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은봉 서효순 구도 체험기

醉月 2008. 8. 23. 19:00

단전호흡을 알게 되기까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따스한 봄날, 소설 <단(丹)>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도 그러했으나, 무엇보다도 단전호흡이라는 것이 막연히 건강을 찾기 위한 수련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의 계발과 신명들의 세계까지도 넘나들  수 있는 고유의 수련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하나의 습관이  생겼는데, 서점에  들리기만 하면 '단전호흡'이나 '기'에 관련된 서적을 구입해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으로 나름대로의 수련에  들어갔다. 집에서 조식호흡을시작한지 15일 정도 지났을까?

두통이 사라지고 마치 시원한 물줄기 같은 기가 머리 속을 파고 들어갈 때의 상쾌함이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이를 계기로 단전호흡에 대한  수련에 확신을 얻은 나는 <단(丹)의 완성>이라는  책을 토대로 강한 지식호흡을 시작하였는데,

수련을 하면서 기관지가  급격히 나빠져서 한참을 고생하다가 결국 수련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올바른  방법에 의한 호흡이 아닌 이상, 단전호흡도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따주기'의 시술과 단전호흡
  20여 년 전부터 친분이 있던  <따주기>의 저자 고성훈 스님을 만난 것은 내가 문헌상의 단전호흡에 심취해 있을 그 무렵의 일이었다.
  버스정류장 부근의 다방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정담을 나누다가, 

스님은 나에게 세상을 위한 큰  뜻을 품고 직업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사군자나  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스님은 '성훈 따주기'라는 침술을 가르쳐  주었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잠깐 죽었다 깨어난  경험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몸이 좋지 않았었다.

특히 허리가 아파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았었는데 '성훈 따주기'를 내 몸에 직접 시술을 해보니,

통증이  즉석에서 멈추는 등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여기서 '따주기'에 대한 확신을 얻은 나는 그날부터 가족이 아프면  시술을 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성훈 따주기'를 무료로 시술해주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등을  통해 침, 기, 단전호흡 등의 분야가 모두 한  맥락에서 뻗어 나온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침이라는  것은 기의 운용(運氣)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주로 사용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기를 모아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되찾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서 수련하다가 부작용을 일으킨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이때부터  단전호흡에 정통하다는 스승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연정원'과 '단학선원'에서의 수련
  은빛 모래와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섬, '보길도...' 이곳에 얽힌  추억을 뒤로한 채,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책에 나온 <단>의  주인공들을 직접 찾아가 본격적인 단전호흡수련을 시작하였다.
  '연정원'을 만난 것은 88년 봄이었다. 조식호흡을 배우고  우학도인을 만나 뵙게 되었다.

우학도인의 솔직함과 구도적 인간미, 그리고 성주홍 원장님의 자상하면서도 친절한 배려에 힘입어

초급과정에서 중급으로 넘어가고 원상법도  배우게 되었다. 지금도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은 내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특히 특강 때의 구도에 대한 진솔한 강의는 나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되었다.
  연정원에서의 수련기간은 3년이었다. 이 3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단'에 대한 정신적 확신을 얻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랄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작 모여야 할 기가 모이지 않았다. 몸이 건강해졌다는 정신적 안도감은 느낄 수 있었으나,
'기가 모여야 운기를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조바심은 더더욱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선도 서적들을 섭렵하면서 밝아질 대로  밝아진 이론대로라면

기를 모아야 운기를 할  수 있고 도통 신인의 길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우선 기를  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마침 김태영 씨의  선도 체험기를 읽게 되어 '단학선원'을 찾아갔다.

며칠 수련을 해보니 단전에 기가  모이고 있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기는 모으는 즉시 금방 사라져 버리곤 했다.  어렵게 기를 또 다시 모으고,

이제 되었다 싶어 침을 놓으면 또 금방 사라져 버리고... 이러한 경험이 계속되다 보니 침놓기가 두려워졌다.

