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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향하여

醉月 2010. 4. 16. 08:43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향하여

글로벌 스탠더드는 ‘세계 선진문명 표준’을 의미
세계공헌국가가 되려면 우리 고유의 장점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융합, 더 높은 수준의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내야

 

朴世逸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1948년 서울 출생.
⊙ 서울대 법대 졸업. 美 코넬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교수,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사회복지수석비서관, 한국법경제학회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제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委 의장.

 

글로벌 스탠더드란 과연 무엇인가?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말로 ‘세계문명 표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단순한 세계문명 표준이 아니라 세계의 ‘선진(先進)문명 표준’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환언하면 이미 앞서 성숙하고 발전한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제도·관행·문화 등 가운데, 개별선진국가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비교적 여러 선진국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높은 선진 제도·관행·문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진국(後進國)들이 선진국이 되는 과정은 사실 이러한 글로벌 스탠더드, 즉 선진문명 표준을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이 된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하는 법, 시간과 여가를 사용하는 법 등등을 배우고 모방하여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는 지금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시대는 개인이든 국가든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후진국들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쟁도 당연히 치열해지고, 그 결과 선진국의 문명표준,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우고 모방하려는 경쟁도 당연히 치열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과 노력을 통하여 후진국의 상황을 벗어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모방에서 창조로
 
  후진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을 보면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 단계는 ‘모방(模倣)의 단계’이다. 무조건 선진적인 기준을 그대로 카피하고 똑같이 흉내 내면서 배우는 단계이다. 특히 후진국에서 중진국(中進國)까지 올라오는 데는 사실 이 선진국 모방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래 모든 배움은 우선은 가르치는 교사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된다.
 
  두 번째 단계는 ‘창조(創造)의 단계’이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선진국의 선진문명 표준과 자기 나라의 표준, 즉 자기 나라 고유의 제도·관행·문화표준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단순한 카피나 흉내가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들이 주장할 것은 주장하는 단계다. 환언하면 자신들의 고유표준과 선진국의 표준을 통합·융합하면서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 즉 ‘신(新) 선진문명 표준’을 창조하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중진국의 단계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 창조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업화 덕분에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역사를 뛰어넘어, 이제는 당당한 중진국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1963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의 경제를 1995년 1만 달러의 경제로 바꾸었다. 가위 ‘한강의 기적’이었다.
 
  이 산업화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모방하고 배우는 데 급급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고 우리의 전통문화 등과 달라 어색한 때도 많았지만, 결국 우리는 크게 보아 선진국 모방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중진국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들어 우리 대한민국은 중진국의 단계를 지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모방만으로는 국가발전과 선진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모방의 단계’에서 ‘창조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수신형 창조와 발신형 창조
 
  일반적으로 ‘창조의 단계’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창조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는 ‘수신형(受信型) 창조’이고, 다른 하나는 ‘발신형(發信型) 창조’이다. ‘수신형 창조’란 선진국에서 배워오는 ‘외래적(外來的) 표준’과 우리의 문화와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내생적(內生的) 표준’을 결합하고 융합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내에서 통용하고 사용할 ‘우리식 표준’을 만드는 창조다. 배워온 것을 우리에게 맞게 고치는 창조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창조다.
 
  반면에 ‘발신형 창조’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 속에 있는 ‘보석’을 발견하여, 이를 기존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결합·융합하여,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신 세계문명 표준’을 창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표준과 우리표준을 결합하여 세계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의 창조, 즉 ‘수신형 창조’와 ‘발신형 창조’를 잘해야 우리는 진정한 세계 일류국가로서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수신형 창조’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본래가 선진국이란 여러 분야에서 성숙한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성숙이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것이다.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경제적·기술적 발전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야 하지만, 동시에 그 사회 구성원들의 주관적 만족과 행복감도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성숙사회란 경제적 기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일 뿐 아니라 동시에 주관적으로도 행복한 사회여야 한다. 객관적 풍요와 주관적 행복이 함께하는 사회여야 한다.
 
  따라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에서 경제와 기술을 배워 오는 것,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워 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그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신의 역사적·문화적 풍토에 기초한 주관적 행복기준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관적 기준과 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보완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맞도록 국내 통용을 위하여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신형 창조’이고, 이것이 가능해야 국민들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성숙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나아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세계공헌국가가 되기 위하여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이제 그녀의 피겨 스케이팅은 세계의 표준이 됐다.
  다음은 왜 ‘발신형 창조’가 필요한가를 보자. 그 이유는 우리가 되려고 하는 선진국은 ‘세계공헌국가’이고 ‘세계모범국가’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자기 나라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하고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구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하는 데 공헌하여야 한다. 보다 높은 수준의 세계적 선진문명 표준을 창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 역사·문화·전통 속에 있는 보석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보석은 우리에게도 보석이 되지만, 인류 모두에게도 보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내용과 수준이어야 한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러나 우리만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보석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 보석을 가지고 나가 기존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결합·융합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세계적인 것으로 보편화할 수 있는 창조가 바로 ‘발신형 창조’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산업화시대와는 달리 글로벌 스탠더드의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도 선진화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즉 이제는 단순히 모방과 카피가 아니라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 창조도 ‘내향적(內向的) 수신형 창조’의 단계를 지나 ‘외향적(外向的) 발신형 창조’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
 
  이제는 국가발전모델도 선진국형을 배우고 모방하는 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모델을 스스로 창조해내야 한다. 동시에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모델을 보편화하고 세계화하여 다른 이웃 나라들에도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될 수 있는 창조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즉 내향적 창조를 반드시 외향적 창조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세계화하여 나가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선진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죽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전개될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이는 좋은 예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지난 20년간 바람직한 국가발전모델로 세계를 지배한 것은 신(新)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였다. 1989년에 존 윌리엄슨이 정리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기본적으로 선진경제의 경험을 배경으로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국가발전모델이다. 그 주된 내용은 ① 거시(巨視)경제의 안정정책 ② 대외(對外)개방과 규제완화의 자유화 ③ 공(公)기업의 민영화(民營化)와 사유화(私有化)라는 3가지였다.
 
  그런데 이 선진국의 경험을 일반화한 워싱턴 컨센서스가 2008년 미국발(發)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타당성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게 되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죽었다”고까지 선언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국가발전모델이 없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었다.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댄 로드릭 등 세계최고 수준의 우수한 학자들이 모여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의 발전모델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합의문을 보면 ① 역사와 문화와 제도의 중요성 ② 시장과 정부의 균형 ③ 소득분배와 환경에 대한 관심 ④ 단기국제자본에 대한 규제 등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났다.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발전모델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4년에는 중국의 발전경험을 배경으로 쿠퍼 라모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① 형평(衡平)과 평화를 중시하는 양질(良質)의 성장 ② 단일 해법(解法)보다 실험적 해결의 선호 ③ 이념적이면서도 실용적 접근이라는 대단히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주장에 그쳤다. 그리고 베이징의 발전경험은 기본적으로 ‘1당지배의 국가주의적 발전모델’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다른 많은 개도국에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공동체 자유주의에 기반한 ‘서울 컨센서스’
 
  그래서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신뢰의 추락을 배경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발전모델과 발전패러다임에 의지하여 국가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것인가에 대해 오늘날 세계는 고민하고 있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이 모여 21세기 바람직한 국가발전모델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서울 컨센서스’다.
 
  2009년 여름부터 분야별로 수십 명의 학자가 한반도선진화재단에 모여 많은 토론과 격론을 통하여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어 오고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산업화시대(1960~70년대)의 경험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 장점과 단점을 구별, 앞으로 선진화시대(2000년대 이후)에서도 계승·발전해야 할 부분과 폐기해야 할 부분을 구분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 이후 민주화 시대(1980~90년대)의 각종 국민들의 욕구분출이라는 정책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고, 그리고 21세기 초 세계화시대의 변화,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국제환경의 변화 등을 감안하여, 새로운 초(超)세계화 시대의 선진화를 위한 국가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선진화발전전략’이고 이웃 중진국들을 위해서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신국가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고 있다.
 
  첫째, 서울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달리 그 철학적 기반을 ‘공동체자유주의’에 두고 있다.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連帶)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가 올바른 국가발전전략이라는 사상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성장·효율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아니라 ① 시장과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조화 ② 경제적·물질적 가치와 정신적·문화적 가치의 균형 ③ 개인의 창의와 공동체 가치의 조화를 목표로 한다.
 
  둘째, 서울 컨센서스는 우리나라의 좌(左)와 우(右),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차이를 아우르고 뛰어넘는 ‘선진화 전략’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과거 박정희(朴正熙) 식의 산업화발전모델이 성장지상과 수출지향 그리고 정부주도였다면, 오늘날 21세기 초세계화시대 선진화를 지향하는 선진화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는 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 ② 성장-분배-환경의 공생적(共生的) 성장과 지역 간 발전균형 ③ 도덕과 정신문화의 개조 ④ 역사경험과 구체적 현장변화 등을 중시한다.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열자
 
  이러한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는 ‘서울 컨센서스’가 앞으로 안으로는 대한민국의 선진국 도약과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지적(知的) 혼란 속에 있는 세계에, 특히 많은 개도국에, 바람직한 새로운 대안적(代案的) 국가발전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와 더불어 ‘서울 컨센서스’를 만드는 이러한 노력이 바로,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 예컨대 교육·과학·문화 등 - 앞으로 우리가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先例)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지난 60여 년간의 선진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우고 모방만 하는 국가수신(國家受信)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2010년부터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가 세계이웃나라들에 큰 희망이 되는 새로운 국가발신(國家發信)의 시대, ‘세계공헌의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여는 길이 되고, 동시에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목표인 선진화와 통일, 통일된 부민덕국(富民德國)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

 

글로벌 인재 양성의 산실, 국내외 글로벌 스탠더드 교육기관들

그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제도와 가치’를 배운다

국내 글로벌 스탠더드 전파의 선구자, 세계경영연구원
젊은이를 세계적 인재로 키우는 국제학부·글로벌학부
세계 리더의 산실, 美 CCL과 크로톤빌과 일본의 마쓰시타정경숙

權世珍 月刊朝鮮 기자  (sjkwon@chosun.com)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세계경영연구원 전경. 글로벌 스탠더드 전파를 위해 2003년 설립됐다.>

최근 한국 교육의 화두는 ‘글로벌 리더’다. 영어교육은 취학 전부터 필수이고, 대학입시에서는 국제학부와 글로벌학부가 인기다. 이 사회의 리더가 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익히고 글로벌 리더가 돼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가 정확하게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어떻게,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국내외의 손꼽히는 글로벌 스탠더드 교육기관을 찾아봤다.
 
 
  국내 글로벌 스탠더드의 선구자 IGM
 
  협상최고위전문과정, 핵심역량교육프로그램, 속성MBA과정 등 다양한 특별과정 개설
 
  국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손꼽히는 곳이 바로 세계경영연구원(IGM)이다. 2003년 설립된 세계경영연구원은 ‘국내 기업 및 경영자들에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파함으로써 개인과 기업, 사회의 성공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비전 아래 설립됐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우리의 살길임을 우리 사회가 공감하도록 하고, 분야별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전파한다’는 것이 IGM의 목표다. 7년 동안 CEO와 기업 임원 등 9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재학생은 2000여 명이다. 임원 교육기관으로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것이 IGM측의 설명이다.
 
  IGM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정의는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제도와 가치’다. 전성철(全聖喆) 이사장은 세계화와 민족의 뿌리 찾기라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IGM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의 이야기다.
 
  “현재 세계는 세계화의 물결에 함몰되고 있으며, 세계화의 물결이란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물결이죠. 글로벌 스탠더드란 인류를 행복하게, 또는 풍요하게 만드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세계가 인정한 제도 또는 가치입니다. 우리도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의미는 제대로 이해되지도 전달되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고 공감하고 추구해야 우리 민족의 비약이 가능해집니다.”
 
  IGM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파하기 위해 기업 및 기관의 CEO와 임원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최고경영자과정(IGMP)은 물론 협상스쿨과 리더십스쿨도 개원했다. 협상최고위전문과정, 신임임원을 위한 핵심역량교육프로그램, 속성MBA과정 등 특별과정도 다양하다. 특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협상을 가르치는 협상스쿨은 IGM의 특징이기도 하다. 최철규 부원장은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협상프로그램이 개발되고 기술을 지도하는 전문가 과정이 개설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협상 실무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교육과정이 없었다”며 “협상 기술은 글로벌시대에 국제무대에서 꼭 필요한 만큼 이를 강의하는 기관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IGM의 교육과정은 대부분 1년 과정으로 운영되며, 친목이 주 목적이 되고 있는 여타 최고경영자과정과 달리 연 20회 이상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의가 이뤄진다. 또 강의는 물론 적극적인 토론과 발표를 통해 글로벌한 가치를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IGM측은 설명했다. 남용(南鏞) LG전자 부회장, 윤석금(尹錫金) 웅진그룹 회장, 정준양(鄭俊陽) 포스코 회장, 박용만(朴容晩) 두산 회장, 김신배(金信培) SK C&C 부회장, 신상훈(申相勳) 신한금융지주 사장 등이 IGM의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쳤다. 또 월간 웹진 ‘글로벌 스탠더드 리뷰’를 발간해 세계의 최신 경영지식과 고급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IGM은 최근 설립 7주년을 맞아 쇄신을 도모하는 한편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일본 도쿄 등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IGM은 지난 2007년부터 지방으로 진출, 부산, 광주, 대전 등 6개 지방도시에서도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초 닦는 각 대학 글로벌학부
 
  전형 및 모든 강의가 영어로 이뤄져 유학환경과 비슷
  한 대학의 국제학부 학생들이 원어민 강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00년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대학은 국제학부 및 글로벌학부를 잇달아 개설했다. 그동안 해외 교육기관이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등 글로벌 교육기관이 전무한 때 이들 글로벌학부의 설립은 글로벌 스탠더드 교육에 대한 기초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국제학부와 글로벌학부를 개설하고 있는 곳은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한양대, 경희대 등이 대표적이다. 국제학부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형 및 모든 강의가 영어로 이뤄져 유학환경과 비슷하다는 것. 또 국제관계론과 국제통상론 등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우기 위한 커리큘럼으로 이뤄져 있다. 국제학 외에도 정치・경제・경영・법・사회・문화 등 다양한 학문분야를 영어로 연구하는 한편 세계의 이 같은 학문을 연구해 글로벌한 인재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제학부에 들어가려면 영어실력은 물론 해외거주 경험이나 다양한 과외활동 경력이 있어야 유리하고, 각 분야에 걸친 다양한 프로그램을 4년 내내 영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국제학부가 배출하는 인재들은 글로벌 리더의 기초적인 자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일부 국제학부는 ‘글로벌 스탠더드’ 관련 과목을 일시적으로 개설하고 있으며, 해외 석학과 노벨상 수상자를 강사로 초빙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려대 국제학부 정서용(鄭瑞溶) 교수는 “국제학부는 기존의 대학 학부처럼 하나의 전공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모든 지식을 제공하는 곳”이라며 “해외유학을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 대학 국제학부의 입학 난이도는 각 대학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대한항공의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
 
  한국HRD 경영종합대상 3회 연속 수상
 
  국내 기업 중 글로벌 리더 양성에 앞서나가는 기업으로는 대한항공과 LG전자가 손꼽힌다. 대한항공은 한국 HRD(Human Resource Developement)협회가 주관하는 한국HRD 경영종합대상을 2008~2010년에 걸쳐 3회 연속 수상했다. HRD대상은 글로벌인재양성 분야에서 우수성과를 창출한 기업에 수여하는 것으로, 국내 인적자원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상이다.
 
  대한항공은 다양한 글로벌 리더 육성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와 함께 개발한 맞춤식 MBA프로그램 ‘대한항공 임원 경영능력 향상과정(KEDP)’, 특화된 전문지식과 경영마인드, 관리 역량을 겸비한 관리자 양성과정인 ‘AMS’, 국내외 유수 MBA과정 지원 등이 그 예다. 또 자체 개발한 직무역량 콘텐츠와 항공운송 관련 콘텐츠 등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전 직원에게 제공하는 한편, 이를 한국어,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로도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글로벌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한항공이 ‘글로벌 리더’로 주목받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전 세계 항공사 공동체인 ‘스카이팀’을 주체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양호(趙亮鎬) 한진그룹 회장은 2000년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을 창설해 기존의 공동체인 ‘스타 얼라이언스’와 ‘원월드’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재 스카이팀은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등을 비롯한 11개 회원사와 314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적인 항공 동맹체가 됐다. 일찌감치 글로벌 스탠더드를 파악하고 실천에 나선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HRD 대상은 핵심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해 선진화된 제도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점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라며 “기업의 원동력은 미래를 위한 인재 양성인 만큼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한 투자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영현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실천 앞장서는 LG전자
 
  최고위임원 9명 중 6명이 외국인
 
  국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기업은 많지만, 이를 직접 실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이 LG전자다. 임원 중 10% 정도가 외국인이며, 최고위임원(C레벨) 9명 중 6명이 외국인이라는 점은 LG전자의 국제화 정도를 입증하는 셈이다. 또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특히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국내 대기업 CEO 중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장 강조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사업운영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조직 구성과 업무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가 LG전자의 핵심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여건)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이에 따라 사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글로벌 전문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영업・관리・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2006년부터 해외 우수인재를 대상으로 글로벌 리더 양성 교육을 실시해 왔다. 커리큘럼은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와 ‘글로벌 이노베이션 리더’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올해 초에는 ‘글로벌 구매방침서’를 발간해 전 직원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숙지하고 따를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올 들어 새롭게 개설한 것이 글로벌 특허전문가 교육과정이다. 3월 초 개설한 5개월 과정의 특허전문가 과정(IP: Intellectual Property)은 국제 협상과 소송, 라이선싱 등 분야에 걸쳐 35개 강의가 마련돼 있다. LG전자 최종국 러닝센터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분쟁이 격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글로벌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교육과정을 개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LG전자 인재들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글로벌 리더 양성기관 CCL
 
  기업 임원 대상 세계 최대의 비영리 교육기관
  CCL 교육참가자들이 서서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 CCL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리더십 교육기관이다.
  해외의 글로벌 리더 교육기관은 이미 높은 명성을 얻은 곳이 많다. 국내 기업의 인사・교육담당자들에게 “세계적인 리더십 교육기관이 어디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창조적리더십센터(CCL: 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와 GE 크로톤빌 연수원을 꼽는다.
 
  CCL은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최대의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미국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 브뤼셀, 싱가포르 4곳에 캠퍼스가 있으며 연 2만여 명이 교육을 수료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강생은 40만여 명.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비즈니스 교육기관’에서 대학이 아닌 기관으로는 유일하게 10위 안에 포함(7위)될 정도로 권위 있는 교육기관이다.
 
  CCL은 미국에서 화학회사를 경영하던 스미스 리처드슨이 1957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리더십 연구 재단을 모태로 1970년 설립됐다. 리처드슨은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리더가 필요하며, 리더십은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며 설립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CCL의 교육과정은 기업 CEO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 날짜는 5일이고 교육을 담당하는 코치는 100여 명이다. 교육이 끝나면 그 결과를 토대로 매년 교육수준이 업그레이드된다. 교육 내용은 자신을 파악하기, 토론하기, 리더십 평가, 변화에 대응하기, 향후 목표 세우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CCL을 수료한 한 기업인은 “국내에서 최고경영자과정도 수료했었지만,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CCL이 어떤 과정이라고 설명하기는 불가능할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힘든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성공에 대한 의지가 새롭게 솟아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에 눈독을 들인 삼성이 CCL 과정을 국내에 들여오기도 했다. 삼성SDS는 2008년 CCL과 ‘리더십 양성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그해 리더십교육과정(LEAP)을 개설했다. 삼성SDS 측은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 교육기관인 CCL의 교육과정을 국내 실정에 맞춰 개발한 만큼 LEAP 프로그램이 사원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LEAP 과정은 CCL과 마찬가지로 리더로서의 자기인식 ・변화에 대응하기・리더십 개발계획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혁신의 대명사, GE의 크로톤빌 연수원
 
  세계적인 리더 양성이 목표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제프리 이멜트 GE CEO(서있는 사람)가 연수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기업 GE를 만드는 리더십의 원동력이 바로 미국 뉴욕주 오시닝시(市) 크로톤빌에 위치한 크로톤빌 연수원이다. 기업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CEO의 이름을 따 ‘잭 웰치 리더십센터’로도 불리는 이 연수원은 원래 GE 직원을 위한 평범한 연수기관이었다. 그러나 1981년 취임한 CEO 잭 웰치가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크로톤빌을 ‘인재사관학교’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고, 매달 크로톤빌에서 수천 명의 직원을 만나고 전문가들과 함께 리더십에 대해 강의했다. 잭 웰치는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고, 크로톤빌의 명성도 높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現 GE CEO), 제임스 맥너니(現 보잉 CEO), 로버트 나델리(前 크라이슬러 CEO) 등 GE 출신들이 미국의 산업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GE와 크로톤빌의 명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삼성전자 이재용(李在鎔) 부사장이 2002년 이곳의 최고경영자 양성과정에 참가해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크로톤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밖에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단기연수를 받기도 했고, LG전자와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들이 크로톤빌을 벤치마킹하는 등 국내에서도 주목받는 교육기관이다.
 
  크로톤빌의 교육과정은 세계적인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3주간 진행되는 교육과정은 3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주에는 각종 강의를 듣고, 둘째 주에는 부여된 과제에 따라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셋째 주의 과제는 그동안 마련한 해결방안을 정리해 제프리 이멜트 CEO를 비롯한 최고경영진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크로톤빌 연수의 특징은 바로 이 최고경영자와의 만남.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 등 GE의 CEO들은 자주 연수원을 방문해 직원들과 만남을 가졌고, 리더십을 북돋워주는 한편 직원들에게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직원과 최고경영자가 정기적으로 마주앉아 발표와 토론을 갖는 이 교육방식은 세계의 기업들이 수없이 벤치마킹했다.
 
  GE는 지난해 세계 각국의 언론에 크로톤빌을 전면 공개했다. 내부 시설은 물론, 커리큘럼과 현황도 세세하게 공개했다. GE 관계자는 “21세기 리더십 프로그램을 새롭게 찾아나서면서 크로톤빌에도 개혁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발 경제 위기를 신속히 극복하기 위해 크로톤빌 사람들이 새로운 개혁에 나서고 있다”고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의 미래 인재 양성소 마쓰시타정경숙
 
  교육기관 3년 내내 기숙사 생활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
 
  日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은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리더 양성기관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전기 설립자)가 1979년 가나가와현에 설립한 이 기관은 원래 ‘일본의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했다. 커리큘럼도 서예와 다도를 익히며 일본의 전통가치를 배우는 등 다분히 일본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후루야마 가즈히로(古山和宏) 학장이 “앞으로는 글로벌 리더를 키울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글로벌 리더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마쓰시타정경숙은 일본에서 보기 드문 민간 교육기관으로 30년 동안 꾸준히 주목받았지만, 지난해 8월 일본 총선에서 국회의원 31명(민주당 25명, 자민당 6명)을 배출해 또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정경숙이 정치인 양성소는 아니다. 일본과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정경숙의 교육과정은 심신연마, 기본이념 탐구, 인간 탐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커리큘럼이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 검도와 다도 등 일본전통문화도 익혀야 한다.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해야 한다. 입학 자격조건은 따로 없지만, 나이는 35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주로 대졸자나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이 지원한다. 연간 수백 명이 지원하고 논문심사와 면접을 거쳐 10명 정도를 선발하며, 교육기간은 3년이다. 교육비는 전액 정경숙에서 부담한다. 지금까지 졸업생은 240여 명인데, 정치권과 경제계, 교육계 등으로 진출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출신 외국인 졸업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경숙이 다른 교육기관과 다른 점은 상근 강사가 없다는 것이다. 자수자득(自修自得, 스스로 익혀 깨침)이 정경숙의 교육방침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개발해 강사를 초빙하고 유명 강사에게 배우러 가기도 한다. 후루야마 가즈히로 학장은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탐구해 깨닫게 하는 것이 다른 교육기관과 차별화되는 점”이라며 “사회의 리더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지금까지 정경숙의 학생들은 지연이나 혈연, 학연이 부족한 정치지망생이 많았다. 일본 정계에서는 성공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난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처럼 독특한 교육방침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동안 일본의 리더를 많이 배출했지만, 향후 정경숙에서 세계적인 글로벌 리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왜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다양성·시장성

글로벌 스탠더드란 ‘떡을 가장 빨리 키운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된 가치나 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나라와 기업이 승자가 된다

全聖喆 IGM(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 1949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美 미네소타주립대 경영학 석사, 미네소타주립대 법학박사.
⊙ 美뉴욕주 변호사, 김&장 변호사,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무역협회 법률고문,
대통령정책기획비서관, 세종대 경영대학원장·부총장,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역임.

요즈음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은 물론 너도나도 ‘글로벌 스탠더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개는 ‘세계적 표준(또는 기준)’으로 답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말문이 막힌다. 상당수의 사람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미국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더드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떡을 가장 빨리 키운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된 가치(價値)나 제도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떡을 키우려고 한다. 그러나 그 접근법은 다 다르다. 즉 제도나 문화가 다른 것이다. 그 여러 가지 다른 제도나 문화 가운데서 ‘떡을 가장 빨리 키운다’고 입증된 제도나 문화, 그것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느 민족의 것이든, 어느 인종의 것이든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글로벌 스탠더드도 있다.
 
 
  늘어나는 한국식 글로벌 스탠더드
  최근 해외기업들에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의 선전(善戰)도 그와 같은 예가 될 것이다. G2시대, 아시아시대를 맞아 최근 흔히 생각하는 ‘미국식’만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빅 싱크 전략>, <체험 마케팅>의 저자인 번트 슈미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올해 봄 강의에서 삼성전자의 성공 비결을 가르친다고 한다. LG전자의 최고 공급망관리(SCM) 책임자인 디디에 슈네보 부사장은 국내외에서의 특별 강연을 통해 LG전자의 제품 공급망 관리기술을 알리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국제경제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은 지난 1월 LG전자의 성공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이런 것들은 바로 그 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채택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말로 ‘떡을 빨리 키우자’, ‘즉 부자가 되자’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미 세계적으로 입증(立證)이 된 것이다. 혼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는 것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아 그것을 적용하면 그만큼 노력이 절약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가치에 있어서의 글로벌 스탠더드, 제도에 있어서의 글로벌 스탠더드, 또 기법에 있어서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 우리 모두가 가장 잘 아는 글로벌 스탠더드 중에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가치’ 분야 글로벌 스탠더드의 대표적 예이다. 이 가치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민주적 정치제도’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기법으로, 예를 들어 가장 능률적인 ‘개표(開票) 방법’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도 이론적으로 수천, 수만 가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치다. 이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
 
 
  ‘떡’을 가장 빨리 키우는 가치: 투명성·다양성·시장성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의 대표적인 것은 ‘투명성’이다. 미국 엔론사(社)의 회계부정이 발각되면서 엔론의 주가(株價)는 순식간에 200분의 1(80달러에서 40센트)로 떨어졌다. 같은 사람, 같은 업종, 같은 자산, 같은 수익구조 등 회사의 모든 것이 같은데 투명성 하나가 없어지니 회사의 가치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부(富)를 구성하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가 자산도 자본도 기술도 아니고 ‘정직성’이라는 것이다.
 
  투명성이란 가치는 직원들로 하여금 누구나 쉽게 카피할 수 있는 수단, 예를 들어 접대나 뇌물 또는 공모(共謀)에 의해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경쟁력, 예를 들어 원가(原價)를 줄이고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것 같은 그런 본질적인 경쟁력을 도모하도록 강제한다는 뚜렷한 효용이 있는 가치이다. 회사가 투명해지면, 즉 비밀리에 쓸 돈이 없어지면 직원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예는 ‘다양성’이라는 가치이다. 다양성이란 사람을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적인 면, 즉 능력과 자질만을 보며 쓸 수 있는 문화를 이야기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기업이 껍데기를 기준으로 사람을 쓰고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차별, 고향에 따른 차별,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 껍데기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즉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만 보고 쓰는 것이 ‘다양성’이다. 다양성의 문화가 형성되면 자연히 능력 있는 사람이 적재적소에 배치된다. 그러면 자연히 떡이 커지는 것이다.
 
  셋째가 ‘시장성’이다. 인류가 경험해 보니 시장만큼 떡을 잘 키우는 제도가 없었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경제 활동에 있어 사람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면서, 그러나 방종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사실상 인류의 떡은 바로 이 시장이란 제도가 생기면서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커 왔다.
 
  시장에는 언뜻 보면 모순되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한쪽으로는 정부의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권력이 철저히 행사되는 곳, 그곳이 시장이다. 즉 자유를 최대한 주되 나쁜 짓 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제거할 때 시장은 제대로 작동한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근원적으로 보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서 온 문제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왼쪽은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오른쪽은 삼성전자의 LED TV.
 
  글로벌 스탠더드는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한 가지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에 대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결코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명성이라고 하면 ‘정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계속 들어온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요즈음 우리가 이야기하는 투명성과는 출발이 다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정직’이라는 가치는 윤리적 개념, 즉 ‘천당(天堂) 가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로서의 ‘투명성’은 ‘천당 가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즉 떡을 많이 키우기 위해서는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다양성은 윤리적으로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떡을 더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버터’ 냄새가 난다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하나도 그럴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가 정치 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이듯이 다른 분야에도 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으니 그것을 찾아서 적용하자는 것일 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 세상의 각 분야에 다 있다. 특히 경영에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경영의 각 분야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때이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각 분야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적용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올해 임명된 신임 법관 가운데 71%가 여성이었다. 필자는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사법시험 선발인원 확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등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나라였다. 즉 정부의 온갖 규제가 ‘시장성’의 발현을 가로막아 왔고, 정부나 기업이나 투명성이 약해서 공평성과 효율이 훼손되어 왔으며, 사람을 껍데기로 판단하고 쓰는 바람에 적재적소에 인재가 활용되지 않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발전 과정이란 것은 이런 가치 면에서의 발전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여태 완전한 선진국이 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면에서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소 특히하게 미국에서 변호사로 대형 로펌에서 일했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변호사로 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 나라의 가치와 제도를 다루는 일이다. 나는 미국에서 일할 당시 선진국이던 그 나라의 가치와 제도가 얼마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해 있는가를, 반면 한국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한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을 수없이 실감했다.
 
  예를 들어, 내가 속했던 법조 분야를 보자.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 중의 하나인 ‘시장성’의 기준에서 본다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경쟁이 활발히 일어나 그 결과로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는 상태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1991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변호사의 입장에서 고객들을 만나면서 내가 느낀 것은 한국에서는 변호사가 고객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객이 변호사를 섬기는 문화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장성의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변호사의 수가 너무 적었다. 변호사들이 고객을 섬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1995년에 청와대 정책기획실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사법개혁을 추진한 동기였다. 300명 뽑던 변호사를 1000명씩 뽑게 되면서 이제는 변호사가 고객을 섬기는 문화가 많이 자라고 있다.
 
 
  투명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다양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같이 껍데기(성별, 나이, 고향, 국적 등)에 매달려 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국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상처를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편견이 우리의 떡을 키우는 데 직접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여성할당제 등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10대 과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었다. 그동안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나이에 의한 차별, 외국인에 대한 차별, 고향에 대한 차별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사람을 그 본질, 즉 자질과 능력으로만 보고 쓸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떡은 엄청나게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런 면에서 갈 길이 멀다.
 
  투명성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필요도 없다. 공무원의 부패, 기업들의 부패, 특히 대기업 CEO들의 비윤리성,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의 경쟁력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직까지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이 된 예는 없다고 한다. 투명성은 어떤 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상징이다.
 
 
  기업들이여, 글로벌 스탠더드로 경영하라
 
  한 개인의 성공은 가장 중요하게 그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 즉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기업의 미래가 결정된다. 많은 기업인이 떡을 키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기업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게 그 기업을 지배하는 가치가 글로벌 스탠더드적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기업의 CEO와 임원들에게 ‘글로벌 스탠더드’적 경영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해 왔다. 그동안 약 1만명의 CEO와 임원들에게 경영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정말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떡을 키운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에서 교육을 받은 기업 중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이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기업들이다. 꼭 ‘글로벌 스탠더드’란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글로벌 스탠더드적인 가치, 예를 들어 투명성·다양성·시장성 같은 기본 가치를 열심히 추구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부단히 성장해 왔고 또 성장하고 있다.
 
  반면 쇠락한 기업 중에는 CEO가 폭탄주나 마시며 사람 사귀는 일에 더 몰두하는 기업이 많았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 웅진 그룹이다. 웅진의 윤석금(尹錫金) 회장을 2000년에 처음 만났을 때 그 회사는 불과 5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가진 중소기업이었다. 10년도 안된 동안 이 그룹은 거의 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그 누구보다 바로 이 글로벌 스탠더드적 가치에 충실한 사람이다. 웅진은 내가 아는 기업 중 비자금이 한 푼도 없는 거의 몇 안되는 기업 중의 하나이다. 웅진의 용인술(用人術)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웅진을 일으킨 창업 초기의 공신(功臣)들은 대부분 데모하다 퇴학(退學)당한 학생들이었다. 여성 인력을 가장 잘 활용한 기업이 바로 웅진이다. 윤 회장은 지금도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임원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강조한다. 심지어는 근무시간의 반은 일하고 나머지 반은 공부하라고까지 하는 사람이다. 공부라는 것이 결국 다른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아가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제 세계는 진정한 지구촌(地球村)이 되고 있다. 아시아의 시대라는 것은 사실 진정한 지구촌의 또 다른 표현일뿐이다. 앞으로 국가의 개념도 인종·민족의 개념도 많이 희석될 것이다. 그 대신 도시와 기업의 개념이 더 강해질 것이라 한다. EU의 발전과정과 같은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때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것이다. 인류의 삶을 더 풍요하고 행복하게 한다고 세계가 인정한 가치와 제도와 기법들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어느 나라가, 어느 기업이 그것들을 더 많이 채택하고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 궁극적인 승패(勝敗)의 기준이 될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를 맞는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 35위(서울), 금융개발지수 23위(한국)

금융시장 접근성, 금융시스템 안정성, 금융시장 자유화 등에서 미흡
금융 관련 규제 많은 가운데 투자자 보호 수준은 낮고 세금은 상대적으로 높다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 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홍콩 중문대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회사의 아시아본부 도시 선정’에 대한 팀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만약 당신이 글로벌 금융회사의 아시아담당 최고결정권자라면 본부를 어느 도시에 둘 것이며 그 도시를 선택한 근거를 기술하라는 숙제였다. 그런데 담당교수가 후보로 거론한 도시는 싱가포르·홍콩·도쿄(東京)·상하이(上海)뿐이었고 서울은 아예 빠져 있었다. 2년 전 해당 과정을 수강하고 있던 학생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영국의 런던시 정부는 2007년부터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GFCI·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를 작성・발표하고 있다. 작년 9월에 발표된 결과를 보면 서울의 순위는 35위로 조사대상 75개 도시 중 중간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35위는 그나마 직전 조사에 비해 순위가 18계단이나 급등한 것이었다. 1~10위는 런던·뉴욕·홍콩·싱가포르·선전(深圳)·취리히·도쿄·시카고·제네바·상하이의 순이었다. 10위권 밖의 아시아 도시로는 베이징(北京·22위)과 타이베이(臺北·24위)가 서울보다 앞섰고, 오사카(大阪·38위)와 쿠알라룸푸르(45위), 방콕(60위) 등이 뒤를 이었다.
 
