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자신을 세운 사람_03

醉月 2008. 9. 1. 08:13

魚   咬   縱   鉤

 (물고기-어→)   (물/깨물/새 지저귈-교→)     (세로/놓을-종→)     (갈고리/낚시바늘-구→)

禪   組   草   履

 (사양할-선↘*고요할-선→)    (짤-조↗)          (풀-초↗)                (신-리↗)

 

물고기가 늘어진 낚시바늘을 물고 / 선사가 짚신을 짜다

제주도에 홍달환이란 이가 살았다. 늙으신 어머니에게 병이 들자 병의 차도를 알기 위해 매일 똥 맛을 보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

이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부모 제삿날엔 곧은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산채로 물그릇에 담아 제사를 끝낸 뒤 방생하였다.

1749년 죽자 영조는 정려문과 효자비를 세웠다. 제주도 수산리에 효자비가 남아있다.

 

수월선사 (1855 - 1928) 경허스님의 제자로 글을 몰랐으나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정진 불망염지(不忘念智)로 트였다.

득도 후 입적할 때까지 40년간 잠을 않자고 짚신을 삼아 길손에게 나눠주다가 새 옷과 새 짚신을 머리에 얹고 바위에 앉아 열반하였다

 

穿   硯   如   谷

 (뚫을-천→*꿸-천↘)     (벼루-연→)             (같을-여→)            (골짜기-곡↓)

鍊   鼎   換   冠

 (쇠 불릴/단련할-련↘)   (솥-정↗)              (바꿀-환↘)             (갓/으뜸-관→)

 

벼루를 뚫으니 골짜기와 같고 / 솥을 만들어 갓을 바꾸었다

 이삼만 1770~1845(영조 46~현종 11) 자는 윤원, 호는 창암. 원교체로 이름 난 당대 명필인 이광사의 제자로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글씨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산을 탕진, 포(布)를 누여가면서 글씨에 열중하였다.

글씨 배우기를 청하는 자에게는 1점 1획을 1달씩 가르쳤으며,

병중에 있을 때 벼루 3개를 먹으로 구멍을 내겠다는 결심으로 하루 1000자씩 글씨를 썼다 한다.

특히 초서를 잘 써, 그 글씨를 창암체라 했다. 공중에 떠서 글씨를 썼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서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지함 1517~1578(중종 12~선조 11) 자는 형백, 형중, 호는 토정. 당대 대학자인 화담 서경덕의 문인이다.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고 수학에도 정통했으며, 항상 주경궁리(主敬窮理)를 학문의 방법으로 삼았다.

78년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걸인청을 만들어 관내 거지의 수용과 노약자와 기민을 구호하는 데 힘쓰다가 죽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살았으며 괴상한 거동과 기지, 예언, 술수에 관한 일화가 많이 전한다.

갓을 버리고 쇠솥을 머리에 이고 다녔다. 선학(仙學)이 어울려 보인다는 남명선생의 농담에 화를 낼 정도로 정통유자임을 자부했다.

 

응용한자

어망(魚網) 어육(魚肉)

교상(咬傷) 교교(咬咬)

종람(縱覽) 방종(放縱) 종서(縱書)

구이(鉤餌) 구인(鉤引) 구곡(鉤曲) 구용(鉤用)

선위(禪位) 선종(禪宗) 참선(參禪) 좌선(坐禪)

조각(組閣) 조직(組織) 조판(組版)

초가(草家) 초개(草芥) 초야(草野) 초략(草略)

이력(履歷) 이행(履行) 목리(木履)

천공(穿孔) 천착(穿鑿) 관천(貫穿)

연적(硯滴) 연지(硯池)

여의(如意) 결여(缺如) 여반장(如反掌)

곡풍(谷風) 심산유곡(深山幽谷)

연금(鍊金) 연마(鍊磨) 수련(修鍊) 단련(鍛鍊)

정담(鼎談) 정립(鼎立)

환기(換氣) 환산(換算) 환언(換言) 교환(交換)

의관(衣冠) 관략(冠略) 관혼상제(冠婚喪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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