지금까지 잘 놓아주던  무료시술의 인술도 인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이론과 체험을 통해 얻은 '따주기'의 시술은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나는 침묵 속으로 은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의사를 포함하여 400여명에게 '따주기'를 전수해 주고 내 자신은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시술을 피해 버렸다.

시술만  하면 기가 사라져 버리니, 그 당시 기를 모아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 있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단학선원에서 열심히 수련을  계속하여, 미미하긴 하지만 어렵게  대맥을 운기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또한  불완전하기 짝이 없어서 어떤 때는 느껴지고, 또 어떤 때는 안 느껴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단학선원에서의 수련은 지기가 아닌 생기 차원의  수준이었다).

그 뒤, 소주천 과정도 이수하고 싶었으나 돈 문제로 인해 그 이상의 수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회원이 아닌 나로서는 경비 마련이 힘들었고,  평생 회원비와 수련비를 함께  마련해야 하는 것은 항상  적자
생활을 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아쉬움과 회한을 가슴에 안고 대맥수련만 묵묵히 해나갔다.

 

<천서>와의 만남
  단학선원에서의 수련을 계속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여느  때의 습관처럼 신간서적을 구하기 위해 영등포  문고에 들렀는데 '천서'라고 씌어진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에는 '천서'가  제목 그대로 하늘 글씨인  것으로 착각하여 그냥  지나쳐 버렸다.
몇 개월 뒤  다시 영등포 문고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날 따라 신간이 나온  것이없어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데 또 다시 '천서'라는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하늘 글씨가 어떤 건지 한 번 읽어볼까? 라는 생각에 책을 열었다.
  내 생각으로는 우학도인께서  하늘 글씨를 쓰시는 것  같았고, 20여 년 전  절에서 만난 분이 하늘 글씨를  쓰고 해독할 수 있다며,

 태양이 비추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가보지 않아도 환히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며 <천서>를 진열대에서 꺼내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무심히 읽다 보니 그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단전호흡의 수련 요결서였다.
양신출신을 다룬  책이라는 점도 특이했거니와 하늘  신선계까지도 확연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었으며,

그 내용  자체가 기존의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닌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어서 '아!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책을 읽은 즉시 책의 저자인 한당 선생님을 꼭 만나 보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주소 파악에 나섰다.

책에 보면 우만정사에 계신 것처럼 되어 있는데, 양재동 선원에서 이미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이곳에서 만난 회원들과  도담을 나누면서, 이곳에는 소주천은 물론 온양이 끝난 사람들을  비롯해 단학선원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고단자들이 많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단학선원에서의 일 년간의 추억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천서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천서 수련법의 시작
  도장에 입회한 첫날.
  정확한 단전의 위치를  잡기 위해 석문혈 자리에  동그랗게 오린 파스를 붙여주고는,

손가락을 대 상태로 의식을 집중시켜 호흡을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렇게 정신이 집중된  상태에서 수련을 했더니 바로 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아니, 모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나의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르침을 받는  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똑같은 단전호흡인데도 불구하고,  단전자리를 잡는 단계부터 그  호흡까지,

체험에 의해 실증적으로 개발되어진  수련법을 통해 수련을  하는 것과,

막연히 단전을  인식하며수련을 하는 것은 이토록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석문 자리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호흡을 계속하니,

쌓이는 기의  양이 많아 약간을 써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축기가 되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기를 모으지  못해 고생하시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구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길을 잘못 들어 허송세월을  보내며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픔과도 같은 동정심이 끓어 오른다.

 

단전의 의미와 체험 (저수지를 만들어야 농업용수를 얻을 수 있다)
  봄에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비가 내려도  저수지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물을 사용할  수 없다.

이처럼 단전호흡을  통해 운기를 시작하고 전신을  진기로 채워 도통신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를 저장할 수 있는 그릇 즉, 단전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전그릇이 없이 단지,  숨을 길게 쉴 뿐이라면 기는 아랫배까지  내려오다가 곧바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단전자리(단전그릇)를 만들어 두면 기는 단전자리까지 내려와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것이다.
  전생에 쌓았던 수행의  정도나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그리고 지금  현재의 수행정도에 따라,

개인 차이는  있으나 보통 단전자리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약 100일(3개월)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단전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기는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어 있다.
  단전자리도 없이 기가 쌓이기만을 기다리며 호흡을 했던  지난 시절...

