다.

봉정암은 평일에도 1,000명 이상씩 기도객이 몰려드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도터이다. 조그만 암자에 주말이면 수천 명이 몰려드니까 어디 발 디딜 틈도 없다. 방 하나에 수십 명이 자야 되는 상황이므로 무릎을 세운 채로 칼잠을 잔다. 먹고 씻는 것도 불편하다. 식사는 미역국 한 그릇에 밥 한 공기이다. 이것이 ‘봉정암 정식’이다. 수천 명을 동시에 먹이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도 기도객들이 몰려와서 한 숨도 안 자고 법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까닭은 영험 때문이다. 영발 앞에서 가방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발’ 중에는 영발이 최고이다. 영발이 있으니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6~7시간을 올라가서 기도 드리는 것 아니겠는가. 자기 앞에 떨어진 불똥은 끄고 봐야 한다. 자기 인생에 절벽이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봉정암에서 3일만 죽기 살기로 한번 기도해 보기를 권한다. 한국 산신기도의 수천 년 전통이 어려 있는 영지가 봉정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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