  GFCI는 인력자원과 사업 환경, 사회적 인프라, 시장접근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각 도시의 금융분야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다. 그만큼 서울은 금융센터로서의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의 4개 후보도시 모두 10위 안에 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WEF 금융개발지수 23위
 
  GFCI는 런던시 정부가 만든 지수이면서 런던을 1위로 올려놓고 있다는 점에서 공신력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평가 결과를 찾아보자.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은 2008년부터 ‘금융개발지수(FDI・Financial Development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평가대상이 도시가 아니라 국가 레벨인데 영국은 2008년 2위에서 2009년에는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9년 2~10위는 호주·미국·싱가포르·홍콩·캐나다·스위스·네덜란드·일본·덴마크의 순이다. 4개 후보 도시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중에는 중국(26위)이 빠져 있다. 국가 전체적인 평가로 인해 일부 대도시의 장점 또는 특성이 중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52개국) 19위에서 2009년(55개국)에는 23위로 4계단 낮아졌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홍콩·일본·말레이시아(22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WEF는 보고서에서 평가내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평가부문은 물론 순위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또는 금융환경이 얼마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떨어져 있는가를 짚어볼 수 있다.
 
  WEF는 평가부문을 크게 제도적 환경, 사업환경,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은행서비스, 비(非)은행서비스, 금융시장의 발달 정도, 금융시장에의 접근도 등 7개 부문으로 나누고 있다. 제도적 환경은 금융부문의 자유화 정도, 기업지배구조, 법률 및 규제 정도 등을 담고 있고, 사업환경은 인력자원, 사회적 인프라, 세금, 사업운영비용 등을 평가하고 있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부문에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외에도 자국 통화가치의 안정성, 국가대외채무 위기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은행서비스에서는 금융기관의 규모와 효율성, 금융정보의 공개정도 등이 포함되고 비은행서비스 부문은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s)와 인수・합병(M&A), 보험 및 증권화 정도를 평가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발달 정도에서는 외환시장, 파생상품시장, 주식 및 채권시장의 발달 정도를 평가하고, 금융시장에의 접근도에서는 기업금융과 소비자금융의 접근도로 나눠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순위를 보면 사업환경과 비은행서비스, 금융시장, 은행서비스에서 각각 16위, 18위, 20위, 22위로 전체평균 23위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면에서는 28위로 밀리고 있고 제도적 환경과 금융시장에의 접근도는 각각 31위와 51위로 가장 뒤처지고 있다.
 
 
  소비자금융 접근도 45위
 

중국 상하이 진마오 센터에서 바라본 상하이의 금융가. 서울의 금융경쟁력은 상하이보다 한참 떨어진다.

  이번에는 이들 7개 부문의 세부 평가항목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7개 부문의 세부 평가항목은 3~4개로 모두 24개 항목이다. 24개 항목 중 우리나라가 10위권 안에 드는 항목은 보험이 6위로 유일하다. 우리나라의 수입보험료가 세계 8위(2008년 기준)이고 침투율(수입보험료/GDP)이 세계 5위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11~20위권에 드는 항목은 사회적 인프라(11위), 기업공개(14위), 인력자원(15위), 외환시장(15위) 등 11개 항목이다. 절반에 해당하는 나머지 12개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20위권 밖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악의 평가를 받은 부문은 기업금융에의 접근도(47위), 소비자금융에의 접근도(45위)로 그만큼 기업과 개인들이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항목도 43위를 기록하고 있고 금융부문의 자유화 정도(37위), 기업지배구조(31위), 세금(31위)도 30위권에 머물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들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WEF가 금융부문에 초점을 두고 평가했다면 금융뿐 아니라 제조업과 기타 서비스업 등 일반적인 사업환경을 평가한 결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Ease of Doing Business of 2010)’을 보면 우리나라는 183개국 중 19위를 차지하고 있다. 계약이행, 국제무역, 폐업(閉業) 등에서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은 반면 자산등록, 투자자 보호, 세금, 창업 등에서 크게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고용에서는 150위로 가장 낮은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 참고할 만한 평가결과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이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57개국 중 27위를 기록했는데 세부 항목에서 금융부문과 관련 있는 항목을 찾을 수 있다. 금융부문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의 경쟁력이라는 면에서 노사관계 생산성이 56위, 문화적 개방성이 56위, 이민법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저해 정도가 57위, 해고비용이 48위, 생활비용지수가 5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꼴찌거나 꼴찌에 가깝기 때문이다.
 
 
  금융규제,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결론적으로 주요기관들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을 고용하기도 해고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용했다고 하더라도 노사(勞使)관계에 어려움이 많은데다 생활비용까지 높다. 또한 금융관련 규제가 많은 가운데 투자자 보호 수준은 낮고 세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더욱이 문화적 개방성마저 낮아 외국 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한 사회이고, 평가에는 없지만 부자와 고소득자 등 가진 사람에 대한 거부감 또한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높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런 곳에 본부나 지점을 설치할 최고경영자(CEO)는 뭔가 모자라거나 지나치게 용감한 사람이 아닐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을 선두로 전 세계적으로 금융부문의 규제강화(re-regulation)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투자은행의 업무를 크게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고 글로벌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오바마 대통령 등 주요 금융선진국들의 금융개혁 논의에 적극 동참하면서 그 흐름은 물론 금융규제 강화 또는 금융개혁이 가져올 파장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내적인 금융부문 규제완화정책(financial deregul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아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할 때 뒤떨어지는 분야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획기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함으로써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물론 외국계 금융회사들도 보다 공정하면서도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규제를 강화할 부분은 강화하는 동시에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이른바 ‘이중 트랙(two tracks)’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성공할 경우 금융산업은 우리나라의 신(新)성장동력이 되면서 보다 많은 부가가치는 물론 고용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형 오너지배구조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한계 드러나
‘도요타 사태’는 주주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단기 업적주의 때문

尹暢賢 서울시립대 교수
⊙ 1960년 충북 청주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경제학과 졸업. 美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역임.
⊙ 現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 금융발전심의위 글로벌금융분과 위원장,
    기획재정부 재정정책자문위원.

외환 (外換)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4대 개혁과제가 주류(主流)를 이루었다. 금융·노동·정부 그리고 기업부문에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시행된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호되게 비판을 받은 것이 소위 재벌(財閥)체제였다. 재벌체제개혁을 기본으로 한 기업개혁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됐다.
 
  이후 주주(株主)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월스트리트에서 개발된 수많은 제도가 거의 여과없이 숨가쁘게 도입됐다. 이러한 제도들은 기업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식됐다. 이사회 제도를 활성화하고 이사회 구성원에 해당 기업에서 일하지 않는 사외(社外)이사를 다수 참여시키는 제도가 도입되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 외에도 감사위원회와 관련한 사항이나 출자(出資)구조와 관련한 다양한 조치도 도입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경우 일시적으로 폐지됐다가 다시 부활하는 상황까지 전개됐다.
 
  주지하다시피 주식회사제도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자본을 출자하여 만든 법인으로서 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는 내부자본과 함께 외부자본 곧 부채(負債)를 조달하여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필요한 경우 주식을 새로 발행하여 자본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부채도 중요한 자본조달 수단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일 문제가 생길 경우 부채에 대한 변제가 우선이 되고 주주는 부채를 갚고 남는 돈이 있을 때 자신의 몫을 챙기는 잔여가치청구권(residual claim)의 보유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직접 경영을 하지 않고 경영진으로 하여금 주주를 대신해서 기업을 경영하여 이익을 내도록 하는데 이때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즉 기업의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인-대리인 문제는 지배주주가 경영까지 담당하는 오너 경영모델을 도입함으로써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바로 우리 경제에 있어서 재벌체제, 즉 대기업 집단이 바로 이러한 오너 경영체제가 발전된 결과 나타난 모형이다.
 
 
  주주자본주의의 실패
  단기업적 위주의 경영으로 도요타의 위기를 부른 와타나베 가쓰아키 전 사장.
  그러나 오너경영체제의 상당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분이 100%가 아닌 오너가 100%에 준하는 힘을 행사하는 식의 독단적 경영을 한다든가 혹은 회사의 이익을 사적(私的)으로 챙기는 터널링(tunneling)의 행태를 보인다든가 하는 문제가 상당부분 지적되면서 이로 인해 다양한 견제장치가 고안됐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도 이러한 견제장치의 일부로 나타났다. 사외이사들이 임명되고 이들이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지분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오너경영진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지나친 수준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동안 금지됐던 지주(持株)회사제도도 허용되면서 이 제도가 마치 재벌체제가 가진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처럼 인식됐고 우리 경제에 많은 지주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시 분위기는 우리의 지배구조는 후진적이고 소유지배구조에 글로벌 스탠더드 내지는 모범답안이 있으며 우리가 이를 따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이 일반화됐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장기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로 재임했던 잭 웰치 같은 천재경영인은 지주회사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용해 주주에게 상당한 수익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주자본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지적했다. 또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도입된 스톡옵션 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영진에 대한 보상이 주가(株價)에 연동되다 보니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는 지극히 단기적 관점에서 경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주주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의 문제점이 상당부분 지적되고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거꾸로 우리나라의 경우 위기를 잘 극복하고 위기 이전보다 시장점유율을 늘리면서 한 단계 도약한 기업들은 주로 오너경영체제를 가진 기업이었다. 우리가 후진적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고치려고만 했던 경영구조가 아니라 장점이 상당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때문에 소유지배구조에는 모범답안이나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산업별 기업별로 다양한 형태가 상황에 따라 공존하면서 경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의 국민은행 사태도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분이 분산되어 지배주주가 없이 다수(多數)의 주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외이사가 주축이 된 이사회가 주요 경영사항은 물론 신임이사 임명과 CEO 임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구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이사회 구성원들과 CEO 간에 담합(談合)현상이 나타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문제 있는 경영진이 상대적으로 장기집권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사회가 경영진과 담합을 하는 구조를 통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소지가 나타난 것이다.
 
  도요타도 좋은 예이다. 소위 ‘와타나베의 저주’가 큰 원인이 된바, 전문경영인 와타나베 사장이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듯 비용절감만을 위해 노력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익을 조금이라고 더 내기 위해 납품 단가를 대폭 낮춘 싸구려 부품을 납품받기로 결정하였고, 결국 이 싸구려 부품은 도요타 자동차의 대량 리콜을 불러일으키면서 도요타의 명성에 금이 가게 됐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세계화의 상징으로 여겨진 도요타의 브랜드 가치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 바로 주주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단기 업적주의였던 셈이다. 주주의 평가 내지는 시장의 평가를 전제로 한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그때그때의 주가에 목을 매는 단기적 관점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少數 지분을 가진 오너의 기업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왼쪽 세번째)이 2010년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0’에서 특수 안경을 쓰고 3D 입체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사실 기업에 대해 소수(少數)지분을 가진 오너경영자가 지분보다 높은 수준의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 곧 CMS(Controlling Minority Shareholder)구조의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지배주주가 지분을 가진 기업은 피라미드나 환상형(環狀型) 순환출자 등을 통해 기업을 확장하고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보다 높은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어 소유권과 의결권이 달라지게 된다. 즉 기업이 보유한 다른 기업의 지분 때문에 계열사 내부지분을 이용하여 소유보다 더 높은 의결권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피라미드 출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추구에서 찾는 경향도 있는바, 피라미드 출자구조를 통해서 지배주주는 지배의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부를 착취(exploitation)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피라미드 출자의 경우 다단계 출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소유권과 의결권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러한 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가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추구와 터널링의 가능성을 키운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CMS구조가 이처럼 기업의 비(非)효율성을 증대시키기만 한다면, 거꾸로 이러한 구조를 가진 수많은 비효율적인 기업이 글로벌한 기업경쟁하에서 어떻게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설명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보면 이러한 구조에 상당한 장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CMS구조가 오너경영자의 사적이익을 추구하게 할 가능성을 키워주고 이로 인한 대리인 비용을 높일 수도 있지만, 이 구조 안에 이러한 대리인 비용을 제한할 수 있는 구조가 같이 구축되어 있다면 대리인 비용은 거꾸로 감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평판과 신뢰’다. 기업의 사회적 평판은 기업의 성과와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너경영자 내지 소수 지분 지배주주는 기업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할 수 있는 사적이익 추구와 터널링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CMS구조가 정착된 기업의 경우 장기적인 지배구조의 안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상호간 신뢰를 해칠 수 있는 부당한 터널링 유인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기업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경영권 상속에 대한 유인으로 인해 이러한 사회적 평판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는바, 가족기업의 장기적 관계 형성과 안정성으로 자본조달 비용이 타기업에 비해 낮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 내부에서 승진한 소수 지분 지배주주 경영진이 계열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경우, 사회적 평판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회사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게 되어 CMS구조의 장점이 부각되는 경우도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CMS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이유는 CMS구조가 가져오는 효율성의 증대요인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집단 구조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고 오히려 미국의 단일기업 구조가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다. 우리 경제의 향후 발전과정에서 기업집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선진국가들의 기업집단 현황과 그 형성배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국별로 금융시스템, 역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기업집단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기업집단의 장점 인정해야
 
  우리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혁신주도형 경제체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기업집단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인정하고, 기업집단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사적 이익이나 지대(地代)추구행위(rent seeking・자신이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독점성을 인위적으로 유지・강화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줄일 수 있도록 투명성 강화 장치들의 개선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여 지배의 사적이익과 지대추구가 어려워지도록 하는 동시에 기업집단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시장경쟁의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결국 소유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바, 각각의 경제 내에서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여 끊임없이 제도를 진화시켜 가는 것이 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경제력에 걸맞은 모형을 잘 정착시키되 역사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기본으로 한 경로의존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모형이 후진적이라는 식의 일방적 평가는 매우 위험하며, 이를 감안한 다양한 구조가 나름 특징과 장점을 살려 다각도로 정착될 수 있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글로벌 위기와 함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향후 이 문제에 대한 보다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장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이 곧 세계 표준이다

성장, 성과 창출, 인재 양성, 윤리경영, 사회적 책임 이행이 성공 기업의 조건
기초과학 분야 종사자들이 정당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 시급

李采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 1946년 경북 상주 출생.
⊙ 영남대 법학과 졸업.
⊙ 삼성물산 해외사업본부장, 삼성-GE 조인트벤처 대표, GE코리아 회장, GE헬스케어 아시아
    총괄사장, 한국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장 역임.

2008 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표류 중인 세계 경제호를 이끌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필자는 위기의 시대에 우리나라 경제를 번영의 길로 이끌 글로벌 스탠더드의 조건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경제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승자의 논리다. 그동안 지속가능한 경영의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 온 까닭이다. 일본 경제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일본식 경영이 표준이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미국이 세계 표준을 이끌었다. 시대에 따라 표준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필자는 승자가 되기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5가지 요소를 거론해 보고자 한다.
 
 
  성공 기업의 다섯 가지 조건
  인천국제공항은 공항 서비스 부문 5년 연속 세계 1위를 달성, 글로벌 스탠더드 공항이 되었다.
  첫째는 성장이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죽은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경영의 모든 문제는 기업의 성장이 멈추면서 나타난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투자가로부터 외면당하고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기업이 정체되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종업원들 또한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기업은 모두 쉼 없이 성장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째는 성과 창출이다.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주주(株主)와 고객 등 이해관계자로부터 불신(不信)을 당하고 직원들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
 
  셋째는 인재를 모으고 길러내는 일이다. 우수한 인재가 모이지 않고 또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면 기업은 영혼이 없는 기계장치와 다름없다. 현상유지와 이어지는 쇠락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넷째는 윤리경영 실천이다. 모든 기업 활동은 정직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비윤리적인 기업은 성장은커녕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철 장사에 만족하는 뜨내기 기업이 아니라면 윤리경영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다섯째는 사회적 책임 이행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만이 높아진 시민들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사회적 책임활동을 하지 않는 기업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 같은 5가지 원칙을 세우고 지난 20년 동안 글로벌 기업의 경영인으로 일했고, 지속가능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을 세계적인 글로벌 공항전문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천착하고 있는 나름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바로 변화와 혁신이다.
 
  변화는 이제 너무나 식상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더 이상 시도해볼 만한 새로운 것이 없다’고 여길 때쯤, 새로운 것이 등장해 그 기업은 물론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왔다. 이런 혁신과 변화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며, 그 바탕에는 언제나 기업이 커야 종사자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기업과 직원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때 기업은 성장의 선순환(善循環) 사이클에 올라타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의 환경도 ‘변화와 혁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지금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고 있다. 이른바 돈과 정보가 돈을 만드는 시대에서 지식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거대하고 힘 있는 지식으로 재편되며 새롭고 엄청난 부(富)가 창출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强小기업이 新성장 동력
 
  한국은 지난 반(半)세기 동안 세계가 놀라워할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는 경공업・중화학・전자공업 등 양적인 생산력 확대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 중심의 성장 동력이 가져다준 열매였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시대를 견인할 동력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산업이 될 것이다. 이에 발맞춰 경제・산업・기업・인력의 체질 변화와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경제체질이 급격히 바뀐 시대로 이끌 핵심 동인(動因)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한, 작지만 강한 기업과 관점의 전환이다.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의 주장대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발굴과 육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히든 챔피언’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목표와 전략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중간 규모의 기업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종업원 250명 이상 되는 기업의 비중이 전체 기업의 0.2%에 불과해 미국의 7.1%, 영국의 5.9%, 독일의 8.4%, 일본의 8.5%에 비해 매우 부족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혁신적인 관점의 전환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장에서 생존하고 승자로 우뚝 서기 위한 자양분이다. 얼마 전 강소기업을 소개하는 국내 TV 프로그램에서 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하는 업체의 CEO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회사의 목표는 와이퍼를 없애는 것이란다. 언뜻 이치에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리지만 와이퍼 없는 자동차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기업들이 경제 패러다임의 급변기에 신속히 대응하며 진화할 수 있는 유기체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신(新)성장동력 산업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밝혀줄 정보통신, 바이오, 나노기술,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산업에서 이른바 ‘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을 통해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할 인재의 육성은 가장 기본적인 숙제다. 그럼에도 ‘돈 되는’ 전공과 직업에 인재가 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초 과학 분야 종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생계 걱정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과 정당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과학기술이 기술혁신을 선도하며 첨단산업의 질적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로컬 스탠더드
 
  창의적 인재 육성과 맞물려 우려되는 것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잠재성장률 역시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 세계 평균(2.5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2명으로 나타나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2030년 이후에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고, 2040년 이후에는 1% 미만으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노령층의 고용을 촉진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경제적 부담 등으로 인해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부부들의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국경을 초월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생산가능 인력을 확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선수는 이제 세계 정상, 세계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설적이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출발점을 로컬 스탠더드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우리 경제와 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
 
  세계 각국의 공항 관계자 4300여 명이 인천공항을 배워 갔을 만큼 인천공항은 이제 세계 최정상 공항으로 성장했다. 인천공항에 오면 다른 공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한다.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느끼고, 즐기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들이 공항에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IT 기술은 인천공항을 그 어떤 공항보다 수속이 빠른 공항으로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공항 서비스 부문 5년 연속 세계 1위’라는 세계 공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수립했다.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것, 그것은 곧 세계 최고 공항에 착륙한다는 것.’
 
  인천공항을 방문한 어느 외국 손님이 남긴 글이다. 그 글 한 줄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다른 표현인 것 같아 가슴을 뛰게 한다.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하기 위해서는 한곳에 머무르지 말고 부단히 변화하고 혁신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기업,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

세계 1등급 기술 미국 546개, EU 397개, 일본 361개, 한국 43개
원가경쟁력 제고, 서비스산업 육성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孫京植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1939년 서울 출생.
⊙ 경기高, 서울大법대 졸업. 美오클라호마주립大 경영대학원 졸업.
    서울大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한일은행, 삼성화재 부회장 역임. 現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CJ그룹 회장,
    한중민간경제협의회장, FTA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다소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2007년 31위에서 2008년 27위로 4단계 뛰어올랐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보다 아직 낮은 수준이다. 국가경쟁력 향상의 요체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신속하게 글로벌 스탠더드화하는 것이다.
 
  경쟁력의 원천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일례로 IMD의 경쟁력 평가항목은 규제수준, 세율, 노사관계, 생산성, 수출액 등 300여 개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경쟁력의 요소들을 짧은 시일 내에 모두 강화해 나갈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핵심적 요소들을 글로벌 스탠더드화해야 한다. 특히 기술개발, 원가경쟁력 제고, 디자인·브랜드 개발, 서비스산업의 육성, 중소·중견기업의 발전, 사회시스템 개선 등이 중요하다.
 
 
  기업들의 R&D 투자, 미국의 12분의 1 수준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위해서는 첫째,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대외 지향형 성장전략이 불가피하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경쟁이 뒤따르게 된다. 세계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키워 싼 값에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면 이는 소비와 투자확대로 이어져 결국 국내총생산(GDP)의 규모가 커지게 될 것이다.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를 설립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 경제계, 학계 등이 참여해 행정규제 완화와 사회시스템 개혁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국가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나아가 우리가 글로벌 스탠더드화한 경제 대국이 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지식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기반 사회이다. 기술이 복잡다기하게 분화되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따라서 누가 더 빨리 새로운 지식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은 중국 등 개도국에 비해 3〜4년 정도 앞서 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최근 이들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반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볼 수 있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는 아직 크다. 세계 각국의 첨단기술 수준을 평가한 일본의 과학기술진흥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43개 기술에서 1등급을 받았다. 일본은 1등급 기술이 361개, EU는 397개, 미국은 546개나 된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연구·개발) 투자비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기업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는 수준이며, 중소기업도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절대 규모면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12분의 1, 일본의 5분의 1로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R&D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의 금융·세제 지원이 확대돼야 하고, 기업이 창의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기업이 힘써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브랜드 높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3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브랜드위원회’ 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둘째, ‘고비용 저효율’을 극복해 원가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토지, 물류비, 임금수준 등은 경쟁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산업용지 가격은 중국과 말레이시아 같은 경쟁국에 비해 5~10배 가까이 비싸다. 산업용지 공급을 확대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산업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휴 농지를 공장용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농업진흥지역 내의 공장증설도 제한적이나마 허용해야 한다.
 
  물류비도 일본이 매출액 대비 4.8%, 미국이 7.5%인 데 비해 우리는 9.7%에 달한다. 복잡한 물류구조를 체계화하고 물류시스템도 글로벌 스탠더드화해야 한다. 임금의 지나친 상승도 경계해야 한다.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수준에 불과한데도 임금 상승률은 오히려 높다. 생산성 증가율을 넘어서는 과도한 임금상승은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아울러 노동운동도 과거의 분배 중심의 대결구조에서 상생의 협력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디자인과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같은 품질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우리 한국산이 미국, 독일, 일본산보다 30% 정도 싼값에 팔리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와 기업,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디자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국가브랜드지수 순위는 33위에 그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립하여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 우리나라 기업과 상품도 세계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 비중 더 확대해야
 
  넷째,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서비스산업을 갖춰야 한다. 이제 서비스산업은 국제경쟁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서는 나라의 대부분은 서비스 산업이 그 나라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데 비해 우리는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높고 내수를 확충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서비스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을 해소하고 각종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의료 부문에 영리법인이 참여해 보다 질 좋은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료와 관광을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관광수입도 올리는 이중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교육도 사업’이라는 인식하에 외국 유학생들을 받아들이고 해외로 나가는 학생을 국내에서 흡수해야 한다.
 
  서비스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 서비스 산업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측면이나 전력·가스를 사용하는 데 있어 저렴한 산업용 요금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금융, 회계, 컨설팅, 컨벤션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강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체수의 99%, 고용의 87%, 생산의 50%, 수출의 34%를 맡고 있는 우리 경제의 뿌리이다. 우리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강한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술, 자금, 판로, 인력 등 여러 부문에서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가업승계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상속세를 인하해야 한다. 대물림을 할 경우 기술과 경영 노하우가 축척되고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져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중견기업 육성도 필수적이다. 다양한 중견기업 지원제도를 통해 대기업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아줘야 한다. 중견기업에 대한 조세, 금융, 기술개발 등의 지원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 쟁의, 불법시위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최대 12조원에 이르고 사회갈등으로 인한 손실규모가 GDP의 27%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민이 법질서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지킨다면 성장률이 연간 1%P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준법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나라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고 법과 질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런 경제를 이끌어가는 견인차는 기업이다. 기업 활동이 왕성하게 이뤄져야 성장이 가능하다. 기업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하게 사업을 일궈 성공을 거둔 기업인들이 존경받고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기업 또한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창의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 완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조직 간 교류하는 개방적 혁신과 지식재산 관리의 중요성에 눈떠야

양적 성장 이룬 R&D 능력, 이제는 질적으로 도약해야
기초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초

李載用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장
⊙ 1955년 서울 출생.
⊙ 신일高, 연세大 전자학과 졸업. 美아이오와주립大 전기학 석사, 전산공학 박사.
⊙ 포항공대 부교수, 연세대 IT연구단장, SK텔레콤 CEO아카데미 자문교수 역임.
    現 연세대 공과대학 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현재와 미래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꾀하기 위한 세계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 핵심에는 과학기술이 있다.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과학기술 능력은 그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지식 역량, 발전 가능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수많은 인재와 자원이 과학기술 분야로 투입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성공적으로 세계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온 국가들의 특징은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활동에 성공한 국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R&D 활동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사회의 인프라 및 다른 부문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 ‘그 성과는 어떻게 확산되고 공유돼야 하는가’의 문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제다. 전(全) 세계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해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무형의 지식이 주요 자산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연구개발은 새로운 전략과 방법론을 추구해야만 한다.
 
 
  특허 출원 많지만 기술이전은 낮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여 년간 R&D에 대한 투입과 양적 성장에 있어서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정부의 연구개발투자 비율과 특허출원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R&D 투입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기술무역수지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2007년에는 24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기술소비형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술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창출된 지식재산의 질적(質的) 수준이 아직 낮고,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국내의 특허출원이 많음에도 기술이전이나 사업화 지표는 매우 낮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의 연구지표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인다. 한 정부출연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톱10 대학의 양적인 논문 수준은 이미 미국 톱10 대학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한다. 특히 재료나 화학공정, 에너지자원, 정보 분야의 논문 성과는 미국 상위권 대학의 200% 이상을 상회하고 있다. 논문의 피인용 수와 논문당 피인용도 수준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으나, 아직은 질적 측면의 제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표들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역량이 그동안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발전 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R&D스탠더드, 정해진 법칙은 없어
  지난 2008년1월18일,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 한 산학연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R&D 분야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무엇일까?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기술,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는 정해진 특정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수월성(excellence)만이 유일한 스탠더드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탁월한 R&D 스탠더드를 성취하는 과정에 어떤 정해진 법칙이나 어떤 프로토타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혁신 모델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이폰의 성공이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아이폰은 공통, 공용의 표준화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툴을 활용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의 결합을 통해 제품 자체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는 데 성공의 비결이 있다. R&D 혁신의 메커니즘 자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통해 글로벌 R&D 스탠더드를 주도할 것인가?
 
  첫째, 개방적 혁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개방적 혁신이란 본래 연구, 개발, 상업화에 이르는 일련의 혁신 과정을 개방해 외부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혁신의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여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려는 기술혁신의 방법론을 의미한다. 주로 기업에 의해 활용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정부, 대학, 연구기관에서 그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개방적 혁신의 가치는 무엇보다 특정 기업에 의한 지식 독점이 한계에 이르고 지식의 원천이 개인과 조직, 여러 집단으로 다양화되는 현상, 인력 유동성이 활발해지고 전 지구화되는 현상, 기술개발의 비용 증가와 제품 사이클 단축이라는 상황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의 연구능력과 혁신능력이 크게 신장됐다. 이제는 이들 사이의 상호보완적 협력 관계와 생산적 경쟁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됐다. 각 혁신 주체가 자신의 영역에서만 활동하게 된다면, 이것은 혁신의 비용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각 조직이 지닌 인적, 물적, 제도적 자원의 교류와 연계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방적 혁신이 조직화되면서 다양한 중개 조직의 등장과 역할도 커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인시그마(NineSigma)와 이노센티브(InnoCentive)와 같은 인터넷 기반기술 중개인 집단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중개인 집단은 세계 각국의 전문가로 구성된 ‘해결자(solver)’ 네트워크를 먼저 구성하고 이들을 기술 문제 해결을 의뢰하는 고객들과 연결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중개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능케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기업이 의뢰한 기술적 문제를 중립적 언어로 다시 표현함으로써 의뢰 기업의 익명성과 영업 비밀을 보호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문제를 공개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능력 양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식재산의 관리라는 두 번째 이슈와 연결된다.
 
 
  지식재산권 보존 취약한 대학들
 
  지식재산의 전략적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들의 경우에는 점증하는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과 소송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워 왔지만 대학은 이에 대해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대학과 정부의 연구기관들은 특허를 R&D 성과지표의 하나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특허의 전략적 활용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 왔다.
 
  이제는 지식재산을 중요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술 이전과 산학협력을 증대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 비율은 2004년 20.8%에서 2007년 27.4%로 증가했지만 대학만 별도로 보면 각각 8.2%와 14.1%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대학에서는 지식재산 관리와 활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방적 혁신과 지식재산의 관리 문제 해결과 더불어 정부, 대학, 연구자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몇 가지 문제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글로벌 R&D 스탠더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더욱 늘어야 한다. 국내 R&D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초원천기술의 확보가 미흡하고, 중점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뿐 아니라 전략적 차원의 기초연구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역량을 키워 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대학은 질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발전시키고 지식재산의 관리 및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 더욱 주력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SCI 논문의 급속한 성장은 국내 연구진의 연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질적 차원의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대학 평가 및 연구역량 평가방식에 반영돼야 한다. 일본 도쿄대의 경우, 도쿄대 기술사업화 전문회사 (CASTI)와 도쿄대 전용 벤처캐피털 (UTEC)이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대학도 기술이전 전문기관(TLO) 전문화와 전문펀드 운용 등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등을 실행해야 한다. 연구자들 스스로가 지식재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과 연구자 집단 전체의 ‘윤리적 책임과 행동’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짧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성공의 걸어온 길과 방법론에 의지하기보다는 도전하고 개척해야 할 새 길을 향해 우리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R&D의 길,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

 

국가채무에 公기업 부채, 民資 사업, 지방정부 채무 등 포함시켜야

1997년 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 12년 만에 362조원으로 증가
公기업 부채 등 포함시키면 688조~1439조원 추산

安鍾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1959년 대구 출생.
⊙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겸 연구조정부장,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 객원교수 역임.
⊙ 現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외환 위기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재정이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재정건전성 회복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부분 국가의 재정에 빨간 신호가 켜질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최근 남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재정적자(赤字)와 국가부채의 급증이 문제가 돼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새로운 위기의 불씨가 될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것이다.
 
  EU는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Maastricht Treaty)에서 ‘GDP 대비 재정적자 3%, 국가채무 60% 미만’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EU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2010년 2월 현재 27개 EU회원국 중에서 무려 18개국이 이 조건을 준수하지 못해 EU집행부로부터 시정조치 결정을 받았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2009년 재정적자가 GDP 대비 12.7% 수준에 달했고 국가채무비율은 102.6%로 급증할 정도여서 EU로부터 지속적으로 시정요구를 받고 있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프랑스·미국·독일 등 다른 선진국들의 국가채무 규모도 상당히 크다. 그런데도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PIGS) 그룹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국가가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비교적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거나, 여러 이해집단의 반발로 재정지출을 축소하기가 힘들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그리스는 2007~2009년 기간 동안 정부지출이 GDP 대비 45%에서 52%로 늘어났을 정도다.
 
 
  국가부채에 공기업 부채 등도 포함해야
 
  이들 국가의 국가채무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국민저축률 때문이다. 그리스는 국민저축률이 7.2% 수준이어서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채권을 소화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만큼 정부지출 감소가 힘들어진 상태다. 200%가 넘는 국가채무 비율을 갖고 있는 일본이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높은 저축률 때문임을 감안하면,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국가 디폴트(default)로 이어질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 우리도 이제는 재정건전성 회복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왜냐하면 정부 발표 국가채무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전 1997년 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09년에는 362조원으로, 12년 만에 6배가 됐을 정도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 증가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에만 53조원이 증가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할 경우, 그동안 포함시키지 않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상당부분 있기 때문이다. 재정규율에 엄격한 EU국가들의 경우 일반정부금융부채라는 폭넓은 개념을 사용하는 데 비해, 우리는 최대한 협소한 국가채무 개념을 사용한다.
 
