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醉月 2008. 8. 5. 10:58

劍身一體 백호의 몸놀림

얼마전 이종(異種) 격투기 대회가 열려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각기 다른 유파의 무술을 익힌 파이터들이 거의 ‘무규칙’에 가까운 경기방식으로 치고, 차고, 꺾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대회였다.

선수들이 엉겨붙자마자 피가 튀고 뼈가 꺾이는 접전. 그런데 관객중 일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대만큼 우아한 절대강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한국무술 수준이 저 정도 밖에 안됐단 말인가.

초절정 고수니 하는 말도 결국 무협지에나 어울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니 고수는 많다.

단지 세상에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자.

옆집 아저씨가 무시못할 고수일 수 있다.

멀게는 산중 은거노인이 평생 절세무공을 연마해온 명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시대의 숨겨진 ‘고수(高手)’를 찾아 흥미진진한 여행을 떠나보자.

인왕산에 호랑이가 출몰한다? 요즘 달 밝은 밤이면 인왕산에 호랑이가 홀로 나타나 한두 시간을 배회하다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가 발톱을 세우면 달빛이 숨을 죽이고 바람조차 잦아 들었다 한다.

‘인왕산 호랑이’ 박권모(35)씨. 십팔기(十八技) 고수인 그를 경복궁에서 만났다.

한국항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김&장 특허법률사무소 전자부 과장. 이력만 보면 그를 고수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인왕산 호랑이요? 허허. 집이 무악재인데 인왕산에 올라 수련을 하다보니 무우(武友)들이 그렇게 불러요.” 십팔기 공인5단.

젊은 나이지만 십팔기 명인 김광석 선생에게 사사한 수제자다.

도장에서 본국검법을 가르치는 사범이고, 매월 첫째주 일요일 오후2시 경복궁에서 무술 시연회를 갖는 십팔기 보존회 창립 멤버다.

흰색 도복에 한손에는 쌍검(雙劍)을, 다른 손엔 월도(月刀)를 단단히 꼬나쥔 위용이 영락없는 백호였다.

시범에 앞서 잠시 몸을 풀겠다고 했다.

궁전보(弓箭步)와 기마식 등 예닐곱 가지 기본식을 취하더니,

내장을 보호하고 근력을 키워 준다는 외용세·내장세를 펼친다.

태극권의 몸놀림과 흡사했는데 몸 돌아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이번엔 투로(套路). 중국 영화에서 흔히 봐온 ‘학권’이니 ‘용권’이니 하는 권법이다.

먼저 십팔기의 기본이 되는 단권(單拳). 선배 고수 한 분은 이 단권만으로 당대 내로라 하는 고수들을 굴복시켜 탄복을 자아냈다 한다.

그의 단권은 서너가지 보법에 의존해 부드럽게 내지른 단순한 주먹과 발차기로 구성됐다.

그런데도 묵직한 탄력이 실려있다. 주먹이 회초리 끝처럼 ‘팽’하고 돌아가는 식이다.

‘極柔軟後極强’(극유연후극강). “한없이 부드러운데서 지극히 강한 힘을 이끌어 내는 이치지요.

모든 스포츠는 몸의 힘을 빼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예도 마찬가집니다.

” 삼절(三節). 발과 다리(근절·根節)가 굳세고 허리(중절·中節)가 원활하면 팔(초절·初節) 뻗는 힘이 지극히 강맹해진다.

때문에 고수들은 무술인의 몸놀림을 잠시만 관찰해도 삼절의 조화정도를 판단, 기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이어 월도가 돌아간다. 중국 촉나라 관운장이 용맹을 떨쳤다는 청룡언월도. 잡아 걸고 채고 휘두르는 동선이 커 위용이 대단하다.

한번 허공을 찌른 그가 공처럼 튀어 올랐다가 공중에서 180도를 회전한 뒤 휘감아 내려치는 데 기세가 놀랍다.

이름하여 오관참장세(五關斬將勢).

조조에 사로잡힌 관우가 적토마를 타고 촉으로 탈출하며 적장들의 목을 베었다는 초식이다.

칼날을 벼리지 않아도 대나무 정도는 쉬 잘려 나간다.

대신 쌍칼 운용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몸을 휘돌아 찔러 나가고 허공을 가르는 폼이 현란하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쌍칼의 생명은 신속함에 있다.

칼끝이 어지러워 떨리는듯 보이질 않았다.

도체 이런 무예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십팔기는 조선시대 정조 왕명으로 편찬된 동양 최대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근간을 둔 전통무예라고 했다.

전쟁에 쓰이던 18가지 병장기를 다루는 기술을 통칭해 십팔기로 명명됐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이런 무기를 쓸데가 어디 있다고 연마하는 것일까.

