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베이징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톈진은 중국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통한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순전히 정치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고통과 희생조차 심각히 여기지 않고 이를 개인의 실수, 혹은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으로 가벼이 넘기는 중국인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은 1960년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자식을 잃고도 좌절하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
베이징역에서 톈진(天津) 가는 기차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 대합실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즉석라면인 ‘캉스푸’와 치킨 한쪽으로 점심을 해결하던 참이다. 갑자기 대합실 한 구석에 사람들이 동그랗게 몰려선다. 무슨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입에서 침과 거품이 나오는 것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베이징역은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른바 ‘농민공(農民工)’들로 늘 붐빈다. 마땅한 잠자리가 없으니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대개는 베이징역을 숙소로 삼는다. 30대 후반쯤 됐을까, 머리는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고, 때에 전 카키색 작업복을 입었다. 행색으로 보아 농민공이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 주위로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보고만 있을 뿐 누구 하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부축해 일으키거나, 응급 전화를 하는 사람이 없다. 참으로 무심하게 그저 바라만 본다. 중국에서는 조그만 말다툼이 벌어지거나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이 금세 벌떼처럼 몰려든다. 관광지에서 요금 때문에 시비가 붙어도 그렇다. 자신을 가운데 두고 많은 사람이 에워싸는 형국이니, 외국인으로서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투고 있는 사람이 외국인이라서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끼리 다투고 있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중국, 구경꾼의 왕국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시시비비에 관여할 생각, 남의 일에 간섭할 마음이 전혀 없다. 역 대합실에 사람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데 다들 구경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손을 쓰는 사람이 없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을 드나들면서 여러 차례 본 광경이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에워싼 사람들은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아파하는지, 어떻게 저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작가 루쉰(魯迅)은 이런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마비된 국민성을 보았다. 루쉰은 “중국에서는, 특히 도시에서는 길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람이 쓰러져도,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쳐도 둘러싸고 구경하거나 심지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개탄한다. 루쉰은 중국인들이 이렇게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이유를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려다 도리어 오해를 산 경험, 옳은 일에 나섰다가 도리어 ‘짐승 같은 권력자’들에게 당한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다. 그런 경험이 쌓여 “자기 집 앞 눈이나 치울 것이지, 남의 집 지붕 서리는 신경 쓰지 말라”는 속담이 생겨났고, 이제는 중국의 국민성이 됐다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도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자리 일에 신경 쓰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 자신이 맡지 않은 일에 공연히 간섭하지 말고 자신의 직무나 충실히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과 생활 경험을 통해 중국인들은 길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도 무관심한 채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됐다. 그래서 루쉰은 중국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대중은 영원히 연극의 구경꾼입니다. 누군가 희생당하는 장면이 등장할 때 그 장면이 감격적이면 사람들은 비극을 구경한 셈이고, 비겁하면 희극을 구경한 셈이지요.”
중국은 구경꾼들의 왕국이다. 중국인들이 공적인 일이나 정치적 민주화에 대해 관심이 적은 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유머의 도시 톈진
영화 ‘인생’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다. 장이머우는 이 영화로 199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남자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 거유(葛優)는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장이머우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도 원작 소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위화(余華)의 ‘살아간다는 것(活着)’이 원작이다.
장이머우 감독에 따르면 위화가 이 소설을 완성하고 발표하기 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날 밤으로 소설을 다 읽은 장이머우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소설을 읽으며 평범한 중국인의 인생철학, 인생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태도가 흥미로웠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강인한 힘, 인내심, 그리고 숱한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결국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소설 속 주인공의 낙관적인 태도에서, 그는 중국인의 전형적인 삶의 태도, 중국인의 인생관을 본 것이다.
