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柳毿毿曲曲村(양류삼삼곡곡촌), 버드나무가 삐죽삐죽 드러나 보이는 구부러진 시골,
滄浪唱罷又黃昏(창랑창파우황혼). 滄浪歌가 끝나면 또 황혼.
忘言自是蘆中叟(망언자시로중수), 말을 잊고, 이로부터 갈대속의 노인이 되어,
買酒還招楚國魂(매주환초초국혼). 술을 사서 초나라 혼을 부르고.
蕩破白雲歸釣艇(탕파백운귀조정), 白雲이 흩어질 때 낚시배로 돌아오네,
飛空蘿月掛江門(비공라월괘강문). 허공을 나니 女蘿 속에 걸린 달은 강으로 향하는 문에 걸렸고,
不知何處有耕鑿(부지하처유경착), 어느 곳을 밭갈고 우물을 파야할 지 모르겠네,
天漢爲家認故園(천한위가인고원). 은하수를 집으로 삼으니 옛 정원의 정취를 알겠구나.
이 그림같은 시는 ‘세상 밖 무릉도원’이나 ‘도화원’에 비견되는 意境(의경)으로 끌어들인다. 그곳은 멀리 밭을 갈거나 우물을 파서 생활하는 사람냄새가 전혀 없는 은하세계다. 마치 덩굴에 걸린 그윽한 달빛 아래에서 한 漁翁은 물결이 어지럽게 갈라지는 수면같은 하늘 위로 소요하며 자유롭게 돌아온다. 그는 아마도 그해에 일찌기 굴원(屈原)과 멱라강(汩羅江) 가에서 헤어진 漁父가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듯 좋은 술 한병을 가지고, 초나라 굴원의 혼을 불러 조금만 배로 돌아와, 그와 함께 실컷 취하고, 다시 창랑가(滄浪歌)를 주고받는 지음(知音)으로 여겼다. 속세의 티끌이 전혀없는 선경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漁父의 모습을 통해, 굴원과 같이 깨어있는 사람(醒醉人)이고자 하는 마음과 자연의 섭리를 이미 체득한 한 도인의 모습을 본다.
시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인 황신(黃愼)이 <어귀도축(漁歸圖軸)>을 그리고 그 위에 시를 적은 것으로, 현재 이 그림은 여전히 양주박물관(揚州博物館)에 소장하고 있다.
황신은 청대 서화가(1687∼1770)고, 자가 공무(恭懋), 호는 영표자(癭飄子)․동해포의(東海布衣)이며, 복건성(福建省) 영화인(寧化人)으로 오래도록 양주(揚州)에 우거(寓居)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14세에 스승으로부터 초상화를 그리는 법을 배워, 떠돌아 다니며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려서 어머니를 돕고 스스로 집안을 꾸렸다. 어머니는 그의 그림이 품격이 높지 않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시서를 익혀야(薰習詩書)’ 비로소 그림에 ‘사대부같은 기품이 있게 된다.(有士夫氣韻)’고 권했다.
그런 뒤에 그는 지난 날의 태도를 바꾸어 발분노력하여, 낮에는 그림을 그려 생을 꾸렸고, 밤에는 묘당(廟堂)의 부처 앞 장명등(長明燈) 아래서 힘들게 공부했다. 또 당대(唐代) 서법가 회소(懷素)의 생동감있고 원활하며, 신기로움이 살아있는 광초서법(狂草書法)을 계시받아, 열심히 연마하여 서법으로써 그림으로 들어갔기에 마침내 ‘속됨’의 구속에서 벗어나 기예를 높은 수준까지 오르게 하였고, 서법(書法), 회화(繪畵), 시사(詩詞) 모두 특별히 일격(一格)을 갖췄으며, 상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하지만 굳건하며 풍치가 있다.
황신은 물고기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고 잘 그렸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물고기를 광범위하게 그림의 제재로 삼아, 어락(漁樂),어취(漁趣),어귀(漁歸) 등이 있다. 대대로 서화는 상류사회의 淸玩(고상한 놀이개감)이었고, 황신은 오랫동안 강호를 떠돌며 그림을 팔아 생활하는 등 삶의 고통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빈곤한 평민과 그들의 신세에 대해 공감하고, 배를 타고 생활하는 어민에 대해 깊이 체험하였기에 자연히 그들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漁家생활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예를들어 그의 <漁翁漁婦圖(어옹어부도)>시에서,
漁翁曬網趁斜陽(어옹쇄망진사양), 漁翁은 그물을 햇볕에 말리며 석양을 따르고,
漁婦携筐入市場(어부휴광입시장). 어부의 부인은 광주리를 들고 시장으로 들어가네.
