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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놀라운 ‘쌩얼’

醉月 2009. 11. 17. 08:52

10억짜리 욕망의 바벨탑
대한민국 아파트, 거주공간 아닌 금전적 이익의 결정체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cspark@uos.ac.kr

해산토굴의 작가 한승원이 최근 펴낸 소설집 ‘희망 사진관’ 중 단편 ‘고추밭에 서 있는 여자’에서는 몸살로 몇 날을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한약을 지어다 건네는 남편의 걱정과 아내의 퉁이 편안한 투로 오간다.

“당신, 죽기에는 너무 늦었어. 죽을라면은 삼십대에, 아니 늦어도 사십대 후반쯤에는 죽어줘야 새파란 각시를 얻어서 살지. 당신, 나 이렇게 주름살 생기고 저승꽃 다 피게 해놓은 다음에 죽으면 누가 송장 치우겠다고 들어와 살 것이여? 이 악물고 일어나서 나 홀아비 면하게 해주어야 해. 알겄어요?”

“아이고, 요즘 나이 예순다섯 살이면 제2청춘 시작이라는데, 당신 벌어놓은 돈 통장에 가득 들어 있겄다, 날찍한 아파트 있겄다, 새끼들 다 키워 시집보내놨겄다… 나 없어지기 기다리는 속창아지 빠진 년들 줄을 서 있을 거라는데, 내가 어느 년 좋으라고 지금 죽어줘? 꿈 깨시오. 고르랑 팔십에다가 귀신같은 구십에다가 신선 같은 백 살까지 살다가 죽을 터인께 두고 보시오.”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현장l

마치 따뜻한 봄날 툇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노부부가 주고받는 얘기처럼 읽힌다. 예순다섯이라면 이제는 세상 사는 일에 이력이 생겨 어느 정도는 포기하거나 달관할 연륜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서 ‘아파트’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수단처럼 여겨져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란 과연 무엇인가. 글쟁이 강준만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현장, 바로 그곳이다.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이나 다툼, 혹은 깜짝깜짝 우리를 놀라게 하는 비도덕적·비윤리적 상황은 대부분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라는 틀에 넣어보면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어느 누구도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법적 기구인 입주자 대표회의가 구성되지 않는 중대형 아파트 입주자들의 불평과 불만, 재건축아파트 조합 결성을 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보다 더 반기는 부모들, 아파트가 구조적으로 튼실하지 못해 곧 무너지게 생겼다는 구조안전진단 평가결과에 경축 현수막을 서둘러 붙이는 건설업체와 이름도 다양한 추진위원회, 남에게 뒤질세라 목청 돋우며 아파트 문제를 비난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일희일비하는 아침 식탁 풍경 등등.

모두가 얼마나 아파트에 목매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신흥종교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아파트는 ‘한국문학의 공간탐사’에서 저자 최재봉이 정의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분명 ‘낯설고도 친숙한’ 풍경이자 일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파트’라는, 주택의 한 유형을 일컫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 수는 443만3000여 가구였는데, 이 가운데 아파트는 3만4000여 가구로 백분율로 보면 0.77%에 불과했다.

1970년 4월8일 새벽 6시, 5층짜리 시민아파트 한 동이 무너져내려 2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에서 엿볼 수 있듯, 당시 아파트는 저소득층을 위한 질 낮은 주택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아파트라 불리는 주택을 소유하게 돼 기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으로의 이주를 희망했다. 이랬던 상황이 급격하게 바뀐 계기는 이른바 한강맨션아파트와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대표되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의 공급이었다.

약 132㎡ 규모에 복층구조일 뿐 아니라 수영장까지 갖춘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아파트는 꿈의 궁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전화의 응대말까지 달라졌다. “반폽니다” 하는 말은 곧 “우리는 반포아파트에 살아요”와 동의어가 됐고, “가회동입니다”라는 말은 “비록 세상이 아파트로 바뀌고 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품격 있는 주택에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이런 양태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아파트와 품격 있는 단독주택이 한 번쯤 겨뤄볼 만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파트 보유 여부로 성공한 인생 판단

아파트가 별리(別離)적 증후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다. 70년대 후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부동산 폭등은 가족의 해체와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사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다. 소위 정주성(定住性)의 약화가 빚어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김숙의 단편집 ‘그 여자의 가위’ 중 ‘오래된 붉은 벽돌집’에는 “45평짜리 아파트가 제(아내) 앞으로 떨어진 날부터 집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른바 복부인의 등장이 바로 이때부터이며, 사내들 사이에서는 겸연쩍은 ‘처복(妻福)’보다는 앞뒤 글자가 바뀐 ‘복처(福妻)’가 환영받기 시작했다. 소설은 계속된다. “새 집을 손에 넣을 때마다 이제 더는 부유(浮遊)하지 않고 그 집에 닻을 내리리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면 모를까, 더 비싼 집, 더 화려한 집에의 유혹은 번번이 제 심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라는 고백은 1970~80년대를 집 때문에 고민하면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990년대부터 아파트는 욕망과 소비의 대상이 됐다. 어떤 윤리적 잣대보다 앞서는 가치이자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금전적 기대이익과 모든 욕망의 추구대상을 관통하는 결정체가 바로 아파트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매개로 너나 할 것 없이 금전적 이익을 좇는 집단적 거주자로 전락했다. 아파트는 이제 새로운 욕망을 찾아 언제나 떠날 태세를 갖춘 “잔뜩 발기한 거대한 난수표”(한수영의 소설 ‘공허의 1/4’)가 됐다.

이혼을 하면서 “남편은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가는 대신 아내에게는 강남의 30, 40평짜리 아파트를 넘겨주는”(윤대녕의 ‘올빼미와의 대화’) 세상이 됐다. 그뿐 아니다. 나이 든 부모를 수발하는 것이 싫어 자식들이 모여 “아버지가 죽으면 아파트를 주기로 하고, 낯모르는 사람을 시켜 어르신의 수발을 들도록 하거나”(이혜경의 ‘피아간’),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져도 어렵사리 구입한 아파트를 처분하기보다는 “차라리 몸을 파는 것이 낫다고 운위되는 세상”(김윤영의 ‘얼굴없는 사나이’)이 됐고, 많은 사람은 이에 동조한다.

젊은이들은 원룸에서의 동거는 가능하지만 “신혼은 물론 아파트에서 시작한다”(박민규의 ‘굿바이 채플린’)는 결의로 연애에 나서고, “맞벌이해서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는 것이 꿈인”(우영창의 ‘하늘다리’) 여성들이 증권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그렇게 꾸던 꿈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결혼한 여자들의 머리에는 남편과 육아, 아파트 평수 그리고 가족주의가 8할을 차지”(안은영의 ‘이지연과 이지연’)하고 있다는 글이 이를 적절하게 묘사한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교직을 정년퇴임한 시아버지 될 사람에게 무람없이 “연립은 사주셔도 짐”(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이라는 말씀을 드리거나 “빚 없이 강남의 50평 아파트에 산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서유미의 ‘쿨하게 한 걸음’)이라 생각하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너나없이 “10억짜리 아파트에 살며 20억이 안 되니까 안심할 수 없다고 엄살떠는 중산층 환자들”(이지민의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이 돼버렸다. 이것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 아파트를 통해 그려진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내시경
인터넷 강국, 女權 신장, 자궁암 급감 등 오늘 우리 삶의 키워드 담겨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아파트에 미치다-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저자 sangin@snu.ac.kr

10월18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광장 힐스테이트’ 모델하우스에는 7000여 명이 아파트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100m 이상 줄을 서는 등 하루 종일 붐볐다.

산업혁명 이후 절박해진 노동자 계급의 주택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태동한 아파트. 일제 강점 직후 일본인 육체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 형태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바로 그 아파트가 오늘날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뒤덮고 있다. 얼마 전 울릉도에 국민임대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대한주택공사는 그것이 ‘독도 지키기’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는데, 이쯤 되면 아파트는 국가 대표 브랜드이자 주권의 상징인 셈이다.

아파트의 의미는 단순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거나 즐겨 찾는 집의 유형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암호이자 한국 현대사를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내시경이다. 아파트를 알면 한국이 보이는 것이다. ‘아파트의 나라’가 되면서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여성들의 자궁경부암이 1980년대 후반 이후 급감했는데, 이는 아파트에서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해석이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적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아파트라는 현대식 집합주택의 보편화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아파트는 국내 미술시장의 판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거 한옥시대의 미술시장에서는 서예나 사군자(四君子) 그림이 으뜸이었다. 동양화의 인기는 양옥 단독주택 시절까지도 지속됐다. 하지만 아파트가 늘어가면서 대세는 추상화 계열의 서양화로 급변했다.

 

한옥은 사군자, 아파트는 서양화

때로 아파트는 그 자체가 권력이다. 달동네가 고급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 그 지역의 정치 성향이 돌변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공약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기도 한다. 양성 평등이라는 측면에서도 아파트는 할 말이 많다. 아파트는 쉽게 집을 비우고 외출할 수 있는 구조라 주부들은 더 이상 ‘안사람’이나 ‘집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아파트는 여성 노동력을 집 밖으로 해방시킨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여권(女權) 신장이 이뤄진 결정적 계기 또한 이른바 복부인들의 아파트 투기 성공이 남편의 체면을 납작하게 만든 데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실내에서도 아파트는 남성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 남성 전용의 사랑방이 사라져 안방이나 거실에 흡수되고 말았다. 베란다로 쫓겨나가 담배 피우는 궁상, 바로 이게 아파트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남자들의 현주소다. 좌식생활이 입식생활로 바뀌면서 식탁이나 침대, 소파 같은 신체가구가 일반화한 것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반길 일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고정인 채 이불이나 밥상이 이동했는데, 붙박이는 남성이고 운반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 아니었는가.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 주거양식이 된 지금,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갖는 감정은 양면적일 때가 많다. 좋아하면서 싫어하고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식이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닭장’ 같은 콘크리트 공간에서 따뜻한 ‘이웃사촌’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딴에는 그렇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거나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자화상이다. 아파트의 확산과 더불어 문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과거 골목길이 수행하던 다양한 기능을 오늘날 엘리베이터가 대신해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근린공동체 실종의 원인을 죄다 아파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속단이 아닌가 한다. 오히려 그것은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국인의 평균 거주기간이 유난히 짧아진 탓일 성싶다.

   

최근 자료를 보면 아파트가 많은 서울은 평균 주거기간이 5.4년이고,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적은 군 단위 지역은 15.7년이다. 또한 주거이동 빈도는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높은데, 이는 재산증식과 어느 정도 관련 있어 보인다. 나무를 자주 옮겨 심을수록 숲을 만들기 어려운 생태계의 이치가 어디 인간세상이라고 예외겠는가. 아파트에 미친 한국을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아파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대표적 주택유형 중 하나일 뿐이며,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전성시대가 세세손손 지속되리라 예상하거나 그렇게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과 사회가 어떠할지에 따라 한국인의 주거양식은 얼마든지 변화할 것이며 또한 그래야 한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 예찬이나 반사적 비판은 미래의 주거문화를 구상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이 함께 든 아파트의 공과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만이 대안적 주거문화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미래
신도심 아파트, 반세기 이후 사라질 듯 … 구도심 휴먼 주거형태 뜬다


경기도 용인시 인근에 조성된 전원마을.

