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_46

醉月 2011. 2. 18. 08:06
발길마다 유적…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동로마로 불린 비잔틴제국의 수도
실크로드 종착지이자 기독교 심장부에서
15세기 술탄 정복으로 이슬람 도시로
1500년 3대 제국 122명 통치 ‘찬란’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 (46) 인류문명의 노천박물관,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관광을 마친 일행은 항공기를 타고 마지막 답사지 이스탄불로 날아갔다. 영국의 문명사가 토인비(1889~1975)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이스탄불을 ‘인류 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라고 했다. 문명사를 종횡무진 갈파한 그에게 이 말은 한낱 수식어가 아니었다. 남의 것을 가로챈 탓에 연고 없는 유물로만 채워진 브리티시 박물관 같은 옥내 박물관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도시 전체가 공개된 유적유물인 이스탄불을 이런 조어로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구 1천2백만의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두 대륙을 잇는 유일한 도시다. 유럽쪽 골든 혼의 남부 옛 시가지와 북부 갈라타 지역, 아시아쪽 위스퀴다르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동서 150km, 남북 50km에 총 면적 7500㎢에 달하는 세계 유수의 대도시다. 신석기 시대부터 아시아쪽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기원전 660년께 비자스가 이끄는 그리스 메가론인들이 유럽쪽 땅에 왔다. 비자스는 기도 끝에 ‘눈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고, 선대 통치자들이 미처 못 보았던 땅에 식민 도시를 건설했으니,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비잔티움이다.

비잔티움은 얼마 못가 기원전 513년 페르시아에 점령되고, 196년 로마 식민지로 전락했다.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로부터 동방의 이곳으로 옮겨와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고쳐 부른다. 후세 사가들은 이 동방의 로마 제국을 옛 도시 이름을 따 ‘비잔틴 제국’이라고 지칭한다. 서로마 멸망(476년)을 대신해 부흥한 비잔틴은 6~9세기 전성기를 맞았다. 콘스탄티노플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이자 기독교 심장부로서 실크로드 종착지 구실을 했다. 이 즈음, 수차례에 걸친 아랍-이슬람군의 공격도 막아낸다.

번영하는 도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외세의 공격 목표가 되어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이스탄불도 예외는 아니다. 1204년 4차 십자군에게 함락됐다가 57년 만에 탈환되는 곡절을 겪는다. 뒤이어 내침한 동방의 오스만 튀르크가 1453년 점령하고, 정복자 술탄 무함마드 2세는 이름을 이스탄불로 다시 바꾼다. 기독교 도시에서 이슬람 도시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때부터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으로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까지 47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남아 있었다. 이스탄불은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무려 1528년 동안 통치자 122명에 의해 세계사의 한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역시 3대 제국(한·수·당)의 수도로 장수했던 중국 장안(738년간 통치자 38명)보다 배가 넘는 나이다.

 

아시아 - 유럽 잇는 유일한 도시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 제국의 수도로서 위용을 과시하고 문명의 접점 구실을 했던 이스탄불은 갈무리한 수많은 옥내·옥외의 유적유물들을 통해 명실상부한 인류문명의 노천박물관임을 실증하고 있다. 일행이 우선 찾은 곳은 토프카프 궁전이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자락에 자리잡은 궁전은 오스만 지배자들의 거처이자 행정 중심지였다. 튀르크어로 ‘토프’는 ‘대포’, ‘카프’는 ‘문’이란 뜻인데, ‘궁전’을 의미하는 ‘사라이’와 합쳐 ‘토프카프 사라이’, 즉 ‘대포문궁전’이라고 불렀었다. 궁전 문 앞에 대포를 건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통치의 본산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소장 유물은 여러 문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바티칸 두 배에 달하는 70만㎡의 궁전은 지금 연간 250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는 박물관으로 변했다. 먼저 소장한 도자기 1만2천여점은 취사인부 1200명이 매일 2만 명분의 음식을 조리한 부엌에서 쓰던 것으로 주로 중국과 독일, 일본에서 들여왔다. 보물관 전시품으로는 작은 다이아몬드 49개에 에워싸인 86캐럿짜리 대형 다이아몬드와 유명한 에메랄드 단검이 눈에 띈다. 잘 알려진 하렘은 면적 6,700㎡에 300여개 방이 딸린 금남의 공간이다. 살던 여자들은 대부분 포로 혹은 인신매매로 사들이거나 선물로 받은 당대 각국의 미녀들로서 문자 그대로 ‘세계 미녀 전시장’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관에는 1517년 오스만이 칼리파제(계위제)를 채택하면서 이슬람 세계에서 가져온 유물들로 차있다. 특히 교조 무함마드가 쓰던 칼, 깃발, 활, 망토 등 유품과 그의 발자국, 이빨, 수염 같은 유물은 값을 따질 수 없는 이슬람의 무가지보(無價之寶)다. 재정부로 쓴 무기 관에는 16~19세기 각종 외국산 총과 화살, 칼 등이 있었다. 러시아 황제가 술탄 압둘 마지드에게 선물한 시계도 눈길을 끈다.

