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약골들에게 고함 “체력이 경쟁력!”
체력 저하→의료비 증가→노동생산성 저하→국가경쟁력 추락 악순환 고리 끊어야
출처는 모르지만 ‘체력(體力)은 국력’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에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주는 이미지는 세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군사독재 시절 이 말은 ‘국민총동원령’을 위한 구호였다. 냉전체제에서 체력은 곧 군사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곧 체력으로 인식됐다. 반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면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모태범 선수의 굵은 허벅지(26인치)를 먼저 떠올린다. ‘금벅지’ ‘철벅지’들이 한국에 안겨준 메달 수가 곧 ‘체력은 국력’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체력은 군사력도, 금메달 수도 아니다. 오늘날 체력은 개인의 건강과 직접 연결된다. 문제는 체력 증진이나 저하의 결과가 비단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 체력의 전반적인 저하는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의 하락을 가져와 국가경쟁력 추락을 부르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그래서 최첨단 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체력은 국력’인 것이다.
몸매는 착한데 저질체력 수두룩
체력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힘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질병 없이 건강하다고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체력이 좋으면 건강할 확률이 높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건강검진과 체력측정 항목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혈액 검사, 방사선 검사로 몸 안 구석구석을 살피지만 체력측정은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근지구력,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을 파악한다. 그래서 체격이 크고 예쁘다고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요샛말로 ‘몸매가 착한’ 사람 중에 ‘저질체력’인 경우도 많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 체격은 나날이 좋아졌다. 꽃미남·짐승남 신드롬이 말해주듯 겉보기는 말쑥해졌다. 20대 초반 남성의 평균 키는 174.1cm로 1965년 163.7cm보다 10cm 이상 커졌다. 그렇다면 체격에 비례해 체력도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체력이 퇴보하고 있다.
20, 30대 청년층이 점차 약골이 돼간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2010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9 국민체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20, 30대의 근지구력과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 체력요소가 2007년보다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도 조사와 비교해 20, 30대에서 제자리멀리뛰기는 16~17cm 감소했고, 윗몸일으키기는 평균 2, 3회 낮아졌으며, 50m 달리기 기록은 0.6~0.8초 느려졌다. 체력저하의 주범은 기초체력운동의 부족.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신체활동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인 사람들만 해도 학창시절 생활환경 자체가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산과 들에서 뛰어놀면서 자연스레 체력을 키웠습니다. 반면 요즘 세대는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고, 움직임이 없다 보니 과다한 영양이 체내에 쌓여 체력저하라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릴수록 체격은 좋아지지만 반대로 체력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2000~2008년 학생신체능력검사 결과 보고’를 보면 2008년 초중고 학생의 1, 2급 비율은 33%로 2000년에 비해 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최하등급인 4, 5급 비율은 같은 기간 31%에서 42%로 11%포인트나 증가해 체력저하 현상이 뚜렷했다.
‘주간동아’ 기자들의 체력측정 체험
이러한 체력저하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주간동아’ 기자들이 직접 체력측정을 해보기로 했다. 3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를 찾았다. 측정 대상은 갓 30대에 들어선 나(손영일 기자)와 20대 김유림 기자, 40대 윤융근 기자였다.
“진짜 윤 선배가 가장 체력이 좋은 거 아니야.”
평소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한 나는 농담으로 선배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방송인 강호동은 “겪어보니 방송은 체력전, 씨름은 심리전”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자 역시 “취재는 심리전, 기사 작성은 체력전”임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터. 간단한 설문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검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체력검사에 앞서 키·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심전도 및 폐활량, 체지방 측정을 마쳤다. 예상대로 체격 조건은 모두 우수했다. 180cm대인 나와 윤 기자, 170cm의 김 기자는 키에서 모두 자신의 나이대 평균치 이상이었다. 체중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웃통을 벗고 심전도 측정을 위해 가슴 10여 곳에 측정 장치를 붙였다. 코와 입은 마스크를 쓴 채, 한쪽 팔에는 혈압을 재기 위해 혈압측정 기기를 부착했다. ‘심폐지구력 하나만은 자신 있다’는 섣부른 자만심에 걷고 또 걸었다. 힘드냐고 묻는 스태프의 말에도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10여 분 못 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가쁜 숨을 내쉬기 무섭게 유연성 측정을 위한 ‘윗몸앞으로굽히기’, 순발력 측정을 위한 ‘제자리높이뛰기’, 민첩성 측정을 위한 ‘사이드스텝’ 등 여러 항목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30분이 지날 때쯤 고된 ‘기초체력훈련’이 끝나고 검사결과표를 받는 시간이 돌아왔다. 마치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손 기자 운동 많이 하셔야겠어요. 윤 기자는 40대 중반임에도 평소 관리를 잘하셨군요.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모두 훌륭합니다. 김 기자는 그동안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군요.”
체력성적표는 처참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의 설명 하나하나가 폐부를 찔렀다. 나의 경우 지구력 하나만 괜찮을 뿐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여타 항목에서 저질체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약골체력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가 바로 약골기자였던 것이다. 체력 측정의 승패는 흡연, 음주 등 평소 체력관리 여부에서 갈라졌지만 이 밖에도 큰 차이점이 하나 발견됐다. 윤 기자는 대학입시 때 체력장을 치른 이른바 ‘체력장 세대’인 반면, 나와 김유림 기자는 대학입시 비체력장 세대였던 것. 그 차이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18쪽 참조).
국민 개개인 체력 증진 방안 찾아야
약골체력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김양례 박사는 “체력과 건강의 개념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력상태가 나쁠수록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 부족으로 체력이 악화되면 성인병,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 각종 생활습관 질환에 쉽게 걸린다. 일부 외국 문헌에는 암까지도 유발한다는 보고가 언급됐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체력을 유지하면 병원에 갈 확률이 낮아져 그만큼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다. 체력저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의료비 지출에 불을 지핀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의료비 총액은 연 168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84달러보다 낮지만, 매년 8.7%씩 증가해 다른 회원국의 증가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의료비 지출 규모도 1990년 24억 달러였던 것이 2008년 290억 달러로 무려 10배 이상 뛰었다. 2050년에는 의료비 지출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몸이 아픈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체력저하와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 약화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33위 수준에 그친다. 1980년대만 해도 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5.8%에 달했지만 1990년대 들어 4.5%로 한풀 꺾인 데 이어 2000년대 이후 3%로 추락했다. “노동생산성이 약해진 원인이 다양하겠지만, 체력저하도 한몫했다”는 게 고 연구원의 주장. 몸이 아프다 보니 자기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몸이 안 좋으니 자기계발보다는 의료비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논리였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 역시 “창의적 아이디어는 내 몸의 에너지원에서 나온다”는 말로 노동생산성과 체력의 관계를 설명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을 볼까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이것으로 힘을 발휘하려면 영양소를 분해해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산소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산소를 섭취할 수 있느냐에 따라 두뇌 활동력도 달라집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단순히 지식이나 지혜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바로 체력에서 나옵니다.”
정부는 한때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경쟁력 순위(세계경제포럼·WEF)가 2009년 19위까지 밀리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 6월에는 경제성장률 5%,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기본 틀로 한 ‘비전 2020’을 발표할 예정.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우리 국민의 체력증진을 위한 장기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장밋빛 시나리오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진단한다. 만약 정부가 ‘체력은 국력’이라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세우기에 앞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민 개개인의 체력 증진 방안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어떤 경쟁도 체력이 뒷받침될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있으나 마나’한 체육교육에 학생들 체력 날이 갈수록 추락
“체육?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해본 적 없어요.”
‘철봉에 오래 매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며칠 전부터 체력장을 연습한다?’ 김소희(23) 씨에게는 말로만 듣던 얘기다. 체력장을 하긴 했지만 내신 점수에 반영되지 않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체력장 하는 날은 그저 수업 안 하고 체육복 입고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떠는 날이었죠.”
체육시간은 광합성 시간?
대부분의 아이는 설렁설렁 뛴 듯 만 듯, 최하등급인 5급 점수를 받고도 만족했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체육수업을 받지 않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제7차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모든 학생이 체육수업을 받지만 2학년부터는 예체능 과목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됐기 때문이다. 즉, 음악이나 미술을 선택한 학생은 체육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
김씨가 나온 경기도 수원 숙지고등학교의 경우, 한 학년 15개 반 중 체육 교과를 선택한 반은 12개 반, 나머지 2개 반은 음악, 1개 반은 미술만 배웠다. 음악, 미술을 택한 학생 중 과반수는 체육을 피하려는 학생이었다. 김씨도 체육 실기 성적을 걱정해 체육 대신 음악을 선택했다. 김씨처럼 1년 내내 체육을 배우지 않는 학생은 전국 고2, 3학생 수의 23.1%(2009년 기준)를 차지한다.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안용규 교수는 ‘운동 경시 풍토’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오직 대입에만 ‘다 걸기(올인)’ 합니다. 체육수업은 대학 들어가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거든요. 그러니 누가 체육수업을 열심히 듣겠어요? 이렇게 체육수업이 축소되면서 신체활동이 공부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어른이 돼서도 운동을 경시하는 거죠.”
