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_12

醉月 2010. 11. 21. 09:16

하늘도 감동한 효심 ‘요구절(拗九節)’풍습으로 이어져 부처의 10대 제자, 목련(目連)이야기

음력 1월 29일, 제사 지내거나 친정 부모에 음식 대접하며 ‘요구절’ 행사

이삭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이를 거역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효를 실천하였으며, 그 결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서양에서 효를 논할 때마다 거론되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륜의 기본이었다. 유가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중국도 예로부터 효도를 중시했다. 각종 문학작품에 효도를 강조한 내용이 많다. 이처럼 효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어머니를 구한 목련(目連救母) 이야기이다.  

▲ 일러스트 이철원
서진(西晋)시대 불경에 첫 등장
목련(目連)은 원래 부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본명은 대목건련(大目?連)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마하 모깔라나(Maha-mo-ggallana)이다. 이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는 내용은 서진(西晋·265~ 317) 때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처음 등장한다.

부처의 제자가 된 목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신통력으로 망자의 세상을 살펴보니 어머니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고생하고 있었다. 음식을 집어 입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불에 타 재가 되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목련은 자신의 신통력으로도 어머니를 구할 수 없자 부처의 지시대로 7월 15일에 여러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우란분경’에서 파생한 예식이 ‘우란분회(盂蘭盆會)’이다. 우란분회는 원래 인도 농경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상 숭배의 한 형태였다. ‘우란분’은 ‘거꾸로 매달리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생긴 ‘ullambana’의 음역이다. 즉 나쁜 곳에 떨어져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는 망자의 혼에게 음식을 바쳐 혼을 구한다는 민간 신앙이 불교와 결합된 형태로서 음력 7월 15일에 공양 예식을 올린다. 중국에서는 양(梁) 무제(武帝) 대동(大同) 4년(538년) 7월 15일에 동태사(同泰寺)에서 최초로 우란분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불교 이야기를 토대로 당대(唐代)에는 관련 변문(變文)이 성행하면서 중국화의 과정을 겪었다. ‘변문(變文)’이란 당대에 성행했던 문학 형식의 일종으로서, 그 배경에는 불교의 선전 활동이 있었다. 위진남북조 시기에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당나라 때 크게 성행하였다. 승려들은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을 모아 경전을 낭독하며 불법을 전수하였다. 때에 따라 역사 이야기나 민간의 전설 등을 경전 사이사이 끼워넣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이야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승려가 생겨났고, 그들을 ‘속강승(俗講僧)’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변문’이라고 했다. 20세기 초 돈황의 장경동에서 고대의 많은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그중에는 적지 않은 ‘변문’과 ‘화본’이 있었다. 여기에 ‘대목건련변문’과 ‘목련연기(緣起)’ 및 ‘대목건련명간구모(大目乾連冥間救母)변문’ 등 목련에 관한 변문도 다수 발견되었다. ‘명간구모변문’은 말미에 오대(五代) 양(梁)나라의 마지막 황제 시절인 921년에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목련이 어머니를 구출하는 장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 구출
이런 변문에서는 목련의 이야기가 불경의 내용보다 세부적으로 훨씬 구체화되었다. 출가하기 전에 목련의 이름은 나복(羅卜)이었고 불심이 깊었다. 타국과의 무역을 위해 가산을 나누어 어머니께 일부를 맡긴 뒤 승려에 대한 시주와 어려운 사람 구제에 힘쓸 것을 부탁하고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천생이 욕심 많고 잔인하여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른다.

그 결과 목숨을 잃고 아비지옥에 떨어져 극한 고통을 받게 된다. 한편 출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목련은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자신의 신통력으로 명간을 살펴보니 천당에 계신 아버지는 확인하였으나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의 자문을 얻어 여러 승려들이 합력하여 주문을 외우면 풀려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를 시행하여 어머니를 구했다. 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우란분회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변문에서는 서두에서부터 이야기가 보다 구체화된다. 목련의 어머니 이름은 청제부인(靑提夫人)이었다. 대단한 갑부여서 돈과 가축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천생이 탐욕스럽고 살생을 즐겼다. 남편이 죽자 아들 나복과 함께 둘이서 살았다. 아들은 불심이 강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시주를 열심히 하고 주야로 불공을 쌓았다.

