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02

醉月 2010. 11. 29. 08:43

천국의 열쇠는 바로 동심(童心)

'어린아이의 마음'은 <카르마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육체가 죽지 않고 어떻게 비누방울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카르마가 약하게 작용하거나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이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이유를 말할 필요가 없다”는 파스칼의 말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영혼은 존재를 의심하는 순간 장막으로 단절됩니다. 미국인이 한국의 묵은 김치 맛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무변광대한 영혼세계를 직접 맛보지 않은 사람이 영혼을 알 수는 없습니다.

눈을 감아야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세상이 보입니다. 밝아야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어두워야 수십 광년 멀리 있는 별들이 보입니다. 소리가 클수록 잘 들린다고 하지만, 정작 지구가 돌아가는 엄청난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기(느끼기) 위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지식, 과학, 도, 철학, 도덕, 종교의 교리를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선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천진해야한다고 합니다. 천국의 열쇠는 바로 <아이의 마음>인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우리는 아이들 마음을 막연히 천사 같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키워본 사람이면 아이들에게 혀를 내두릅니다. 한국에는 ‘사내아이 둘 키우는 엄마가 제일 불쌍하고, 사내아이 셋 키우는 여자는 조폭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주부는 아이 돌보는 것을
'하루 18시간을 악마에게 시달리다가, 6시간 천사의 노래를 듣는 일’
이라고 합니다. 그 6시간은 아이가 자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찬찬히 관찰해보면 요즘 말로 확 깨는 경우를 허다하게 접하게 됩니다. 형제간에 그 증오와 질투는 해코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요구하며 떼쓰고 우는 아이. 공공장소에서 어른들의 엄중한 말류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아이. 아마도 악마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린이집 교사의 이직률이 최고 높은 축에 든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 합니다. 사람인 아이의 마음도 잘 모르면서 천사의 마음을 안다고는 할수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이라고 한 것은 <카르마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잘도 삐지고 잘도 웃습니다. 어른이라면 배알도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 노인정에서 장기 두다가 다툰 노인들이 서로 한번 삐지면 해를 넘기는 것도 모자라 죽으면서까지도 마음에 새기고 가져갑니다. 오죽하면 옹고집이라고 했을까요. 아이들은 슈퍼맨 흉내 낸다고 옥상에서 서슴없이 뛰어내리는 천둥벌거숭이입니다. 이해득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재거나 남과 비교하고 합리적 인과율로 판단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어떤 논조나 논리에 빠져있지 않습니다. 천진무구한 마음,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카르마가 약하게 작용하거나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이의 마음입니다.

천진한 천재와 영민한 천재
역대 천재적인 과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혹시 바보가 아닐까싶은 일화가 많이 발견됩니다. 뉴턴은 연구실에서 계란대신 회중시계를 넣고 삶았습니다. 동료학자가 찾아와서 포도주를 마시기로하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연구실로 들어가 하던 연구를 하는 실례를 저지릅니다. 에디슨은 도끼로 가죽 끈을 자르려다 손가락을 자르고 맙니다. 거위 새끼를 까겠다고 거위 알을 품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내에서 종종 길을 잃고 난감해했습니다.
우리는 천재를 셈에 밝고 시험잘보는 영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큰 천재는 하늘이 내립니다. 큰 부자를 하늘에서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순진한 사람을 택합니다.

옛날의 과학자들은 허허벌판에서, 열악한 이론과 실험실에서, 기존 절대 통치자들의 통념을 거스르며 목숨을 걸고 하늘의 양심을 지켜야 했습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학교에서 지식을 전수받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수재들이 연구실로 향합니다. 그래서 사리에 밝고 이치는 잘 따질 것입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너무 빈틈이 없고 똑똑해서 정작 영혼의 세계나 창의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영혼은 증명해서 무엇에 쓰려고(영혼 증명의 목적)

영혼의 해원상생(解寃相生)이 목적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한 발은 단지 '증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계와 영계사이의 교류와 교류 목적의 문제까지 포함되어야 하고, 교류목적은 영혼의 해원상생(解寃相生)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과거 이탈리아 반도가 ‘보이는 세계’의 르네상스의 진원지였다면, 향후 한반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르네상스 진원지

 

