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본 경제의 쇠퇴 현상, 한국 경제에 경고등

醉月 2010. 4. 26. 08:58

일본 경제의 쇠퇴 현상, 한국 경제에 경고등


이지평│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신동아’가 각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물을 검토해 선정한 이달의 보고서는 LG경제연구원이 2월말 발표한 ‘일본 경제의 쇠퇴현상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다. 도요타자동차의 대량리콜 사태로 인한 고품질 신화의 붕괴, 만성적인 저성장, 인구 감소로 인한 시장 축소 등 일본 경제가 당면한 여러 어려움을 분석하고, 이러한 상황이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꼼꼼히 분석한 보고서다. 필자는 한국에서도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저성장 압력이 본격화하기 전에 생활기반의 확충과 탈공업화 준비가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필자와 연구원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던 도요타자동차가 품질 불량 문제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일본 대표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일본 경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의 지위도 이미 중국에 넘어갔거나 조만간에 넘어갈 전망이다.

이와 같은 일본 경제의 위상 하락은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라 선진국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해서도 일본 경제의 하락은 급격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대두된 일본 몰락론은 미·일 패권 경쟁에서 탈락하는 일본의 상황이 대상이 되었던 데 반해 최근에는 일본 경제가 쇠락의 길로 빠질 것인지(NDC·New Declining Country, 신쇠퇴국)가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일본 경제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금융부문의 건실함이 부각되었으며, 1990년대 장기불황과 같은 금융과 실물경제의 복합 불황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5%를 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경제는 올해 1% 이상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상장기업의 영업이익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 그린기술, 우주기술, 부품·소재 분야 등에서는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일본 기업도 많다. 우리나라는 작년에도 276억달러를 넘는 대일(對日)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잠재력에도 일본 경제 및 일본 기업이 고전하는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버블 붕괴에 따른 장기불황을 극복한 일본 경제지만 만성적인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성장의 장기화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던 일본 기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 기업은 1인당 소득수준이 3만달러를 넘는 1억27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높은 품질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일본 기업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내수시장이 계속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 이후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문제에 시달리면서 저성장을 면치 못하자 일본 기업도 신흥시장 개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용 절감 요구가 강해지고 품질 저하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된 일본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은 과거와 달리 해외 부품 조달을 늘리면서 가격절감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다운그레이드(Down Grade) 전략은 기존의 과잉품질을 과소품질로 전락시켜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약점의 지속, 강점의 약화

일본 기업은 브릭스(BRICs) 등 신흥시장의 기회를 선점하지 못했고 1990년대 이후 반도체, LCD 산업 등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했다. 일본 기업은 현장기술력에 강했지만 리스크가 큰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는 못했으며 한국, 대만 기업의 부상으로 산업의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주력하면서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을 강화하긴 했지만 구미 기업과 같은 창조형 리더를 육성하고 이들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결과 단기수익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지면서 장기적인 안목의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현장의 기술적 강점으로 일본 기업들이 부품 및 소재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강점을 산업 전반의 고수익 확보로 연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은 세계 휴대전화용 중소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50%를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한편 각종 부품에서도 선도적인 지위에 있으나 정작 휴대전화 점유율 자체는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수익도 글로벌 휴대전화업체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수 처리용 분리막에서도 일본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0%에 달하지만 수 처리 산업의 핵심인 수도사업이나 플랜트 분야는 구미 기업이 장악해 이들이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같은 부품 분야의 강자인 인텔의 경우를 보면 일본 전자업체에 비해 기술특허 건수가 훨씬 적지만 PC의 핵심부품인 MPU(중앙연산처리장치) 기술우위를 활용하는 전략경영으로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인텔은 MPU와 함께 이를 연결하는 PCI(Peripheral Component Intercon-nect) 기술을 개발해 이들을 블랙박스로 숨기는 한편, 연결하는 규격과 마더보드 기술은 공개해 대만기업들이 저렴한 코스트로 마더보드를 경쟁적으로 생산하도록 했다. 이렇게 연합세력을 구축해 비밀기술로 보호된 MPU에 대한 의존도와 수익성이 높아지도록 유도한 것이다.