이어 술탄 아흐마드 광장에 있는 고대 도시 심장부인 히포드럼(경기장)으로 갔다. 그 중심에 40줄 계단식 좌석에 3만 명을 수용하는 ‘U'자형 경기장(길이 400, 너비 120m)이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 로마의 시쿠스 맥시무스 경기장 버금가는 큰 경기장으로 그 자체가 노천박물관이다. 중앙에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기둥과 동상, 해시계 등 기념물이 설치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오벨리스크와 그리스 뱀기둥이다. 이집트 파라오가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15세기 세운 오벨리스크는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0년 이집트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서 옮겨와 세웠다. 높이 20m의 핑크색 화강석 기둥 무게는 약 300톤. 기둥 사면에는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성을 찬양하는 상형문자가 새겨졌으며, 대리석 받침대 사면에는 히포드럼에서 행해진 행사들이 생생하게 새겨졌다.

높이 짜리 뱀기둥(원래 6.)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와 벌인 팔라테아 전투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델피 아폴로 신전에 세웠던 것이다.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가져왔다. 뱀 세 마리가 몸을 서로 꼬고 올라간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지름 2m의 황금 트로피가 있었는데, 옮겨오기 전 분실되었고, 머리는 오스만 시대 돌에 맞아 부서졌다. 두 유물 말고도 이곳을 방문한 독일 황제 카이세르 빌헬름이 사례로 보내와 1898년 세운 독일 분수도 눈에 띈다. 모두 역사의 한 단면을 무언 중 증언하는 유물이다.

다음 날엔 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의 하나인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을 찾았다. 외형부터 웅장할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고전 건축미가 물씬하다. 1887년 레바논 시돈(지금의 사이다)의 왕가 묘지에서 일군의 석관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91년 지은 이곳은 개관 100주년을 맞은 91년 구관(단층)을 개축하고 신관(3층)을 증축했다. 터키 전체 고고박물관 유물 250만 점 중 8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나, 지금은 10분의 1만 전시중이다. 유물은 그리스-로마 시대가 주종이나, 신관을 증축하면서 전후 시대 유물들도 모으고 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8만여점의 설형문자 점토판, 5만여점의 각종 동전, 신상들과 동물 조각상 등도 주목되지만, 가장 눈길 끄는 것은 구관에 전시된 5기의 대리석 돋을새김 석관(기원전 5세기 중엽~4세기 말)이다. 그 가운데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장면을 생동감있게 부조한 석관이 있기 때문이다. 신관에는 수수께끼로 남았던 고대 트로이의 3천년 역사를 풀어주는 9개 도시유적이 40개 문화층별로 정리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키프로스, 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들도 많다. 박물관에 딸린 고대동방박물관도 볼거리가 넘친다. 오리엔트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 2만여점을 전시중인데, 기원전 13세기 중엽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맺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문인 ‘카데슈 조약문’이 발길을 붙잡는다. 은판에 새긴 원문은 남아있지 않고, 전시된 것은 45행의 아카드어 번역문 점토판이다.

이스탄불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박물관, 광장, 교회, 이슬람 사원, 성벽들….어느 것 하나 문명의 티가 짙게 배인 유적 유물 아닌 것이 없다. 그 위에 과거와 현재, 동과 서가 공존한다. 그래서 토인비는 ‘노천박물관’이라 했고, 유네스코는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도시의 세계화는 문명 세계화의 견인차다. 도시들이 제각기 ‘노천박물관화’할 때, 그만큼 문명은 세계화 선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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