“병장기는 손과 발, 신체의 연장입니다. 투로와 병기술을 동시에 익히면 서로 상응보완하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요.

나중에는 병장기가 없어도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는 거죠.

” 무협지에 나오는 검신일체(劍身一體) 같은 걸 말하려던 걸까. 고수다운 대답이었다.

갑자기 치기가 발동했다. 실전에 무예를 써 본적이 있습니까?

“(쑥스러운듯) 지하철에서 노인을 괴롭히는 불량배 서너명을 혼쭐내 준 적은 있죠….

” 그럼 당신은 고숩니까? “어림없어요. 진짜 고수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됩니다.

선생님(김광석씨) 지도를 받을때마다 무예의 깊이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죠.”

20여년 가까이 십팔기 수련에 정진해왔다는 그도 김광석 선생의 반초식도 받아내질 못한다고 했다.

평생을 매달려도 끝이 없는 게 무술이란다.

명확한 것은 그가 느끼듯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절정고수는 아직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섬광처럼 먹이 덮치는 사마귀
이소룡과 마이크 타이슨이 세월의 격차를 넘어 ‘맞짱’을 떴다면?

절권도의 우슈고수 이소룡과 공포의 핵주먹 타이슨이 맞붙었다면 누가 더 셌을까.

최근 열린 ‘이종 격투기’ 대회 이후 이같은 ‘무술고수 vs 현대 파이터’간 가상대결을 상상해 보는 무술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이런 ‘원초적(?)’ 궁금증을 안고 숨은 고수를 찾았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사거리의 한 중국 우슈도장. 도장에 들어서자 언뜻 눈에 들어온 도장 내부가 신비스럽다.

바닥이 온통 진흙으로 깔려있는데다 고풍스러운 병장기며 벽면을 장식한 무술초식이 그려진 액자들.

이때 도장 문앞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던 노사(老師) 이덕강(73)씨가 초면인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그런데 명함을 내밀자마자 선생은 대뜸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선생. 우슈는 너무 깊어서 한두 마디 말로는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또 보는 눈이 없다면 (무술을) 봐도 전혀 이치를 이해할 수 없지요.

” 선생이 하루 이틀 취재로는 기사를 쓸 수 없으니 헛고생 말고 돌아가라며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인터뷰 시도는 꽤 있었지만 기사화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이유일까.

국내 무술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원로이자 당랑권법의 초절정 고수.

한국화교우슈총연합회 회장 이덕강 선생은 화교 출신으로 지난 46년 부친을 좇아 한국에 건너온 뒤

젊은 시절 내내 고수를 찾아 무술을 익혔다.

반면에 그는 한국 무술계에 남긴 행적에 비해 크게 알려진 바가 없는 기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무술계보를 먼저 물었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臺)에서 태어나 15세때까지 그곳에서 무술을 익혔죠.

권법과 병장기는 다른 두분 사부로부터 각각 전수받았고요. 유파는 장권문파(長拳門派)예요.

” 그는 공교롭게도 당랑권(螳螂拳) 시조인 명조말기 왕랑(王郞)과 동향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타계한 팔괘장의 노수전 선생, 당랑권 대사부 임풍장, 강경방 선생 등과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무술계의 거성(巨星)들이었다.

그런데 퍼뜩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너덧명 수련생의 움직임이 느릿하기 이를 데 없다.

주먹 한 번 내지르는데 2초나 걸리는 식이고, 보폭을 옮기는 것도 발을 질질 끌듯 여유만만하다.

당랑권법은 빠름이 특징이다.

사마귀가 앞발로 매미를 낚아채듯,

떨어지는 매화 다섯 잎을 동시에 받아내는 신속한 권(拳)과 구수(鉤手·손가락을 펴 갈고리처럼 감아쥐는 수법),

또 연타가 생명. 원숭이 보법을 채택한지라 발걸음은 보폭이 작고, 가볍고 민첩하다. 확연한 차이가 이상했던 것이다.

“저래서야 힘을 쓸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노사부가 일어섰다.

두손으로 장(掌)을 만들어 옆구리 양옆에서 가슴까지 올렸다가 호흡과 함께 양 다리 옆으로 죽 뻗는다.

투로(套路·권법)에 앞서 기(氣)를 고르는 과정인 안장(按掌). 고희가 넘은 노인네의 그것이 아닌 듯 힘이 넘친다.

짧은 순간 그의 두 눈이 빛났다. 고수의 눈은 평소 온화하지만 대적 순간만큼은 섬광을 쏘아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수들은 고수와 맞섬에 있어 먼저 눈빛에 기가 질려 변변히 손을 얽어보지도 못한 채 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생의 눈빛은 호랑이의 그것이었다.

