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자신을 세운 사람_04

醉月 2008. 9. 2. 08:09

審   埋   腐   肉

 (자세히 살필-심↗)     (묻을-매→)             (썩을-부↗)              (고기-육↓)

秀   章   悲   閨

 (빼어날-수↘)         (글/도장-장→)           (슬플-비→)              (안방-규→)

 

살펴보아 썩은 고기를 묻어버리고 / 빼어난 문장이 안방에서 슬퍼한다

 여사서(女四書)에는 인조때 영의정이었던 홍서봉의 모친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평소 가난한 살림살이였는데,

어느 날 하인에게 고기 한 점을 사오게 했다. 고기가 상해 있었기에 은비녀를 팔아 그 고기를 모두 사와 땅에 묻었다.

이는 다른 사람이 먹고 죽을까 그랬던 것이다.

 

허난설헌(1563~1589 본명은 초희)은 허균의 누이로서 8살 때부터 멋진 시를 지은 여신동이였다.

문장력이 당대 어떤 선비보다 뛰어났으나 15세 때 결혼, 뛰어난 재능에 남편의 질시를 받는 안방생활을 하였다.

연이은 친정집의 불행과 쓰이지 않는 문장력에 2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裸   手   捧   爐

 (벗을-나↗)            (손-수↗)                (받들-봉↗)            (화로-로→)

訴   壞   闕   門

 (아뢸-소↘)          (무너질-괴↘)       (대궐/빼먹을/빠질-궐↓)         (문-문→)

 

맨 손이 화로를 받들고 / 궐문을 부서 아뢴다

 박태보 자는 사원. 호는 정재. 시호는 문렬. 봉로관직을 맡을 때 숙종이 종묘에서 제사를 올리자

박태보는 향로를 받들 때 물수건이 아닌 맨손으로 들어올렸다. 손바닥이 타 들어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아 임금이 놀랬다.

훗날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쫓을 때 임금을 결사적으로 말리다 단근질 등 갖은 참혹한 형벌을 받고 귀향가던 도중 형벌의 휴유증으로 죽었다. 죽은 곳은 노량 물가, 바로 사육신 묘 근처였다. 경상도 학산 충렬사에 사육신과 함께 모셔져 있다.

 

신명인 호 구봉.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와 많은 선비가 옥에 갇히자,

성균관 유생 천여명을 이끌고 대궐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상소문을 폭풍처럼 써 내려갔다.

그러나 수문장이 상소문을 전하려 하지 않자 유생들이 대궐로 난입하니 궐문이 부셔졌다.

망건이 부서지고 머리가 풀어진 유생들이 다친 몸으로 대궐 뜰에서 통곡을 하였다.

이에 놀란 중종이 주동자를 잡아 가두라 하자 유생들은 저마다 내가 주동자라 나섰다.

감옥이 모자라 옥밖에 수백명의 목을 엮어 놓았다가 3일 뒤 풀어주었다.

기어이 조광조가 죽자 신명익은 벼슬할 것을 포기하였다.

후에 기묘팔현(기준, 김식, 김정, 정광필, 조광조, 안당, 신명인, 이장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응용한자

심사(審査) 심의(審議) 심찰(審察) 심판(審判)

매몰(埋沒) 매장(埋藏) 매장(埋葬)

부식(腐蝕) 부패(腐敗) 부심(腐心) 부형(腐刑)

육안(肉眼) 육친(肉親) 육회(肉膾) 혈육(血肉)

수려(秀麗) 수영(秀英) 수재(秀才) 준수(俊秀)

악장(樂章) 인장(印章) 훈장(勳章) 휘장(徽章)

비관(悲觀) 비극(悲劇) 비분(悲憤)

규방(閨房) 규수(閨秀) 공규(空閨)

나체(裸體) 나신(裸身) 적나라(赤裸裸)

수갑(手匣) 수완(手腕) 수배(手配) 기수(旗手)

봉납(捧納) 봉상(捧上)

난로(煖爐) 화로(火爐) 노변담화(爐邊談話)

소송(訴訟) 공소(公訴) 호소(呼訴) 상소(上訴)

괴멸(壞滅) 파괴(破壞)

대궐(大闕) 궐석(闕席)

문호(門戶) 문하생(門下生) 문외한(門外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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