저질체력, 만성질환만 늘어가고
체육수업이 있어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2005년 고교를 졸업한 김지영(24) 씨는 “체육시간은 ‘광합성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운동장 한 바퀴 뛰고 나면 남자애들은 축구 하고 여자애들은 앉아서 수다 떨었어요. 답답한 교실에서 나온 건 좋았지만 체육은 안 하고 가만히 앉아 햇볕만 쬐었죠.”
이들에게 체육수업은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201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재균(19) 씨도 “고3 때 체육수업을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 자습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체육수업이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이 “입시에 필요한 과목만 공부하는 현실”을 탓했지만, 몇몇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선생님의 역량 부족을 지목했다. 서울 성북구 숭례초등학교에서 만난 5학년 학생들은 “체육을 잘 가르쳐주는 남자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초등학교 교사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체육은 건너뛰기 일쑤고 운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 자녀를 서울 동대문구 한 초등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A씨도 “체육수업에 소극적인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체육시간을 실내 수업으로 돌리거나 딱지치기 같은 게임만 시켜서 기초체력 단련할 기회를 원천봉쇄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체육교사도 할 말은 있다. 서울 강서구 덕원여고 지성호 체육부장은 “날씨가 조금이라도 흐리거나 시험 때가 다가오면 학생들이 ‘체육 하지 말고 자습하자’고 한목소리로 외친다”며 한탄했다. 또한 “2, 3학년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체육수업을 하고, 그마저도 학교 행사나 공휴일과 겹치면 못하니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체육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이 학생들의 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전체 초·중·고교생이 받은 체력등급을 비교했을 때 2008년 체력장에서 최고등급인 1급을 받은 학생은 2000년에 비해 2% 줄었지만 최하등급인 5급을 받은 학생은 9% 늘어났다. 초·중·고교생 비만도도 2002년 9.4%에서 2008년 11.2%로 크게 늘었다.
이런 ‘저질체력’ 때문에 쓰러지거나 힘들어하는 학생도 많다. 200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윤모(23) 씨는 “학생들이 과도한 학습량을 견디지 못하고 등굣길이나 모의고사를 보는 중에 쓰러지는 일이 흔했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고3 때 체력이 약해지면서 생리 때 허리가 끊어질 듯 유난히 아팠고 살이 계속 쪄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3월 7일 일요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서승현(16) 군은 “이제 고등학생이 돼 공부량이 많아질 텐데 워낙 체력이 약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군은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찰 정도고, 피로가 계속 쌓인다”며 일요일인데도 운동장이 아닌 학원으로 향했다.
학교 체육수업도 재미있을 수 있다!
‘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과거.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약간의 수업참여 이후 이른바 자유시간을 얻어 체육시간이 아닌 뛰어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체육수업은 운동을 못하는 아이들 위주로 진행되는 열반 아이들만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학생들, 그리고 우반이 돼 열심히 공을 차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남녀 아이들.
운동 여건이나 분위기는 조성해주지 않고 체육교사 스스로 단순히 운동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만 따졌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학생은 운동을 잘하는 부류, 그렇지 않은 학생은 운동을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부류라고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차츰 체육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아이들의 체력은 저하됐다.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운동을 잘 아는 학생’이 아닌 ‘운동을 잘하는 학생’으로 태어나야만 했다.
체육 수업시간은 ‘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보는 것과 쓰는 것,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으며, 일반 어른들처럼 아이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체육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목표 도달치를 정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인증버튼을 준다. 가방에, 교복에 달고 다니며 내가 ‘호성 체력짱’이라고 자랑하는 녀석들을 보면 기특하기까지 하다. 체력운동만큼 지루하고 먼 목표치를 가지고 출발하는 운동은 없다.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
조종현 안양 호성중학교 체육교사 bus7770@hanmail.net
실제 체력이 떨어진 학생들이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잇따른다.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제갈윤석 교수가 남자 고등학교 1학년생 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체력장 등급이 5급인 학생들이 1급인 학생들보다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4.5배 높았고, 비만이 될 위험은 312배나 많았다. 초등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 비만한 아동 8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체질량지수(BMI)가 정상치 24.2 이상인 비만 아동은 염증 호르몬 수치(hs-CRP, vaspin)가 급격히 증가해 당뇨, 비만, 고지혈증 등 여러 대사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청소년기 체력 단련이 매우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전용관 교수팀이 40대 성인 남녀 중 1만 5896명의 고교 시절 대입 체력장 점수와 현재 건강검진 결과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고등학교 때 비만했던 사람이 40대 성인기에 비만해질 위험이 건강한 남녀보다 모두 19배 높았다. 여성 중 체력장 급수가 낮았던 그룹(4~5등급)은 높았던 그룹(1~2등급)에 비해 현재 혈당이 위험수치 이상일 확률이 2.3배 높았고, 몸에 좋은 고밀도 콜레스테롤이 부족해 고혈압이 될 확률은 2.0배 높았다. 즉, 고교시절 체력장 점수가 낮았던 여성은 40대 이후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
연세대 제갈윤석 교수는 “만성질환은 갑작스럽게 발병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회복되지도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것.
“비만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운동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최대 12주 동안 운동을 시켰는데, 그 결과 비만도는 큰 변화 없었지만 만성질환 위험요인이 눈에 띄게 떨어졌어요. 그만큼 꾸준한 운동이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는 거죠.”
체력장만 바꾸면 만사 OK?
이토록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는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해 먼저 체력장에 메스를 댔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2년간의 시범실시를 거쳐 2009년 기존에 실시하던 ‘학생신체능력평가’를 ‘학생건강체력평가시스템’(PAPS·Physical Activity Promotion System의 약자·이하 팝스)로 대체했다. 지난해 초등학교 실시에 이어 올해 중학교, 내년에는 고등학교까지 확대 시행한다는 방침. 팝스는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체력을 평가하기 위해 기존 신체능력평가 항목 외에도 왕복오래달리기(페이서), 종합유연성검사, BMI, 체지방량 측정 등 6개 항목을 추가했다.
2009년 팝스를 시행한 서울 성북초등학교 신승현 체육부장은 “기존에는 달리기 속도만 측정했는데 이제는 왕복오래달리기를 통해 순발력까지 체크하는 등 체계적이고 정확해졌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팝스 성적표를 받아본 박재영(12) 군은 “다른 부분은 정상이지만 근력과 근지구력이 약하다고 나와 지난 겨울방학부터 검도 학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 방법만 바꾼다고 학생들의 체력 저하 문제가 해결될까? 학교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팝스를 통해 체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지만 학교의 ‘애프터서비스’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은 체력진단만 내려줄 뿐, 개인에 맞는 운동처방은 해주지 않아요. 학교가 ‘귀하의 자녀 체력이 이렇게 나쁘니 알아서 관리하라’고 가정에 떠맡기는 꼴이죠. 결국 학생체력 증진을 위한 사교육비만 늘릴 겁니다. 가난한 집 자녀는 속수무책이고요”.
이 때문일까. 실제 국내 ‘사교육 1번지’로 알려진 곳에는 체육학원이 속속 들어섰다. 초등학생의 경우 태권도, 수영 학원 다니는 건 기본이고 강남, 목동 등에는 ‘학교체육 실기 전문 과외’가 성행한 지 오래다. 이는 학교가 체력단련의 장(場)으로 제 노릇을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최의창 교수는 “국가에서 아직 학생 체육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각 학생 체력에 맞는 1대 1 피드백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성질환, 저질체력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할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잃어버린 체육수업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대부분 체육교육 관계자는 “체육교과를 선택의 대상으로 본 현행 교육과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체대 안용규 교수는 “체육교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라고 강조한다.
체육교과 평가방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덕원여고 지성호 교사는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르면 다른 교과목은 ‘수·우·미·양·가’ 5단계로 평가하지만 체육은 3단계로 평가해 그만큼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마저도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아 문제다. 차라리 체육 내신 성적을 수업에 대한 성실도, 참여도 등 인성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학생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서상훈 교수는 재미있는 체육수업을 강조했다. 신이 나야 체육수업에 참여하고, 그렇게 되면 체력이 길러진다는 얘기다.
