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자신을 세운 사람_01

醉月 2008. 8. 29. 07:19

靜   庵   剛   意

 (고요할-정↗)         (암자-암→)              (강할-강→)               (뜻-의↗)

憲   抱   卵   性

 (바탕 법-헌↘)         (안을-포↗)              (알-란↗)              (성품-성↘)

 

정암 조광조는 지닌 뜻이 강하여 / 법으로서 갓 낳은 성품을 품었다

조광조 1482~1519(성종 13~중종 14) 자는 효직, 호는 정암. 본관은 한양. 김굉필의 문인으로, 김종직의 학통을 이었다.

1510년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가 학업에 전념. 15년 학행으로 성균관생 200명이 천거하여 조지서사지에 초임.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다. 18년 부제학으로 있을 당시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청하여,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해 11월 대사헌(大司憲)에 승진 19년 정국공신 위훈삭제를 강력하게 청하다가

훈구파인 남곤,홍경주 등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그들이 역모사건을 날조해 기묘사화를 일으키니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그의 정신은 사림의 정신적 표상이 되었으며, 조선유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였다. 저서로 [정암집]이 있다.

 

南   冥   棄   辯

 (남녘-남→)    (아득할/어두울/저승-명→)        (버릴-기↘)           (떠들어댈-변↗)

處   蹈   植   敬

 (살/머물-처↗*곳-처↘)  (밟을/행할-도↘)       (심을-식↓)          (공경할/삼갈-경↘)

 

남명 조식은 떠들어댐을 버리고 / 머물러서 심은 경건함을 밟아나갔다

 조식 1501~1572(연산군7~선조5) 자는 건중, 호는 남명. 본관은 창녕. 어려서부터 경사자집을 섭렵하고

천문,지리,의약,병략 등에 널리 통했으며,  노장학에 심취, 초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25세 때 [성리대전]을 처음 읽고 크게 깨우친 바 있어 이후로 유학에만 힘써 대학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학문목표는 거경집의(居敬執義)를 신조로 반궁체험(反躬體驗)과 거경실행(居敬實行)하는 데 있었다.

처사(處士)로서 평생 벼슬에 오르지 않고 지리산에 은거하며 오건,김우옹,정구,정인홍,최영경 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한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문인들은 스승의 기상과 학풍에 영향을 받아 대체로 은일적인 학풍을 지녔고

특히 절의를 중시하였다. 그의 제자 가운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운 사람이 60여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정인홍,곽재우,김면 등은 3대 의병장으로 꼽힌다.

그 당시 사단칠정론이란 철학문제에 유림이 떠들썩하자 퇴계선생에게 편지를 보내길

[청소하는법도 모르면서 하늘의 이치를 논하는 자를 꾸짖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저서로 [남명집] 등이 있다.

 

응용한자

정밀(靜謐) 정숙(靜肅) 정적(靜寂) 동정(動靜)

암자(庵子)

강건(剛健) 강직(剛直) 외유내강(外柔內剛)

의견(意見) 의미(意味) 의사(意思) 의의(意義)

헌법(憲法) 헌병(憲兵) 헌장(憲章) 관헌(官憲)

포부(抱負) 포옹(抱擁) 회포(懷抱)

산란(産卵) 난생(卵生) 누란지세(累卵之勢)

성격(性格) 성별(性別) 성품(性品) 이성(異性)

남극(南極) 남남북녀(南男北女)

명계(冥界) 명복(冥福) 명상(冥想) 명명(冥冥)

기권(棄權) 폐기(廢棄) 포기(抛棄)

변론(辯論) 눌변(訥辯) 웅변(雄辯) 궤변(詭辯)

처소(處所) 처세(處世) 처분(處分) 처벌(處罰)

도습(蹈襲) 무도(舞蹈)

식목(植木) 식물(植物) 식민(植民) 이식(移植)

경건(敬虔) 경의(敬意) 공경(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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