換得城中鹽茶米(환득성중염다미), 성 안에서 소금․차․쌀과 바꾸고,
其餘沽酒出橫塘(기여고주출횡당). 나머지는 술을 사서 가로지른 둑방에 나타났네.
라고 하여, 드물게 어촌의 어부의 부인(漁婦)에 대해 그렸다. 시에서는 漁父가 고기를 잡는 힘든 모습은 없애고, 어부의 부인이 고기를 생활 필수품으로 바꾸는 모습을 통해 어가생활의 정취를 드러내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이 시에서는 자신의 본성대로 살기에 생활에 태만할 것 같던 어부는 오히려 햇볕을 쫓으며 그물을 말리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그의 부인은 생활 필수품 외에 남편을 위해 술 한병을 힘들게 들고 둑방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인의 마음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마의 주름살과 갈라진 손가락마디만큼 부부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성내까지 몇 십리길을 광주리를 들고 힘들게 갔다가 또다시 소금․차․쌀을 사서 돌아오려면 그 무게가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좋아하는 술을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둑방길을 들어서는 부인의 억척스러움 속에 생활의 고단함과 남편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황신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선자어자도(仙子漁者圖)> 속에는 그가 측봉필(側鋒筆)과 중봉필(中鋒筆)을 결합하여, 진하기도 하고 엷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고 세밀하기도 하게 깊은 정을 주입하였고, 갑자기 어부의 몸 위에 걸친 옷이 터지는 낡은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정말로 붓은 한정되지만 뜻은 무궁하여 사람에게 진실된 느낌을 준다. 그림 위에는 광초체(狂草體)로 시를 적었다.
籃內河魚換酒錢(남내하어환주전), 바구니 속 민물고기 술과 돈으로 바꾸고,
蘆花被裏醉孤眠(노화피리취고면). 갈대꽃 이불속에 술에 취해 홀로 자네.
每逢風雨不歸去(매봉풍우불귀거), 매번 비바람을 만나도 돌아갈 줄 모르고,
紅蘿灘頭泊釣船(홍라탄두박조선). 紅蘿灘 끝에 낚시배가 멈춰있다네.
여기서 말하는 신선같은 어부(仙子漁者)는 욕심도 없다. 필요한 만큼 술과 돈이 마련되면, 이내 술에 취해 자연 속에 묻혀 지낸다. 산수자연과 뱃속은 속세의 구속도 없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공간이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이상세계인 것이다.
명대 진계유(陳繼儒)는 <제추강어정(題秋江漁艇)>에서 “성과 이름이 인간세상에 떨어질까 두려워, 가을 강을 가르는 蘆荻灣을 사려했네. 몇 번인가 찾아 나섰지만 찾지를 못하고, 낚싯배가 비록 조그만 하지만 곧 깊은 산이네.(怕將姓名落人間, 買斷秋江蘆荻灣. 幾度招尋尋不得, 釣船雖小卽深山.)라고 했듯이, 낚시배는 자신만의 깊은 산처럼 속세를 벗어난 자유세계인 것이다.
그림은 형상의 언어고, 시는 소리없는 언어인데, 모두 黃愼의 아주 깨끗하고 얕은 필조로 종이 위에 융화되어, 대부분 주석을 가할 필요가 없어, 사람이 읽은 뒤에는 곧 이해하기에 언어는 담담하지만 맛이 있고, 그림은 뛰어나고 운치가 있다고 말할 만 하다. 같은 ‘양주팔괴’의 하나인 정판교(鄭板橋)는 일찍이 황신을 평하여, “그림은 정신이 피어나다 사라진 곳을 그렸고, 더욱 眞相은 없지만 진짜 귀신은 있다.(畵到精神飄沒處, 更無眞相有眞鬼.)”고 하였다. 바로 양신의 정신과 풍격을 지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양주팔괴’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이해하기 힘든 8명의 기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세속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라치면 그들은 세속의 이치를 이미 다 깨닫고, 우리네의 상식을 훨씬 초월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된 양, 눈만 뜨면 무슨 비․무슨 공과금 등등 처리해야 할 돈은 끝나지 않지만, 그네들도 나름대로 고민을 안고 살겠지만 이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아니면 이미 그러한 고민에 대해 통달하고 있는 듯한 행동에 사뭇 부럽다. 원래 어촌은 배를 곪지 않는다했다. 그러나 어촌의 생활이란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바닷가 경치좋은 곳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중노동을 하는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난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같은 물에서 허우적대기에 힘들어 마시는 술인지, 아니면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체념하기에 마시는 술인지, 아니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무념무상의 상태로 술을 마시는 것인지...