맹인은 보이는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 있습니다. 과거에는 맹인들의 예지능력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지능력 개발을 위해 인위적으로 맹인을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에 대한 예지가 아니라 예지의 인과를 연결하고 있는 고리를 푸는 능력, 즉 해원능력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작년에 미래학자인 엘빈토플러와의 대담에서 그가 제게 묻고자 했던 바로 영혼의 증명문제였습니다. 과학의 당면 과제가 영혼인데 그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영혼의 증명을 최고의 선으로 치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혼을 증명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는 지까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형하면 당연히 매력도 가꿔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외형적 개성은 바꾸어도 내면적 매력은 외과수술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성형열풍이 대단해서 일부 여자 연기자들이 아니라 남자,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성형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의 얼굴과 인체 성형의학은 이제 성전환수술에서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피부성형이 아니라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고유의 성을 바꾸는 성의 성형으로 비약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기의 손기술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보다 비용은 1/10이지만 기술은 100배가 좋다는 말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알게 모르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고 치료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인체를 성형하여 개성은 만들어도 인간의 내적인‘매력’까지 성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상계 과학의 연장선에서 영혼 증명의 목적을 물질적 조작에 초점을 맞추면, 현대 성형술의 오류와 같이 매력은 묵살하고 피부거죽에만 집착하는 헛점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영계가 문을 굳게 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인류에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무변광대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고 다루는 능력을 배양하여 보이는 세계의 인류에게 어떤 교류와 역할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설정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한반도는 이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유일의 냉전 분단국가 입니다. 신(神)은 분단 한국을 모델로 인류의 해원상생 능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인의 대부분이 영능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소엔 축구장 한번 안가면서 월드컵에는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거리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그것도 레드콤플렉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지독한 나라에서 어느 사회주의 국가의 집회보다도 일사분란하게 붉은 옷을 입고 말입니다. 남북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대지만 하나같이 틈만 나면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최고 경영진뿐 아니라 말단까지도 마치 자신이 차기 대권자인처럼 나라를 비판하고 견해를 밝히는데 열변을 토합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극렬한 시위로 이름이 나있습니다. 도덕적인 것 같으면서도 방만하고, 난장판인 것 같으면서도 인격적입니다. 뾰족하게 드러나는 영성(靈性)은 어떻게 말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매력을 성형수술 잘 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조상님께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고 깍듯이 차례를 지내는 곳은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한국은 합리적인 과학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의 면면을 훨씬 더 많이 갖춘 영혼의 DNA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이탈리아 반도가 ‘보이는 세계의 르네상스 진원지였다면, 향후 한반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르네상스 진원지가 될 거라고 감히 예감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한 발은 단지 '증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계와 영계사이의 교류와 교류 목적의 문제까지 포함되어야 하고, 교류목적은 영혼의 해원상생(解寃相生)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혼의 증명은 인간의 매력까지도 성형해야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구명시식>을 통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해원상생의 퍼포먼스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를 다루는 법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마을과 인접한 산중에 한 스님이 포교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마을을 지나 출입을 할 때마다 마을 아이들은,
“중중 까까중...”
노래를 부르며 심하게 놀려댔습니다. 스님은 처음엔 그러려니 했으나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부아가 치밀고 내가 왜 저런 꼬마들에게 당하면서 살아야하나 신세타령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빙빙 돌며 노래 부르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스님은 그의 충고대로 노래를 참 잘 부른다며 사탕과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나중엔 그 놀이가 시들해졌고 스님과 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영혼을 부르는 사람(저서 '영혼을 팔아먹는 남자이야기.1999.' 中에서)

 

나는 영매자(靈媒者)이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이음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13년 동안 이 고되고 힘든 ‘이음쇠’의 길을 걸어온 필자를 사람들은, 영혼을 부르는 사람, 영혼을 달래주는 사람,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까치’라 불러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까치’는 길조(吉鳥)로, 예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널리 사랑받아 온 이 땅의 텃새이며, 국조(國鳥)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가운 인연을 청명한 울음소리로 알려주는 까치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인연을 잇는 영매자에겐 참으로 반가운 동지이다. ‘인연’을 이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보람된 일이 아닌가. 다른 것이 있다면, 까치는 ‘지저귐’으로 반가운 인연을 알리고, 필자는 ‘구명시식’으로 저승과 이승을 잇는다는 점일 것이다.
구명시식(救命施食)이란, 저승과 이승을 잇는 초혼의식으로, 필자의 주제로 열리는 이 구명시식을 통해 이미 많은 분들이 저승에 있어 만날 수 없었던 부모형제를 만나 이승에선 차마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나누고 돌아갔다.
그 후로도 구명시식을 올린 가족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거나,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등의 좋은 소식들을 전해오고 있어 필자의 가슴 한켠은 이들이 전한 감사의 마음으로 늘 따스하다.
15년간의 구명시식. 물론 그동안 모든 구명시식이 필자에겐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지난 1999년 3월 17일에 있었던 구명시식은 그 어떤 구명시식보다도 의미있는 것이었다. 필자의 어머니신 무위심 보살님이 참석한 마지막 구명시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여든이신 무위심 보살님은 간경화로 이제는 더 이상 구명시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신 것이다.
마지막 구명시식을 집전하는 동안, 참으로 온갖 만감이 교차했다.
빨치산 토벌대장이셨던 아버님 차일혁 총경께서 구명시식의 시조신이라면, 어머님께서는 구명시식의 수호신이셨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와 영적세계를 수시로 왕복해야 하는 영매자의 눈에 비친 영혼의 세계는 한없이 넓고 한없이 깊은, 때로는 칠흑보다 어둡고 때로는 햇빛보다 밝은 오묘한 세계였다. 그 알 수 없는 세계를 드나들어야 하는 구명시식은 예술을 창조하는 작가보다도 더 큰 고통속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매번 구명시식에 임할 때마다 생사를 헤매야 하는 아들의 곁에서 수호신처럼 지켜주시던 어머님의 꼼꼼한 배려와 침묵의 응원이 없었다면 필자에게 구명시식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일로 남았을지 모른다.
간경화로 고통스러우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구명시식에서도 자세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묵묵히 의식을 참관하셨던 어머님.
이제 병석에 계신 어머님께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 드렸으면 하는 의미에서 그 동안 어머님과 함께 했던 지난 13년간의 구명시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했던 구명시식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한다.
이제부터 시작될 구명시식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는
여러분께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영혼세계와 더불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탐험의 시작(저서 '영혼을 팔아먹는 남자이야기.1999.' 中에서)

