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염화실의 향기_06_ 동화사 조실 진제스님

醉月 2010. 3. 28. 11:53

한때 불교계의 선객들 사이에서 ‘남진제 북송담’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중국 당대(唐代)의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대 남쪽에서는 진제(眞際·73)스님이, 북쪽에서는 송담(松潭·78·인천 용화선원 원장)스님이 선풍을 드날렸다는 찬사다.

대구 팔공산동화사 금당선원(金堂禪院)과 부산 장수산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의 조실인 진제 스님. 그는 최근 법전스님이 재추대된 조계종 종정추대회의에서 종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옛 못에서 달을 건진다’(글로연)라는 제목의 법어집을 펴냈다. 모두 81편으로 구성된 법어집은 역대 선승들이 베풀어 놓은 가르침들을 진제스님의 안목으로 점검하고 재해석한 책이다.

28일 봄기운이 완연한 팔공산 동화사 염화실에서 영남의 선맥을 우뚝 세우고 있는 진제스님을 만났다. 그는 찾는 사람을 내치는 법이 없다는 소문대로 염화실 문을 활짝 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루 전 팔공산 포행길에 불어닥친 찬바람으로 몸살 기운이 있다고 하면서도 평소의 활발발(活潑潑)한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가부좌를 튼 자세도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요즘 서양에서도 선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이 무엇인지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자기의 참모습을 아는 것이 선입니다. 선사상은 세계 정신문명의 근원적인 대안이 될 수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를 키워 무한한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세계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바탕이 되는 겁니다.”

-스님은 오래 전부터 선의 대중화와 ‘생활 선’을 강조하고 있는데 생활 속의 바른 참선법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몸뚱이는 호흡지간에 무너지고 백년 이내에 썩어 한줌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참 나’가 아닙니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즉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자기를 돌이켜봐야 ‘참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나 여건을 탓하지 말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화두를 잡으면 그 순간만큼이라도 세상 모든 시비 분별이 떠나고 크고 밝은 지혜가 계발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디에서든 자기가 주인이 되는 공부이면서 세세생생 행복을 누리는 공부입니다.”

그는 “선수행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공포, 불안, 갈등을 말끔히 씻어 없애 큰 그릇으로 만들어준다”면서 “정신이 맑아져서 치매가 예방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진제스님은 21살 때 석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이 열반한 뒤 향곡스님을 찾아갔다.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에 이어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화두를 타파하고 33살 때 오도송을 읊었다. 향곡스님은 몇차례의 선문답으로 진제스님을 시험한 뒤 깨달음을 인가했다. 이로써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번에 펴낸 법어집의 부록에는 경허선사가 혜월선사에게, 혜월선사가 운봉선사에게, 운봉선사가 향곡선사에게, 향곡선사가 진제선사에게 내린 친필 전법게뿐만 아니라 스승이 직접 법맥을 써서 내려주는 등등상속(법맥도)을 사진으로 싣고 전법(傳法)의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해놓았다. 법어집에 따르면 마하가섭으로 시작된 불조정맥이 28조 보리 달마(중국 선종 초조)와 38조 임제 의현을 거쳐 56조 석옥선사에 의해 고려의 태고보우로 이어져 향곡스님의 법을 받은 진제스님이 79조 법손이 됐다고 한다.

스님은 깨달음을 인가받은 후 1971년 부산 해운대 근처에 해운정사를 창건, 대가람으로 일구고 참선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1994년에는 역대 선지식들의 중요한 수행처였음에도 20여년간 방치됐던 동화사 금당선원의 조실을 맡아 참선 도량의 선풍을 다시 일으켰다. 임제선사의 정법을 계승했다는 그는 스스로 “깨달았다”고 말하는 몇 안되는 선사 가운데 한명이기도 하다. 진제스님은 성철스님과 마찬가지로 ‘돈오돈수(頓悟頓首)’를 주장한다. 한번 확연하고 명백하게 깨닫는 확철대오(確撤大悟)하면 일절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세상사 집착이 끊어져 항상 평온한 마음상태가 됩니다. 먹고, 자고, 똥누는 모든 일상 그대로가 평상심이지요. 연꽃은 진흙 속에 피지만 흙을 묻히지 않잖아요. 일체중생과 한몸이 되어 절대 평화를 누리는 겁니다. 대안락(大安樂)의 해탈도(解脫道)에서 자유자재한 용심(用心)이 나옵니다.”

어느날 “중생은 업으로 사는데, 도인은 원력으로 산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의심이 든 제자가 물었다. “깨우쳤는데 무슨 원력이 더 있습니까.” “열반 중에 안 있나? 다음 생에 다시 온다면 모를까.” 그 한마디에 제자는 의심을 풀었다. 이미 열반의 경지에 있으므로 금생에 더 많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그 뜻을 이해한 것이다.