혹자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유독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사회적 필요성 때문이다. 1960~70년대에 도입된 아파트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근대 산업화시절 근로자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부족해진 주거지의 대체재였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한국의 아파트 건축은 ‘맨션’으로 명명된 고급 주거개념의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그때까지 우리의 전통 주거문화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당시의 건축기술로는 아파트가 지닌 난방, 상하수도 설비 같은 장점을 전통 주거건축이 수용하기에는 커다란 경제적 부담이 따랐기 때문. 따라서 당시 아파트는 대다수 주부에게 매력 있는 주거공간이었다.
쾌적한 환경도 한몫했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은 대중의 삶의 패턴을 바꿔놓았는데, 사람들은 특히 주거지 근처에 넓고 쾌적한 공원이 있는 것을 선호하고 주차장 문제 등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우리나라 도시구조는 자연발생적이면서 일제식민 치하에서 계획된 신작로 개념의 도시구조로, 구(舊)도심지의 낙후한 주변 환경은 더 이상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도심지 외곽에 건설되는 신도시 개념의 아파트가 그 대안이 됐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국가 정책적 요인도 있다. 도시의 팽창은 수평적 팽창에 한계점을 지닌다. 결국 수평적 팽창에 수직적 팽창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건설업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 원동력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한국 경제의 내수경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업종이다. 따라서 포화된 도시로 인한 정부 주도의 이주정책은 건설 경기의 활성화와 함께 단기간 내의 신도시 건설을 요구했고, 이를 수용할 주거 형태로 결국 초고층 아파트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정부 주도로 전 국민을 상대로 확산시키는 아파트 모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언제까지 쾌속 질주할까. 우리보다 도시발전이 앞선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도시발전 제1기는 열악한 환경의 구도심에서 도시 외곽의 신도심 아파트단지로 이주하는 단계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형’이다.
제2기는 아파트단지를 떠나 더 외곽의 단독주택으로 옮겨가는 단계다. 현재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인 단위의 이주가 시작됐으나, 국가정책 사업으로 전기·수도·가스·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제3기는 구도심을 재생하고 재개발해 모든 문화 여건이 완비된 구도심으로 회귀하는 단계다. 현재 한국의 구도심 재개발은 민간 주도의 개발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도심 외곽의 신도심 아파트단지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는 사업으로 그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도심 재생을 위한 재개발사업은 정부기관의 주도로 과도한 밀도를 배제하고 도시 경관과 쾌적한 주변 환경이 어우러지는 휴먼스케일(Humanscale·인간척도)에 입각한 도시계획 입안이 선행돼야 한다.
제4기는 구도심의 주거지와 외곽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생활하는 단계다. 모든 문화 여건이 완비된 구도심의 주거지는 학업 혹은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 세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주거공간이다. 그리고 외곽의 단독주택 거주를 선호하는 부모 세대를 위해서는 외곽에서 도심으로 통하는 방사형의 고속도로 건설이 선행돼야 한다.
이와 같은 이행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의식과 행태의 변화만이 불러올 것이다. 현재 철근, 콘크리트를 재료로 건설 중인 신도심의 아파트단지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반세기를 견디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반세기 후에는 없어져버리는 도시가 된다는 의미다. 결국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그들의 기억과 추억이 같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반면 구도심은 수많은 시간과 함께 공존하고 발전해온 인간의 역사다. 그리고 그 도심 안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이 깃들어 있다. 도심 재생은 그 같은 숨결의 자취를 찾아서 휴먼스케일에 입각해 진행해야 할 것이다.
김인호 조선대 건축학부 교수 mijinho2000@chosun.ac.kr

평수 앞세우는 ‘일그러진 차별’
자가·전세, 소형·대형 따라 공동체 분할 … 재건축 앞두고는 주민끼리 ‘이놈’ ‘저놈’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유두진 주간동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광주 북구 동림주공아파트 1단지와 2단지 사이에 세워진 철제 담장. 애초 이 아파트는 임대와 분양아파트 간 ‘담장 없는 마을’을 표방했지만 2단지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사유지 재산권 행사를 이유로 221m의 담장을 설치했다.

10월2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 대여섯 명의 어린이가 미끄럼틀을 타고 서너 명은 자전거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네 살 남짓한 아이 둘이 미끄럼틀 앞에서 발이 엉켜 넘어지자 벤치에 앉아 있던 엄마 둘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죄송해요. 우리 아이 때문에….”
“괜찮아요.”

아이들은 다시 뛰어놀고, 안면을 튼 엄마들은 벤치에서 육아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잠시 후 손자와 나온 할머니도 동참했다. 그들은 최근 개장한 ‘북서울 꿈의 숲’(강북구 번동)에 함께 놀러 가자는 ‘맹세’를 하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몇 동 사세요?”
“이 아파트 근처에 살아요.”
“….”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더니 ‘아파트에 사는’ 엄마 A씨가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근처에 사는’ 엄마 B씨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지켜보던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저렇다니까. 내가 여기 아들네에 온 지 한 달 됐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엄마들은 꼭 어디 사느냐고 묻더라고. 임대아파트나 평수 작은 데 살면 잘 어울리지도 않아. 오죽하면 아이들도 ‘너, 몇 동 살아? 너희 집이야, 전세야?’ 하고는 서로 비슷하면 친구가 되더라고. 기가 차서 원.”

아파트는 ‘개폐식 삶’의 선택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현관문을 경계로 필요하면 세상과 절연해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지천으로 깔린 이웃 속으로 나올 수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거나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딴에는 아파트가 현대인의 심성에 부응하는 주거공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 A씨는 조선시대처럼 반촌(班村)과 민촌(民村)의 엄격한 공간 구분을 원했을지 모른다.

‘아파트 평수=지위’이고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면, 크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공존하는 ‘단지 내 혼재 방식’은 마뜩지 않을 일이다. 도시화의 진전에 따른 공동체 붕괴현상을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으로 치유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현실이다. 아파트 단지라는 ‘앞마당’을 공유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회집단, ‘아파트 공동체’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임대와 분양 사이’엔 철제 담장

광주 북구 동림주공아파트는 1단지와 2단지 사이에 철제 담장이 세워져 있다. 이 ‘어색한’ 담은 임대아파트인 1단지와의 차별화를 위해 분양아파트인 2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설치한 것. 애초 동림주공아파트는 임대와 분양 아파트의 ‘공동체’를 표방하며 단지 간 ‘담장 없는 마을’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초 2단지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사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내세워 단지 경계를 지으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철제 담장을 친 명분은 ‘사유지 보호’였지만, 이면에는 ‘분양아파트에 산다’는 과시욕과 ‘임대아파트와는 다르다’는 차별이 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말이다. 현재 철제 담장의 길이는 221m. 그나마 구청의 철거명령으로 지난해 말 어린이공원 보행통로 쪽에 설치된 담 40m가 철거됐다. 그리고 주공 측에서 올해 3월 40m 철거구간에 보행자 통로를 설치함으로써 단지 간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1단지와 2단지 주민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1단지 임차인 대표회 오재헌 대책위원장은 “1단지 주민들은 남은 221m 철제 담장도 불법이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2단지 주민들과 또다시 싸움을 일으킬 수 있어 마음을 추스른 상태”라며 “하지만 애초 ‘담장 없는 아파트’는 이미 빛이 바랬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시내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친구가 달라진다.

재건축·재개발은 주민갈등 통과의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앞두면 아파트 입주민 간의 갈등은 ‘통과의례’라 할 만큼 빈번하게 빚어진다. 서울의 ‘대표 아파트’로 33년간 명성을 날린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입주민 동대표 6명은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동대표 회장 신모 씨가 명예훼손 등으로 이들을 고소한 것. 지난 5월 재건축설립추진위 문제를 놓고 6명을 포함한 상당수 주민이 회의를 했는데 이를 신 회장 측이 몰래 녹음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지난 6월2일 긴급 주민회의에서는 신 회장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반대 측 주민들이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동별 대표자의 임기 2년(연임 가능) 조항을 4년으로 늘리고 임원 임기도 1차 중임 제한을 삭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주민투표를 하면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며 반발한 것. 일련번호와 간인(間印·사잇도장)이 없는 투표용지가 나돌았고 한 가구에서 2표가 나왔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결국 원상회복됐지만 주민 간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2010년 2월 임기가 끝나는 현 회장이 규약을 바꿔 장기집권하려고 한다. 재건축 때까지 해먹으려는 불순한 의도다”라는 의혹 제기에 “불법투표였다면 선거 책임자를 처벌해야지, 회장에게 왜 시비냐”는 반박과 ‘이놈’ ‘저놈’ 막말이 이어졌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재건축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의 경우 2008년 4월 재건축 사업승인을 받았지만,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 사이의 주민갈등으로 사업 진행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가락시영아파트 주민들은 2000년대 초부터 재건축 사업을 추진했으며 모두 7200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합의한 뒤 조합 설립을 마쳤다. 그러나 서울시가 임대주택 1000가구를 포함, 아파트 8100가구를 짓는 것으로 재건축 방식을 결정하면서 기존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평형과 추가 분담금 문제로 주민 간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9월30일 서울고등법원은 반대 측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이 같은 갈등은 결국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락시영아파트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소송 여파로 가격이 떨어져 42.98㎡ 아파트가 급매물로 5억4000만원까지 나왔다. 한 달 전에 비해서도 4000만원가량 떨어진 가격”이라고 전했다. 재개발도 주민갈등으로 개발이 지연되긴 마찬가지.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개발주체와 아파트 주민 간, 그리고 아파트 주민끼리의 입장차가 겹치며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부이촌동 일대와 철도정비창 부지를 합한 56만6000㎡(약 17만평)를 재개발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 사업. 그러나 서부이촌동 일부 아파트단지 주민들의 반대로 2007년 8월 개발계획이 확정된 이후 최근까지 사업진행이 표류하고 있다. 현재 개발을 반대하는 곳은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683가구), 성원아파트(340가구) 등.

이들은 수용 방식이냐, 환지 방식이냐의 개발방식에 대한 입장차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으며 세부 개발계획안을 놓고도 주민끼리 의견이 나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 주민의 반대가 있다 해도 서부이촌동 전체적으로는 주민 50% 이상이 개발안에 동의해 법적으로는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부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계속 반대한다면 국제업무지구의 통합개발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층간 소음이 살인 불렀다

지난 6월2일 수원지방법원 형사3부는 경기도 수원시 한 아파트 입주민 A씨에게 3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A씨의 죄목은 재물손괴죄. A씨는 2008년 3월경 층간 소음 문제로 자주 다퉈오던 아래층 입주민 B씨의 차량을 일부러 긁어 크게 흠집을 냈다. 사건 전날 소음 문제로 위층 A씨와 아래층 B씨가 욕설을 하며 다퉜고 집안싸움으로까지 악화됐다. 이에 분이 풀리지 않은 A씨는 결국 ‘재물 손괴’를 했고, 그의 행동은 아파트주차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불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가 설립된 1991년 7월 이후 2009년 8월 말까지 처리된 환경분쟁 2166건 중 소음·진동으로 인한 것이 1856건(86%)에 달했다. 지난 5월 경남 진주에서는 아파트 소음 문제가 결국 살인을 불렀다. 진주시 가좌동의 아파트에 사는 20대 후반 김모 씨가 평소 소음 문제로 다퉈온 옆집 70대 할머니 이모 씨를 목 졸라 살해한 것.

