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아부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醉月 2010. 10. 9. 13:31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의 상념 하나가 귀신의 미움을 건드릴 수 있고, 말 한마디가 천지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작은 일 한가지가 자손들의 재앙을 빚어낼 수 있는 법이니 철저히 경계하는 것이 제일이라!(有一念之犯鬼神之忌, 一言而傷天地之和, 一事而釀子孫之禍者, 最宜切戒.)”

말은 잘하면 천냥빚도 갚는다지만, 그러한 경우는 아주 드물고 잘해야 본전이란 생각이다. 사람간에는 항상 말로 인해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일이 다반사이니, 항상 말을 조심하고, 말을 줄여야 할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보면 상황에 따라 말이나 행동을 보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이때 기지를 발휘하여 듣기좋은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경우를 당하게 된다. 사람이 너무 올곧아서 한마디 가식없이 바른 말만 하는 것도 늘푼수없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상대방에게 좋은 말로 하는 것이 좋겠고, 어쩌다 충고를 할라치면 상대방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기초작업(?)을 철저히 한 뒤에 어렵게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갈수록 듣기 좋은 말이 좋아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으니, 그동안 주위 사람에게 말로써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가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특히 자식을 키움에 있어, 충고보다는 칭찬을, 허물을 지적하기보다는 용기가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겠으니, 자식과 식구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칭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가?

초보낚시꾼을 가르쳐 장래의 낚시동행인으로 만들 요량으로 함께 물가에 앉으면, 급한 마음에 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하필 그런 친구를 데리고 고르고 고른 낚시터는 그날따라 입질은 잘 보이지 않고, 수많은 헛챔질을 통해 실전감각을 익히면서 낚시를 배워간다는 사실을 잊고서, 답답한 마음이 자꾸 앞선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를 맹탕. 함께 낚시간 친구는 어쩐지 그 다음부터 슬슬 나를 피하는 듯한 눈치고... 낚시는 과학적인 이론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감각이라는 것도 상당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낚시가 잘 될 때는 이 낚시대에서 입질이 오겠구나하고 느낌이 오면 영락없이 찌가 올라온다.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친구에게 가르치려고 들었으니, 그 친구는 낚시터의 탁 트인 정경, 시원한 공기, 그림같은 경치, 더 나아가 저녁에 케밀라이트가 보여주는 운치, 개구리 울음 속에서 육중하게 올라오는 찌놀림, 새벽녘의 낚시대에 맺힌 이슬방울, 낚시대를 감고도는 물안개 등 더욱 깊은 운치는 고사하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처음 던지는 낚시에 질려버렸을 터이다.

그 친구의 입장에서는 던지는 낚시줄이 엉키질 않나, 던질 포인트에는 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옆의 낚시대와 바꾸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던지는 사이에 밑밥은 떨어지지 않았는 지 불안하고... 그런데 낚시스승인 친구는 왠 놈의 아는 체는 그리 하는지, 우선 그냥 놔 두면 익숙해져서 포인트에 던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자기자리에서 이리로 왔다갔다하는 폼이 뭐 싼놈 처럼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몇 십년을 낚시했다더니만 뭘 배웠는지 가만히 앉아 경치를 감상할 줄도 모른다.

저 녀석의 성격이 원래 저렇게 급하고 더러웠나? 내가 다시는 저놈하고 낚시오나 봐라...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모든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가? 가만히 두고 봐라. 조금만 있으면 초짜 낚시꾼이 우리조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조사가 되어 있을테니...


중국의 고사 중에 낚시터에서 생긴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우선, 해진(解縉)에 관한 낚시일화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낚시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한림원 대학사 해진을 불러 함께 어화원(御花園) 안의 못으로 낚시하러 갔다.

해진은 계속해서 몇 마리를 낚아내는데, 주원장의 낚시대는 까딱하지를 않아, 주원장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다. 이때 해진이 황제 앞으로 나아가 조어시 한 수를 올려, “몇 척의 낚시줄 연못 속에 드리웠네, 황금낚시바늘 던져도 완전히 입질도 없네. 평범한 물고기는 감히 천자의 바늘을 물지 못하고, 만세의 군왕은 용만을 낚을 뿐(數尺絲綸落水中, 金鉤一抛蕩無踪, 凡魚不敢朝天子, 萬歲君王只釣龍.)”라고 하였다.