그것은 저수지도 만들지 않고 물 타령하는 어리석은 농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를 모으기 위해  고생하시는 많은 분들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단순히 조식 호흡만 해서는 많은 세월이 지나도 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전자리를 빨리 만드는 사람은 15일 아니면 한 달이나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내 경우엔 도장에서 수련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유난히도 오래 걸린 편이었다. 100일이나  소요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기 단계나 대맥운기에 들어 갔는데도, 나는  단전자리도 못 만들어 와식수련만 하고 있었다.

수련과정으로 따진다면 나는 지진아 중에서도 특급 지진아라 할 수 있었다.
  궁금한 점, 고민 등을  이 사범한테 물어물어가며, 어렵게나마 조금씩 호흡이 되가는가 싶었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앉아서  좌식축기에 들어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 사범한테 전해들었다.

아울러 "멀리 갈 사람이어서 기간이 길어졌으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었다는 것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한당 선생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과

일심으로 수련한 끝에 드디어 단전그릇이 잡혔다는 사실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
  사실 수련기간이 늦어진  것도 잘 생각해 보면,

여기저기 헛공부하러  다니면서 잘못 형성된 단전자리를  고치는 데에 많은 힘과 노력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와식을 하며 단전자리를 잡는 초보자 상태에서도 기감은  유난히 좋아서,

 좌식축기도 들어가기 전에 마치 대맥까지 유통이 된 듯한 기감이 온 것은 모두 생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남보다 늦어졌던 수련 진도는 내 자신의  마음 공부와 올바른 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공부가 된 셈이었다.

 

대맥운기
  단전자리를 오래 만들어서  그런지, 축기는 한 달만에 끝나고 다음  단계인 대맥운기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은 석 달 정도 걸리는 축기가 나는 한 달만에 끝났으니, 사실 수련의 빠르고 늦음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정성을 들여 수련을 하다보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수련진도가 진행되는 것이다.
  단전자리를 잡을 때부터  도는 것 같았던 대맥이, 정작 대맥운기에  들어가자 기만 꽉 찬 상태로 돌기는커녕 움직이지도 않았다.

사범들의 말에  의하면 진기가 돌기 전에 생기가 미리 돌아  길을 측량하듯이,

생기의 감각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진기가 돈다고 했다.
  계속 수련을 해나가던 어느 날, 하수도 막힌 것처럼  빵빵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던 대맥이 드디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좌측 옆구리를 통과하면서부터 계속  통증을 느꼈다.

명문은 그런 대로 통과하는 것 같았는데 다시  우측 옆구리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보기가 딱했는지, 사범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드디어, 대맥이 유통되었다는 사범의 말을 들었으나 대맥은  계속 빵빵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끝에 호흡을 부드럽게 해보았다. 부드럽게 호흡을 하니 기가 대맥을 타고 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호흡을 강하게 하면 돌지  않는 것처럼 대맥은 빵빵하기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대맥운기에  알맞은 호흡의 강도를 알아낼  수 있었다.

호흡이 강하면  기가 대맥의 통로에 많이 밀려와  그 벽에 부딪히므로 빵빵한 느낌이 오게 되며, 

기가 돌고 있다는 감각도 느끼기  힘들게 된다. 그렇다고 호흡을 너무 약하게 해도  기가 미약해서 도는 감각을 느끼기 힘들다. 

