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수집가 현태준
“남들이 뭐라든 내 맘대로 산다, 뽈랄라~”
송화선│동아일보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만화가/ 수필가/ 일러스트레이터/ 우리나라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44)씨가 건넨 명함에는 네 가지 직업이 일렬종대로 씌어 있었다. ‘뽈랄라수집관 관장’과 ‘뽈랄라상회 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이 모은 ‘우리나라 장난감’을 분석·정리할 때는 ‘장난감 연구가’가 된다. 잠정 휴업 중인 공방 ‘신식공작소’에서 온갖 장난감과 시시껄렁한 물건을 만들어 팔 때는 미술 작가였고, 차차 밝히겠지만 머지않아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서민문화연구소’ 소장이 될 예정이다.
그의 명함이 그나마 단출한 건 끝없이 이어지는 직업 메들리를 듣다 못한 지인이 “얘야, 직업이란 돈 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야” 하고 일러줬기 때문이다. 이 정의에 따르자니 명함에 적을 수 있는 직함이 확 줄었다. 그간 벌여놓은 일 중 돈 되는 것만 추리고, 늘 직업이라고 생각해온 ‘아저씨’는 뒷면에 카툰으로 그렸다. 그의 명함을 뒤집으면 파란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실내 포장마차’ 간판을 보며 헤~ 침 흘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2차 장소를 물색하는, 딱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다.
“신기하고 괴상망측한 아저씨”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
현씨를 만나기 전 들은 그에 대한 인물평이다. 만화가 이우일은 그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젊은 시절을 보내면 이렇게 신기하고 괴상망측한 아저씨가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때로 경탄하고, 때로는 혀를 찬다.
그가 ‘하고 싶어서 하는’ 홍대 앞 이색 공간 ‘뽈랄라수집관’에서 현씨를 만났다. 키 182㎝에 0.1t을 ‘살짝’ 넘는 몸무게, 뱅글뱅글 돌아갈 듯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쓴 그는 막 인형극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았다. 심술쟁이 두꺼비 퉁퉁이 혹은 말썽꾸러기 개구리 투투. 마침 그의 옆에 입 안이 새빨간 악어 인형이 놓여 있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등 뒤로는 ‘대낮에 키스하여 밝은 사회 이룩하자(불건전키스방지협회)’ 따위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몇 장 붙어 있었다.
‘뽈랄라수집관’을 ‘이색 공간’이라고 소개한 건 대략 이런 분위기여서다. 현씨 자신도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곤란했던지, 입구 간판에 ‘최첨단 홍대 앞의 서브컬처 명소’ ‘the world best unique museum’ ‘세상의 잡동사니 보물섬’ 등 온갖 미사여구를 적어놓았다. 이 중 실제에 가장 근접한 표현을 찾는다면 ‘잡동사니 보물섬’ 정도가 될 것 같다.
100㎡ 규모의 지하 공간 속, 촘촘히 늘어선 유리장 안에는 현씨가 모은 잡동사니가 빼곡히 전시돼 있다. 한때 우리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들, 청순한 소녀가 그려진 껌 종이,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구둣주걱, 불량식품 쫀드기 포장지, 울상을 짓고 있는 못난이 인형 따위가 반들반들 닦인 채 ‘소장품’ 자격으로 들어앉아 있다.
▼ 하시는 일이 정확히 뭐죠?
“뭐 보시다시피. 이거 관리하고,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시간 나면 이거저거 사러 다니고 그럽니다.”
▼ 명함에 ‘뽈랄라수집관’ 관장이 빠진 걸 보면 이 일로는 돈을 못 버시나봐요.
“못 버는 정도가 아니라 이거 운영하느라 생계가 위험할 지경이지요. 문 연 지 1년 됐는데 매일매일 적자가 쌓입니다. 이거 없을 때는 룰루랄라 살았는데….”
▼ 그런데 이걸 왜 하시는 거예요?
“한 10년 잡동사니를 모았거든요. 그동안 연희동 창고에 쌓아뒀는데, 수집한 걸 한번 정리할 때도 된 것 같아서 전시장 겸 작업실을 꾸민 거예요. 그런데 웬걸, 쌓인 짐 정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고, 아직도 연희동엔 여기 전시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잡동사니가 남아 있어요. 내가 그동안 뭘 얼마나 많이 모아왔는지 나도 몰랐던 겁니다. 결국 이거 만들면서 월세는 두 군데서 나가게 됐고, 그동안 정리한 거 아까워 문은 못 닫겠고…. 완전히 판단미스였어요.”