 

나의 고향은 산 좋고 물 좋은 전주이다. 지금도 그곳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곤 한다. 더욱이 전주시의 상징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까치’ 라는 새다. 까치는 이승의 인연과 저승의 인연을 이어주는 새로, 나의 별명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육신의 고향이 전주라면, 영혼의 고향은 아버지일 것이다. 영혼을 탐험하는 영매자가 된 계기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계기가 나에겐 슬픔으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1958년 8월 9일, 음력 6월 24일, 14시 15분 –운명의 시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이날 우리 가족의 단란한 물놀이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참한 사건이 열한 살 어린 소년에게 영능력이 있음이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 사건이 될 줄이야….

물론 영능력에 대한 징후는 그 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6.25 당시 피난차 잠깐 들어간 낯선 집에서 어린 내가 갑자기 옥수수가 먹고 싶다면서 울며 보채는 바람에 어머님은 나를 데리고 인근 옥수수밭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그러나 옥수수밭을 찾지 못해 다시 그 민가로 들어가려는데 그 민가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엔 폭격으로 몰살당한 피난민들의 시신만이 뒹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영혼을 처음 본 것도 그와 비슷한 시기인 여섯 살 때, 숨바꼭질을 하다 찾아들어간 방공호 안에서 수십 명의 원혼들을 보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난 열살 때, 염소에게 먹이려고 당시 전주공고 뒤뜰에서 아카시아 잎들을 따다가 발이 없는 영혼을 보기도 했다. 또한 아버님의 마지막 임지인 공주경찰서장 관사에서는 일본인 경찰국장에게 성폭행당했던 하녀의 영혼을 만나는 등 어렸을 적에도 여러 영혼들의 존재를 목격하며 자라왔지만, 대부분 나 혼자만의 경험이었고 작은 사건일 뿐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그러나 1958년 8월 9일 바로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금강에서 유유히 수영 중이셨던 아버지께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으셨던 것이다. 워낙 운동과 수영에 능한 분이라 금방 나타나실 줄 알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길진 아버지! 길진 아버지!”
어머니의 비명과도 같은 절규와 함께 지루한 수색작업이 시작되었고, 19시간 동안 수십 명의 수색원들이 뒤져도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내 눈에 아버지의 시체 위치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말대로 시체를 수색해 보니, 아버지 시신은 내가 본 그대로,도강(渡江)하다 잠겨버린 북한군 탱크를 끌어안은 채 물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시신을 건져, 반듯하게 백사장에 눕히자 코와 입, 그리고 귀 등에서 피가 나왔다. 예로부터 반가운 사람이 오면 시신에서 피가 나온다는 말이 있어 가슴이 아파왔다.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그 피를 닦아 드리자 곧이어 아버지의 음성이 또렷이 들려왔다.

“길진아! 나는 억울하다. 이곳에서 죽는 것이 참으로 억울하다. 죽더라도 금강이 아니라 알류강(암록강)에서 죽어야 하는데…길진아, 내 억울한 한을 꼭 풀어주길 바란다.”

환청은 분명 아니었다. 그 소리는 열한 살 아들에게 던지는 유언과도 같은 아버지의 음성이며, 외침이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자신의 큰뜻인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이 끝내 한이 되셨는지 ‘한을 풀어달라’ 며 당부하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한맺힌 절규. 누가 ‘죽은자는 말이 없다’ 고 했던가. 죽은 자야말로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외침을 내뱉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 그것은 어린 나에겐 큰 충격이었지만. 그 사건을 통해 나의 영혼탐험은 시작되었다.