“요즘 체육교육은 ‘어떤 기술을 얼마나 잘 소화했나’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만, 사실 ‘체력 향상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평가해야 합니다. 비록 농구 골은 10개도 못 넣었더라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신체활동을 한 학생이 골 20개 넣은 학생보다 체력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철봉에 대롱대롱서 건강체력평가까지
군부독재 시절이던 1983년 기존 평가 항목에 오래달리기가 추가됐다. 남자 학생의 1000m 만점 기준은 3분 40초에서 4분. 100m를 계속 20초대 초반에 뛰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체력검사 도중 학생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체력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증가했고 결국 1993년에는 대학입시, 1997년에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체력장 자체가 빠지게 됐다.
입시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체력장은 2009년까지 존속하며 체력평가 도구로 활용됐다. 그 사이에는 5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앉아윗몸앞으로굽히기,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걷기, 팔굽혀펴기(남)/ 오래매달리기(여) 6개 평가항목이 시행됐다. 마침내 2009년, 체력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존 운동기능 평가에서 벗어나 체질량지수(BMI), 심폐지구력 등 건강 체력까지 평가하는 학생건강체력평가(PAPS)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체력 좋은 아이가 공부 잘한다’ 과학적으로 연이어 증명
“집에만 있으면 갑갑한데 운동장에 나오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공부는 시간이 아니라 집중력이 문제잖아요. 이렇게 운동하고 나면 집중이 더 잘돼요”(김형래·14·가명)
“새 학기 적응하기도 바쁜데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운동하면 피곤하기나 하고….”(유동훈·13·가명)
3월 7일 일요일 서울 강남구 도곡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김군, 서울 동작구 한 PC방에서 만난 유군의 운동과 공부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판이했다. 과연 어떤 방식이 실제 성적 향상과 효율적 학습에 더 도움이 될까. 현실은 유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과학은 냉정하게 김군의 손을 들어준다. ‘체력 좋은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명제는 ‘참’으로 증명된 지 오래다.
책 ‘운동화 신은 뇌’에 소개된 미국 일리노이 주 네이퍼빌 센트럴고등학교의 사례는 이미 전설이다. 이 학교 신입생들은 매일 아침 정규수업 전에 심장박동 측정기를 단 채 운동장을 1.6km 정도 달린다. 이 학교는 1년간 ‘0교시 체육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 능력이 17% 향상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5년부터 실시한 ‘0교시 체육수업’ 덕분에 네이퍼빌 센트럴고교 학생들은 세계 학생들이 참가하는 학업성취도평가 팀스(TIMSS)에서 과학 1등, 수학 6등을 기록했다. 미국 평균이 과학 18등, 수학 19등인 것에 비하면 훌륭한 성과.
국내에서도 이런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2008년 전주교대 체육교육학과 박용연 교수는 전라도 지역 초등학교 6학년 328명을 대상으로 체력장 및 체질량지수(BMI) 점수와 국어, 수학 등의 성적을 비교함으로써 공부와 체력의 상관관계를 알아봤다. 그 결과, 1000m 달리기가 빠르고 윗몸일으키기를 잘하며 BMI 지수가 낮은 학생일수록 성적이 좋았다. 박 교수는 “오래달리기는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으로, 지구력이 좋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오래 앉아 꾸준히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성적도 좋다”고 말했다.
“체력이 좋으면 두뇌는 최적의 상태”
국내 최고 브레인만 모이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는 체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아 입학시험에 체력 테스트를 포함시켰다. 민사고 학생이 되려면 4km 달리기에서 남자는 30분, 여자는 35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체력이 좋으면 공부를 잘한다’는 명제는 뇌과학 분야(brain science)에서도 이미 증명됐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서상훈 교수는 “체력이 좋으면 두뇌가 공부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운동은 온몸에 자극을 주는데,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 속 해마도 운동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는 것. 다시 말해 운동을 하면 학습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운동을 하면 몸속 혈액량이 풍부해지는데 이 역시 기억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혈액이 많으면 그만큼 뇌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 서 교수는 “운동은 지속적으로 소뇌에 자극을 줘 뉴런을 활성화하며 머리 회전이 원활해지도록 돕는다”고 덧붙였다. 전주교대 박용연 교수도 “행동능력은 인지능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의 노화 및 치매 연구소 칼 코트먼 소장이 실시한 최근 동물실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칼 소장은 쳇바퀴를 이용해 2, 4, 7일 달리기를 시킨 쥐와 달리기를 전혀 시키지 않은 쥐의 뇌를 비교했다. 그 결과, 달리기를 한 쥐의 신경세포 성장인자가 비교집단의 쥐보다 훨씬 많이 증가했으며, 증가량 또한 운동을 많이 한 쥐일수록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경세포 성장인자가 많을수록 학습 속도가 빠르므로, 운동을 많이 한 쥐일수록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습태도와 집중력 향상
운동을 하는 아이가 체력이 좋아지고 집중력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인 학교도 있다. 2009년 3월부터 전교생 아침달리기를 실시한 서울 성북초등학교는 체력 향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학기 중에는 오전 8시에 ‘아침달리기’를 실시한다. 운동장에 설치된 트랙을 따라 저학년은 3바퀴, 고학년은 6바퀴를 완주하면 스티커를 받는다. 스티커를 많이 모은 학생은 학기말에 선물도 받는다. 학생들이 지루해할까봐 가끔 허들, 물웅덩이 등 장애물을 설치하고 반별 이어달리기 경주도 한다.
꾸준한 아침달리기 덕에 학생들의 체력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한국체대 체육과학연구소(KNSU)가 성북초 전교생의 4월과 12월 체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남학생의 체지방률은 22.7%에서 21.5%로, 여학생의 체지방률은 23.5%에서 23.2%로 감소했다. 윗몸말아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등 신체능력 평가에서도 높은 수치의 향상을 이뤘다.
이 학교 신승현 체육부장 교사는 “체력이 향상되다 보니 학습태도와 집중력도 그만큼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침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학습태도가 확실히 좋아졌다. 전에는 잠에서 덜 깨 부스스한 채로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아침달리기를 한 이후부터는 맑은 정신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을 가르쳐도 지치지 않는다. 아침밥도 꼭 챙겨먹고 오기 때문에 3, 4교시 수업분위기도 덜 산만하다.”
‘아침건강달리기’를 하고 있는 서울 영서초등학교 학생들의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5학년 학생들의 60m 달리기 성적을 보면 아침건강달리기 시행 전인 4월에는 평균기록이 10초8이었지만 12월에는 9초25로 1.55초나 줄였다. 1000m 달리기 기록 역시 4분 30초에서 4분 10초로 단축됐다. 강성필 교사는 “오전 8시 50분에 교실에 딱 들어와 아이들의 얼굴 표정만 봐도 아이가 아침달리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운동을 안 한 아이들은 ‘공부 시동’을 거는 데 한참 걸리지만, 달리기를 하고 온 아이들은 1교시에도 생동감이 넘쳐요. 발표도 잘하고, 학습 내용에 대한 이해도 빠르고요.”
초등학생뿐이 아니다. 제5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남훈(27) 씨는 “사법시험 합격 일등 공신은 농구동아리”라고 말했다. 김씨는 “공부에 지칠 때마다 코트에 나가 땀을 흘리고 오면 새로운 뇌를 장착한 것처럼 상쾌해져 공부가 더 잘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공부만 할 것 같은 신림동 고시촌에는 다양한 운동동아리가 있다. 헬스장, 복싱장 등을 찾는 사람도 있고 밤마다 고시촌 주변의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도 많다. 고시촌 생활 8년차인 최모(30) 씨는 매주 일요일 낮 2시간 동안 서울 관악구 강남고등학교에서 조기축구회에 참여한다. 최씨는 “공부가 안 될 때 갑갑한 독서실 의자에 앉아 5시간 동안 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샤워하고 낮잠을 잔 뒤 1시간 동안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주의력 결핍장애 고치는 역할도
운동으로 체력이 좋아지면 주의력결핍장애(ADHD)도 극복할 수 있다. 미국 호프스트라대학에서는 주의력이 결핍된 8~11세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무술을 배운 아이들과 두 번 유산소운동을 한 아이들,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한 것. 결과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한 아이들이 운동을 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행동이 안정됐고 학업성적도 많이 향상됐다. 그중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무술을 배운 아이들.