부친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생각나서 소개한다. 벌써 30~40년이 지난 이야기다. 부친의 친구 분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세상을 한탄하며 항상 사람이 잘 가지 않는 바닷가 둑에 앉아 술로써 세월을 보냈고, 그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세상을 버렸다고 수군대곤 했다. 아침 일찍 바다갯벌이 내려다 보이는 둑에 나와 소줏잔을 기울이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세월을 몇 년을 한 뒤에, 어느날 그는 인부들을 데리고 바다갯벌을 팠다. 당시로선 아주 귀하고 비싼 조개를 파서, 많은 돈을 손에 쥐고 다시 사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사업에 망하고 남은 돈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바다갯벌에다가 마지막으로 투자를 한 것이고, 낮부터 밤까지 강둑에 앉아 술을 마신 것은 누군가가 자기가 투자한 밭에 손을 대지 않을까 망을 본 것이다.
일생의 사업이 성공하려면 하늘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주위의 비아냥을 몇 년간 견디며 입한번 벙긋하지 않은 그분의 속내에 경의를 표한다. 부친의 친구분처럼 바닷가에서 물결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네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滄浪唱罷又黃昏(창랑창파우황혼). 滄浪歌가 끝나면 또 황혼.
忘言自是蘆中叟(망언자시로중수), 말을 잊고, 이로부터 갈대속의 노인이 되어,
買酒還招楚國魂(매주환초초국혼). 술을 사서 초나라 혼을 부르고.
蕩破白雲歸釣艇(탕파백운귀조정), 白雲이 흩어질 때 낚시배로 돌아오네,
飛空蘿月掛江門(비공라월괘강문). 허공을 나니 女蘿 속에 걸린 달은 강으로 향하는 문에 걸렸고,
不知何處有耕鑿(부지하처유경착), 어느 곳을 밭갈고 우물을 파야할 지 모르겠네,
天漢爲家認故園(천한위가인고원). 은하수를 집으로 삼으니 옛 정원의 정취를 알겠구나.
◇ 황신의 漁圖(어도) |
시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인 황신(黃愼)이 <어귀도축(漁歸圖軸)>을 그리고 그 위에 시를 적은 것으로, 현재 이 그림은 여전히 양주박물관(揚州博物館)에 소장하고 있다.
황신은 청대 서화가(1687∼1770)고, 자가 공무(恭懋), 호는 영표자(癭飄子)․동해포의(東海布衣)이며, 복건성(福建省) 영화인(寧化人)으로 오래도록 양주(揚州)에 우거(寓居)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14세에 스승으로부터 초상화를 그리는 법을 배워, 떠돌아 다니며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려서 어머니를 돕고 스스로 집안을 꾸렸다. 어머니는 그의 그림이 품격이 높지 않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시서를 익혀야(薰習詩書)’ 비로소 그림에 ‘사대부같은 기품이 있게 된다.(有士夫氣韻)’고 권했다.
그런 뒤에 그는 지난 날의 태도를 바꾸어 발분노력하여, 낮에는 그림을 그려 생을 꾸렸고, 밤에는 묘당(廟堂)의 부처 앞 장명등(長明燈) 아래서 힘들게 공부했다. 또 당대(唐代) 서법가 회소(懷素)의 생동감있고 원활하며, 신기로움이 살아있는 광초서법(狂草書法)을 계시받아, 열심히 연마하여 서법으로써 그림으로 들어갔기에 마침내 ‘속됨’의 구속에서 벗어나 기예를 높은 수준까지 오르게 하였고, 서법(書法), 회화(繪畵), 시사(詩詞) 모두 특별히 일격(一格)을 갖췄으며, 상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하지만 굳건하며 풍치가 있다.
◇ 황신의 漁翁漁婦圖(어옹어부도) |
漁翁曬網趁斜陽(어옹쇄망진사양), 漁翁은 그물을 햇볕에 말리며 석양을 따르고,
漁婦携筐入市場(어부휴광입시장). 어부의 부인은 광주리를 들고 시장으로 들어가네.
換得城中鹽茶米(환득성중염다미), 성 안에서 소금․차․쌀과 바꾸고,
其餘沽酒出橫塘(기여고주출횡당). 나머지는 술을 사서 가로지른 둑방에 나타났네.