깨달음의 나무

 

가지치기를 잘 한 나무가 큰 나무가 됩니다.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서 옵니다. 버려야 단순해집니다. 큰 힘은 단순한데서 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한그루 나무를 가꾸며 삽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무를 크게 키울 수 있을까요?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할까요? 충분한 햇빛과 물을 주어야할까요?
아닙니다. 가지를 쳐야합니다. 사정없이 잔가지를 잘라 내야합니다.

깨달음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허드렛일을 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 스승은 언질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참다못한 제자는 작정을 하고 스님과 대좌했습니다.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삶과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람이 차다.”
“도란 무엇입니까?”
“문 닫아라.”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
스승이 딴청을 한다고 생각한 제자는 미련없이 짐을 챙겼습니다.
뉘엿뉘엿 석양이 지는 길을 하산하는데 처량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왠지 마음이 후련하고 편했습니다. 떠날 때 스님이 마지막으로 준 쪽지가 생각났습니다. 내려가서 펴보라는 쪽지였습니다. 종이를 펴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버리니 후련하지 않더냐. 이것이 깨달음이다.”


버린다는 것
사람들은 저에게 많이들 묻습니다.
차기 대권은 누가 될까요, 향후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될까요, 경제는 잘 풀릴까요, 제 자식이 이번에 합격하겠습니까, 땅을 이번에 팔아야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면할 수 있을까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오래 살게 해주세요.....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언가 얻기 위해 소원을 빕니다. 그러나 버리는 소원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한민족 백두산 대동 위령제>에 참가신청을 하고 여행사에 경비까지 지불했지만 막판에 비자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게도 같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기에 백만 원이 넘는 여행경비는 그분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생의 큰 결심을 한 터였습니다. 여행이 무산되었으니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돈이 굳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출발하는 공항에서, 돌려받은 여행경비를 후원금으로 쓰라고 제게 건네주고는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어느 쪽이 정말로 가슴속에 바라는 소원을 이루었겠습니까.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엄밀히 말해 자기 안의 신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도(道)는 단지 하늘과 정직한 거래입니다.


단순하다는 것
저의 재테크 방법입니다.
보통 제가 돈을 잘 쓰니까 제가 부자인줄 압니다. 저는 돈이 생기면 쌓아두지 않고 써버립니다. 과소비하거나 유흥비로 탕진하는게 아니라, 이상하게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기고 거기에 쓰게 됩니다. 그래서 제 마이너스통장은 말 그대로 언제나 마이너스입니다. 돈을 쌓아두지 않으니, 어떻게 굴려서 키울 것인가하는 고민이 줄어듭니다. 떡 나누어줄 곳이 많아지니 떡 수레가 늘어납니다. 나가는 만큼 돈이 알게 모르게 들어옵니다. 돈이 고이지 않고 회전할수록 규모가 커집니다. 사람들은 들어오는 돈만 생각하지만, 저는 어디다 쓸 것인지 생각합니다. 어제도 흘려버리고, 오늘도 흘려버리고, 내일도 흘려버립니다. 버려야 비워지고, 비워져야 채워집니다. 숨을 들이 마셨으면 미련없이 내뱉어 버려야하지 않습니까. 버리는 재테크가 복(福)테크입니다.
돈을 기부하고 소득공제다 영수증이다 셈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을)버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고 돌아서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잊어야 단순해집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모두 당대의 첨단 과학자로서 세상의 이치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깨달음은 그런 지식의 축적에서 추론하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여태껏 알고 있던 것, 누리고 있던 것을 버림으로써 도달한 것입니다. 부처님도 누구나가 볼 수 있는 새벽별을 보고 깨달으셨습니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한 것은 그동안 연구실에서 계산해온 물리적 공식을 유도해서 도달한 결론이 아니라 나무아래서 한 생각 쉴 때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영감(靈感)을 얻은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감을 누가 선물로 주었겠습니까?


천진하다는 것
사람들은 제가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랍니다. 그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막연하게 영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원천은 바로 단순함입니다. 단순함이란 아이의 마음, 즉 카르마에 휘둘리지 않는 천진한 마음입니다. 천둥벌거숭이로 날뛰는 것을 닮으라는 것이 아니라 금세 울고, 금세 웃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이전의 카르마를 넘어서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영능력 때문에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카르마에 휘둘리지 않고 노림수가 없는 단순한 생각을 하늘이 받아주기 때문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영능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영능력은 신의 도움입니다. 단순해지기 위해, 저는 버립니다.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서 옵니다. 버려야 단순해집니다. 큰 힘은 단순한데서 옵니다. 가지치기를 잘 한 나무가 큰 나무가 됩니다.