“보여도 알 수가 없고 봐도 믿기 힘든 게 우리세계? 타고난 장사도 수련해 얻은 힘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겁니다.

” 선생은 껄껄껄 웃음을 터뜨린 후 이렇게 말했다. 무술의 첫째는 힘이란다.

그냥 힘도 아니고 무술에서 사용 가능한 힘이다. 최소 5년은 연마해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동적 연기(練氣)가 아닌 정적 양기(養氣)를 기본 수련법으로 삼고 있다는 얘길까.

“쌍도 수련을 아직도 하십니까?” “두손의 균형을 잡아 줄 수 있어 좋아합니다.” 즉답을 피했다.

그는 당랑권 외에 쌍도(雙刀)로 명성을 떨쳤다. 시연을 간절히 청했다. “늙은 몸 움직이는 게 뭐 볼게 있다고요.

또 지난 50여년 동안 투로를 남들앞에 내보인 것은 수십년전 임풍장 선생 앞에서 딱 한 번 있었을 뿐인데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아니다. 또 한명의 원로고수가 선생이 움직이는 걸 봤다.

그에 따르면 선생이 몸을 낮추고 쌍도를 운용하자 검화가 폈고 검신이 보이질 않았다.

돌아가는 쌍도가 선생의 전신을 감쌌는데 화살조차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했다.

극구 반복해 청하니 10여년 연공을 했다는 제자를 부른다. 그것도 정지 동작 한 자세.

엽리장도(葉裡藏刀). ‘떨어지는 낙엽속에 칼을 감춘다’는 초식이었다. 더이상의 결례가 어려웠다.

이종 격투기 얘기를 꺼냈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래, 누가 이겼나요?” 노사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찼다.

기회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술 고수와 현대식 파이터가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냐고 잘라 물었다.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우슈(武術)의 요지는 3가지라.

첫째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둘째가 신병(身病) 치료에 있고, 그 다음이 호신하는 것입니다

싸움질하기 위해 무술을 배우지 않는다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래도 짓궂게 계속 물었다. 유도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보자면 대강 이렇다.

먼저 일화 하나. 40여년전 홍콩에서 백학권문과 태극권파 간에 알력이 생겼다.

끝내 최강을 자부하는 30대의 백학권 고수와 50대 태극권사가 서로 결투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태극권사의 대승. 현재 베이징에서 후학을 양성한다는 당시의 백학권 고수는 후에 자신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무예란 선조들의 수백년 지혜가 녹아있는 것.

이 때문에 제대로 된 무술을 훌륭한 스승님에게 열심히 배운 고수라면 나이가 들수록 무예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힘을 운용하고 상대방의 동작을 예측하는 기예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생 자신도 30∼40대 때보다 현재의 무예가 훨씬 높아졌다고 했다.

한데, 이덕강 선생은 “무술의 옛날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아쉬워요.

무술이란 원래 그대로의 형식대로 수련해야 하는데 말이죠.

반면에 현대식 투기들은 힘도 세지고 스피드도 빨라지고 있죠”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더욱더 선생이 손을 얽는 장면을 꼭 한번 보고 싶어졌다.

아니, 투로나 기본자세라도 봤으면 싶었다. 그러나 역시 힘든 요구였다.

해답은 뭘까? “이소룡 기량이 월등하다는 얘길까, 아니면 타이슨 주먹이 세다는 걸까….” 알듯말듯한 심정으로 도장을 나섰다.

 

일격필살’ 도리깨 타법위력 
두렵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태권도 5단의 30대 고수. 줄넘기를 시작하면 1000회를 쉬 넘기는 군살없이 탄탄한 체구가 날렵하다.

3m 앞에 맞선 상대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어제 도장 입회 신청때와는 천양지차. 사범으로써 받아주는 지도대련이 아닌 고수와의 대적임을 직감한다.

도장에 정좌한 20여명의 수련생들. 만약 내가 지면 도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지난 6개월간 나를 쓰러뜨리고자 찾아온 고수가 벌써 20여명. 그때그때마다 힘든 고비를 잘 넘겨왔다.

일격필살(一擊必殺). 깊은 심호흡을 했다. 빈틈을 찾자.

연이은 앞차기와 옆차기 페인트. 주먹과 발질 주고 받기를 그렇게 수차례.

일순 상대의 체중이 앞으로 내뻗은 오른 다리로 옮겨가는 동시에 왼쪽 어깨가 살짝 열리는 틈이 보였다.

태권도 특유의 돌려차기다. 기회. 한 스텝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한 뒤 상대 왼발이 땅에 닿는 순간을 노려 섬광처럼 찔러 들어갔다.