  공기업 부채의 경우, IMF 기준으로는 정부부채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IMF가 이러한 공기업 부채를 무시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IMF는 1999~2009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준(準)활동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해서 관리할 것을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공기업과 같은 기관들이 정부사업을 대행(代行)할 경우 이를 명확히 파악하고, 수량화하여 공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우리도 IMF나 OECD가 만든 기준에 따르되, 유형별로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부채들을 조사하고 공개한 뒤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재정운용이라 할 수 있다. 즉 IMF 기준에 의한 국가채무가 2009년 현재 GDP 대비 35.6%인 것은 분명하지만, 공기업 부채 중 국민부담이 되는 부분과 공적(公的)연금의 부족 적립금 등을 별도로 파악하여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다. 이러한 여러 유형의 부채를 포함할 경우 사실상 국가채무는 최저 688조원(2007년 기준, 옥동석 인천대 교수)에서 최대 1439조원 (2008년 기준, 이한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추산된다.
 
 
  공적 연금, 임대형 민자사업 등 유의해야
  작년 7월 개통된 서울-용인 간 민자고속도로. 국가채무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공기업 채무나 민자사업도 포함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기업이 갖고 있는 모든 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서는 곤란하다.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를 그 나머지 부채와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원가(原價) 이하로 낮은 공공요금을 부과해서 발생하는 공기업의 부채도 그 규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기요금, 수도요금 그리고 고속도로 통행료에 대한 정확한 원가계산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전, 수자원공사 그리고 도로공사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요금을 부과해서 생긴 적자를 보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부채를 지게 되었나를 파악할 수 있다.
 
  공적연금과 관련해서 미래에 발생하게 될 채무도 반드시 파악해 관리해야 한다. 민간 보험회사가 늘 책임준비금 부족액을 계산해서 보험료를 조정하듯이 공적연금도 책임준비금 부족액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연금채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미래에 발생할 재정부담, 즉 국민부담의 요소로서 2005년 본격 시행된 임대형 민자(民資)사업(BTL사업)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 사업은 민간이 시설을 건설하되 운영권은 정부가 보유하는 형태의 사업으로서, 민간이 시설물을 준공하면 그때부터 정부는 임대료 명분으로 매년 할부금을 갚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재정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있지만, 시설물이 완공되는 시점부터는 정부의 지출이 발생하여 적자 요인과 부채증가 요인이 된다.
 
  지금까지 나열한 여러 가지 국가채무 유형을 별도로 조사하고 공개하는 것은 나랏빚이 어디에 얼마나 있고,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를 파악하는 데 핵심이 된다. 그래야 유형별 빚을 어떻게 관리하고 줄여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고, 나아가 미래의 국민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고, 또 통일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 발생할 막대한 재정부담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를 상임위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재정규율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첫째, 국회에서의 재정규율을 확립하는 것이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하고 확정한 뒤 결산하는 막중한 책무를 가진 우리 국회는 정치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나도 취약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한 예산과 결산 심사는 OECD 회원국으로서 창피할 정도다. 상임위가 아닌 특위로서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예결위원이 되는 우리의 예결위로서는 재정규율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미국의 경우 상원과 하원에 별도로 예산위원회와 지출승인위원회를 두고서 모든 상임위 예산에 대한 통제를 하고 있다. 이처럼 철저한 사전·사후(事前·事後) 점검을 하는 것은 낭비요인이 크고 실효성이 낮은 예산사업이 지속되는 것을 차단하여 정부지출의 효율성을 높임과 동시에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예결위를 상임위로 전환하여 예·결산 심사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연중(年中) 내내 철저한 예·결산 심사에 집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중·장기 재정계획을 수립, 매년 재정운용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10년 후 각 분야별·부처별 목표를 설정,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매년 재정운용계획 등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와 통일이라는 미래 재정부담 변수를 갖고 있는 경우 이러한 중장기 재정계획의 수립과 활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중장기재정계획은 국회 차원에서도 예결위 내에 소위(小委)를 두어서 관리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나라살림에 있어서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라살림에 대한 각종 정보를 사전에 최대한 신속히 파악하여 공개한 뒤 철저히 관리해야 된다는 것은 IMF 등 모든 국제기구가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겠다.
 
  이제는 통계작성상 국제기준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에서 벗어나서 모든 공공기관의 준재정 활동을 파악하여 관리하는 재정규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재정규율을 확립하기 위한 이러한 중앙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재정의 블랙홀’이라 알려져 있는 지방정부 재정에 대한 파악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 잡는 것이 각국의 과제

노동자 권리 확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하는 방향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발전
ILO·GRI 등 글로벌 스탠더드 마련에 앞장

李張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 1963년 서울 출생.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美 시카고大 대학원 박사.
⊙ 제일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대통령비서실 삶의질향상기획단 정책팀장 역임.

노동 문제 및 노사관계는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 문제를 논의할 때면 늘 ‘글로벌 스탠더드’가 화두가 돼 왔다. 노사가 쉽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 전문가와 언론은 흔히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라’고 제안한다. 노동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란 도대체 무엇일까?
 
  노동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크게 규범적인 부분과 경험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규범적인 부분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가치이고, 경험적 부분은 현실에서 무엇이 더 이익이 될 수 있는지를 제시해 주는 기준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즉 규범과 경험, 가치와 이익은 본질적으로 상호간에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분야는 사회적 동의가 형성되기 어렵고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괴리되기 쉽다. 가치는 바람직하지만 가치의 그늘에서 이익을 찾는 것이 다반사이고, 경험 사례가 주는 의미는 중요하지만 애써 자신은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자위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규범적 부분은 대부분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고 산업과 사회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선 약자인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반면 경험적인 부분은 대부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따르기 위해선 시장이 필요로 하는 유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 사회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이 두 가지의 출발지점이 반드시 화해할 수 없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의 추구도 사회적 안녕을 지키자는 가이드라인을 넘어설 수 없고 노동자의 기본권 추구도 구체적인 고용책임을 맡은 기업들의 지속성장 없이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ILO뿐만아니라 ISO도 노동 표준 공표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나라의 노사정(勞使政)이 지향하고 지켜야 할 핵심적인 노동기준으로, 이른바 ‘핵심 협약’을 역사적으로 정립해 왔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노동3권,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의 금지, 차별노동의 철폐가 그것이다.
 
  ILO의 핵심노동기준은 이후에도 선진국들의 FTA(자유무역협정)에서도 반영되고 지난 10년 동안은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협약)’ 운동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산돼 왔다. 그리고 올해 10월에는 국제표준화기구인 ISO가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을 공표하기에 이르렀고 그 안에는 핵심노동기준을 비롯한 광범위한 노동자 보호조항이 담겨 있다.
 
  ISO 안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은 사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범주 및 실천과제들과 거의 동일하다. 환경, 노동, 인권은 물론이고 지배구조와 공정거래, 소비자보호 등이 다 포함된다. 특히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ILO와 ISO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긴밀히 표준작업에서 협력해 왔다.
 
  또 이미 우리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상당히 친숙해진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전 세계에 통용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입안하기 위한 연구센터)도 작업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이들이 가진 노동분야의 주요 기준들과 이슈들은 통합적으로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명시적으로, 유엔의 인권협약이나 ILO의 노동권 핵심협약은 우선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점을 주도 세력들이 강조해 왔다.
 
 
  노동시장 유연성 점차 강화돼
  동유럽의 한 도시에서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조화시킨 선진국들은 경제발전을 이뤄왔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같이 노동자의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하도록 한 것은 규범적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발전해 온 경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는 노동시장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발전해 왔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란 기업 입장에선 바람직한 일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고, 이 같은 명제는 시장주의자들이 이론을 맹신한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유연하지 않은 노동시장은 기업의 해외이탈과 인력활용의 이중구조화를 촉진해 왔다는 점에서 단지 기업만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 전체적인 관심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로 주목받고 있는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사례들도 전통적인 유럽식 고용보호가 아닌 유연한 노동시장과의 조화를 모색한 데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전성은 서로 상충하는 가치로 알려져 있다.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을 높이다 보면 고용의 안전성이 떨어지고, 안전성을 지키려다 보면 유연성이 억제된다.
 
  그러나 양자를 잘 조화시키고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요 선진국의 사례도 유연성과 안전성의 조화 및 병행이 노동시장의 성과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성과도 높이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연안전성 모델은 이렇게 각국이 처한 환경과 조건, 역사적 경험 및 제도들에 따라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연안전성 모델과 개념들이 공유하는 요소를 든다면, 기업과 공공부문 내부에서의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노선에서 고용정책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거나 기업 밖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권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노선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연안전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량적인 유연성이 아니라 기능적인 유연성을 시장과 기업조직 안에서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능적 유연화 수준이 낮은 것은 노동조합의 단기주의적이고도 경직적인 대응 전략도 문제이지만 기업들의 인적자원관리 노사관계에서 효율성의 문제를 경원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사의 노력이 미비하다 보니 결국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 왜곡되고 각종의 책임 전가방식이 팽배해졌다. 만약 생산성의 문제에 대해 노사가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외주화와 비정규직화가 악화되지 않고 상생의 연합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정의와 효율은 노사 관계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수레의 양 바퀴라고 할 수 있다.
 
 
  유연성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 잡는 것이 과제
 
  매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생산성은 선진국의 50% 이하라고 한다. 대기업은 근로자 참여가 부족한 기술혁신에 주력했고, 중소기업은 가격경쟁력에 기초한 생산방식 고수로 저숙련 생산구조가 고착화됨에 따라 낮은 생산성이 유지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OECD 국가 중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의 산재율을 더하면 우리의 노동현장 경쟁력은 위기 징후를 보여주게 된다.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이 동시에 보장되는 바람직한 길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고, 국제적인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은 저부가가치 생산 및 서비스 노동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어떻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할 수 있을까? 노사가 생산성의 의제를 협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작업장 혁신이다. 노사협력의 전제하에 근로자의 삶의 질과 기업의 경쟁력을 동시에 제고하기 위한 절충점이 작업장 혁신인 것이다. 양적인 고도성장과 양적인 구조조정에 익숙한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에서 작업장 혁신처럼 기능적 변화에 대한 신뢰와 협력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길을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 기업의 제반 문제들, 즉 생산기지 이전과 고임금 구조·비정규직 양산 등을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선진국의 절반에 그치는 생산성의 제고를 위해 노사가 협력할 수 있는 제도, 관행,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실천하며, 이런 생산성 네트워크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 업종, 지역 정부에 구현하도록 정책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작업장 혁신 추진체계 갖춰야
 
  이제 우리는 작업장 혁신의 의제를 국가의 미래를 담보해 줄 엄중한 국가적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분산화된 정책적 노력을 현장을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
 
  근로자 참여와 정보공유, 근무체계와 작업공정개선, 교육훈련 및 지식근로자 육성, 숙련 및 성과연동 보상체계, 노사파트너십 구축 등을 포함해서 작업장 혁신사업을 통합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작업장혁신사업은 아울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컨설팅 수요의 정확한 진단 및 맞춤식(패키지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업장 혁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국가적으로 면밀한 추진체계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성과가 있다. 미국 기업들이 노사자율로 실시한 1990년대 작업장 혁신 성공사례들이 최근 들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반면, 독일이나 핀란드 등 북유럽의 작업장 혁신이 상대적 성과가 높았던 것은 정부차원의 추진체계와 전문적 역량을 갖춘 지원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노동기본권 존중, 유연안전성의 확보를 통한 세계화 경쟁력 높이기, 작업장 혁신을 통한 노사 간 상생은 현재 노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진화해 왔다.
 
  과거 영미형(英美形)과 유럽형, 산별과 기업별 등 이른바 양극단 모델로 분류해서 회자되던 노동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패는 양쪽 그룹 모두에서 나타났고 성공은 상대적으로 양쪽에서 먼저 조화를 찾아낸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고용 유연성 해쳐

법제적 측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접근, 투쟁 위주의 의식이 문제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 국제비교에서 OECD 최고수준

崔榮起 한국노사관계학회장·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1952년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텍사스대(오스틴) 경제학 박사.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원장·석좌연구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 위원, 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위원 역임.
⊙ 現 한국노사관계학회장,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볼 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부문의 하나로 지목되는 분야가 노동시장·노사(勞使)관계 관련 제도와 의식일 것이다. 선진화의 주요 걸림돌 중 하나도 바로 낙후된 노사관계다.
 
  그동안 정부가 이 부문의 개혁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노사개혁을 세계화 개혁의 주요 항목으로 내세우면서 1996년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 대화기구를 설치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노동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했다. 비록 애초 목표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노동기본권의 신장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반영해 노동법을 큰 폭으로 손질할 수 있었다. 기업 차원에서도 노조 설립과 자율적인 단체교섭이 일반화하면서 노사자율의 노사관계 질서가 형성돼 왔다. 덕분에 최근에는 1987년 이후의 폭발적인 노사분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1998년 외환(外換)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도 대대적인 노사관련 개혁이 있었다. 정리해고 조건의 완화를 골자로 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교원·공무원의 단결권 보장 등 노동기본권의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이 노사정(勞使政)의 대타협으로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법제도 개선을 거치며 노동관련 법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볼 때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비됐다. 복수(複數)노조 도입과 전임자(專任者)제도 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이번 노동법 개정으로 법제도적 측면에서의 선진화는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사회안전망과 교육·주택에 대한 정부 투자 최하위 수준
  77일간 계속된 쌍용차 사태 등 고용조정을 둘러싼 극한투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있다.
  재계와 경제정책 당국에서는 고용관련 규제 완화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사실 고용관련 법제도에 근본적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정리해고)의 경우, 1998년 법 개정이 있었지만 기존의 판례(判例)를 법정화(法定化)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비정규직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형태의 고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강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렇지만 지난 2007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와 사용기간제한(2년)을 내용으로 하는 법규가 신설되면서 법적인 고용경직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OECD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법적 고용경직성 정도는 30개 OECD 국가에서 중간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2003년 기준으로 12위였다가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 이후인 2008년에 14위로 하락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자들이 체감하는 고용 경직성은 그 이상으로 매우 높고, 실제 해고비용도 높은 편이다.
 
  고용경직성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는 연공서열(年功序列)에 기초한 임금과 인사제도다. 고도성장·완전고용 시대에 운용되던 연공형 임금체계와 인사제도는 저성장·고용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경직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비정규직 채용이 늘고, 기업의 고용조정 관련 비용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사회안전망 수준과 함께 봐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의 사회안전망과 교육·주택에 대한 정부 투자는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 10여 년간 사회안전망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지만 OECD 평균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고용조정에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이 때문에 기업의 해고비용이 높아지는 것이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높은 교육·주택 비용과 노후(老後) 연금체계의 미비도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중요 변수다.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화는 국가의 사회안전망 투자, 기업 차원의 인사제도 및 임금체계 개혁과 맞물려 있는 과제다.
 


  고용 유연성 문제를 제외하면, 이제 노동법제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노동시장·노사관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아마도 법제도 운영의 소프트웨어가 부실하고, 운영주체의 의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과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1987년식 노동운동이다. 권위주의적 기업문화나 정부의 과도한 친(親)기업적인 행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건강한 노동운동 리더십의 확립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대중투쟁의 관성(慣性)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떠한 경우라도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절차에 따라 노사갈등을 풀어가겠다는 노동운동 지도부의 확고한 입장천명이 필요하다.
 


 
  노조의 파업권 남용 개선돼야
 
  노조의 파업권 남용도 개선돼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안정을 찾아가던 노사관계는 1998년 이후의 기업단위 구조조정에 휘말려 다시 한 번 극단적인 갈등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여파가 지나갔어도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아직도 OECD 최고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골적인 파업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업장 내에서 벌어지는 노동조합의 크고 작은 불법적인 업무방해 행위(점거·농성·사보타주 등)를 근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사업장 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노조의 불법행위나 부당한 경영개입 관행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노사단체의 체계적인 계도와 교육으로 스스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사(使)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의 보다 엄격한 감시도 필요하다. 특히 앞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소지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시장 원리 도입하는 방향으로 복지 시스템 개혁해야

현재의 복지 모델은 2차 대전 후 서구 사회에 바탕,
선진국에서는 公·私 부문 협력, 고용을 통한 복지 강조 추세

金元植 건국대 교수·前 한국사회보장학회장
⊙ 1956년 서울 출생.
⊙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美텍사스A&M대 경제학 박사.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사회과학대학장, 공무원연금제도개혁위 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장 역임.
⊙ 現 21세기근로복지연구회장, 국민연금심의위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 고용보험전문위원.

우리나라가 1995년 OECD에 가입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경제적으로 OECD의 30여 개 국가 가운데 우리는 이미 중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 수준에서는 100년 이상의 복지전통을 가진 선진국들과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격차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생계비 이하 소득의 취약계층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자 및 일반국민들을 위해 4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및 장기노인요양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저(低)소득층이 이러한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다수의 근로자가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패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고 있는 비율은 7%로 상대적 빈곤계층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공적(公的)연금 가입비율은 전체 인구의 65%, 고용보험은 3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가입률이 93%에 달하지만, 진료비 보장 수준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복지비 지출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득재(再)분배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해 왔다. 이는 기업들에 인건비 부담으로 전가(轉嫁)됐고, 영세기업들로 하여금 사회보험료 부담을 기피하게 해 저소득 근로자들이 사회안전망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겉보기에는 상당히 잘 갖추어진 것 같아 보여도, 공공복지비 지출은 다른 어떤 OECD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예를 들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공공복지비는 국내총생산의 6.9%로 일본 18.6%, 미국 15.9%, 독일 26.7%, 영국 21.3% 등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복지비 수준이 위의 나라들을 추월할 것이다. 하지만 복지비의 증가는 정부재정이나 경제발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복지제도를 단기간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낡은 서구식 제도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복지제도들이 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1980년대부터 신(新)자유주의에 입각해 복지제도를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980년대 초 대처 총리 시절부터 복지제도를 대폭적으로 축소하면서, 고용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유럽 국가도 복지제도의 운영에 경쟁개념을 도입하고, 민간부문과의 공조(共助)를 시도해 왔다.
 
 
  선진국의 사회적 환경 변화
  고용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것이 선진국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다.
  선진국들이 복지제도를 개혁하게 된 계기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도입되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는 사회적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제도는 다음과 같은 가정(假定)을 바탕으로 구축됐다.
 
  첫째, 당시의 복지제도는 여성이 앞으로도 가사(家事)만을 담당하리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었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여성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지원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兩立)을 원한다.
 
  둘째, 자본시장의 활성화로 근로자들의 자본소득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개인의 소득은 주로 근로소득으로 구성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아직도 자본소득을 포함한 전체 소득이 아닌 근로소득에만 기초해 사회보험료 및 급여가 책정되고 있다.
 
  셋째, 저소득층도 고용이나 취업 기회가 주어지면 계층상승을 할 수 있음에도, 복지제도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이나 취업교육, 다양한 사회경제적 정보로부터의 소외에 대해 무관심해 왔다.
 
  넷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선진 각국은 국민연금을 부과(pay-as-you-go)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인구가 정체(停滯), 감소하면서 공적연금의 적자(赤字)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국가재정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1992년 이탈리아의 외환(外換) 위기나 최근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는 과도한 공적연금 적자가 한 원인이었다.
 
  다섯째, 인간의 평균수명이 지금처럼 빠르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1930년대의 평균수명인 45세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이보다 적어도 30년 이상 평균수명이 연장됐다. 더욱이 의료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평균수명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상이 불가능하다.
 
 
  선진국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
 
  이상의 가정하에 운영되어 온 복지제도는 사실상 사회 전반에 걸쳐서 도덕적 해이(解弛)를 낳았고, 복지예산의 낭비와 정부지출 증대로 이어지면서 근로계층의 부담을 높였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복지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선 여성들이 마음 놓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 위해 육아(育兒)를 위한 정부지원을 늘리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해서는 양질(良質)의 공공교육을 통해 능력을 배양시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돕고 있다.
 
  개인의 노후(老後)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업연금(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중심으로 한 3층보장연금 시스템을 확립하고, 기업연금을 활성화해 민간부문 연금자산의 축적을 독려하고 있다. 호주·홍콩 등은 모든 근로자에게 기업연금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독일·미국 등은 개인이 가입하는 민간연금에 다양한 세제(稅制)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기업연금·기금은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등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독일·스웨덴 등은 평균수명에 따라 국민연금 수급(需給)연령을 높이고 있다. 개인이 공적연금 수급 전까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면서, 더 많은 기간 연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의료부문은 고령화(高齡化)나 고가(高價)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국민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어 각국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문 중 하나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료전달체계 및 공적건강보험제도의 개선이 시도되고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인구가 전체의 20%(약 4700만명)가 넘는 미국은 현재로서 힘들기는 하지만 공적건강보험을 도입해 공공보험과 민간보험 간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은 공적건강보험에 대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호주는 생애보장 민영건강보험 구매에 정부가 지원을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건강보험에서 민간부문과 공적부문과의 조화가 일반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오늘날 복지선진국의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과 복지
 
  ‘고용이 최고의 복지’라는 점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비교적 안정된 고용구조 및 기업복지제도는 복지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을 기업 부문으로 유도하고, 기업 부문에서도 정규직의 비중을 높여서 고용안정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경쟁적이 되고 지속적 고용유지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의 고용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규직 등의 특정 고용형태를 강요할 경우 노동시장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 경쟁력의 하락을 낳는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이 고용을 보장하도록 간접적인 유인(誘因)을 제공하고, 근로자를 중심으로 기업복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근로자복지제도가 있으나 기업이나 근로자의 참여가 저조하고, 공적사회보험제도의 확대에 따라 이들 근로자복지제도의 전체 노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하고 있다.
 
 
  새로운 복지시스템을 설계하자
 
  1980년 초반 국민건강보험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지금까지 그 효율성에 대한 검증 없이 확대 일변도로 성장해 왔다. 복지정책은 공평성에 기초해 지나치게 소득분배적인 목적으로 시행됐다. 이에 따라 도덕적 해이와 제도 운영의 관료화 현상, 보험재정의 낭비 현상 등이 나타났다.
 
  이제는 서구의 낡은 사회복지시스템에 기초한 기존 복지제도의 효율성을 검증하면서, 질적 개선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연금제도의 경우, 퇴직금제도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을 강제화해 3층 연금보장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에서 조성된 300조원의 기금은 20년 후면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 기금을 적립해서 안정적인 노후보장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은 의료공급자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일보험료 단일급여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입자 특성별·지역별 보험료 급여의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을 지역별로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하는 성격의 민영건강보험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의 의료수요 및 환자의 질적 의료서비스 개선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동안 공공성 논리에 묶여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영리(營利)의료법인의 도입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제도의 경우, 오늘날에는 의료급여뿐 아니라 교육, 건강보장, 육아, 주거안정까지 요구되고 있다. 이는 저소득계층의 생활을 안정화시키고 사회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복지급여제도의 질을 높여서 저소득층이 노력에 따라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메디컬 코리아’로 32억 달러 아시아 시장에 도전

한국의 임상시험·치료성적은 이미 세계적 수준… 국제 홍보는 아직 미흡
싱가포르 벤치마킹해 의료 브랜드 가치 높여야

崔漢龍 삼성서울병원 원장
⊙ 1952년 서울 출생.
⊙ 경기고·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과장·기획실장·진료부원장, 성균관대 의대 비뇨기과학교실 교수·
    학생담당 부학장,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회장 등 역임.
⊙ 現 삼성서울병원 병원장.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미래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분야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 다양한 산업이 후보군으로 오르내렸고 그중 유력한 분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의료산업이다. 의료산업 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해외 임상시험 시장 진출이었다. 당시만 해도 임상시험 분야는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였으며, 아시아권에서는 대부분 호주가 독점하던 분야였다. 그러나 2004년부터 정부가 지역임상시험센터 육성사업을 추진, 국내 임상시험 시장은 급신장하게 됐다.
 
  최근 개최된 ‘한국임상시험산업 국제경쟁력 강화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전 세계 임상시험 점유율 1.48%로 12위, 아시아권에서는 5위인 일본(점유율 3%) 다음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단위로 비교할 때 휴스턴, 샌안토니오에 이어 서울이 세계 3위에 랭크돼 세계적인 임상시험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2005년 0.32%인 임상시험 시장점유율은 2009년 11월 기준으로 1.48%까지 높아져 불과 4년 만에 임상시험 산업의 급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경이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은 지역임상시험센터 프로그램, 국가임상시험사업단 등 정부의 강력한 지원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임상시험 분야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선도할 수 있는 핵심 분야이면서 그 자체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低평가된 한국 의료 브랜드
 
  물론 앞으로 임상시험 분야에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선 해야 할 일과 투자할 일, 개선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러한 결실 이면에 있는 우리나라 의료계의 높은 경쟁력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환자 유치도 새로운 의료산업화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천 송도 특구에 해외병원을 유치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향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수종(新樹種) 사업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의료 브랜드로 ‘메디컬코리아(Medical Korea)’, 슬로건으로 ‘스마트케어(Smart Care)’를 선정하고 해외환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에 발표하는 브랜드는 한국 의료의 강점인 의료 기술의 우수성, 안전성, 적정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브랜드로서의 직관성, 대표성, 쉬운 발음, 확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발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의료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중 심장질환 등 중증 응급질환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가는 병원은 어디가 될까? 일본, 싱가포르, 인도, 호주 등 다양한 나라가 언급된다. 미국 본토로 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정답은 한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성서울병원을 찾는다”가 백악관의 공식 후송 매뉴얼이다. 지난 1996년 우리 병원은 엄격한 평가와 실사를 거쳐 미국 백악관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공식 후송병원으로 선정됐다.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순방하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의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한 사례이며, 독일 마인츠 미(美) 공군기지 병원에 이어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공식후송병원으로 지정받았다. 삼성서울병원뿐 아니라 국내 많은 병원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안타깝게도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의료브랜드의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지금이 저평가된 한국의 의료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부 분야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질 높은 의학 수준을 해외에 잘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외환자 유치 경쟁력은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수준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억 달러 亞 의료시장 잡아야
  한국은 이미 임상시험과 환자치료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사진은 로봇 팔을 이용한 수술 장면.
  1994년 한국 의사들이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간 이식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5년, 연수를 진행한 미국 교수와 의료진이 한국에 찾아와 간 이식 연수를 받았다. ‘연수받던 나라’에서 ‘연수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의 대형 병원들의 각종 암 수술 성적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국 의료계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이미 갖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병원에서 조사한 바로는 태국, 싱가포르, 인도가 아시아 의료시장의 98%를 점유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의료시장의 38%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46만여 명의 환자를 유치해 연(年) 매출 12억 달러(약 1조36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환자의 구성은 가까운 인도네시아(52%), 말레이시아(11%), 미국·캐나다(5%) 순이다.
 
  이에 비해 태국은 아시아 의료시장의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간 154만여 명의 환자를 유치해 12억7000만 달러(약 1조43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환자 구성은 영국(17%), 일본(15%), 미국(11%) 순이다.
 
  아시아 3위 의료시장인 인도는 27만명이 찾고 있으며 연간 6억5600만 달러(약 7429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주로 중동(40%), 아세안(ASEAN·35%), 미국·유럽(20%) 국가에서 찾고 있다.
 
  이들 나라는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태국은 관광을 중심으로 한 저가(低價) 의료시장을, 반대로 싱가포르는 고가(高價)의 의료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래플스 병원의 샴쌍둥이 분리수술 등으로 인해 국제적 의료인지도를 갖추게 됐다. 인도는 특정분야에 대한 저가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공통적 특징은 비행시간으로 약 3시간30분 정도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환자를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들 3개국에 비해 더 높은 의료수준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해외교포, 중동, 동남아 지역의 환자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아시아 의료시장은 32억400만 달러(3조62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규모는 매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환자는 병원수익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막 아시아 의료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싱가포르, 태국, 인도로 이어지는 3강 체제가 구축됐고, 그 축 속에 우리가 신규 참여하는 것만큼 높은 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의 의료시장은 한 병원이 우수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의료 이미지가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환자는 국가를 먼저 선정한 후 병원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즉 병원보다 한국 전반의 의료수준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해야
 
  의료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끌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크게 국가적 차원과 병원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산업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싱가포르의 부처 간 협력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 보건산업진흥원,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교통상부, 경제부처 간 긴밀한 협력체계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국가 의료브랜드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을 더욱더 널리 알려야 외국 환자들이 믿고 찾아올 수 있다.
 
  셋째, 치료 목적의 비자 발급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서류를 최소화하고 개발도상국 대상의 발급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환자를 동반하는 가족에게도 치료 목적의 비자 발급이 지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 내(內) 비자연장사무소를 개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넷째, 적정진료비를 산정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주요 국제의료 대상 국가의 진료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적정 외국인 환자 진료비 산정을 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의료사고 및 분쟁 해결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제진료 관련 통역을 육성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환자 진료 계약서 표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개별 병원 차원에서도 준비할 게 많다. 가장 먼저 외국 환자들이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용시설을 갖춰야 한다. 기존 병원 시설에 외국인 환자를 추가로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외국인을 위한 전용시설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외국인이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전문 통역 인력을 육성하는 한편,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역 인력을 채용하고 해당 국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문화 강좌 등을 개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셋째, 병원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특화된 맞춤식 의료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은 첨단시설과 깨끗한 환경에 먼저 놀라고, 그 다음 우수한 치료성적과 친절함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환자의 추천으로 그 지역의 다른 환자가 찾아온다. 속도는 느리지만 ‘입소문 마케팅’으로 오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해외환자 유치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면 5년 후엔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심 의료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잠재력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서두에 언급한 임상시험시장이 급성장한 것 이상으로 해외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환자 유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산업분야를 창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산업분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표준특허’ 확보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

우리나라는 연간 30억 달러를 상회하는 기술무역수지 赤字 국가
우리가 지불하는 로열티의 70% 이상이 표준특허에 기인

高廷植 특허청장
⊙ 1955년 서울 출생.
⊙ 중앙고,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미시간대 응용경제학 석사, 화학공학 박사.
⊙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아태지역 에너지정책 자문관, 駐 오스트레일리아 상무참사관,
    산업자원부 자원정책과장·자원정책심의관·에너지자원정책본부장 역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조선시대 최고의 왕 세종(世宗)이 펼쳤던 중요정책 중의 하나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이다. 오래전 그 시대의 위정자들도 도량형의 통일이 사회의 경제적 비용을 절감시킬 뿐만 아니라, 정당한 거래와 세금징수를 가능케 해 교역을 촉진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도량형’ 대신 ‘표준’이라는 용어에 훨씬 더 익숙하다. 산업과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길이나 무게뿐만 아니라 부품, 기술의 호환성까지도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표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국제교역이 활발해지고 기업의 글로벌화가 촉진되면서 각국은 자국 기술을 국제표준(Global Standard)으로 제시하고, 개별 기업도 제품과 관련된 국제표준을 선점(先占)하기 위해 노력한다. 국제표준이 규모의 경제(Scale of Economy)를 극대화시키고 시장지배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표준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가고 있다. 1970년대 소니와 마쓰시타가 베타맥스와 VHS라는 VCR(비디오카세트 레코더) 방식을 놓고 다투었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기업 간 ‘표준’ 확보 전쟁은 WTO-TBT(무역기술장벽)라는 국가 간 경쟁의 형태로까지 진화됐다.
 
 
  ‘표준특허’의 힘
  특허청은 2009년 11월 19일 서울 마포소재 한국특허정보원에서 산학연의 표준특허 창출 및 지원을 전담하는 ‘표준특허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최근 들어 국제 표준을 둘러싼 기업 간 분쟁에는 ‘특허(特許)’라는 용어가 결합되고 있다. 단순히 ‘표준’을 선점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표준’을 ‘특허’로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IT와 그 융합기술은 호환성이 요구되므로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그 기술은 특허의 대상이기 때문에 표준특허 창출의 주요 대상이 된다.
 
  표준특허는 표준의 ‘시장 지배력’과 특허의 ‘독점 배타력’이 결합된 특허로서,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이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크다. 표준특허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로열티라는 추가적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열위(劣位)에 놓일 수밖에 없다.
 
  IBM, 퀄컴 등 글로벌 기업은 R&D(연구개발) 부서 외에도 특허, 표준 전담부서를 별도로 설치해 R&D 부서와 협력해 표준특허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활동은 R&D 부서와 특허 부서의 협력을 통해 R&D 효율성을 제고하고 강한 특허를 확보하려는 정도에 국한됐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이들 기업은 R&D, 특허, 표준을 담당하는 기업 내부 조직 간 협업(協業)을 통해 강력한 표준특허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표준특허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표준화회의’ 등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인터디지털, 퀄컴, 노키아, 모토로라 등 기업들은 표준화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이에 대응한 표준을 제안하고 특허를 출원한다.
 
  인터디지털사(社)는 표준특허를 확보하기 위해 표준화 동향 및 제출된 표준안을 분석해 특허출원 전략을 수립하고, 미국의 임시출원 제도(미국 특허법상 규정된 기재요건을 모두 기재하지 않고 손쉽게 출원일·우선일을 인정받게 한 제도-필자 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위 그림은 인터디지털사가 표준의 진화방향을 예측해 포괄적 개념 특허를 출원한 후, 표준안 제출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해 임시출원을 보정해 표준특허를 확보하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1-인터디지털社의 표준특허 창출 전략>
 
 
  통신분야 표준특허 6개에 불과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표준특허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표준특허 여부 판단을 위해 표준 기술지식, 표준문서에 대한 이해 및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법률지식 등 고도(高度)의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 없다.
 
  각 표준특허의 가치도 표준기술별로 시장상황 등에 따라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개별국가의 표준특허 경쟁력을 정확히 측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개별국의 표준특허 경쟁력은 표준화기구에 선언된 특허나 표준특허 풀(pool)에 포함된 특허의 비중을 타국의 경우와 비교해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통신분야 국제표준화 기구인 ITU-T에 선언된 국내기관의 표준특허는 2009년 10월 현재 51건으로 전체 특허의 2.3%에 불과하며, 표준특허를 선언한 국내기관 또한 6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표적인 표준특허풀(특허에 대한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로 회사의 성격을 갖는다-편집자 注)인 ‘MPEG LA(Moving Picture Experts Group Licensing Adminstrator)’에 등록된 특허 중 15.4%를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로열티가 높은 MPEG-2분야는 2.6%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MPEG(ISO 산하의 동영상 연구모임)가 영상압축기술에 대한 표준을 정립하면, 반도체 업체들은 이들 표준을 지원하는 영상 압축 칩을 개발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으나, 표준특허는 단지 10분의 1 정도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기업 중에는 S전자, L전자가 1990년대 후반부터 표준화 활동을 시작했지만, 표준특허를 확보하기 위한 전담인력은 2000년 초에야 배치됐다. 이와 같은 미흡한 대응은 세계 최초로 지상파 DMB를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특허 미(未)확보로 인해 우리 기업의 로열티 부담이 크게 늘게 됐다.
 