실제로도 산만한 자녀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아이를 태권도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다. 서울 강서구 임채원(7) 군의 어머니 박세영(38) 씨는 “아이가 한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산만했는데, 태권도학원에 보낸 뒤부터 나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합기도국술관 오원호 관장은 “엄격한 규율과 예절을 배움으로써 자기 통제력이 향상되고, 상대방과 대련하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흥미를 느낄 뿐 아니라 집중력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14년간 서울 강서구 덕원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지성호 체육부장 교사는 단 한 해, 고3 체육수업이 없어졌던 해를 기억해내곤 이렇게 말했다.
“2004년,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체육수업 대신 자습을 했어요. 공부시간은 늘었지만 결국 입시 결과는 이전 해보다 좋지 않았지요. 결석, 조퇴를 하거나 잔병을 치르는 학생도 많았고요. 그렇게 ‘체육수업 하기 싫다’던 학생들이 학년을 마칠 땐 후회하더군요.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라도 체육수업을 했더라면 체력이 좋아져 더 오래 공부할 수 있었을 거라면서요.”
업무와 조직에 맞는 체력 길러야 입사와 승진에 성공
체력검정을 위해 스터디를 만든 취업준비생, 소방관이 되려고 체대 입시학원을 다니는 고시생, 승진을 위해 10년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경찰관….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던 체력검정이 이젠 취업을 결정하고, 승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자 체력은 취업과 승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됐다. 바야흐로 체력 전성시대다.
“앗싸, 합격하겠구나.”
㈜이브자리 정회일(27) 교육총무팀 주임은 2008년 이브자리 입사 공고 내용 중 체력테스트를 한다는 설명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당시 육군 장교였던 그는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근무하며 등산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초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무사히 취업에 성공했다. 입사가 결정됐다고 체력관리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사 전보다 더 체력관리에 힘쓰고 있다. 정 주임은 입사 뒤 3차례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브자리에는 정 주임을 비롯해 왼쪽 무릎 아래에 의족을 끼고 풀코스를 3차례 완주한 박영길 과장 등 마라톤 애호가가 많다.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사원 254명 중 111명이 참가했다.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회사니까 마라톤, 등산이 딱 맞는 운동이죠. 개인적으로도 매일 운동을 하니 활력이 생깁니다. 사장님, 임원과 같이 운동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니 막혔던 업무도 술술 풀리죠.”
취업하고 싶다면 체력검정부터
이브자리는 기업의 모토가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기업답게 임직원 스스로가 건강을 지켜야 한다’일 정도로 체력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채용과정에서부터 엄격한 체력검정이 이뤄진다.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했던 체력테스트가 벌써 18년째다. 산행면접과 체력테스트가 면접 점수의 50%를 차지한다. 오전에는 불암산을 오르고 오후에는 헬스클럽에서 체력테스트를 한다. 종목도 다양하다. 체성분 측정, 달리기, 오래매달리기, 턱걸이 등을 하고 등급별로 점수를 매긴다. 최고 S등급을 받으려면 여성 지원자는 20초 이상 철봉에 매달려야 하고 남성 지원자는 턱걸이를 12개 이상 해야 한다.
“일곱 살 때 철봉에서 떨어져 팔꿈치에 철심을 박은 뒤로 철봉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철봉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죽기 살기로 매달렸어요.”
체력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보니 지원자들의 의지도 남다르다. 신입사원 방선(23) 씨는 바늘구멍 같은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철봉 공포증마저 이겨냈다. 강혁모(27) 씨는 매일 아침 조깅과 턱걸이로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이들은 5분 동안 하는 일반면접보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체력테스트가 잠재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체력이 입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자, 취업준비생끼리 체력검정을 대비한 스터디를 꾸리기도 한다. 코리안리재보험㈜은 오전에 청계산 산행을 하고 오후에는 축구와 오래달리기를 하는 야외면접으로 유명하다. 소문을 익히 들은 코리안리 신입사원 이강용(27), 이병주(27) 씨는 학교에서 함께 축구와 등산을 하며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야외면접을 위해 1년 전부터 마라톤을 준비한 지원자, 청계산 등산 스터디를 만들어 미리 산에 오른 지원자도 있었다. 함께 등산 스터디를 한 남녀가 눈이 맞아 사귀었다가 남자만 합격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기업들은 체력검정을 거쳐 뽑힌 지원자들이 일도 잘한다고 말한다. 코리안리 정용희(26) 사원은 “외국 담당 부서는 외국 시간에 맞춰 밤새울 때가 많은데 체력이 받쳐주니 부담이 덜하다”며 웃었다. 코리안리 박헌정 홍보팀장은 “힘이 빠진 상태에서 진짜 자기 모습이 드러난다. 5분 쉬는 동안에 남과 대화를 나누고 챙겨주는 지원자가 있는 반면, 홀로 담배를 피우거나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때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승진 강한 체력에 달려
체력검정은 직장인의 사기를 올리고 조직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민은행 신입사원들은 100km 걷기 극기체험을 통해 체력과 함께 팀워크를 키운다. 기업은행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입사 뒤 ‘새내기 첫걸음’ 훈련을 실시한다. 기업은행 연수원이 있는 경기도 기흥에서 을지로 본점까지 40km 철야행군을 하는 것. 기업은행 관계자는 “극기훈련, 철야행군을 통해 사기 진작과 조직경쟁력을 다진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운동선수 경험 여부가 주요 입사기준이 된 지 오래다. 경희대 체육학과 김형돈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운동선수 출신 지원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다. 처음에는 실력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체력이 받쳐주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앞서간다. 일본 학생들이 학창시절 운동선수 후보라도 되려고 애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중시하는 것은 일반 사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범죄, 화재,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 경찰관, 소방관에게 더욱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2008년 소방방재청은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공무원을 뽑기 위한 체력검정을 강화했다. 도입 첫해 체력검정에서 절반 이상 탈락할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공부만 해서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어려워지자 체대 입시학원에 소방공무원 준비생을 위한 전문반까지 생겼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소방공무원의 체력이 국민 평균체력의 상위 40%에는 들도록 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체력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력검사를 변경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검거 현장을 뛰는 경찰관 직무집행 객관적 측정
도주하는 피의자를 추적하고 제압하는 모의동작을 실시, 시간 기록을 재 경찰관들을 평가한다. 직선왕복달리기, 회전달리기 등으로 피의자 추적 능력을,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등으로 피의자 제압 능력을 평가한다. 평가 동작에는 가드레일, 장애물 뛰어넘기, 붐비는 사람들과 자전거 피하기 등에 대처하는 동작도 담겨 있다.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체력평가 검사방식에서 직무와 직접 관련된 복합적인 형태의 체력평가 검사를 실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최근 몬태나 주 경찰은 ‘Oregon Physical Ability Test’를 실시했다. 뛰기, 넘기, 구르기, 균형 잡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당기기, 밀기, 계단오르기, 물건나르기로 구성해 상당한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힘든 체력검사다. 사고 대처, 범죄자 제압, 용의자 연행 등 현장 상황에 필요한 체력적 능력을 평가한다.
경희대 체육학과 김형돈 교수팀은 경찰관 직무집행에 필요한 신체능력을 좀 더 객관적으로 측정·평가할 수 있는 직무테스트 모델(그림 참조)을 만들었다. 경찰관 직무테스트를 통해 실제 검거 현장에 필요한 달리기, 장애물 뛰어넘기, 급격한 방향 전환, 건물 옥상에서 추격, 높은 장애물 안전하게 통과, 계단 오르기 등을 평가하게 된다. 김형돈 교수는 “경찰관이 체력이 필요한 이유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다. 현실적으로 장비나 도구가 필요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체력검사 항목에 범인을 체포하는 상황에 부합하는 능력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 경희대 체육학과 김형돈 교수
시험철 보건소에 몰려드는 사람들
환경미화원에게도 체력은 필수다. 서울 구로구청은 환경미화원 선발을 위해 지원자로 하여금 20kg(여자 10kg) 모래주머니를 들어 차에 실은 뒤, 다른 모래주머니를 들고 왕복달리기하는 시간을 측정한다. 구로구청 클린도시과 관계자는 “환경미화원은 일상적인 쓰레기 수거 업무 외에도 냉장고, 헌 가구, 건축폐자재 등 대형 폐기물을 차에 실어 옮겨야 하기에 체력이 필수다”고 말했다.