피의자 김씨의 경찰진술에 따르면 “옆집 할머니가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불을 지르려고 양초를 들고 들어갔다가 부엌에서 일하던 이씨가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살해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소음분쟁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청소기, 악기 소리 등이 주원인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김혜리 간사는 “소음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주민 간 소통을 통해 좀더 여유 있고 너그럽게 풀어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적절한 소음규정, 소음을 줄이려는 건설사의 성실시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단 민원에 학교도 사라져

폐교 위기에 몰렸다가 학교 이름을 바꾸고 나서야 명맥을 유지하게 된 동호정보공업고교(현 서울방송고) 사례는 아파트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1991년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개교한 동호공고는 그간 별탈 없이 운영되다 2000년대 초 인근 남산타운아파트의 재개발이 끝나면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원래 2000가구 이상 아파트가 지어지면 초등학교를 짓기 위한 학교용지 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5150가구가 지어진 남산타운아파트의 경우 최소 2곳의 초등학교가 분담금을 통해 설립됐어야 했다. 하지만 남산타운주민조합 측은 분담금을 내지 않으려고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2000가구 미만(각 1700가구씩 3구역)으로 구획을 나눠 분담금 부담요건을 피해간 것. 덕분에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주를 하고 보니 초등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건넛마을 초등학교로 30분 넘게 통학해야 했다.

자가당착에 빠진 주민들은 결국 아파트단지 앞에 자리잡은 동호공고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주변 슬럼화,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동호공고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초등학교를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 여기에는 ‘공업고등학교=혐오시설(?)’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깔려 있었다. 날벼락을 맞게 된 학교 측은 저항도 해봤으나 밀려드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이전 부지를 물색하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용산구, 강서구 일대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예정부지 주민들도 동호공고의 이전을 반대했다. 동호공고 측은 결국 2008년 2월 ‘서울방송고등학교’로 학교 특성과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학교 부지의 일부를 초등학교 부지로 내주기로 합의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민원으로 폐교가 결정된 학교도 있다. 1998년 9월, 53억원을 들여 개교한 보덕초교(대전 유성구)는 내년 2월28일부로 폐교가 결정됐다.

관할 교육청은 학교 인근 택지개발 사업에 따른 교육 수요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2005년 9월 보덕초교와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곳에 두리초교를 개교했다. 그런데 아파트 학부모들이 단독주택지에 있는 보덕초교보다 택지개발지구 내의 두리초교를 선호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원래는 보덕초교로 배정받아야 할 인근 800여 가구 아파트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두리초교로 보내달라며 교육청에 요구했고, ‘두리초교로 보내주지 않으면 아이들을 등교시키지 않겠다’는 민원까지 제기했다. 관할 교육청은 여론에 떠밀려 결국 통학구역을 조정해줬고, 이로 인해 개교 당시 37개 학급이던 보덕초교는 현재 10학급으로 줄었다. 반면 두리초교는 50학급에 이르는 과밀학교가 됐다.

 

“아파트는 싫다 싫어!”
정원 갖추고 저층 여유로운 한옥과 타운하우스 각광

1 전통 한옥의 멋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거실. 2 현대식 싱크대 등으로 리모델링된 주방. 옛것과 새것이 다소 부조화스럽게 보이지만 일상생활에는 편리하다. 3 거실 문턱에 앉아 앞마당을 바라보는 집주인 권재혁 씨.

전통 한옥

“친구들이 ‘늘 MT 온 기분으로 사는 것 같아 좋겠다’며 부러워합니다. 가족과 앞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기분도 들고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아담한 카페를 운영하는 권재혁(35) 씨는 한옥 예찬론자다. 90여 년 전 지어진 효자동 82.5㎡(25평) 한옥에 사는 그는 앞마당에서 고추도 키우고 카페 음식에 쓸 허브도 재배하며 아기자기한 삶을 꾸려간다.

결혼 후 4년 정도 아파트 생활을 했지만, 갑갑한 아파트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는 데다 층간 소음 문제로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은 게 아니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아랫집에서 올라와 항의를 하는 통에 너무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런데 항의하는 아랫집에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니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답답했죠.”

이후 한옥 생활을 결심했다. 마침 아내도 같은 생각이어서 한옥으로 옮기는 것은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4월 이 집으로 이사 왔는데,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처럼 아랫집과 트러블 날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마음도 편해졌고요. 집도 조용해요. 전세로 들어왔는데 주변 시세보다 싸게 들어와 그것도 좋았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권씨의 아들은 처음 한옥에 왔을 때 ‘할아버지 같은 집’이라며 낯설어했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서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는 잔소리를 들을 일 없어졌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앞마당도 생겨 성격이 더 밝고 활기차졌다고 한다. 우리 전통 한옥은 재료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자연친화적이다.

특히 옛날식 한옥은 천연나무와 흙벽(짚 등을 섞어 만든) 등으로 기둥을 세우고 전반적인 집의 틀을 만들다 보니 새집증후군, 헌집증후군 등을 일으킬 유해화학물질이 전혀 없다. 이뿐 아니라 지붕의 선과 담, 그리고 문살의 무늬 등에서 고향에 돌아온 듯한 포근함과 은은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전통 한옥은 시원한 여름, 따뜻한 겨울

권씨의 한옥은 원래 165㎡(50평) 규모의 ‘ㅁ’자 한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82.5㎡(25평)씩 두 곳으로 나뉘어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권씨는 가끔 친구들과 앞마당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친구들은 “반으로 나뉜 곳에 살고 있는 옆집사람들은 이사 갈 생각이 없나? 그곳으로 이사해 한옥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권씨의 집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지만 한옥 특유의 여유로움과 편안함 때문에 전원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옥이라고 해서 시설이 낙후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와, 처마, 기둥 등은 수십 년 전 모습 그대로지만, 생활공간인 내부는 모두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돼 도시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4 심플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주방. 5 1, 2, 3층을 관통하는 ‘중정’. 화단과 툇마루가 있어 친근한 느낌을 준다. 6 널찍한 안방과 중정이 통유리로 연결돼 답답함이 덜하다. 7 각각의 트리플렉스 하우스는 조그만 복도를 따라 연결돼 있다.

트리플렉스 하우스

단독주택 + 콘도 흥미로운 주거공간 ‘트리플렉스’

복잡한 아파트를 대용할 수 있는 주거 형태로 최근 각광받는 것이 타운하우스다. 영국의 교외주택에서 비롯돼 발전한 타운하우스는 공동정원(common space)에 연속저층(低層)으로 건축된 주택을 말한다.

쉽게 말해 단독주택과 콘도미니엄의 장점을 살려 같은 모양의 단독주택을 여러 개 이어 지은 것이다. 지난 10월2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타운하우스 한 곳을 찾았다. 트리플렉스 하우스 ‘메조트론II’(이하 트리플하우스)라는 긴 이름을 가진 곳이다.

3대가 한 집에 모여 살 수 있는, 그러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3층 구조로 설계된 트리플하우스는 꽤나 흥미로운 주택이다. 일반적으로 주택건축 대지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을 최고로 치는 데 반해, 트리플하우스의 대지는 꼬불꼬불한 모양의 자투리땅이다.

그러나 휘어진 물음표 모양의 입지적 약점을 서울시내 골목길처럼 주택을 배열하는 데 활용해 오히려 친근감을 높였다. 이 같은 자투리땅의 활용과 참신한 디자인을 인정받아 트리플하우스는 2008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본상을 차지했다.

전반적인 특징은 내부 가운데에 중정(中庭)을 두고 한쪽 복도를 연결지점으로 삼아 각 세대가 3개 층을 이루는 트리플렉스(Triplex)의 구조를 이루는 점.

“도심 속에서도 집에 작은 앞마당을 갖고 땅을 밟으며 생활하는 전통적인 주거형태를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부분도 강조하고 싶었고요. 이곳은 겉보기에는 현대식 주택 같지만 공간구조 등은 상당 부분 한옥의 구조를 따랐습니다.”

주택을 설계한 연경흠 건축사(48·건축사사무소 ‘연’ 대표)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 트리플하우스는 전통 한옥에서 많이 봐온, 한쪽이 터진 ㅁ자 구조, 툇마루, 우물을 닮은 수변 공간 등을 갖춰 친근한 느낌을 준다. 3층 구조이다 보니 문을 열면서 시작되는 공간이 1층일 거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2층 거실에서부터 공간이 시작된다.

그곳에서부터 공용 공간인 주방이 중정을 지나 정면에 자리하고, 계단을 통해 1층과 3층으로 각각 독립된 세대가 펼쳐진다. 이곳의 특징적인 공간 중 하나는 1층 툇마루. 중정 노릇을 하는 수변 공간 한쪽에 자리한 툇마루는 아파트의 답답함과 차별화되는 여유로움을 안겨주며, 트리플하우스의 한옥적인 특징을 가장 잘 살린 곳이다.

일반적으로 타운하우스의 입지는 대규모 택지지구 내 블록형 단독주택지, 연립주택지, 전원형 민간택지 등으로 나뉘며 최근에는 경기도 용인 동백, 성남 분당, 파주, 동탄신도시 등에 고급형 타운하우스가 많이 지어지고 있다.

다만 타운하우스는 너무 고급형으로 지어지는 경향이 많고, 서울 도심에서 멀어 시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아파트의 답답함을 벗어나 사생활을 보장받는 것은 좋지만 그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경제적, 시간적 부담은 어쩔 수 없이 타운하우스를 ‘그림의 떡’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건축되는 타운하우스들은 대부분 150㎡(45평) 이상으로 웬만한 곳은 300㎡(90평)를 훌쩍 넘긴다. 트리플하우스도 약 200㎡(60평) 규모로 가격이 12억~13억원에 이른다. 평당 2000만원을 웃도는 수준.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3가족 또는 3대가 함께 사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은 아니다.

“친환경 아파트라고? 알고 보면 PVC 비닐하우스”
사후관리 전혀 없는 친환경 건축물의 실체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친환경건축물’ 인증기관으로부터 최우수 인증을 받은 경기도의 한 신축아파트.

“우리 아이의 건강한 실내 생활을 생각합니다.”

10월 중순, 서울 한강변에 건설될 예정인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이 아파트 건설회사는 미래 투자가치와 함께 친환경 아파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 아파트 인테리어에 ‘친환경 8대 마감자재’를 사용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친환경 아파트는 이제 대세다. 언제부턴가 친환경은 ‘기본 사양’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이미지 광고만 봐도 ‘자연이 그리는 아파트’ ‘자연과 함께 산다’ 등 직간접적으로 친환경을 강조하는 내용 일색이다. 광고대로라면 요즘 아파트는 매우 깨끗해서 새집증후군이나 실내 공기오염물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허울뿐인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

정부는 2002년부터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친환경 건축물을 유도, 촉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친환경건축물 인증기관은 환경부와 국토해양부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교육환경연구원, 크레비즈큐엠 4곳. 이들 기관은 △토지 이용 △교통 △에너지 △재료 및 지원 △수자원 △환경오염 △유지관리 △생태환경 △실내 환경 등 9개 평가항목 점수를 합산해 100점 만점 중 85점 이상이면 ‘최우수’, 65점 이상이면 ‘우수’ 등급을 인증해준다.

평가항목 이외에 가산항목에서 추가로 36점을 얻을 수 있어 인증기준의 절반만 만족해도 최우수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회사들은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대부분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외면하거나 홍보용으로만 활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친환경건축물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2곳과 우수 6곳 등 8곳에 불과하다.

2006년 말 정부가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으면 인센티브(공사비 3% 이내 가산비용 인정 등)를 주겠다고 하자 2007년 13곳(최우수 1, 우수 12), 2008년 49곳(최우수 6, 우수 43), 2009년 6월 말 현재 37곳(최우수 4, 우수 33)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은 숫자다. 현재까지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13곳, 우수 94곳 등 모두 107곳. “매년 늘고 있다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건축허가와 사업계획승인 단계에서 ‘예비인증’을 받고, 이를 홍보용으로만 사용한 뒤 ‘본인증’ 절차를 밟지 않는 건설회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예비인증을 받은 410곳 중 본인증을 받은 곳이 107곳이니 4분의 1 정도만 본인증을 받은 셈이다.