원래 소설의 무대는 남부지방인데, 장이머우는 이를 톈진으로 옮겼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톈진 서쪽 교외에 있는 ‘석가대원(石家大院)’이란 곳에서 영화의 초반부를 찍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에 없는 그림자극을 영화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림자극은 주로 북부지방의 예술이라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하기엔 영화 촬영장소로 톈진이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를 톈진에서 찍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중국인의 인생관과 유머와 웃음이 톈진과 썩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톈진은 베이징, 상하이, 충칭과 더불어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다. 충칭은 비교적 최근인 1997년에야 직할시가 됐으니 사실상 중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셈이고, 베이징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성이 남부 도시들에 밀리지만 톈진은 과거에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톈진 하면 떠오르는 명물이 있다. 한동안 베이징 시내를 주름잡으며 베이징 사람들의 발 노릇을 했다가 지금은 한국의 ‘아반테 XD’에 점점 밀려나고 있는 빨간색 소형 택시 ‘샤리(夏力)’, 그리고 중국 즉석라면의 상징인 ‘캉스푸(康師傅)’,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유명한 만두 ‘거우부리 바오쯔(狗不理包子)’ 등이다.
고난을 대하는 삶의 태도
톈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형의 것’도 있다. 바로 톈진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다. 톈진은 유머의 도시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오락 가운데 ‘샹성(相聲)’이란 것이 있다. 예전에 고춘자·장소팔이 하던 만담과 비슷하다. 중국식 만담인 샹성은 톈진의 명물이고, 허우바오린(侯寶林), 마리싼(馬立三)과 같은 유명한 샹성 배우들 대부분이 톈진 사람이다. 톈진 사람들의 ‘입’이 그만큼 유명하다. 톈진 사람들은 긴 단어를 짧게 줄여서, 긴 말을 짧게 줄여서 말하는 데 기막힌 재주를 보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30자를 써서 말할 것을 톈진 사람들은 25자면 족하다. 그렇게 축약을 잘할 뿐만 아니라 말이 빠르고 유창하고, 중간에 쉼이 없다. 만담을 하기에 제격이다.
그런데 말이 아무리 유창해도 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유머다. 물론 그 유머는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는 것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소재가 거의 일상생활에서 나온 것들이고, 서민과 소시민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들이다. 그런 소박한 유머로 서민의 힘들고 지친 삶을 슬쩍 위로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유머가 그렇다.
술꾼이 밤늦게 술에 취해 길을 막고 차를 세웠다. 그런데 택시가 아니라 110이라 적힌 경찰차였다. 차에서 경찰이 내렸다. 중국 서민에게 경찰은 공포의 대상인데, 술에 취해서 경찰을 건드렸으니 큰일난 것이다. 경찰이 “당신 뭐하는 거야?”라며 화를 낸다. 순간 술꾼은 술이 확 깬다. 이제 어떡할 것인가. 당황하면서 말한다. “택시 타고 집에 가려고….” 그러자 경찰이 윽박지르며 말한다. “뭐야? 차에 110이라 적힌 게 안 보여?” 난감한 술꾼이 얼버무린다. “저는, 그게…이 택시는 1km에 1위안 10마오라는 표시인 줄 알고….”
톈진이 왜 유머의 도시가 됐고, 톈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유머 감각이 발달했는가. 혹자는 톈진이 항구도시여서 생존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그런 생존의 압박감에서 다소나마 벗어나기 위해 이런 유머가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 어디 톈진 사람들뿐인가. 중국에서 톈진보다 살기 힘들고 생존을 위해 고생을 겪었던 곳은 수없이 많다. 사실 유머는 그런 고난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고난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서, 삶의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인생관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인생’에는 그런 고난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와 웃음이 들어 있다.
‘인생’은 고난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1940년대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나는 1970년대까지 한 집안이 격동의 중국 현대사 속에서 겪은 고난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푸궤이(富貴)라는 사내다. 이름 그대로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주인공은 노름으로 집과 가산을 탕진한다. 부자이던 시절과 노름을 일삼던 장면을 찍은 촬영지가 톈진 서쪽 교외에 있는 ‘석가대원’이라는 곳이다. 톈진 대갑부의 저택이다. 이 저택에 가려고 톈진역에서 택시를 탔다. 서쪽 교외 지역이어서 대개는 요금을 흥정해야 한다. 40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70위안(9100원) 정도다.
최근 중국에서는 여행 열기가 대단한데, 그중에서도 옛날식으로 재현한 거리나 고택을 찾아가는 여행이 유행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석가대원 주위도 톈진 시정부가 새롭게 관광지로 단장하고 있다. 이런 고택으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영화 ‘홍등’을 찍은 산시(山西)성의 교가대원(喬家大院)이다. 석가대원은 규모면에서는 이에 못 미치지만, 베이징에서 2시간 정도를 투자해 중국 전통적인 대저택의 면모를 느껴보기에는 손색이 없는 곳이다.