피의자에게 얻어맞는 경찰, 범인을 발견해도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공무수행 중 부상한 경찰관 3명 중 1명은 범법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다친 것이다. 최소한 범인을 제압할 정도의 체력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올 7월 윗몸일으키기, 악력, 팔굽혀펴기, 1200m 달리기 4종목에 대한 체력검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행 직장훈련 평가에선 무도훈련 참석 횟수만으로 경찰의 체력단련 점수를 평가했다. 체력검정제가 도입되면 체력검정등급 결과가 경정 이하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새로운 평가가 도입되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경찰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체력검정은 필요하다.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소방관, 경찰 등 공무원 임용과 승진에서 체력이 중요해지자 보건소는 시험을 앞두고 테스트를 해보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서울 광진구 보건소 김주원 운동처방사는 “시험철이 되면 배근력, 악력테스트를 위해 하루 50명가량이 보건소에 찾아온다. 평소에도 15~20명은 꾸준히 온다”고 귀띔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이 75를 넘어간다고?”
평범한 40대로 보였지만 그의 최대 산소섭취량은 운동선수 수준이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스태프들은 행여 기계에 이상이 있나 기기를 점검하느라 분주해졌다. “운동선수 출신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은 그를 따로 불러서 차를 권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놀라운 체력결과가 나왔는지를 물었다.
“내래 북한에서 왔습니다.”
그는 인민군 중사 출신의 탈북자였던 것. 지금도 수영으로 거뜬히 한강을 건널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군인들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북한에서는 평소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저처럼 체력이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남한이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강한 체력을 가진 군인들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허약한 체력을 가진 장병들로 인해 전투력이 낮아지는 것은 군의 심각한 고민거리다. 대전대 군사학과 이필중 교수는 “강군을 만들겠다는 선언적 구호 대신, 군인들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반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육군과 달리 자원입대를 하는 공군과 해병대는 선발과정에서 강도 높은 체력검정이 이뤄지지만, 이들 역시 입대 사병의 체력저하와 비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거 공군에서는 입대 첫 주 1500m를 달려 7분 44초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공군은 지원자 감소, 지원자들의 오래달리기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오래달리기를 폐지했다. 대신 입대 직후부터 오래달리기 기록을 꾸준히 상승시켜 입대 4주차에 7분 30초 안에 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체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비만 병사들은 따로 반을 편성해 단계적으로 기록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약군시대’ 강한 군인 만들기
귀신 잡는 해병대도 예외는 아니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요즘 신병들이 워낙 운동을 안 해 입대 전 체력검정에서도 많이 떨어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병대는 훈련소 내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병사들의 체력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체력검정제를 개선해 체력검정 수준을 다른 선진국 군대에 맞추도록 했다.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미군이 체력검정 시 2마일(약 3.2km)을 달리는 것을 감안해 한국군도 기존의 1.5km에서 3km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체력검정 점수는 진급점수 100점 중 5점에 해당한다. 승진 여부가 소수점 몇 점 차이로 결정되기에 군 간부들은 매일 뛰며 체력을 기르고 있다. 한양대 생활스포츠학부 김동환 교수는 “기초체력을 측정해 그 결과가 낮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체력을 갖추지 않으면 취업도, 승진도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시대, 이젠 체력이 성공을 위한 ‘스펙’이 됐다.
운동하고 경험하고 … 연예인, 야생에서 산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오합지졸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거듭나자 김C가 외친 한마디. 그의 말처럼 천하무적 야구단의 성장은 눈물겨웠다.
선수들 스스로 석모도 갯벌 훈련을 감내하고, 프로야구 전지훈련지로 유명한 사이판에서 지옥의 펑고(fungo·야수들의 수비 연습을 위해 코치가 공을 쳐주는 일)를 치르는 등 훈련을 거듭하면서 체력과 실력이 나날이 달라졌다. 카메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선수들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다. 이에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을 표하며 몰입하게 된다.
‘남자의 자격’은 한술 더 뜬다. ‘국민 약골’ 이윤석을 앞세워 이경규, 김태원 등 예능 아저씨들이 직접 마라톤, 자전거 타기 등에 도전한다. 과연 성공할까, 매번 의구심이 들지만 그들은 일반인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최근에는 겁 없이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다. 8시간 강행군 끝에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전원 노고단에 도착하자, 멤버들은 서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몸 쓰는 프로그램의 대표주자는 1999년 시작해 무려 5년간 브라운관을 지킨 ‘출발 드림팀’이다. ‘출발 드림팀’에선 연예인들이 한 팀을 이루고, 전문가나 스포츠 선수들이 나머지 한 팀을 이룬다. 이들이 뜀틀, 높이뛰기,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등 각종 스포츠 종목이나 다양한 게임을 놓고 경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이나 경기의 상당 부분이 체력과 순발력 등을 필요로 한다. 조성모, 김종국 등 ‘출발 드림팀’에서 활약한 많은 스타가 군면제 혹은 공익처분을 받아 ‘출발 군면제·공익팀’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인기 스타들이 직접 뒹굴고 땀을 흘리며 놀라운 운동신경을 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최근 ‘출발 드림팀 시즌2’가 6년 만에 새롭게 선보였다.
이처럼 최근 예능의 대세는 출연진이 직접 몸을 쓰며 운동하고 경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세트장에서 아이돌 출연진이 모여 신변잡기식 토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으로 직접 뛰어든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졌다. 어려운 목표를 정해 돌진하는 ‘도전 버라이어티’. 단순히 자신의 몸을 가학하는 몸개그가 아닌 진정한 몸 쓰는 예능이 인기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들 프로그램의 인기를 두고 “최근 몇 년간 연예인 사생활 들여다보기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평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비주얼하고 역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기엔 운동경기가 최고다.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보듯,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야구를 해볼 수 있겠는가? 시청자들은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한 부분을 대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빵빵하고 두꺼운 그곳서 순간에너지 분출 … 격한 운동에도 쌩쌩한 체력 유지의 비결
흥부는 매품을 팔며 살았다. 남 대신 볼기를 맞아주고 돈을 받아 쌀을 샀다. 볼기는 몸 뒤쪽 허리와 허벅다리 사이의 볼록한 부분을 말한다. 살이 양쪽으로 두둑하다. 웬만큼 매를 맞아도 뼈는 상하지 않는다. 엉덩이는 볼기의 위쪽이다. 골반에 이어져 있다. 궁둥이는 엉덩이의 아래쪽이다. 앉으면 바닥에 닿는 근육이 많은 부분이다. 오리궁둥이, 짝궁둥이, 말궁둥이의 바로 그 궁둥이다. 한마디로 볼기가 가장 넓고, 볼기 위쪽인 엉덩이가 그 다음이다. 엉덩이 아래쪽인 궁둥이가 삿갓배미처럼 가장 좁다.
이상화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김관규 감독은 말한다.
“이상화를 보면 ‘방뎅이’가 떠오른다. 외국 육상 단거리선수들처럼 엉덩이와 허벅지근육이 발달해 순발력과 순간 파워가 뛰어나다.”
방뎅이는 궁둥이의 사투리다. 방둥이도 있다. 길짐승의 엉덩이를 방둥이라고 한다. 흑인들 엉덩이는 빵빵하다. 허벅지 뒤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이 늘씬하고 팽팽하다. 그래서 잘 달린다. 바로 이 ‘빵빵한 엉덩이’에서 순간적인 강력한 힘이 분출된다. 학자들은 ‘빵빵한 엉덩이근육’을 ‘파워 존’이라고 부른다. 파워 존이 잘 발달해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육상 단거리 휩쓰는 아프리카 흑인들
흑인들이 세계 육상 단거리대회를 휩쓰는 이유다. 아프리카 부시맨들의 엉덩이도 볼록하다. 학자들은 그것을 ‘부시맨들의 사막 적응 흔적’이라고 말한다. 사막은 식수와 먹을 것이 귀하다. 어느 때는 배불리 먹지만, 어느 땐 며칠씩 굶어야 한다. 부시맨들은 3만 년 동안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사막 덤불(bush)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볼록해졌다. 그 볼록한 근육 밑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에너지를 저장하게 된 것이다. 실제 부시맨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오랫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 이게 모두 ‘볼록 엉덩이 밑에 저장해놓은 에너지’ 덕분이다.
허벅지는 몸의 기둥이다. 허리와 골반을 튼실하게 받쳐준다. 기둥이 약하면 집은 와르르 무너진다. 무릎관절이 쉽게 손상된다. 허벅지에는 몸 근육의 35~50%가 몰려 있다. 근육은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의 저장 창고다. 허벅지가 굵으면 굵을수록 에너지 창고가 크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다. 격한 운동에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그뿐인가. 허벅지근육이 많아지면 그만큼 소비되는 열량이 많아 살이 찌지 않는다. 지방도 허벅지근육에 저장되기 때문에 뱃살 기름기가 빠진다. 한마디로 굵은 허벅지는 금벅지, 철벅지, 꿀벅지라고 말할 수 있다.
