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염화실의 향기_19 봉화 문수산 금봉암 고우스님

醉月 2010. 11. 26. 08:19

[염화실의 향기](19) 봉화 문수산 금봉암 고우스님

-‘이기심 버리면 ‘날마다 좋은날’-

문수산 금봉암 마당에 선 고우스님. “불교에는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다 함께 ‘무한 향상’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나와 너, 좋고 나쁨, 있고 없음 같은 분별심과 이기심만 버리면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금봉암(봉화)/박재찬기자>
태백·소백산 ‘양백지간’의 경북 봉화 문수산. 지역 특산인 금봉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밭길을 지나니 거기, 금봉암이 있었다. 고우(古愚·70) 스님이 반갑게 맞아줬다. 스님이 명당터라고 자랑하는 암자는 첩첩 준령 문수산 중턱에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을 갖췄다. 스님은 법당 불사 마무리 작업을 지휘하느라 바쁘게 공사현장을 오가고 있었다. 문수산 가을은 깊고 사과밭을 지나온 바람은 달디 달았다.

# 무한경쟁 하지 말고 무한향상하라

올해 초 스님이 이끈 중국 선종사찰순례에 동행했다. 당시 스님은 “변함없는 지혜(반야·般若)는 마치 세탁기와 같아서 이기심, 갈등, 대립, 투쟁, 집착을 세탁해 구름이 걷혀 저절로 해가 비치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준다”며 선(禪)을 세탁기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 세탁기 얘기를 다시 꺼냈다.

“세탁기는 무아(無我)이자 공(空)의 세계죠. 이 세탁기에만 들어가면 나와 너, 좋고 나쁨, 있고 없음 같은 분별심이 깨끗이 세탁됩니다. 세탁된 마음에서 서로서로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생깁니다.”

고우스님은 선승의 서릿발 같은 위엄 대신 나직나직 해서 듣기 좋은 목소리와 푸근한 미소를 지녔다. 온화한 얼굴에 성성하게 꿈틀거리는 굵고 흰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스님이 손수 사과를 깎고 차를 따랐다. 스님은 불교를 일상의 언어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렵고 추상적인 선불교는 그에게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가 된다.

법당 불사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의 암자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스님은 “불교에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며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몇년 전 영주에서 식당을 하는 보살이 스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고 한다. “장사가 너무 안됩니다.” 스님은 “손님이 오면 돈으로 보지 말고 은인이라고 생각하라”고 권했다. 지금 그 식당은 종업원 열 명이 일할 정도로 성업중이다.

“이기심으로 식당을 하면 손님이 돈으로 보일 수 있어요. 무아에서 장사를 하면 손님이 내 생활에 보탬을 주는 ‘은인’으로 보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왔는데 얼마나 잘 해주겠습니까.”

스님은 “불교는 바른 견해에 눈뜨는 것(정견·正見)”이라며 “식당 주인처럼 불교를 생활화하고 사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지어져(연기·緣起) 그 가치와 의미를 드러낸다”며 “불교 공부는 시각을 바꾸는 ‘생각의 혁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가 부처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완벽한 존재라는 거죠. 그걸 모르니까 좀스런 인생을 사는 겁니다. 위대한 존재답게 위대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선입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본질’은 연기, 공, 무아, 중도(中道)입니다. 말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불교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겁니다.”

스님은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세상살이의 세탁기를 갖는 것”이라며 “‘나’에 집착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양변(극단)을 여읜 중도로서 조화롭게 판단하고 행동하면 삶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수행을 해서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해만 하면 생활이 달라집니다. 시각만 바꿔 어떤 고정관념과 주관, 객관을 부수기만 하면 따로 수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는 경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기심을 버리면 무한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어요.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 거지요. 그것을 나는 ‘무한향상’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면 귀천(貴賤), 고하(高下)도 없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쌓이면 지혜가 생기고 인격이 형성됩니다. 그것이 경쟁을 벗어나 무한향상 하는 길입니다.”

스님은 ‘무한향상’을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시각을 바꾸면 생활 속에서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도 단순 명쾌하게 해결해 자신과 주변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며 “화나고 짜증나는 일이 줄어들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시각을 확고하게 바꿔야지요. 가정과 직장은 훌륭한 선방입니다. 똥 푸는 일을 수행이라고 여기면 수행입니다. 생활 속에서 나를 앞세우지 않으면 유연해집니다. 분노와 미움, 투쟁심 대신 자비와 연민의 마음이 됩니다.”

-결국은 자기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불교는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사랑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겁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 학대지요.”

스님은 부처님 당시의 수달다 장자 이야기를 꺼냈다. 부처님은 부자이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은 보시를 하는 수달다에게 “너는 더 가져도 좋다”고 했다. 스님은 “이기심이 없으면 많이 가져도 무소유”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좋은 법을 공부하는 스님들이 왜 시끄럽게 다툽니까.

“일부 스님들이 승복을 입고도 세속의 가치를 추구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수행과 생활이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없지요.”

# ‘나’가 없으니 갈등도 없다

고우 스님은 젊은 날 폐결핵에 걸려 요양차 산사를 찾았다가 그 길로 출가했다. 스님은 평생을 선방에서 참선수행으로 일관했다. 현재 조계종 선승들의 특별선원인 경북 문경 봉암사 선원을 재건하는 데도 스님의 공이 컸다. 1968년 10여명의 도반과 함께 성철스님 등이 시작한 ‘봉암사 결사’를 마무리 하기로 결의하고 봉암사에 들어갔다. 스님은 그후 각화사 태백선원장을 맡아 수좌들을 지도하면서 17년 동안 각화사 암자인 서암에 머물렀다. 토굴 같은 암자에서 홀로 지내며 손수 밥하고 빨래하는 생활을 했다. 2년 전 금봉암으로 수행처를 옮겼다. 지금도 시봉하는 상좌는 따로 없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갈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이란 크게 하나로 통합해서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다 안고 갈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들도 자주 중도를 말하는데요.