핵심 기술은 비즈니스 모델의 구상 능력이나 보급화 전략의 성과에 따라서 업계를 좌우할 수 있는 스위트스폿(Sweet Spot·고수익 창출 가능 포인트)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기업의 경우 인텔과 같이 자사의 핵심 기술을 스위트스폿이 되도록 유도하는 비즈니스 구상력이 미약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2000년대 들어서 일본 기업은 임금 수준이 낮은 비정규직의 활용, 정규직의 임금 억제, 각종 경비 및 낭비 제거 등의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개선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현장의 기술적 강점을 약화시킨 요인이 되었다.

그간 일본 기업이 보유한 현장기술의 강점은 청소부를 포함해서 일선 직원을 망라한 강한 참여의식 속에서 꾸준한 개선활동을 실시하는 조직 능력에 뒷받침되었다. 따라서 현장에서 이러한 일체감이 떨어지면 현장 기술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도요타의 품질 불량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에도 2000년대 들어서 일본 제품의 품질 저하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도요타는 매년 200만대 이상의 리콜을 실시해왔으며, 파나소닉, 소니, 샤프 등의 거대 전자업체들도 제품불량 문제로 막대한 대책비를 사용해왔다.

 

쇠퇴기의 시작?

제조업은 일본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원동력이었으므로 최근 품질문제 등으로 인해 일본 제조업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일본 경제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20% 수준으로 선진국 중에서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도 독일과 달리 세계시장 수출 비중은 급락세를 보여왔다. 독일의 경우는 10% 전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일본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1993년에 10%대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하락세를 보이면서 2009년에는 4%대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경우 유럽연합(EU) 등 지역통합의 효과를 살린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일본은 지역 분업 전략이나 글로벌 통상 전략이 부진했다. 일본의 수출 점유율 하락세는 오히려 제조업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된 미국과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추격이 일본의 수출시장 점유율 하락을 촉진해 일본은 동아시아와 공생적이고 확대 지향적인 분업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이후의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엔저(低) 유도 및 초저금리 정책을 통해 기존 제조업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모노즈쿠리(고품질 제조 능력)’ 전략에 매진했으나 이러한 전략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기 이후 단기적 정책 과제에 치중하면서 인구고령화 등 중장기적인 과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경제구조의 성숙화에 역행해 저부가가치 제조업까지 유지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경제가 전반적으로 쇠퇴 압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일본 경제 쇠퇴 현상의 배경에는 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1995년 이후의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 감소, 2005년 이후의 총인구 감소 여파로 경제 및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는 고령자나 여성 취업률이 크게 상승하지 못할 경우 취업자 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생산활동 위축, 소득 감소, 소비시장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식품, 의류, 유아 및 아동용품 등 일본의 각종 소비시장 규모는 인구 감소에 따라 축소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60~64세의 취업률이 2030년까지 55~59세 수준으로 상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취업자 수는 앞으로 뚜렷하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취업자 수는 2008년에 비해 2020년에는 373만명, 2030년에는 710만명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올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구의 동태적인 변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및 문명의 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세계사적으로 봐도 인구 감소 현상은 국가의 쇠퇴기에 나타났다는 역사를 고려하면 일본 경제의 쇠퇴 압력을 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선진국의 역사를 보면 경제 및 사회 여건의 변화에 따라 국가 전략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면서 대응해왔는데, 일본의 경우는 개발 위주의 초기 경제성장 모델을 탈피하지 못한 채 점차 활력을 상실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성장의 성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임금도 상승하게 되면 후발국의 추격이 강해지고 상대적인 성장력이나 기존 분야의 경쟁력이 약화되기 쉽다. 문제는 이러한 성숙화 시기에 절대적인 경제력의 약화나 삶의 질 하락을 막고 경제의 몰락을 피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혁에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시스템 개혁의 실패