볼록한 엉덩이와 굵은 허벅지는 폭발적인 순간에너지를 분출하는 진앙지다. 그곳에서 힘과 스피드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육상 단거리선수나 역도선수의 근육은 찐빵처럼 울퉁불퉁하다. 허벅지도 다른 어느 종목 선수보다 우람하다.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도 마찬가지다.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이나 경륜선수도 똑같다. 색깔이 흰 속근(速筋)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다. 현재 육상 남자 100m, 200m, 400m 계주 세계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허벅지 둘레는 무려 30인치나 된다. 흑인 특유의 볼록한 엉덩이근육도 볼만하다. 올림픽 역도 챔피언 장미란의 두 다리도 튼실하다. 그 두 다리로 몸의 중심을 잡는다. 허벅지 둘레가 28인치나 된다. 여자는 체지방이 많다. 근육을 만들려면 남자보다 2배는 더 힘들다. 여자들이 헬스장에서 죽어라 근육운동을 해도 알통조차 나오지 않는 이유다.
축구선수들의 허벅지도 알아줘야 한다. 대포알 같은 슛은 바로 허벅지근육에서 나온다. 강슛은 허벅지 앞쪽 근육인 대퇴사두근에서 발사된다. 대퇴사두근은 무릎을 힘차게 펼 때 쓴다. 점프했다 바닥에 닿을 때 무릎의 충격을 흡수하는 구실도 한다.
프로축구 수원삼성의 차범근 감독은 현역 시절 허벅지 둘레가 31인치나 됐다. 그는 이 허벅지로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고, 캐넌포 같은 강슛을 쏘아댔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이나 넣었다. 이동국도 만만치 않다. 28인치로 현역 선수 중에선 으뜸이다.
축구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는 허벅지 뒤쪽 근육인 햄스트링이다. 햄스트링은 킥 동작 때 순간 브레이크 기능을 한다. 제동을 걸어준다. 최근 박주영이 다친 곳도 바로 이 부위다. 박지성도 다친 적이 있다. 햄스트링은 조금만 쉬면 나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경기에 나가면 다시 통증이 온다. 허벅지 앞근육만 키웠다간 뒷근육인 햄스트링이 말썽을 부린다. 그뿐인가. 햄스트링은 종아리근육인 캘브스와도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캘브스와 균형이 맞지 않으면 햄스트링이 고장 나기 십상이다.
바벨을 드는 힘·대포알 슛의 원천
야구와 골프선수의 다리는 스윙할 때 중심축이 된다. 축이 흔들리면 공이 원하는 곳에 가지 않는다. 두 다리가 중심을 잡고 턱 버티고 있어야 맘먹은 대로 공이 나간다. 홈런타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허벅지 둘레가 이승엽 28인치, 최희섭 29인치, 김동주 30인치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골프의 박세리가 27인치인 것이나, 요즘 떠오르는 신지애가 이에 못지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한국 대표선수들의 평균 허벅지둘레는 남자가 23인치, 여자가 22인치다. 모태범은 26인치, 이상화가 23인치. 하지만 1만m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은 23인치로 여자 선수인 이상화와 비슷하다. 왜 그럴까. 그건 장거리선수의 근육은 지근(遲筋)이기 때문이다. 지근은 참나무처럼 단단한 붉은 근육이다. 굵지 않은 대신 오랫동안 에너지를 뿜어낸다. 육상 마라톤선수의 근육과 같다. 예를 들면 같은 사이클이지만 스피드를 겨루는 경륜선수와 장거리 도로 사이클선수의 근육은 완전히 다르다. 경륜선수의 허벅지 둘레는 거의 30인치(이희석 29.7인치, 이현재 29.6인치, 정성기 29.4인치)에 이른다. 하지만 ‘투르 드 프랑스’를 7번이나 연속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의 허벅지는 보통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아무리 굵어도 23인치를 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성인 남성의 허벅지 둘레는 20~21인치다.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약한 이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쉴 새 없이 뱅뱅 도는 쇼트트랙선수들의 허벅지 둘레는 얼마나 될까. 이정수 20.7인치, 이호석 22.2인치, 성시백 21.5인치, 이은별 20.2인치, 박승희 22.2인치, 조해리 20.4인치로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 순간 스피드보다는 코너워크와 지구력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거꾸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단거리 500m에서 약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멀티플레이어보다는 단거리 전문선수를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걷기·등산 등 가볍게 꾸준히 하는 게 비결
스쾃(squat)이라는 게 있다. 이상화가 170kg 바벨을 들고 한 운동이다. ① 상체를 세우고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한다. ② 엉덩이를 뒤로 오리처럼 내밀고 무릎과 허벅지를 90도로 만든다. ③ 다리를 구부려 앉았다 섰다 반복한다. 엉덩이를 충분히 뒤로 빼서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지 않게 해야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 운동은 이상화처럼 어깨에 무거운 바벨을 얹어놓고 할 수도 있지만 욕심내다가는 큰일 난다. 자신의 근육능력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런지(lunge)도 있다. 보폭의 2배만큼 양발을 앞뒤로 충분히 벌린 상태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람 몸에는 206개의 뼈와 약 650개의 근육이 있다. 뼈는 발에 25%(26개씩 52개)가 몰려 있으며 갈비(좌우 12쌍), 머리(23개), 목(7개) 등에도 있다. 근육은 골격근, 창자벽 등에 있는 내장근, 평생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심장근으로 이뤄진다. 골격근은 뼈에 붙어 우리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며, 근육의 대부분(약 620개)을 차지한다. 우리 뜻대로 할 수 있어 ‘맘대로근’이라고도 한다. 하체에는 인체 근육의 75%가 몰려 있다.
운동선수들은 뼈, 관절, 근육을 너무 많이 써서 빨리 늙는다. 근육운동은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날마다 하다간 큰일 난다. 근육에 따라 적게는 24시간, 길게는 48시간 쉬어야 한다. 근육을 심하게 사용한 뒤엔, 적어도 하루는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뼈, 관절, 근육을 잘 쓰지 않아서 쉽게 늙는다. 근육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35세 이후 해마다 0.5%씩 줄어드는 것은 똑같다.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 회사원이라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 허리 아픈 젊은 회사원들이 많은 것도 등, 배 근육 약화가 주된 원인이다. 그렇다고 허리보호대를 차면 요통은 더욱 심해진다. 남아 있던 근육마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팔다리가 가늘어진다. 대신 배가 나온다. 근육이 줄어 지방이 뱃살 밑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유산소운동은 내장근, 심장근을 튼튼하게 한다. 무산소운동은 골격근을 단련시키며, 골격근은 뼈를 자꾸 잡아당겨 골밀도를 높인다. 그리고 인대와 연골을 튼튼하게 한다.
웨이트 운동은 운동기구의 정확한 사용법을 익히는 게 최우선이다. 그 다음은 각 부위 근육에 어떤 운동이 좋은지 알아야 한다. 흔히 상복부 근육 강화운동으로 윗몸일으키기(sit up 혹은 clunch)를 많이 한다. 하지만 대부분 머리가 무릎에 닿도록 90도씩 꺾는다. 이것은 효과가 적다. 30도 정도 꺾어주면서 등이 판에 닿을 듯 말 듯 해야 배 위쪽 근육이 뻐근하다. 배 아래 근육 단련은 누워서 발을 30도 정도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전문지도자의 코칭이 필요한 이유다.
관절은 인대와 연골로 이뤄진다. 뼈와 뼈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로, 문과 문을 이어주는 경첩이나 마찬가지다. 어깨, 엉덩이, 무릎관절이 대표적이다. 뼈는 35세가 넘으면서부터 점점 골밀도가 떨어져 부석부석해지고 얇아진다. 한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 여성은 3명에 1명꼴로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 무릎관절은 몸무게가 5kg이 늘면 15kg으로 느낀다. 계단을 오를 때는 7배인 35kg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몸무게의 압력에 취약하다.
직장인 구보 씨 일상에서 체력 키우는 법
▷▶ AM 06:30
부위 얼굴, 팔
실시 간격 3~5분
실시 방법 누운 상태에서 손바닥을 비벼 열을 낸 뒤 귀와 얼굴, 팔 등을 마사지한다.
오전 6시 30분. 대기업 연구실에서 일하는 마흔 살의 구보 씨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어렵사리 잠을 쫓는다. 눈을 뜨자마자 움직이기보다 5분 정도 마사지를 한다. 손바닥을 비벼 열을 낸 뒤 귀와 얼굴, 팔의 순으로 가볍게 만져준다. 아침에 하는 마사지는 밤새 자고 있던 근육을 부드럽게 깨워주면서 생체리듬을 바르게 하고, 하루의 컨디션을 좋게 한다. 뇌에 맑은 피를 공급해줌으로써 두뇌회전을 빠르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잠을 깬 뒤 침대에서 전신 스트레칭을 10분 정도 한다. 이는 자는 동안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몸에 활력이 생기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 공복 상태에서 스트레칭을 하면 칼로리 소비능력을 향상시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식사 전 물 한 잔은 노폐물 제거에 탁월하다.