토지주택연구원 서만섭 부장은 “예비인증은 본인증을 전제로 받는 것인데, 예비인증으로 인센티브만 챙기고 본인증을 받지 않는 건 사기나 다름없다”며 “예비인증을 받은 후 건물이 완공되기까지는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2006~2007년 예비인증을 받은 아파트들이 올해 들어서 본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증은 당연히 받아야 할 절차라는 얘기. 그러나 예비인증을 받은 아파트 중에 준공검사를 마치고 입주가 완료된 지금까지 본인증을 받지 않은 아파트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음은 건축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양을 시작하기 전에 친환경 예비인증을 받으면 그만큼 프리미엄이 붙는다. 하지만 실제 시공할 때는 건축설계 원안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친환경 자재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첨단 시스템 도입에 따른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본인증 절차를 밟을 때 지불해야 할 인증비용도 부담이다. 건설업체 처지에선 이미 분양이 끝난 아파트에 추가로 투자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나.”

더욱이 이를 관리, 감독할 정부부처나 기관도 없다. 4개 인증기관에서는 해당부처인 환경부나 국토해양부에서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해당부처는 아직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정수성 사무관은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에 대해 사후 관리하는 곳이 아직 없다. 이 제도는 국토해양부와 공동으로 운영하는데 최근 4개 인증기관 관계자들과 총괄 관리감독을 위한 별도의 운영기관을 둘지, 4개 인증기관 중 한 곳으로 정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인증 아파트의 ‘생얼’

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이모(32) 씨는 입주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눈이 침침해 불편함을 느낀다. 이전에 살던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없었던 증상이다. 이씨는 새집증후군을 의심한다. 깔끔한 아파트 조경에 쾌적한 실외환경을 보면 달리 의심할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친환경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이씨처럼 새집증후군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다.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얼마만큼 친환경 자재로 실내 마감을 했느냐에 쏠린다.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아파트가 일반 아파트보다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얼마나 안전할까. ‘주간동아’는 그동안 친환경건축물 최우수 인증을 받은 아파트 13곳 중 최근 2년 사이에 인증을 받은 아파트 8곳의 마감재를 확인해봤다. 경기도 김포시 H아파트 1~3단지와 성남시 분당구 P아파트와 H아파트 10~12단지, 인천시 연수구 S아파트가 그 대상이다.

아파트의 주요 내장 마감재는 실내표면적의 61%를 차지하는 벽지와 바닥이고, 그 다음이 시트(25%)다. 가구류(싱크대, 신발장, 붙박이장)와 도어류(방문, 섀시), 몰딩류(천장 몰딩, 걸레받이, 문선) 등의 표면은 모두 시트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15% 정도는 페인트와 타일 등이 차지한다. 최근 페인트는 대부분 친환경 수성을 사용하는 추세이고, 시공할 때 어떤 접착제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코팅 처리된 타일 자체에서는 별다른 공기오염물질이 방출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파트의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 여부는 실내표면적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벽지와 바닥, 그리고 시트로 어떤 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환경부는 비교적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 친환경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환경마크’를 부여한다. 제품 원료부터 생산, 유통, 수거, 폐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정에 걸쳐 인체에 유해한 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제품에 한해 인증해준다.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실내 마감재를 환경마크 인증자재로 사용한다면 그만큼 친환경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실제 친환경 최우수 인증 아파트들은 환경마크 인증 자재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분당 P아파트의 경우 벽지와 바닥재, 시트 모두 ‘환경마크’ 제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벽지와 바닥재를 시공한 업체는 이미 부도가 나 사라졌고, 시트업체는 중소업체였다. 그렇다면 이 아파트는 어떻게 친환경 아파트로 선정됐을까? P아파트 건설업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내 마감재에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량 최소기준치 이상의 제품을 썼다. 하지만 단지 내 설계와 옥상 조경시설, 빗물저장 시스템 등 외부설계를 친환경건축물 기준에 따랐다. 최우수 인증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유명 건설업체가 건설한 분당 H아파트와 김포 H아파트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벽지는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바닥재는 대부분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했다. 시트는 제품명을 밝히지 않아 확인이 어려웠다. 인천 S아파트는 바닥만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했고, 벽지와 시트는 ‘환경마크’ 제품이 아니었다. 이들 아파트처럼 요즘 가장 많이 사용되는 벽지는 LG벽지와 DID벽지, 대동벽지 등 유명 브랜드 회사에서 제조한 폴리염화비닐(PVC) 실크벽지다.

‘환경마크’ 인증 기준을 보면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PVC 실크벽지는 기본적으로 친환경제품에서 제외된다. 환경유해물질이 많이 방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친환경 종이벽지보다 선호되는 것은 화려한 디자인과 무늬, 그리고 얼룩이 쉽게 지워지는 등 관리가 편리하기 때문. 바닥재의 경우 PVC 비닐장판에서 온돌마루나 강화마루로 전환되는 것이 요즘 추세다.

비닐장판보다 마루가 훨씬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루라고 모두 친환경 제품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선도하고 있다. 다만 간혹 일부 건설업체가 분양가를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친환경 인증 아파트가 이 정도니 일반 아파트나 저가 임대아파트의 수준은 어떨까.

   

환경부 ‘환경마크’와 한국공기청정협회 ‘HB마크’의 차이

아파트 건설업체들이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한다면서 한국공기청정협회에서 인증해주는 ‘HB마크’를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HB마크는 국내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환경부의 ‘환경마크’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공기청정협회는 1998년 건설 관련 업체와 학계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설립된 민간기관이다. 태생적으로 회원사인 건설 관련 업계의 이익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HB마크의 인증 기준도 환경마크와 차이가 크다. 건축자재 원료와 생산, 유통, 수거, 폐기 등 전 단계에 친환경 여부를 검사하는 환경마크와 달리 HB마크는 유통단계 제품의 실내공기 중 오염물질 방출량만을 기준으로 ‘최우수(클로버 5개)’ ‘우수(클로버 4개)’ ‘양호(클로버 3개)’ 3등급으로 인증해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Ⅰ’ ‘일반Ⅱ’ 등 5개 등급까지 인증해줬다가 줄였다. 문제는 건축자재 업체들이 HB마크 인증을 받은 후 ‘친환경 제품’이라고 광고한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행위를 과대광고라고 판단해 제재를 가하자 한국공기청정협회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40쪽 기사 참조).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실내공기 중 오염물질 방출량을 측정하는 시험방법으로는 환경마크나 HB마크나 똑같이 국제적으로 인증된 ‘소형 체임버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환경마크는 일정 기준 이하의 제품을 규제하기 위한 것인 반면, HB마크는 여러 등급으로 나눠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량 시험의 한계

“우리나라의 친환경 건설자재나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선진국 못지않을 겁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벽지와 장판을 사용하는 온돌 주거문화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시험방법이 아직 없어 문제입니다.”

요즘 학계나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정부나 업계가 이를 알면서도 실내건축자재 산업시장에 미칠 파장이 커 어느 정도는 방치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 정부기관이나 민간기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실내공기 질 측정을 위한 시험방법은 ‘소형 체임버법’이다. 일정한 공간에 시험대상 건축자재 일부 표본을 집어넣고 25±1℃의 온도와 49±1% R.H 습도를 유지한 채 7일간 방출된 물질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때 표본의 앞 표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밀폐한다. 사실상 건축자재 앞 표면에서 방출되는 물질만 측정하는 셈이다. 이 같은 시험방법은 ‘다다미 주거문화’인 일본이나, 장판이나 벽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럽 또는 미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온돌 주거문화가 아파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벽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장판은 뒷면에 일정한 열이 가해졌을 때를 가정해 방출되는 물질을 측정, 친환경 기준을 정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맞다.

실제로 장판의 앞면보다 뒷면에서 방출하는 오염물질의 양이 훨씬 많고, 뒷면에 열을 가했을 그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대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 산하 친환경건축자재인증원이 환경실천연합의 의뢰를 받아 올 초 시판 중인 장판 2종류와 PVC 실크벽지 4종류를 수거해 오염물질 방출실험을 한 결과에서 확인됐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 자료에 따르면 실험대상으로 선정된 장판과 실크벽지는 모두 한국공기청정협회로부터 HB마크 최우수 등급을 받은 제품이었다.

A장판의 경우 앞면에서 0.28mg/㎡.h, 뒷면에서 28.372mg/㎡.h의 휘발성 유기화합물(TVOC)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면보다 뒷면에서 100배 이상 많은 오염물질이 방출된 셈이다. 이는 환경마크 인증기준 0.4mg/㎡.h보다도 70배 이상 높은 수치다. B장판은 앞면에서부터 4.553mg/㎡.h로 환경마크 인증기준은 고사하고 환경부가 시중 유통 규제기준으로 삼는 4mg/㎡.h도 초과해 방출됐다. 뒷면에서는 이보다 10배가량 높은 45.241mg/㎡.h의 TVOC가 나왔다. 이는 환경마크 인증 기준치를 100배 초과한 수치(<표1> 참조).

장판에 열을 가했을 때의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인증원은 시험방법을 ‘온도에 따른 방산량 측정법’으로 바꿔 25±1℃의 온도와 49±1% R.H 습도 상태에서의 장판 앞뒷면을 측정하고 앞면을 35℃, 45℃로 가열했을 때의 TVOC 방출량을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오염물질 방출량이 비교적 적었던 A장판의 앞면에서도 25℃일 때보다 35℃의 열을 가했을 때 2배, 45℃로 가열했을 때는 3배 이상 TVOC 방출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2> 참조).

인증원은 장판 뒷면에 대해서는 온도에 따른 방산량 측정을 하지 않았지만, 그 증가폭은 훨씬 높으리라는 것을 추정하긴 어렵지 않다. 이는 특히 겨울철에 아토피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등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종류의 벽지도 장판과 비슷한 수치변화를 보였다. 모두 HB마크 최우수 등급을 받은 제품이지만, 2종류의 벽지에서 환경마크 인증기준치를 훨씬 넘는 1.987mg/㎡.h와 0.837mg/㎡.h의 TVOC가 검출됐다.