앞차기가 그의 명치에 꽂힐 찰라, 상대가 허리을 틀어 공격을 흘린다.

이어진 왼손 정권 훅이 그의 쇄골(鎖骨)을 뚫었다. 상대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일어나질 못했다.

지난해 6월 부산지부에 이어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극진 가라데’ 도장을 낸 김경훈(32) 사범.

전설적인 무도인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본명 최영의) 선생의 후예다.

최 선생이 입산수도로 깨우침을 얻은 뒤 고수들과의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60년대초 창시한 것이 극진(極眞) 가라데.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데 반해 한국에는 그 전통이 미천한 수준. 때문에 김 사범이 서울에 처음 도장을 냈을 당시

그 실력을 확인하려 일주일이 멀다하고 도장을 찾아온 숱한 고수들과 ‘맞짱’을 떠야했단다.

“최배달 선생님이 고수를 찾아 바람처럼 세계를 떠돌았다면 저는 도장에 앉아 고수들의 끈질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죠.

어쩌면 그게 실전을 중시하는 극진 가라데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원체 수련 강도가 높은데다 실전대련 경험이 풍부해 어느 상대 앞에서도 주눅든 적은 없어요.”

반면 가장 두려운 것은 수련생들 앞에서 대련이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고수들이 중국 무협영화에서 처럼 도장 현판을 떼려 찾아오지는 않았다지만 대련에 패할 경우 도장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다른 한편으론 강자와의 맞선다는 것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에 떨리는 일인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사범이 무예수련을 시작한 근본적 이유는 하나. 어려서부터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극진 가라데가 끌렸다. 치명적 살수(殺手)만 금한 채 직접 부딪혀 단박에 상대와 자웅을 겨루는 데 극진의 매력이 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이란 한두 수 손만 얽어봐도 서로의 강약이 명확해 지는 법. 그게 쾌감이 돼 돌아온다.

“남자들은 누구나 강해지고 싶은 타고난 본성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고된 수련을 통해 공력이 깊어져도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지 않죠.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만 커지게 마련입니다.”

최배달 선생이 50여마리의 소와 대결해 26개의 소뿔을 자르고,

3마리를 즉사시키는 기행을 벌인 것도 다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사를 건 일본 한 전통 가라데 도장에서 벌인 100명 고수와의 대련.

또 2년 마다 산속에 들어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흐트러진 자신을 다잡았다는 고행도….

고등학교 1학년 이후 꾸준히 무예수련을 해온 그는 극진 가라데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 이미 유도 2단에 전통 가라데 5단의 고수였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파이터 기질때문이었을까.

그는 극진 가라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된 지난 98년 중국(중부권)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전세계 1400만 수련인구가 있다는 극진 가라데. 그중 200명 고수를 뽑아 무체급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이같은 성적은 놀라운 것이다.

이후 그는 출전 대회마다 ‘톱10’ 안에 연이어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놀랍게도 그의 극진 가라데 단수는 불과 3단. 그래도 어느 것보다 애착이 간다.

3단 이상은 도쿄(東京) 본부에 가서 치러야 하는데 승단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을 쥐고 구령에 맞춰 팔굽혀펴기를 흔들림 없이 100회를 하는 정권단련 및 파워 테스트.

또 물구나무를 선채로 앞뒤로 10m씩 움직이는 유연성 평가 등등.

무엇보다 평가비중의 80%를 차지하는 대련이 가장 어려운 관문.

승단시 도전 단(段)의 10배수의 해당되는 유단자들과 맞대련을 해야 한다.

“실전이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최배달 선생의 지도방침에 근거해 만들어진 룰.

김 사범은 1∼4단 고수 30명과 체급 구분없이 쉬지 않고 각각 1대1로 1분씩, 30분간 대련했다.

승률 3할이 안되면 낙방. 그는 20명을 꺾었다고 했다.

파워가 뛰어난 그였지만 16명째 대련자가 나왔을때는 숨이 턱까지 찼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가 도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1m76, 90kg의 당당한 체구가 드러났는데 팔뚝이 초등학생 종아리만 했고 다리는 통나무 같아 도장 바닥을 울렸다.

쉐도우 복싱. 원―투 스트레이트와 앞차기. 이어 앞돌려 차기와 양손 훅, 뒤 후려차기가 따른다.

보법은 태권도 같은 껑충거림이 없고, 맨발이 바닥을 스치듯 낮고 가뿐하다.

끊어치는 타법에 도복이 ‘휘릭’ 거센 바람소리를 낸다.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 가공할만한 힘이 느껴진다.