▷▶ AM 07:30 / 08:30
오전 7시 30분. 보통 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선다. 회사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최대한 도보로 이동하고 대중교통도 한가한 시간에만 타기로 한다. 전철역까지 거리는 1km 남짓. 보통 마을버스를 이용해 4정거장 정도를 가지만 속보로 전철역까지 간다. 속보는 발꿈치, 발바닥, 발끝이 순서대로 닿게 한다. 속보를 생활화하면 체중은 감소하고 유연성과 하체 및 둔부의 근육량은 증가한다. 심장과 관절도 좋아진다.
전철도 붐비는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한다. 계단은 발의 앞쪽 2분의 1 정도만 사용해 두 칸씩 오른다. 평상시 보통 걸음으로는 단련되지 않는 엉덩이 근육과 대퇴이두근을 단련시킨다. 또한 계단 오르내리기는 ‘힙업’의 지름길이다. 전철에 탑승해서도 되도록 자리에 앉지 않고 까치발로 서서 간다. 한쪽 다리는 살짝 들고 다른 한 다리는 까치발로 서 있는 자세를 반복한다.
이러한 자세는 비복근에 긴장을 줘 단련하는 효과가 있다. 비복근은 ‘제2의 심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중요 부위로 까치발은 근육 속 모세혈관이 수축, 확장하는 ‘밀킹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온몸의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며 말초혈관까지 흐르는 혈액을 심장에 되돌리는 펌프 작용을 한다. 발의 부기 방지에도 좋다. 오전 8시 30분. 평소보다 30분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층 몸이 가벼워진 구보 씨는 업무능력 향상을 다짐하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 녹차 한 잔을 마시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부위 종아리
실시 장소 전철 탑승 시/계단 오를 때
실시 방법 전철 탑승 후 발끝만을 이용해 서 있는다. 한 발씩 번갈아 까치발로 서 있는다. 계단 오를 때 발바닥 전체의 2분의 1 정도를 사용해 두 칸 이상 쭉쭉 스트레칭하며 오른다.
부위 목(좌우, 앞뒤)
실시 간격 각 동작 3~5초, 3회 반복
실시 방법 양손을 모아 턱 부위를 위로 밀어주며 스트레칭한다. 상체를 곧게 편 자세에서 한 손은 편하게 대퇴 위에 놓고, 반대 손으로 머리 옆 부분을 아래 방향으로 밀어주며 실시한다.
▷▶ AM 12:00
부위 앞뒤 허벅지, 엉덩이
실시 간격 좌우 교대로 10~20초, 2세트 반복
실시 방법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무릎을 구부리고 반대쪽 다리는 펴준다. 상체를 편 상태에서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가슴은 최대한 펴준다. 무릎이 발 앞부리를 벗어나지 않게 실시한다.
정오. 평소 자주 가는 회사 바로 앞 식당 대신 걸어서 왕복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을 선택했다. 점심은 고단백 저지방이며 부담스럽지 않은 두부요리. 식사를 맛있게 한 뒤 사무실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식사 후의 속보는 소화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며 천천히 걷는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바로 앉아 쉬기보다 벽을 이용해 ‘squat’이나 ‘런지(lunge)’ 같은 하체 근력운동을 하거나 어깨와 허리근육을 이완해줄 수 있는 벽 짚고 어깨누르기 스트레칭을 실행한다. 근육은 기초대사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근육이 운동으로 증가하면 기초대사량이 향상돼 지방이 연소하고 살찌기 어려운 몸으로 변화한다. 반대로 근육량이 줄어들면 기초대사량도 줄어들어 지방이 연소되지 않고 체내에 쌓인다.
▷▶ PM 03:00
졸음이 쏟아진다. 봄이 찾아오면 더욱 심해진다. 봄에는 일조량이 늘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몸의 근육이 이완돼 나른하다. 춘곤증을 이기지 못하면 만성피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의자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은 사무실 내 필수운동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직장인은 몸이 앞으로 기울어 등이 굽는 경향이 있다. 또한 지속적인 컴퓨터 작업 때문에 손과 팔이 굳어 어깨 통증까지 겪기 일쑤다. 등받이를 사용해 몸을 틀거나 발을 펴는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하면 기분전환과 근육이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부위 어깨
실시 간격 15초, 3회 반복
실시 방법 등받침 뒤로 양손을 잡고 어깨를 앞으로 민다는 느낌으로 팔을 뒤로 당겨준다.
부위 허벅지, 골반
실시 간격 15초, 3회 반복
실시 방법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후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에 올리고 가슴이 무릎에 닿도록 한다.
▷▶ PM 06:00
술자리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한다. 퇴근길은 출근길처럼 속보로 전철역까지 이동한다. 꽉 막힌 퇴근길 도로를 보니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전철역에서도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하는데, 하루 종일 피곤했던 근육을 늘려준다는 생각으로 보폭을 크게 해 스트레칭을 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전철에 탑승해서는 자리에 앉기보다 서서 다리를 움직이는 등 꾸준히 칼로리를 소모한다. 전철에서 내린 뒤에도 집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 PM 07:00
부위 복부, 엉덩이
실시 간격 좌우 교대로 10~20초, 2세트 반복
실시 방법 엎드려서 팔꿈치를 구부려 바닥에 지탱하고 양발은 교대로 올려준다. 이때 중심이 흐트러지면 안 되고, 둔부에 신경 쓰면서 실시한다.
부위 허리, 등
실시 간격 10~20초, 2세트 반복
실시 방법 엎드린 상태에서 깍지 낀 손을 허리 뒤에 살짝 갖다댄 후, 상체를 반동 없이 일으킨다. 상체를 지나치게 젖히면 과신전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에 맞춰 실시한다.
부위 복부
실시 간격 좌우 교대로 10~20초, 2세트 반복
실시 방법 양손은 깍지 껴 무릎 뒤를 잡고 양 발은 90도 정도 들어준다. 이때 상체는 무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부위 옆구리
실시 간격 좌우 교대로 10~20초, 2세트 반복
실시 방법 옆으로 팔꿈치를 90도가 되도록 하고 몸을 지탱한다.
엉덩이가 처지거나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세를 10~20초 유지한다.
집에 돌아온 구보 씨는 피곤하더라도 꼭 더운물로 샤워를 한다. 더운물 샤워는 지친 근육을 풀고 노폐물을 제거해 피부가 숨을 쉬도록 돕는다. 과식하지 않을 정도의 식사를 하고 TV 시청을 한다. 이때 소파나 바닥에 눕는 대신 인체의 중심인 허리와 엉덩이, 복근 등 코어(core) 운동을 하면서 즐긴다. 눕거나 팔을 괴고 휴식을 취하는 자세는 척추뼈 사이에서부터 골반, 고관절, 허벅지, 종아리로 연결되는 신경다발의 근육 눌림에 의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 PM 11:00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모든 일은 처음과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 자기 전에는 근육에 무리가 가는 운동보다 스트레칭을 해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혈액과 림프액의 흐름이 원활해져 냉증과 부기를 해소하고 숙면을 취하게 된다. 숙면을 하면 피부세포나 근육의 합성이 촉진돼 다음 날 신진대사량 또한 높아진다. 하체 부기 방지나 원만한 혈액순환을 위해 쿠션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방법도 좋다. 구보 씨의 내일은 오늘보다 가벼울 것이다.
이러한 ‘틈새 운동’을 통해 일상생활 틈틈이 하는 운동이 습관이 되면, 몸도 건강해지고 생활에도 활력이 넘친다. 구보 씨처럼 노력한다면 별도로 운동시간을 내지 않아도 하루 중 3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운동에 할애할 수 있다(표 참조). 생활 속 ‘틈새 운동’을 통해 몇 달 후 변해 있을 자신의 모습, 벌써 기대되지 않는가?
부위 발목
실시 간격 30초간 반복
실시 방법 발목을 반대쪽 무릎에 올리고 천천히 돌려가며 스트레칭한다.
부위 허리, 어깨
실시 간격 30초간 반복
실시 방법 고양이 자세로 등의 근육을 늘려준 뒤 가슴이 바닥에 닿는 느낌으로 어깨를 이완시킨다. 두 동작 연속 반복한다.