 

버리기 어려운 까닭

숨을 들이마셨으면 반드시 내쉬어야하는 것처럼 삶이란 버리는 연습입니다.

버리기 꺼려하는 이유 중에는 잃는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숨을 들이마셨으면 반드시 내쉬어야합니다. 떡 수레를 늘리는 것처럼 버려야 새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삶이란 버리는 연습입니다. 만나면 헤어져야하고, 올라갔으면 내려가야 하고, 쥐었으면 놓아야하고, 태어났으면 죽어야합니다. 버릴 때 잘 버려야 잘사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려하고, 내려가지 않으려하고, 놓지 않으려하고, 죽지 않으려하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가 현상계와 영계(천당, 극락, 이데아, 진리의 세계 등)가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지점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현 지점에서 많이, 빨리, 멀리 가야만 목적지에 가까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배워야 진리에 가깝고, 부와 명성이 높고, 교리를 잘 알아야 하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영계가 없으니 극악한 짓을 하더라도 현실만 잘 살면된다는 분도 계시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 두 세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끝없이 만나지 않은 두 가닥의 철도 궤도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지식과 명성과 부를 아무리 쌓아도 한 발자국도 실체의 세계에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쌓이면 쌓일수록 가리게 됩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 흘러 때를 씻어 때를 묻혀가도, 하늘로 증발될 때는 순수한 물만 올라가고 불순물은 남기고 갑니다. 불순한 물처럼 무거운 카르마가 원활한 순환을 어렵게 합니다. 쌓은 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더욱 움켜잡는 불순한 상념을 가짐으로써 집착만 강해져 카르마에 발목 잡히게 됩니다.

진정 자유롭고 싶다면 쌓아놓은 것을 지금 이 순간부터, 어느 순간이라도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부, 명성, 지식, 지위, 심지어 인간관계 인연과 소중한 목숨도 얻는 순간부터 언제든 떠나가게 되어있다고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 즉 앞으로 세발자국 뒤로 세발자국 걸어서 애당초부터 얻고 잃은 바가 없이 되돌아가는 제자리라고 했습니다.

시급히 버려야 할 것

현대인이 시급히 버려야 한다고 새삼 느끼는 게 있습니다. 미디어와 말, 지식입니다.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치열하게 갈등하기도 하지만, 진화하는 매순간, 매단계가 창조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진화가 창조이고 창조가 진화입니다

부, 명성, 지식, 지위 심지어 인간관계 인연과 목숨도 버릴 때 버려야 한다고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보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렌탈’이기에 언제든 반납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사랑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차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처자식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현대인이 시급히 버려야 한다고 새삼 느끼는 게 있습니다. 미디어와 말, 지식입니다.

미디어 금식(禁食)

요즘 사람들이 시급히 버려야 할 것은 미디어입니다. <미디어 금식(禁食)>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휴대폰, 뉴스, 인터넷 등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소식과 정보에 요즘 사람들은 한시라도 눈과 귀를 떼지 못합니다. 일주일 끊었다고 세상에 뒤처지고 미개인이 될 리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 장(腸)청소는 하면서 왜 마음의 청소는 게을리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요즘 휴대폰을 쓰는 젊은이들은 평균 50가지 이상의 휴대폰 기능을 다룬다고 합니다. 저는 전화 주고받고, 문자오는 것 확인하는 기능뿐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휴가를 떠난다면서 휴대폰과 책을 도피처로 가지고 들어가는 분도 있습니다. 애초에 무엇으로부터 도피하고자했는지 돌아봐야합니다.

말의 절제

‘5시’
이 글자를 5시에 쓰고 한 시간 뒤(6시)에 보아도 ‘5시’라고 적혀있다.

‘서울’
이 글자를 서울에서 쓰고 뉴욕에서 펴 보아도 ‘서울’로 적혀 있다.

‘신(神, GOD)’
이슬람에서는 ‘알라’를,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예수)’를 가리킨다.

‘빨강색’
이 글자는 빨강색이 아니라 ‘검정색’이다.

현상계에서 쓰는 언어는 시간적으로는 ‘일시적’이고, 공간적으로는 ‘한정적’입니다. 그래서 말은 할수록 말이 더 많아지고 시끄러워지게 됩니다. (영계 언어는 시공간이 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상념’이라는 침묵의 언어입니다.). 사회적 지위, 신분, 권위를 내세워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어거지이고 어리석은지 짐작케합니다.
구업(口業)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적게 하면 단순해집니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가면 아물지만,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갈 수록 더 커지기 쉽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라고도 하지만 불필요한 미사여구 또한 줄여야 합니다. 마음으로 통하는 법을 배우고 순수한 말을 해야겠습니다.

