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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사의 얼굴격인 가운루(駕雲樓,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51호). 고운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물 때 지었다고 한다. 경내를 흘러내리는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누하(樓下) 기둥의 길이가 제각각이어서 물결을 따라 출렁이는 듯한 리듬감을 보여준다.
절은 침묵의 공간입니다.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닌 침묵, 그것을 우리는 적묵(寂默)이라 합니다. 니르바나(涅槃)입니다. 오랜 시간과 들끓는 욕망의 풍화를 견뎌낸 언어가 사는 집, 그곳이 절입니다.
공자는 시경(詩經)의 시 300편을 말하는 데 장황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생각이 없다(思無邪)’는 한 마디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운사(孤雲寺)에서 도가(道家)의 분위기를 읽습니다. 나는 시를 느낍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으로 하여 이름조차 고운사(孤雲寺)로 바뀐 절인 까닭입니다. 창건 때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다 합니다. 시 한 편 읽어 보겠습니다.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오
산이 좋다면서 무슨 일로 산을 떠나시는지
훗날 나의 종적 살펴보시길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니
고운 최치원의 ‘증산승(贈山僧)’이란 시인데, ‘입산시(入山詩)’라고도 불립니다. 이 시에서 말한 대로 최치원은 52세 이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삼국사기의 최치원전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자유로운 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하고, 전설에는 신선이 되었다 합니다.
오늘날 은자의 상징으로 전설적 인물이 된 최치원이지만, 처음부터 세간 밖을 노닐지는 않았습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18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당나라의 관리가 됐고, 토황소격(討黃巢檄)을 지어 천하에 문명을 떨쳤습니다. 그런 그가 신라에 돌아온 때는 885년(헌강왕 11),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이미 기울고 있었습니다. 진성여왕 때에는 전국적인 농민 봉기로 내란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미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을 경험한 바 있는 그는 894년에 시무책(時務策) 10여조를 올려서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진성여왕은 그의 개혁안을 받아들였고, 그는 6두품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6두품이라는 신분은 치명적인 한계였습니다. 진골 귀족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신라는 40대의 그에게 등을 떠밀었습니다.
“계림(경주)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고, 곡령(개경)은 푸른 솔(鷄林黃葉 鵠嶺靑松)”이라고 왕건의 집권을 예견한 그였지만, 고려 정권에 참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그가 몸과 마음을 둘 곳은 산수간(山水間), 즉 절밖에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적 공간인 동시에 자연의 일부인 곳이 절인 까닭입니다.
▲ 겨우살이 준비로 한가로이 바쁜 만덕당. 겨울 양식이 될 무청 시래기를 바라보는 목어도, 그것을 널어 말리는 공양주 보살의 손길도, 무심하다.
등운산(騰雲山·524m) 고운사(孤雲寺)-. ‘구름을 오르는 산’에 ‘외로이 떠 있는 구름 같은 절’이라는 말이겠지요. 시적인 이름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언어 과잉의 시대인 지금도 고운사의 산문은 ‘삿된 생각을 씻어내는’ 시적 정서로 충만합니다.
산문에서부터 일주문까지 황톳빛 고운 진입로(1km)만으로도 고운사는 참으로 고맙게 거기 있었습니다. 소나무숲 사이로 난 그 길을, 아직 돌아갈 곳을 정하지 못한 낙엽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구름인 양 흘렀습니다. 오관의 총아라는 눈의 구실이 머쓱해지는 이런 계절에는, 차라리 반쯤 눈을 감고 바람의 결에 몸을 맡기는 편이 더 좋을 듯했습니다. 솔향기, 알싸한 바람 냄새, 빈 가지에 몸을 터는 정갈한 바람 소리, 섬세하게 모공을 파고드는 바람의 촉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걷다가 일주문(조계문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음)을 지나면 곧장 금강문, 사천왕이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금강문을 지나고 나면, 굳이 사천왕상을 따라 하지 않아도 절로 눈이 번쩍 뜨입니다. 고운사의 얼굴격인 가운루(駕雲樓·경북 무형문화재 제151호)가 홀연히 솟아오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앉은 가운루의 누하(樓下) 기둥은 길이가 제각각입니다. 물길에 선 기둥은 긴 돌 초석 위에 서 있고, 나머지 기둥들도 계곡 바닥의 높낮이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 시각적 리듬감을 좇노라니 마치 가운루가 구름을 따라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명하는 자연주의 미학의 한 모범입니다.