어린 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뛰고 달리고 … 국민체육진흥공단 노력도 한몫
“자, 스키 타듯이 뒤로 팔을 쭉쭉.”
3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김재현 생활체육지도자가 구령을 외치자 노인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교실 크기의 강당은 생활체조를 하려는 40여 명의 노인으로 만원인 상태.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문밖에서 고개만 들이민 채 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경쾌한 에어로빅 음악에 맞춰 각자 힘차게 팔을 뻗어보지만, 세월의 무색함만 느낄 뿐. 팔을 뻗는 방향도 제각각, 간단한 움직임조차 따라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배우려는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어디든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
이날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는 노인 대상 생활체조 수업이 있었다. 서울 종로구 생활체육회에서 운영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의 일환. 수업을 진행한 김재현 씨는 ‘어르신 전담’ 생활체육지도자다. 일반인 생활체육지도자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층대의 사람을 가르친다면, ‘어르신 전담’ 생활체육지도자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교육을 담당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인구에 대한 생활체육 지도가 중요한 사업으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생활체육회의 생활체육 프로그램은 생활체육지도자가 직접 찾아가 가르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학교든 양로원이든 생활체육 수요자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서울 종로구 생활체육회 김선희 팀장은 “생활체조를 꾸준하게 하면 치매도 예방돼 노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체조는 잠시도 쉬지 않고 40분간 이어졌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자 가쁜 숨이 절로 나왔다. 일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당을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노인은 훌륭히 운동을 끝마쳤다. 4년 전부터 스트레칭, 건강체조 등 생활체육을 했다는 이한풍(74) 씨는 “생활체육을 한 뒤로 고질병처럼 따라다녔던 무릎관절 통증과 오십견이 사라졌다”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몸이 안 좋으면 마음도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제가 건강하게 체력을 유지하는 것은 전부 생활체육 덕분입니다. 삶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씨의 사례에서 보듯 생활체육은 일상생활 속에서 운동을 통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신체활동이다. 생활체육의 기본 철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sport for all)’다. 즉 전문적인 운동선수만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자유롭게 운동을 즐기는 것.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생활체육이 모든 체육활동의 근간이 될 정도로 보편화했다. 이들 나라에선 생활체육 활동 중 소질이 있는 사람을 선별해 엘리트로 키운다.
한국에서 생활체육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겨우 5~6년 전부터다. 운동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했지만, 식생활이 육식 위주로 구성되고 생활패턴이 정적으로 변하면서 국민체력은 오히려 떨어진 상태. 그 대안으로 생활체육이 부상했다. 스포츠생리학적으로 인체는 신체활동 등 외부자극에 영향을 받으면 그것이 약 48시간 지속된다. 따라서 최소 일주일에 3회 이상 생활 주변에서 간단한 체육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 부족 해소, 심리적·생리적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소득 증가와 주 5일 근무 정착에 힘입어 생활체육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08 체육백서’에 따르면 2008년 생활체육 참여율은 46.8%. 2003년 77.5%와 2006년 71.3%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고용 불안과 실업률 증가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생활체육 확대 추세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실제 2000년 이후 월 2~3회와 주 1회 이하의 참여율은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주 2~3회, 주 4~5회, 주 6회 참여율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최소 주 2~3회 체육활동에 참여해야 건강 증진 효과가 있다는 인식 확대와 체육활동 일상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보는 체육에서 직접 하는 체육으로
이를 반영하듯 정부에서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하자’는 ‘스포츠 7330’ 캠페인을 앞세워 생활체육 활성화를 핵심과제로 추진 중이다. 그 결과 어렵지 않게 생활 주변에서 생활체육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평소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 혹은 비용 문제 때문에 선뜻 나설 용기가 없었다면, 일단 자신이 머무르는 시·도 혹은 구 생활체육회에 전화를 걸면 된다. 서울은 종로구 외에도 구별로 생활체육회가 조직돼 있다. 각 시·도에는 생활체육회가 있고 이를 종합 관리하는 국민생활체육회가 있다. 일단 전화를 걸면 해당 생활체육회는 운동하기 가장 가까운 지역이 어디이며, 하고 싶은 운동종목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이후 지정된 장소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을 하면 된다.
지역주민이 마을 단위에서 쉽게 생활체육에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광장도 있다. 2008년 12월 말 현재 전국 520개소에 생활체육광장 지도자가 배치돼, 매일 아침 6~7시 전후로 3월부터 12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운영한다. 생활체육광장의 기본 프로그램은 참여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태껸, 스트레칭, 민속생활체조 등 준비체조와 배드민턴, 게이트볼 등 선택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이 밖에 어린이체능교실, 청소년체련교실, 장수체육대학, 레크리에이션교실 등 다양한 생활체육교실이 운영 중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체력 향상 외에도 “저소득층에게 비만이 많고, 체력 약화가 두드러진다”는 말로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먹고살 만한 형편의 사람들은 스스로 건강을 돌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저소득층은 자녀들의 체력과 운동을 신경 쓰지 못합니다. 체력 문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시급한 당면과제인 셈입니다.”
생활체육은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삼지만, 특히 어린 학생들을 주목한다. 어렸을 때 익힌 운동습관이 평생을 가기 때문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아이 때부터 두세 가지 생활체육을 배웁니다. 한국에서는 술 마시고, 스트레스 받고 몸이 망가진 뒤에야 생활체육에 관심을 가지죠. 하지만 이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체육은 평소에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김선희 팀장의 말처럼 구별 생활체육회에서는 방과 후 수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생활체육을 가르친다. 배드민턴, 농구, 음악줄넘기 등이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생활체육이다. 무료로 수업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재량활동 시간이라는 명목으로 정규수업에 포함시킬 정도.
체육 인프라 확충·프로그램 개발
정부의 생활체육 확대정책에 발맞춰 공단은 생활체육의 일선에서 체육 인프라 확충에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1차적으로 전국 234개 시·군·구에 최신 공공체육시설인 국민체육센터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 잔디 운동장과 우레탄 트랙을 설치하고, 체육관을 건립해 학생은 물론 인근 주민도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게 지원한다. 현재 국민 1인당 생활체육시설 면적은 2.38㎡ 정도에 불과한데, 이 수치를 적정 수준인 5.7㎡까지 높일 예정이다.
기존의 생활체육 인프라 이용에 적합하고 학생·노인 등 각 연령대에 맞는 생활체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결합 형태인 선진국형 스포츠클럽 운영, 각종 생활체육 프로그램 및 생활체육 교실 등을 지원해 생활체육의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데도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 특히 2010년에는 전 국민의 체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국민체력인증제를 도입된다.
예산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국민체육센터 건립에 409억 원, 운동장 생활체육 시설 건립에 490억 원 등 생활체육시설 확충에 총 1118억을 지원한다. 시설과는 별도로 생활체육의 수준 제고를 위해 생활체육 프로그램 지원에 약 200억 원, 생활체육지도자 지원에 207억 원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2009년부터 실시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의 스포츠복지 사업인 스포츠바우처 사업에 대한 지원을 30억 원으로 늘려 수혜대상을 점차 증원할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하지만 생활체육이 진정으로 국민의 생활 속에 자리 잡으려면 시설 투자와 함께 생활체육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와 정책·프로그램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단 관계자는 “공단의 힘만으로는 생활체육 활성화를 이끄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료 및 스포츠용품 지원 … 태권도 최고 인기
기초생활수급가구 유소년 및 청소년(만 7~19세)이 대상이며, 스포츠시설 이용 시 강좌 이용료 및 용품 구입비를 지원한다. 스포츠시설 강좌 이용료는 매달 1인당 6만원 이내, 용품 구입비는 연간 6만 5000원 이내에서 지원 가능하다.
스포츠바우처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거주하고 있는 기초지자체의 시·군·구청에서 스포츠바우처를 신청한다. 지원자로 선정된 뒤에는 공단 홈페이지(www.kspo.or.kr)에서 이용 가능 시설의 스포츠 강좌 및 스포츠용품 정보를 선택해 체육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스포츠바우처 사업 실시 첫해인 2009년에만 약 9200명의 유소년과 청소년이 태권도, 수영, 축구, 테니스 등 20여 개 종목에 걸쳐 혜택을 봤다. 종목별로는 태권도 강습을 이용한 청소년이 372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수영(3556명), 체육도장, 헬스, 검도 순이었다.
공단 관계자는 “스포츠바우처를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도 직접 스포츠를 즐기게 됐다. 스포츠를 통해 사회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며 “장기적으로 청소년은 물론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으로 수혜 범위를 넓혀 스포츠복지의 폭과 질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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