나복은 가산을 3분하여 각각 돌아가신 아버지 봉양하기, 집에서 구휼하기, 자신의 장사 밑천으로 삼았다. 아들이 떠나자 청제부인은 날마다 가축을 도살하였고, 시주를 청하는 승려들을 몽둥이로 때려 내쫓았으며, 고아와 노인들은 개를 풀어 물게 하였다. 나복이 돌아와 그간의 사정을 묻자 어머니는 구휼에 힘썼노라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웃들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나복이 사실 여부를 묻자 청제부인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남의 말을 듣는다”며 화를 내면서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7일 안에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를 하라”고 소리친다.

 나복은 그렇게 할 수 없었지만 음계(陰界·귀신이 사는 세상)에서 이 저주를 듣고 7일 뒤에 청제부인의 목숨을 거둬 아비지옥으로 보내 극도의 고통을 겪게 한다. 나복은 3년상을 치른 뒤 출가하여 제일의 신통력을 가진 부처의 대제자 대목련이 되었다. 신통력을 이용해 음계에 있는 부모의 상황을 살피던 목련은, 아버지는 천상에서 즐거움과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목련은 부처가 하사한 지팡이를 가지고 아비지옥으로 가 온몸에 39개의 대못이 박힌 채 철 침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찾았다.

결국 자비로운 부처의 도움으로 어머니는 아비지옥에서는 벗어났지만 업보를 완전히 씻지 못하고 다시 아귀도(餓鬼道)로 떨어진다. 목련은 탁발 걸식을 통해 어머니에게 음식을 보내지만 음식이 입에 닿기도 전에 불이 붙어 재로 변하고 만다. 목련의 갖은 노력으로 어머니는 아귀도에서 벗어나지만 다시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져 검은 개(黑狗)로 변한다. 목련은 검은 개를 이끌고 왕사성(王舍城)의 불탑 앞에 머물며 7일 밤낮을 경전을 외우고 참회의 계(誡)를 읽는다. 어머니는 결국 이 공덕에 힘입어 개의 껍질을 나무에 걸고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잡극·희곡 등으로 확대 발전
목련의 효행은 패악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던 어머니를 하늘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효를 중시하던 중국에서 목련의 이야기는 변문의 발전과 함께 민간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그리고 노래와 이야기를 병행하는 강창(講唱)문학과 희곡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나라 때 불교의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송나라 때에는 불교 전파를 위한 변문을 금지하였지만 목련 이야기는 꾸준히 확대 발전하였다.

북송대의 발전상을 기록한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보면 칠석(七夕)이 지나 ‘어머니를 구한 목련(目連救母)’ 잡극을 1주일 동안 공연하였는데 관중이 배로 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명대 만력(萬歷·1573~1620) 연간에는 정지진(鄭之珍)이 104절(折)로 이루어진 ‘목련구모행효희문(行孝戱文)’을 펴냈다.

▲ 목련구모 내용이 담긴 고서.
그동안 민간에서 유행했던 관련 이야기를 총망라하고 ‘서유기’ 속의 등장인물들까지 첨가하여 편폭이 크게 늘어났다. 청 건륭(乾隆·1735~1796) 연간에는 장조(張照)가 총 10본(本) 240착(齪·장章)으로 이루어진 ‘권선금과(勸善金科)’를 펴냈다. 이는 중국 희극사에서 편폭이 가장 긴 장편희곡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초륜(超輪·1890~1950)이라는 공연예술가가 실제 공연 실황에 근거하여 오랫동안 수정을 가한 뒤 교정을 받아 1939년에 완성한 극본인 ‘초륜본 목련’이 대만(臺灣)에 남아 있다. 이 ‘초륜본’을 보면 그간에 첨가되거나 변형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부상(傅相)이며 어머니의 성은 유씨(劉氏)로 나와 있다. 부상은 생전에 적선을 많이 하여 천수를 다한 뒤 하늘에 올랐다. 반면에 부인 유씨는 남편이 죽자 남동생 유가(劉賈)의 꾐에 빠져 술로 생활을 하였다. 아들 나복이 장사를 위해 집을 떠나자 유씨는 더욱 패악한 일을 저지른다. 금노(金奴)의 말을 듣고 개를 죽여 만두를 만든 다음 시주를 핑계로 승려들에게 그 만두를 먹이기도 하고, 심지어 금노와 안동(安童)에게 승려들이 머무는 방에 불을 지르도록 한다.