이 중 한 벽지제품을 온도에 따른 방산량 측정법을 사용해 가열한 결과, 35℃에서는 평소 방출량의 3배, 45℃에서는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증원의 한 연구원은 “시험결과를 보면 정말 심각하다. 우리 현실에 맞는 시험방법을 개발해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나 각종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아무리 친환경 아파트라고 포장하지만, 우리는 지금 PVC 장판과 PVC 벽지 등으로 둘러싸인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의무 사용해야 할 공공기관도 외면 … 사실상 사문화
‘친환경상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 4년


입주를 마친 서울 은평뉴타운 1지구.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는 요즘 ‘은평뉴타운’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350만㎡ 부지에 1만6000여 가구가 들어서는 대공사는 2011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1지구는 이미 입주를 완료했으며 2지구는 공사 마무리단계, 3지구는 중간단계에 접어들었다. 시행사는 서울시가 설립한 지방공기업 SH공사.
2004년 12월31일 제정되고 다음 해 7월1일부터 시행된 ‘친환경상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촉진법)에 따르면 은평뉴타운은 의무적으로 친환경 건축자재로 건설돼야 한다. 의무적으로 친환경 상품을 사용해야 하는 공공기관에 SH공사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2005년 8월에 1지구 건설공사가 시작된 만큼 은평뉴타운은 전 지역이 친환경촉진법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은평뉴타운 아파트들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친환경 건축자재로 지어졌을까.
친환경촉진법상 친환경 상품이란 환경부 장관이나 지식경제부 장관이 고시해 인증받은 상품, 즉 ‘환경마크’와 ‘우수재활용마크’를 받은 상품을 가리킨다. 아파트 실내공기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내 건축자재로는 ‘환경마크’ 상품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은평뉴타운 인테리어 공사에 ‘환경마크’가 없는 건축자재가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내 표면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벽지는 대부분 PVC 실크벽지가 사용됐으며, 일부 바닥도 미(未)인증 바닥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페인트와 접착제는 대부분 친환경 상품을 사용했다.
대한토지주택공사가 개발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 아파트나 인천도시개발공사가 개발 중인 인천시 연수구 송도 일대 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
환경부 녹색환경정책관 정책총괄과 김효정 사무관은 “특히 건설공사 쪽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직접적인 제재수단이 거의 없는 데다 인센티브도 약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촉진법을 어겼을 경우 법상 제재수단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전부다. 또한 “상품을 구매하는 공공기관이 친환경 상품 여부를 잘 체크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세부 품목까지 다 알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물론 인식이 부족한 측면도 크다”는 게 김 사무관의 설명이다. 그는 “12월부터 특별조사를 실시해 법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 그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운영시스템 개선은 물론, 기관의 성과 평가항목에 친환경 상품 구매 실적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벽지와 장판에 프탈레이트 범벅?
눈병, 신장 손상, 내분비계 교란 유발 환경호르몬 … 실내공기 오염원 종합연구 필요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서울의 한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장판과 벽지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김서령(35) 씨는 한겨울이 돼야 보일러를 켠다. 보일러를 켜면 딸 민서(가명·5)가 온몸을 긁거나 잔기침을 하기 때문이다. 눈도 뻑뻑하다고 해 안약은 가정상비약이 됐다. 처음엔 흔한 아토피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다 화들짝 놀란 김씨는 민서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삑삑이 오리’와 공룡 장난감을 내다버렸다. 주말에는 아이 방에 세라믹 황토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아끼는 장난감을 빼앗긴 민서는 그날 종일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김씨는 민서를 괴롭히던 주범을 이제야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활 곳곳에서 사용 …‘완벽 차단’은 거의 불가능

“미니 완구에서 기준치의 90배가 넘는 프탈레이트가 검출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프탈레이트가 장판과 벽지에도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심쩍은 장난감은 버리고, 벽지는 세라믹 황토 페인트로 바꿔보려고요.”

민서를 피실험자로 한 김씨의 ‘임상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세제, 필통, 장판, 점토완구, 물놀이 매트, 인조가죽, 신발, 빨대 등 프탈레이트계 가소재(이하 프탈레이트)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완벽하게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프탈레이트의 위해성을 인식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 프탈레이트는 눈병, 구토, 신장 손상, 생식 저해, 내분비계 교란 등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은 고분자화합물이라 그 자체는 딱딱하기 때문에 이를 상품화하려면 부드럽게 해주는 첨가물이 필요하다. 프탈레이트는 이 플라스틱 중에서도 폴리염화비닐(PVC)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소제로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부틸프탈레이트(DBP), 부틸벤질프탈레이트(BBP), 디이소노닐프탈레이트(DINP) 등이 있다. 문제는 이 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니거나 제품에 함유돼 있으면 호흡이나 피부 접촉 등으로 몸에 들어온다는 것.

때문에 EU(유럽연합)는 프탈레이트 중 DEHP와 DBP, BBP 3종을 ‘카테고리 2’로 분류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카테고리 2는 수정능력을 손상시키거나 태아에 유해할 수 있는 물질이란 의미다. EU는 2007년 1월부터 14세 이하 모든 어린이용품에 이들 3종의 사용을 금지했고, 궁극적으로는 EU 시장에서 퇴출시킨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2월10일 이후 제조된 어린이용품이 0.1% 이상 프탈레이트를 함유할 경우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프탈레이트 3종(DEHP, DBP, BBP)이 내분비계의 장애원인이자 간, 신장 등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며 유독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또 어린이용품 중 0.1% 이상 함유된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국내 완구 및 육아용품 중 이 가소제를 사용하는 제품 시장은 연간 34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정부에서는 지정 관리하고 있다지만 우리 주변에는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제품이 넘쳐난다.

환경부가 지난해 장난감과 유아용품 170개 제품을 대상으로 위해성 조사를 한 결과 유아용 완구(딸랑이, 삑삑이)와 동물인형에서 DEHP, DBP, DINP 3종이 허용량 이상 검출됐고, 한 환경단체가 9월 학교 앞 미니 완구제품 13개를 분석한 결과 4개 제품에서 DEHP 함유량이 1일 섭취 허용량(TDI·평생 매일 섭취해도 건강에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노출량)의 최대 90배까지 검출되기도 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장난감을 고를 때 프탈레이트가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거나, 사준다면 제품정보가 명확히 표시돼 있고 KPS(자율안전 확인표시), KC(국가통합인증) 마크 등 인증표시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보행기와 유모차, 학용품 등에 대해 프탈레이트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입안예고 중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내 공기로 흡입하는 프탈레이트의 양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장난감이나 학용품은 ‘알고 당한다’ 쳐도 장판, 벽지에서 뿜어나오는 공기 중 물질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들어온다. 2005년 한국실내환경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내장마감재가 차지하는 실내 표면적(106m2 기준)은 벽지 146㎡(39.9%), 바닥(마루·장판) 77.6㎡(21.2%), 가구 45.9㎡, 시트지(래핑) 42.1㎡(11.5%). 한국 가정의 공기 질은 벽지와 바닥 마감재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일무이한 ‘온돌문화’를 자랑하면서도 PVC 비닐벽지(일명 실크벽지)와 장판에서 뿜어나오는 프탈레이트에 대한 연구 및 규제는 전무하다.

심각성을 추측해볼 수 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난해 4월 환경부가 발표한 위해성 평가에서는 어린이가 성인보다 프탈레이트 1일 노출량이 1.4~22배 높게 나타났다. 가정·학교 등의 실내 공기와 먼지, 음식, 음용수 등 9종의 시료를 분석해 1일 평균노출량(㎍/kg/day)을 조사한 결과인데, 아동(6세 이하)이 1800~1만2800㎍으로 직장인(1700~6600㎍)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중 벽지와 장판을 통해 피부로 들어오는 경피노출량은 성인 26~520㎍, 아동 94~1880㎍으로 집에서 많이 생활하는 아동의 노출량이 훨씬 높았다.

 

겨울철 바닥 온도 높일 때 뿜어져 나올 우려 커

환경부는 “벽지와 장판을 통한 경피노출량은 실내 환경의 주요 프탈레이트 노출원으로 추정된다. 아동의 경우 개인용품과 실내바닥재 등 제품을 통한 노출 비중이 높아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겨울철에 실내 온도를 25℃가량으로 유지하려면 바닥 온도는 40℃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경우 장판과 벽지에서 뿜어나오는 프탈레이트 양에 대한 연구도 없다. 다음은 한 대학교수의 말이다.

“EU 등 선진국에서 가소제에 ‘문제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그때서야 여론을 봐가며 (규제를 하는 등) 따라간다. 만약 선진국이 벽지와 장판의 위험성을 주장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선 벽지와 장판을 거의 안 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장판과 벽지를 확인하기 전에는 자녀에게 원목 장난감을 사줬다고 안심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어떨까. 환경부 관계자는 “(벽지와 장판은) 딱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용품으로 보기 어려워 (규제를 위한) 마땅한 법적 근거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아직 위해성 논란도 많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서 관리품목으로 정해 제조 때부터 규제하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품공법)에 따라 기술표준원은 91개 품목의 안전성을 규제하고 있지만 장판은 종이장판에 한한다.

PVC 장판은 규제 품목 대상이 아니어서 당장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프탈레이트 중 4종이 유해하다고 밝혀진 만큼 관리 품목에 PVC 장판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겠다. 식품의약품안전청, 환경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약학부 이병무 교수는 “동물실험 결과 프탈레이트는 정자 수와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키고 (간암을 일으켜) 장기 무게를 변하게 했다.

아직은 세포실험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린이를 위해서라도 ‘새집증후군’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아토피 증상이 줄고 있지만 유독 한·중·일 3국에서 아동 환자가 증가하는 현상은 어쩌면 바닥과 장판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 민서의 올해 겨울나기가 걱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 없는 실내공기 ‘치명적 공격’
당신을 겨냥한 ‘아파트 질환’ 주범은 건축자재의 화학물질

실내 오염물질 미세하지만 암 유발, 내분비계 교란 우려

신축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은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한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눈, 코, 목 등에 자극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들 화학물질 때문이다.

이른바 ‘새집증후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축 아파트의 경우 ‘베이크트 아웃’(baked out·실내온도를 30℃ 이상으로 하루 8시간 가열한 뒤 환기하는 일을 3일 이상 해서 실내 화학물질 성분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무화하고, 실내 마감재나 페인트 등도 화학물질 함유량이 적은 친환경제품을 사용하는 추세다.

아파트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화학물질들은 실제로 인체에 많이 해롭다. 포름알데히드는 자극성이 있어 불쾌감이나 재채기, 기침 등을 일으킬 수 있고 호흡기 질환, 알레르기성 질환, 심지어 암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다. 포름알데히드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어린이와 어른들의 천식, 호흡기 질환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만 아파트 실내공기에 포함된 포름알데히드가 직접적인 암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을 뿐이다.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이 있다 해도 실제 얼마만큼 사람에게 노출되는지에 따라 병을 일으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발암성이 있다는 증거는 주로 동물실험을 통해 얻어진다. 동물실험에서는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농도를 투여한다. 이에 비해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람에게 노출되는 화학물질은 매우 낮은 농도이므로 질병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암뿐 아니라 천식 같은 질병이 신축 아파트에 이사 온 후 발생했다 해도 그것이 신축 아파트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아파트 실내 유해물질의 농도가 낮은 데다, 유해물질이 실외에서 유입된 경우가 많고 개인차도 크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음식 조리과정에서 생기는 화학물질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천식, 아토피 등 알레르기성 질환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원인의 하나로 실내 환경오염이 지목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파트 실내 유해물질을 줄이려면 먼저 실외 유해물질 감소가 병행돼야 한다. 실외에서 유입되는 유해물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음식물을 통해서도 전파가 이뤄진다. 세계적으로 매년 200종 넘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합성돼 산업현장에서 사용되고 있고, 그 결과 수많은 화학물질이 우리 일상생활에 침투하고 있다. 아파트 실내의 화학물질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특히 임신 때 태아에게 노출된 화학물질은 나중에 질병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용기에 있는 비스페놀A는 암을 유발하거나 인체 내분비계를 교란할 수 있으며, 6세 이상 미국인 93%의 소변에서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물질들이 사람에게 노출되는 수준은 나노그램(100만분의 1g) 정도의 매우 낮은 농도지만, 이런 농도에서도 사람들에게 암을 유발하거나 인체 내분비계를 교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뿐 아니라 200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이 어린이들의 대뇌 발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하버드대 연구결과도 있다. 때문에 아파트 실내 유해물질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실내 유해물질뿐 아니라 아파트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부유분진 등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트뿐 아니라 도시 전체, 나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은일 고려대 의대 교수·보건대학원장 eunil@korea.ac.kr

   

실내공기는 실외공기보다 오염 쉽고 최고 100배 이상 위험

실내공기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관련 전시회가 늘고 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소한 10억명이 실내 공기오염물질에 노출돼 있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학계에 따르면 실내에서 발생하는 공기오염물질은 입자상 오염물질, 가스상 오염물질, 미생물성 물질 등으로 나뉜다.

입자상 오염물질로는 미세먼지, 중금속, 석면 등이 있으며 가스상 오염물질로는 물질의 연소과정에서 주로 생기는 일산화탄소와 사람의 호흡에 의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포름알데히드, 라돈(Radon) 등이 있다. 미생물성 물질에는 곰팡이, 세균 등이 포함된다.