 
  중견규모 이하 기업들, 표준특허 인식 취약
 
  최근 우리 기업, 연구기관이 들려주는 낭보(朗報)는 우리나라가 비록 표준특허 확보 노력을 뒤늦게 시작했지만,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방증이다. L전자가 디지털TV 표준특허를 보유한 제니스사를 통해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 수입을 올리고 있고, 우리나라가 개발한 와이브로(Wibro) 기술이 IEEE(美 전기전자공학회)에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성과도 해외 글로벌 기업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중견규모 이하의 기업들은 표준특허에 대한 인식과 인적·물적 역량이 부족해 표준특허 확보 노력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나라가 표준특허 강국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표준특허 창출에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허청은 지난해 정부부처 최초로 표준특허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전담부서인 ‘표준특허팀’을 신설하고, 표준업무를 관장하는 지식경제부·방송통신위원회 등과 정책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특허와 표준에 전문성을 가진 특허청이 표준특허 확보전략을 제공하면, 이 전략을 반영해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표준과 특허가 상호 연계된 R&D 사업을 추진해 표준특허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준특허 획득전략은 IT 및 그 융합기술 분야 중 표준특허 확보가 시급한 기술분야를 우선 선정해 추진하게 된다.
 
  표준특허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온·오프라인을 통한 표준특허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KAIST 등 2개 대학에 지식재산전문대학원을 신설하는 등 체계적인 육성책을 마련했다.
 
  국내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표준특허를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말 ‘표준특허센터’를 설립했다. 표준특허센터는 지난해 IPTV, 4세대 이동통신을 시작으로 올해 3DTV, 차세대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등 표준특허 확보가 시급한 37대(大) IT분야에 대한 표준특허 로드맵을 수립해 정부 및 산학연에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별 맞춤형 표준특허 창출역량을 키우기 위해 표준특허 멘토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여러 국제 표준화기구와 특허풀에 산재돼 있는 표준특허 정보를 원스톱으로 확인·이용 가능하도록 ‘표준특허DB’를 구축해 표준특허포털사이트를 통해 업계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아울러, 효율적인 표준특허 창출지원을 위해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표준기술 개발사업과 연계해 상호 매칭 가능한 사업과제를 발굴하는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표준특허 확보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
 
  기업의 CEO는 표준특허 미확보 시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陶汰)될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표준특허가 단순히 연구부서나 특허부서만의 업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표준특허 획득을 기업의 경영전략과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표준특허를 확보하기 위해 경영전략, 표준, 특허를 담당하는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업 내부에 표준특허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고, 국제 표준화회의에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기업의 표준화 활동 동향, 투자방향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국제표준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사(自社)의 R&D 결과를 표준에 반영하고 논의과정에서 예측되는 표준특허를 실시간으로 출원하는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대기업에 비해 경영여건이 열악한 중소, 중견기업들은 업종별 단체를 중심으로 상호협력해 표준특허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은 민간단체(학회·생산자 단체·소비자 단체 등)가 표준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일본도 철강연맹의 표준화 센터를 중심으로 표준특허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에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는 연간 31억 달러를 R&D에 투자하고 있지만, 연간 30억 달러를 상회하는 기술무역수지 적자(赤字) 국가이다. 우리가 지불하는 로열티의 70% 이상이 표준특허에 기인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다

 

중앙당이 독점하는 공천제도로는 민주주의 불가능

국회의원이 주민의사를 진정 대변하려면 공천권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국처럼 국회의원 의사 무시하면 표결 무의미

金昌準 前 미국 연방하원의원
⊙ 보성고 졸업. 미 남가주대 토목공학과 학사·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 1961년 渡美, 건축설계회사 제이킴엔지니어링 사장, 다이아몬드 바 시의원·시장,
    미 연방하원의원(3선), 연방하원 교통건설소위원장 역임. 現 워싱턴 한미포럼 이사장,
    경기도 명예대사, 한국경제신문 고문.

월간조선(月刊朝鮮) 2010년 1월호 별책부록 에서 필자는 우리나라가 경제력과 국민 수준은 급격하게 높아지는 데 비해 정치가 너무 후진적이라 도리어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 정치권이 선결(先決)해야 할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기고문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우리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한미(韓美)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85%가 넘는 무역의존도를 가진 나라며,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회의원 공천권을 국민에게 하루속히 돌려주어야 한다. 셋째, 현직 국회의원이 신분을 유지한 채 입각(入閣)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넷째, 우리는 통일 없이는 절대로 강대국이 되기 힘드니 자유통일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5개 상임이사국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엔을 개혁하는 데 우리나라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필자는 비록 미국 시민권자이고, 미국에서 정치활동을 했지만, 누구보다 조국(祖國)의 민주주의가 찬란히 꽃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밖에 나와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산(産) 가전제품은 품질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는 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요, 한국 문화가 깊숙이 침투해 문화 강국으로서 위상도 어느 때보다 드높은 상황이다.
 
  이처럼 모든 분야가 세계 최고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은 ‘엉망’ 그 자체다. 아니 정치가 사회 발전을 견인하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갈등의 중심에 서고,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한국의 정치 선진화와 관련해 필자의 거듭되는 주장이지만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처럼 중앙당이 독점하는 공천권 제도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똑똑하고 멀쩡하던 사람도 국회에만 들어가면 다가올 당 공천을 받으려고 당 간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움에 앞장서고, 자기주장이 없는 줏대 없는 거수기가 되고 만다.
 
  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공천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어떻게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자기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는가? 미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당이 공천만 하면 이 모든 게 가능하다.
 
  필자는 실제로 어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 간부에게 충성심을 제대로 보여서 좋은 지역구를 배당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또 당에만 충성을 바치면 설사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다른 감투를 보장받는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끼리끼리 해먹는 장사판이지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당의 핵심 간부가 공천권을 쥐고 있으니 국회의원은 국민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사람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 당 간부들이 당론(黨論)으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개인들은 감히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 간부들에게 잘못 찍혔다가는 다음 공천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론이 정해지면 표결 결과도 동시에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숫자가 적은 상대 당은 표결이나 회의 자체를 하지 못하게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투표는 하나마나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했던 건강보험 개혁안에 대해 민주당 소속 의원 3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의 뜻이라며 반대했던 것이다. 개혁안은 불과 2표 차로 통과됐다. 이처럼 미국은 개표가 끝날때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처럼 국회의원 개인의 의사가 이렇게 철저히 무시될 바에야 무엇 하러 표결을 하는가?
 
  어차피 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으면 서로 싸울 필요 없이 당 간부끼리만 투표해서 결정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진정한 의회제도가 되려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국민투표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민주주의
  한미 FTA 비준안 상정일인 2008년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자, 야당 의원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실 문을 망치로 부수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문제로 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청문회까지 열렸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신형 쏘나타에 대한 리콜 조치가 취해졌다. 현대는 “사실 리콜까지 가야 할 큰 문제는 아닌데, 도요타 문제로 시기가 민감한 만큼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차원에서 리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의 국회와 정치권은 국익이 걸린 이러한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몇 개월 동안 세종시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문제는 지난 수개월을 싸웠는데도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복잡하게 일이 꼬여 간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은 한나라당을 압도적인 다수당으로 만들어 주었는데도 거대 집권당이 당파(黨派) 문제 때문에 세종시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국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 세종시 문제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진작에 국민투표에 부쳐서 결정을 했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은 아직 국가 정책을 놓고는 제대로 된 국민투표를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이나 정치권이나 국민투표에 대한 인식과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정치권은 국민투표를 하는 것은 자신들이 결정 못하는 것을 국민에게 미루기 때문에 리더십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너무나 당연한 국민의 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제도하에서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라는 대의기관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종시 문제처럼 국회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바로 국민투표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자치령인 캐리비언의 푸에르토리코 독립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했고, 캐나다는 퀘벡주의 분리독립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모두 아주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지만,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심심찮게 국민투표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는 세종시 문제는 정치권의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또한 어떤 결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분열만 깊어질 것이다. 우리도 국민투표로 세종시 문제를 국민이 직접 결정해 보고 결과에 대해서 승복하는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 만약 이번에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되면 이는 단순한 국민투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운명을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에 대한 아주 중요한 학습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공천제도 변경도 국회에 맡겨서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다. 정당이 공천권이라는 기득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문제도 국민투표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당의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

우리 문화 바탕으로 서구가 갖지 못한 대안적 사고를 가져야
서구적 가치를 따라가는 리더십은 서구에서도 세계에서도 필요하지 않을 것

尹相現 한나라당 국회의원
⊙ 1962년 충남 청양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조지타운大 국제정치학 박사.
⊙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 소장 등 역임.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세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무역과 통상 및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업지배구조에까지 적용되며 급속히 확대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복을 위해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의욕적으로 적용해 왔다. 수출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로선 가속화되는 ‘지구촌화’에 대응하여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이제 대한민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운용 방향을 주도하기도 하고, 환경과 재생에너지, 기후변화, 녹색성장 등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화=미국화’ 인식 있어도 세계화 멈추지 않아
 
  표면적으로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은 서구화를 의미하고, 서구화는 또 미국화로 압축돼 왔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곧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부드럽게 부르는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아메리칸 스탠더드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되겠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와 경쟁에 가중치를 두는 자유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이를 찬양했지만, 그 또한 국가간·계층간 빈부격차 심화와 대외의존도 증가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온 탓에 다른 약소국가들을 오히려 더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커져 왔고, 이런 문제의식이 반(反)세계화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글로벌화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곧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는 등식은 앞으로 서서히 무너져가겠지만,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화에 뒤처지면 경제위기 극복은 커녕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진다.
 
 
  국회 대결구도에 얽매여 민주정치 안돼
  2009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법안을 통과시키자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뛰어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정치현실이 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을 눈앞에 두고 있고, 우리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각종 스포츠에서도 선도국가가 되고 있는데, 여전히 정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큰 거리를 두고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회에서는 여전히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조차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시장성·투명성·효율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변화해 나가는 것과 함께, 정치영역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변해야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선진화하는 일이다. 현재와 같은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 국회와 정당은 다양한 국민의견을 대변하는 곳이기에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되고, 또 대립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문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국회와 정당은 그러한 대화보다는 의견관철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몸싸움과 폭력행사라는 물리력까지 동원한다.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추구해야 할 정당정치, 의회정치의 영역에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대립이 심 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회가 대결구도에 얽매여 있는 탓에 국회의 주요 기능인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 정치기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집중은 다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치의 원칙이 훼손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정치인 도덕적 무장 새롭게 해야
 
  의식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역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도덕적 무장을 새롭게 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을 가지고 공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봉사정신을 갖춰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철학을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투명한 정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인 스스로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쌓여 정치권이 원칙과 규칙을 지켜나간다면 국민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추종이 되어선 안된다.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에 대한 정의와 ‘타인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지배’라는 한스 모겐소의 권력에 대한 정의가 우리나라 상황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에서의 정치는 마치 기술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전통 속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우리 전통에는 우리 문화에 맞는 정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이야말로 한국 전통에 맞는 최고의 정치이념이다.
 
  홍익인간에서 보여주는 정치는 ‘정즉인(政卽人)’이다. ‘정치’는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치행위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애에 곡진하고 인간성에 호소하는 정치라야 진정한 정치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정치,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이다. 이를 버리고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무조건 쫓아가면 자칫 우리 정서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가 간직해 온 문화나 정서들 중에는 개선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소중히 다듬어 전승해나가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이를 잘 구분하여 세계적 기준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 문화에서 융합돼야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일방적인 서구식 스탠더드가 아니다. 자유와 경쟁, 풍요의 가치와 조화와 평등, 공동체의 가치가 우리 문화 속에서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구현할 수 있는 리더십은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들이다. 일정부분 한계에 부딪힌 서구식 신자유주의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 가치융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여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서구가 갖지 못한 대안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서구적 사고와 가치를 따라가는 리더십은 서구에서도, 세계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 것을 알고 그 다음에 서구와 세계를 알고, 그 위에서 현재 미국·서구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글로컬라이제이션’이다.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충실한 리더십이 아니라, ‘글로컬라이즈드 스탠더드(Glocalized Standard)’를 구현할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일러 혹 ‘글로-코리안(Glo-Korean)’이라고 하는 것도 합당할 수 있겠다

 

휴전선 지킴이에서 세계평화의 旗手로

2010년 3월 현재, 총 14개국 17개 지역에서 1000여 명의 장병이 임무 수행 중
오는 7월, 아프가니스탄의 지방재건팀(PRT) 보호하기 위해 파병

黃震夏 한나라당 의원·前 키프로스 유엔평화유지군사령관
⊙ 1946년 경기 파주 출생.
⊙ 문산고, 육사 25기 졸업. 미국 센트럴미시간대 대학원 석사, 경남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5군단 포병여단장, 합참 작전본부 C4I부장, 駐美한국대사관 국방무관, 키프로스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 17대 국회의원 역임.
⊙ 現 제18대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간사, 한미 FTA 태스크포스 위원장,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국방, 외교통일).

올해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 이후 우리 국민의 성원과 군(軍)의 노력으로 ‘분단 관리’를 성공적으로 해 오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폐허의 터전에서 산업화를 성공시켜 세계 10위권의 선진경제국가를 이룩했다. 우리로서는 지금 이 시각 세계 곳곳에서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국군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우리 군은 분단된 나라를 지키는 ‘휴전선 지킴이’에서 국익창출과 세계평화를 증진하는 ‘평화와 재건(再建)의 기수’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국군은 ‘유엔 아이티 안정화 임무단(MINUSTAH)’으로 아이티에 파견돼 대규모 지진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티의 재해 복구와 재건을 위해 땀흘리고 있고, 레바논에는 동명부대가 파견돼 유엔레바논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분쟁중지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안에서는 해적들로부터 이 지역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안전 항해를 보장하는 고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는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복구를 돕게 될 우리나라 지방재건팀(PRT)을 보호하고, 주둔지 방어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이 파병된다. 이와 같이 우리 군은 세계 곳곳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3월 현재 총 14개국 17개 지역에서 1000여 명의 장병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글로벌 軍’으로
 
  필자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주미(駐美) 국방무관을 지냈고, 2002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2년여 동안 지중해의 키프로스에서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14개국에서 파병된 다국적군을 지휘하면서 우리 군이 155마일 휴전선 철책만을 지키는 ‘우물 안의 군’이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군’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느꼈다. ‘한반도 내에 고착된 군이 아니라 글로벌 한국의 군으로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는 군’이라는 국군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우선, 우리 국민은 신세대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현재의 우리 군(軍)의 특징을 재발견, 재인식해야 한다.
 
  2010년 현재, 우리 군이 갖는 첫 번째 특징은 장병들의 역동성이다. 지금의 우리 군은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로 참여했던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놀라운 성적을 낸 G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로 구성돼 있다. 거리낌없이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질주하는 젊은이들이지만 개개인에 맞는 훈련과 자율성을 키워주면 그들이 발휘하는 능력은 한계가 없다. 나약한 신세대로 구성된 군대라는 의구심은 묻어두어도 좋다. 지난 서해교전에서 보았듯 신세대 병사들은 ‘국토방위’라는 군인 본연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
 
 
  찰스 울프 박사, “병역 통해 산업기적 일궜다”
  2010년 1월 6일,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예하 601항공대대 소속 UH-60 블랙호크 기동 헬리콥터들이 새해 첫 비행 훈련을 실시했다. 국방부는 아프간 파병부대에 이 블랙호크 네 대를 함께 파병할 예정이다.
  두 번째 특징은 최첨단의 기술과 조직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군은 승리라는 절대목표를 위해 최첨단의 무기를 사용하고, 최고의 효율성을 갖도록 조직을 운영한다. 군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진 조직으로서 최고의 방산(防産)기술을 지향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의 단결력, 일체성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셋째, 군은 국가 사활(死活)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닌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감은 폐허의 조국을 근대화시키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베트남전 참전 등을 통해 국가발전에 무한한 기여를 했다. 이와 같은 군 본연의 특징은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국가발전에 중요한 축으로 보탬을 줄 것이다.
 
  넷째, 군대는 사익(私益) 추구가 아닌 국익(國益), 국가생존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조직이다. 국가관을 세우는 것이 군 본연의 자세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이 역할을 담당하는 유일한 공식조직이 군이라는 사실은 군이 갖는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군대라는 조직생활을 통해 전우애와 협동심, 훈련을 통해 극기(克己)를 배운다.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상당기간 단체생활을 경험하고, 체력과 조국애를 키우는 유일한 조직이 되고 있다. 이제 군은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에 더해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새로운 도장(道場)의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을 조언했던 랜드연구소의 찰스 울프 박사는 “한국이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며 발전하게 된 동기는 분단 대치라는 극한 환경 때문”이라며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갖는 병역의무, 군 생활을 통해 기강 잡힌 젊은 역군(役軍)들과 국민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파병 모집에 몰려드는 신세대의 열정
 
  이와 같은 군의 특징에 대한 재발견, 재인식은 국가안보, 나아가 국제안보에 기여해야 하는 우리 군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글로벌 군인을 양성해 글로벌 군대로 키워야 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군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글로벌 군으로 변화하기 위해 우선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적 사고와 능력의 전환’이다. 이제 우리 군은 한반도 안에서 휴전선만 지키는 폐쇄되고 수동적인 국방개념, 즉 ‘울타리치고 지키는’ 개념에서 벗어나고는 있지만, 이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국익에 보탬이 되는 역할과 장소를 발굴하고 찾아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선도하는 ‘개척과 전진, 그리고 선도(先導)’라는 개념으로 변화 발전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둘째, 장소와 기회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다. 해외파병을 위한 병사들을 모집하면 열정과 자기 확신을 가진 수많은 신세대 젊은이들이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지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상(氣像)을 가진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장소와 기회를 찾아 주어야 한다.
 
  이제 우리 군도 한반도의 강력한 안보태세의 바탕 위에 세계로 나아가 국제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글로벌 군으로 거듭나야 한다. 유엔 평화유지군과 다국적군 참여라는 군사적 분야뿐만 아니라 국제기구로의 진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자원봉사 등 우리 젊은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기회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사회에 대한 참여와 기여는 국격의 상승과 함께 국익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창조와 성취의 善循環
 
  셋째는 경험과 시간의 인정(認定)이다.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세계 도처,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신장시키고 국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투자한 시간과 경험에 대해 우리가 부여하는 대가(代價)나 보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많은 능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취적인 젊은이들, 젊은 병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얻은 경험이 활용될 수 있고, 이들이 투자한 시간이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체계적 시스템 마련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는 창조와 성취의 선순환(善循環) 체계의 마련이다. 젊은이들의 경험이 사장(死藏)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들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재창조하고, 또다시 새로운 성취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자기 능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 회사 하나, 사업 하나를 진행시키기 위해 수많은 서류가 요구되는 시스템으로는 사회발전, 국가발전을 가져오기 어렵다. 젊은이들의 창조적 능력이 새로운 성취로 이어지는 선순환 시스템 마련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이제 우리 군은 조직이 갖는 고유의 특성과 우리 젊은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장 발전시켜 강력한 한반도 안보태세를 강화한 가운데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글로벌 군대로 변화해야 한다. 활기찬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국익을 위한 개척과 창조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한민국 국군이 돼야 한다

 

네덜란드의 3P(평화·이익·원칙) 외교를 모델로 삼아야

한국의 외교예산은 예산의 0.7%, 네덜란드는 7.51%
압축발전 경험 살려 선·후진국 간 교량 역할 해야

金錫友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전 통일원 차관
⊙ 1945년 충남 논산 출생.
⊙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석사.
⊙ 제1회 외무고시 합격, 외무부 아주국장,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의전수석비서관, 통일원 차관,
    국회의장 비서실장 역임.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순조롭게 극복하면서 G-20 회의나 기후변화회의 등 국제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9년 11월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됐다. 2015년에는 개발원조(ODA)를 GDP의 0.25%로 올리게 된다. 이제 한국은 국력에 상응하는 외교를 펴나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보면 한국외교는 갈 길이 멀다.
 
  외교는 국내 산업생산이나 문화활동, 그 밖의 정부 기능과 비교하면 대상이나 환경이 국제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더 고차원적 과업이다. 뜨거운 애국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너무 많다. 정확한 정세판단과 정책선택, 그리고 정교한 외교기술을 필요로 한다. 국민적 지지기반도 필요하다. 또한 국내정치가 외교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반도의 우리 민족이 중국이라는 대국(大國) 옆에서 5000년 동안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해 온 데는 외교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를 잘못 파악하고 외교에 실패한 결과 일본제국주의에 국권(國權)을 침탈당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됐을 때, 우리에게 외교 경험이란 전무(全無)했다. 다행히 일제(日帝)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제관계를 통찰할 수 있었던 외교의 거인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덕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고, 6·25전쟁의 와중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6·25전쟁 후 한미 동맹을 맺어 안보와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였다.
 
  건국 후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 세계 140여 개 신생 독립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유일한 사례가 됐다. 1960년대 이후 한 세대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 후 미국·일본 등 해양세력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외교의 한계
 
  황무지에서 출발한 한국외교는 지난 60여 년간 남북대결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름 기여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외교가 싱가포르나 이집트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북핵(北核)문제 같은 난제에 몰입하느라 다른 분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적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여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한국외교의 수준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스포츠, 경제 등 다른 분야의 국제화 속도와 비교해 보아도 외교는 뒤처졌었다. 그 이유를 열거해 보자.
 
  첫째, 식민통치 기간 국권상실로 외교경험이 없었으므로 처음부터 혼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안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했어도, 서유럽 중심의 외교관례나 언어, 교섭기술, 외교정책 면에서 핸디캡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웠다.
 
  둘째, 전 세계적 냉전(冷戰)구조하에서 북한과 유엔에서 대표권을 다투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충분한 외교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국은 남북대결 과정에서 동맹국 미국의 적극 지원을 받아 생존과 경제번영의 기틀은 잡았으나, 그 과정에서 대미(對美)의존 경향이 커져, 독자성·적극성 발휘가 늦어졌다.
 
  셋째, 민주화 이전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존재가 효율적 외교수행에 부담이 됐고, 권위주의적 풍조 때문에 외교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활발한 토론이나 일관성 유지가 어려웠다. 인사 면에서도 지연(地緣)·학연(學緣)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구한말(舊韓末)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로부터 ‘은자(隱者)의 왕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반도는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외국에 나가는 한국인은 연간 수천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제 한 해에 연인원 1300만명이 해외여행을 할 정도로 개방이 되긴 했으나, 외교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뀌고 외교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섯째, 전체적으로 적극적·능동적·전략적 외교를 전개하기보다는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왔고,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외교에 치중하는 경향이 컸다.
 
 
  발전경험 살려서 후발개도국의 롤 모델 추구해야
 
  이제 한국외교의 지평이 넓어졌다. 경제력의 급격한 신장으로 남북한 격차는 40배로 벌어졌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북방(北方)외교가 전개되면서 우리 외교의 지평이 확대됐고, 남북대결이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서 전 세계를 외교시야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 잠시 훼손됐던 한미동맹 관계도 복원됐다.
 
  글로벌 외교를 전개하는 데 한미동맹이 출발점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분단 상태를 잘 관리하고 주변국의 협조를 얻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아가 한 세대만에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한국의 경험과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후발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
 
  국력 상승에 따라 외교 영역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데 맞추어, 우리의 외교역량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높아져야 한다. 자연자원이 부족하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이야말로 대외관계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고, 그만큼 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일본·러시아의 가운데 놓여 있는 한국은 월등한 하드파워, 즉 군사력을 가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맞서기보다는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소프트파워 외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처럼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현안에만 치중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 과제에까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작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외국 정상들과 나란히 선 이명박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외교예산, 전체 예산의 0.7%에 불과
 
  우선, 외교 전략과 정책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외교는 개별 사안에 급급해하거나 외교행정이나 의전(儀典) 같은 부차적(副次的) 과제에 치우쳐서, 정작 정세파악과 정책수립에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 는 기본전략뿐만 아니라 주요 외교현안에 대해서도 철저한 논쟁을 거쳐 국가이익과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하고, 그 성과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좀 더 공정해야 한다.
 
  둘째, 국제법·통상·환경·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스탠더드에 맞는 이론과 방법을 체득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나아가 변환의 21세기 속에서 중진국(middle power)으로서의 한국은 외교를 통해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상호강화(mutual empowerment)하는 소프트파워 외교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 예컨대 압축성장을 달성한 경험을 개발원조에 활용하여 국제사회에 모범을 보이고, 선·후진국 간의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전문 외교인력을 많이 양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현재처럼 적은 인력으로는 외교의 전문화는 요원하고, 냉탕·온탕식 인사운영이나 땜질식 외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외교예산은 국가예산의 0.7%에 불과하다. 이 정도 예산으로 국제수준의 외교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네덜란드를 외교 모델로 삼아야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 ‘평화’는 네덜란드의 3P외교 가운데 첫 번째를 차지한다.

  그러면 우리 외교의 롤 모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크기나 전략적 위치를 감안해야 한다.
 
  미국과 같은 초(超)강대국이 우수한 외교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롤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 초강대국은 일시 실수해도 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생존에 지장이 없으나, 한국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롤 모델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우리와 비슷한 중간국가에서 찾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통일한국이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인 스위스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나 인구, 국력 등을 고려할 때, 스위스 모델은 적당치 않다. 필자는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할 나라는 네덜란드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독일·프랑스·영국 등 인구 7000만명대의 강국들 가운데 놓여 있고, 자연환경이 열악한 좁은 국토에 14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다. 13억 인구의 중국, 1억3000만의 일본, 1억4000만의 러시아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인은 16세기 대항해시대에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적이던 동인도(東印度)회사를 세워 해양세력의 선두주자로 나선 경험이 있다. 이후 역사 의 진전에 따라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임에도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해 왔다.
 
  열강(列强)에 둘러싸인 네덜란드가 독립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생존을 위해 외교 통상 분야에 파격적인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국민은 보통 3, 4개의 외국어를 구사한다. 인구는 대한민국(남한)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외교 인력은 3배, 외교예산은 20배에 가깝다. 2008년 네덜란드의 외교예산은 197억 달러로 국가예산의 7.51%에 달했다. 같은 해 한국의 외교예산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네덜란드의 3P 외교
 
  네덜란드는 ODA와 인권외교를 주요 외교수단으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는 ODA원조를 위해 매년 국민총소득(GNI)의 0.8%를 예산에 반영하고 있다. EU가 2015년까지 ODA원조를 GNI 의 0.7%,한국은 0.25%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네덜란드의 대외 원조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네덜란드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를 비롯한 국제 기구들을 유치하고 있다. 네덜란드 외교의 3대 지표는 Peace(평화), Profit(이득), Principle(원칙)의 3P로 요약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국가이미지와 국제적 발언권은 국력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도 네덜란드 수준으로 우리의 외교를 업그레이드시킨다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골드만삭스의 예측대로 2050년 G-7 진입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예측 가능한 사법제도 갖춰야

기업 해외 투자 시 첫 고려 대상은 사법절차 공정성과 재판 예측 가능성
사회 전반에 준법정신이 자리 잡도록 시스템 구축해야

權五坤 ICTY(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
⊙ 1953년 충북 청주 출생.
⊙ 중앙中·경기高·서울法大 및 同 대학원 졸업. 美 하버드大 법학석사.
⊙ 제19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및 사법연수원 수석졸업.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 판사·대통령비서실
    파견(법제연구관)·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헌법재판소 연구
    부장·대구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연구법관. 現 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바야흐로 우리는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사회·문화·정치 등은 서로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다. 어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글로벌한 시각에서 봐야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것은, 우선 국가 브랜드, 국가 이미지를 높여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눈사람을 만들 때 일단 눈덩이가 커지면 눈이 달라붙는 속도가 빠른 것처럼,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필자도 9년 전 유엔총회에서 열린 국제재판소 재판관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될 당시, 우리의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당선이 불가능하였으리라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 바 있다.
 
 
  글로벌 시대와 ‘법의 지배’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파악하게 된 오늘날에 있어서는, 일회성 또는 한시적인 홍보만으로는 지속적인 국가 위상 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풀어쓰자면, 국민 개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선순환(善循環)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이 어느 한 국가에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그 나라가 제공하는 각종 투자 유인책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사법절차의 공정성 및 재판의 예측가능성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투자 유인책을 제공하더라도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투자회수를 보장할 수 없다면 결코 세계화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지구촌화된 오늘날,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정착 정도는 그 나라의 선진화(先進化)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다. 법의 지배에 근거한 인간다운 삶만이 지속적인 ‘웰빙(well-being)’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즈음은 국제법에 있어서도 국가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는 국제형사법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고, 국제 외교에 있어서도 경제 외교에서 인권 외교로 그 중심이 옮아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법의 지배의 탄탄한 기반을 이루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 작업의 제1순위가 되어야 한다.
 
 
  국제적 기준에 합당한 신뢰받는 사법제도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심재판이 이루어지는 영미(英美)법계 국가에서 시민이 ‘사실’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재판의 신뢰성이 확보되지만, 전문적인 법관이 법률 판단과 사실 인정까지 담당하는 대륙법계 국가에서 재판의 신뢰성은 절차의 공정성과 법률적 논거(legal reasoning)의 정당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우선 절차의 공정성과 관련해, 절차가 실제로 공정했다는 주관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객관적 공정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의(正義)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는 외국의 법언(法諺)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정하지 않은 절차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게 보일 소지가 있는 절차 역시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재판이 제시하는 법률적 논거의 정당성은 공개된 정보에 기초해 언론과 국민의 검증을 받게 마련이고, 이것이 결국에는 사법부 신뢰의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사건을 재판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재판하는 사건에 의해 심판받게 되는 것(While the court tries cases, the cases try the court)’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논쟁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요인은 설득력 있는 논리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 곳곳에 법률가들이 진출해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대폭 늘렸던 시기를 지나 이제 본격적 로스쿨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법조인 양성 및 그 직역의 패러다임은 환골탈태와 같은 변혁이 요청된다.
 
  지금 한국은 법률시장 개방, FTA 등 다양한 개방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불가피한 개방이라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개방을 발전의 토대로 삼아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기구에의 분담금 등에 비춰볼 때 국제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의 수는 너무나도 적다. 앞으로 한국의 젊은 법조인들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점을 명심하고, 더욱더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에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민간 부문에서도 한국의 젊은 법조인들이 국제기구 등에서 인턴 등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2009년 5월,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방문했을 당시 각종 국제재판소의 수장들이 함께 모여 국제법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면에서 오른쪽 두 번째가 권오곤 ICTY 부소장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송상현 ICC(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이다.

 
  성숙한 사회를 향하여
 
  필자가 국제재판소에서 근무하면서 인상 깊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재들이 자신의 의사를 단계적으로 세심하게 밟아 가며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가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건설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 문화가 몸에 자연스럽게 밸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토론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쟁점에 대한 토론 내지 분쟁 해결의 모범을 제시하는 사법절차가 더욱더 국민의 신뢰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법제도가 영미법계의 제도와 대륙법계의 제도를 조화롭게 절충한 제도로서, 후발 개도국 등에 전범(典範)으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도의 운용 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개선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준법정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기본적 인권에 관한 국민의식을 함양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언론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벌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보다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더라도 열 명의 범인을 효과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 낫다’는 편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발도상국의 아픔과 서러움에 진심으로 공감해야

지구촌 공동체로서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 필요
봉사와 원조보다 교류·협력의 자세 필요

朴宗三 월드비전 회장
⊙ 1936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치과대, 장로교신학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신학 석사, 버지니아 코먼웰스대·
    서던캘리포니아대 사회사업학 박사.
⊙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한국교회사회봉사연구소 소장 역임.
⊙ 現 서울 덕수교회 목사, 살롬문화원 원장.

대한민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엄연한 공여국(供與國)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아가 올해 11월에 있을 G20 정상회담, 내년에 있을 OECD DAC 원조효과성 고위급회의, 후년에 있을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회의들을 개최하게 되어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한편,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지구촌이 커다란 위기들을 겪고 있음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금융위기, 식량위기, 기후변화 등 이제는 몇몇 국가 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전 지구촌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 시점에서 진정한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하는 것은 전 지구적 위기 해결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여하는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어떠한 요건이 필요한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개발도상국의 잠재력 인정해야
 

탤런트 김혜자씨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오랫동안 아프리카 등지에서 봉사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첫째, 과거에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가 국력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문화 콘텐츠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국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존경받고 있으며, 국민들이 자국(自國)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고 자부심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와 같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위기와 현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얼마나 선도적인 모범을 보이는가가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이다.
 