과거 영국의 경우 초기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섬유 등의 제조업 중심 구조에서 점차 해외투자, 금융산업의 비중을 높여갔다. 미국의 경우 방대한 내수시장을 보호하는 고립주의적 국가전략이 대공황 전후에 한계에 직면하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면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으로 선회, 세계무역 자유화를 추진해 1950년대 이후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에 발생한 자산 버블 붕괴 현상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개혁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 후에도 근본적인 국가 개혁이 미진했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국가전략을 재구축하는 데 기득권층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구 자민당 주도의 정·관·재 유착시스템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기득권층의 변화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이고 경영부실이 극에 달했는데도 구 자민당 정권하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미룬 일본항공(JAL)의 부실화는 이러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1990년대 초반에 일시적으로 자민당이 하야해 개혁 기운이 고조되었으나 반(反) 자민당연립내각이 붕괴됨으로써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해 개혁 추진력은 다시 약화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고이즈미 내각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개혁에 나섰으나 200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자체가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일본은 개혁의 방향감을 상실한 측면도 있다. 30년 전에 등장한 영국 대처 총리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개혁은 빈부격차의 심화, 인적자본의 확충 부진, 자산버블의 만성화와 금융산업의 부실화 등 여러 가지 폐해를 낳고 영국에서도 새로운 개혁 방향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어려움은 늦게 시작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기업의 투자 활성화라는 성과는 미진한 채 오히려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경제적 활력을 떨어뜨리는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추진된 일본의 각종 개혁은 그랜드 디자인 없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했으며, 개혁 방향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도 컸기 때문에 일관된 리더십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는 힘이 약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기능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재정지출에 의한 경제부양 효과도 부진했다. 도시에서 지방으로의 소득이전 효과를 수반한 공공투자 위주의 경제부양 정책이 고도성장의 마감과 함께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기존의 정책과 재정 지출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건설산업의 과잉공급이 초래됨으로써 산업구조 조정의 부담은 더 커졌다. 정부의 누적채무가 명목 GDP의 약 2배에 달하는 재정불안은 앞으로 인구고령화로 일본인의 저축능력이 떨어지면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2000년대 들어서 공공투자 삭감에 노력하고 있으나 지방경제 등에 대한 새로운 내수부양 정책 경로를 개발하지 못해 내수부진이 만성화하는 폐해가 발생했다.

   

일본 기업은 그동안 전반적으로 구미식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접목하는 일본 기업의 경영혁신은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이지만, 모노즈쿠리 전략이 구미 글로벌 기업과 같은 뛰어난 차별성과 고수익성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일본 기업은 그동안 종업원의 급여나 복리후생 지출을 삭감하고 배당금을 크게 늘리는 주주 배려 경영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구미 기업의 ‘전략창조형 리더(조직의 조정이나 일상업무뿐 아니라 전략적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리더)’를 양성하고 글로벌 경쟁의 심화 속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다.

종업원 급여의 억제에도 일본 기업의 현장 주도형 기술·기능 경쟁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왔으나 그것도 최근 불거진 일본 기업의 품질 문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계를 보이는 모습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에 버금가는 상대적 빈곤층을 가질 정도로 사회적 격차가 심화된 상황이다. 과거와 같이 대다수 국민의 중산층 의식을 기반으로 한 기업 현장에서의 헌신적인 개선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어려운 실정이다.

기존 강점 고집하다보니

일본 경제는 고도성장기를 거쳐서 중화학공업화를 이루고, 자동차·전기전자 등의 가공조립형 제조업의 글로벌화 등에 성공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면서 경제를 활성화해왔으나 이러한 산업구조 고도화의 역동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화가 미진했던 데다 제조업의 경우도 그동안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엔고(高)를 극복해왔던 성장 패턴이 2000년대 이후 후퇴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일본 산업은 엔고를 극복하면서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해 엔고에 따른 소득 향상 및 금융 파워를 활용해왔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러한 성공 패턴이 붕괴된 것이다. 200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엔저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도 일본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1970년대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일본은 고품질의 제품을 제조하겠다는 ‘모노즈쿠리’라는,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강점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채택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서는 신흥국과의 경쟁 속에서 끝없는 가격경쟁, 임금억제 경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일본의 성숙한 경제 수준, 인구의 감소 등을 고려하면 제조업의 경우도 고도의 서비스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이나 일본 산업은 미국 애플이 아이팟을 성공시킨 바와 같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결합 비즈니스 등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제 및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산업구조가 단순히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포터 등의 경영학자들은 쇠퇴기업은 있어도 쇠퇴산업은 없으며 고전적인 제조분야에서도 선진국의 우량기업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와 산업의 큰 흐름이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업은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애플이나 인텔, 델 등 미국의 우량 제조업체도 그 중심적인 기능은 서비스업이나 지식집약적인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즉 제조업이나 산업을 기능 측면에서 나누어 보면 기업은 역시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과 같은 시대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 기업은 과거의 강점에 집착하는 나머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산업계는 그동안 젊은 층의 제조업 기피 현상,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의 퇴색 등을 비판하며 과거 근면 성실의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산업사회의 논리를 가지고 시민사회를 바꾸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기업이나 산업계는 시민사회의 변화에 순응해 자기 스스로 변해야 했다.