맹목적 지식의 각성

요즘 정보사회에서 지식은 맹목적으로 추앙받기까지 합니다. 옛날에는 신이나 미신에 맹종하는 맹목적 직관과 맹목적 믿음을 견제하기위해 과학적(이성적) 지식을 강조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지식정보 자체를 맹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그러나 지식과 이성만으로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합리성 너머의 무변광대한 세계를 오히려 가리게 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만의 우물에 갇히기 쉽습니다. 신의 목소리인 양심에 늘 귀를 열어 놓아야합니다. 합리적 이성세계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항상 평행으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지식에 만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알아서 믿는 게 아니라 믿어서 알고
둘째,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야합니다.

어느 과학자가 자기를 복제할 수 있는 로봇을 구상했습니다. 로봇은 조립되어있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모양의 로봇을 스스로 복제할 수 없지만, 로봇에 자기 설계도를 복사한 테이프를 만들어 입력하고 재료만 마련해주면 그 공정대로 자기와 동일한 복제 로봇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기계에 있어서 ‘설명서(설계도)’는 생물체의 ‘DNA'에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암호화된(부호화된) 정보를 유기체에 주입하면 생명체에가 생식(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의 치명적 결함은 처음에 설명서(설계도)를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고 장착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봇에 있어서 사람이 창조주에 해당합입니다. 창조주를 배제한다면 앞 세대와 완전히 같은 복사판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세대를 아무리 더해도 진화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인간에 있어서 영혼을 격리한 이성은 바로 창조주를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전혀 진화가 없고 성숙이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치열하게 갈등하기도 하지만, 진화하는 매순간, 매단계가 창조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진화가 창조이고 창조가 진화입니다.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소

잘 아실법한 이야기 중에 ‘처녀를 업은 스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스님이 마을 앞개울을 건너려는데 어느 처자가 물을 못 건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스님이 처자를 냉큼 업고 건네주었습니다. 마을을 한참 빠져나와 다른 스님이 그 스님보고 스님의 신분으로 어떻게 처자를 그렇게 덥석 안을 수 있느냐고 따지자 답했습니다.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소? 딱하구려. 나는 처자를 내려놓는 순간 잊었소.”

쌓아두고 담아두면 지금 앞에 있는 시간을 놓치게 됩니다.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담아두라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것에 사로잡혀 지금의 현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보게 된 영혼의 모습

 

아버지의 죽음으로 나는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야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우주에 대한 절대고독의 개체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당시 열한 살 나이로는 ‘죽음’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이 던진 숙제로 나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이듬해인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춘기’라는 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덕수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는 학교와는 담을 쌓은 채 거리를 방황하는 등 혼자서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게 또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4.19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한창 ‘사춘기’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에 벌어진 4.19혁명은 나의 마음을 심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독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옳지 않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친구의 손에 이끌려 참석한 시위현장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현상을 겪게 되었다. 시위대의 박수를 받으며 소방차 위로 올라가 힘차게 ‘타도! 이승만정권!’ 을 외치며 연설하던 같은 학교 선배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이더니 바로 옆을 지나던 전동차용 고압선에 감전, 그대로 떨어져 죽고 만 것이다.
‘악!’하는 비명도 잠깐. 나는 죽은 선배의 몸에서 선배의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그대로 목격한 뒤, 너무 놀라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남자주인공이 죽는 순간, 육체로부터 빠져나온 영혼 때문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으로 보이듯, 그 선배 역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하나는 시체요, 다른 하나는 영혼이었던 것이다.
선배의 영혼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보고 매우 당황해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에 선배의 영혼이 보일 리 없었다.

 

오직 나만이 선배의 영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을 목격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겠는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겨낼 수 없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 충격을 열다섯 살에 경험했으니 정말 한동안은 눈앞에 선배의 영혼이 어른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덕수중학교 교정에서는 그 선배와 함께 4.19 시위 도중 숨진 다른 선배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윤보선 전(前) 대통령께서도 참석한 탑의 기공식 행사. 그러나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화려한 행사가 아닌 죽은 두 선배의 영혼이었다. 두 선배는 자신들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지는 것이 흐뭇했던지 행사장을 내려다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막식 행사 내내, 나는 두 사람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고, 그제서야 갑자기 찾아온 영능력 때문에 흔들렸던 내 마음도 비로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잠시 사라졌던 영능력이 회복되었음을 알게 되자, 나는 조금씩 영능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학교성적’도 그 당시 나의 영능력이 요긴하게 쓰이는 분야중의 하나가 되었다.
고등하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성적에 영능력을 쓰다보니, 학교 성적이 고르게 유지될 리 없었다. 시험을 볼 때마다 상위권과 하위권을 제마음대로 드나드니, 늘상 담임선생님께 불려나가 진학상담을 받곤 했다. 하긴,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오게 하는 나만의 노하우, 영능력이 있었으니,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고2때 담임선생님은 다른 담임선생님과는 조금 달랐다. 그 선생님과 면담만 하면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머리도 지끈지끈하게 영 느낌이 수상했던 것이다. 설마설마하면서도 당시 짝이었던 친구에게 “선생님, 아편 같은 걸 드시나 봐. 아마도 큰 수술을 받다가 아편에 중독되신 것 같아” 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선생님께 못하는 말이 없다’며 크게 나무라기만 했다. 하긴,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선생님께 그런 말을 했으니 친구에게 혼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작은 일로 끝났으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나, 담임선생님께서 급작스레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 교실에서 매일 인사드리던 선생님께서 급사하셨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왜 돌아가셨는지 학교측에서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려주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소문으로는 ‘환각물질 과다투여’였다 한다.
영능력. 그것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고교생 영능력자