‘화권수퇴(花拳秀腿)’. 역시 꽃 같은 주먹 지르기와 빼어난 발차기는 없다. 극진이 멀리하는 수법이다.

실전에 쓸 수 없는 기예는 아예 수련을 안한다. 고수들은 실전에 들어가면 자신의 ‘필살기’ 하나로 승기를 잡는다고 한다.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몸에 익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어와 공격술 한두 가지면 상대는 맥을 못추고 무너지게 돼 있다.

또 하나. 그가 15cm 두께 얼음 5장을 일격에 날리는 가라데 촙(당수)과 야구 배트 4개를 동시에 부러뜨린다는 발차기의 파괴력.

극진 특유의 발경(發勁)에서 나온 듯하다. 흔히 무술에서 인체의 모든 힘을 끌어내 공격 하나에 실어낸다는 발경.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살펴보니 그의 권(拳)은 권투의 그것과 운용이 흡사했다.

동작을 작게, 짧지만 끊어치는 정권 지르기와 돌려치기 속도가 빠르다.

발차기는 몸쪽으로 대퇴부를 당겨 무릎을 접었다가 상대앞에서 쭉 펼쳐 찬다.

마치 도리깨가 바닥을 내리치는 식인데 목표에 도달할 때 힘이 한 점으로 폭발한다.

이처럼 뛰어난 그의 기예는 수련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투 덕분이다.

일주일을 3일씩 부산과 서울 도장을 오가면서도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엔 러닝, 또 저녁엔 실전대련 연습에 매달린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넓고 상수(上手)는 많다”는 최배달 선생의 말이 가장 공감이 간다.

인터뷰 말미, 김 사범은 “수련이란 몸 움직이는 법만 연구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강해져야 고수가 되는 거지요.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진짜 승리입니다”라며 부드럽게 웃었다.

 

‘몸이 곧 槍’비호처럼 찌른다
고수(高手). 디지털과 인터넷의 시대에 왠 무술? 게다가 고수라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 게 당연. “뭐, 어디서 몇 개 주워듣고 생색 꽤나 내는 거겠지,

안그래?” 반면 고개를 돌려보니 현재도 무술계가 엄연히 존재하며,

무술인들은 저마다 상승무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연공중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

그렇다면 이 시대 고수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늦은 봄날 화창한 오후, 서울 종로구 경희궁터의 잔디밭.

도복을 차려입고 나선 형의권사(形意券士) 정건영(37) 사범. 서글서글한 눈매에 1m68, 60kg의 왜소한 체격이 의외다.

눈치를 알아챘는지, 몸 쓰는 법을 조금이나마 익혀 무술 문외한이 아닌 기자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맘껏 질러보란다.

슈우~욱.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몸이 꼿꼿해 지는가 싶더니 면상을 향해 뻗은 기자의 주먹을 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틀어 막는 동시에 일보를 전진, 몸을 낮추는 탄력으로 붕권(崩券)을 날린다.

급하게 왼손을 휘둘러 권을 쳐내는데 어느새 그의 다른 손이 몸통을 노렸다.
‘반보붕권(半步崩拳), 타편천하(打遍天下)’.

“반보만 들어서며 찔러 낸 붕권(정권을 몸 바깥쪽으로 90도를 틀어 쥔 주먹)만으로 천하를 호령한다”는 기세 그대로였다.

형의권 고수가 아니라면 그의 체구에 비춰볼때 도저히 가능하리라 믿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

잔뜩 낮췄던 몸을 세우는 반탄력과 체중을 실은 보법으로 파도처럼 밀고드는 파워,

어깨밑 팔근육(상박)을 들어올려 뻗는 주먹 힘이 합일된 지르기였다.

무술의 힘쓰는 기본 원리(발경·發勁)가 충실히 깔린 권(拳)이었다.

여기에 신속무비한 빠르기까지 겸비됐으니…. 늑골을 빗겨 흘려 맞았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형의권은 종적인 힘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데 그 정수가 있습니다.

몸을 높이는 탄력으로 상대 공격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막고,

주먹을 비틀어 올려 지를 땐 몸을 낮추는 힘을 이용하는 식이예요.” 동작을 반복해 살펴보니,

정 사범의 몸 움직임이 튕겨져 나온 용수철 같이 탄력이 엄청났다.

“형의권은 단순하지만 강맹함이 특징입니다. 상대 공격을 기다렸다 빈틈을 노려 온몸을 창 삼아 비호처럼 찔러 들어가는 거지요.

” 그래서 형의권은 창술에서 비롯된 권법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창술 역시 형의권의 독특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상대 병기를 크게 걸어 막아(난·欄),

눌러 잡은(나·拿) 뒤 병기를 타고 비틀어 찌르는(찰·擦) 폼이 매끄럽다.

