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옛글에서 본 선계

醉月 2008. 6. 7. 23:35

선계는 현재의 모든 결함을 보상해 줄 수 있는 완전으로 가는 입구로써,
불완전한 현재와 완전한 과거 또는 미래와의 접점에 존재한다.
현실의 중압이 존재치 않는 완벽한 이상세계로서의 선계상은,
구약성경에서 묘사되고 있는 에덴 시절이다.
혹은 〈실락원〉에서 그려지고 있는 잃어버린 ‘황금시대’(Golden Age) 등
유토피아의 모습과 그 본질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

李健淸,《韓國田園詩 연구》(문학세계사, 1986), pp. 27~35.

 

공간묘사를 통해 구체화되는 선계상은 이들의 동경과 갈망,
현실에 대한 불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Utopia한 말은 'no-where'와 ‘good-place'의 이중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유토피아의 모습은 시대마다 달리 나타난다.
예컨대 사회적 혼란기의 유토피아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보듯 강력한 질서의 창출을 목표로 하고,
빈곤한 시대의 유토피아는 서양 중세 농민들의 이상향인 코케인(Cokaigne)에서처럼 財貨의 풍요로운 상태를 꿈꾼다.
즉 유토피아의 모습은 동시대인의 지향가치를 반영한다.
서구에서의 유토피아의 개념과 특징, 그 유형에 대해서는,
金榮漢의 《르네상스의 유토피아 사상》(탐구당, 1988), pp. 12~17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인간 소망을 대변하는 최선과 희망의 세계로서의 선계는 중세지식인이 발견한 유토피아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먼저 유선시문에 투영된 선계상의 재구를 통해 중세 지식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낙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로 한다.
작품을 통해 볼 때,
유선문학의 유선 공간은, 옥황상제가 거하는 白玉京과 廣寒殿 등 천상 선계와,
扶桑海 위 삼신산과 곤륜산,
十洲 등의 지상선계로 대별된다.


그밖에 步虛凌空하는 도중에 펼쳐지는 태청허공의 광경과
옛 신선의 자취와 관련된 특정 공간이 그려지기도 한다.
공간의 다양한 설정은 다층적 위계로 짜여진 신들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각 공간은 나름의 질서와 구성원리에 의해 통제된다.
다음에 제시되는 선계상은 여러 유선 시문에서의 공간 묘사를 장소별로 모아 정리해 본 것이다.
이하 각 한 구절을 시문의 한 행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선계는 인간계의 질서를 옮겨 놓았으면서도 인간과는 구분되는 세계이다.
천상계 백옥경은 선계의 최상층에 존재한다.
백옥경에서 옥황상제는 群仙의 조회를 받고,
제반 통치를 관장한다.


그곳은 천상 은하수 저편,
雲霞 자옥한 한 가운데,
붉은 구름이 활짝 열린 곳,
大羅天에 위치하고 있다.
香煙에 둘러싸인 위용도 삼엄한 帝都는 金闕玉樓에다 璧階璇柱로 만들어져,
眞珠簾과 珊瑚鉤, 玳瑁筵과 七寶床으로 꾸며져 있다.
紫鸞笙이 霓裳羽衣曲을 연주하는 가운데,
?庭에 해가 仙人掌을 비추고 琪樹와 瑤草는 눈 부시고,
오색 구름은 九天 위에 펼쳐져 있다.
둘레에 펼쳐진 水晶盤 같은 은하수에서는 龍이 밭을 갈며 曇花를 씨 뿌린다.
옥황의 옷은 扶桑海 위 오색 무지개를 자아 안개와 섞어 짠 실로 만든 것이고,
선녀들이 쓰는 붓은 월궁의 토끼털로 만들었다.

絳闕에 마련된 玉淸壇(天壇) 옥좌에는 옥황상제가 자리를 잡고 있고,
밤새 제천에서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거나 하계에 내려와 잔치를 즐기던 군선들은,
새벽이 되면 봉황, 학, 용, 기린 등 仙禽瑞獸가 끄는 丹輦綠轝를 타고 와 조회를 받는다.
군선들은 손에 《蘂珠經》또는《黃庭經》을 받들고 서 있다.
그러면 기록을 맡은 上宮이 赤書玉字로 된 장부를 꺼내 옥황 앞에서 출석 점검을 한다.
점검이 끝나면 그 결과가 簫臺에 거하고 있는 太乙君에게 보고된다.