주원장은 그 시를 듣고 껄껄 웃으며, ‘원래 내 낚시실력이 나쁘지 않은데 짐을 무서워서 그런거였군!’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뛰어난 재치인가? 말을 한번 뱉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진은 대련(對聯)에 재능을 보일 정도로 말에 재치가 있었다. 잠깐 그의 어릴 때 재치넘치는 고사를 소개한다.

해진이 6세무렵에 시를 지어 사람들이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그의 집안에는 조(曹)씨 성을 가진 상서(尙書)의 대밭이 마주하고 있었는데, 그가 자기 집의 문에,

門對千竿竹(문대천간죽) 문을 마주한 곳엔 천여그루의 대나무
家藏萬卷書(가장만권서) 집엔 소장한 만여권의 책

하는 춘련(春聯)을 붙였다. 조상서가 보고서 기분이 나빠, 사람을 시켜 대나무 한쪽을 베어 버리게 했다. 해진이 보고, 대련 밑에 한 글자씩을 첨가하여,

門對千竿竹短(문대천간죽단) 문을 마주한 곳엔 천여그루의 대나무 짧아지고
家藏萬卷書長(가장만권서장) 집엔 수장한 만여권의 책 늘어나고

조상서가 화가나서 곧장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게 했다. 해진이 보고, 또 한 글자씩을 첨가하여,

門對千竿竹短無(문대천간죽단무) 문을 마주한 곳엔 천여그루의 대나무 짧아졌다 없어지고
家藏萬卷書長有(가장만권서장유) 집엔 수장한 만여권의 책 늘어나서 지금도 있고


조상서가 보통 애가 아님을 알고 그를 불렀다. 해진이 조상서 집에 오니, 정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정문을 열지 않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가 아니다”고 하니, 조상서가 문안에서 “내가 상련(上聯)을 낼 터이니, 만약 너가 하련(下聯)을 대답하면 문을 열고 너를 맞이하리다.”고 하였다. 조상서가,

小犬無知嫌路窄(소견무지혐로착) 조그만 개는 길이 좁은 것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고 하니, 해진이 대답하여,

大鵬展翅恨天低(대붕전시한천저) 대붕이 날개를 펴지만 하늘이 낮음을 한탄하노라 라고 대답하였다. 조상서가 또,

天作棋盤星作子, 誰人敢下(천작기반성작자, 수인감하) 하늘을 바둑판으로 삼고 별을 바둑돌로 삼으니 누가 감히 둘수 있을까?

라고 하니, 해진이 이어서,

地當琵琶路當弦, 哪個能彈(지당비파로당현, 나개능탄) 땅을 비파로 삼고 길을 줄로 삼으니 누가 연주를 할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조상서가 해진의 대답이 물흐르듯 하여, ‘奇才’라고 칭찬하고, 곧장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조상서가 그를 방으로 초대하여, 부모님을 무엇을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니, 해진이 아버지는 매일 물을 팔기에 새벽과 밤에 물통 속에 태양과 달의 모습이 비치고, 어머니는 베틀에서 베를 짜기에 두 손이 쉬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嚴父肩挑日月(엄부견도일월) 아버지는 어깨에 태양과 달을 매고
慈母手轉乾坤(자모수전건곤) 어머니는 손으로 세상을 돌리십니다

라고 했다. 조상서는 그 말을 듣고 해진의 기재에 감복했다고 한다.

이런 재치와 기지를 가진 해진이기에 임금에게 아부하는 것도 적절하고 기분좋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부가 천박한 코메디같으면 듣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역정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우아한 아부는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겠지만 많은 독서로 이를 보충한 결과이리라.

또 한 사람은 송(宋)대 소문관(昭文館)대학사를 지낸 정위(丁謂)다. 그는 학문도 뛰어났지만, 아부에도 고수였다. 한번은 송 진종(眞宗)을 보시고 낚시하러 갔다.

그런데 한참을 낚시했지만 고기의 입질이 없었고, 송 진종이 약간 화가 났다. 정위가 기회를 틈타 진종에게 “꾀꼬리는 임금의 수레에 놀라 꽃속으로 숨고, 물고기는 임금의 얼굴이 두려워 낚시바늘을 무는 것이 늦네(鶯驚鳳輦穿花去, 魚畏龍顔上鉤遲.)”라고 하였다. 진종이 화가 누그러졌음을 물론이다.