-‘뜰앞의 잣나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차 한잔 하게’ 등 선문답은 일반인이 보기엔 동문서답 같습니다. 스님의 법어집에도 ‘덕산탁발화’ ‘사료간’ ‘수고우’ 등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선의 언어들은 절대 동문서답이 아닙니다.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살활(殺活)의 칼날이지요. 히말라야산 상봉에 올라야 전체를 다 한눈으로 볼 수 있듯이, 사방이 환해지는 마음자리에서 전광석화처럼 바른 답이 튀어나옵니다.”

상식을 깨는 역설의 논리로 기존의 사유를 뒤엎는 선사들의 문답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깨달음의 순간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진제스님은 어느 누가 법거량(선문답)을 청해도 거절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진제스님 회중의 수좌들은 여름, 겨울에만 안거를 지내는 다른 선원과 달리 사계절 가부좌를 틀고 정진한다. 현재 금당선원에 10여명, 금모선원에 20여명이 참선중이다.

진제스님은 새벽 2시4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예불을 드린다. 오전, 오후 한차례씩 선원을 찾아 선원수좌들을 향해 장군죽비를 내리치며 공부를 점검하고 경책한다. 그는 임제선의 가풍대로 사자후와 방(棒·몽둥이), 할(喝·고함)을 써서 수좌들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오후에는 팔공산 정상까지 포행을 한다

-이제 제자에게 법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남은 일이 부처님 심인법인 선종의 맥을 이을 법기(法器)를 찾는 거지요. 날마다 선방과 염화실의 문을 열어놓고 법제자를 삼을 지음(知音)을 기다리고 있어요.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향상일구(向上一句)’의 최상승 경지를 만나지 못했어요.”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정치 지도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지요.

“지혜와 덕행이 겸비되지 않으면 선과 악을 가리지 못합니다. 지도자들이 허세와 아집으로 용심(用心)이 바르지 못하고, ‘나’를 앞세워 국민들을 동쪽, 서쪽으로 잡아 끄니 불화와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분단도 지도자들의 아집이 만들었어요. 정치적으로 ‘화두’ ‘선문답’ 같은 말은 곧잘 써먹던데, 선문답은 그렇게 한가한 잡담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곧이곧대로 물으면 거짓과 조작이 통하지를 않아요. 그것이 진짜 화두와 선문답입니다.”

그는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을 것 같으면(不是一蒜寒徹骨)/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爭得梅花撲鼻香)’라며 봄소식을 물었다. 동화사 매화는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돌아나오는 대구 시내 가로수 벚꽃만 환하게 눈부셨다.

▲ 진제스님

1934년 경남 남해 출생. 생으로 1954년 해인사에서 석우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1967년 향곡선사에게 법을 인가받았다. 1971년 해운정사를 창건, 시민선방을 열었다. 1991년 선학원 이사장과 중앙선원 조실을 지냈다. 1999년 경주 금천사를 창건했다. 현재 해운정사·동화사·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 2002년 국제무차선대회 법주를 맡았다. 2003년 이후 조계종 원로의원. 법어집으로 ‘돌사람 크게 웃네’ ‘염화인천’ ‘선 백문백답’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등이 있다.

 

제자 금성스님이 본 진제스님


진제스님을 시봉하고 있는 금성스님(사진 왼쪽)은 초등학교 때부터 광주 향림사 조실이자 조계종 원로위원인 천운스님에게서 자랐다. 동국대 선학과와 대학원을 마친 뒤 5년 전부터 진제스님을 모시고 있다.

그는 진제스님의 법어집 ‘옛 못에서 달을 건진다’ 편찬 작업을 맡았다. 그동안 해운정사를 비롯해 대구 동화사 등에서 결제 또는 해제 법회때 설한 상당법어들 가운데 핵심을 뽑았다.

“스님이 내리신 법어들 중 최상승 법문들만 모았습니다. 스님께서 살아 생전 ‘마지막 어록’으로 정해 하나하나 직접 선별하고,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간화선을 참구하는 이들에게는 깨달음의 기준으로 귀중한 등불이 될 것입니다.”

금성스님은 오후에는 스님을 모시고 팔공산에 오른다. 스승과 제자의 정이 오가고 공부를 물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그는 “특별히 챙기지 않아도 늘 건강하고 편안하다”면서 “계행만 지키면 공양, 수행 등 일상에서 모시는 데는 어려운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깨달은 세계를 그대로 누리는 생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수행에서만큼은 일반인이든 납자든 따로 구분을 두지 않고 엄격하십니다. 그러다보니 하루종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