▼ 창고에 쌓여 있는 것도 다 이런 물건들인가요?
“그렇죠. 성냥갑, 양초 같은 것도 있고, ‘사기의 기법’ 같은 특이한 책들, 장난감, 조립식…. 뭐 온갖 게 다 있어요.”
▼ ‘뽈랄라’가 그런 뜻인가요? 남들 안 모으는 잡동사니?
“그런 건 아니고, 나 좋아하는 거 남 눈치 보지 말고 하자는 뜻으로 제가 만든 말이에요. ‘포르노 랄랄라’를 줄여서, 하고 싶은 대로 살자, 뽈랄라~ 뭐 그런 거죠.”
잡동사니 천국, 문방구
사실 ‘뽈랄라수집관’을 왜 만들었는지 보다 더 궁금한 건 도대체 이런 걸 왜 모았을까 하는 쪽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누구나 한번쯤 이사하며 탈탈 털어버리고 왔을 법한 잡동사니를 빈틈없이 촘촘하게 정리해놓은 풍경을 보게 된다. 다른 공간에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잡동사니가 있다니, 그는 대체 뭘 얼마나 모은 걸까 싶다.
현씨의 수집벽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미대 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홍대 앞에 ‘신식공작소’라는 공방을 열고 초록색 때밀이 타월로 만든 핸드백, 돈을 넣으면 감격한 듯 움직이는 ‘감격의 저금통’, 돈을 넣고 지퍼를 잠그면 입을 다무는 ‘입닥쳐 지갑’ 따위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원래 ‘시시껄렁한’ 걸 좋아하는 성미인지 모른다. 그때 바로 옆 가게는 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문방구였다(표준어는 ‘문구점’이지만, 현씨는 모든 어린이가 ‘문방구’라고 부르던 그 공간을 이렇게 부르고 싶어했다. 이 글에서는 학교 앞에서 꼬맹이들을 상대로 학용품, 장난감, 불량식품 등을 파는 잡화가게를 ‘문방구’라고부르기로 한다). 왔다갔다 인사나 드리던 차에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가게 문을 닫는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싸게 가져가라고 했다. 33㎡ 남짓한 공간을 뒤적이다 그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물건들을 만났다. 반갑고 신기했다.
▼ 그때부터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 건가요?
“그때는 그냥 ‘재밌다’ 하고는 말았어요. 제대로 모으기 시작한 건 훨씬 뒤부터죠. 1998년 IMF가 오면서 하던 일이 끊기고 돈벌이가 시원찮아졌을 때예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석 달 동안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미국 캐나다에서 우연히 앤티크 장난감 가게에 들렀어요. 반듯하고 깔끔한 신식 가게에서 온통 구닥다리 물건을 파는 모습이 신선하데요. 내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네가 정말 지구를 지킬 수 있겠니…?”
문득 할아버지의 문방구 생각이 났다. 귀국 뒤 호기심에 다른 문방구에 들렀는데, 그곳에도 의외로 옛날 장난감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먼지 뽀얗게 덮인 상자 속에서 절판된 지 오래인 옛날 옛적 조립식 장난감을 발견하면 탄성이 나왔다. 얄팍한 플라스틱, 울긋불긋 촌스러운 색깔, 어느새 어색해진 구식 맞춤법의 설명서 속에서 옛 추억이 ‘쓰윽’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1970~80년대식 B급 장난감과의 만남이었다.
▼ B급 장난감이라는 게 뭘까요?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이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가 다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이었어요. 그런데 오리지널 라이선스 제품이 수입되지 않으니까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베껴서 내놓은 겁니다. 그중에 만들다 만 것 같은 것이 꽤 되거든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 팔 수 있나 싶게 어설픈데, 잘 보면 그 안에 묘하게 우리식 정서가 살아 있어요.”
그에 따르면 같은 마징가라도 일제는 언제든 악당을 물리칠 것 같은 폼 나는 모양새인 반면, 우리나라 공장에서 뚝딱뚝딱 만든 마징가는 ‘얘가 과연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마구 베끼다보니까 양심에 찔렸든지 아니면 돈이 모자랐겠죠.(웃음) 그 시대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포장 그림과 내용물이 너무 달라 상심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상자에는 분명 ‘슈퍼맨’이라고 쓰여 있는데 열어보면 슈퍼맨 팬티를 입은 경상도 아저씨 인형이 들어있는 식이죠.”