 

내게 주어진 영능력은 나이어린 나로서는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이 영능력이라는 놈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주위사람을 놀라게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당시 멋쟁이들이 중요시하는 액세서리 중 하나가 바로 손목시계였다. 나 또한 ‘투가래스’라는 스위스제 시계를 멋의 지표인 양 차고 다녔는데, 이 시계는 폼도 나지만 스위스제라는 점에서 나의 기를 살려주곤 했다. ‘정확한 시계, 튼튼한 시계’ 하면 스위스제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위스제 시계도 나의 영능력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내가 화만 냈다 하면, 초침이 거꾸로 돌거나 멈춰버리곤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싸움을 한다거나, 시비가 생길 때마다 심심치 않게 시계덕을 보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영능력의 덕을 본 경우는 또 있다.
어느날, 우리집에 찾아오신 친척분께서 집 때문에 고민이라며 사정을 털어놓으셨다. 얘기인즉, 서울 충신동에 집이 었었는데 6.25 당시 폭격으로 집이 다 타버려 소유지가 모호해지자 아는 사람에게 집터를 넘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터무니없는 헐겂으로 넘긴 것 같아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6.25 직후라 돈이 급해, 아무에게나 집터를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영능력을 통해 새롭고도 반가운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즉, 아직도 그 집터가 친척분 소유로 등록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친척분은 내 말을 듣고는 긴가민가하셨지만, 그 길로 구청에 가서 토지소유자를 확인한 뒤 믿을 수 없으셨는지, 등기부등본을 갖고 우리집으로 찾아와 재차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하셨다.
여하튼, 나의 영능력 덕분에 친척분은 제값에 정식으로 땅을 되팔게 되었고, 예전에 그 땅에 살던 사람도 진짜 자기 등기를 갖게 돼, 누이좋고 매부좋은 토지거래가 이루어졌다.
후에, 친척분은 내게 감사하다며 상당한 돈을 책값에 보태라며 주셨고, 이 돈으로 나는 전국일주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나의 첫사랑에 가장 큰 공로자 역시 영능력이었다.
막 사랑에 눈을 뜬 사춘기 때, 나는 교회 목사님의 따님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한 작전을 벌였다. 작전명은 ‘새벽예배’. 그도그럴 것이 그녀는 이상하게도 새벽예배 외의 다른 예배시간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새벽예배’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벽에 예배보러 나간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더군다나 나의 목적은 오직 그녀를 만나는 것! 그런데, 만약 그녀가 안 나오는 날이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바로 이럴 때, 나의 영능력은 매우 효과적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새벽예배에 나오는 날이면 ‘찌릿’ 한 감으로 정확히 새벽에 눈이 딱! 떠지곤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의 영능력 덕분에,새벽을 짝사랑하던 님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비록 말 한번 건내진 못했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꿈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영능력이 있어 늘상 기분좋은 일만 생겼던 것은 아니다.
전농동 철도간선로 옆에 살았을 때 일이다. 학교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바로 앞집에
‘조등(弔燈)’ 이 걸려 있는게 아닌가. 이상한 생각에 “야, 이집에 누가 죽었나 봐! 조등이 걸려 있어” 라고 했더니, 친구는 “조등이 어디 있다고 그래? 너, 아무래도 쉬어야겠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라고 말하고는 가버리고 말았다. 하긴 멀쩡한 집 대문에 조등이 걸려 있다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지만 이튿날,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제 내가 조등이 걸렸다고 말한 앞집에 진짜 조등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앞집의 안주인되시는 분께서 교통사고로 성바오로 병원에 입원중이셨지만 죽음이 가까워오자, 의사의 권고로 집으로 돌아와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왠지 조등을 본 일이 마음에 걸렸다. 돌아가시기도 전에 본의 아니게 조등을 미리 봐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임종 전 걸린 조등을 본 사건, 그것을 영능력으로 사망날짜까지 예견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용대가리냐, 뱀대가리냐?