즉, 일단 강한 호흡으로 빵빵한 느낌이 오게 되면 아주 부드러운 호흡으로 바꾸어 주어야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서 돌아가게 되면 적당한 강도의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 대맥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는 강한 호흡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맥운기 과정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특별수련 때의 일이다. 한당  선생님이 뒤에서 도와주고 계셨고,

각자 자기  단계에 맞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대맥운기를 하고 있었는데, 

빵빵한 상태에서는 돌아가지 않던 대맥이 이날은  빵빵한 상태에서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파워가 어찌나 센지 내 주위 2m정도의 사방까지 같이 돌아가는 듯한 기감이 왔다.
  이날의 특별수련 이후,  대맥의 힘은 급격히 강해졌고 가끔씩 혼자  돌려도 그러한 힘이 나타나곤 했다.
  2분내의 대맥유통...  처음엔 너무도 어렵게 느껴져  막막하기만 했으나, 이제는 한 호흡,

넉넉잡아 두  호흡이면 일주시키고도 남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결국 그 열매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닐지.

 

소주천
  소주천만 지나고 나면 수련은 쉬워진다기에, 소주천 수련은  처음부터 아주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회음 통과를 느끼지 못했으나 항문에서  기가 새어 나가는 것이 감지되었다.
  <첨서>에 나온  대로 항문을 조이면서 호흡을  하니, 기가 항문을  통과해 등뼈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등뼈를 타고 올라간 다음부터는 항문을  조이지 않아도 기는 잘 올라갔다.

그런데 이렇게 잘 올라가던 기가  명문에서 꽉 막혔는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두 눈의  시선을(눈을 감은 상태에서) 막힌 부분에 응시하니 기가 그 부근에 많이 모이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두 눈의  시선을 위로 조금씩 옮겨 가면서 기를 잡아  끌었더니 그제서야 서서히 움직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가 모자라 더 이상 올라가지 안으면 다시 두  눈의 시선을 위로 올려 기를 끌어 올리곤 하면서 수련을 해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과 2주만에 소주천 유통을 시킨 것  같다. 유통된 소주천은 미미한 상태로 계속 있더니

어느 날 갑자기 2분 내에 일주가 되기 시작했다.
  주로 잠들기 전에 잠자리에서 마음이 안정된 상태로 운기를 시켜보면 일주에 걸리는 시간도 파악하기 쉬웠다. 

소주천이 빨리 끝난 것은 아무래도 두 눈의  시선을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소주천은 비교적 쉽게 통과한 것 같았다.

 

온양
  단전에서 독맥을 타고 백회로 끌어올린 기가 쌓이고 쌓여서 온몸을 적시며 내려왔다. 머리를 다  적시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데,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때의 상쾌함이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것이리라.

계속 차고 맑은 기가 밑으로 내려오다가 어깨 부분을 통과할 때 지금까지 저려왔던 어깨 결림이 치료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슴과 위(胃) 부분을 지날 땐 마치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나빠진 위가  실로 2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야 완치가 된 것이다. 

침이나 약물을 통해 통증을 없애는 치료는 완치가  아닌 응급조치에 불과함을 이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진기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고질병의 치료도 치료지만 또 다른 효과도 있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방광을 통과할 때는 양기가 끓어올라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하도  희한해서 다른 도반들께 물어보니, 모두가 이 단계에서 정력이 20대로 회복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온양수련을 하면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나는 장이 좋지  않아 입에서 항상 냄새가 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 때문에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입 냄새가 나지 않을까 무척 두려웠다. 

집사람조차도 잠자리에 들면 냄새가 난다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그러니까 온양수련을  하던 어느 날 밤의 일이다. 밤  12시경, 어설프게 잠이 들었는데

집사람이  집 안을 여기저기 다니며 야단을 떨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잠자던 나를 깨워 집안을 좀 둘러 보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디선가 오렌지 향 비슷한 향내가 난다며  맡아 보라는 것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집 안을 다 찾아봐도 향을  풍길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여기저기를  킁킁거리던 집사람이 내 몸의 냄새를 맡아 보더니만 갑자기 호통을 쳤다.
  "무슨 남자가 몸에다 향을 뿌리고 다니는 거야?"
  그 순간 나는 직감이 오는 것이 있어서 그저 빙그레 웃어주고는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밥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내가 온양수련을 하고  있는데 이 온양수련 단계에서는 몸에서 향내가 나게 되어 있어..."
  신기해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나는 <천서>룰 꺼내어 온양수련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온양수련 시에는 몸에서 향기가 난다.'는 대목을...
  천서수련을 시작한 이후, 나는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화장품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손발을 비롯한 몸에 때가 잘 타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혈이 열리고, 어떤 종류의 기라도 마음대로 끌어들일 수  있는 수련인이 물만으로 몸을 씻었을 때의 상쾌함,