단순한데 반해 강맹함이 돋보였다.

3m에 가까운 창을 사용하는 통에 허리힘 이용이 필수.

이 때문에 형의창술 대가가 창을 허리에 붙여 상대를 찌른 뒤 탄력이 뛰어난 창대를 눌러 빼낼 때면 상대 내장이 훑어지는 게 십중팔구요, 몸까지 들어 올려지기도 십상이라고 했다.

반면 그의 도법(刀法)은 느리면서도 묵직했다.

칼 끝이 넓어서인지 상대 몸에 도를 대고 잡아 당겨 끊어 베어내는 수법이 살수이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

앞으로 내디딘 다리를 강하게 구르며 역으로 팔을 당겨 끊는 그의 칼 끝에 심후한 공력이 묻어났다.

신기했다.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정 사범이 자신의 30년 무술 연공사를 털어 놓았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술은 초등학교 때 처음 태권도를 시작했다. 몸이 약해 아버지 강요로 억지로 동네 태권도장에 다니게 된 것.

그런데 몸집이 작다보니 덩치 큰 동년배들에게 두둘겨 맞기가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깊어졌고,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충천했다.

그러던중 그는 당시 붐을 일으켰던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을 보고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체구도 작은 사람이 혼자 수십명을 상대하다니….”

그래서 중학교 입학과 더불어 중국무술에 입문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부서져라 5년여 동안 수련했지만 무공에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은 중국 선생한테 배워야 하는구나. 자포자기. 무술을 접을 생각을 처음 하게됐다.

그러던 그가 기연(奇緣)을 연이어 만난다.

첫째가 당시 소림권으로 세상을 떠울리던 국내 원로고수 이일형 선생에 사사할 기회를 잡았던 것.

고등학교 졸업후 서울 마포의 한 우슈도장을 찾에 갔다가 제자 도장에 잠시 들르러 온 이 선생을 만났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아직 주먹하나 제대로 지르지 못한다”고 울먹이자,

선생이 이례적으로 말학을 앉혀놓고 직접 몸을 움직여 권법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순간 정 사범의 눈이 확 뜨였다. 선생은 그러고는 마음에 든다면 손수 가르쳐 주겠노라고…. 그렇게 5년여를 수련했다.

소림권 북파권중 탄퇴(彈腿) 문파 무술을 주로 익혔다.

몸에 익은 제대로 된 기술로 힘을 쓰자니 세상에 적수가 별로 없어졌다.

주먹이 세지면 써보고 싶은 게 남자들의 생리.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희롱하는 불량배를 때려 뉘이는등 작지 않은 사건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이런 경우가 여러차례 반복된데다 국내 무술계 내부의 이러저런 소음에 혐오를 느낀 정 사범은 다시 무술을 포기했다.

이러다간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없겠구나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외도가 시작됐다. 군복무. 군제대 후에는 막노동판을 전전, 또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일도 했다.

그러다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고, 회사는 부도가 났다. 또다시 시작된 1년여의 방황.

그러다 98년 겨울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유통사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시장조사차 중국에 갔었지요. 그런데 귀국 하는 날 북경대학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형의권을 수련중인 흑의무리를 봤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저를 놓고는 바로 쫓아 갔지요.

” 그런데 지도선생이 내민 명함을 보니 북경형의권연구회 저국용 회장이라 돼 있었다.

솔깃해져 선생의 시연을 청했다. “선생이 흔쾌히 투로를 보여주시는데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선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바닥이 땅속부터 ‘웅웅’하고 울려 엄청난 공력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죠.”

이에 감화를 받은 정 사범은 중국을 1달에 1번 꼴로 들러 15여일씩 저 선생 지도를 받기를 3년여.

이렇듯 정 사범이 궁색한 처지임에도 무술수련에 열성을 보이자,

주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무술로 밥벌이를 해보라”는 권유가 잇달았다.

결국 그는 지난 2000년 인터넷 사이트 ‘우슈넷’(www.wushunet.com)을 만들었고,

현재 이 사이트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서울 종로 구민회관에서 형의권 강좌를 하고있다.

“운이 좋았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연달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지금은 형의권 매력에 푹 빠져 살죠. 이제 고민 같은 건 안합니다.

” 정 사범은 요즘 거의 매일같이 세상이 고요한 밤 11시쯤이면 경기도 일산 집주위의 주차장에서 홀로 수련을 한다고 했다.

“다리로 솟아나는 땅기운을 얻고 팔로는 하늘을 품어 권을 내지르니 우주와 내가 곧 하나라.