지금, 내 나이 지천명(지천명)이 넘었다. 하늘의 이치를 능히 알 수 있는 나이임에도, 다시금 청춘으로 돌아가고픈 건 왜일까. 오십줄에 들어서면, 이 혈기가 어느 정도 잦아질 줄 알았건만 아직도 젊은 시절 나를 이끌어주셨던 인생 선배들을 생각할 때면, 여지없이 스무살 떠꺼머리 총각으로 돌아가고 만다.
아마도, 이런 회춘의 원동력은 청춘 시절 만나 귀한 인연을 맺은 스승님들 덕분이리라. 지금도 그분들의 말씀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심히 두근거리는 것이, 젊은 혈기로 하늘을 날 것만 같으니 말이다. 젊은날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어주시는 소중한 인연… 그 귀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볼까 한다.
날씨 좋은 봄이 되면, 나의 눈을 맑게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의 말씀을 새겨 듣고 나면, 내눈은 하늘 아래 모든 진리로부터 명쾌한 답을 얻곤했다.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나뵌 것은 고등학생 때 일이었다.
당시 불교에 심취해, 학교보다 절을 더 좋아했던 나. 내가 자주 갔던 곳은 당시 인천에 있던 용화사였다.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전강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인천으로 가는 길. 그 길에는 하얀 염전이 빛을 받아 그 어떤 보석보다 화려하게 빛났고 그곳에서 일하는 어민들의 땀은 소금보다도 진실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그 진실한 땀으로 만든 소금내음을 맡으며 용화사로 가는 길은 각박한 학교를 벗어난 짧은 여행과도 같았다.
당시 용화사는 일본 기와를 얹은 절이었는데, 전강 큰스님의 법회때는 백여 명이 빼곡이 앉아 큰스님의 말씀을 듣곤 했다. 그분들 중에는 지금 법명을 떨치고 계신 유명한 큰스님이 되신 분도 계셨고, 모종교단체 교주가 되신 분도 계셨다. 나 역시 그 당시 큰스님의 법문에 깊이 매료돼 있었다. 그 법문은 고등학생이었던 어린 나에게는, 교과서보다도 더 참된 진리를 안겨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내가 큰스님의 말씀에 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첫대면 때부터 스님은 나를 깊이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첫대면 때, 큰스님은 나를 천천히 살피시더니 던지듯 말씀하셨다. “니가 용대가리냐, 뱀대가리냐?” 나는 큰스님의 말씀에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뗐다.
“스님께서, 저를 보시는 눈이 용눈이십니가, 아니면 뱀눈이십니까?” 그러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도(道)보다 영(靈)이 먼저 발달했구나. 좀더 미련해져야 하는데…” 하면서 머리를 스다듬어 주셨던 것이다.
당시 큰스님께선, 이미 영적으로 발달해 그 영성을 자제할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꿰둟고 계셨던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그 당시 나는 논리적인 이성으로 유추해 낸 결과보다는 ‘직관’으로 알게된 결과를 더 중시 생각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법회를 듣고 있던 그 시간에도, 회당에 모인 많은 분들의 뒷모습만 봐도, 그분들의 미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분은 앞으로 교주가 되겠구나’ ‘저분은 학덕을 겸비한 율사스님이 되시겠구나’ ‘아이구, 저 분의 기업은 망하겠구나’ 등등, ‘직관’으로 어쩔수 없이 알게 된 미래의 모습들이 자꾸만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그중 비구니 스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께서는 자꾸만 큰스님에게 요상한 질문을 던지시곤했다. 그날도 난해한 질문을 하시는 비구니 스님을 보곤 ‘저분은 틀림없이 정신이상이 되시겠구나’했는데, 후에 그분께서 법회에 안 타나타셔서 주위분에게 여쭤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었다.
큰스님께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영적 발달이 진행중이었던 내가 걱정이 되셨던지, 어느날 나를 불러 찬찬히 말씀하셨다. “길진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뭐겠느냐?” 그 말씀에 나는 “그야, 빛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큰스님께선, 뜻모를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너는 학교서 그렇게 배웠지? 하지만 빛이 아니라, ‘영’이란 놈이다.
영의 세계는 속도제한이 없는 신비한 세계란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
지금도 하얀 소금밭이 빛을 발했던 용화사 가는 길을 생각할 때면, 큰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순박한 미소로 중생들에게 소금같은 말씀을 해주셨던 큰스님. 수수한 할아버지 같은 그분의 모습 뒤에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우주가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