‘뽈랄라수집관’의 ‘아니 자네는…! 어디선가 본 듯한?’이라는 코너는 이렇게 ‘다른 나라 캐릭터 인형을 살짝 혹은 몰래 베낀 국산 짝퉁인형들’만 모아놓은 장소다. 그가 ‘경상도 슈퍼맨’이라고 이름 붙인 슈퍼맨 인형의 얼굴은 정말 이웃 동네 아저씨같이 생겼다. 하나로 몰린 눈, 큰 코, 넉넉한 하관. 나란히 전시돼 있는 독수리 5형제 얼굴에서는 두메산골 촌 총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어딘가 순하고 여려 보이는 이 ‘독수리’들은 ‘지구는 내가 지킨다!’라고 힘차게 외치는 대신 ‘지가 지구를 지키고야 말거구먼유’ 하며 수줍게 고개를 숙일 것 같다.
▼ 여기 근육질 몸매의 아톰 인형도 특이한데요.
“그것도 아마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장난감일 겁니다. 제가 이거저거 장난감을 모으면서 알게 된 건데,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제작비 아끼려고 몸체 틀을 하나만 만든 거 같아요. 그러고는 캐릭터별로 머리를 갈아 끼운 거죠. 똑같은 몸뚱이 쫙 놓고 어떤 거엔 슈퍼맨, 어떤 거엔 독수리 5형제, 어떤 거엔 심지어 아톰을 붙인 거예요. 슈퍼맨 몸매에 아톰 얼굴이라니,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웃음)”
한국인의 얼굴을 한 일본 캐릭터. 오직 우리나라 어린이들만 갖고 놀았을 이 촌스러운 장난감들을 모으면서 그는 수집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서울시내 초등학교 앞 문방구들을 섭렵했다. 현씨에 따르면 대한민국 토종 문방구 주인들의 디스플레이 스타일은 재고를 뒤로 밀고 앞쪽에 계속 새로운 상자를 쌓는 것이다. 옛 물건을 찾으려면 아저씨와 친분을 쌓은 뒤 과감하게 뒤로 뒤로 헤집어나가면 된다.
서울에 안 가본 문방구가 없게 된 뒤부터는 전국 순례에 나섰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도시를 가든 문방구를 찾으러 초등학교 근처를 기웃거렸다. 플라스틱 모델 전문점, 시장 모퉁이의 완구점 등도 공략 대상이었다. 당시 그는 IMF외환위기로 타격을 입은 이후 본격적인 작업-만화를 그린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을 준비하기 위해 궁리하던, 달리 말하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한번 지방 도시에 갈 때마다 양손 가득 장난감을 들고 왔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몰래 작업실에 숨겼다.
“여보, 미안해…”
▼ 몰래몰래요?
“아내는 제가 뭐하고 다니는지 몰랐거든요. 그때 회사 다니느라 바빴으니까.(웃음) 제 작업실에는 원래 잘 안 오기도 했어요. ”
▼ 아내는 회사 다니고 남편은 장난감 보러 다니고, 그런 건가요?
“아, 틈틈이 일도 했어요. 삽화 같은 거 그려서 돈 모이면 또 장난감 사러 가고 그랬죠. 저는 늘 돈이 줄줄 새니까, 돈 벌어도 다음 날 되면 없어져요. 아내가 그때 꽤 좋은 회사에 다녀서 그거 믿고 편하게 살긴 했어요.(웃음)”
그런데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 언제부턴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오래된 문방구가 하나둘 문 닫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부터다. 한평생 문방구를 운영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게를 내놨다. 주인이 바뀌면 그동안 쌓인 물건은 싹 버려졌다. 장난감이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시대, 우리 삶의 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제가 1998년부터 장난감을 모으러 다녔으니까 우리나라 경기가 최악일 때였어요. 특히 지방은 더 심했죠. 역 앞 상가가 텅텅 비고, 유리마다 ‘임대’라는 종이가 붙고…. 문방구도 다 망해버렸죠.”