천기를 호흡하는 기쁨보다 더 큰 감동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도 무술수련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형의권이란
형의권(形意拳)은 밖으로 드러나는 동작(형·形)과 내부 의식(의·意)의 통일을 중시하는 권법으로

내가3권(태극권, 팔괘장, 형의권)중 하나다. 행의권(行意拳) 또는 심의권(心意拳)으로도 불린다.

형의권에는 크게 심의육합권, 하북 형의권, 산서 형의권의 세 유파가 있다. 이중 심의육합권이 원류로 통한다.

그러나 현재 형의권이라고 하면 동작이 크고 발경이 강맹하면서도 오묘한 하북 형의권을 가리키며,

산서파는 하북 형의권과 기본 원리가 유사하지만 동작이 비교적 작은 게 특징이다.

형의권 수련은 5가지 기본권법(오행권·五行拳) 연공에서 시작한다.

오행권의 공격과 방어술은 오행의 상생상극의 원리에 꼭 맞게 이루어져 있다.

이어 12형권을 익힌다. 12형권이란 용·호랑이·말·닭·제비·뱀·원숭이등 동물의 동작과 특징을 오행권의 원리에 따라 구성한 권법이다.

특히 이들 권법은 모두 힘과 기법 운용에 있어 완벽한 조화를 갖추고 있는 만큼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만 터득하면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형의권사 곽운심은 오행권중 붕권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스승이 말을 타고 길을 나서면 붕권을 연습하며 그 뒤를 따른 일화로 유명하다.

한번은 의협심을 발휘하다 사람을 죽이게 돼 감옥에 들어가자 수갑을 찬 채로도 붕권 수련을 쉬지 않는등

무공 연마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전한다.

‘반보붕권으로 천하를 호령한다’는 무술계 명구는 바로 붕권 하나로 절정고수가 된 그를 두고 사람들이 칭송하였던 말이다.

無法快刀 “먼저 베어야 산다” 
검(劍). 무인(武人)들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 무예의 최고봉이라면 으레 검법을 논하기 마련이다.

때문인지 무도인이 한번 검법수련에 빠져들면 평생 헤어나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렇게 칼을 30년간 품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거합도(居合道) 한정욱(49) 사범.

그는 ‘날카로운’ 칼의 매력에 빠진 스무살 이후 가슴속 깊이 검을 심어왔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전통주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칼 전문매장 ‘나이프 갤러리’.

80여평의 지하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서늘한 검기(劍氣)가 느껴진다.

쇼윈도우에 진열된 4000여점 칼들이 잘 닦인 채 섬뜩한 검광을 뿌려댔다.

중세유럽의 장중한 대검에서부터 고대 페르시아의 굴곡이 심하게 꺾인 얄상한 칼.

중국 청조의 검신 폭이 넓은 검과 일본 사무라이들이 사용했다는 일본도들이 고색창연한 빛을 발한다.
“칼에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대학 1학년 때부터 세계를 돌아다니며 칼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날카로운 매력에 흠뻑 빠져든 거죠. 그러다 보니 매장을 꾸릴 만큼 검을 모으게 됐죠.

” 대학 졸업후 광고 기획자로 지난 2000년까지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는 한 사범.

그는 이제 마음껏 검을 즐기고 있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검을 모으고 갈무리하는 재미보다는 검법수련의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 분명해 졌다.

그는 지난 73년 성무관에 입관하면서 검법을 처음 배웠다.

당시 한국 검도계의 태두 박종규 선생에 사사했고, 한국 검도의 본령이 된 중앙도장에서 8여년 동안 사범 일을 했다.

그런데 한 사범은 목검을 사용하는 고류(古流) 검술이나 죽도를 사용하는 대한검도는 수련할수록 매력이 시들해졌다.

자신(自身)을 벨 정도의 섬뜩한 칼맛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엔 한국 검도계를 통틀어 진검을 익힐 만한 곳이 없었다.

한 사범은 고민 끝에 일본 서적을 구해다 직접 연구하며 거합도(居合道)를 수련한다.

일천일도회(一天一刀會). 그가 지난 97년부터 이끌고 있는 거합도 수련 동호회다.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창건한 검법유파

‘이도류(二刀流·장도(長刀)와 소도(小刀)를 동시에 사용, 도법을 펼친 데서 기인한 이름)’를 빗댄 말일까.

검성(劍聖) 무사시 만큼은 몰라도 자신 역시 거합도(居合道)의 고수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말일 게다.

하늘아래 칼은 나 하나밖에 없다는….

그렇다면 무사시 처럼 타고난 감각에 의지해 독학으로 익힌 그의 검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쾌도(快刀)라고 했다. 그가 30년간 추구해온 검법. 진검승부는 대개 일격(一擊)이면 결판이 난다.