  둘째, 기존의 봉사와 원조라는 개념을 넘어 교류와 협력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봉사와 원조는 일방적이고 우월적인 시혜(施惠)의 개념이다. 인간은 어떠한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가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돕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구촌 공동체로서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나누려는 자세와 함께 교류와 협력의 과정에서 서로 배우고 상호이익이 될 수 있는 좀 더 넓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수년 동안의 기근(饑饉)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케냐의 한 지역에 실태조사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집은 집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사시대 움집보다 못한 유목민들의 임시 가옥이었다. 가뭄과 기근으로 가축마저 죽어 가는 위기 속에서도 여주인은 우리에게 아프리카 밀크티를 대접해 주었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밀크티는 구황식품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기근의 위기 속에서도 손님에게 먹을 것을 내오는 그들의 너그러움과 배려를 접하며 ‘예전에 우리 선조들도 그랬었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빈곤해져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무엇이 진정 발전된 사회이고 성숙한 사회인지 가늠케 하는 교훈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셋째,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개발도상국 주민들을 ‘무능력하고, 게으르고, 연약하다’고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스스로 발전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일본과 조선의 초기 서양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을 ‘게으르고, 불결하고, 무지한 백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모습은 가난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러한 모습들이 가난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특징들이 가난의 원인이라면 일본과 대한민국의 지금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 사례 국제사회와 공유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나눠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아이티 어린이들의 간절한 눈빛과 손짓.
  대한민국과 일본이 그랬듯 지금의 개발도상국들도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스로 성장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교류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말에 ‘마중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펌프질을 하는 데에 마중물 한 바가지면 수압을 이용해 지하수를 풍성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그 마중물 한 바가지가 없으면 무한한 지하수의 잠재력은 무용지물이다. 우리의 기대와 인정,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의 함정에서 벗어나 발전사다리의 첫 계단에 올라설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선진 공여국 중에 미국과 일본은 전체 원조액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협력의 목적을 정치적, 경제적 국익 추구에 두고 있어 국제사회의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원조 규모에서는 이들 국가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위에서 제시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협력을 추구하고 있어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후발 공여국으로서 빠른 시일 내에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에 종종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조급함을 보이고 있다. 필자 생각에는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이전에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스탠더드를 먼저 추구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물론 획일화된 스탠더드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특성화된 국제협력의 모델을 만드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절대 빈곤과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성장한 국가로서 대한민국만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의 사례와 노하우를 국제사회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절대빈곤과, 전쟁의 아픔과 서러움을 몸소 겪어 본 민족으로서 개발도상국의 아픔과 서러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민족으로서,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같은 기적을 이뤄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지지해 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절대빈곤과 전쟁의 위기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모두를 이뤄낸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민국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다. 우리가 겪어 온 고통과 시련을 바탕으로, 과거 강대국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구촌의 빈곤과 위기극복에 기여하려 정진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정 성숙하고 존경받는 선진국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형 원조모델을 세계적인 표준으로 만들자

중·후진국들이 대한민국에 원하는 것은 돈과 물자, 식량이 아니라
단시일 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역사와 경험이다

朴大元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 1947년 경북 포항 출생.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페루 국립공과대 명예박사, 알제리 피아레대학교 명예박사.
⊙ 경력: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제8대 총재, 駐 알제리대사관 대사, 현(現) KOICA 이사장.

“당신들은 150년은 지나야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식민종주국이었던 유럽 사람들은 이 같은 말로 열악한 환경을 딛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의욕을 꺾어 놓았다. 당시 아프리카인들은 누구도 이 말에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미국과 유럽은 최소한 100년에서 200년 동안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차분히 밟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1월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이 드디어 선진국이 됐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을 찾는 아프리카의 국가지도자에서부터 장·차관에 이르기까지 최고위급 정부 관계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최근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 잘산다는 얘기를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많은 사람이 한국이 DAC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잘사는 나라가 됐구나’라고 감탄한다.”
 
  아프리카를 비롯, 아시아와 중남미의 수많은 개발도상국은 한때 유럽인들로부터 자신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던 한국을 배우고 싶어한다. 이미 19세기 말에 근대화를 이룬 서방 선진국보다 본인들과 같이 출발했지만, 불과 1~2세대만에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우리나라를 모델로 삼고 싶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워싱턴컨센서스
 
  누군가가 따라 배우고 싶은 모델이 된다는 것은 참고할 만한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산업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표준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누구든 따라 배울 수 있고 참고할 수 있는 표준이 존재했기에, 생산성의 폭발적인 증대와 우수한 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교육의 확대와 여가 시간의 확보 등 인류의 삶의 질 향상도 이룰 수 있었다.
 
  세계가 따를 수 있도록 표준을 만드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해 왔다. 산업혁명 시대 영국, 20세기 미국이 그랬다. 1990년대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新)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워싱턴컨센서스’로 명명되며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매김했다.
 
  워싱턴컨센서스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 국제경제연구소(現 피터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 박사다. 그는 열 가지 정도의 정책적 규범으로 워싱턴컨센서스를 설명했다. 금융자유화, 무역자유화, 외국인투자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재정 및 통화긴축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과 영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도 경제지표상의 발전을 이뤘지만,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돼 전(全) 세계를 경제위기로 몰고 간 월스트리트 발(發) 금융위기는 워싱턴컨센서스에는 거의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베이징컨센서스
 
  워싱턴컨센서스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던 2004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고문이자 중국 칭화대(淸華大) 겸직교수인 조슈아 쿠퍼 라모(Joshua Cooper Ramo)는 ‘베이징컨센서스’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개혁개방 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개념화한 베이징컨센서스는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의 시장경제 발전’을 일컫는다.
 
  전 분야의 자유화와 세계시장과의 일체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워싱턴컨센서스와 달리, 베이징컨센서스는 정치·경제적 자유화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경제발전을 모색한다. 실제로 중국은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 현지 시장 진출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6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아프리카 53개국 정상 가운데 무려 48개 국가의 정상이 중국을 찾았다. 베이징컨센서스가 실체 없는 개념만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워싱턴컨센서스가 금융위기 전에도 문제점과 부작용을 노출했던 것처럼 베이징컨센서스도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우선 아프리카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중국의 노동력과 저렴한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많은 현지인이 일자리를 잃고 영세 수공업자들은 시장을 잃고 있다. 노동시장이 교란되고 산업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 자유화나 민주화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탓에 서방국가와 현지 반(反)체제 인사들로부터는 권위주의 정권을 지원한다는 비난도 받는다. 중국의 아프리카 자원 확보와 시장 진출 성과는 놀랍지만 이 같은 문제점이 쌓여 나간다면 21세기형 식민주의 논란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그럴 경우 중국은 석유와 각종 광물자원, 광활한 시장을 잠시 얻을 수는 있겠지만 존경과 공감이라는 소프트파워의 핵심요소는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의료진과 시설이 세계 최고”
 

지난해 5월 중국 내몽골에서열린 황사방지 제막식 행사.

  워싱턴이든, 베이징이든, 유럽이든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하는 세력은 이처럼 변화하고 발전하고 쇠락하기 마련이다. 공통점은 어떠한 글로벌 스탠더드도 이전의 표준을 배우고 모방한 후 혁신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패턴을 따랐다는 것이다. 즉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의미다. 다만 철저한 학습이 바탕을 이뤄야 하고 남들이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막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아직 전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하는 입장에 서기는 어렵다. 아직까지는 앞선 선진국들의 경험과 노하우, 규범 가운데 따라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국내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리면 여러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과 능력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페루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은 의료 분야 무상원조 확대를 특별히 요청했다. 페루는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병원시설 개설과 신규 병원 건설 확대 등을 특별히 강조해 요청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지어 준 병원시설의 높은 수준 때문이다. 헌신적인 한국 의료봉사단원들의 노력이 금상첨화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뛰어난 수준의 인력과 시설이 페루에서 “한국 의료진과 시설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이끌어낸 것이다.
 
  최근 수많은 외국인이 의료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이 같은 평가가 페루에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1월 라오스 비엔티안주 문군및 폰홍군에서 열린 관개수리 사업착공식 장면. 왼쪽 두 번째가 박대원 총재.

 
  친한파 네트워크 구성
 
  의료뿐이 아니다. 축산, 컴퓨터, 농업개발 등 우리 봉사단원들이 활동 중인 거의 모든 분야가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의 원조기관과 봉사단원이 모여 있는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실력과 기술을 잘 따라 배워서 한국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한다. 개발도상국 곳곳에 들어서 있는 우리나라의 직업훈련원이 대표적인 예다.
 
  무상원조로 건설되는 직업훈련원은 현지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봉사단원이나 전문가가 파견돼 강사로 활동한다.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 지식이 전달되고 우리의 기자재가 활용된다. 우리가 건설한 대학이나 직업훈련원 외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곳곳의 대학과 관청에는 퇴직한 고급 기술·관리 인력이 개발도상국 인재들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로 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시 KOICA 연수센터에서는 한 해 4000~5000명의 개발도상국 공무원, 전문가가 각종 분야의 장단기 교육을 받고 돌아간다. 국장·과장급의 실무진이 대다수지만 장·차관급 고위 공무원도 다수이고, 이들이 귀국해 국가지도자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실무진도 불과 십수 년 뒤에는 한 국가를 이끌어 가는 핵심역량이 된다.
 
  현지에서 동창회를 결성해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들이 배우는 우리나라의 표준이 각 개발도상국의 표준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력을 개발도상국에 파견하고 개발도상국 인재를 초청하면서 자국의 표준을 수출해 왔던 기존 선진국의 패턴을 우리도 하고 있는 것이다.
 
 
  고기 잡는 법
 
  그렇다고 우리가 기존 선진국의 패턴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선진국의 원조가 고기를 던져 주는 데 그쳤다면 우리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금이나 물자를 그대로 제공하는 원조는 거의 하지 않는 대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데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지에서 그와 같은 원조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나라도 얼마든지 줄 수 있는 돈과 물자, 식량이 아니라 단시일 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역사와 경험이다. 단지 경제성장만을 이루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가능토록 한 민주적 정치, 행정제도를 확립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부패 척결과 치안 확보를 통한 사회 안정까지 이뤘다.
 
  대외원조 분야에서 우리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고,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프리카는 150년은 걸려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고기를 주는 데 그치는 원조와 “우리처럼 하면 한 세대만에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원조 가운데 무엇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지구촌’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지는 묻지 않아도 명백할 것이다.
 
 
  한국형 원조모델 확립
 
  다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경험을 설명해 주는 데 그쳐서는 표준이 될 수 없다. 어느 나라든 참고하고 따라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규범과 틀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재원도 필요하다. 원조의 질과 양 모두 개선돼야 한다. 개발도상국에 알리는 데만 그쳐서도 안된다. 기존의 선진국들도 수용할 수 있는 표준이 돼야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출범 이후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국격과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提高)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 ‘배려하는 나라’, ‘사랑 받는 나라’의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 인류가 지구촌 가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살아가는 지금, ‘함께 잘사는 지구촌 건설’이라는 목표보다 더 절실하면서도 희망적인 목표는 없을 것이다.
 
  한국형 원조모델을 세계적인 표준으로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연주자와 청중은 세계적이나 시스템과 재정 수준이 낮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보유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야
중국은 도시 경쟁력 키우기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에 콘서트 전용홀 건설 중

鄭明勳 서울시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 1953년 서울 출생.
⊙ 미국 매네스음대 피아노과 졸업. 줄리어드 음악대학원 졸업.
⊙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 서독 자르브뤼겐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
    프랑스 국립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이탈리아 로마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역임. ◉ 現 라디오 프랑스 음 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일본 도쿄필하모닉 특별예술고문,
    국제 유니세프 친선대사,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정명훈이 연주를 지휘하고 있다.

2007년 1월 22일. 해마다 열리는 한・중・일(韓中日) 우정의 가교(架橋) 콘서트가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500석 규모의 산토리홀에서 열렸다. 오케스트라 전용 콘서트 공간인 산토리홀은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큼 건물이 아름답고 음향 시설이 뛰어난 곳이다. 이 자리에 콘서트 후원자인 도요다 쇼이치로(章一郞) 도요타자동차 명예회장을 비롯해 한・중・일 주요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는 이날도 특별한 의장 없이 조용히 입장했으나 관객들이 그를 알아보고 기립 박수로 맞이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 왕실 가족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수석을 지낸 클래식 애호가다. 필자와는 2004년 일본 민예관 무대에서 협연한 것이 계기가 돼 벌써 여러 번 함께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이날 우리는 3개국의 연주자와 함께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와 베토벤의 3중주곡 ‘소곡’을 연주해 객석을 메운 400여 명의 청중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청중과 교감을 나눈 나루히토 왕세자는 이날이 필자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즉석에서 축하 이벤트까지 선보여 감동을 배가시켰다. 그는 신분과 격식을 벗고 순수한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또한 그의 이런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예술인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의 공연이 가능할까.
 
 
  보편성에 기초해야 세계화 가능
 
  한국인인 필자가 클래식 음악에 빠져 평생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클래식 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문화는 보편성에 기초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자신의 것과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것만 하면 경쟁력이 없다.
 
  1000년 동안 훌륭한 작곡가와 연주자를 끊임없이 배출한 클래식의 역사에 도전할 음악은 지구상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넓다. 글로벌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공감하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필자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각국의 훌륭한 문화들을 많이 체험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이 경제력 못지않게 클래식 음악에서도 선진국 수준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음악 전문가인 필자가 보기에 그 원인은 낙후된 시스템에 있다. 한국의 연주자나 청중의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시설과 프로그램 등 공연 시스템은 재원의 절대 부족으로 다른 문화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상태다. 베를린필, 뉴욕필, 런던심포니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에 없다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창설 초기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재정적으로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 문화예술 공연은 초기의 경우 재정적으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등이 관심을 갖고 지원한 것이다. 한국 역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처럼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애정을 쏟지는 않았다. 문화예술 분야는 기업처럼 투자한 만큼의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봐야 한다.
 

영국 문화예술의 자부심이자 대명사인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문화 수준이 도시의 경쟁력
 
  국가의 경쟁력과 달리 도시의 경쟁력은 소득수준을 따지는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수준이 척도가 된다. 그 대표적인 가늠자가 바로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베를린필, 뉴욕필, 런던심포니, 파리오케스트라, 도쿄 NHK교향악단 등은 해당 도시의 품격을 높여 주고 있다. 이들 오케스트라의 성공으로 도시가 얻는 이익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를 잘 알기에 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도 자국(自國)의 오케스트라를 키우기 위해 콘서트 전용홀 건설에 한창이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에 세계적 규모의 콘서트 전용홀을 건설 중이다.
 
  서울시교향악단은 창단 60년이 넘은 국내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지만 전용 콘서트홀이 없다. 또한 한정된 재원으로 오케스트라 본연의 연주 활동이 저조한 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많은 이가 서울시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고, 또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서 그동안 도전하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 구민회관, 대학교, 병원 등에 직접 찾아가 연주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나 교육 프로그램인 ‘오케스트라와 놀자’ 같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시향은 시민들 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기량도 이전보다 훨씬 향상됐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기에 서울시향을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도 우리나라는 시설적인 인프라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보면 각 도시를 중심으로 하거나 기업을 중심으로 한 좋은 공연장들이 많이 생겼다. 중요한 건 그런 공연장으로 시민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실력을 갖춘 음악인들의 열정만으로는 어렵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풍성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 국가나 지방단체 및 기업의 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일상 속에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건 사회나 젊은이들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음악은 수천 년에 걸쳐 꾸준히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음악에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도전정신이 있어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국가 전체의 음악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

 

우수인력 선별 유입, 새로운 국가정체성 형성해야

호주는 다문화센터, 캐나다는 모자이크 센터 등 설치해 이주민의 언어 등 불편 해소
‘민족=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주민까지 포용하는 더 큰 개념으로 정립해야

普善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 1946년 출생.
⊙ 광주대 졸업.
⊙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대흥사 주지 역임.
⊙ 현 조계종 중앙총회 의장, 대흥사 회주, 국무총리 다문화가족정책위원.

근래 들어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다(多)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귀화자, 다문화 가정 자녀 포함)이 115만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2008년 87만명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결혼인구 중 10%, 농촌지역 결혼의 40%가 국제결혼이라고 하니, 그 폭발적인 증가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最低)라고 하니, 이 같은 다문화 사회로의 진전은 더욱더 빨라질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이런 현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전은 필연적인데 우리 사회에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다문화 사회의 도래는 우리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민족배타성을 가지고 이주민(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다문화 가정 자녀 등)을 배척한다면,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 일어난 인종분규나 한국판 ‘조승희 사건’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다문화는 ‘양날의 칼’
  경남이주민사회센터에서 2009년 개관한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에서 책을 보고 있는 어린이와 부모들.
  사실 다문화는 굉장히 날카로운 ‘양날의 칼’이다. 현대와 같은 지식정보사회는 네트워크와 창의성이 중시되는 사회이며, 다문화는 창의성의 기반이 되는 문화적 다양성의 토대를 제공하고, 더 넓은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따라서 다문화는 우리에겐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문화, 다인종 사회를 잘못 다루면 그 재앙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주민(移住民)과 선주민(先住民)의 문화적 소통이 약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투쟁과 범죄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이민에 대해 일면으로는 규제와 통제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다양성을 강화하는 양면적인 정책을 펴 왔다. 국경관리는 철저히 하되, 입국한 이주민에 대해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통합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민국가들(캐나다·미국·호주)이나 서구(西歐) 국가 모두에서 나타난다.
 
  캐나다·호주의 경우, 1970년대 이전엔 유럽계 이민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인구 유입이 한계에 부닥치자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인들을 받아들이면서 다문화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노동력 확보와 자원개발을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주민 점수제’(이민 신청자들의 직업능력, 언어능력, 캐나다인과의 인척관계 등을 점수로 환산해 일정 점수가 넘으면 입국을 허용하는 방식. 요즈음에는 이민자 생활을 모니터링하여 영주권 부여, 국적 부여에도 점수제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를 통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들을 선별(選別)하는 정책을 폈다.
 
  일단 유입된 이주민에 대해선 각종 지원정책을 펼쳤다. 지방정부와 민간단체, 기업이 함께 이주민에 대한 생활상담, 언어교육, 의료지원 서비스에 나섰다. 호주에서는 자치단체 내에 다문화센터를 두고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모자이크 센터(밴쿠버) 등을 설치해 이주민의 언어·생활·의료 불편을 해결해 주고 있다. 또 이주민들이 자신의 고유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를 통해 문화 다양성을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수인재 확보와 문화 다양성을 통한 창의적 국가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정체성 형성 필요
  한국정부에 ‘이주민협약’가입 촉구 시위를 벌이는 외국인 근로자들. 국내 이주 외국인들과의 갈등 관리는 앞으로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다문화 선진국의 사례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험로 앞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첫째, 올바른 인구유입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캐나다나 호주처럼 ‘이주민 점수제’를 시행, 우리나라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체류-영주(永住)-국적 취득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체계화해야 한다.
 
  둘째,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이주민은 낯선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언어·의료·법률·생활·민원·교육 등 각종 불편에 시달리는데, 이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며 조기에 정착할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주민의 장점을 활용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주민이나 그 자녀들은 2개 국가 이상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또 2개 언어 이상을 구사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들의 장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창의적 대한민국, 글로벌화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가가 판가름난다.
 
  넷째, 새로운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만을 강조해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주민들의 충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 ‘민족=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주민까지 포용하는 더 큰 개념으로 정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의식이 다문화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1950~60년대 미국의 인종갈등, LA폭동, 2005년 프랑스 리옹시 폭동,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일명 조승희 사건) 등은 이주민 문제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문화 사회로 인한 문화 충격에 대처해야
 
  이제 우리는 그 첫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앞으로 다문화 현상은 엄청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적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베트남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밥을 먼저 푸다가 시어머니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년’이라며 구박을 당하고 쫓겨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살아 있는 사람에겐 절을 하지 않는 몽골의 관습대로 시댁 어른께 절을 하지 않다가 구박을 받았던 몽골 결혼이주 여성 등, 문화적 이해의 결여로 인해 발생할 일들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사례들이 한 사람의 충격이 아니라 집단적인 충격으로 나타날 때, 어떤 갈등이 드러날 것인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 즉 ‘타(他)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야 국민 전체의 풍부한 다문화 감성지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글로벌과 다문화는 동전의 앞뒤 면과 같다. 다문화 없는 글로벌화는 있을 수 없다.
 
  어느 나라보다 급속하게 ‘다문화화(化)’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은 “글로벌, 다문화 사회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퍼스널 스탠더드’를 갖춘 기자가 글로벌 스탠더드 만든다

인터넷 정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투명성’과 ‘책임감’ 갖고 현장에 뛰어드는 행동력 필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하는 많은 미디어가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

오사와 분고(大澤文護)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 1957년 도쿄(東京)출생.
⊙ 1980년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입사. 同신문 외신부 근무(1992~97)·서울특파원서울지국장
    (1997~02)·외신부부장(2002~04)·필리핀 마닐라지국장(2004~08)·외신부편집위원(2008~09) 역임.
    現 마이니치신문서울지국장.
⊙ 취재분야: 한반도 및 동남아시아 정세, 남북통일 문제

현재의 전쟁·분쟁 보도는 영상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다. 걸프전(戰)에서 미국 TV가 바그다드 공습을 세계에 생중계하고, 미사일에 장착된 카메라로 목표 지점 도달까지 촬영한 영상 또한 세계 곳곳에 퍼졌다.
 
  걸프전 등을 겪으면서 일본에는 이러한 기법이 미디어가 전쟁·분쟁을 보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정말 그러한가? 아무리 속보로 전한들, 아무리 상세하게 보도한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훗날 후세들에게는 단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외신부에서 때로는 특파원으로서 분쟁 지역의 현장을 취재했고, 때로는 본사 데스크에서 전장(戰場)에서 동료가 보내오는 원고를 받아 보았다. 지금도 국제 보도 현장에서 취재 활동을 하는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민 끝에 도달한 하나의 결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라크의 목소리
 
  취재 조건이 열악한 현장으로 향할 때마다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는 기사가 있다. 2003년 3월, 당시의 미국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마이니치신문과 제휴 관계를 맺은 조선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여기자 강인선(姜仁仙)씨는 미군을 동행 취재하는 임베드(embed) 프로그램에 참여, 종군기자(從軍記者)로서 현지에 파견되었다.
 
  마이니치신문은 강 기자가 현지에서 조선일보 본사로 보낸 종군기를 동시 게재하기로 했고, 마이니치 신문 외신부 한반도 취재팀이 번역을 담당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이 게재한 강 기자의 종군기 제목을 무작위로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약혼자는 전선으로, 여군은 울었다 ▲숨도 쉴 수 없는 모랫바람, 자동차 행렬 이어져 ▲해방군? 주민들은 무관심 ▲끝까지 보고 싶은 생각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반반 ▲손 씻을 물도 없어 손끝이 갈라져 ▲동물 이하의 생활, 美 기자는 귀국 ▲일주일에 끝나다니 웃기는 이야기 ▲마지막 기사를 어떻게 쓸까 ▲옅어진 공포, 되살아나는 일상 ▲사막에 핀 분홍 장미 두 송이 ▲40일째, 전장을 뒤로하며 온종일 울었다.(마이니치 신문에 게재된 제목임-편집자 注)
 
  어느 것도 대규모 전투나 역사적 사건을 그린 르포는 아니었지만, 연재 기간 중 마이니치신문 본사(本社)에는 독자들의 수많은 편지와 메일, 전화가 쏟아졌다. 미국의 거대 미디어가 쏟아내는 미 정부·미군 관련 정보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었던 미군들의 불안한 심정, 이라크 일반 민중의 비참한 모습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중심에 세운 르포르타주 기법에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는 일본 독자들의 호평이 쇄도했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대규모 전쟁 종결 선언 1년 후, 마이니치신문 1면 칼럼 ‘여록(餘錄)’에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됐다.
 
  <‘그로부터 아직 1년도 채 흐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작년 3월 20일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과 함께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이렌, 총성, 연기, 뿌옇게 변해 가는 하늘. TV에서 바그다드의 심상치 않은 광경이 흘렀다.
 
  ▲당시 미군 보급부대에 종군했던 한국 조선일보의 강인선 기자의 르포가 본지에 게재되었다. 모래 돌풍 속에서 적 그림자에 떨며 바그다드를 향해 떠도는 소부대. 지휘관, 병사들, 그리고 ‘날개가 있다면 도망치고 싶다’고 외치고 싶은 기자 자신의 전장 심리가 휴대전화로 전해 오는 글 속에 배어 있었다. (중략) 바그다드를 뒤로할 때 강인선씨는 미군 장교에게 물었다. ‘(대량살상무기가) 만일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참혹한 전쟁을 해야만 했는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전주의자도 박애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자신이 한 번도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제압한 일이 없는 약한 나라의 국민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도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지 않은 나라’가 되겠다고 반세기 전 헌법으로 다짐한 국민이었다.>
 
  강 기자의 종군기는 국경을 넘어 일본 독자들과 칼럼니스트의 마음을 울리는 세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파그라스의 꿈
  하늘에서 바라본 파그라스씨의 바나나 농장.
  강 기자의 종군기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필자도 이전에 근무했던 필리핀에서 잊지 못할 취재를 경험했다. 민다나오 섬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슬람교 과격파 세력이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이 섬의 내륙 지방은 지금도 외국인 기자가 출입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그러나 그곳에 이슬람 주민들을 새로운 사상으로 이끌고 있는 젊은 리더가 있다는 이야기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인을 통해 연락을 취했더니 민다나오 섬 최대 도시인 다바오시 공항에서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2008년 1월, 땅 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남국(南國)의 태양이 지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기 직전인 새벽, 공항에서 소형 단발 비행기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副) 조종석에 앉아 있던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돌아보며 뒷좌석에 앉은 내게 “어서 오십시오”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바로 비즈니스를 통해 이슬람 사회의 발전과 개혁을 이루자고 주장하는 젊은 지도자 파그라스(Pagras, 당시 47세) 씨였다.
 
  16세기 필리핀은 대항해시대의 패자(覇者)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때까지 민다나오 섬에는 이슬람교도의 유력 일족이 ‘영주’로 군림하여 섬을 ‘반사 모로(Bansa Moro: 이슬람의 나라)’라 부르며 통치했다.
  2008년 1월8일, 필리핀 반정부 세력의 근거지인 민다나오섬에서 만난 파그라스씨(가운데 흰옷). 이슬람 교도의 지도자인 그는 “무력투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이슬람교도와 전사들을 데리고 바나나 농장을 개간했다.
  그 유력 일족의 자손인 파그라스 씨는 1997년 미국,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 각국의 자본과 제휴하여 민다나오 섬 내륙에 있는 고향 다투 파그라스(Datu Pagras) 마을에서 1600ha의 바나나 농장 개발에 착수했다. 관개(灌漑)에는 세계 최고로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기술을 도입했다. 바나나 농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는 약 2000명. 그 80%는 현지 이슬람교도다.
 
  이슬람교도 유력자로서 이슬람 전사들을 배출해 온 파그라스가(家)의 당주(當主)가 왜 미국 자본을 도입하고 이슬람교도가 가장 적대시하는 이스라엘의 기술까지 도입해서 바나나 농장을 시작했을까?
 
  “결국 무력 투쟁과 정치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가족들은 하나 둘 죽어 갔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이슬람 사회의 구세대들은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빈곤이 해소되면 싸울 이유도 사라진다. 생활이 윤택해지면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인 성과는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과 권력 투쟁만 일삼는 정치에 대한 절망이 그를 분쟁에서 비즈니스 세계로 이끌었다.
 
  ‘정부군’ 대(對) ‘이슬람 무장세력’. 그러한 기존의 시각만으로 민다나오 문제를 바라보았던 과거 기사나 정부 견해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젊은 지도자의 도전이 민다나오 섬의 깊은 숲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 도전에 동참하는 많은 이슬람 주민이 있었다. 필자에게는 그러한 사실을 앞으로도 세상에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퍼스널 스탠더드
 
  글로벌 스탠더드란 무엇인가? 필자가 항상 곁에 두고 사용하는 일본 국어사전 <고지엔(廣辭苑)>(岩波書店 발행)에는 ‘세계적인, 지구 규모의’ 라고 되어 있다. 영어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비(非) 영어권 미디어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모든 기자가 영어를 구사하여 영어로 기사와 정보를 발신하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하다.
 
  그런 일에 힘을 쏟기 이전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하는 세계의 많은 미디어가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독자가 신문을 읽는 것 이상으로 시간을 들여 인터넷 정보 검색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는 인터넷을 통한 블로그나 유튜브의 동화상(動畵像)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 기존 미디어가 독자와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정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투명성’과 ‘책임감’으로 강 기자와 같이 현지에 뛰어드는 행동력이 필요하다. 기존 관념으로 흐려진 눈을 씻어내고 민다나오 섬 숲 속으로 향하는 순수함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기자의 존재에서 비롯된 기사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필터를 통해도 절대로 퇴색하지 않는 빛을 갖는다.
 
  경제발전과 국가의 영향력 확대를 과시하며 그 힘을 배경으로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어 최첨단 통신기기를 갖추고 정부나 권력자와의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서둘러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하고자 발돋움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먼저 자신의 발로 현장을 보고 자신의 감성으로 진실을 찾으려는 ‘퍼스널 스탠더드’를 갖춘 기자를 키워 내는 일이, 그게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미디어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韓日 미디어의 글로벌 스탠더드
 
  마지막으로 필자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부한 이래 은사로 모시고 있는 정치학자 이치카와 마사아키(市川正明) 선생을 소개하겠다.
 
  현재 도쿄에 거주하는 이치카와 선생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전후(戰後)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연구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분이다. 80세를 맞이한 이치카와 선생님은 다방면에 걸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일본의 원훈(元勳),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의 <동양평화론> 초고를 발견하여 널리 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생님의 업적이 없었다면 안중근 사상의 핵심은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지금도 투병 생활을 하며 한일(韓日)관계사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근본 자료를 밝혀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계속해서 규명해 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정한 상호 신뢰는 불가능하다. 한일 양국은 그 중요성을 진지한 자세로 직시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고 있다.
 
  올해는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해다. 우리 미디어에 몸담은 사람들은 선구자의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양국의 대립과 증오를 부추기는 일 없이 상호 이해와 신뢰 구축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한일 양국 미디어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키우는 커다란 토대가 된다. 필자는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하루 취재 활동에 임하고 있다

 

대한민국 도약은 글로벌한 對北정책에서 시작

대범하되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 물샐틈없는 급변계획 준비 필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김정일을 초청해 국제현실 보여줘야

鄭玉任 국회의원
⊙ 1960년 서울 출생.
⊙ 성신여대 사대부여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박사.
⊙ 美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美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전문위원, 국가정보원·외교통상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제18代 국회의원,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국제사회에서 우리처럼 역동적인 나라는 드물다. 대외(對外)정책, 국내정치뿐 아니라 문화, 예술, 체육 등 전방위적으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역동성은 대외정책이나 국내정치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정신이 무색할 정도로 1인 독재를 고집하며 대(代)를 이어 권력을 승계하는 북한의 존재와 김정일(金正日)의 운명! 이것이야말로 2010년의 문턱을 넘어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한반도의 역동성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킬 수 있는 동인(動因)이다. 북한 정권이 기존의 통제력을 잃어갈수록, 긴장의 고삐를 죄며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역설(逆說)이다. 물론 현상에 관한 제한된 정보에, 직관과 상상력이 동원된 만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철저히 준비할 때이며,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주장을 접을 수가 없다.
 
 
  김정일 정권은 붕괴해도 북한 체제는 존속 가능
 
  김정일 정권은 과연 무너질 것인가? 이 질문은 붕괴의 여부보다 ‘언제 붕괴할 것인가’가 더 적절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모든 정권이 명멸해 왔으며 영속한 정권은 없다. 공산주의의 외피(外皮)를 쓴 채 권력의 부자(父子)승계에 성공한 독특한 정권이 과연 21세기에도 존속될 수 있을지는 희대의 관심사다. 김정일 사후 아들에게 권력을 일시적으로 승계할 수는 있으나, 그 권력이 영속될 가능성은 붕괴 가능성보다 훨씬 미미하다.
 
  둘째, 정권과 체제는 구분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은 붕괴해도 북한 체제는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정권의 붕괴를 곧 체제 와해에 따른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과 연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우리의 통일과정은 베트남식도, 독일식도, 예멘식도 아닌 새로운 시나리오로 전개될 것이다. 상황 추이에 따라 순발력 있게 조정할 여지를 확보하되, 통일 과정 전반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셋째, 어떤 붕괴 시나리오가 되든 그 출발점은 김정일의 유고, 즉 생물학적 사망의 가능성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 붕괴와 관련해 군부 쿠데타, 주민소요, 학살 그리고 대량 난민 발생 등 다양한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제기한다. 김정일 암살 가능성 및 생존 시 쿠데타 시도 확률은 ‘제로’로 보는 것인데, 이것 역시 전례가 없는 북한 정권의 비(非)정상성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김정일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가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이어받은 권력도 승계라기보다는 쟁취에 가깝다. 그만큼 그는 천부적인 권력자이다.
 
  따라서 김정일 개인의 건강상태가 북한 정권의 존속과 남북관계 및 한반도, 동북아 안보를 결정짓는 주 변수가 된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 발생으로 좌하부 신경기관 마비 및 우울증, 그리고 당뇨성 만성 신부전증 악화와 만성후두염 등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다. 이런 건강상태는 1인 지도체제에 과부하를 주기에 충분하다. 채 서른도 안된 셋째 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서둘러야 하는 정치적 과제 또한 독재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단화시킬 수밖에 없다.
 
  노화(老化)에 따른 자제력 부족도 드러난다. 대북(對北) 정보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은 자신의 가족에 통치의 한 축을 의존하고, 술과 담배를 다시 찾는가 하면 짜증과 의심으로 측근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자연사할 확률은 높아지고 2012년은 어떤 의미로든 분기점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김정일의 권력 세습에 대한 집착은 북한 정권이 벼랑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감행할 개연성을 줄이는 요소가 된다. 권력 계승은 죽어도 좋다는 각오보다는 대(代)를 이은 생존에의 집착에 가깝다.
 
  1984년생 ‘청년대장 김정은’에 대한 상징조작과 찬양은 인민의 비아냥을 넘어 눈물겨울 정도다. 김정은의 공식 직함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후계 자체를 함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김정일 시대가 저문다는 인식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 후계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김정은은 김정일의 현장 방문 수행 등 통치 활동을 보좌하는 가운데 신진 간부를 선발해 친위 세력화하고 있다. 2009년 4월의 미사일 발사와 화폐개혁도 원래는 김정은의 공으로 돌려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었다.
 
 
  한국은 북한의 非대칭적 殺傷 위협의 인질
  건강악화설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도를 강화하고 있는 김정일. 지난 2월 2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황해도 북부 송림에 위치한 황해 철강 복합단지를 방문했다’며 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할 경우 특정 세력이 김정은을 앞세워 집단지도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화폐개혁 실패로 북한 정권이 흔들리고 있지만, 일련의 불안이 무(無)정부 상태나 정권 붕괴로 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장 보따리 아줌마가 벤츠 탄 고위 간부를 이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주민 대(對) 당국 간 갈등 징후는 나타나지만, 촉매가 될 조직화 세력이 부재한 데다, 체제 보위기관이 건재해 있어 단기간 내 변화를 주도할 개연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변사태 대비 계획은 긴요하다. 세계 경제력 10위권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느냐 하는 것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비대칭적 살상 위협의 인질 상태에 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형국에 더해, 생화학 무기·미사일 및 휴전선 일대를 뒤덮은 자주포·방사포 등의 사정권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의 존재는 기밀이 아닌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급변계획의 요체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안녕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문 정신, 즉 체제의 상호 인정을 강조하되, 북한 정권이 그들의 내부 문제를 대남 도발로 반전시키려는 기도 자체를 사전 봉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급변사태에 있어 중요한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 엘리트의 관리 문제다. 김정일 정권하의 엘리트들에 대해 그들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치명적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 한, 김정일의 유고와 함께 체제 변환의 과정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단죄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언급하기도 조심스럽고 예민한 사안이나, 북한 내 엘리트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위기관리에 결정적 순기능을 할 것이다. 체제 피로감을 체감하는 핵심 엘리트들이 향후 새로운 북한 체제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6·15 10주년, 고려연방제 제의 30주년을 맞은 2010년을 자주통일의 새 국면을 여는 해로 천명하고 있다. 체제 속성과 전술한 압박 때문에 유화와 도발의 양동 작전을 구사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내지 미·북(美北) 간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김정일이 핵 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린다는 보장은 없다.
 
