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종착지이자 기독교 심장부에서
15세기 술탄 정복으로 이슬람 도시로
1500년 3대 제국 122명 통치 ‘찬란’
카파도키아 관광을 마친 일행은 항공기를 타고 마지막 답사지 이스탄불로 날아갔다. 영국의 문명사가 토인비(1889~1975)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이스탄불을 ‘인류 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라고 했다. 문명사를 종횡무진 갈파한 그에게 이 말은 한낱 수식어가 아니었다. 남의 것을 가로챈 탓에 연고 없는 유물로만 채워진 브리티시 박물관 같은 옥내 박물관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도시 전체가 공개된 유적유물인 이스탄불을 이런 조어로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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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은 얼마 못가 기원전 513년 페르시아에 점령되고, 196년 로마 식민지로 전락했다.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로부터 동방의 이곳으로 옮겨와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고쳐 부른다. 후세 사가들은 이 동방의 로마 제국을 옛 도시 이름을 따 ‘비잔틴 제국’이라고 지칭한다. 서로마 멸망(476년)을 대신해 부흥한 비잔틴은 6~9세기 전성기를 맞았다. 콘스탄티노플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이자 기독교 심장부로서 실크로드 종착지 구실을 했다. 이 즈음, 수차례에 걸친 아랍-이슬람군의 공격도 막아낸다.
번영하는 도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외세의 공격 목표가 되어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이스탄불도 예외는 아니다. 1204년 4차 십자군에게 함락됐다가 57년 만에 탈환되는 곡절을 겪는다. 뒤이어 내침한 동방의 오스만 튀르크가 1453년 점령하고, 정복자 술탄 무함마드 2세는 이름을 이스탄불로 다시 바꾼다. 기독교 도시에서 이슬람 도시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때부터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으로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까지 47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남아 있었다. 이스탄불은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무려 1528년 동안 통치자 122명에 의해 세계사의 한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역시 3대 제국(한·수·당)의 수도로 장수했던 중국 장안(738년간 통치자 38명)보다 배가 넘는 나이다.
아시아 - 유럽 잇는 유일한 도시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 제국의 수도로서 위용을 과시하고 문명의 접점 구실을 했던 이스탄불은 갈무리한 수많은 옥내·옥외의 유적유물들을 통해 명실상부한 인류문명의 노천박물관임을 실증하고 있다. 일행이 우선 찾은 곳은 토프카프 궁전이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자락에 자리잡은 궁전은 오스만 지배자들의 거처이자 행정 중심지였다. 튀르크어로 ‘토프’는 ‘대포’, ‘카프’는 ‘문’이란 뜻인데, ‘궁전’을 의미하는 ‘사라이’와 합쳐 ‘토프카프 사라이’, 즉 ‘대포문궁전’이라고 불렀었다. 궁전 문 앞에 대포를 건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통치의 본산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소장 유물은 여러 문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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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술탄 아흐마드 광장에 있는 고대 도시 심장부인 히포드럼(경기장)으로 갔다. 그 중심에 40줄 계단식 좌석에 3만 명을 수용하는 ‘U'자형 경기장(길이 400, 너비 120m)이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 로마의 시쿠스 맥시무스 경기장 버금가는 큰 경기장으로 그 자체가 노천박물관이다. 중앙에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기둥과 동상, 해시계 등 기념물이 설치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오벨리스크와 그리스 뱀기둥이다. 이집트 파라오가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15세기 세운 오벨리스크는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0년 이집트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서 옮겨와 세웠다. 높이 20m의 핑크색 화강석 기둥 무게는 약 300톤. 기둥 사면에는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성을 찬양하는 상형문자가 새겨졌으며, 대리석 받침대 사면에는 히포드럼에서 행해진 행사들이 생생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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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엔 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의 하나인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을 찾았다. 외형부터 웅장할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고전 건축미가 물씬하다. 1887년 레바논 시돈(지금의 사이다)의 왕가 묘지에서 일군의 석관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91년 지은 이곳은 개관 100주년을 맞은 91년 구관(단층)을 개축하고 신관(3층)을 증축했다. 터키 전체 고고박물관 유물 250만 점 중 8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나, 지금은 10분의 1만 전시중이다. 유물은 그리스-로마 시대가 주종이나, 신관을 증축하면서 전후 시대 유물들도 모으고 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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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박물관, 광장, 교회, 이슬람 사원, 성벽들….어느 것 하나 문명의 티가 짙게 배인 유적 유물 아닌 것이 없다. 그 위에 과거와 현재, 동과 서가 공존한다. 그래서 토인비는 ‘노천박물관’이라 했고, 유네스코는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도시의 세계화는 문명 세계화의 견인차다. 도시들이 제각기 ‘노천박물관화’할 때, 그만큼 문명은 세계화 선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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