실내 공기오염물질 발생원으로는 연소와 실내에서의 흡연, 오염된 외부공기의 유입 등이 꼽힌다. 최근에는 신축 아파트의 경우 건축물의 밀폐화와 단열화를 위해 사용하는 내장재, 바닥의 소음 저감을 위해 사용하는 카펫 등 건축자재에서 수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생성되고 있으며, 건축물의 유지와 관리 등의 과정에 사용되는 방향제, 목재 보존제, 왁스 등도 실내공기 오염물질의 중요한 발생원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실내 공기오염물질은 사람들의 호흡기와 순환기에 영향을 미치며, 일부는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내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실내공기는 외부공기보다 70배 이상 오염되기 쉽고, 한 번 오염되면 공기가 계속 순환하면서 농도가 높아져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실내공기에 의한 대표적 환경성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등으로 진료받은 인원(중복인원은 제외)이 665만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 545만명이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120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질병별로는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3.9% 감소를 보인 반면,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는 296만명에서 401만명으로 105만명(35.6%) 증가했고, 천식 환자는 198만명에서 231만명으로 33만명(16%)이나 늘었다. 우리는 하루의 80~90%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지만 실내 환경오염에 따른 인체의 위해성에 대해서는 실외 오염보다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

유럽연합(EU)에서는 실내에서 사용되는 건축자재를 주요 실내 환경오염원으로 지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평가절차를 강화하는 등 조치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EU 전체에 통일적인 규제 및 평가기준치를 도입해 건축자재에서 배출되는 환경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감소해나갈 계획이다. 미국 환경청(EPA)도 실내 공기오염의 인체 위해성을 인정해 시민의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실내 공기오염 농도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EPA는 실내 공기오염을 미국이 직면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5대 환경문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 폐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내공기가 실외공기보다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고, 실내 오염물질의 농도가 실외보다 2~5배, 심한 경우는 10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실내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밀폐된 공간의 환기시설을 강화하고(공동주택의 경우 환기량 권고치는 0.7회/시간당), 주기적으로 오염도를 측정해 실내공기 질을 개선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습도는 30~60%, 온도는 겨울철에는 20~23.5℃, 여름철에는 23~26℃를 유지하는 게 좋다. 최근 문제가 되는 이산화탄소(CO₂)의 저감대책도 건축물 내부의 공기오염 감소대책과 병행해 실시하면 쾌적한 실내 유지는 물론, 거주자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윤신 한양대 산업의학과 교수 yoonshin@hanyang.ac.kr

 

“새 집에서 아토피 걸렸어요”

“가렵고, 머리 아프고, 눈·코·목 따갑고…” 새집증후군 잇따라 호소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모래장난을 하면서 부르던 이 노래처럼 사람들은 새 집을 동경한다. 못살던 예전에는 그 소망이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새 집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새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바로 새집증후군 때문이다.

새집증후군(Sick House Syndrome)이란 새로 지은 집이나 건물의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같은 유해물질로 거주자들이 느끼는 건강상 문제와 불쾌감을 이르는 말. 증상으로는 두통, 눈·코·목의 자극, 가려움증, 피로감, 집중력 저하 등이 있다. 새 아파트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이러한 질환의 직접적 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간접적 요인으로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 의학계의 중론이다.

유해물질이 고농도로 존재하는 공간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여러 증상이 발생했다는 것이 동물실험과 실례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가톨릭의대 김진우 교수는 “새 집에서 생기는 오염물질, 여러 요인으로 발생한 알레르기나 피부질환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피부보호 장벽이 망가지면서 아토피로 발전한다. 이는 다시 천식이나 비염 등 호흡기질환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서 유해물질 각종 질환 유발

새 아파트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여러 질환의 직접적 요인이든 간접적 요인이든, 중요한 것은 실제 우리 주변에서 새집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23개월 된 가빈(여)이는 첫돌 무렵부터 아토피를 앓았다. 어머니 홍현화(34) 씨는 가빈이의 아토피가 새집증후군 때문이라고 의심한다.

“가빈이가 태어나서 6개월쯤 되니까 태열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땐 그리 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겨울 첫돌을 지나면서 아이가 가려워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해졌어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아이를 새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와서 그런가 싶은 거죠.”

가빈이는 2007년 11월에 태어났고, 그 다음 달인 12월홍씨네는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일산의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사실 입주를 앞두고 홍씨는 불안했다. 새집증후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는 것은 서민들에겐 꿈이다.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탈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10월 말 아파트 공사가 끝나고,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입주를 해야 했죠.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12월 중순에 입주를 했는데도 입주할 당시 시멘트와 본드, 페인트 냄새가 아주 심했어요. 그게 6개월까지 계속되더라고요. 특히 3개월까지는 머리가 아플 만큼 심했죠. 난방을 해서 온도를 높였다가 문을 열어 환기(베이킹 아웃)를 해봐도 소용없더라고요. 성인인 저한테도 그랬으니 갓난아이한테는 얼마나 안 좋았겠어요.”

온몸을 긁느라 잠도 못 자는 가빈이를 보면서 홍씨 역시 밤잠을 설친 게 여러 날이다.

“모기한테 한 방만 물려도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밤새 긁어서 온몸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진 것을 보면서 제 속이 바짝바짝 탔죠. 이사하지 않고 파주에서 그냥 살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어요.”

홍씨는 가빈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가빈이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팔 안쪽, 무릎 뒤쪽 등 피부가 접히는 부분만 긁고 다른 부분은 괜찮아졌다는 것. 입주한 지 2년이 돼가니 그동안 공기가 정화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이가 크면서 면역력이 생겨 그런가 싶기도 하다. 홍씨는 “우리 같은 서민은 좋은 벽지나 바닥재로 바꾸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다”며 “서민 아파트일수록 더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물론 어른까지 피해

의료계에서 일하는 양유리(26) 씨는 지난해 8월 제주에서 올라와 언니와 함께 일산의 한 원룸에 입주했다. 입주할 때 시멘트나 페인트 냄새 같은 것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새집증후군에 대해선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눈 밑과 발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얼굴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올라와 바로 피부과를 찾았다.

“제가 웬만해선 병원엘 안 가요. 약도 잘 안 먹고요. 그런데 너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긁느라 생활이 불편할 정도였죠. 또 얼굴에 뭐가 나니까 걱정돼 바로 병원에 갔더니 아토피라는 거예요.”

양씨의 언니는 오래전부터 아토피를 앓았다.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원룸에 입주하고 한 달도 안 돼 아토피가 더욱 심해졌다. 언니의 아토피 증세가 심해졌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아토피가 없던 자신에게 생기니까 새집증후군이 아닌가 의심하게 됐다.

“아토피 진단을 받은 뒤로 방 안 환기도 자주 하고, 숯도 사다놓고 그랬어요. 가려운 것도 좀 덜하고 얼굴에 난 것도 들어가더라고요. 그러니 더 새집증후군이란 확신이 생기는 거예요.”

양씨는 아토피도 아토피지만 그로 인해 눈 밑에 주름이 생긴 것이 더 속상하다고 털어놓는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는 20대 미혼여성에게 눈 밑 주름은 커다란 고민거리라는 것. 입주 때부터 환기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그는 한편으로는 시공사 측에서 좀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한다.

동국대 의대 피부과 이애영 교수에 따르면, 아토피 피부염과 새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의 연관성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새 집에 들어가 아토피가 생기거나 심해졌다는 환자를 많이 접했고, 그들의 주장이 온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로선 여러 연구자들의 실험보고서를 토대로 그 가능성을 생각해볼 뿐이지만, 머지않아 아토피 피부염과 새 아파트에서 생기는 유해물질의 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집증후군 예방법은?
자주 환기 … 공기정화 식물도 좋아


정부는 새집증후군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2005년 신축 공동주택의 실내공기 권고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강제기준이 아닌 권고기준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주자들의 주의다. 새집증후군 예방법을 아파트 분양 계약 전, 입주 전, 입주 후 3단계로 나눠 정리했다.

계약 전 △주택 건축에 경험이 풍부한 시공사인지 확인한다 △모델하우스에서 관계직원에게 새집증후군 대책과 관련된 사항을 자세히 물어보고, 충분한 대책이 마련됐는지 확인한다 △실내 공기오염 정도는 사용한 건축자재의 종류와 공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마루, 벽, 천장에 사용되는 마감재가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발산량이 적은 것인지 따져본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건설된 공동주택은 기밀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통풍 등 자연환기가 고려됐는지, 이를테면 주위 환경과의 관계나 건물 형태의 개요 등을 확인하고 공기가 정체되는 방은 없는지 살펴본다 △에너지 효율이 고려된 24시간 상시 환기설비가 마련돼 있는지 확인한다. 또한 여러 환기설비 방식 중 구체적으로 어떤 환기방식이 적용됐는지 점검한다.
입주 전 △여름에는 입주할 때까지 커튼을 열어 태양광선이 충분히 들어오게 한다. 겨울에는 난방으로 실내온도를 높여 오염물질 휘발을 촉진한다. 이때 가구나 수납장 문도 모두 열어둔다 △창문을 열어두고 환기구나 주방의 환기팬을 가동해 실내를 충분히 환기한다 △난방한 뒤 환기를 시켜 벽지나 바닥재, 가구 등에 밴 휘발성 화학물질을 빼내는 것을 ‘베이킹 아웃(Baking-out)’이라 한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베이킹 아웃을 한다.
입주 후 △입주 시 청소 약품이나 왁스, 새로 구입한 가구나 커튼, 방향제나 방충제 등에서도 유해한 오염물질이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한다 △입주 후 2~3개월은 충분한 환기와 난방을 해 실내가 쾌적하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일조, 채광, 통풍을 위해 커튼은 되도록 입주 2~3개월 후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세비에리아, 벤자민 고무나무, 스파티필룸과 같은 공기정화 능력이 있는 식물을 키우는 것도 좋다.
자료 출처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친환경 과장됐다” vs “폭넓게 쓰는 표현”
공정거래위원회 - 한국공기청정협회 공방전 … 환경부는 HB인증 무용론 제기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공기청정협회가 HB인증 홍보문구 중 ‘친환경’ 표현 사용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친환경’이란 표현은 아무 데나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공정거래위원회)
“‘친환경’이라는 말은 기존의 방법보다 환경보전적인 경우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공정위의 판단은 엉터리다.”(한국공기청정협회)

아파트 건설업계에선 양측의 자존심 대결이 화제다. 벌써 1년 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단어 사용이 논란의 핵심이다.

한국공기청정협회(이하 협회)는 건축자재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인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HCHO·메탄올의 산화로 얻는 무색의 기체. 인체에 자극을 주며 동물실험에선 발암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의 방출량을 검사해 접착제, 벽지, 마루, 타일, 페인트, 가구 등의 실내 건축자재에 평가등급을 부여하는 인증제도를 2004년 2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건축자재 단체품질 인증제도’로 업계에선 ‘HB(Healthy Building)인증’으로 통용된다.

HB인증은 공기 중 오염물질 방출량만을 기준으로 ‘최우수’(클로버 5개) ‘우수’(클로버 4개) ‘양호’(클로버 3개) 3등급으로 나눠 인증해준다. 얼마 전까지 ‘일반Ⅰ’ ‘일반Ⅱ’를 포함해 5개 등급까지 인증하다 최근 이들 2단계를 줄였다. 아파트 건설과 입주 과정에서 실내공기의 질에 대한 평가 비중이 높아지면서 건설업계에선 HB마크 인증 여부가 건축자재 선정의 중요 기준으로 부각됐다. 지금까지 600건 이상의 건축자재가 인증을 받았다.