가운루의 입지는 고운사의 가람배치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본디 고운사의 경내에는 등운산을 사이에 두고 두 계곡이 흘러내립니다. 자연히 전각들은 산기슭에 바투 다가앉아 계곡의 흐름을 따라 배치되었습니다. 북동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명부전·삼성각·연지암·연수전·고운대암·극락전·만덕당·무설전·열반당·대향각·세심헌·용왕각이 길게 흐르고, 동남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너머에 선방과 나한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웅전과 약사전·아거각·적묵당이 등운산에 기대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1992년에 현재의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계곡을 복개하여 평지를 만드는 바람에 옛 모습은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두 계곡의 합수지점에 선 가운루는 그대로이므로 그것을 기준 삼으면 어렵지 않게 옛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가운루 옆에는 역시 2층 누각인 우화루(羽化樓·현재 수리공사 중)가 있습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도가의 상징을 편액으로 걸고 있지만, 내부에는 부처의 세계를 상징하는 우화루(雨花樓)라는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또한 우화루의 외부 벽면에는 호랑이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보는 이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뿐 아니라 목까지 움직인다고 합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로 새기면 될 듯합니다.
그런데 1918년 오시온이 쓴 사적기에 의하면,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물 때 여지(如智)와 여사(如事)라는 두 스님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에 이름도 그의 호를 따서 고쳤다는 것입니다.
▲ 명부의 세계를 지키는 수문장의 표정치고는 너무 천진하고 익살스럽다. 아무에게도 죄 줄 뜻이 없어 보인다. 죄 많은 세상을 위한 배려일까? 겁이 나서 자신의 죄를 꽁꽁 싸 두는 사람은 이곳으로 가서 다 털어 놓고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있는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입니다. 경상북도 의성·안동·영주·봉화·영풍의 5개군 54개 말사를 관장하는 조계종 본사 치고는 숨어 있다시피 한 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자연에 온전히 심신을 누일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초겨울 짧은 해는 산사의 적막을 더욱 농밀하게 합니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밤의 안온’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만으로도 기꺼운데, 원주 소임을 보는 구행 스님은 차를 달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스님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진정한 여행자는 떠나지 않고도 자유롭습니다.”
끝없는 변화와 부대낌 가운데서도 부동심(不動心)을 지켜나가는 것이 자유의 궁극이라는 말이겠지요. 언제 어디서든 걸림이 없는 경지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를 일러 ‘운수(雲水)’라 하는가 봅니다.
또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이 관광지가 되어선 안 됩니다. 절은 수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행여 오해는 마십시오. 스님이 말하는 수행자란, 스님만을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절을 찾는 이 누구나 그 순간만큼은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조계종 교구 본사 중 입장료를 받지 않는 유일한 곳이라는 점도 스님의 말에 무게를 더해 주었습니다.
산문을 나서며 다시 고운(孤雲) 최치원을 떠올립니다. 그가 고운사에 머물렀다는 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궁궐을 바라보면서도 겉멋으로 ‘귀거래(歸去來)’를 말하는 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시인이었습니다.
고운사에서 침묵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 시가 되어 솔 그림자로 집니다.
♨ 고운사 숙식
고운사 주변에는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하나도 없다. 절에서 2km 남짓 떨어진 곳에 구계리라는 동네가 있지만,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을 뿐이다. 일직면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지만 30분 정도면 의성읍이나 안동 시내에 닿을 수 있다.
탑산 약수온천에 들러 온천욕을 즐기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온천은 중앙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시간적 부담도 거의 없다.
이 지역 특산물은 마늘, 고추, 한우, 송이, 약초 등이다. 요즘 같은 때에는 여행에 김장거리 장만을 곁들일 수 있겠다. 한우 고기를 주 메뉴로 한 식당이 가장 많고, 추어탕이나 간고등어 식당도 추천 식당 리스트에 올릴 만하다.
등운산 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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