魚 咬 縱 鉤
(물고기-어→) (물/깨물/새 지저귈-교→) (세로/놓을-종→) (갈고리/낚시바늘-구→)
禪 組 草 履
(사양할-선↘*고요할-선→) (짤-조↗) (풀-초↗) (신-리↗)
물고기가 늘어진 낚시바늘을 물고 / 선사가 짚신을 짜다
제주도에 홍달환이란 이가 살았다. 늙으신 어머니에게 병이 들자 병의 차도를 알기 위해 매일 똥 맛을 보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
이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부모 제삿날엔 곧은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산채로 물그릇에 담아 제사를 끝낸 뒤 방생하였다.
1749년 죽자 영조는 정려문과 효자비를 세웠다. 제주도 수산리에 효자비가 남아있다.
수월선사 (1855 - 1928) 경허스님의 제자로 글을 몰랐으나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정진 불망염지(不忘念智)로 트였다.
득도 후 입적할 때까지 40년간 잠을 않자고 짚신을 삼아 길손에게 나눠주다가 새 옷과 새 짚신을 머리에 얹고 바위에 앉아 열반하였다
穿 硯 如 谷
(뚫을-천→*꿸-천↘) (벼루-연→) (같을-여→) (골짜기-곡↓)
鍊 鼎 換 冠
(쇠 불릴/단련할-련↘) (솥-정↗) (바꿀-환↘) (갓/으뜸-관→)
벼루를 뚫으니 골짜기와 같고 / 솥을 만들어 갓을 바꾸었다
이삼만 1770~1845(영조 46~현종 11) 자는 윤원, 호는 창암. 원교체로 이름 난 당대 명필인 이광사의 제자로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글씨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산을 탕진, 포(布)를 누여가면서 글씨에 열중하였다.
글씨 배우기를 청하는 자에게는 1점 1획을 1달씩 가르쳤으며,
병중에 있을 때 벼루 3개를 먹으로 구멍을 내겠다는 결심으로 하루 1000자씩 글씨를 썼다 한다.
특히 초서를 잘 써, 그 글씨를 창암체라 했다. 공중에 떠서 글씨를 썼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서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지함 1517~1578(중종 12~선조 11) 자는 형백, 형중, 호는 토정. 당대 대학자인 화담 서경덕의 문인이다.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고 수학에도 정통했으며, 항상 주경궁리(主敬窮理)를 학문의 방법으로 삼았다.
78년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걸인청을 만들어 관내 거지의 수용과 노약자와 기민을 구호하는 데 힘쓰다가 죽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살았으며 괴상한 거동과 기지, 예언, 술수에 관한 일화가 많이 전한다.
갓을 버리고 쇠솥을 머리에 이고 다녔다. 선학(仙學)이 어울려 보인다는 남명선생의 농담에 화를 낼 정도로 정통유자임을 자부했다.
응용한자
어망(魚網) 어육(魚肉) 교상(咬傷) 교교(咬咬) 종람(縱覽) 방종(放縱) 종서(縱書) 구이(鉤餌) 구인(鉤引) 구곡(鉤曲) 구용(鉤用) 선위(禪位) 선종(禪宗) 참선(參禪) 좌선(坐禪) 조각(組閣) 조직(組織) 조판(組版) 초가(草家) 초개(草芥) 초야(草野) 초략(草略) 이력(履歷) 이행(履行) 목리(木履) |
천공(穿孔) 천착(穿鑿) 관천(貫穿) 연적(硯滴) 연지(硯池) 여의(如意) 결여(缺如) 여반장(如反掌) 곡풍(谷風) 심산유곡(深山幽谷) 연금(鍊金) 연마(鍊磨) 수련(修鍊) 단련(鍛鍊) 정담(鼎談) 정립(鼎立) 환기(換氣) 환산(換算) 환언(換言) 교환(交換) 의관(衣冠) 관략(冠略) 관혼상제(冠婚喪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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