옥황상제의 모든 명은 雲篆(瑤篆, 錦篆, 天篆이라고도 함)이라고 하는 이상한 모양의 글자로 쓰여져
紫詔에 적혀 내려지는데,
彩鳳이 이를 입에 물어 전달한다.
그밖에 여러 궁궐에는 위계에 따라 여러 신이 거처한다.
紫霞虛皇과 玉晨君의 거처인 蘂珠宮에는 언제나 桂月光이 비추이고,
그밖에 大林宮, 玉樹宮과 碧瓦殿, 靈?寶殿 등등 수많은 누대와 전각들이 늘어서 있다.
丹?의 太乙爐에서는 丹藥이 익어가고,
그 곁에선 학이 한가롭게 졸고 있다.
술은 流霞酒,
음료는 沆瀣漿 또는 瓊漿으로 만든 般若湯이다.
백옥루가 완성되어 잔치를 할 제면,
龍頭로 만든 술잔에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에다,
학의 등뼈로 된 쟁반에 기린의 脯로 만든 안주를 곁들여 마신다.
해가 지면 瓊戶는 닫히고 大羅天엔 碧煙만 자옥하다.

三壇에선 한 밤이면 長錦誥와 延壽靈方 등 眞經을 강하고,
군선은 아래에 늘어서 이를 듣는다.
廣寒殿은 달 가운데 있다.
옥으로 대들보를 만들었고,
銀燭과 金屛에 둘러싸여 있다.
때로 광한전은 그저 막연히 九天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 달에는 姮娥宮(水晶宮이라고도 함)이 있다.
이곳에선 桂花 그림자 흐는하고 맑은 향내 은은한 가운데,
玉杵 소리가 울려 퍼지고 金盤에선 불사약이 煉造된다.

銀浦는 그 너머로 아스라히 펼쳐져 있고,
霓裳曲에 맞춰 靑鸞이 노닌다.
瓊樹에 이슬이 짙어가는 달밤이면 白兎가 靈藥을 찧는다.
지상선계의 중심은 삼신산과 곤륜산이다.
삼신산은 구름 바다 저편 아득한 안개 속에 있다.
白銀宮과 黃金闕이 있고, 瓊樹에선 瑤花가 피고 碧桃가 열린다.
龍이 새벽이면 九河의 파도를 삼켜 風濤가 이는데 그 소리는 마치 우뢰와 같다.
바다에 떠 있을 뿐 뿌리 내리지 못해 여섯 마리의 巨鰲(神鰲)가 머리에 이를 이고 뜨락 잠기락 한다.
이곳에서 九洲를 내려 보면 터럭 끝과 같고,
동해를 굽어 보면 국자만 하다.
삼신산은 봉래, 영주, 방장의 세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영주와 방장은 작품에서 별반 나타나지 않는다.

봉래산의 주위는 검은 바다 冥海로 둘러 싸여 있다.
바람이 없는 데도 파도가 백장이나 일어나 접근할 수가 없다.
단지 500년에 한 번씩만 길이 열려 건널 수가 있다.
꼭대기 芝城 한 가운데에는 承華殿이 있고,
둘레를 靑鳥가 배회한다.

神人은 六氣를 타고 仙才를 찾아다닌다.
백척이나 되는 丹梯가 놓여 있어 塵緣을 차단하고 이는 다시 천상 珠宮과 연결되어 있다.
金鼎에는 丹井水가 넘치고,
볕이 좋으면 신선들은 赤霜袍를 꺼내 말린다.
芙蓉峯에선 밤이면 綠玉杖을 짚은 신선들과 西王母가 주재하는 잔치가 벌어진다.
琪花, 桂花 흐드러진 가운데 봉황이 피리를 불어 흥취를 돋우면,
바다바람이 불어와 碧桃花를 꺾고 옥쟁반엔 안기생의 대추가 가득 담겨 있다. 
곤륜산은 天帝의 下都로 아득히 높아 일월조차 그 아래 잠겨 있다.
산은 아홉 겹의 층성으로 이루어져 매 층의 거리는 만 리나 된다.
둘레인 鴻毛조차 가라앉는다는 弱水가 흐르고,
꼭대기에는 瑤池가 있어,
밤이면 이곳에서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위에는 玉醴泉이 있어 마시면 불사하고,
珠樹와 文玉樹, 琪樹 및 若木 등의 나무들과 千年桃와 三秀芝가 자라고,
九苞靈禽과 金色獅子가 있다.