 
  남북정상회담과 G20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과 내용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201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여야(與野) 모두 긍정적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지가 있음을 이미 밝혔으나, 회담의 사전 대가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올해 11월 한국이 G20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다. 북한이 그 사이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며, 국지 도발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정권의 부자상속을 향한 북한의 퇴행적 행태와 아시아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의 선진화 행보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G20은 국제사회에 전근대와 포스트모던을 아우르는 역설적인 한반도 상황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올 11월 이전까지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이명박 정부가 G20에 김정일을 옵서버로 초청하는 극적인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모름지기 북한의 권력자에게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와 상호의존적인 국제 협력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게 해 줄 장(場)이 될 것이다.
 
  김정일이 이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작다 해도 한국의 대북정책 방향과 북핵 문제의 심각성, 나아가 유엔이 천명하는 쟁점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있다. 한국이 북한의 덫에서 헤어나려면, 즉 부정적 동력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범하되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 그리고 물샐틈없는 급변계획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기고문은 개인의 의견으로 한나라당 또는 대한민국 국회의 입장과 무관(無關)합니다.)

 

한국에서 ‘중도파’로 사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자신의 가치에 대한 無知가 한국 최대의 문제점이자 약점
이유없이 상대방 깎아내리는 ‘질투’ 버려야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일본학과 교수
⊙ 1956년 일본 도쿄 출생.
⊙ 도쿄대학 공학부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 2003년 한국 체류 15년 만에 한국인으로 귀화.
⊙ 現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한국은 무서운 스피드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봐도 그렇다. 서양인들의 축제라는 느낌이 강한 동계올림픽에서 그들 사이에 당당히 낀 한국선수들의 활약은 한국의 저력을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김연아(金姸兒) 선수가 보여준 최고의 예술성처럼 한국의 보편적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이 언젠가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는 솔직히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재료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었고, 실제로 한국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국에 비판적이었다면 나는 한국인으로 귀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고쳐질 것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한국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가치가 있는 한국인데, 당사자인 한국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가치에 대한 무지(無知)라는 상황이야말로 한국 최대의 문제점이자 약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아직 자신의 모국(母國)이 가난하고 부족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알맹이가 없는데도 큰소리만 치는 정신이 없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국의 위대함을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일 수도 있다.
 
 
  골 깊은 理念 대립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현실 때문에 한국에 살면서 내가 항상 느끼는 것은 깊은 이념(理念)의 대립현상이다. 한국에서는 중도(中道)에 선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어떤 모임에서 어느 참석자가 “나는 중도이고 우(右)도 아니고 좌(左)도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즉각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요? 나는 중도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상대방을 비판했다. 그때 다른 참석자들도 중도란 결국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아마도 다른 자유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대화가 오간 것이다. “아직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중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중도파가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당에 몰두한 것도 아니고, 민주당이 실패하면 또 다른 대안(代案)을 찾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성파(理性派)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진짜 ‘실용적’이다.
 
  이념으로 규정된 사고방식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유 선진국에서는 사실 ‘탈(脫)이념화’된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은 아직 중도파를 용납하지 않는다. 탈이념화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 문제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은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다른 종교를 ‘악마’라고 부른다면…
  2010년 2월 19일 밴쿠버의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결승전에서 이상화가 역주하고 있다. 이상화를 비롯한 이른바 ‘G세대’의 활약처럼 한국은 무서운 스피드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념 대립의 정도가 가장 큰 분야는 종교적 대립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대립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
 
  한 여성이 나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오라고 하면서 다른 교파는 ‘사탄’이라고 주장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다른 교파(敎派)나 종교를 ‘사탄’, ‘악마’라고 부른다면 스스로 평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종교나 이념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신앙심(信仰心)이 깊어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그런 신앙은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어떤 강력한 신념을 갖고 일을 추진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또 다른 ‘신념’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한국에 살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관련해서 굳이 나쁜 점을 또 하나 끄집어낸다면 ‘질투’를 들 수 있는 것 같다.
 
  2001년에 한일(韓日) 간 교과서 문제가 일어났을 무렵이다. 이때부터 나는 언론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전공이 ‘일제(日帝)시대 연구’이므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歪曲) 문제,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문제, 독도 영유권(領有權) 문제 등이 내 전공에 포함된다. 일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수상이 된 후, 이런 문제들이 속속 한일 간의 주요 현안이 되면서 전공자인 나에게 언론 인터뷰나 기고(寄稿) 요청이 부쩍 늘기 시작했고, 라디오나 TV 출연 요청도 많아졌다.
 
 
  ‘질투’로 인한 이유 없는 깎아내리기
 
  당시는 나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를 마음대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평가절하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까운 교수 중에 많았다. “논문이나 쓰지, 왜 언론에 자꾸 나가는가?” 하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뒤늦게 내가 논문을 많이 쓰고 책도 여러 권 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내가 학술활동을 하지 않고 매스컴에만 나가려는 ‘엉터리 교수’로 생각한 모양이다. 교수의 본분인 학술활동을 성실하고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내가 언론활동을 했다고 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대학의 한 교무위원이 내게 “호사카 교수님이 TV출연도 하시는데 그렇게 학술논문을 많이 쓴 줄 몰랐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발표한 논문수(數)가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실 “교수님이 논문수가 많으시니까 우리 학회의 편집위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편집위원들의 발표 논문수가 많은 것이 학회의 평가점수가 올라가는 조건 중 하나라고 한다.
 
  어느 학회에 참석했을 때 한 유명 교수가 내가 참석하고 있는 줄 모르고 나를 비판했다. 그가 말했다.
 
  “호사카 교수의 독도 연구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물음에 대해 상대방 교수는, “글쎄요. 나는 간도(間島) 문제를 연구하지만, 한국을 위해 연구한다는 자세를 객관성의 결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도 내가 참석해 있는 것을 몰랐지만, 오히려 내 연구가 객관적이라고 평가해 준 것이다.
 
  토론회 도중 휴식시간에 나는 나를 비판한 교수에게 내가 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사를 건넸다. 그는 대단히 어색한 표정으로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토론은 10분쯤 후에 재개됐지만 그 교수는 같은 질문을 다시는 하지 못했다. 왜 당당히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하는가?
 
  권위 있는 학자인 그가 왜 숨어서 나에 대해 저런 질문을 했을까? 내게는 ‘질투’로 인한 이유 없는 깎아내리기로만 비친 사건이었다.
 
  한국은 내게 여전히 아름다운 ‘신비의 나라’이자 꿈을 실현해 주는 나라이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알려준 ‘스승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마도 한국은 앞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될 것이고, 더욱 세계인이 모이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인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고, 나눠줄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돼야 할 것이다

 

왜 한국은 한국적이지 않은가?

국제적 기준에 억지로 맞추기보다, 그 국가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해야
외국인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줄 아는 유연성 필요

베라 호흘라이터 독일인·KBS2 TV ‘미녀들의 수다’ 출연 중
⊙ 1979년 독일 하일브론 출생.
⊙ 베를린 자유대학, 파리 소르본느대 졸업.
⊙ 2006년부터 서울에서 거주 중. 현재 KBS 2TV ‘미녀들의 수다’ 패널, TBS eFM 뉴스캐스터로
    활동 중.

나는 G20정상회담 준비에 관한 한국 언론의 기사를 읽을 때 종종 웃는다.
 
  정상회담 장소는 몇 달 전부터 매우 꼼꼼하게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을 시작했으며, 방문객들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악취가 나는 것이나 벌레들을 모두 제거하고, 전선(電線)들은 미관상 바닥 아래로 깔아야 한다고 말한다. G20회의가 열리는 지역에서 운행하는 택시기사들은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서울의 거리에서 아직까지도 보기 힘든 전기자동차들이 도입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 친화적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계획대로라면 G20정상회담은 서울이 아니라 무균(無菌)의 인공적인 장소에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표 정치인들은 G20정상회담 개최를 언급할 때마다, 이것을 통해 한국이 세계적인 리더로서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만약 서울과 한국을 외국의 정상들에게 알리고, 국제적 도시로서 인식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할까? 그 도시의 일상생활을 알리면 안되는 걸까?
 
  많은 한국인은 국가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방인 앞에서 국가에 대해 칭찬을 한다. 하지만 G20정상회담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 한국인들 특유의 국가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조직위원회가 서울에 대해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한 도시를 정치 행사를 위해 완전히 재조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 그 도시의 본(本)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외국정상들이 본래의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본다면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또 그것이 한국에 치욕인가?
 
 
  완벽한 모습 보이려 애쓰는 서울
 
  서울은 세계의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이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과 단점, 이 두 가지의 모습이 그 도시의 특별한 모습을 만든다. 지하철에서 밀치는 아줌마들, 불친절한 택시기사들, 보도에 놓인 쓰레기봉지 그리고 바퀴벌레 몇 마리가 외국 손님에겐 당장 즐거움을 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것을 ‘최악의 경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에게 이런 면이 흥미롭게 보일 수도 있다. 외국인들은 도시 곳곳의 깨끗하게 잘 정리된 명소들과 함께 몇몇의 완벽하지 않은 분위기를 즐길 것이다.
 
  외국 방문객은 서울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불편한 점을 숨기고 감추거나 그것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고자 하고, 누군가 단점을 언급하고자 하면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누구의 마음에나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한국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그것은 치부(恥部)가 아니라 단지 그의 의견일 뿐이다.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해 외국인이 대부분의 한국인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나고 그에 따라 다른 가치 기준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어느 나라 국민이나 자기 국가가 좋은 말과 칭찬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나, 그것이 사회발전 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 추구를 위한 구체적인 비판은 또 다른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느 사람도, 여느 도시도, 여느 국가도 완벽한 것은 없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서울이 무공해 환경친화적 도시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되는 것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권위, 역사인 것이다.
 
  많은 사람은 서울의 관광 산업에 대해 ‘아시아의 스위스’, ‘또 다른 싱가포르’로서 성장이 가능하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몇몇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도쿄나 홍콩 수준이라고 표현을 한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 조금 놀란다. 왜 한국은 한국이지 못하고 서울은 그냥 서울이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다른 도시와 다른 국가들에서 영감(靈感)을 받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또 그들을 경쟁상대로 두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다른 나라의 잣대에 병적으로 집착해 그에 맞추려 한다면 자신의 존재성을 잃는 결과만 초래할 뿐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G20 정상회의 유치보고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이 한국에 신뢰 줄 때 글로벌 리더 되는 것
 
  글로벌 스탠더드란 환상일 뿐이다. 한 나라에서 옳고 좋은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무례하고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고, 한 나라에서 비(非)신사적인 행위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심각한 범법(犯法) 행위가 될 수도 있다. 한 나라에서 유행인 것이 또 다른 곳에서는 웃기고 세속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
 
  만약 국제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필자와 같이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여러 다른 문화 사이에서 오가는 많은 사람의 삶이 훨씬 편할 수 있다. 만약 독일, 한국 그리고 나머지의 세계에 통일되는 그러한 기준이 있었다면 필자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나 불필요한 불쾌함, 그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 국가에는 자신의 특성이 있고, 그것이 바로 그 나라의 매력이다. 모든 나라가 가상(假想)의 국제 기준에 맞춘다면 굳이 여행을 할 이유가 없다. 모든 곳이 같거나 비슷하다면 그냥 집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고 기이한 다른 모습을 보고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국제적 기준을 논할 때는 보통 그의 가상 뒤에 자신의 국가의 기준을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 에티켓이나 사회구조, 정치이념 또는 직업관 등은 다른 나라에 맞추기가 힘든 부분이다. 한국 역시 자신의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따온다면 또 다른 새로운 문제점을 만들어낼 뿐이다.
 
  한국이 언젠가 글로벌 리더로 도약한다는 가정은 한국 정부나 국민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원하고자 하는 욕구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 한 나라가 자신이 직접 글로벌 리더라고 자칭(自稱)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국가들이 이 타이틀을 줘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다른 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그들의 신뢰를 줄 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임(信任)은 상호간의 신뢰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른 국가 정상들에게 가상현실을 보여준다면 진실해 보이지 못하고 특별히 신뢰감을 주지도 못할 것이다.
 
  국제 행사를 개최할 때 한국은 참가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많은 나라다.
 
  지난 수년, 수십 년간 기록적인 발전을 했고 그것이 다른 개발도상국에 성공사례로, 또 그들의 개발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역사를 표현하고, 겸손한 자세로 남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좀 더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국제사회도 한국을 존경하고 신임할 것이다

 

 世界化에 대한 적응력과 기술낙관주의 놀라워

역사문제에 대한 과민반응, IT기술과 민족주의가 만났을 때 보여주는 ‘성숙함 결여’는 문제
‘세계화’는커녕 최소한의 개방조차 꺼리는 북한과 동행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해야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 1970년 독일 도르트문트 출생.
⊙ 獨크리스티안-알브레히트대 경제학과 졸업. 佛파리제1대학교(판테온 소르본) 경제학 석사,
    獨크리스티안-알브레히트대 경제학 박사.
⊙ 獨크리스티안-알브레히트대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원, 獨비텐-헤르데케대 문화비교경제연구소
    연구원,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조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나는 독일 킬의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부터 시행된 세계화(世界化) 정책 덕분에 한국에서 첫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많은 국제대학원이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는데, 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 초빙되어 유럽 경제에 대한 강의를 맡게 된 것이다.
 
  내가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98년 9월이었다. 바로 그 전 해에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덮쳤다. 한국이 OECD에 가입했을 때 불었던 국제화에 대한 낙관주의는 막을 내렸다.
 
  사실 많은 친구가 당시 위기국가 중 하나였던 한국으로 향하는 나를 말렸다. 한국의 경제는 몇 년 동안 무너져 있을 듯했다. 식당·술집·노래방에서는 ‘IMF 가격’이란 것을 제시했다. 그것은 좋은 흥정이기도 했지만, IMF(국제통화기금) 등 세계경제기구와 그들의 처방전(지역경제는 불합리하게 보였던)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世界化에 대한 적응력 놀라워
 
  외환(外換)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글로벌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은 말레이시아가 취했던 국가주의적 내지 아시아 중심의 접근과는 많은 부분에서, 예를 들면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와 같은 부분에서 다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다소 편파적인 접근이었다. 글로벌 가치를 적극 수용하는 한국의 전략은 한국을 세계의 시선 속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한국으로 끌어오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한국을 세계의 다른 지역과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을 ‘동(東)아시아의 허브(Hub)’, 즉 지역중심으로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이 ‘허브’란 아이디어는 거의 무궁무진하게 응용이 가능했다. 금융허브, R&D 허브, 의료관광 허브, 교육 허브…. 무엇이든 이름만 붙이면 됐다. 심지어 ‘동북아(東北亞) 균형자’론까지 나왔다.
 
  실질적인 면에서 세계화는 세계에 대한 개방(開放)을 의미했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개방이 현저했다. 부분적으로 이는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기업 가치가 낮아진 덕분이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로 인한 고통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은행 부문과 같은 곳에서 개방 정책이 이어졌다. 글로벌 개방과 국제금융기구가 수용을 강요했던 고통스러운 처방전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당화됐다.
 
  한국에서 지낸 12년을 돌아보면, 한국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냈는지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은 확실히 글로벌 세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세계적 리더십을 열망하기까지 한다.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는 한국의 능력은 다른 나라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회사와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월등한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에 매우 잘 대처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적 세계화’라는 ‘연성 사안(軟性 事案·soft issues)’과 관련해서도 긍정적인 동력을 많이 갖고 있다. ‘한류(韓流)’는 의심의 여지 없이 동남아(東南亞) 및 동북아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이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나 G20의 일원이 되어 글로벌 리더십을 행사하게 된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다.
 
 
  IT기술과 민족주의가 만났을 때…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는 IT기술과 민족주의가 만났을 때, 성숙함이 결여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반면 한국에는 이곳에서 상당 기간 살았고, 한국이 이룩한 성과를 존경하는 외국인조차도 당황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있다.
 
  거의 정기적이다시피 물리적으로 싸우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확실히 한국의 나쁜 모습이다.
 
  역사 문제와 관련된 과민반응도 문제다. 지난 정부 시절 ‘각박한 역사전쟁’ 운운하던 것과 비교할 때, 현(現) 정부가 인접 국가와의 역사 갈등, 혹은 지난 시절의 한국 역사와 관련해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IT 등 기술 리더십이 민족주의적인 태도와 만날 때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한국을 ‘성숙한 사회’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국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때 네티즌들이 보여주는 흥분은 그 좋은 예다. 그것이 별로 중요치 않은 출신에 대한 비판 때문이건, 스포츠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받은 부당한 대우 때문이건 간에, ‘공공(公共)의 적(敵)’으로 찍힌 사람의 주소나 얼굴을 인터넷에 공개하거나,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2008년 서울 도심(都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2MB(네티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가 내건 모든 것’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로 마비됐다. 시청률을 좇는 무원칙한 미디어들의 위험한 연합, 선거에서 잃은 것을 거리에서 찾으려는 정치인, 이념편향적인 교사들에 의해 선동된 순진한 학생…. 그들은 급속하게 발전한 한국사회가 얼마나 성숙함이 결여된 사회인가를 보여줬다. 정부는 이나 ‘미네르바’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행동을 법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한정돼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한국인의 기술낙관주의
 
  내가 관찰한 바로는 한국에서는 기술낙관주의가 어떤 의심이나 주저함(내가 유럽인으로서 익숙한)도 없이 세계적 과제들에 부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성장’은 기술혁신과 배짱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성공적인 전략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녹색성장’은 하나의 뛰어난 레토릭(수사·修辭)으로 시작됐을지 모르지만, 이미 단순한 마케팅 기법을 뛰어넘었다(‘녹색성장’의 몇몇 요소는 그렇게 녹색답지 않지만 말이다).
 
  한국의 장래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하게 발전한 결과 남북한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그렇다고 한국이 발전하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지나치게 발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20년 전 독일이 통일됐을 때, 동서독 간의 경제적·문화적 격차는 오늘날 남북한에 비해 훨씬 적었다(부분적으로 이는 대부분의 동독인이 서독 TV와 라디오를 상대적으로 거리낌없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인은 통일 후 20년간 동서독 간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탈북자(脫北者)들에게서 보듯, 이 점에서 한국은 독일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이 글로벌 경제체제 속에서, ‘세계화’는커녕 최소한의 개방조차 꺼리는 북한과 동행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스자이델 재단의 입장과는 무관(無關)합니다.)

한국인이 혼동하기 쉬운 글로벌 에티켓 1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제 ‘동양 사람’으로 적당히 묻혀서 지낼 수 없는 세상이 됐음을 알아야 한다

‘에티켓(etiquette)’은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표찰, 꼬리표 등을 가리켰다.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은 루이 14세 시절 베르사유 궁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궁전에선 수시로 연회가 열렸지만, 화장실이 없어 정원에서 볼일을 보는 방문객이 많아 정원사가 푯말을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는 설과 궁전 출입 귀족들의 출입증인 ‘티켓(ticket)’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에티켓은 모두가 지켜야 할 보편적인 예의 또는 규범으로 정의된다. 어느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와 관습으로 굳어진 일종의 약속이다. 그래서 서로 다름은 있지만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에티켓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걸 모르면 미개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나라의 격(格)은 함께 추락할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제 ‘동양 사람’으로 적당히 묻혀서 지낼 수 없는 세상이 됐음을 알아야 한다. 서양 사람이 동양인을 보면 “일본인이냐”고 물었던 게 엊그제였지만 이제 ‘KOREA 브랜드’는 독자 상표가 됐다. 그만큼 우리가 세계인 앞에서 갖춰야 할 몸가짐과 자세 또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특히 5000년 역사를 통해 보존해 온 고유 문화, 전통에 비춰 깜빡하기 쉬운 매너들이 많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정리했다.
 
 

■ 글로벌 에티켓 ■

  인사 - 에티켓의 기본
  악수의 기본 매너는 ▲일어선 자세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오른손으로 ▲표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은 잠시 힘을 줬다가 놓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동양의 많은 나라는 상체를 굽혀 몸을 낮추거나 절을 하는 수직적 방식의 인사가 일반화돼 있다. 예부터 농경생활을 해 온 습성에 따른 것이다. 유목과 수렵을 주로 해 온 서양에서는 악수와 포옹 등 수평적인 인사형태가 이어져 왔다.
 
  인사의 기본 원칙은 ‘먼저 보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어떤 장소에 들어갈 경우엔 들어서는 사람이 먼저 와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면 된다.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났을 때 한국인들은 서로 인사하지 않지만, 서구인들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할 경우, 그에 대꾸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제스처로 인식된다.
 
  한국식 인사는 허리를 숙이는 정도에 따라 목례, 보통례, 정중례 등으로 구분된다. 양손을 포개 아랫배 위에 가볍게 올리는 것이 기본이다. 남자는 양손을 양쪽 허리춤에 둬도 무방하다. 몸을 숙인 채 고개를 들지 않아야 하며, 인사말은 똑바로 선 후 상대방을 보고 해야 한다.
 
  악수를 할 땐 손에 적당한 힘을 줘야 한다. 너무 세거나 약하면 안 된다. 손끝만 잡는 경우는 “‘죽은 생선’을 잡는 것 같다”며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악수는 ▲일어선 자세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오른손으로 ▲표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은 잠시 힘을 줬다가 놓으면 된다. 많은 한국인이 악수하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큰 실례다. 오른손에 물건을 들고 있다고 왼손으로 하는 것도 원칙이 아니다.
 
  악수의 순서는 연장자 또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원칙이다. 아랫사람이 악수를 청하거나 남자가 여자한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은 결례다. 남녀 간엔 서로 악수를 하지 않지만, 최근엔 비즈니스 과정에서 남녀 간에도 악수를 하는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다. 상하관계가 분명하다면 고위직의 남자가 하위직의 여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두 쌍의 부부가 서로 인사할 경우엔 부인이 남편의 오른편에 서서 부인끼리 먼저 악수를 한 후 남편끼리 하는 것이 순서다. 그 후 마주보고 있는 남녀 간에도 인사를 나눈다.
 
  악수할 때 손은 가볍게 흔들어 주면 좋다. 횟수는 3~5회 정도가 적당하다. 아무리 반가워도 과격하게 흔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악수할 때 상체를 굽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선 존경의 뜻이지만, 국제 사회에선 비굴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작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왕(日王)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이는 ‘일본식’으로 인사한 것으로, 오히려 상대국에 대한 배려로 봐야 할 것이다.
 
  남자는 악수할 때 장갑을 벗어야 하지만, 여자의 경우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을 끼거나 겨울철 야외에선 안 벗어도 된다. 악수법에도 나라별 차이가 있다. 미국인에게 힘 있고 짧은 악수는 정직과 신뢰를 상징한다. 힘없고 긴 악수는 반대의 의미다. 반면 프랑스식 악수는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에선 과도하게 손을 흔드는 경향이 있고, 스페인에선 악수하면서 어깨 위를 두드린다.
 
  양볼 키스는 동양에선 아직 많이 어색하지만,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상당히 보편화된 인사법이다. 주로 친구들, 대부분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행해지며, 상대방의 왼쪽 볼에서 오른쪽 볼 순서로 인사한다. 입술을 맞추지는 않으며 뺨만 3~4차례 갖다대면 된다.
 
  16세기 스페인에서 유래된 손등 키스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 아직 남아 있는 인사법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주로 남자가 여자들에게 한다. 결혼한 여자에게 실내에서만 가능하며, 비즈니스 관계에선 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남자가 여자의 옆쪽에서 손가락 끝을 잡고 입술을 손등 가까이 가져가면 된다. 직접 입술이 여자의 손에 닿아선 안 된다.
 
 
  대화의 기술 - “No”란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대화 에티켓의 첫째 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즐겁고 능동적인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말과 손동작 등을 통해 반응을 해야 한다.
  대화할 때 글로벌 에티켓의 첫째 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즐겁고 능동적인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말과 손동작 등을 통해 반응을 해야 한다. 한국에선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구에선 상대방의 대화가 끝나면 꼭 대꾸를 해 주는 것이 예의다. 중간에 말을 자르는 것은 큰 실례다.
 
  대화를 할 때 상대의 이름을 아는 것은 기본이다. 한 명이 먼저 이름을 말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도 이름을 말한다. 한국에선 주로 선생님, 사장님 등 상대방의 직함을 말하지만, 서구에선 성 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다. 상대방이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면, 성을 제외한 이름만 불러도 된다.
 
  상대방이 칭찬할 때 한국인은 “아니다”라는 의미의 부정적 표현으로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그보다 “고맙다”는 표현이 훨씬 좋다. 그리고 한국에선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비즈니스 관계에선 멀리해야 한다.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명료하게 결론을 지어야 한다. “No”란 말을 적절하게 사용 못해 나중에 큰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만날 경우엔 가급적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백인은 무조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종종 있어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서구에서는 정치, 종교, 인종, 섹스, 낙태, 질병, 실업 등 사회적 쟁점이 되는 주제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여행이나 취미 등 자신과 상대방 개인에 대한 주제를 선호하며, 상대방의 신체적 특징을 놓고 농담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남성의 나이는 물어봐도 무방하나, 여성에겐 묻지 않는다. 결혼 여부도 본인이 먼저 얘기하기 전까진 묻지 않는다. 대화 중에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 것은 큰 결례다. 짧게 마치거나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떠나서 통화해야 한다.
 
  한국인은 대화할 때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을 꺼린다. 특히 연장자가 말할 때 뚫어지게 보면 ‘버릇없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에선 대화할 때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예의다. 대화 중 수시로 머리를 만지거나 시계를 보는 것도 결례다. 손톱을 깨물거나 다리를 떠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기 쉽다.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행동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선 긍정의 표현이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에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긍정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한국 여성들은 동성끼리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구에선 레즈비언으로 오해받기 쉽다.
 
 
  식사예절 - 입속에 음식을 넣은 채 말하지 말라
  스테이크는 굽는 시간에 따라 레어, 미디엄 레어, 미디엄, 미디엄 웰던, 웰던으로 나뉜다.
  해외에서 이뤄지는 식사 모임은 주로 양식일 경우가 많다. 많은 한국인이 평소 먹는 방식과 달라 무의식중에 예의에 어긋나게 비치는 행동을 하거나 곤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한다. 적절한 식사 예절은 품위를 높이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식가로 유명한 프랑스의 법관 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은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 주면,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프랑스인의 오만이 엿보이지만,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다는 것이 그 사람의 품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식사 전 예약은 필수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거나 좋지 않은 자리를 잡는 것은 식사의 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고급식당을 이용할 땐 정장을 입는 것이 예의다. 아예 정장을 출입조건으로 내건 고급식당들도 상당히 있다. 외투와 가방 등 식사에 방해되는 것들은 입구에서 보관장소에 맡겨 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투를 자신의 의자에 걸어 두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다.
 
  가장 편하고 무대가 잘 보이는 좌석은 호스트 또는 호스티스의 자리다. 정확한 자리를 잘 모르는 경우, 식당 종업원이 의자를 가장 먼저 반쯤 빼 주는 곳이 곧 상석(上席)이다. 호스트의 우측엔 여자 주빈(主賓)이, 호스티스의 우측엔 남자 주빈이 보통 앉는다.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앉는 것이 예의고, 종업원이 없을 땐 남자가 여자의 의자를 뒤로 빼 줘야 한다. 의자에 앉을 땐 왼쪽으로 들어가 앉고, 여성의 경우 핸드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지갑, 서류가방, 안경, 모자, 장갑 등도 마찬가지다.
 
  냅킨은 전원이 다 자리에 앉은 후 첫 요리가 나오기 직전에 펴는 것이 예의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건배하는 동안 혼자서 냅킨을 만지는 것은 상대방을 불안하게 한다. 냅킨을 셔츠 목에 거는 것은 좌석이 좁은 비행기 등에서 하는 행동이다.
 
  식사 중 와인을 마실 땐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고 마신다. 잔에 음식 찌꺼기가 묻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안경이나 땀을 닦는 것은 냅킨이 아니라 자신의 손수건이어야 한다. 자리를 비울 땐 의자 위에 냅킨을 둔다. 식탁 위에 냅킨을 두는 것은 식사가 끝났다는 의미다.
 
  오른손은 나이프, 왼손으로는 포크를 잡는다. 종류가 많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바깥쪽 것 부터 사용하는 것이다. 나이프나 포크를 떨어뜨렸을 땐 자신이 줍지 않고 종업원을 부른다. 나이프를 입에 대거나 손에 든 채로 팔꿈치를 식탁 위에 두는 것은 큰 결례다. 식사 중에 나이프와 포크를 놓을 땐 접시 위에 팔(八)자 또는 X자로 놓는다. 나란히 놓으면 식사가 끝난 줄 알고 종업원이 상을 치운다.
 
  식사 중 접시의 위치를 바꾸거나 종업원이 가져가기 쉽게 접시들을 포개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후추와 소금 등 식탁 위에 놓인 조미료가 멀리 있을 땐 일어서서 억지로 가져오려고 하지 말고 양해를 구한 후 전달받아서 사용한다.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음식에 조미료를 뿌리는 것도 매너에 어긋난다. 먼저 음식 맛을 본 다음 취향에 맞게 첨가해야 한다. 입속에 음식이 든 채로 말하거나 식사 후 테이블에서 화장을 고치는 것은 큰 실례다. 만약 식사예절을 잘 모르는 상대방이 있을 땐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신사적인 행동이다.
 
  정식 만찬은 식전주(食前酒·아페리티프), 전채(애피타이저), 수프, 생선요리, 셔벗, 육류요리, 샐러드, 치즈, 디저트, 차, 식후주(食後酒·디제스티프) 순서로 이뤄진다. 식전주는 보통 칵테일이 나오는데, 너무 과하게 마시지 않도록 한다. 위스키가 나올 경우엔 가급적 스트레이트보다 온더록스(On the rocks) 잔에 마신다. 전채는 식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므로 가볍게 소량만 먹는다. 수프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일부 한국인이 수프를 불어 가면서 소리를 내며 먹는데, 잘못된 매너다. 수프용 스푼을 가볍게 잡고 그릇 소리가 너무 크게 나지 않게 먹는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푼을 앞에서 뒤로 당기면서 떠먹지만, 유럽은 뒤에서 앞으로 밀면서 먹는다. 손잡이가 달린 그릇이 나올 경우엔 들고 마셔도 무방하다.
 
  원탁 테이블에서 자신의 물과 빵의 위치를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칙은 빵은 왼편에, 물은 오른편이다. 빵은 포크나 나이프 대신 손으로 뜯어 먹는다. 빵을 뒤집어 놓거나 수프에 적셔 먹지 않는다. 수프를 다 먹은 후 스푼은 받침접시 위에 놓는다.
 
  빵은 원칙적으로 수프를 먹은 다음에 먹는다. 자신의 앞에 있는 버터나 잼을 발라 먹으면 되는데,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엔 공용 나이프를 사용해 버터를 자신의 접시에 던 후, 자신의 나이프로 빵에 발라서 먹는다.
 
  통째로 요리한 생선은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게 하고, 머리 쪽부터 먹는다. 생선 한쪽을 다 먹었다고 생선을 뒤집는 것은 교양이 없어 보인다. 나이프를 이용해 뼈를 들어내고 먹는다. 가시가 나올 경우엔 손이나 냅킨으로 입을 가리고 손으로 집어내 접시 한편에 놓는다.
 
  므니엘을 먹을 땐 레몬조각이 함께 나온다. 얇은 원형의 레몬은 생선 위에 올려놓고 포크와 나이프로 살짝 눌러 즙을 낸다. 반달 모양의 레몬은 왼손으로 주변을 막고 오른손으로 짠다. 달팽이 요리는 에스카르고용 홀더로 고정하고 전용 포크를 사용해 먹는다.
 
  생선과 육류 요리 사이엔 셔벗이 나온다. 생선 요리를 먹고 난 후 입안을 개운하게 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인데, 양식 코스를 모르는 일부 한국인들은 종종 디저트가 나온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땐 굽는 정도를 선택해야 한다. 굽는 시간에 따라 레어(5분), 미디엄 레어(6분), 미디엄(7분), 미디엄 웰던(9분), 웰던(10분)으로 나뉜다. 너무 익히면 육즙이 다 마르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취향에 따라 주문해서 먹는다.
 
  고기는 왼손의 포크로 고정하고 오른손의 나이프를 이용해 잘라 먹는다. 고기는 , 미리 다 잘라놓지 않고 먹을 분량만큼만 잘라 먹는다. 브라운 소스는 고기에 직접 뿌리지 않고 접시 한편에 떠 놓고 찍어 먹는다.
 
  샐러드 순서는 나라마다 다르다. 영미인(英美人)들은 육류 요리와 함께 먹거나 그 전에 먹지만, 프랑스인들은 육류 요리 후에 먹는다. 샐러드는 나이프로 잘라 먹지 않는다. 만약 큰 조각이 나오면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접어서 먹는다. 포크로 집어 먹기 어려운 콩은 포크에 얹거나 포크로 살짝 누른 후 떠먹는다. 오븐에 구운 통감자는 껍질까지 먹어도 된다. 치즈는 얇고 넓게 잘라 빵이나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양식 대부분은 조리 과정에서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식사 후엔 달콤한 디저트가 나온다. 수분이 많은 과일은 스푼으로 떠먹고, 수분이 적은 것은 포크로 찍어 먹는다. 파이(Pie)나 소프트 케이크는 포크나 스푼으로 먹고, 무스나 푸딩은 스푼을 사용한다. 아이스크림은 여기저기 건드리지 않고, 자기 앞쪽 부분부터 파내면서 먹는다.
 