278칸 대저택 ‘석가대원’
석가대원은 청나라 때 톈진 8대 부자로 꼽히던 부잣집이다. 건평이 2000평이고, 방이 무려 278칸이나 있는 대규모 저택이다. 그런데 집 밖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가 드러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그런 규모를 느낄 수 없다. 밖에 큰 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사각형이 들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지은 전형적인 중국식 주택이다. 우리나라 전통 양반집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부잣집은 대단히 폐쇄적이다. 밖으로 큰 성곽이 있고, 안에 다시 작은 성곽들이 있는 구조이다. 각각의 독립된 네모 공간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남향인 입구에서 집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지반이 높아지게 설계되어 있는 점인데, 한걸음 한걸음 더 높이 올라가라는 축원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저택에서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곳은 집안에 설치된 극장이다. 여느 대형 극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데다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지은 극장은 소리가 울리지도 않고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설계됐다. 자연 채광과 공연에 필요한 온갖 설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다. 중앙 홀에는 네모난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감상하도록 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곳 극장은 주인공이 날마다 밤새워 놀음을 하면서 재산을 날리는 찻집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 찻집에서 공연하던 ‘잉시(影戱)’라는 그림자극과 소리를 배워 나중에 생계를 도모하고, 군대에 붙잡혀가서 요긴하게 써먹기도 한다. 주인공은 찻집 주인에게 노름빚으로 집을 넘겨주면서 찻집 주인에게 간청해 그림자극 도구가 든 상자를 얻는다.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밥벌이를 하다가 돌연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에 차례로 끌려가 군인 노릇을 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신중국 인민이 된다. ‘인생’은 주인공 푸궤이의 인생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궤이 집안의 몰락은 봉건 중국의 종말을 상징한다.
“우리는 꼭 잘 살자”
푸궤이는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인민공화국의 평범한 인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노름빚 대신 푸궤이의 집을 차지한 찻집 주인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지주 판정을 받고, 정부의 명령에 대항하다가 결국 총살당하고 만 것이다. 이를 본 주인공 푸궤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때 집과 전답을 노름으로 잃지 않았으면 내가 저 자리에서 총살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우리는 꼭 잘 살자!” 하고 다짐한다.
푸궤이 아내 역은 궁리(鞏?)가 맡았다. 아내는 푸궤이가 군대에 끌려가 있는 동안 집안을 건사하고, 열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된 딸과 아들을 돌본다. 그런데 대약진운동(1958∼60) 때 딸과 아들을 모두 잃는다. 대약진운동은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구호와 함께 전 국민이 동원된 사회주의 공업화 운동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인민공사에 편입됐고,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했다. 특히 마을마다 소형 용광로를 만들고는 집에 있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가져다 녹여 철을 만들었다. 영화는 이런 대약진 시대의 광경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당시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쇳덩이를 모으고 집단 급식을 했으며 밤새워 일을 했다. 물론 대약진운동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시골 마을에서 그 많은 철을 어디다 쓸 것인가.
영화에서 대약진운동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의 아들 유칭(有慶)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초래된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너나없이 용광로 앞에서 철을 제련하느라 밤샘을 하던 어느 날 밤 학교에서 전갈이 온다. 철을 제련하는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당 간부가 시찰 나오기로 돼 있으니 아이들을 급히 학교로 보내라는 내용이다. 아이 엄마는 잠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그냥 자게 내버려두자고 하지만, 푸궤이는 기어코 아이를 깨워서 학교에 보낸다.
거듭되는 비극과 후회
그런데 잠이 덜 깬 아들이 학교 담장 밑에서 잠을 자다가 무너진 담장에 깔려 죽고 만다. 학교 시찰을 나오던 당 간부가 연일 계속되는 밤샘 때문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학교 담장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이다. 공교롭게도 사고를 낸 당 간부는 주인공과 군 생활을 함께 한 전우다. 주인공은 후회한다. ‘그때 학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이 후회는 아들에 이어서 딸을 잃은 뒤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영화는 이어서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의 중국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모두 마오쩌둥 찬가를 부른다. 그런 가운데 마을 이장이 푸궤이에게 사윗감으로 다리를 저는 노동자를 추천한다. 장애가 있지만 노동자이기에 사상적으로 선진적이고, 안정적이라 푸궤이 부부는 매우 흡족해했다. 딸 펑샤(鳳霞)는 마오쩌둥 찬가를 부르며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마오 주석에게 경례를 하면서 결혼식을 올린다. 딸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던 날, 주인공 부부는 딸이 있는 병원으로 간다. 그런데 그 병원에 의사는 하나도 없고 온통 홍위병뿐이다.
