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씨름엔 ‘샅바’가 있다면 택견엔 ‘품’이 있다!

醉月 2008. 10. 3. 20:26

씨름엔 ‘샅바’가 있다면 택견엔 ‘품’이 있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택견하는 모습. 서로의 앞발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품밟기를 하며 겨루기를 하는데 제자리에서 아주 좁은 공간만 사용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바로 옆에 앉아 구경을 할 수 있다.


 씨름과 택견은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민속스포츠이자 맨손무예이다. 씨름과 택견은 역사적 배경과 상황적 분위기 등에서 대단히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상이한 맨손무예이다. 씨름은 서로 붙잡고 상체의 힘을 중심으로 다리(脚)의 도움을 얻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면 택견은 서로 떨어져서 발기술을 중심으로 손기술을 보조로 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무예이다.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한바탕 힘을 겨루어 보는데 하나는 붙잡고 힘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하나는 떨어져서 순발력을 바탕으로 하는 별개의 겨루기 기예를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힘과 기량을 겨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승패규칙은 유사하여 둘 다 똑같이 상대를 넘어뜨리면 이긴다. 다만, 발길질을 위주로 하는 택견에서는 상대의 얼굴을 발로 차면 이기는 것이 추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씨름에서 붙잡고 넘기는데 과연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 유도처럼 옷을 붙잡고 넘길 수도 있고 레슬링처럼 옷을 벗고 몸을 잡아서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옷감이 귀하고 또 재질이 튼튼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옷을 붙잡고 하는 것은 옷이 찢어질 염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특히 조선시대와 같은 유교적인 사회에서 웃통을 벗어 제치고 여러 사람 앞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민족은 ‘샅바’라는 끈을 만들어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붙잡고 겨루기가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건 다분히 씨름에 대해서는 깊이 모르는 필자의 가설일 수 있다. 어쨌든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씨름에는 ‘샅바’가 경기를 이끌어 가는 주요한 요소라는 다분히 상식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대쾌도(大快圖) 조선 후기 도화서(圖畵署) 화원으로 있던 혜산(蕙山) 유숙(劉淑)의 1846년(헌종 12) 작품.
택견과 씨름이 민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 장소해서 행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붙잡지 않고 떨어져서 겨루는 택견은 어떠했을까? 만약 한 선수가 싸울 의지 없이 껑충껑충 뛰며 도망 다니거나 혹은 붙잡고 마구 늘어지면 씨름처럼 되어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발로 얼굴을 차거나 걸어서 넘어뜨리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수의 안전문제였다. 붙잡고 잡아 넘기는 씨름과 달리 택견은 떨어져서 발로 차다보니 커다란 부상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러한 부상을 줄이기 위해 선조들은 둔탁한 보호구를 사용하는 대신 적당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다소 이해가 안갈 수도 있으나 발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는 다양한 발기술을 사용 가능케 하면서도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아주 과학적인 시스템이다.

 

 발로 차는 경기에서 가까운 거리가 더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깝기 때문에 풀스윙(Full swing)의 강력한 발차기가 어렵고 또 가까운 거리에서 힘을 주어 차려다가는 오히려 상대에게 쉽게 반격의 기회만 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드러우면서도 가볍게 툭툭 차는 발길질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만든 것이 ‘품’이고, 그 품을 밟는 것을 ‘품밟기’라고 한다. 
  
 품밟기는 품수 품(品)자의 모양을 발로 밟는 일종의 스텝과 비슷한 것인데 한마디로 삼각형 형태로 발을 움직이는 것이다. 두 발을 어깨 넓이 정도로 벌리고 서서 왼발 혹은 오른발을 교대로 앞쪽 삼각형의 꼭지점 부분을 밟는 모양새다. 역시 상대도 그와 같은 모양새로 발을 움직이는데 마주 선 두 사람의 앞으로 내디딘 발이 거의 마주치는 정도이니까 발만 뻗으면 때릴 수 있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이다. 그런데 품을 밟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계속 삼각형으로 품을 밟으며 발로 상대를 공격하여 넘어뜨리거나 발로 얼굴을 차면이기는 것이 바로 택견 경기이다.

 

 삼각형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발을 차려고 한발을 들더라도 나머지 한발은 그 삼각형의 꼭지점 한 부분을 밟고 있는 형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너무 붙거나 멀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 다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발기술이 구사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품을 밟으며 고정된 자리에서 겨루기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갑갑해 보이거나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둔탁한 호구를 입고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상대와 마주 서 있기 때문에 잠시도 한 눈을 팔수 없는 긴장감이 있고 엄청난 순발력과 민첩성이 요구되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품밟기는 택견의 스텝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발기술로 흥미진진한 경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선조들의 슬기이며 발로 걸고 차면서도 상대를 다치지 않게끔 보호해 주는 스포츠과학인 것이다.

 

 가끔 택견꾼들은 다른 무술과 겨룰 때도 품밟기를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만약 택견꾼이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간다면 굳이 품을 밟을 필요는 없다. 이종격투기의 정해진 룰(규칙)과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의 택견기술을 사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펀치를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오금질(무릎의 굴신운동)을 깊게 하면서 복싱의 더킹(Ducking 몸을 상하로 움직이기) 같은 방법으로 상체의 방어에 주력해야 할 것이고 상대가 힘이 좋아 붙잡으려 든다면 까치 발돋움으로 가볍게 뛰면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틈을 노려야 할 것이다. 품밟기는 가까운 거리에서 하체에 대한 공방(攻防)이 이루어지는 택견에서 가장 유용한 기술이다. 그래서 씨름엔 샅바가 있다면 택견엔 품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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