  커피나 차가 나오면 연장자나 상급자가 먼저 잔을 든 후 마신다. 잔을 잡을 때 손잡이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지 않도록 한다. 사용한 스푼은 잔 뒤쪽으로 옮겨놓고, 왼쪽에 있는 손잡이는 오른쪽으로 옮겨 마신다. 뜨겁다고 입으로 불거나 티스푼으로 떠먹으면 교양이 없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스푼을 잔에 꽂은 채로 마시는 것도 금물이다.
 
  코스를 마치면 마지막으로 식후주가 나온다. 브랜디가 주로 제공되며, 특히 프랑스의 코냑이 유명하다. 브랜디 잔은 손바닥으로 몸체를 감싸듯 받쳐들면 된다.
  ▣ 한국인이 자주 하는 실수들
 
  ⊙ 옆 사람의 빵이나 물에 손을 댄다. (왼편에 빵, 오른편에 물이 있다.)
  ⊙ 입에 음식이 든 채로 이야기한다. (삼킨 후 말해야)
  ⊙ 냅킨을 테이블 위에서 흔들며 펼친다. (테이블 아래에서 펼쳐야)
  ⊙ 뜨거운 수프를 들고 ‘후’ 하고 분다. (수프는 조용히 떠먹어야)
  ⊙ 도넛 등을 커피에 넣어서 먹는다. (커피와 도넛은 따로 먹어야)
  ⊙ 식사 후 테이블에서 이쑤시개를 사용한다. (상대방이 안 보이는 곳에서 사용해야)
 
  음주 예절 - 제대로 하면 약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원칙대로 와인잔의 스템을 잡았고, 프랑스 출신인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보디를 잡았다. 캉드쉬 전 총재가 와인 예절을 몰라 그렇게 했을까.
  최근 와인이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에도 다양한 와인 예절이 소개됐다. 와인잔의 스템(다리)을 잡고 둥글게 흔들며 마시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원칙은 스템을 쥐는 것이 맞지만, 물리적으로 어려울 경우엔 보디를 잡아도 된다. 미셸 캉드쉬 전(前) IMF 총재가 한국에 왔을 때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만찬 자리를 갖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와인잔의 스템을 잡았고, 캉드쉬 전 총재는 보디를 잡았다. 그는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출신이다. 그가 와인 예절을 몰라 그렇게 했을까. 와인은 격식(格式) 이전에 지식으로 마신다고 한다. 너무 격식을 차리다 오히려 무례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예절만 알면 된다.
 
  흔히 육류엔 레드와인, 생선엔 화이트와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도 고정된 법칙은 아니다. 와인과 음식의 조합은 개인과 일행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와인을 고르기 어려울 땐 와인 전문가인 소믈리에(Sommelier)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시음은 초대를 한 남자가 한다. 초대자가 여자일 경우엔 동석한 남자에게 시음을 의뢰한다.
 
  시음을 할 땐 코르크 마개의 상태와 냄새를 확인한다. 썩는 냄새나 식초 냄새가 나면 주저 하지 말고 바꿔 달라고 해야 한다. 코르크 확인 후 잔에 4분의 1 정도 와인을 따르고 맛을 본다. 와인 빛깔과 향기, 맛을 골고루 보고 결정하는 것이 관습이지만, 와인에 대해 잘 모를 경우, 특별한 이상이 있는지 확인만 해도 무방하다.
 
  시음을 마치면 여성부터 시계방향으로 잔의 3분의 2 정도씩 따른다. 와인을 대접하는 사람이 병을 들고 잔을 따르는 것이 예의며, 와인을 따를 땐 잔을 들거나 기울이지 않는 것이 예의다. 상급자나 연장자가 와인을 따를 땐 잔 받침에 살짝 손을 대도 좋다. 와인을 원치 않을 경우엔 잔 가장자리에 가볍게 손을 얹어 표시하면 된다.
 
  우리나라 주도에선 첨잔(添盞)이 잘못된 예의지만, 와인은 잔이 비지 않게 다시 따라 주는 것이 좋다. 음식을 씹으며 와인을 마시거나 잔에 립스틱 자국을 남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맥주를 따르고 받을 때 많은 한국인이 잔을 기울이는데 이것도 글로벌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식전주로 주로 마시는 칵테일은 자신의 오른편에 놓고 두 잔 이상을 마실 땐 같은 종류로 주문하는 것이 좋다. 공식 만찬에서 후식 후에 나오는 샴페인은 건배를 하고 마신다. 건배 제의가 나오면 잔을 눈높이만큼 들어올린 후 마시면 된다.
 
 
  여행 매너 - 승무원을 툭툭 치면서 부르지 마라
  과거보다 해외여행자가 월등히 많아진 현재에도 많은 한국인이 출입국 절차와 매너를 몰라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출입국 절차는 해외여행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과거보다 해외여행자가 월등히 많아진 현재에도 많은 한국인이 출입국 절차와 매너를 몰라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출입국 절차를 일반적으로 C.I.Q.로 표기하는데, 이는 세관(Customs), 출입국관리(Immigration), 검역(Quarantine)을 의미한다. 보통 순서는 출국(C-I-Q), 입국(Q-I-C)이지만,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다.
 
  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탑승수속을 해야 한다. 이때 수하물을 함께 부치는데, 무료 위탁수하물의 허용량은 보통 20kg(이코노미), 30kg(비즈니스), 40kg(퍼스트)이다. 무게를 초과할 경우엔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항공기 안전을 위해 기내 반입 금지 품목은 소지할 수 없다. 주로 칼, 라이터, 액체(100mL 이상), 가위 등 물건이며, 보안검색 과정에서 나올 경우 버리거나 다시 출국장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소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컴퓨터, 골프채, 귀금속 등 고가의 물품은 신고하지 않고 출국할 경우 입국 시 과세가 될 수도 있다. 궁금한 물건이나 고액의 현금을 갖고 있을 땐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
 
  입국심사 과정을 위해 간단한 영어는 기본적으로 익히는 것이 좋다. 주된 질문은 여행의 목적이나 기간 등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거나 심하게 긴장할 경우엔 추가질문이나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명료하게 대답해야 한다.
 
  면세품을 살 때도 주의해야 한다. 나라별로 입국 시 세금을 내지 않고 반입할 수 있는 면세품의 한도가 있다. 한국의 경우 담배 1보루, 주류 1병, 총 취득가액 400달러다. 이를 초과했음에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일단 무분별한 쇼핑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기내 화장실은 금연이다. 화장실 문밖에 ‘Occupied(사용중)’란 표시가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밖에서 기다린다. 자신의 차례가 됐을 땐 문을 잠그고 이용하는 것이 기본 예의다. 이륙 직후나 착륙 직전, 그리고 승무원의 요청이 있을 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 이착륙 때는 모든 전자기기 사용이 금지된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은 원래 위치로 해야 하고,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야 한다.
 
  기내식은 운항시간에 따라 나온다. 소고기, 닭고기, 생선 등 양식이 대부분이며, 국내 항공사의 경우 비빔밥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별도의 식사를 원할 경우, 탑승 72시간 전에 예약하면 추가요금 없이 먹을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엔 그릇을 그대로 두고 승무원을 기다리면 되고, 식사 중엔 가급적 화장실 이용 등을 삼가는 것이 좋다.
 
  착륙 직후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일부 승객들이 일어나 선반에서 짐을 내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후진국으로 갈수록 그 빈도가 높다. 터미널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까진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승무원을 부를 땐 팔걸이나 천장에 있는 버튼을 눌러 호출하거나 가벼운 손짓을 하면 된다. 큰소리로 부르거나 승무원을 툭툭 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담요나 헤드폰 등 기내물건을 가져가거나 맨발로 기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옳은 행동이 아니다.
 
 
  호텔예절 - 정숙이 기본
 
  호텔에 도착하면 먼저 예약 확인을 해야 한다. 예약에 큰 문제가 없으면 곧바로 체크인 절차를 거치는데, 보통 오후 2시 이후에 하도록 되어 있는 곳이 많다. 호텔에서 가장 기본적인 예절은 ‘정숙’이다. 휴식이 1차 목적인 곳에서 소란행위를 하는 것은 무례 중의 무례다.
 
  특히 외국의 일부 호텔에서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정중히 사절하는 곳이 있는데, 대부분 호텔 내 소란행위가 이유였다. 호텔 문을 열어 놓은 채 한방에 모여 큰소리로 떠들고, 슬리퍼와 잠옷 차림으로 복도를 돌아다닌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문을 열고 라면을 끓여 먹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노름판과 술판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떠나고 난 뒤엔 수건이나 가운 등 호텔 비품이 없어진 경우도 있어 결국 ‘한국인 사절’을 내걸게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선 객실에선 취사행위가 금지된다. 커피나 차 등 간단한 음식은 가능하지만, 허용되지 않는 음식은 밖에서 먹는 것이 좋다.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의 호텔에선 컵라면 등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부담 없이 이용해도 좋다.
 
  객실 문은 기본적으로 닫아야 한다. 문을 연 채 TV를 크게 틀어 보거나 단체로 한방에 모여 큰소리로 떠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객실 문은 자동으로 잠긴다. 외출을 할 땐 반드시 열쇠를 갖고 나가야 하며, 객실에 들어갈 땐 열쇠를 보관함에 꽂아 실내 전원을 켠다.
 
  방 열쇠는 호텔 밖 외출 시 프런트에 맡긴다. 분실 시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다수의 호텔이 카드형 열쇠를 이용하는데, 이는 일회용이 대부분이라 분실해도 큰 문제가 없다.
 
  욕실 매너도 한국인이 잘 지키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다. 일단 샤워를 할 땐 커튼을 욕조 안으로 오게 해 바닥에 물이 튀지 않도록 한다. 외국 호텔 중에는 욕조 밖의 배수구가 없는 곳도 많다. 욕조에 주로 걸려 있는 매트는 미끄럼을 막는 것이므로 욕조 안에 깔고, 다른 매트는 욕조 바깥 바닥에 깔면 된다. 체크아웃 전 사용한 수건은 욕조 안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전화, 미니바, 인터넷, 룸서비스 등은 나라와 호텔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꼭 이용 안내서를 참고한 후 적절한 가격 안에서 이용하는 것이 좋다. 늦잠을 자거나 오전 시간을 호텔에서 보낼 땐 ‘디디카드’를 문고리에 걸어 둔다. “Do not Disturb”의 준말로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방을 나설 땐 적당한 금액의 팁을 두고 나온다. 몇몇 나라에선 호텔 종업원의 주수입이 팁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챙겨 주는 것이 좋다. 보통 1~2달러 수준이다. 벨맨이 가방을 들어줄 때 등 서비스를 받았을 때도 팁을 주는 것이 관례다. 팁을 줄 땐 돈이 보이지 않게 손바닥을 아래로 하는 것이 예의다.
 
 
  패션의 완성 - 바지 길이는 구둣굽에 가볍게 닿을 정도가 적당
  신사복을 착용할 땐 발목이 없거나 흰 양말은 자제해야 한다.
  적절한 옷차림은 곧 그의 첫인상이 된다. 아무리 실력과 인품이 좋아도 그 차림새가 엉뚱하면 오해를 받는 것이 국제사회의 룰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복장이 서양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아직 우리에겐 낯선 예절이 많이 있다.
 
  남성 패션의 기본은 ‘정갈하게 입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사복은 품과 옷의 실용성에 따라 아메리칸 실루엣, 브리티시 실루엣, 유러피언 실루엣, 이탈리안 실루엣 등 유형으로 분류된다. 색상은 주로 검정, 감청, 회색, 갈색 등이 있으며, 각 색상에 따라 주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신사복을 입을 때 단추는 하나만 채우는 것이 예의다. 단추가 3개인 경우엔 가운데 것을 채운다. 왼쪽 가슴주머니는 비워 둬야 한다.
 
  ‘와이셔츠’란 말은 없다. ‘화이트셔츠(white shirts)’의 일본식 표현으로, 공식명칭은 ‘드레스 셔츠(dress shirts)’다. 드레스 셔츠는 원래 속옷의 개념이다. 서양인들은 대개 드레스 셔츠 속에 러닝셔츠를 입지 않는다. 반소매 셔츠도 예법상으로만 보면 신사의 모습은 아니다. 신사복엔 타이를 착용하는 것이 기본이며, 셔츠 깃을 신사복 상의(上衣)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타이는 신사복과 드레스 셔츠의 색상과 재질을 고려해 고른다.
 
  조끼를 착용할 땐 신사복보다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끼의 맨 아래 단추는 채우지 않으며, 조끼 밑으로 벨트가 보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검정, 회색 계통의 신사복엔 검은색 구두, 갈색 계통의 신사복엔 갈색 구두를 신는다. 신사복보다 밝아선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흰 양말은 자제해야 한다. 발목 없는 양말도 기본 매너에 어긋나니 주의해야 한다.
 
  바지의 길이는 구둣굽에 가볍게 닿을 정도가 적당하다. 주머니에 지갑, 휴대전화 등을 넣어 불룩해지지 않게 한다. 벨트 걸이에 열쇠고리나 휴대전화를 거는 것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성의 패션은 남성보다 다양하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는 복장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적당한 액세서리는 좋지만, 과하면 역효과를 불러온다. 비즈니스 자리에선 원피스보다 투피스 정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스커트의 길이는 유행에 따라 바뀌지만, 일반적으로 무릎 바로 아래 정도가 가장 무난하다. 지나치게 길거나 폭이 넓은 스커트, 레이스가 많거나 속이 비치는 옷은 정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여성은 높은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가 회사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서구 여성들은 반대다. 출근길에선 워킹슈즈를 신고, 사내에서 정장용 구두로 갈아 신는다. 문화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서구 여성들의 예가 더 자연스럽다고 평가한다. 높은 하이힐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굽의 정장용 구두를 사무실에서 착용하는 것이 훨씬 격식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질서 - ‘고맙다’ ‘미안하다’ ‘실례한다’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라
  한국에선 지하철과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대다수의 선진국에선 결례가 되는 행동이다.
  기본적인 공공질서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국가 브랜드를 강조해도, 공항 앞에서 무질서한 모습을 본다면 그 나라에 대한 첫인상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횡단보도 이용과 줄서기는 기본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습관적으로 줄을 선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한 줄’로 선다. 한국에선 아직도 많은 공공화장실에서 남자들이 여러 줄로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매너다. 출입문을 여닫을 때 곧바로 뒷사람이 따라온다면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것이 예의다. 또 앞에서 문을 잡아 주면 뒷사람은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표현력이 부족한 한국인은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하는 것에 상당히 미숙하다. 선진 국민일수록 ‘고맙다’ ‘미안하다’ ‘실례한다’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한국인은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깨끼리 부딪히거나 신체를 접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진국에선 부딪히기도 전에 서로 “실례한다”며 어깨를 치워준다. 하지만 몇몇 한국 남자들은 어깨가 밀리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 못 하는지, 서로 노려보거나 때론 싸움이 나기도 한다. 신체접촉은 서양인들이 가장 꺼리는 행동이다.
 
  한국 여성들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린다. 유교식 교육의 결과다. 서양에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 비웃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땐 특히 주의해야 한다. 한국에선 지하철과 버스 등에서 휴대전화로 대화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대다수의 선진국에선 상당히 무례한 행동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지하철을 탈 때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사람도 많다.
 
  공공장소에서 통화는 짧게 한다. 제3자가 있는 자리에선 특히 빨리 끊어야 한다. 용건이 있을 경우엔 자리를 피해서 통화를 한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고 대화를 중단하거나 시선을 옮기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상대가 휴대전화를 놓고 자리를 비웠을 때 대신 전화를 받는 것도 큰 결례다.
 
 
■ 세계 각국의 독특한 에티켓 ■


  에티켓의 첫째 조건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글로벌 시대에 어느 정도 표준화된 에티켓도 있지만, 나라별로 천차만별인 경우도 있다. 특히 중동이나 중국 등은 서구의 문화와 크게 다른 경우가 있어 서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면 일단 그 나라의 문화와 예절을 따르는 것이 좋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그것이 첫째 되는 글로벌 에티켓이다.
 
 
  아시아
 
  중국
 
  식사 중엔 사업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
  어느 정도 표준화된 글로벌 에티켓도 있지만, 나라별로 천차만별인 경우도 있다. 외국에 나가면 일단 그 나라의 문화와 예절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에티켓이다.
  손님을 식사에 초대할 경우, 미리 좌석과 음식을 예약한다. 서구에선 손님이 온 후에 직접 주문하지만, 중국은 미리 주문을 마친다. 초대를 받는 경우엔 당사자만 가야 한다. 사전 약속 없이 제3자를 동반하는 것은 결례다.
 
  손님이 여러 명일 경우, 바로 식탁으로 가지 않고 응접실에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기다린다. 초대한 사람과 손님이 모두 모이면, 지정된 좌석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중식당엔 주로 회전식 원형탁자가 설치돼 있다. 원반은 주로 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주인이나 초대한 사람이 먼저 음식을 들고, 식사 중엔 사업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젓가락은 접시 위에 올리지 않고 끝에 걸친다. 개인 젓가락을 원반 위 음식에 갖다 대는 것은 실례다. 간혹 자신의 젓가락을 사용해 상대방에게 음식을 권하기도 하는데, 이는 호의의 표시다.
 
  상석에 앉은 사람이 건배를 제의할 땐 두 손으로 잔을 감싸 경의를 표한다. 건배를 할 땐 잔을 테이블에 부딪치기도 한다. 차와 술은 계속 채워진다. 안 마실 경우엔 정확하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건배(乾杯)’를 하면 의미대로 잔을 비우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처럼 술잔을 돌리는 문화는 없다.
 
  음식은 조금 남기는 것이 예의다. 식사 후 트림은 잘 먹었다는 표시가 된다. 계산은 앉은 자리에서 종업원을 불러서 한다. 식사 중 생선을 뒤집는 것은 절교하겠다는 의미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젓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거나 젓가락 하나로 음식을 먹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식사 중에 담배를 권하고 피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이하게도 중국인은 담배를 던져서 권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리고 비흡연자나 담배를 피우기 싫은 흡연자도 일단 권하는 담배는 받아 두는 것이 예의다.
 
  인사를 할 땐 서로 고개를 숙인다. 악수는 중국인이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위와 명예에 민감하기 때문에 직함을 정확하게 불러 줘야 하며, 대부분 옷차림이 검소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선 신분을 알 수 없다. 외형보다 내실을 기하는 국민성이다.
 
  과일 배(梨)는 이별(離)을, 종(鍾)이 달린 괘종시계는 끝(終·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물로 택하지 않는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았을 땐 먹을 것을 선물로 가져가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땐 반드시 노크를 해야 한다. 문을 잠그지 않고 용변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서구인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짓지만, 중국에선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웃는 행위를 ‘바보나 하는 짓’이라 한다.
 
 
  일본
 
  잔이 3분의 1 이하로 남았는데 술을 첨잔하지 않는 것은 술자리를 끝내자는 표시
 
  어디에 가든 친절한 일본, 그렇다고 그들이 외국인의 무례를 허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워낙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국민성이기 때문에, 더욱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악수보다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이때 상대방이 고개를 숙인 각도만큼 맞절을 하는 것이 예의다. 질문을 할 때도 가급적 “아니오”란 대답보단 “예”란 대답이 나오도록 내용을 선택해야 한다. 비판 또는 거절도 직설적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상대가 어리더라도 남의 아이에겐 높임말을 쓴다.
 
  공중도덕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무시당할 수 있다. 약속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잡아야 하며, 비즈니스 관계에선 특히 급한 약속이나 예약을 지양해야 한다.
 
  중국과 함께 첨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잔이 조금만 비어도 채운다. 잔이 3분의 1 이하로 남았는데 술을 첨잔하지 않는 것은 술자리를 끝내자는 표시다. 윗사람에게도 한 손으로 술을 따른다.
 
  음식을 먹을 땐 숟가락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을 들고 먹는다. 국물을 마실 땐 ‘후루룩’ 소리를 낸다. 음식을 먹는 순서는 밥, 국, 밥, 반찬 순서다. 젓가락으로 그릇을 움직이거나 음식을 찔러선 안 된다. 밥공기를 휘젓거나 밥에 꽂아서도 안 된다. 밥을 먹고 난 후엔 보통 각자 계산을 한다.
 
  대화를 할 땐 일왕(日王), 종교, 지진, 세계대전 등에 대한 화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나이나 결혼 여부를 묻거나 눈을 자주 마주치는 것도 무례한 행위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초대를 받더라도 몇 번을 사양해야 한다.
 
 
  홍콩
 
  선물은 짝수로 하라
 
  홍콩은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면서도 예절에는 엄격하다. 신체 접촉을 피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어깨에 손을 얹거나 포옹은 피해야 한다. 선물은 짝수로 해야 하고, 과일이 가장 무난하다. 특히 ‘길(吉)’과 발음이 같은 귤이 인기가 많다. 시계는 가급적 선물하지 않는다.
 
  식사는 주로 8~12개 정도의 코스 요리로 진행된다. 7개 코스는 장례식 식사로 평소엔 기피한다. 식사 땐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고, 초대받은 사람 중 대표자가 일어나 감사의 건배를 들면서 식사를 마무리한다.
 
 
  싱가포르
 
  걸으면서 흡연해도 불법
 
  싱가포르는 공중질서가 엄격하다. 사소한 행위라도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행동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건물 실내에선 금연이며, 야외에서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불법이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또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거나 무단횡단하는 것도 벌금 대상이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물을 안 내려도 벌금을 내야 한다.
 
  전반적으로 술과 담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권하지 않으며, 성적인 대화를 하면 하류계층으로 깔보는 경향이 있다. 식당에서 여성을 빤히 쳐다보거나 옆 사람과 수군거리는 것도 벌금 부과 대상이다. 파렴치범은 태형을 당한다. 선물도 아주 친하지 않은 이상 잘 하지 않는다.
 
 
  인도
 
  왼손은 부정한 손
 
  세계 2위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는 다양한 종교만큼 다양한 관습과 문화가 존재한다. “여행 중엔 빨리 떠나고 싶지만, 여행 후엔 꼭 다시 찾고 싶은 나라”인 만큼 알기 어려운 나라다.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어 신분이 낮은 사람에겐 이름을 불러야 한다. 존칭어를 쓸 경우엔 같은 급의 사람으로 평가된다. 만나거나 헤어질 땐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떼”라고 인사한다. 서구의 영향으로 악수가 보편화돼 있지만, 이성끼리는 가급적 악수보다 합장하는 것이 좋다.
 
  계급이 다를 경우 윗사람에게 인사할 땐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발등을 만진 후 손가락을 자신의 이마에 대면서 “뿌라남”이라고 한다. “당신 발의 먼지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인도인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가족관계에 대해 캐묻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의 가족에 대해 되묻는 것도 중요한 예의다.
 
  인도인의 전통의상을 함부로 입거나 신발이 상대방의 몸에 닿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No problem(문제없다)”이란 표현을 자주 하는데,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대화 중 카스트 제도나 채식주의와 같은 화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고기는 가급적 먹지 않으며 소가죽으로 된 선물은 하지 않는다. 힌두교도들이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건넬 때는 오른손을 쓴다. 왼손은 부정한 손이다. 악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친절로 접근하거나 초면에 명함을 요구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지 말라
 
  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관습이 존재하지만, 이슬람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왼손을 내밀거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선 안 된다. 악수를 한 후엔 손을 가슴에 대고 쓸어내린다. 라마단 금식기간을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이 기간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옷차림에 대해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노출이 심한 옷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과격한 어조로 큰소리를 내는 것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차분하고 조용히 대화하는 것이 좋다. 무의식중에 사람을 툭툭 건드리는 것도 큰 결례다.
 
  대다수가 모슬렘인 만큼 돼지고기나 돼지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다. 술도 권하지 않고 담배도 잘 피우지 않는다. 대화 중에 허리에 손을 얹으면 화난 것으로 오해받는다. 사생활에 대한 질문 정도는 큰 실례가 되지 않으나, 정치, 종교, 민족에 대한 주제는 삼가야 한다.
 
  일본의 지배를 받은 역사로 인해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일본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한국인은 특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상대방 어깨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
 
  떠오르는 경제 대국 베트남, 베트남인들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역사를 자랑스러워 한다. 특히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과 라이따이한(한국인과 베트남인 혼혈) 문제 등 불편한 감정이 있지만, 최근엔 경제 교류 확대를 통해 대부분 회복된 상태다.
 
  숫자 3과 5는 기피하고, 9를 특히 좋아한다. 음주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첨잔 문화다. 흡연에 관대하고, 맥주와 커피를 즐긴다. 사용하던 젓가락으로 상대방에게 음식을 권하고, 밥그릇을 입에 대고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매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점심시간이 길다(90분 내외).
 
  어깨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어깨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치안이 그리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 단독 외출은 삼가는 것이 좋다.
 
 
  몽골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말라
 
  국민 대다수가 라마교를 믿는 몽골인은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 유목의 민족답게 지방에선 사람보다 가축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인사의 정석이다. 도시에선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서구식 인사가 주로 쓰인다.
 
  우유를 엎지르거나 난로에 물을 붓는 행동은 금기다. 날고기와 생선은 잘 먹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면 안 된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관련된 정치 이야기는 가급적 피한다. 술을 따르고 마실 땐 손목을 안쪽으로 꺾어야 한다. 화장실에 갈 때도 “밖에 매어 놓은 말 보러 갔다 오겠다”고 할 정도로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다.
 
 
  유럽
 
  영국
 
  복장과 관습에서 정통성 중시
  영국은 ‘신사의 나라’답게 복장과 관습에서 정통성을 중시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글로벌 에티켓 중 상당수가 영미식 모델이 많기 때문에 영국에선 대부분 그대로 따르면 된다. ‘신사의 나라’답게 복장과 관습에서 정통성을 중시한다.
 
  연주회나 오페라를 보러 갈 땐 반드시 정장을 착용해야 한다. 왕실을 조롱하거나 애완견을 함부로 하면 곤란한 반응이 돌아온다.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사람에게 ‘잉글리시’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길에서 침을 뱉는 것은 금물이다. ‘레이디 퍼스트’가 기본이며, 어디를 가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다. 가정에 초대를 받으면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일반적으로 초콜릿이나 쿠키를 선물한다. 공식 모임에선 여왕을 위한 건배가 끝나기 전까지 흡연을 하지 않는다.
 
  지나친 신체 접촉은 혐오감을 불러온다. 악수도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곤 잘 하지 않는다. 어깨를 두드리거나 볼에 입을 맞추는 것도 결례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코를 푸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프랑스
 
  저녁식사 초대에는 1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이 예의
 
  ‘에티켓’의 원조국인 만큼 사회적 규범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나라다.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남의 물건엔 가급적 손을 대지 않으며, 상점에서 고기를 살 때도 주인의 허락을 받고 만져야 한다.
 
  삿대질을 하는 것은 큰 결례이며, 공공장소에선 “실례한다”는 표현을 수시로 하며 지나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절대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사회적 덕목으로 인식한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도 볼 키스나 악수를 할 정도로 스킨십을 좋아한다. 악수를 할 땐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는다. 사전에 꼭 약속을 하고 방문을 하는데, 저녁식사에 초대됐을 경우 1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이 예의다. 선물은 꽃이나 초콜릿이 좋고, 음식, 향수, 와인은 개인의 취향이므로 선물하지 않는다.
 
  영미 국가와 달리 코를 풀 때 조심스럽다. 한국과 달리 식사 중 침묵하는 것은 결례다.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식사시간이 길다. 테이블 매너는 특히 엄격하다. 종교나 정치 등 무거운 주제는 식사 때 피하는 것이 좋다. 와인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거나 조금이라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크게 환영받는다.
 
 
  이탈리아
 
  자신의 귀를 만지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
 
  이탈리아인들은 고대 제국의 후예답게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면이 있어 몸짓으로 제스처를 강하게 표현한다. 보통 직함으로 부르고, 친하지 않은 이상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 중엔 팔을 식탁 밑으로 내리거나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리지 않는다. 빵 접시는 사용하지 않고, 접시 옆에 빵을 잘라 놓는다. 와인을 따를 때 라벨을 위로 한 채 병 끝을 잡고 따르는 것은 “싸우자”는 사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손가락을 턱에 댔다 떼었다 하는 것은 “귀찮다”는 의미이며, 자신의 귀를 만지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교회나 성당을 방문할 땐 노출을 자제해야 하며, 사교적인 모임에선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독일
 
  정확하고 명료한 대화를 선호
 
  독일은 ‘원칙의 나라’로 불린다. 깨끗한 집과 정돈된 거리는 질서가 엄격한 독일의 자부심이다. 주로 축구나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며, 세계대전이나 정치에 대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칸트의 나라’답게 시간 엄수는 필수다. 몇 분 늦은 것도 상대방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된다.
 
  여성 존중 문화가 강해 여성이 서 있으면 일단 지위와 상관없이 남자도 서 있는다. 악수는 강하고 짧게 흔드는 것이 특징이다.
 
  꾸미거나 과장하는 것을 싫어하며 정확하고 명료한 대화를 선호한다. 명함 교환을 좋아하며 성(姓)을 부를 땐 반드시 존칭을 붙여야 한다. 피해를 보거나 주는 것 모두를 싫어하며 칭찬하거나 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지 않는다.
 
  음식은 빵, 감자, 치즈 등 검소하게 먹으며, 감자나 생선을 자를 때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상점이나 식당에 출입할 땐 인사를 해야 한다. 식사 중 코를 푸는 것은 괜찮지만, 트림을 하거나 무릎 위에 손을 얹는 것은 결례다.
 
 
  러시아
 
  보드카를 함께 한잔해야 마음을 나눈 사이
 
  러시아는 넓은 땅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만큼 자존심도 세다. 돈이 많은 티를 내거나 값싼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금기다. 처음 만나면 악수를 하고 친숙해지면 포옹으로 인사한다. 소개는 따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나, 직함은 밝히는 것이 좋다.
 
  국민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를 믿거나 무신론자들이다. 최근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해 가급적 종교에 대한 화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경로사상이 강하고 가부장적이다. 보드카를 함께 한잔해야 마음을 나눈 사이로 인식한다. 건배를 한 후 술을 남기면 불신(不信)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며, 명분과 형식을 중요시해 사업차 만날 땐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 한다. 상거래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사업을 함께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
 
 
  스페인
 
  약속을 할 경우 1~2시간 기다리는 여유 필요
 
  “스페인은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 밖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유럽의 다른 나라와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구조가 공존하는 곳이다. 우정과 신뢰를 특히 중요시하며, 한국식 의리도 통하는 곳이다.
 
  말하기를 즐기는 성격이기 때문에 대화를 막는 것은 결례다. 정치, 종교, 여성을 주제로 한 대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론 노인과 여성을 배려하지만, 비합리적 상황이 벌어지면 존중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식사시간도 2~3시간 소요되고, 약속을 할 경우 1~2시간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팁은 기분에 따라 주면 된다. 초대를 받을 경우엔 한두 시간 늦게 가는 것이 좋고, 사탕이나 꽃과 같은 선물을 준비한다.
 
  점심시간은 2~4시, 저녁시간은 9~11시가 보통이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에 전화하는 것은 결례다. 인맥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며, 명함을 자주 주고받는다. 옷을 잘 입어야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만나고 헤어질 땐 볼 키스를 주로 한다.
 
 
  터키
 
  음식 남기면 결례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자 이제 유럽 소속이 된 터키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한다. 인구의 99%가 모슬렘이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나라다. 대도시에선 서구식 에티켓을 따르지만, 지방에선 중동의 이슬람식 예절을 따른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있고, 공휴일은 서구 기준인 토·일요일이다.
 
  외국인에게 친절한 국민성을 갖고 있으며, 6·25 파병으로 인연을 맺은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한다. 터키공화국을 세운 국부(國父) 아타튀르크(케말 파샤)는 신성한 인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
 
  저녁식사 초대를 받으면 음식이 많이 나온다. 남기면 결례다. 소리 내서 먹기, 코를 대고 냄새 맡기, 식히기 위해 입으로 불기, 식사 중 사자(死者)나 환자에 대해 얘기하기 등은 금기사항이다. 공공장소에서 키스나 포옹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밤 9시 이후는 가족 간 저녁식사 시간이므로 약속을 피한다.
 
  종교와 정치가 구분돼 있기 때문에,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융통성이 있다. 음주가 허용되고, 카지노가 있다. 라마단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편이다.
 
 
  중동·아프리카
 
  사우디아라비아
 
  발끝을 보이는 것도 무례한 행동
  대다수 아랍국가의 여성은 이슬람 전통의상으로 얼굴과 몸을 가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원조답게 이슬람 관습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의 전 국민이 모슬렘이며, 외국인에 대한 배척정신이 있다. 외국인도 음주가 금지되는 등 철저하게 이슬람의 규범을 지켜야 한다. 입국 시 술, 포르노물, 돼지고기, 기독교 제품, 이스라엘 관련 제품 등은 반입이 금지돼 있다. 마약을 소지할 경우 공개 참수형에 처하며, 술을 가지고 올 경우엔 입국이 불허된다. 침을 뱉는 것도 금기 사항이다.
 
  왼손은 부정하기 때문에 악수나 식사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인사를 상당히 길게 하는데, 미덕이므로 성의 있게 받아 줘야 한다. 알라신 외에는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인사는 악수로 하고, 악수 후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로 쓸어 친밀감을 표시한다.
 
  발끝을 보이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고, 하품은 사탄이 자극한 것이라며 실례가 된다. 용변을 볼 때도 메카 방향을 피하고,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절대 금기다. 라마단 기간엔 금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식사하거나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하루 5회 있는 기도시간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식사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한다. 차를 권할 때 거부하면 주인을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차 접대가 ‘존경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음식이 뜨겁다고 입으로 불어선 안 되며,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제공된 것은 모두 비우는 것이 예의다.
 
  현지 여성들에겐 가급적 사진을 찍거나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성은 전신을 아바야(검은 망토 모양의 의상)로 가려야 하며 운전도 금지다. 외출 시 혼자 걸을 수도 없다. 가족석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은 식당은 출입이 금지된다. 인사할 때도 상대방 가족 중 여자의 안부를 묻는 것은 실례다.
 