참 대단한 재치다. 앞의 해진은 보통 물고기는 물지 않기에 임금은 용만을 낚는다고 하였고, 정위는 물고기가 임금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워 감히 입질을 못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위가 뒷 구절만을 언급했으면 오해의 여지가 있었을 것인데, 적절하게 앞구절에서 꾀꼬리를 언급하여 자연속의 생물들은 자연히 임금이 타신 수레(임금이 아니라)에 놀라 피한다는 것으로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하기야 황제에게 아뢸 말인데, 속으로 몇 번을 되뇌고 되뇌어서 한 말이겠는가?

또 하나는 청대 기윤(紀昀: 자가 효람(曉嵐))에 관한 일화다. 한번은 건륭(乾隆)황제를 따라 남쪽으로 순행을 갔다. 어느날 저녁, 배가 강 중앙에 이르렀는데, 어선 하나가 빠르게 나아가니, 건륭황제는 시흥이 일었다.

즉시 기효람에게 ‘월하어주(月下魚舟)’를 제목으로 하여 칠언절구를 짓되, 시속에는 10개의 ‘一’字를 넣게 했다. 기효람은 글을 구상하는 재능이 아주 빨라서, 한편으로는 머뭇거리며 한편으로 읊어, 단순에 시 하나를 완성했다.

一篙一櫓一漁舟(일고일로일어주), 상앗대 하나 노 하나 어선 하나,
一個艄公一釣鉤(일개소공일조구). 뱃머리엔 노인 하나 낚시바늘 하나,
一拍一呼還一笑(일박일호환일소), 한번 손벽치면 한번 호응하고 또 한번 웃네,
一輪明月一江秋(일륜명월일강추). 밝은 달 하나 가을 강 하나.

참 대단한 순발력이다. 이들 두고 어찌 천재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제목을 정해주고 一자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면 오히려 쉬울 지 모르지만, 이 짧은 순간에 운자까지 맞는 것을 볼 때 상당한 시재를 가진 듯 하다.

그리고 내용에서도 주변의 경치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 배안의 모습까지 어쩌면 그 짧은 순간에 이 시를 지어내며, 특히 3구의 ‘還’자는 시인의 재능을 더욱 각인시킨 글자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시는 그 이전 시인 왕사정(王士禎)의 <題秋江獨釣圖>를 도용했다면, 지나칠까? 독자들도 한번 비교해 보시라.

一蓑一笠一扁舟(일사일립일편주), 도롱이 하나 삿갓 하나 배 하나,
一丈絲綸一寸鉤(일장사륜일촌구). 1丈의 낚시줄, 1寸의 낚시바늘.
一曲高歌一樽酒(일곡고가일준주), 노래 한곡 소리높여 부르고 술 한 잔,
一人獨釣一江秋(일인독작일강추). 낚시하는 한 사람 가을 강 하나.

이 기윤은 평생 ≪사고전서≫편찬에 정력을 쏟은 사람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대학자였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에 그의 박식함을 이용하여 왕사정의 시를 인용했을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는 황제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기에 다른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예전 황제를 곁에서 모신 문신은 시재에 대단한 능력이 있고 박식함까지 갖추었던 모양이다. 한 무제를 모신 동방삭의 박식함은 거의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불시에 황제들의 명령을 받아, 시를 짓거나 상식에 대해 말씀을 올릴 때는 평소의 독서가 뒷받침이 안된다면 불가능하리라 보여진다.

평소 독서와 지식의 깊이가 없이 억지로 시를 쓰거나, 비유하거나 글을 쓰다보면, 그 글이 어딘가 어색하고, 떫다. 몇 마디 말로 남을 쉽게 이해시키고, 적절하게 비유하려면 독서와 생각을 많이 하라. 우리 낚시인은 낚시초리끝을 바라보며 충분한 사색을 하기에, 그 나머진 독서만 하면 되리라.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대부가 사흘이나 책을 읽지 않으면 禮義에 부합되지 못하여 표정이 밉쌀스럽고 말에 참맛이 없어지게 된다.(士大夫三日不讀書, 則禮義不交, 便覺面目可憎, 語言無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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