그 물기의 쾌적함이란...  그렇다고 몸이  한꺼번에 다 정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명현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 동안 앓아왔던 병의 뿌리가 하나하나  뽑혀 나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탁한 육체의 뿌리깊은 오염. 

그 오염된 몸을 진기가 치료하고 어루만져주는 일은 지금도 나에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진기의 힘이란, 아니 이 좋은 천서수련법이란 공부가 진척될수록 더더욱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온양이 끝날 때의 일이다. 차갑고 맑은 기가 백회부터  온몸을 적셔 내려오기 시작해,

드디어 발가락  끝까지 적시는 순간!

백회에서 백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구슬이 양미간 사이로 툭 굴러 떨어지면서 인당이 휭하니 열렸다.

그리고 난 후, 시원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기가 인당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부처님 이마에  있는 구슬이 실로 내 이마에도  생긴 것이었다.

이 길이 옛 성현들이 걸어갔던  길임을 확인하는 거룩한 순간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장이 나빠  찬 것을 먹지 못했던 내가 큰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더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천서수련법의 건강적인 측면에서의 효과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온양을 마쳤다.

 

대주천
  대맥부터 소주천까지는 철저한 무의식을 통해 수련을 해야  했지만, 대주천은 의식을 사용해 운기를 해야 한다.
  기의 흐름에 오히려 의식을 사용해도 된다는 점 때문에 나는 대주천이 좀 쉽게 끝나리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막상 수련을 시작하고 보니, 생기만 돌 뿐 진기유통은 되지 않았다.

먼저 이 길을 걸으신 한당 선생님의  지도 없이는 도공부가 그 얼마나 힘든 것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하물며 스승도 없이  순수한 혼자만의 힘으로 도를 통하신 선생님에  대해 느껴지는 경외감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승이 없이 도를  구하려하는 것은 장님이 안내자도 없이  산 속에 혼자 버려진 것과도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벌써 용천을 뚫어서 선풍기로  바람을 틀어대는 것처럼 기가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기일 뿐 진기 유통은 되지 않았다니...
  만약 혼자서 이 수련을 했더라면, 진기 유통이 되었다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순간부터 영영 진정한 도의 길에서는 멀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기의 빛깔을 놓고 생각해 보아도 그러하다.
  태초에 타고 난 진기가 잘못된  생활과 사심으로 인해 거무스름한 잿빛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이 빛을 흰빛으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도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찌 그 빛을  구별이나 할 수 잇겠는가 말이다

(그나마 잿빛의 거무스름한 기조차도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의 기를 말하는 것임).
  오혈을 다 뚫었다  생각하고 선생님의 체크를 받았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하나의 혈도 뚫리지를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한 혈을 중점적으로 수련해  뚫은 뒤에 이삼일에 한 번씩 체크를 받으면서, 덜 된 부분은 다시 뚫으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 말씀대로 수련을 해나가며 여러 번 체크를 받은  결과,

기의 뼛속 통과가 드디어 이루어지고 어려운  대주천 수련도 그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일월성법
  혈액형이 O형으로  성질이 급한 내가 하늘에  있는 별의 기운을 끌어들여  단전에 쌓으면서부터

마음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단전의 위력이 하단전을 능가한  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일월성법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해와 별에서 시작하여 백두산과 동해를 거치고,

소백산과 관악산, 히말라야와 태평양의 기까지 몸으로 느끼고 만끽하며 전신주천을 눈앞에 둔 나...