 
  아랍에미리트(UAE)
 
  석유시설, 현지 여성 등 촬영 땐 사전 동의 필요
 
  아부다비와 두바이 등 7개 토후국이 모여 연합한 국가로,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한다. 영국의 지배를 받는 등 오랜 기간 서구의 영향을 받았고 국제적 도시까지 생겨났지만, 아랍 전통을 엄격하게 계승해 온 이슬람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다수의 관습은 이슬람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며, 이슬람 사원은 신성한 장소이므로 허가 없이 입장할 수 없다. 외국인의 종교생활은 허락되지만, 이슬람 외 타 종교를 전파할 순 없다. 라마단 기간은 철저하게 지켜지며, 술은 일정 등급 이상의 호텔에서만 판매한다. 여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며, 석유시설, 군사시설, 현지 여성 등을 촬영할 땐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가정에서 음료를 대접받았을 때 잔을 흔들면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잔을 두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무례이며, 잔이 넘치도록 따르는 것은 빨리 가라는 의미다.
 
 
  이란
 
  술, 과일, 포르노물 등은 반입 금지
 
  이슬람 전통이 기본적으로 지켜지는 국가다. 술, 과일, 포르노물 등은 공항에서부터 반입 금지다. 외국인도 반바지를 입거나(남자),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여자) 입국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도시에선 음주가 가능하고, 여성들의 환경도 타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남자는 아무리 더워도 반소매 셔츠나 반바지를 입을 수 없다. 여자는 스카프를 반드시 써야하며, 외출할 땐 차도르를 착용한다. 넥타이는 이슬람 혁명 후 금지됐다. 관공서 방문 시엔 외국인도 넥타이 착용 금지다. 건강을 이유로 남성도 앉아서 소변을 본다.
 
  복장 단속은 이란의 연례행사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손과 얼굴을 제외한 부분의 노출이 금지된다. 짙은 화장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은 금기사항이다. 낮에는 가족이 아닌 여자와 대화 자체가 금지되나, 밤에는 어느 정도 허용된다. 공공장소와 교통편에선 남녀의 자리가 따로 있어 지정된 자리를 이용해야 한다.
 
 
  이집트
 
  여성과의 대화 자체를 자제하는 것이 좋아
 
  인류 문명의 보고답게 전통적인 매너가 강한 나라다. 만나고 헤어질 때 모든 사람과 악수를 한다. 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대외적인 행동은 오른손을 사용하며, 대화를 할 땐 얼굴을 서로 가까이한다. 번성은 지상과제다.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사촌 간의 결혼이 허용되며, 여성은 정절이 강조된다. 여성이 음식을 권하면 일단 사양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방의 부인이나 여성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도 실례가 된다. 부인에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 부인을 갖고 싶다는 의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성과의 대화 자체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과는 손을 돌려가며 세 번씩 악수
 
  인종 갈등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인종에 관한 문제는 화제로 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보다 더 정중한 예절이 강조되고, 약속시각을 철저하게 지킨다. 만나고 헤어질 땐 악수로 인사하고, 가족에 관한 안부 등 인사가 긴 편이다. 백인과는 평소 악수 방식대로 하면 되고, 흑인과는 손을 돌려 가며 세 번씩 악수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 간에 서로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 관습이니 오해할 필요 없다.
 
  여름이 길기 때문에 복장이 상당히 자유롭다. 반바지도 허락되며, 샌들이나 맨발도 일상적이다. 그러나 음악회나 교회에 갈 땐 정장이 필수다. 나머지 예절은 영국과 비슷하다.
  ▣ 이 선물은 주의하라
 
  ⊙ 중국 사과, 배, 괘종시계, 우산, 거북이, 손수건, 꽃다발
  ⊙ 일본 칼, 흰색 포장, 여우 모양, 뿌리내린 꽃
  ⊙ 인도 소가죽 제품, 재스민 꽃
  ⊙ 베트남 손톱깎이
  ⊙ 이슬람 국가 술, 돼지고기, 누드화, 애완동물
  ⊙ 아제르바이잔 시계
  ⊙ 독일 짝수거나 포장된 꽃, 흰색·갈색·검정 포장지 및 리본 장식
  ⊙ 영미 백합(장례식용)
  ⊙ 프랑스 카네이션(장례식용), 음식, 향수, 와인
  ⊙ 캐나다 가전제품
  ⊙ 중남미 칼
  ⊙ 폴란드 돌잔치 때 신발(죽음을 상징)
 
  아메리카·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
 
  여성에게 윙크하는 것은 결례
 
  약속을 정하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다. 상급자라 할지라도 대부분 친절해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명함을 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다수 호주인은 명함이 없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남성이 여성에게 윙크하는 것은 친한 사이에서도 통하지 않는 결례다. 보이프렌드, 걸프렌드의 의미는 단순한 이성친구가 아니라 성적 관계가 있는 사이로 인식한다. 비즈니스 관계에선 서로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
 
 
  캐나다
 
  닫힌 화장실 문에 노크하는 것은 실례
 
  캐나다는 동서 지역 간 갈등이 심하다. 언어나 정치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팁 문화가 일반화돼 있고, 극장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선 정장을 착용한다. 금연구역이 철저하며 지키지 않을 경우 높은 금액의 벌금이 부과된다.
 
  화장실을 사용한 후엔 문을 열어 두기 때문에, 닫혀 있는 문에 노크를 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한국에서 한때 그랬듯이 에스컬레이터 좌측은 급한 사람을 위해 비워 둔다.
 
  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차 안에 개봉된 술병이 있으면 처벌받는다. 수퍼에서도 맥주 외엔 구매가 불가능하며,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 철저하게 금지된다.
 
 
  브라질
 
  검은색과 자주색 선물은 금물
 
  브라질에선 정장을 잘 입지 않으며, 약속시각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영어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례다. 처음 몇 마디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식사 중 대화를 잘 하지 않으며, 식기 소리도 잘 내지 않는다. 대화는 서로 가까이에 서서 하며, 거리를 두면 오해를 한다. 축구나 여자에 대한 화제가 환영받는다. 검은색과 자주색 선물은 금물이다. 손가락을 둥글게 해 ‘O.K’ 표시를 보이면 성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거리에서 술주정할 경우 체포될 수 있다.
 
 
  멕시코
 
  엉덩이 근처에 손을 얹는 것은 도전을 의미
 
  멕시코인을 처음 만났을 땐 가급적 멕시코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직함이 있을 땐 반드시 그 직함을 불러 준다. 따로 직함이 없으면 남자는 ‘세뇨르’, 미혼여성은 ‘세뇨리타’, 기혼여성은 ‘세뇨라’라고 부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야기를 하거나 길을 걷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엉덩이 근처에 손을 얹는 것은 도전을 의미하는 행위다. 악수를 할 때 손을 가볍게 잡으면 불신한다는 이미지로 보인다. 미국과 비교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된다. 식사시간이 길고, 식사 중 많은 대화를 한다.★
 



  [참고자료]
  민병철, <글로벌 에티켓>, BCM미디어, 2010 / 손일락, <굿매너 굿라이프>, 세창미디어, 2010 / 미래서비스아카데미, <글로벌매너>, 새로미, 2009 / 서대원, <글로벌 파워 매너>, 중앙북스, 2007 / 유종현, <세계화와 글로벌 에티켓>, 한울아카데미, 2004 / 오흥철 외, <글로벌 매너 완전정복>, 학현사, 2005 / 원융희, <글로벌 비즈니스 에티켓>, 두남, 2001

한국인이 혼동하기 쉬운 글로벌 에티켓 2

문화의 차이가 無禮를 불러온다   [편집자 注]
우리나라에선 일상적인 행동이지만 외국에선 염치없는 행동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문화적 차이에 옳고 그름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신의 다름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다음은 민병철(閔丙哲) 교수가 G20 정상회의를 대비해 정리한 한국인의 특징적인 관습을 모은 사례다. 우리 관습이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땐 상당히 특이한 상황이 되는 행동들이다. 민 교수의 저서 <글로벌 에티켓>에서 미국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한국인의 행동과 그 반대의 경우를 일부 발췌해 정리했다.
박남규 서울대 교수는 “글로벌 경영이 모든 산업에서 일반화되는 현재, 영어권 국가들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것은 상식적 차원의 필수지식이 됐다”고 했고, 니콜라스 박 변호사는 “한미(韓美) 양국 간 문화 관습의 차이로 발생하는 오해는 단순한 불편함의 차원을 넘어 법률문제나 국가 간 분쟁으로까지 비화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다르다고 무조건 무례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러한 경우에 당황한다는 것을 미리 알면 도움이 된다.

閔丙哲 건국대 교수
⊙ 1950년 서울 출생.
⊙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美 노던일리노이大 대학원 교육학 박사.
⊙ MBC-TV 문화방송 생활영어 진행. 중앙대 전임교수, 미국 뉴욕대 초빙학자,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 역임.
⊙ 現 민병철교육그룹 회장, BCM미디어 대표이사, 건국대 국제학부 교수·언어교육원 원장,
    경기파주영어마을 자문위원.
  

 

■ 미국인을 당황하게 하는 한국인의 행동 ■

  공중화장실에서 흡연을 한다
 
  많은 한국인 흡연자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울 때가 많다. 특히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가 불편한 고층빌딩에선 그 정도가 더하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비흡연자들에게 불쾌한 경험을 주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금연 표시를 무시하고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최근 실내 금연 규정이 마련돼 문제를 억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큰소리로 통화한다
 
  일부 한국인들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로 오랫동안 휴대전화 통화를 한다. 미국에선 다른 이에게 항의를 받을 수 있는 무례한 행동이다.
 
 
  대화하는 사람의 사이를 지나지 않고 옆으로 밀치고 지나간다
 
  한국인들은 대화하는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것을 꺼린다. 대신 둘 중 한 사람을 살짝 밀쳐내며 그 사람의 옆이나 뒤로 지나간다. 이런 행동은 사이를 빨리 지나가는 것이 밀치고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에게 이상하게 비친다. 미국인들은 대화하는 사람들을 밀쳐서 방해하는 대신 그 사이를 빨리 지나쳐 간다.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뒤따라오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문을 잡아 주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인들은 뒷사람이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일 경우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 또는 동료나 상급자일 경우엔 문을 잡고 기다려 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부딪치고 지나간다
 
  복잡한 대도시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한국인들은 이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며 다치지 않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인은 낯선 사람과의 신체접촉이 발생하면 짜증낸다. 공공장소에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말은 하지 않고 주로 표정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만약 복잡한 전철에서 미국인의 발을 밟고선 눈빛과 표정으로 사과의 뜻을 전한다면, 상대방은 이해하지도 못 하고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미국인은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사과는 미국에선 별 의미가 없다.
 
 
  옷자락을 잡아끈다
 
  한국인은 주의를 끌기 위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상대방의 옷소매를 만지거나 잡아끄는 일이 흔하다. 이런 행동은 미국인에게 짜증나는 일이며 무례한 느낌을 준다.
 
 
  대화 중 상대방을 가볍게 친다
 
  한국인은 우스운 이야기를 하다가 종종 상대방의 어깨나 팔을 가볍게 치곤 한다. 대다수의 미국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대화 중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한국인은 상대방, 특히 연장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은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러나 미국에선 시선을 피하는 것이 관심이나 존경심, 또는 정직성의 결여를 의미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상대방이 하는 말에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자들이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린다
 
  한국에선 웃을 때 손으로 가리는 것이 교양 있는 행동이다. 예의 바른 한국 여성이라면 입을 크게 벌리고 시끄럽게 웃어선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입을 가리고 웃는 여성을 보면, 그 여자가 몰래 자신을 비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악수를 너무 오래 하거나 힘없이 한다
 
  한국에선 악수를 길게 하는 것이 괜찮지만, 미국인은 불편해 한다. 미국에서 힘 있고 짧은 악수는 정직과 신뢰를 나타낸다. 힘없는 악수는 정반대의 인상을 준다. 하지만 미국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길거나 가벼운 악수를 받는 것은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코를 풀어버리지 않고 계속 훌쩍거린다
 
  한국인은 사람들 앞에서 코를 푸는 것을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감기에 많이 걸리는 겨울철에 사람들로 붐비는 방이나 버스, 전철은 코를 훌쩍이는 소리로 어수선하다. 미국인에겐 다소 불쾌한 소리다. 그들은 계속 훌쩍거리는 대신 시원하게 한 번 풀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귀청소를 한다
 
  한국 남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귀청소를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미국인은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호텔, 식당, 상점 종업원에게 무례한 편이다. 만약 미국에서 명령조의 짧은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는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호텔, 식당, 상점 종업원에게 무례하다
 
  한국에선 서비스 직종에 있는 사람이 그리 정중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미국에선 식당 종업원이나 상점 점원들이 열등하다고 간주되지 않으며,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명령조의 짧은 표현을 사용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는다
 
  한국 거리에선 쓰레기통이나 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사람이 이런 습관을 갖고 있고, 대다수 한국인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미국인은 침 뱉는 행동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한다.
 
 
  공공장소에서 마른오징어를 먹는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마른오징어의 냄새는 대다수 미국인에게 불쾌감을 준다. 만약 버스나 비행기에서 마른오징어를 먹으면 냄새를 피할 수 없는 미국인들이 상당히 곤란해 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아이를 부모가 내버려둔다
 
  식당, 공항, 호텔 로비 등 공공장소가 놀이터인 듯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을 꾸짖는 부모도 있지만, 대개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무관심하다. 미국인들은 공공장소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면전에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의 외국인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그들의 몸짓이나 복장에 대해 면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었다. 불쾌감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미국인은 자신들을 동물원의 동물로 취급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모르는 사람의 아이를 건드리거나 토닥거리는 것은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단지 아이가 귀여워서 나온 행동으로, 한국인은 이를 악의 없는 성의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미국인 부모에겐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인사의 표시로 미소만 짓는다
 
  몇몇 한국인은 미국인이 인사할 때, 그냥 미소로 응한다. 하지만 미국인은 표정이 아닌 말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시끄러운 곳에선 목례하거나 손을 흔든다. 상대방이 답례로 미소만 띠면, 미국인은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실내에서도 재킷을 벗지 않는다
 
  한국인은 식당이나 교실 등 실내에서도 재킷을 입은 채 할 일을 한다. 미국인은 어떠한 상황에서건 편히 있으려 하기 때문에 겉옷을 입은 사람에게 벗으라고 권한다. 재킷을 벗지 않는 행동은 그 사람이 불편하고 바빠서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복에 흰 양말을 신는다
 
  한 미국인 영어 강사는 자신의 반에 있는 16명의 남학생 중 14명이 짙은 색 양복에 흰 양말을 신은 것을 본 적 있다고 한다. 미국에선 정말 촌스러운 복장이다. 양말 색깔은 바지 색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상황에 맞지 않게 정장을 입는다
 
  설악산과 같은 장소에 가 보면, 일부 한국인들이 등산 복장이 아닌 멋진 레스토랑에 어울릴 법한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클래식 음악회에 참석할 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보인다. 미국인에겐 당황스러운 광경이다.
 
 
  환자복을 입고 병원 밖을 걸어다닌다
 
  한국에선 병원 밖에서 환자복을 입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는 환자가 많다. 미국인은 환자복을 부끄러울 정도로 촌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환자복을 입고 병원 밖을 걸어다니지 않는다.
 
 
  회의 중에 눈을 감고 있다
 
  한국인은 눈을 감으면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미국인에겐 아주 무례한 행동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인이 회의 중 눈을 감는다면, 상대방의 말이나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고 차라리 다른 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No”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싫어한다. 같은 한국인이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눈치껏 “싫다”는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미국인은 “No”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Yes”의 뜻으로 이해한다.

  거절의 뜻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한국인은 “No”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싫어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한국인이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눈치껏 “싫다”는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미국인은 “No”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Yes”의 뜻으로 해석할 것이다.
 
 
  식사 중 대화를 하면서 포크, 나이프, 젓가락 등을 흔든다
 
  미국에선 식기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음식을 자르거나 입에 넣을 때만 사용하는 식기를 손에 든 채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위험하고 예의 없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직장에서 양치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선 직장에서 양치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구강 건강에 분명히 좋은 습관이지만, 미국인의 눈엔 이상하게 보인다.
 
 
  사무실에서 정장차림에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많은 한국인 회사원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구두를 벗고 슬리퍼를 신는다. 편한 업무 환경을 위해서지만, 미국인에겐 이상한 광경이다. 미국인은 편한 신발로 출근해 사무실에서 구두로 갈아 신는다.
 
 
  사무실 책상에 화장실용 휴지를 놓고 쓴다
 
  한국에선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티슈 대신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하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식당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두루마리 휴지는 화장실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에겐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가위로 고기와 채소를 자른다
 
  한국인은 음식을 먹을 때 칼을 잘 쓰지 않는다. 고기 또는 야채 요리는 대부분 조리 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서 나온다. 그런데 갈비나 냉면 등 식탁 위에서 종업원이나 손님이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 경우가 흔하다. 주방에서도 사용이 편한 가위를 이용하는데, 미국인에겐 낯선 풍경이다.
 
 
  면이나 국을 먹을 때 시끄럽게 소리 낸다
 
  “후루룩!” “냠냠!” “쩝쩝!” 뜨거운 면을 입김으로 식히지 않고 입에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은 맛있게 먹는다는 표현이지만, 미국인은 그 소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식사 중엔 소리를 내선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한다
 
  미국인은 이런 행동을 싫어한다. 가정에서 식사 중 입을 벌린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공공장소에선 예의와 교양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한국에선 음식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는 행동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장황하게 잡담을 한다
 
  한국인은 친밀한 관계가 되기 전이나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는 구체적인 사업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냉정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라 생각하는 미국인은 가급적 최소한의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어한다. 빠듯한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 사업가들은 ‘변죽만 울리는 듯한’ 한국인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식사 중 식탁을 가로질러 물건을 집는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건네 달라고 부탁하기보단 식탁 위로 팔을 뻗어 직접 집으려 한다. 식사 중인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인은 물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건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자신의 팔이 다른 사람의 음식 위로 지나가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탁에서 요란하게 이쑤시개를 사용한다
 
  한국인은 이를 쑤실 때 눈에 띄지 않으려고 손으로 가리지만, 실제론 그런 행동이 더욱 시선을 끈다. 미국에선 식사 중인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대개 화장실이나 식당 밖에서 이쑤시개를 이용한다.
 
 
  식사 후 바로 자리를 뜬다
 
  한국인은 식사 중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식사 후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국인은 식사 전 약간의 이야기를 나눈 후, 식사를 하면서도 적당한 대화를 하고, 식사가 끝난 후 더 많은 대화를 한다. 소화가 되도록 식후에 느긋하게 앉아서 대화를 즐긴다.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준다
 
  미국인은 차가운 음료를 즐긴다. 겨울이라도 거의 차가운 음료가 제공되며, 뜨거운 물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뜨겁게 나오는 음료는 차와 커피뿐이다.
  미국인은 한국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거나 얼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당황해 한다.
 
 
  자신이 마신 잔으로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
 
  자신이 마시던 잔으로 술을 권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우정을 표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런 행동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에게 술 한 잔 더 하라고 강요한다
 
  한국인은 손님에게 술이나 음료를 한 잔 더 마실 것을 여러 번 권한다. 이를 거절하는 최선의 방법은 술잔을 완전히 비우지 않거나 술을 더 권할 때 술잔을 손으로 덮는 것이다. 미국인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받을 때 상당히 기분 상해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한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이, 결혼 여부, 연봉, 자녀가 없는 이유, 체중 등의 질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많아 묻는 것이지만, 미국인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되는 질문을 싫어한다.
 
 
노래방 문화는 한국 문화의 일부로,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한 곡씩은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모임에서 노래하라고 강요한다
 
  노래방 문화는 한국 문화의 일부로,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한 곡씩은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다른 사람의 노래는 듣기 좋아하지만, 앞에서 노래하는 것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이 많다.
 
 
  동성과 손을 잡고 걷는다
 
  한국인, 특히 여성들 사이에선 동성(同性) 간에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 여성들은 이런 행동을 다소 불편하게 여긴다. 미국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 탓에 간단한 악수를 제외하곤 어떤 접촉도 몹시 불편하게 생각한다.
 
 
  남자들끼리 몸을 터치한다
 
  한국 남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더라도 상대방의 무릎이나 다리를 터치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별 스스럼없이 하지만, 개인 공간을 중요시하는 미국인은 자신의 공간을 침해당했다고 느끼거나, 성적인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동성과 춤을 춘다
 
  미국인은 한국의 클럽에서 많은 한국인 남녀가 동성끼리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미국에서도 여성끼리는 종종 함께 춤을 추지만, 남자는 절대로 남자끼리 춤을 추지 않는다. 한국에선 우정과 재미의 의미지만, 미국에선 동성연애자임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한국인의 얼굴은 대부분 굳어 있고 표정이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건네며 인사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은 오해를 사기 쉽다.

  얼굴이 굳어 있고 표정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한국 문화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헤프게 웃으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데서 비롯된 관습이다. 미국인은 자신의 감정 표현, 특히 웃음에 있어 개방적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건네며 인사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은 오해를 사기 쉽다.
 
 
  말하는 것이 모호하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아닌 이상, 한국인은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논쟁을 피하거나 무례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아마’ ‘…같다’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명확하고 직접적인 의견과 사실적인 설명을 원하는 미국인들을 짜증나게 할 수도 있다.
 
 
  당황할 때 웃는다
 
  한국인은 실수할 때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수한 사람에게 진지한 사과의 표정을 기대하는 미국인에게 오해의 소지가 된다. 미국에서 그와 같은 미소는 ‘잘못했지만 신경 안 쓴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한국엔 보행자에게 양보하지 않는 운전자가 많다. 최근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차들 때문에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은 특히 보행자에 대한 안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운전 문화가 더욱 위험하게 느껴진다.
 
 
  보도 위로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탄다
 
  많은 오토바이나 스쿠터가 배달에 이용된다. 바쁜 일정상 종종 행인들을 무시하고 보도 위로 운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인은 위험한 행동에 짜증을 낸다. 당연히 보행자들만 이용해야 할 보도 위에서조차 분별없는 운전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팁 주는 것을 잊어버린다
 
  한국에선 팁이 드물기 때문에 서양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종종 팁 주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미국에서 팁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수입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자신의 봉사에 대해 최소한의 팁이라도 받을 것을 기대한다.
 
 
  한국인의 ‘이리 와’는 미국인에겐 ‘저리 가’가 된다
 
  한국인의 ‘이리 와’ 신호는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 흔드는 것이다. 미국인에겐 ‘저리 가’라는 뜻이 된다. 미국에서 오라는 손짓은 손바닥을 위로 올려 흔드는 것이다.
 
 
  화장지가 화장실 밖에 걸려 있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경우 화장지는 모든 칸막이 안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공공화장실엔 화장지가 칸막이 밖에 있어 뜻밖의 곤란을 당하는 미국인이 많다.
 
 
  화장실 칸마다 휴지통이 있다
 
  한국의 많은 화장실엔 사용한 휴지를 버리기 위한 휴지통이 있다. 미국은 그런 용도의 휴지통이 없으며, 사용한 휴지는 변기 속으로 넣어 버린다.
 
 
  양쪽으로 열리게 돼 있는 출입문을 한쪽만 열어 둔다
 
  건물의 입구와 출구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이를 아주 불편하게 여긴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좁은 출입구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칠 경우 누가 양보해야 할지 몰라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된다.
 
 
  사용 중인 남자 화장실을 여자 청소부가 청소한다
 
  미국 남자들은 한국 남자 화장실에 여자 청소부들이 출입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특히 화장실을 사용하는 중에도 들어와 전혀 상관치 않고 청소를 할 땐 더욱 당혹스러워 한다.
 
 
  공중화장실이 남녀 공용으로 사용된다
 
  한국의 작은 건물이나 식당엔 화장실이 남녀공용일 경우가 많아 남녀가 동시에 화장실을 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또 남녀 화장실이 별도로 있을 때도 바로 옆 칸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에겐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이다.
 
 
 
■ 한국인을 당황하게 하는 미국인의 행동 ■

  둘째 손가락을 이용해 사람을 부른다
 
  미국인들은 사람을 부를 때 흔히 둘째 손가락을 세워서 부른다. 한국인은 동물을 부를 때나 둘째 손가락을 사용하며, 사람을 부를 땐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킨다
 
  많은 미국인은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둘째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킨다. 한국에선 아주 무례한 행동이다.
 
 
  어린아이의 코를 떼어 간다는 우스개의 의미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워 보인다
 
  한국에선 가운뎃손가락을 추켜들어 내미는 행위와 같이 모욕적인 의미지만, 미국에선 어린아이를 놀리는 행동이다.
 
 
  연장자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한국인은 연장자가 담배를 피워도 그 앞에선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흡연 장소가 허락된 곳이라면 앞에 있는 사람의 나이는 큰 의미가 없다.
 
 
  상급자에게 인사 대신 손을 흔든다
 
  한국인은 연장자와 마주하면 항상 허리나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의 평준화는 한국인에게 생소하게 보인다.
 
 
미국 남성들은 종종 신뢰감, 정직함 또는 친밀감의 표시로 힘찬 악수를 한다.

  악수를 너무 세게 한다
 
  미국 남성들은 종종 신뢰감, 정직함 또는 친밀감의 표시로 힘찬 악수를 한다. 최소한 상대방이 악수할 때 조금이라도 힘을 주길 기대한다. 한국인에겐 다소 격렬하게 보이기도 한다.
 
 
  공공연히 가족 자랑을 한다
 
  미국인들은 공공연히 가족을 자랑하길 좋아한다. 한국인은 가족 구성원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 자랑은 잘 하지 않는다. 배우자의 요리솜씨나 미모, 아이들의 학교 성적을 공공연히 칭찬하지 않지만, 미국인은 반대다.
 
 
  대화 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서서 대화하고 있는 친구 사이에서부터 기자회견 중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이런 격의 없는 자세를 흔히 취한다. 이는 그 사람이 긴장하고 있지 않은 편안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러나 한국인들, 특히 연장자들에겐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대화 중에 너무 빤히 쳐다본다
 
  미국에선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관심과 존경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대화 중 미국인들이 너무 빤히 오래 쳐다본다고 느낀다. 한국인은 잠시 시선을 돌리면서 쳐다보는 것이 상대방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연장자에게 한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는다
 
  미국인은 대개 한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는다. 젊은이가 연장자에게 물건을 줄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운동 중에 심지어는 대화 중에도 껌을 씹는다
 
  미국인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껌을 많이 씹는 사람일 것이다. 대화 중에도 껌을 씹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때와 장소를 가려 껌을 씹는 한국인에겐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다.
 
 
  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
 
  이런 경솔한 행동의 근원은 미국 헌법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자유의 권리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차를 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면 뭐든지 원하는 만큼 크게 틀어 놓고 듣는다. 특히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이런 권리의 행사를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일부 운전자들이 음악을 크게 틀지만 대부분은 창문을 내리거나 조용히 듣는다.
 
 
  연장자에게도 이름을 부른다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친숙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미국인은 사업상의 모임이나 사교적인 자리에서 이름을 불러 줄 것을 고집한다.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닌 이상 이름을 부르지 않는 한국인에겐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다. 한국인은 주로 ‘부장님’ ‘선생님’ 등 직함이나 존칭을 사용한다.
 
 
  모든 아시아인은 똑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이 한국인에게 중국인 또는 일본인이냐고 물으면 많은 한국인이 기분 상해 한다. 아시아 경험이 별로 없는 미국인들은 아시아인의 국적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는 한국인이 유럽인을 보고 미국인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코를 푼다
 
  특히 식사 중 큰소리로 코를 풀면 한국인들에겐 큰 실례다. 몇몇 미국인은 사람들로부터 몸을 돌리고 코를 풀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한국인들이 불쾌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거의 코를 풀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야한 농담을 한다
 
  미국인은 한국인이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농담을 거침없이 한다. 한국인은 그런 농담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미국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많은 한국인이 농담을 이해하거나 구별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미국인의 큰 착오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인은 집 앞 계단, 버스, 지하철, 복잡한 거리 등에서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먹는 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러한 행동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인은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걷는 것에도 익숙하다.
 
 
미국인은 상대방의 이목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상대방의 이목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한 미국인의 신념에서 유래한 문화다. 종종 보는 사람이 언짢을 수도 있는 독특한 패션들도 볼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한국인에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이 발랄한 스타일이나 야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한국인은 대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옷을 입는다. 젊은 여성들이 밝은 색의 옷을 즐겨 입는 반면, 나이 든 여성은 무난한 색깔의 보수적인 옷을 입는 경우가 많다. ‘나이는 본인이 느끼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나이 든 사람들도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의 평상복 차림을 한다.
 
 
  웃옷을 입지 않고 경기 관람이나 조깅을 한다
 
  야구장이든 공원이든 미국인 남자는 웃옷을 벗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벗는다. 웃옷을 벗은 모습을 누구나 보기 좋아하진 않으며,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정장을 입을 때도 운동화를 신는다
 
  미국의 직장 여성들은 종종 출퇴근 때 운동화를 신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구두로 갈아 신는데, 한국과는 반대다.
 
 
미국인은 이야기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인은 대개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길게 하는 편이다.

  직접적, 공격적으로 이야기한다
 
  미국인에게 직접적인 대화 방식은 명확하고 적절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국인에겐 그런 말투가 퉁명스럽거나 협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미국인은 이야기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인은 대개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길게 하는 편이다.
 
 
  사무실에서 책상이나 의자에 발을 올려놓는다
 
  미국인들은 휴식을 취할 때 책상이나 의자에 발을 올린다. “발을 올려놓고 잠시 쉬어라”란 표현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무실에선 존경심이 결여된 아주 예의 없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상사의 책상에 던지듯 물건을 내려놓는다
 
  미국인은 혐오감이나 분노의 표출이 아닐 경우엔 펜이나 폴더 같은 물건을 상사의 책상에 가볍게 던져 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화가 났을 경우라도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으로 여겨 상사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행동은 당장 해고 감이다.
 
 
  대화 중에 팔짱을 끼고 있다
 
  미국인에게 팔짱을 끼는 것은 뭔가 주의 깊게 생각하고 있을 때 취하는 격의 없는 자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태도는 종종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단호함이나 반대 의사를 의미한다.
 
 
  강의 중 테이블이나 책상에 앉는다
 
  미국 학교에서 강사가 책상 등에 앉는 자세는 교사와 학생이 허물없고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 회사에서도 이런 행동이 발표 등을 할 때 흔히 일어나지만, 한국의 대다수 직장인은 이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입에 필기도구를 문다
 
  미국인은 강의 또는 발표를 들을 때나 생각에 잠길 때 필기도구를 씹거나 빠는 경우가 많다. 뭔가에 깊이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지만, 한국인의 눈엔 품위 없고 유치한 행동으로 보인다.
 
 
  상급자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다
 
  미국에선 다리를 꼬는 것이 단지 편히 앉는 자세일 뿐이지만, 한국에선 연장자 앞에서 이렇게 앉는 것은 결례다.
 
 
  명함을 받아서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미국에선 당연한 행동이지만, 한국에선 상대방이 건네준 명함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성사 가능성이 큰 거래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한국에서 존중의 표시로 인식된다.
 
 
  빨간색으로 사람 이름을 쓴다
 
  한국에선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쓸 때만 빨간색을 사용한다. 미국에선 어떤 색깔로 사람의 이름을 쓰든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에선 가급적 남의 이름을 쓸 때 빨간색으로 써선 안 된다.
 
 
  돈을 받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시간은 돈이다”란 문구는 미국인이 어떻게 사업에 임하는지 잘 나타내 준다. 사업에 있어서 미국인은 이득 없이 일을 하는 것이 구미에 맞지 않는다. 한국에선 가끔 돈이 생기지 않아도 일을 해 장기적인 사업 관계가 형성된다.
 
 
  사소한 불만을 서면으로 표현한다
 
  미국인은 향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서면으로 작성하고 싶어한다. 한국인도 이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사소한 문제까지 미국인이 서면으로 불평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한국에선 서면보다 말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낫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가 켜지길 기다리지 않는다
 
  일부 미국인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신호를 기다릴 만큼의 참을성이 없다. 특히 지나가는 차가 없을 땐 더욱 그렇게 행동한다. 차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인데, 한국에선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식사 중 손가락을 빤다
 
  미국인은 닭튀김, 햄버거, 피자 등 음식을 먹을 때 손가락을 사용한다. 그리고 식사 후엔 손가락을 빤다. 일부 미국인도 이 행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대다수의 한국인은 이를 결례라고 생각한다.
 
 
  식사 중에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미국인에게 식사는 사교의 시간이기도 하다. 식사 중의 침묵은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미국식의 재담은 한 사람이 음식을 씹는 동안 다른 사람은 얘기하고, 그 다음에 역할을 바꾸는 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인은 식사 중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놀린다
 
  미국인 중에도 특히 젊은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화법 중 하나다. 악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놀림의 대상이 된 사람도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국에선 허물없는 자리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을 놀리지 않는다. 미국인의 격의 없고 익살스러운 ‘모욕’에 한국인은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시끄러운 목소리, 큰 제스처, 과장된 표정을 한다
 
  미국인은 대화를 나눌 때 한국인보다 훨씬 활기차게 이야기한다. 특히 한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땐 목소리를 높이고 과장된 제스처를 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은 많은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진 못하지만 귀머거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남편의 성으로 한국 여성을 부른다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 미국의 관습 때문에 생기는 혼동이다.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버리지 않는 한국인 여성을 남편 성으로 부르면, 대개 자신을 부르는지 모르게 된다.
 
 
  자신의 몫만 계산한다
 
  한국에선 누군가 식사를 함께하자고 청한다면 이는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젊은 세대를 제외한 많은 한국인은 각자 부담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자신은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으면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것을 기대한다
 
  한국어는 서양인이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조금만 노력해 한국어를 공부한다면 많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지어인 한국어를 배우기보단 한국인들로 하여금 영어로 이야기하게 하는 미국인이 많다.
 
 
  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식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우월감을 내세워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미국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한국인을 화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