그때부터 한 달에 20일 이상씩 장난감을 찾아다녔다. 현씨가 이렇게 장난감 수집에 몰두한 건 2002년까지다. 그 4년 사이, 유서 깊던 우리나라의 문방구 시대는 거의 막을 내렸다. 전국 곳곳에 생긴 대형 마트가 문구·완구류 할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장난감 천국’으로서의 경쟁력을 잃은 게 첫 번째 이유. 설상가상으로 학교들이 교재를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풍토가 정착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문방구의 입지가 확 좁아졌다. 이 시기는 국내 완구산업의 몰락과 중국산 장난감 유입이 본격화된 때이기도 하다.
▼ 그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하셨겠군요.
“제 눈으로 다 봤죠. 한때는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가 서너 개씩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중에 한두 군데는 대낮에도 셔터가 내려져 있는 거예요. 아예 학교 앞에 문방구가 하나도 없는 동네도 생기고….”
현씨는 자신이 마침 이 시기에 옛 장난감을 수집해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도 가끔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그의 수집품이 장난감에서 잡동사니로 확장된 건 이 무렵부터다. 껌 종이, 불량식품 껍데기, ‘홀로서기’류의 시(詩)가 적힌 액자, 오래된 엽서 같은 것들. 문방구에서 구할 수 있는 추억의 잡동사니를 중심으로 이색 발명품으로까지 수집 범위가 넓어졌다. 그중에는 사뭇 어이없는 것도 많다. ‘요지경’이라는 망원경은 눈을 대고 손잡이를 누르면 슬라이드처럼 이미지가 돌아가는데 그 속에 여자 누드사진이 들어 있다. ‘수험생 안경’은 공부할 때 한눈팔지 말라고 안경 렌즈 양쪽에 플라스틱 패널 같은 걸 붙여놓았다. 밥과 김을 넣고 꾹 누르기만 하면 김밥이 돼 나오는 김밥말이 기계도 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 발명가가 꽤 많았어요. 전 재산 들여 상품을 개발했다가 결국 망한 분들. 그런 것도 하나하나 사 모았어요. 재밌잖아요. 다 우리의 한 시절을 보여주는 풍경 같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자장면집 스티커, 보험 아줌마가 나눠주는 판촉물 같은 것도 못 버리겠더라고요. 사실 그런 것들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예전엔 저금통이나 인주갑 같은 판촉물이 많았다고요.”
쓰레기 수집가
그의 명함에 직업이 ‘우리나라 장난감 수집가’로 적혀 있는 건, 현씨가 이처럼 전국의 고(古)문방구를 주무대로 추억의 물건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는 장난감을 사들이면서 명함에 써 있는 다른 직업대로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일러스트 작업도 하며 돈을 벌었다. 영화 ‘몽정기’의 포스터를 그린 사람이 그다. ‘뽈랄라대행진’ ‘현태준의 대만여행기’ 등의 책도 제법 많이 팔렸다.
▼ 잡동사니를 모았으니 그래도 다른 걸 수집하는 것보다는 돈이 덜 들었을 거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반대로 싸서 많이 사기도 하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아무튼 저는 돈이 들어오면 남는 게 없어요. 사실 벌기도 꽤 많이 벌었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 홍대 앞 ‘뽈랄라수집관’과 연희동 창고 속에 쌓여 있겠죠” 말하려다 그만 뒀다. 본인인들 모르겠는가.
사실 그의 컬렉션은 전문적인 장난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별 인기가 없다. 말하자면 아무리 모아도 환금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기운 없어 보이는 슈퍼맨, 충청도 총각을 닮은 독수리 5형제를 소장하려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장난감 마니아들은 이보다는 좀 더 아기자기하고 정교하며 첨단 기능을 갖춘 것을 선호한다. 그가 ‘뽈랄라수집관’ 앞에 ‘the world best unique museum’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들 같으면 버릴 쓰레기 같은 거 모아서 진열장 안에 고이 모셔놓은 박물관, 그렇게 생각하면 특이하긴 하죠.(웃음)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선조들의 생활 유물을 중앙박물관에 진열하는 거나, 가까운 과거에 늘 우리 곁에 있던 장난감을 보존해두는 거나 다를 게 없거든요. 되게 의미 있고 정상적인 거예요.”
그가 ‘뽈랄라수집관’을 열었을 때 이 ‘쓰레기판’을 본 아내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현씨는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 했다.