 

일본의 ‘의료붕괴’문제
최근 일본에서는 서비스업 경시와 잦은 의료 소송의 부작용 때문에 병원 등 의료산업의 기반이 약화되는 소위 ‘의료 붕괴’ 현상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9명으로 프랑스 3.37명, 독일 3.5명보다 크게 낮다. OECD 회원국 중에서는 멕시코, 한국, 터키에 이어 4번째로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의료 붕괴’라는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바와 같이 소아과, 산부인과가 부족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방에서는 대학병원에서도 긴급의료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고, 병원 폐업, 긴급 환자의 진료 거부 및 사망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탁아소 서비스의 부진, 고령자를 위한 개호 시설의 부족 등 고령사회로 수요가 늘어나는 서비스에 대한 공급체제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실정이다.
이러한 서비스업에서의 투자 부진 및 생산성 향상 부진, 서비스의 질 저하는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서 일본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발생시키고 있다.

   

제조업에 치중해 엔저 유도와 모노즈쿠리에 매진하는 일본의 전략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인구의 감소 및 고령 사회 대비를 어렵게 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생산요소의 하나인 노동력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개도국에서 본업이 되어야 할 저부가가치 제조 분야에까지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제조업의 상당 부분은 교역을 통해 해외에서 조달할 수 있으나 서비스업 중에서는 해외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분야도 많다. 이들 분야의 공급 구조를 확충하지 못하면 공급 애로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 경제가 인구구조나 세계 경제 및 국제 분업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성숙한 경제성장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을 밑도는 낮은 출산율로 인해 향후 급격한 인구고령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생산연령인구의 감소→경제활동 및 소비시장 위축→고용 환경 악화→생활 기반 악화→저출산 심화에 이르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던지는 의미

그동안의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충격으로 가계의 고령화, 가구 수의 증가세 둔화 및 감소가 예상되며, 각종 소비시장에도 앞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가구 수와 가구주의 연령구조 전망을 기초로 향후 소비패턴의 변화를 예상해보면 2015년까지는 교육 지출의 성장 정체 효과가 두드러지겠지만 다른 분야도 자동차 등의 내구소비재를 비롯해서 시장위축 효과가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본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복지 지출과 출산율이 최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과 같이 저복지·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반면, 유럽 선진국의 경우 가정의 출산 활동을 지원하는 등 복지기반을 강화해 출산율을 회복했다. 사실 일본도 하토야마 내각 등장 이후 그동안의 정부 재정지출 전략을 크게 수정해 자녀수당을 확충하는 등 생활자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공급자를 지원해 이들의 생산활동을 유도하면서 고용을 신장시켜서 가계의 소비를 유도하는 기존의 정책보다 가계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해서 결과적으로 기업 활동을 부양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저복지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백인의 출산율은 낮지만 이민 유입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매우 개방적인 이민유입정책을 펴지 않는 한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는 생활의 안정기반을 어느 정도 담보해줄 수 있는 복지지출의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중간소득의 40% 이하 소득계층)은 재정지원 이후 기준으로 9.8%로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며, 최근 소득격차 문제가 심하게 비판받고 있는 일본의 9.5%보다 열악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정부의 복지 지출을 감안하기 이전 상황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 빈곤율은 주요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낮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에 의한 소득 재분배를 통해 빈곤문제를 억제하는 정도가 대단히 낮다.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글로벌 경쟁의 격화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방향에서 기업 차원의 임금격차가 계속 확대될 경우 빈곤문제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일본도 비정규직 등 임금수준이 낮은 근로자의 소득을 정부가 보조하는 최저소득보장(Basic Income) 제도나 이들에 대한 실무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빈곤층 지원을 중심으로 한 사회보장보다 근로자를 포함해 빈곤층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된 사회보장 시스템이 결과적으로는 재정 부담이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과 같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지식기반경제화로 가는 산업발전 흐름을 보여왔다. 설비투자 주도 경제로서 지식기반보다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형태의 산업 발전 패턴을 보였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노동시간이 길고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이 낮다는 특징도 있다. IT 분야의 경우도 인프라나 장비 위주의 성장을 보여왔으며, 지식기반 서비스 부문이 제조업에 비해 글로벌 경쟁력이 낮다고 할 수 있다.