 

풍수법
  히말라야에서 동해안, 백두산, 우리 선친의 묘, 관악산,  소백산, 집터, 절터... 그 중에서,

내가 알아볼 당시  백두산의 기는 너무나 답답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민족의 영산이라 기대도 너무 컸지만 어찌 그리도 답답했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한 후 백두산은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역시 좋지 않다고 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풍수이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면 다시  알아보고 싶지가 않다.

너무 답답했기 때문일까?

나는 무난한 동해안이  좋아 동해안의 기를 끌어들여 가슴에 느끼며 위안을 했다. 태평양도 자주 끌어들이곤 했다.

 

선인법
  선인법으로 유명한 사람을 알아본다. 지금의 마음상태가  어떠한지? 과거와 미래도 예측해본다.
  도제 김도삼(회원의 한 사람)씨의 마음을 알아볼 때의 일이다.

수련점검 시간에 한당 선생님은  김도삼씨의 한달 전부터  지금까지의 마음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현재의 마음상태만 읽었지 어떤 기간을 두고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가 별일 없이 편안한 한달 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도삼씨도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틀렸다고 하셨다. 그 동안 마음 속에 가졌던 김도삼 씨의 분노까지도 모두 다 말씀하시며 틀렸다고 하셨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표출되지 않은 속마음까지 아시니 두 손을 들 수밖에... 

그러면서도 평상시엔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지내시는 선생님이 믿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사람들을 욕한다거나  속마음은 다르면서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척한다거나,

그런 것이 도인 앞에서는 가소로운 웃음거리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시는 선생님의  인품 앞에서 거짓된 삶을 살지 말고 순수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백년 전 만년 전의 일도 일순간에 알아내는 실로 놀라운 선인법...
  그 뒤, 나는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유명한 정치가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몸 속의 지병까지 보였으며 끝내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도  보았다. 그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고 싶지는 않다.

프라이버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도제 김도삼씨의 경우엔 자기 마음을 읽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밝힌 것이다.
  심법을 걸기  여하에 따라 자유자재로,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타계하신  선인들의 영혼까지도 지금 상태가 어떤지를  모두 다 알 수 있는 선인법... 

그러나 복잡다단한 남의 마음에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건 실로 부질없는 일이며 나의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전신주천(숨은 병이 송두리째 뽑혀 나온다)
  내가 교통사고로 깜빡  죽었다가 깨어난 지가 벌써 15년이 넘는다. 

그때 멍들었던 곳이 무릎, 허벅지, 얼굴 등 외관상으로는 나은 것처럼 보였지만 전신주천을 하니

깊숙한 곳에 들었던 멍이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멍이  다시 밖으로 퍼렇게 표출되면서 느껴지는 고통은  참으로 참기가 힘들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고통에서 빨리 헤어나고 싶어서 한의원에 찾아가서  침도 맞아보고 클리닉에 찾아가서 치료해 보고
물리치료도 해보고  내 자신이  직접 침도 놓아  보았다(체침, 수지침,  오행침, 따주기...).
  그러나 헛수고였다. 강한  따주기에서만 불과 몇 시간의  일시적인 효과가 있었다.
결국은 시간이 흘러 멍이 밖으로  다 사라진 다음에야 나는 서서히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강한 의식으로 모은 기를 침놓는 혈자리에 넣으면 몸 속의 각 기관에서 반응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침을  놓는 혈자리와 몸의 기관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기를 넣으니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침의 원리를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명백해진 침의 원리와 옛 선인들의  경지에 대한 이해 등... 

이처럼 많은 공부를 하게 해주신  한당 선생님께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침을 사용하지 않고 침을 놓는  것이 더 많은 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초보일 때는  침이 필요하지만 전신주천 이상자에게는 침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일반 병자가 자기에게  기를 언제 넣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낫게 해주는 능력자가 되었다. 

침책의 원리와 틀린 곳까지 알 수 있는 능력, 원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상관없이 상대를 진찰하고  기를 보내 치료해 주는  능력...
몇 년 전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였는데 내가 그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당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기를  함부로 쓰지 말 것을. 직계에 한하여 쓰고,

간혹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를 제외하고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렇다. 능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다니는  것은 어린아이가 칼을 휘두르고  다니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채약(유기(留氣)를 이용하다)
  석문호흡을 하기 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호흡법을 익혔던  탓으로 변칙적인 호흡에 능했던

나는 그 변칙적인 호흡을 이용해  채약을 형성시켜 보았다. 유기가 그것이다.