 

600여 건 건축자재 HB인증 받아

그런데 환경부 산하 친환경상품진흥원(현재는 한국산업환경기술원으로 통합)의 환경마크, 한국표준협회의 KS마크와 함께 3대 건축자재 인증제도로 꼽히는 HB마크를 협회가 대외에 홍보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협회가 홈페이지와 케이블TV, 전단지, 카탈로그 등을 통해 HB인증을 ‘친환경 건축자재 단체품질 인증제도’로 소개하면서, ‘공인시험기관’을 통한 품질인증시험을 거쳐 등급을 부여한다고 광고하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1일 보도자료를 내고 HB인증이 건축자재의 라이프사이클, 즉 상품생산에 필요한 자연자원의 추출, 생산, 유통, 사용 및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환경 품질인증제도로 볼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보도자료엔 HB인증이 ‘반쪽 인증’이라는 단호한 표현도 들어 있었다. 또한 협회가 품질인증 시험단계에서 대한주택공사 등 공인시험기관 외에 경원대 등 비공인시험기관에까지 검사를 의뢰했으므로 ‘공인시험기관’으로 한정해 표현한 것은 허위·과장 광고행위라고 규정했다.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리자 협회는 발끈하고 나섰다. 곧바로 이의신청을 하면서 “건축자재의 환경영향평가는 반드시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이란 말은 기존보다 환경보전적 인증 방법인 경우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맞섰다. 또 “‘공인시험기관’ 표기도 광고문안 전체를 볼 때 HB인증 규정에 따라 협회가 인정한 시험기관으로 해석될 수 있어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협회의 광고문안은 ‘친환경 건축자재 단체품질 인증규정에 의해 공인시험기관에서 엄격하고 철저한 품질인증시험을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제품에 인증등급을 부여하는 마크입니다’였다. 하지만 공정위 소회의는 협회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전원회의 재결에서도 협회의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친환경’ 표현에 대한 당시 의결 요지는 이렇다.

“‘친환경 도시’ ‘친환경 경영’ 등과 같이 포괄적·추상적 의미에서 ‘친환경’이란 표현은 광고의 부당성을 심사하는 데 있어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지만, 인체나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에 붙는 표현에는 좀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또한 공인시험기관도 국가표준법 등이 적용되는 국가기관인 ‘한국교정시험기관인정기구(KOLAS)’가 인정하는 기관을 의미하므로 협회가 자체적으로 인정한 시험기관을 ‘공인시험기관’으로 표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1개 제품만 인증 받고 유사제품은 그냥 유통시켜

공정위는 HB인증 광고에 ‘친환경’ 표현을 삭제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한국공기청정협회는 법원에 이의신청을 제기해 시정명령 취소판결을 얻어내고 기존 인증 광고와 내부 운영 규정에 ‘친환경’ 표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협회는 물러서지 않고 지난 1월 공정위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일단 ‘공인시험기관’ 표현 부분에 대해선 공정위 시정 명령을 받아들였으나 ‘친환경’ 표현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 9월 협회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정위 시정명령 취소 판결을 내렸다. ‘친환경’이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현으로 기존의 인증 방법보다 환경적인 경우에는 사용 가능하다는 협회 측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 셈이다. 이에 공정위는 즉각 대법원에 항소했다.

그는 “HB마크가 라이프사이클 심사를 토대로 한 환경마크 인증보다는 하위 인증이지만 과대 포장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어느 인증보다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갖췄다고 자부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HB마크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한 게 사실.

HB인증을 받은 제품들의 유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HB인증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사단법인 환경실천연합(이하 환실련)은 HB마크 인증 라벨이 부착된 벽지, 장판을 무작위로 수거해 서울대 친환경건축자재센터에 유해성 실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시장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4개 업체의 벽지, 장판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TVOC) 수치가 허용 기준치를 넘었다고 밝혔다. 환실련은 이 수치를 발표하면서 HB마크 인증과정 및 인증등급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비슷한 연구결과는 다른 경로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발간된 대한건설학회 논문집 251호엔 ‘HB마크 건축자재의 포름알데히드 및 휘발성 유기화합물 방출 특성평가’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이 실렸다.

저자인 한진중공업 건설기술연구소 김상식 연구원은 2007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HB마크 최우수인증을 받은 마감자재 56종(벽지 19종, 합판마루 11종, 접착제 16종, 페인트 10종)의 포름알데히드 및 휘발성 유기화합물 방출량을 측정했다. 그 결과 대다수 벽지와 접착제, 합판마루 등에서 HB마크 최우수인증을 받을 수 없는 수치의 오염물질이 방출됐다고 한다. 심지어 벽지에선 최우수인증을 받은 19종 모두 TVOC 수치가 최우수인증 기준치(0.10mg/㎡·h 이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 합판마루도 최우수, 우수 등급에 해당하는 제품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연구원은 “실제 오염물질 방출량과 인증등급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자재를 건설사에서 인증제만 믿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품 브랜드를 기준으로 HB마크를 부여하는 인증 시스템의 부작용도 지적했다. 같은 브랜드라도 제품마다 색상이나 잉크 사용량이 달라 오염물질 방출량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업체들은 1개 제품만 협회로부터 인증받고 다른 제품들은 별도 절차 없이 친환경제품으로 시장에 유통시킨다는 것.

이에 대해선 협회 관계자도 “파생된 제품에 대한 별도 규제 방안은 현재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는 지난 7월, 실내 공기오염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기준치 이상으로 많이 방출하는 건축자재의 사용을 제한하는 ‘오염물질 방출 건축자재 고시’안을 제정, 입법예고했다. 이에 앞서 2월에는 친환경상품진흥원이 “HB마크를 친환경 인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 학계, 환경부, 환경단체들의 파상공격에 HB마크가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협회 관계자는 “2007년 서울환경연합이 HB마크 인증에 문제를 제기한 사안도 결국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어떤 문제제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가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팽팽한 대립 양상, 대이제 법원의 최종판단만 남아 있다.

 

친환경 인테리어 얼마나 비쌀까?
146m²(32평) 시공 때 160만~200만원 더 들어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아파트 건설사들이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친환경 건축자재를 잘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부담 때문이다. 일부 회사들은 친환경 자재의 디자인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친환경 자재 중에도 질은 물론 디자인까지 훌륭한 제품이 적지 않다. 이보다는 “건설사들이 친환경 자재를 외면하기 때문에 건축자재 업체들이 생산이나 제품개발을 안 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아파트 실내 인테리어를 일반 건축자재로 했을 때와 친환경 건축자재(환경마크 인증제품)로 했을 때 가격차이는 얼마나 될까? 인테리어 주요 부분인 천장·벽면과 바닥, 시트 세 부분의 건설사 자재 사용추이를 살펴보고, 그에 따른 일반 자재와 친환경 자재의 가격을 비교해봤다.

표본으로 삼은 아파트는 일반인이 가장 선호하는 106m²(32평형). 가격은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건설사 납품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건축자재의 건설사 납품단가는 통상적으로 일반 소비자가의 4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결과 일반 자재 대신 친환경 자재를 사용할 경우 160만~200만원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수억원대 분양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아닌가.

시트(93m²)

시트가 사용되는 곳은 싱크대, 신발장, 붙박이장 등 가구류와 방 도어, 섀시 등 도어류, 천장 몰딩, 걸레받이 등 몰딩류다. 시트는 대부분 붙여진 상태에서 건설현장에 납품되기 때문에 친환경 여부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 실내 공기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은 친환경 시트를 사용하려는 추세다. 환경마크 인증제품은 49종류.

하지만 인증제품도 대부분 PVC 제품일 뿐 아니라 시트를 부착할 때 사용하는 접착제 등에서 오염물질 방출 가능성이 높아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인 시트는 ㎡당 1400~2300원선으로 가격차가 크다. 친환경제품은 비교적 고급 시트로 이보다 조금 비싸다. LG와 KCC, 투텍쿄와 등이 주요 판매업체로 ㎡당 3000~3500원선에 건설사에 납품된다고 한다.

시공
일반 시트
(m²당 1400~2300원) : 93×1400~2300=130,200~213,900원
친환경 시트(m²당 3000~3500원) : 93×3000~3500=279,000~325,500원
+148,000~195,300

천장 및 벽면(146m²)

실내 건축자재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벽지다. 방 벽면과 천장에 모두 사용되기 때문이다. 벽지는 LG화학과 대동벽지, DID 3대 메이저 회사의 실크벽지가 가장 많이 쓰인다. 서울벽지와 개나리벽지, 신한벽지, 우리벽지, 코스모스벽지 등 10여 개 중견업체 실크벽지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 아파트 1가구에 보통 3~4개 제품이 사용되므로 메이저 회사의 제품과 중견업체 제품이 혼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실크벽지의 경우 건설사 납품단가는 m²당 2000원 정도라고 한다.

회사나 제품에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 간혹 작은방에 값싼 국산 종이벽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가격은 실크벽지의 절반 가격인 m²당 1000원선. 대형 건설사들은 종이벽지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모양도 나지 않을뿐더러 때도 잘 타기 때문. 친환경 벽지는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21개 제품 중 15개 제품만 실내장식이 가능한 종이벽지다. 신한벽지의 ‘천지인’과 에덴바이오벽지 ‘숯벽지’ 등이 대표적인 친환경 벽지로 꼽힌다. ‘천지인’은 일반 실크벽지의 2배 가격인 ㎡당 4000~5000원선, ‘숯벽지’는 실크벽지와 비슷한 1600~1800원선인 것으로 알려진다.

시공
실크벽지
(m²당 2000원) : 146×2000=292,000원
친환경 벽지 ‘천지인’(m²당 4000원) : 146×4000~5000=584,000~730,000원
+292,000~438,000

바닥(77.5m²)

중소형 건설사들은 여전히 PVC 장판을 선호하지만, 유명 대형 건설사들은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감안해 대부분 마루로 시공하는 추세다. LG하우시스와 KCC, 한화LNC 등이 대표적인 바닥재 생산업체로 장판과 마루 모두 생산한다. 일반 PVC 장판의 경우 ㎡당 5000~6000원이고 친환경제품의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친환경제품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마루로는 온돌마루와 강화마루가 대표적인데, 요즘 건설사들은 주로 온돌마루를 깐다. 친환경 마루바닥재 중에는 LG, KCC, 한화 등 메이저회사 외에 구정마루, 동화자연마루 등 중소업체 제품도 인기다. 가격은 ㎡당 2만~2만3000원선이다. 하지만 친환경 마루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 게 현실.한 바닥재회사 관계자는 “솔직히 환경마크 인증은 회사 마케팅 차원에서 받는 것이고, 실제 주력품목은 아니다”면서 “우리 회사 제품의 경우 장판 매출의 25%, 마루 매출의 15% 정도만이 친환경제품”이라고 말했다.

시공
장판
(m²당 5000~6000원) : 77.5×5000~6000=387,500~465,000원
마루(m²당 2만~2만3000원) : 77.5×20,000~23,000=1,550,000~1,782,500원
+1,162,500~1,395,000

 

나만의 공간 욕구, 성냥갑 퇴출
거주자 배려로 아파트 구조 진화 소통 위한 주거문화 지원은 여전히 미흡

강순주 건국대 주거환경전공 교수 sjkang@konkuk.ac.kr

 혁신적인 공간 활용을 통해 새롭게 변신한 고급 아파트. ‘편리한 주거공간’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적잖다.

갖가지 아이디어와 디자인, 혁신적인 공간 구성으로 무장한 고급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주거문화의 대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편리한 주거공간 제공이라는 측면에선 매우 긍정적인 변화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긍정적 효과라 하면 획일화한 구조에서 탈피한 아파트들이 거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세분화하면서 거주 만족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근 신축된 아파트들은 ‘각양각색’이다.

