漁 守 邦 域
(물고기 잡을-어→) (지킬-수↗) (나라-방→) (지경-역↓)
島 排 西 敎
(섬-도↗) (물리칠-배→) (서녘-서→) (가르칠/종교-교↘)
고기 잡던 어부가 나라 땅을 지키었고 / 섬이 기독교를 물리쳤다
안용복은 1693년(숙종 19)에 울릉도에 출어(出漁)했다가 일본인 어부들에 의해 인슈에 납치되었다.
이에 호키슈 성주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 이를 인정하는 서계(書契)를 받았으나,
귀국 도중 쓰시마도주에게 빼앗겼다. 96년 울릉도에서 일본 어선을 발견, 강제정박시켜 불법어로 사실을 문책한 다음,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을 자칭하고, 일본 호키슈 성주에게 항의하여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이에 97년 일본은 공식으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조정은 일개 어민이 관리를 자처했다고 사형을 내렸다.
그러나 두둔하는 대감도 있어 귀향으로 그치었다.
제주도에서 카톨릭교도들이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였고,
신목(神木), 신당(神堂)을 없애는 등 토착민의 문화를 무시하는 등 행패가 극에 달하여 도민의 고통이 심해지자
대정군수 채구석과 유림 오대현 관노 이재수 등이 함께 1901년 제주읍을 공격하여 카톨릭교도 500여명을 처단하였다.
조정에 의해 오대현, 강우백, 이재수 등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불리며 대정에 그들을 기리는 삼의사비가 있다.
洗 面 浸 袖
(씻을-세↗) (얼굴-면↘) (적실/담글-침↘) (소매-수↘)
寧 陵 勇 將
(편안할-녕→) (언덕/왕릉/오를-릉→) (날랠-용↗) (장수-장↘*장차-장→)
얼굴을 씻을 때 옷소매를 젖히고 / 영해 언덕의 용맹한 장수이다
신채호 (1880~1936) 호는 단재. 1910년 광복회를 조직, 13년 박달학원을 설립, [조선사]집필,
19년 베이징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고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 28년 뤼순 감옥에서 병사했다.
기상이 꿋꿋하여 세수를 할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조선상고사]등을 남겼다.
신돌석 1878~1908(고종 15~순종 2) 본명은 태호. 자는 순경. 1895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과 단발령으로
96년 영해(寧海)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06년 영릉의병장(寧陵義兵將)이라는 기호를 내걸고 재차 봉기하였다.
신돌석은 조선 말 의병투쟁에서 평민 출신의 의병대장으로는 가장 먼저 기병하여 민중적 기반 위에 막강한 의병세력으로 성장,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응용한자
어로(漁撈) 어탈(漁奪) 어부지리(漁父之利) 수비(守備) 수절(守節) 간수(看守) 보수(保守) 만방(萬邦) 우방(友邦) 이방인(異邦人) 역내(域內) 구역(區域) 영역(領域) 도서(島嶼) 고도(孤島) 반도(半島) 배격(排擊) 배설(排泄) 배수(排水) 안배(按排) 서구(西歐) 동문서답(東問西答) 교사(敎師) 교육(敎育) 교수(敎授) 종교(宗敎) |
세수(洗手) 세탁(洗濯) 세련(洗鍊) 면박(面駁) 면식(面識) 면책(面責) 가면(假面) 침투(浸透) 침수(浸水) 침염(浸染) 수납(袖納) 영수(領袖) 수수방관(袖手傍觀) 안녕(安寧) 강녕(康寧) 영일(寧日) 영친(寧親) 능비(陵碑) 능이(陵夷) 구릉(丘陵) 왕릉(王陵) 용감(勇敢) 용맹(勇猛) 용사(勇士) 장수(將帥) 장교(將校) 장래(將來) 장차(將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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