채약을  굳게 하는 데에는 약간의 지식(止息)이 필요한데,  이때 나는 지식이 아닌 유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용호비결에서 북창선생이  가장 강조하신 유기(일명  누기(累氣), 적기(積氣), 축기(蓄氣), 복기(伏氣))를

각 단계마다 가끔씩 사용하곤 했다.  채약으로 전신주천을 다시 하고 나서 한층 강건해진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기화신
  한당 선생님께서  기화신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고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더욱  열심히 임했고 우주에 있는 모든 기와  빛까지도 모두 흡수해 버렸다.

이때 단전엔 구슬이  보였는데 매번 볼 때마다 다르게 보여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것으로 생각했었다.

내가 환상에 사로잡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의주의 조화였다(여의주가 항시 조화를 부린다는 것을 잊었었다).
  기화신 수련이 계속되는 동안 가끔씩 밝은 빛이 나타나서는 눈앞에서 사라지곤 했다.

처음에는 반딧불처럼 작은 것이 나타났는데 그것도 곧 내 주위로 사라져 버렸다. 이러기를 수십 번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원로회원 수련일  이었는데 수련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번엔 밝은 빛이 덩어리로 크게 나타났다.
  처음 나타난 빛의 크기는  100원 짜리 동전 크기의 태양과 같은  불빛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커져서는 결국은 태양보다 더 커지고 밝기는 태양과 똑같았다.
  더 커져서 우주를 다  둘러싸고도 남을 빛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양신수련에 들어가도  좋다고 하시며 빛의 크기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양신수련 ; 찬란한 금빛 인간

  *찬란한 금빛인간

  도계의 빛이
  백회를 거쳐
  석문에 이르기를 수십 일.

  찬란하고 찬란해서
  형언할 수 없는
  밝은 빛 속에
  앉아 있는 나!

  찬란한 빛 속에
  찬란한 빛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

  내가 이처럼 찬란할 줄이야!
  내가 이처럼 찬란할 줄이야!

 

  *양신을 보고 나서

  처음 양신을 본 날 저녁
  설레임으로 잠 못 이루다.

  그 찬란한 빛이 나였으니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지켜본 금빛 인간
  그 찬란한 빛이
  나였으니...
  얼마나 기쁘고 기뻤는지?
  흥분되고 말문이 막혀
  가슴을 메우고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끝내는 봄비 되어
  촉촉히 대지를 적시다.

 

  * 꽃밭에 앉아 수련하다.  97년 1얼, 원로회원 수련일 이었다.
  수련을 계속하고 있는데 수련 중에 내가 보였다.

나의  모습이 점점 더 분명해지더니 내가 개나리꽃이 만발한 꽃밭에 앉아서 수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양신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고 하시면서  수련 중에 자기 모습이 보이면 계속 응시하면서 수련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끝에 가면 양신이 그렇게 보이는데 먼저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  부챗살과 봉황새의 깃털로 된 후광에 쌓인 찬란한 양신   97년 3월 29일, 일요일
  새벽 네 시쯤  일어나서 양신수련을 하다가 피곤함을  느껴 누워서 수련을 시작했다.

누워서 하는  수련이라 절반은 잠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의식은 또렷하여 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심법을 걸고 의식은 단전에 빛을 모으는  데에 열중했다.
그러는 가운데 양신이 보였다.
  찬란한 금빛으로 된 내 모습이  나타났고 나를 둘러싼 빛 또한 아름답고 찬란하기 지없었다.

나를 가운데 두고 부챗살 모양의 빛이 퍼져  있었는데 부챗살 끝이 봉황새 깃털의 끝과 같이 뭉쳐져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후광이 모두 찬란한 빛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양신이었다. 이 양신이  한참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진 후  수련을 또 계속 하는데 또  다른 양신이 나타났다.