유씨의 악행은 음계의 신들에게 알려져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지옥에 떨어져 유씨가 겪는 고통도 보다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유씨는 18종의 지옥을 차례로 거치면서 온갖 고통을 경험한다. 나복은 출가하여 대목건련의 이름을 얻은 뒤 좌선 중에 지옥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보고 부처에게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묻는다. 그러자 부처는 목련에게 철지팡이와 깃털신을 주면서, 지팡이로 지옥문을 두드리면 자물쇠가 열릴 것이고, 깃털신을 신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아귀지옥에서 먹지 못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목련이 각종 음식을 보내지만 수문장에게 번번이 강탈당한다. 그래서 검은 색으로 더럽게 위장한 죽을 보내자 겨우 어머니가 먹을 수 있었다. 또 어머니가 8번째 단계인 야마성(夜魔城)에 갇히자 목련이 부처의 도움으로 49개의 등잔을 켜 비춤으로써 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초륜본’에서는 유씨가 끝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개로 머무는 것으로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다.
 
‘孝’이야기는 시대 불문 베스트셀러
이처럼 어머니를 구한 목련 이야기는 불경에서 시작되었지만 효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보다 확대 발전되어 현재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민간에서는 목련 이야기와 관련하여 ‘요구절(拗九節)’이란 풍습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앞서 목련이 아귀지옥에 빠진 어머니에게 음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간수가 중간에서 번번이 가로채자 일부러 더러워 보이는 음식을 만들어 결국 어머니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언급하였다.

그래서 목련은 땅콩과 대추, 계피, 흑설탕 등의 재료와 쌀을 섞어 거무튀튀한 죽을 만들어 간수에게 ‘더러운 죽(拗垢粥)’이라고 속여 목적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구(垢)’는 ‘더럽다’라는 뜻으로 중국 복건성 복주(福州)지역에서는 ‘구(九)’와 음이 같다. 마침 그날은 정월 29일이자 어머니가 29세 되던 날이었다. 그래서 이 죽을 ‘요구죽(拗九粥)’ 또는 ‘효구죽(孝九粥)’이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하여 복주인(福州人)들은 9수, 즉 9자가 들어간 날이나 9의 배수인 날을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그래서 9가 들어간 나이를 맞으면 태평면(太平麵)을 먹고, 시집간 딸들은 9수를 맞은 부모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요구절’을 치른다. 음력 1월 29일 아침이 되면 집집마다 찹쌀, 흑설탕, 땅콩, 대추, 참깨, 계피 등의 재료를 넣고 단 죽을 끓여 조상에 제사지내거나 친구들에게 돌린다. 시집간 딸들은 이 ‘요구죽’과 함께 태평면, 달걀, 돼지족발 등을 준비하여 친정을 찾아 부모님께 드린다.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 곽거경(郭居敬)이 당송대에 널리 전해지던 여러 효도 이야기를 모아 ‘이십사효(二十四孝)’란 아동도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청대 왕소(王素·1794~1877)는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이십사효도책(圖冊)’을 펴냈고, 근대에 들어서는 진소매(少梅·1909~1954)가 1938년에 ‘이십사효도(圖)’를 펴내기도 하였다. 한편 현대 중국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노신(魯迅)은 ‘이십사효도’의 일부 내용이 봉건적인 효도의 허위와 잔악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