▼ 아내 분은 전시관을 보고야 비로소 남편의 실상을 알게 된 거죠?
“그전에 만화나 수필 작업을 하며 장난감 얘기를 많이 썼으니까 대충 알고는 있었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나봐요. 내가 꽁꽁 숨기고 안 보여줬으니까(웃음). 아마 연희동에 더 있는 거 알면 정말 놀랄 거예요. 사실 그건 지금껏 비밀인데….”
현씨는 이 박물관 입장료로 1인당 2000원을 받는다. 처음엔 그돈을 모으면 월세쯤은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턱없이 모자라다. 그 사이 회사를 그만두고 제법 잘나가는 동화 작가가 된 아내는 그를 보며 한 번씩 “당신이 돈만 벌면 우리도 맞벌이 부부가 될 텐데…” 하며 한숨을 푹 쉰다고 한다.
“그러더니 얼마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입출금 내역을 보고하래요. 돈이 줄줄 새니까 자기가 감독해야겠다고 뭘 어디에 썼나 적어오래. 아후.”
그는 하도 고민이 돼 어떻게든 돈 벌어 적자를 ‘땜빵’하려고 ‘뽈랄라상회’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거기에도 제법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그걸 만회하려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해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뒤늦게 가계부를 검사하는 아내 심정이 이해가 갔다.
뽈랄라 뽈랄라
▼ 뽈랄라상회에서는 뭐를 파나요?
“외국산 장난감이랑 빈티지 소품이요. 뭐든 팔아야 될 거 같아서,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장난감, 외국 사는 친구가 보내주는 물건, 외국 나갈 일 있을 때 한 번씩 사들고 들어오는 것들을 모아 올려놓았어요.”
▼ 그럼 모든 제품이 한 개씩밖에 없는 거예요?
“두세 개 있는 것도 있지만 거의 한 개죠. 그러니까 그거 하나하나 사진 찍고 설명 달고, 팔리면 다른 물건 새로 구해 올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포장하고 보내는 데도 품이 많이 들더라고요.”
▼ 손해는 안 보나요?
“적자 같은데… 사실 잘 몰라요. 얼마 전에 일본 가서 물건을 좀 사왔는데 가격을 안 적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대충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제멋대로 가격 정해 팔았어요. 나중에 정산해보니 돈이 부족한 거 같아. 아아. 오죽하면 제가 다른 사업을 또 구상하고 있겠어요?”
안타까운 건 그가 생각하는 또 다른 사업도 그다지 돈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는 “이것도 아직 아내한테는 말 안 했는데, ‘서민문화연구소’를 차릴까 한다”고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을 둘러싼 문화, 사소하고 쫌스럽고 때로는 말하기 거북한 풍경들을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치킨이라든지 중국집 분식집 메뉴 같은 먹을거리들, 어느 동네가 도둑놈이 가장 많은가 같은 사회 문제들을 정리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서민생활연구가가 되는 거죠.”
지금까지 사람들의 삶을 둘러싼 물건을 수집했다면, 이제는 삶의 이야기 그 자체를 수집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물건도 계속 모을 생각이다. 사실 연희동 잡동사니가 줄어들지 않는 건, 그가 끊임없이 뭔가를 사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그걸 시작한다고 ‘뽈랄라상회’의 적자를 메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하자,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일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영화 제작 프로듀서를 한 명 만났는데 제가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재밌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직접 시나리오 쓰고, 감독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분 말이 촬영감독이 알아서 해주니까 감독은 잘 몰라도 된대요. 지금 그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아무튼 생각이 많아요.”
▼ 보통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거저거 따지느라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뭘 시작할 때 그런 고민이나 갈등이 없어 보여요.
“원래 그랬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다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뽈랄라상회도 아슬아슬한 적이 많았는데 어떻게 다 넘어가더라고요. 아직 살면서 좌절한 적은 없어요.”
그의 꿈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뽈랄라 뽈랄라’ 하고 싶은 일 재밌게 하며 사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 생계에도 보탬이 돼 명함에 한 줄 올릴 수 있는 ‘직업’이 된다면 더 좋겠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할 말은 없는지 물었다.
“여보 쫌만 참아봐. 원래 나 같은 사람들이 대기만성이야. 초창기에 지지리 고생하다가 다 잘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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