역시 빛으로 된 모습의  양신인데 이번에는 후광이 둥글게 빛으로 감싸는  모양(복숭아 씨 모양)으로 나타났다.

먼저 본 양신은 속까지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투과성 잇는 빛이었고, 이번의 양신은  두꺼운 뭉치로 된 빛이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새벽이었다.
  맨 처음 양신을 보던 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쏟아지던 행복한 눈물을 생각하며 오늘도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말문이 막힌  가운데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퍼져가는 고마움에 전율을 느낀다.

 

  * 가장 귀한 선물
  도장에서 수련을 하는 사람들의 단전호흡에 대한 기대는  무척이나 크다.

그래서인지 한두 달 해보고는 제풀에 그만 두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잇다.

기대가 큰 만큼 욕심이 앞서서 짧은 시간에 자신이 생각한 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내 자신이 수련을  하면서 느낀 바를 이야기한다면,  수련자의 마음자세는 농심(農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한 알의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금방 싹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반드시 싹은 올라오기 마련이다.

또한 잎이 자라는 것이 눈앞에 금방 보이지는 않으나 계절이 지남에 따라 무성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하루하루 거듭된  수련이 지금 와서는 '나에게 이런 능력이 숨어 있었나?'하고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는 것을 느낀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다면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나  일심으로 수련을 해서 처음과 끝을 비교해보자. 

인내는 모든 길과 통한다는 격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천서수련을 시작한 후, 그  동안에 이루어낸 수련의 진척을 생각할 때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것은 꾸준히 수련을  한 입장에서 처음과 끝을 비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일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말하자면, 수련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잘못된 수련법에 빠져 축기도 제대로 못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구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점점 더해감을 숨길 수 없다.

날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북받혀 오르는 오열에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이 세상에 구도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며, 천당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극락을  찾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일가 친척과 이웃  그리고 모든 종교인과 무종교인들에게 하늘 문이  석문이요,

하늘 문을 여는 그 길이 석문호흡이라고  이야기하면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양신을 타고  천당 지옥을 자유자재로 출입함을  누가 믿으리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한스러워  하는 것도, 뜻을 펼치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자연스러운 발도심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다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활 자체가 빚을 지는  것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기까지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사회 생활하면서  받은 이웃들의 도움을 생각하면,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잇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고맙고도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면  건강을 걱정해주고 아픈 곳을 찾아서 시술해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는데, 

요즘은 그 선물이 달라졌다. 바로 <천서>를 선물하게 된 것이다. 

책값이 정찰제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200원씩  깎아주는 시민서림 아저씨...

<천서>가 출판사에서 동이 났다면,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뒤져서라도 책을 구해다 주시곤 한다. 모두 고마우신 분들이다.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도 사실은 큰 발전이리라...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수련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봤을 때 정신적인 면도 크게 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모 형제가 나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이며, 내  발전에 도움이 될 게 또  무엇인가?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니 간섭받지 말고 살아가자는 등의 이기적인 나의 옛날 생각들이 지금은 180도 달라져 버렸다.
  내가 집사람에게 해준 것이 없고, 자식에게 도움을 준 것이 없으며, 이웃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이 가슴으로 들어오고, 집사람에게 늘 미안하여, 힘들지? 하며  위로의 말을 던지게 되었다.

이것은 여유가 아닐까?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상대방이 보이고, 힘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법이다.
천서수련 이후, 몸과 마음의 건강이 세 배 정도의  향상을 가져왔으니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봄날 같은 마음에 아픈 곳이 없는 몸... 이것이 지금의 나이다.

 

  * 마지막으로...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석문호흡을 수련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실제로 지방에 있는 회원들도  집에서 수련을 해가며 한 달에 한 번씩,  체크를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회원들이야 시간이  나는 대로 마음껏 도장에 나와 수련을 할 수 있으니,

수련을 하고자 하는 마음 이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앞으로 통신매체를 이용한 수련도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천서>를 이 땅에 내놓으신 한당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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