문화대혁명은 초기에 ‘부르주아적인 반동 학술 권위자’들을 타도하는 운동이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경제적·정치적 기초는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상은 여전히 봉건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게 불만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 사심 없이 혁명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권의 관료가 된 뒤에는 예전의 순수함을 잃고 관료주의에 빠져 새로운 특권계급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마오쩌둥의 메시지를 받아 홍위병들이 들고 일어났다. 타도의 대상은 봉건주의와 부르주아 의식에 사로잡힌 반동적 학술 권위자로 지목된 교사와 작가, 의사 같은 지식인들과 관료주의에 빠진 고위 관료들이었다.
홍위병들은 주인공의 딸이 아이를 낳기 위해 입원한 병원도 접수하고, 의사들을 모두 반동적인 학술 권위자로 몰아 비판했다. 홍위병 학생들이 아이를 받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했던 푸궤이는 신분 좋은 사위에게 의사 한 사람을 몰래 빼오라고 지시한다. 주인공은 사위가 데려온 굶주린 의사가 안타까워 보여 만두를 사준다. 굶주린 의사는 만두 7개를 단번에 먹는다. 그 사이 딸은 아이를 낳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홍위병 학생들이 손을 쓸 수 없어 급히 의사를 찾지만 의사는 만두를 급하게 먹고는 탈이 나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결국 딸은 과다출혈로 죽는다. 딸이 죽은 뒤 주인공은 이렇게 후회한다.
‘그때 내가 의사에게 만두만 안 줬으면 펑샤가 죽지 않았을 텐데….’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되지”
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주인공은 아들과 딸을 잃었다. 아들과 딸이 죽은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적·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대약진운동 기간에 인민을 동원해 밤새 철을 제련하게 하지만 않았다면 아들이 담장 밑에서 졸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 간부도 졸음운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때 병원에 의사들만 있었어도 딸이 과다출혈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과 딸이 죽은 궁극적 원인은 정치적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들과 딸을 잃은 비극과 재난을 정치적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는다. 정치적 재난과 개인의 비극 사이에 우연을 개입시킨다. 그래서 주인공은 두 아이를 잃을 때마다 자신이 그때 학교를 보내지 않았거나 의사에게 만두를 주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더구나 주인공 푸궤이는 아들과 딸을 앗아간 그런 재난의 시대와 세월에 대한 원망이나 원한도 없다. 그러한 비극과 재난에 초연한 채 그저 자신이 저지른 우연한 실수를 탓하며 웃음으로 넘긴다. 영화는 매우 심각한 정치적 비극과 재난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간간이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세상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이 없는 가운데 삶의 재난과 비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대약진운동 때 주인공은 아들이 “병아리가 크면 뭐가 되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병아리가 커서 거위가 되고, 거위가 커서 양이 되고, 양이 커서 소가 되고,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되지.”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에 주인공은 이번에는 손자에게 끝만 바뀐 똑 같은 대답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병아리가 커서 거위가 되고, 거위가 커서 양이 되고, 양이 커서 소가 되고, 소가 크면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지.”
대약진 시대에 가졌던 공산주의에 대한 꿈이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에는 기차와 비행기를 타는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살다 보면 내일은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대갓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그 많던 재산을 잃고, 생과 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는가 하면 자식 둘을 잃었지만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다. 장이머우는 이런 푸궤이의 태도가 평범한 중국인의 삶의 태도, 중국인의 인생관이라고 본 것이다. ‘인생’을 현대 중국 역사의 비극을 드러내는 영화라기보다 중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참을 인(忍), 질긴 인()
중국에서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니라 고통을 참으면서 끈질기게 버티는 중국인들을 만날 때다. 그런 중국인을 만나면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한심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고 무섭기까지 하다. 가령 15위안(190원)을 벌기 위해 어깨에 짐을 메고 타이산(泰山) 정상까지 80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렇다.