아래는 허무하여 八極을 옆에 하고,
위는 옥경과 은하 등 천상계와 통하는 통로가 된다.
옥황상제가 천상계를 주재한다면 곤륜산을 비롯한 지상선계는 주로 서왕모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간혹 둘은 부부사이로 그려지기도 한다.
서왕모는 옥경에 머물다 仙桃가 익으면,
달밤 蘭旌과 藥爐로 꾸며진 五色麟이나 白鳳凰 또는 赤龍이 끄는 五雲車를 타고
靑童과 靑鳥의 안내를 받아 玉環과 瓊佩 소리 요란하게 곤륜산 요지로 내려온다.

신선들도 석양이면 시냇가 백룡으로 내기하여,
그 용을 타고 요지로 향한다.
요지 부용각에서의 잔치는 流霞酒 또는 瓊?를 마시고 선도를 먹으며 素娥의 瑤瑟이 연주되는 가운데 새벽까지 계속된다.
잔치가 파하는 새벽에는 신선들의 귀환 장면이 호들갑스럽게 전개된다.
하계에 내려온 신선들은 동이 트기 전까지 천상으로 복귀를 마쳐야만 한다.
날이 새면 은하수에 놓여 있던 다리는 끊어지고,
백옥경의 구슬문은 닫혀 버려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가 없다.
약수 동편에 瑞霞가 내리는 새벽,
瑤海月은 환하고 샛별은 지는데,
靑童은 백학을 타고 紫簫 불며 彩霞를 뚫고 앞장 서고,
백봉황을 탄 시녀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서왕모는 적룡이 끄는 五雲車를 타고 상계로 돌아온다.

그 수레에는 錦?에 황금 굴레를 얹었다.
신선들은 무지개를 사다리 삼아 步虛登空하기도 하고,
혹 九霞裙에 六銖衣를 입고 鶴을 타고 紫府로 귀환하기도 한다.
그때 봉황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구슬 머금은 용은 몰에 잠겨 있다.

이상 살핀 선계상은 여러 유선 시문에서의 묘사를 장소별로 묶어 종합해 본 것이다.
이들 제 공간은 간혹 서로 혼동되거나 착종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광한궁은 달 가운데에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나,
때로 백옥경과 구분이 모호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곤륜산 또한 서쪽세계 끝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흔히 삼신산과 착종되어 서술되기도 한다. 제 선계가 이들에게 변별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과는 달리 水府 용궁의 묘사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선계란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그려낸 가장 완벽한 이상경,
곧 낙원의 모습이다.
이 유토피아는 관념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건설하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 성격을 띤 서구적 유토피아와는 구분된다.
이는 무릉도원이나 이여도 등 동양 문화권에서 설정하고 있는 유토피아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 유토피아는 모두 시간적으로는 동시대에 속해 있으면서,
공간적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섬이거나 지역에 위치한 관념적 유토피아이다.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여,
관념의 프리즘을 통해 역투사시킨 비현실적 가공의 세계이다.
선계 묘사에서 드러나는 지고와 순수 상징으로서의 ‘玉’ 이미지,
현실계와 달리 적용되는 시간 관념,
색채 이미지 및 숫자 상징, 금기사항 등 선계의 구성원리와 이미지의 의미분석은
중세인이 관념했던 완벽한 삶의 모습을 유추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만한 이러한 세계에 동참하면서,
인간은 티끌 세상의 질곡과 갈등에서 통쾌하게 벗어나는 정신적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다.
선계 공간에서의 행위를 보면,
赤?를 타고 봉래산 芝城에 올라서는,
丹梯를 딛고 珠宮에 들어 난새가 춤추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하주를 마시며 선녀와 잠자리를 같이하는가 하면,
魏伯陽을 만나 飡玉法을 전수 받기도 하며,
태청허공 위에서 티끌 자옥한 하계를 굽어 보기도 한다.
옥녀의 안내를 받아 은하수에 뗏목을 띄워 옥경에 올라 紫霞觴을 훔쳐 마셔 換骨成仙 하는가 하면,
군선의 환영 아래 氷盤에 담긴 벽도를 먹거나 般若湯을 마시며 扶桑池에 내려와 쉬기도 한다.
鶴을 타고 아침엔 聚窟洲에서 노닐며 沆瀣나 石髓를 먹고,
저녁엔 玄洲에 내려 流霞나 안기생의 대추를 먹는다.
이러한 낭만적 오유의 광경은 현세에서의 불우와 좌절을 말끔히 씻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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