거주자 층의 각기 다른 생활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공간활용 면에서도 단순한 직선구조라는 획일적인 선택에서 벗어나 곡선, 사선을 도입하는 등 융통성 있는 구성 조건을 적용하는 추세다. 방이나 주방, 거실 등을 분리하는 고정 개념을 탈피해 공간 전체, 혹은 두세 공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공간의 개수를 늘리기보다는 소요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자 하는 거주자들의 욕구가 강하다는 얘기다.

부부와 자녀의 동선(動線)도 나누는 추세다. 이미 2000년 이후 급증한 주문형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공용 공간인 거실을 중심으로 부부 공간과 자녀 공간을 분리해 계획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4년 필자가 연구한 ‘주문형 초고층 아파트의 단위 주거공간 분석’ 결과에서도 주상복합아파트 120가구 중 70%의 가구가 공간 배치를 분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건설사들은 작은 부분에서도 거주자를 배려하는 노력을 보인다.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주부들의 편의를 위해 주방 앞에 긴 탁자와 의자, 소파 등을 배치하는 등 거주자들이 작은 불편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욕실에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대(洗足臺) 및 욕실 안에 좌욕과 반식욕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는 등 한국인 고유의 생활문화를 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거주자 친화’라는 확고한 기준 아래 공간을 자유롭게 해석한 아파트들의 공급 및 수요가 증가하면서 거주자들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 거주자들이 아파트 유형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원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건설업계에서는 거주자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아파트 선호 구조 및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건설사들이 브랜드를 전환하면서 아파트 평면공간 개발에 들이는 노력은 늦은 감이 있으나 평가할 만하다.

 

‘친환경’ 거주문화의 새 패러다임

‘친환경성’이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점도 아파트의 내·외부 및 주변 구조의 진화가 낳은 긍정적 효과라 할 수 있다. 아파트 외부환경의 진화만을 놓고 보자. 기존의 오래된 판상형 아파트는 옥외 공간에 회색 주차공간과 어린이 놀이터 정도가 마련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차장은 지하로 내려가고 옥외는 광장, 테마공원, 실개천, 휴식공간, 운동시설, 녹지로 조성되고 있다.

   

강이나 공원,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도 아파트 선택에서 비중 있는 요소로 강조된다. 자연적으로 거주자들의 환경 중시 의식도 높아졌다. 실제로 아파트 유형별 선호도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친환경 마감재, 자동환기 시스템 등 내부 설비에서부터 녹지, 공동텃밭 등 외부환경까지 친환경 요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06년 필자의 ‘친환경 인증 공동주택의 거주 후 평가’ 연구결과에서도 친환경 인증 아파트에 거주한 이후 생각이나 행동이 친환경으로 변했다고 답한 거주자가 88%에 달했다.

토지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열린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초고층 아파트가 선호되는 것도 이런 거주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편리와 친환경을 추구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아파트의 구조 진화가 낳은 부정적인 면도 적잖다. 예컨대 도시 경관을 강조하는 흐름에 맞춰 지어진 탑상형 고층 아파트단지들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낭비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맞통풍이 안 되는 구조 때문에 환기를 기계 설비에 의존해야 한다.

이는 전력 과소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공개 자료에서는 타워팰리스를 비롯한 고층 탑상형 아파트가 가구당 전기요금 상위 30위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점점 고층화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층 거주로 인한 고소공포증이나 귀울림 현상, 엘리베이터 스트레스, 유아들의 자립 저하 및 사회생활장애는 우리나라의 노약자나 임신부, 어린아이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가 1996년 서울 초고층 아파트에 입주 후 1년이 지난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건강’ 논문에 포함)에선 승강기 사고, 재해 시 피난 경로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초고층과 병리현상의 개연성을 단언하기엔 아직 검증할 점이 많다.

 

올바른 주거문화 정착 위해선 종합적 관리 필요

사용자와 소통하는 종합적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 점도 지속가능한 주거문화를 확립하는 데 커다란 방해요인이다. 건설사들이 겉으론 멋진 개념의 브랜드를 내세우면서도 사용자와 소통하는 종합지원서비스 체제 확립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관행이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파트의 주거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주거문화를 유형과 무형으로 나눠볼 때 유형의 대상은 물리적 공간인 주택이며, 무형은 물리적 공간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삶 이야기와 지속적인 커뮤니티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아파트 주거문화가 뿌리내리려면 종합적인 관리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파트 건설사(시공사)가 브랜드를 내걸고 공급하면서 고가의 마감재, 가구, 설비 같은 빌트인 시스템 등의 ‘오버 스펙’ 현상이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브랜드의 수명을 끌고 나갈 관리에 대해서는 시공 하자 중심의 애프터서비스에 급급한 실정이다.

지속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엔 소홀하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차별화 상품 전략으로 내세우는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관리 문제나 시설 내 프로그램 운영은 전적으로 입주자 몫으로 떠넘겨진다. 그러다 보니 입주자들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지 몰라 시설을 방치해놓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제 아파트의 장점을 말하는 데 ‘주택’이라는 하드웨어의 질에서 ‘거주성’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질이 얼마만큼 충족될 수 있느냐로 초점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향후 저출산 고령사회로 진입할 한국에서 아파트가 꿋꿋하게 대표 주택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결국 아파트의 진화가 거주자들의 수요를 얼마나 따라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쉿!” … 초고층 가슴앓이?
고소공포, 귀울림, 정신질환 등 연관성 높아 일관된 연구결과는 부족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40층대에 사는 고등학생 김동현(가명·18) 군은 언젠가부터 창문으로 아파트 아래를 보는 게 무서워졌다. 내려다볼 때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누군가가 뒷머리를 당기는 듯했다.

처음엔 ‘고층에 적응이 덜 된 탓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증세는 1년 넘게 지속됐다. 덩달아 이상한 습관도 생겼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몸이 창가로 다가가는 것이다. 때로는 ‘이 건물이 무너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이 사실을 안 김군 부모는 아들의 방과 거실 창문을 연예인 화보와 그림 등으로 가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악화돼 화보와 그림 사이의 작은 틈을 통해 건물 아래를 내려다봐야 직성이 풀리게 된 것. 김군 부모는 아들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할지, 아니면 낮은 층이나 다른 단독주택으로 이사 갈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요즘 초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리적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거주자가 종종 발견된다. 심리적 동요와 신체적 이상 징후를 함께 느끼기도 하고 체력과 폐 기능 저하, 호흡기질환, 알레르기 증상 등 신체적 이상 징후만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초고층에 거주하는 것과 건강 사이엔 뭔가 관련이 있는 걸까.

이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발히 진행돼왔다. 초기 연구에서 대다수 연구자는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고층주택이 일반주택보다 승강기 등에 의한 바이러스 침입과 외벽의 공기 대류에 의한 병원균 침입 가능성이 높고, 심리적 스트레스의 병인(病因)도 될 수 있다는 설을 제시했다.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리는 거주자 종종 발견

1980년대 이후엔 고층 거주자들이 저층이나 중층 거주자들보다 알레르기나 기관지질환, 폐 기능 저하, 기초체력 하강 증상을 많이 보인다는 연구보고서가 이따금 발표됐다.

일본에선 ‘고층 집합주택 거주’라는 요인이 임신과 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임상관찰 결과가 발표돼 이슈가 되기도 했다(나중에 이 연구자는 ‘고층에서의 생활이 직접 모체에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외출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임신부에게 흡연과 음주를 유발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결론내면서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국내에서도 고층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이와 관련한 연구와 논의가 이뤄졌다.

해외 연구 사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국내의 독특한 건물 시스템이나 거주자 생활양식 차이 등의 변인을 고려해 고층 아파트와 거주자들의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검증할 필요성이 학계에서 제기된 것. 1991년과 92년 ‘초고층 아파트 주거자의 주거환경 의식에 관한 연구’(신성영·조대성) 논문을 시작으로 93년 ‘초고층 아파트의 의학적 병리현상에 관한 연구’(박철수·이유미·김홍규), 96년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건강’(심순회·강순주) 등이 잇따라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2000년 이후에도 10여 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됐다.

그러나 그간의 국내 연구를 통해 제시된 심리적, 신체적 병리현상은 이미 해외에서 보고된 현상들이 국내 거주자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준이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거주자들은 있지만, 증세가 고층 조건 때문이라고 명확히 규명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 그동안 국내 연구는 아동이나 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집중됐다. 이를 통해 제기된 병리현상은 △폐 기능 저하 △호흡기질환 △알레르기 증상 △고소감각 마비로 인한 사고 △야뇨증 등이다.

   

다양한 문제 ‘조망권’에 묻혔나

국내 연구에선 거주 층수가 높아질수록 아동의 건강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한남대 강인호 교수(건축학)와 전북대 최병숙 교수(주거환경학)는 2000년 ‘주거고층화와 아동의 신체적 병리현상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고층 아파트 거주와 아동의 신체적 질병 발생이 관련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거주 층수와 질병 발생률의 선형적 관계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강인호 교수는 또 2006년 주택도시연구원 백혜선 책임연구원과 함께 경기도 한 초고층 아파트단지 부근 유치원생 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초고층 아파트 거주 아동의 건강성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거주 층수에 따른 전반적인 신체적 건강 상태의 특징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거주 층수가 높아짐에 따라 아동의 안전성 확보나 사회성 발달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편 최근 고인이 된 경북대 하재명 전 교수(건축학)는 영진전문대 김남길 교수(실내건축디자인)와 “지면과의 격리감이 초고층 아파트 입주 초 감정변화와 함께 혈압상승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선 혈압이 층 높이에 따라 증가하고, 특히 18층 이상에서 가장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초고층 아파트와 신체건강의 상관관계에서 일관된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결론이다. ‘주간동아’도 지난해 대표적인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인 타워팰리스 1~3차 거주자의 2004~06년 진료기록명세표 11만9855건을 단독 입수해 강인호 교수팀과 분석했지만 초고층 아파트와 건강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입증하진 못했다. 6~15층, 16~25층에서 질병 발생 비율이 평균보다 약간 높았고, 6층 이상에서 호흡기 발생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통계로서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호흡기질환, 눈, 피부 및 피하조직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거주층과의 연관성도 파악했으나 이 또한 통계적 유의성은 찾기 어려웠다. 강인호 교수는 “유전적 특성이나 생활패턴이 아닌 주거환경은 질병 발생에서 작은 요소인 데다, 실제 거주자들에 대한 심층면접 등이 생략됐기 때문에 뚜렷한 결론을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국내 아파트 거주자들은 이사 주기가 짧아 신체가 환경 조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짚어내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박철수 교수(건축학)도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 됐다는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병리 현상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강순주 교수(소비자주거학) 또한 “거주자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쉬쉬하는 바람에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며 연구조사의 한계를 털어놨다. 그렇다면 초고층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신체 이상이나 고통을 호소하는 거주자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하소연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전문가들은 “고층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면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강순주 교수는 “고층 거주로 인한 고소공포증이나 귀울림 현상, 엘리베이터 스트레스, 유아들의 자립 저하 및 사회생활장애 등은 분명 적잖은 주거환경 스트레스로 작용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초고층 아파트가 계속 건설되는 만큼 관련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호 교수도 “환경적 영향력을 갖는 호흡기 비염,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천식 등의 질병에서 주거 고층화의 영향 요인을 찾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철수 교수는 “민간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확산된 ‘조망’ ‘전망’ ‘뷰(View)’라는 개념을 선호하는 경향이 초고층 아파트의 다양한 잠재적 문제를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풍수지리학자인 우석대 김두규 교수(교양학부)는 “고소공포증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거나 강물 앞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청소년은 풍수적으로 고층 아파트에 살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