중국인은 세계에서 인내심이 제일 강한 사람들이다. 중국인들은 오랜 기간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많은 인구가 먹고 살아가기 위해 참고 견디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인의 인내심은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어떤 고난이라도 묵묵히 참아내는 태도이다. 그리고 이런 인내심은 곧잘 끈질김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고, 아무리 적은 대가가 주어지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요컨대 중국인은 두 가지 ‘인’의 특성을 가진 민족이다. 첫 번째 인은 인내를 뜻하는 참을 ‘인(忍)’이고, 두 번째 인은 끈질기다는 뜻의 질긴 ‘인(혛)’이다. 이것이 중국인 고유의 품성이자 능력이다. 물론 중국인의 약점이자 강점이다.
이런 중국인의 품성이 중국인 특유의 운명론과 결합되면서 삶에 대한 낙관주의를 낳는다. 불행과 재난에 처해도 ‘이게 내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마음을 다스린다. 중국인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그냥 견딜 수밖에 없지 뭐.” 그래서 이런 중국인의 인생관이 나왔다. ‘자기만족을 아는 사람은 늘 즐겁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편안하다(知足者常樂, 能忍者自安).’ 이런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만족을 찾는 안분지족(安分知足)과 낙관에서 웃음과 유머가 나온다. 실패나 좌절, 고난과 시련에도 너그러운 관용의 태도를 취할 수 있고, 담담하게 그것을 관조할 수 있으며 운을 하늘에 맡기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웃음으로 삶을 구원
장이머우가 ‘인생’에서 창조한 푸궤이는 바로 이런 중국인의 인생관과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장이머우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의 주제는 죽는 사람은 죽더라도 사는 사람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잘 죽는 것보다는 비참하더라도 버티며 사는 것이 낫다는 태도는 분명 구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진실한 생명의 존재 상태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가 “잘 살아야 해!”라는 대사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푸궤이는 거듭된 재난과 비극 속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자극처럼 국가와 운명에 조종당한 채 살았다. 그러나 그런 삶이 바로 운명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그래도 사는 것이 낫고, 그러다 보면 좋은 날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닌 푸궤이는 거듭된 재난 속에서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니 웃음과 유머로 재난이나 비극과 거리를 두게 되고, 재난 속에서 자신의 삶을 구원한다. 그는 진정한 중국인이다!
푸궤이가 자기 아들과 딸을 잃은 것은 자기 자신 탓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얼굴에서 웃음과 유머를 거둘 때 중국의 정치적 민주화는 한층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푸궤이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중국의 정치 민주화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인 것은 이 때문이다.
톈진에 가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않고 맛을 보는 것이 ‘거우부리 바오쯔’라는 만두다. 우리는 흔히 만두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세 가지로 각각 나눠 부른다. 우선 바오쯔(包子)는 속에 고기나 채소 소가 들어 있는 것이고, 만터우(饅頭)는 어른 주먹만한 크기지만 반죽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몇 번 먹어 보면 나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중국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만터우다. ‘인생’에서 주인이 의사에게 준 것은 바로 이 만터우다. 그런가 하면 자오쯔(餃子)는 우리나라 물만두이다.
톈진의 거우부리 바오쯔는 100년 된 가게에서 만드는 일종의 고기만두다. 고기가 많이 들어 있는데도 느끼하지 않고 피가 얇으면서 쫄깃한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유명해서 톈진뿐만 아니라 중국 어디를 가도 맛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은 톈진 기차역에 체인점이 있어서 굳이 본점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이집 만두는 맛도 맛이지만 이름 때문에 더 유명하다. ‘거우부리 바오쯔’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개가 상대하지 않는 만둣집’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원래 이 집 주인의 아명이 ‘개(狗子)’였는데, 장사가 잘되어 사람들이 불러도 아는 체할 틈이 없자 “개가 만두를 파느라 도무지 상대를 안 하네”라고 말하던 데서 연유했다는 설이 그 하나다. 또한 만두는 맛이 있는데 주인 성질이 워낙 나빠서 개도 상대하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던 데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이 집 만두를 먹고 유명한 톈진 골동품 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톈진 관광의 필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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