“정치인들은 황새 다리 잘라 뱁새다리에 붙이는 식으로 중도를 말합니다. 긴 것은 자르고 ●은 것은 늘이는 절충은 중도가 아닙니다. 중도는 양변과 중간까지도 모두 초월하는 겁니다. 진정한 중도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불교가 갈등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까.

“다른 종교는 모두 창조주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불교는 연기설(緣起說)을 말하기 때문에 창조주가 모든 존재에 보편돼 있습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면 인종갈등, 이데올로기갈등, 민족갈등, 종교갈등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불교는 세상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는 훌륭한 처방전입니다.”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스님이 세계적으로 불교 붐을 일으켰지요.

“그들은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좋은 과보를 받는다’는 단순한 인과법문을 합니다.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일입니다. 그런 가르침은 독풀을 돌로 누지르는(누르는) 것과 같아서 뿌리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아집을 키웁니다. 본질과 가치를 이해하고 매순간 좋은 생을 살아야 근본이 변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선불교는 훨씬 심오하고 근본적입니다.”

-그래도 신도들은 전생의 업과 윤회를 믿는데요.

“업은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죄의식이지요. 본질을 이해하는 순간 업은 없어지고 모든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죠. 업은 실재가 아니라 허구이자 착각의 세계입니다. 다른 종교는 원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불교는 업도 없고 죄도 없는 것입니다.”

스님은 “한국 선불교의 특징을 살린 국제적인 ‘선센터’를 만들어 참선을 지도하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 간화선(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우스님은 요즘 간화선 강의에 열심이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을 통해 선의 교과서격인 ‘선요’ ‘서장’ ‘금강경’ 등을 지도하고 있다. 최근들어 간화선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바람을 일으킨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일반 신도 뿐 아니라 스님들에게도 그의 강의 녹음테이프는 인기가 높다. 간화선 수행법을 정리한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 편찬도 스님이 주도했다.

스님은 불교의 ‘공’과 ‘연기’가 현대 물리학에서도 입증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물리학자들이 소립자인 힉스가 어떤 에너지를 만나 물질화한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그것을 찾기 위해 연구중”이라며 “이 소립자가 발견되면 존재의 형상 뿐 아니라 본질도 있다는 불교의 공 개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스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날이 저물고, 다시 날이 밝았다. 스님은 아침 공양 후 차를 따르며 한마디 더 당부했다. “정(正)과 사(邪)를 구별하면 이기심을 놓을 수 있어요. 사는 유무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집착과 이기심을 버리면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될 것입니다.” 금봉암 외길을 돌아나오는 동안 ‘구름이 걷히니 태양이 절로 나왔다’(雲開日出). 문수산 숲에 단풍들고, 산새 짖고, 바람 지나가는 가을 법문이 가득했다.

▲ 고우스님은?

1937년 경북 고령에서 났다. 25살 때인 1961년 김천 청암사 수도암 법희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관응스님으로부터 ‘기신론’을, 고봉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혼해스님으로부터 ‘원각경’을 배웠다. 봉암사 묘관음사 축서사 금영사 용주사 각화사 등 선원에서 정진했다. 1968년 문경 봉암사 선원을 재건해 종립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1980년 10·27법난 수습을 위해 수좌회의 결의로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맡았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 대표, 각화사 태백선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

 

내가 본 고우스님… 禪에 대한 명쾌한 해법
고우스님은 고봉, 관응, 혼해 강백으로부터 강원 공부를 하다가 참선에 뜻을 두어 향곡 선사가 계신 묘관음사로 가서 첫 안거를 난 이래 평생 선의 길을 걸어 오셨다.

박희승씨(왼쪽)는 틈틈히 고우스님을 찾아 불교와 선에 대해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는다.
1968년경 도반들과 함께 구산선문의 하나이자 결사도량으로 유명한 문경 봉암사에 들어가 선원을 재건하여 선승 중심의 원융살림 전통을 세워 오늘날 한국불교의 자랑이 된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근대의 선지식인 향곡, 성철, 서옹, 서암 선사에게 두루 참문했다. 일찌기 선풍 진작에 뜻을 세워 선승들의 모임인 선납회(禪衲會, 지금의 선원수좌회) 창립을 주도했고, 1988년에는 해인사에서 안거 해제 때 선어록을 공부하는 선화자(禪和子)법회를 3박4일 동안 열기도 했다. 이후 선원수좌회 공동대표와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을 지내셨다.

내가 처음 스님을 뵌 것은 2002년 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에서 일했는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잦은 내분과 갈등의 원인과 대안에 대하여 고민할 때였다. 또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내 마음 속 갈등도 컸다. 나는 이런 문제에 답을 주실만한 선지식을 추천 받았다. 그때 고우스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 뵈었을 때 스님께서는 태백산 각화사 서암에 홀로 계셨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모습에 늘 미소를 머금은 노스님께서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미동도 않고 젊은 불자의 번민과 종단 문제에 대하여 명쾌한 해법을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동안 앓아온 마음속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날 밤 태백산 작은 암자를 비추던 보름달은 유난히 빛났다.

그 후 나는 한 달이 멀다하고 태백산 암자로 스님을 찾아뵙고 불교와 선에 대하여 물었다. 그때마다 스님께서는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셨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좋은 말씀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의 말씀을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기 위해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것이 스님을 번거롭게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갈등과 괴로움이 크니 이 인연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