라고 하여, 드물게 어촌의 어부의 부인(漁婦)에 대해 그렸다. 시에서는 漁父가 고기를 잡는 힘든 모습은 없애고, 어부의 부인이 고기를 생활 필수품으로 바꾸는 모습을 통해 어가생활의 정취를 드러내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이 시에서는 자신의 본성대로 살기에 생활에 태만할 것 같던 어부는 오히려 햇볕을 쫓으며 그물을 말리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그의 부인은 생활 필수품 외에 남편을 위해 술 한병을 힘들게 들고 둑방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인의 마음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마의 주름살과 갈라진 손가락마디만큼 부부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성내까지 몇 십리길을 광주리를 들고 힘들게 갔다가 또다시 소금․차․쌀을 사서 돌아오려면 그 무게가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좋아하는 술을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둑방길을 들어서는 부인의 억척스러움 속에 생활의 고단함과 남편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황신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선자어자도(仙子漁者圖)> 속에는 그가 측봉필(側鋒筆)과 중봉필(中鋒筆)을 결합하여, 진하기도 하고 엷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고 세밀하기도 하게 깊은 정을 주입하였고, 갑자기 어부의 몸 위에 걸친 옷이 터지는 낡은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정말로 붓은 한정되지만 뜻은 무궁하여 사람에게 진실된 느낌을 준다. 그림 위에는 광초체(狂草體)로 시를 적었다.
籃內河魚換酒錢(남내하어환주전), 바구니 속 민물고기 술과 돈으로 바꾸고,
蘆花被裏醉孤眠(노화피리취고면). 갈대꽃 이불속에 술에 취해 홀로 자네.
每逢風雨不歸去(매봉풍우불귀거), 매번 비바람을 만나도 돌아갈 줄 모르고,
紅蘿灘頭泊釣船(홍라탄두박조선). 紅蘿灘 끝에 낚시배가 멈춰있다네.
◇ 황신의 漁樂圖(어락도) |
명대 진계유(陳繼儒)는 <제추강어정(題秋江漁艇)>에서 “성과 이름이 인간세상에 떨어질까 두려워, 가을 강을 가르는 蘆荻灣을 사려했네. 몇 번인가 찾아 나섰지만 찾지를 못하고, 낚싯배가 비록 조그만 하지만 곧 깊은 산이네.(怕將姓名落人間, 買斷秋江蘆荻灣. 幾度招尋尋不得, 釣船雖小卽深山.)라고 했듯이, 낚시배는 자신만의 깊은 산처럼 속세를 벗어난 자유세계인 것이다.
그림은 형상의 언어고, 시는 소리없는 언어인데, 모두 黃愼의 아주 깨끗하고 얕은 필조로 종이 위에 융화되어, 대부분 주석을 가할 필요가 없어, 사람이 읽은 뒤에는 곧 이해하기에 언어는 담담하지만 맛이 있고, 그림은 뛰어나고 운치가 있다고 말할 만 하다. 같은 ‘양주팔괴’의 하나인 정판교(鄭板橋)는 일찍이 황신을 평하여, “그림은 정신이 피어나다 사라진 곳을 그렸고, 더욱 眞相은 없지만 진짜 귀신은 있다.(畵到精神飄沒處, 更無眞相有眞鬼.)”고 하였다. 바로 양신의 정신과 풍격을 지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양주팔괴’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이해하기 힘든 8명의 기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세속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라치면 그들은 세속의 이치를 이미 다 깨닫고, 우리네의 상식을 훨씬 초월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된 양, 눈만 뜨면 무슨 비․무슨 공과금 등등 처리해야 할 돈은 끝나지 않지만, 그네들도 나름대로 고민을 안고 살겠지만 이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아니면 이미 그러한 고민에 대해 통달하고 있는 듯한 행동에 사뭇 부럽다. 원래 어촌은 배를 곪지 않는다했다. 그러나 어촌의 생활이란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바닷가 경치좋은 곳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중노동을 하는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난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같은 물에서 허우적대기에 힘들어 마시는 술인지, 아니면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체념하기에 마시는 술인지, 아니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무념무상의 상태로 술을 마시는 것인지...
부친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생각나서 소개한다. 벌써 30~40년이 지난 이야기다. 부친의 친구 분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세상을 한탄하며 항상 사람이 잘 가지 않는 바닷가 둑에 앉아 술로써 세월을 보냈고, 그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세상을 버렸다고 수군대곤 했다. 아침 일찍 바다갯벌이 내려다 보이는 둑에 나와 소줏잔을 기울이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세월을 몇 년을 한 뒤에, 어느날 그는 인부들을 데리고 바다갯벌을 팠다. 당시로선 아주 귀하고 비싼 조개를 파서, 많은 돈을 손에 쥐고 다시 사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사업에 망하고 남은 돈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바다갯벌에다가 마지막으로 투자를 한 것이고, 낮부터 밤까지 강둑에 앉아 술을 마신 것은 누군가가 자기가 투자한 밭에 손을 대지 않을까 망을 본 것이다.
일생의 사업이 성공하려면 하늘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주위의 비아냥을 몇 년간 견디며 입한번 벙긋하지 않은 그분의 속내에 경의를 표한다. 부친의 친구분처럼 바닷가에서 물결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네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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