   

 

탈공업화 사회에 대비하라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탈공업화 사회에 대한 대비가 미비하다. 게다가 일본에 비해 공업화 사회의 성숙도 측면에서 뒤떨어져 있다. 부품 및 소재 분야의 대일(對日) 의존 구조가 여전하며, 자체적인 이노베이션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 기업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 LED조명, LCD TV 등 나름대로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창조해낸 주역이었던 데 반해 한국 산업은 이와 같은 수준의 이노베이션을 성공시킨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앞으로 부품·소재 등 기반 산업의 경쟁력, 기술력을 높이면서 탈공업화 시대에 맞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경쟁력, 전략구상 능력 등을 동시에 제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일본 기업과 달리 전략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 기업의 폐쇄성, 자국 기업끼리의 수직적인 분업 우선 관행과 달리 한국 기업의 글로벌한 유연성도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탈공업화시대에는 단순한 지시로 관리하거나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식근로자의 자발적인 능력에 뒷받침된다고 볼 때 이러한 인재를 확보·육성하기 위한 선진화된 생활기반, 평생 교육기반, 지식 인프라의 정비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미래과제를 선행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1%대의 낮은 성장세로 전락해 앞으로의 경제 및 사회개혁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가 일정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시점에서 선행적으로 미래 과제의 해결에 나선다면 일본과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늪에 빠지기 전에

저출산과 경제쇠퇴의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기업의 고용창출력을 유지·강화하면서, 아울러 생활기반, 지적인프라 기반을 정비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일본처럼 저성장에 빠지고 나서 분배정책 위주로 생활 및 인적자원 기반의 강화에 주력해야 할 어려운 상황이 되기 전에, 성장잠재력을 유지하면서 사람이나 지식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가 미미하다. 일본 같은 부분적인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성숙한 경제수준에 맞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결혼, 출산, 교육, 노후 등에서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생활자 위주의 정책이 산업경쟁력 제고와 연결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고도성장기를 뒷받침했던 개발형 캐치업(catch up) 시스템에서 성숙한 경제사회 시스템으로의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정경유착에 기초를 둔 기존 시스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혁의 그랜드 디자인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의 모순이 나타나는 초기에는 경제적 활력이 유지되고 있어 개혁의 추진력이 미약한 데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탈공업화 사회를 위한 개혁에서 일본의 실패 경험을 교훈 삼자면, 기존 산업이나 사업에 집착하기보다는 글로벌 시각에서 산업혁신 흐름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대신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신흥국과의 교역 및 해외공장 운영을 통해 신흥국의 성장파급 효과와 부가가치를 흡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흥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력, 경영능력, 핵심 부품·장비·소재 경쟁력, 소프트웨어 능력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경우 공업화시대의 획일적인 사고에 입각한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로운 발상과 감성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통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업화시대가 감정이 없는 합리적인 전문가에 뒷받침된 구조였다면, 탈공업화시대는 소비자와 사회의 감성에 공감하고 시대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고객과 함께 고객가치를 협창(協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식근로자에 뒷받침되는 인재강국을 만들기 위해서도 선진화된 생활기반의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