누가 먼저 검집에서 칼을 뽑아내는가, 또 어떤 속도로 검을 쳐낼 수 있는 지가 검법의 질을 결정한다.

빠른 검이 강하고, 여기에 정교함이 갖춰진 검이 최고의 상승검이라.

스~릉. 칼날 길이만 84cm인 장도가 푸르스름한 몸체를 드러냈다. “이게 10년 넘게 써온 애검입니다. 몸에 익을 만큼 익었지요.

” 지난 10년간 매주 적어도 1000번씩은 휘둘렀다는 칼이었다.

20년쯤 검을 수련하다보니 자신이 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지에 도달했다. 마음가는 대로 검을 쳐낼 수 있게 됐단다.

그가 말하는 쾌도가 보고 싶어 일천일도회 수련장소인 서울 종로구 경희궁터로 향했다.

발도(發刀). 쐐애~액. 입이 쩍 벌어졌다. 왼손으로 칼집을 움켜 쥔 각도가 조금 틀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검광이 뿌려진 것.

검이 상단(上段·검을 머리 위로 바쳐 들은 상태)에서 그의 1m78의 체구가 휘두르는 힘에 크게 돌아간다.

이내 칼집으로 돌아갔던 그의 칼이 또다시 뻗어 나오며 옆으로 비스듬이 찔러 가는데 숨이 턱 멎을 만큼 신속하다.

1.5kg 무게의 칼이 돌아가는 속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 하지만 동작이 끝난 그의 검끝은 조금의 미동도 없다. 수련의 깊이가 보였다.

“검법도 좀 보여 주시죠?” “우린 그런 건 수련 안합니다. 전후좌우를 베고 찌르는 단순한 초식이 있을 뿐이죠.

사람을 베는 데 복잡한 검법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몇 동작을 익히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는 사실이에요.”

그러고는 기자에게 검집을 건넨다.

검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과 맞서 보라고. 5m쯤으로 보이던 그와의 거리가 어느 순간 검을 쳐낼 정도로 가까워졌다.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온 그의 보법 때문인지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찰라, 이미 그의 칼이 기자의 허리를 스쳐 지났고 그는 기자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어때요. 뭔가 느껴지지 않아요? 거리가 좁혀지면 바로 베는 겁니다. 계산을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요.

” 이런 걸 두고 무상검(無想劍)이라 했을까? “평소 수련을 통해 신체에 내재된 감각으로 검을 뽑는 겁니다.

만약 발도가 늦었다면 뒤로 크게 물러서거나 같이 찔러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들어오는 검을 막을 겨를 조차 생겨나지 않는 게 고수들의 대결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날이 시퍼렇게 선 진검으로 기자의 허리를 베어낼 용기가 났을까.

“내 검은 1.5cm 정도의 정확성이 있어요. 수련의 결과죠. 쾌검을 쳐내도 원하는 거리와 각도를 정확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 한 사범은 지름 5cm의 길이 30cm 대나무를 세워놓고 위에서 내려치면 한치의 오차없이 두 조각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고는 검을 내리쳐 볼테니 기자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발검(拔劍). 이어 그의 쾌도가 기자의 머리를 비스듬이 지나 어깨를 사선으로 훑고 지난다.

번쩍하는 검광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까이 검을 쳐낼 줄은 몰랐기 때문.

아마도 기자의 몸을 3cm가 넘지 않을 만큼의 간격으로 검을 휘둘러 낸 것 같았다.

“거합이요? 내가 평생에 익힌 요체는 빠르되 정확하며, 힘이 넘쳐야 한다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선공(先功)을 노려야 합니다. 상대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그 즉시 베어야 합니다.

” 잠시라도 주저한다면 자신의 몸이 두 동강이 돼 나뒹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진검을 들고 자신 앞에 선 고수중 상수(上手)로 느껴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제 그는 검을 놓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무사시는 나이 쉰이 되자 검을 버렸다.

“검을 쓰는 법을 찾았습니다. 검의 도(道)를 얻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런지….

마음속에 품어왔던 칼을 이제는 놓고 싶습니다.” 상승검법을 체득한 그는 또다른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적의 공격 물흐르듯 제압  
고수(高手)들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다.

평온하게 이를 데 없는 눈빛에다 웃음을 담뿍 머금은 부드러운 용모(容貌),

평소 여유작작한 몸가짐이 그것이다. 그게 진짜 ‘숨은’ 고수들의 본모습이다.

때문에 여간해서는 그들이 일신에 고강한 무예를 갖춘 사실을 간파해 내기 힘들다. 싸움?

그런 걸 구태여 뭐하러 하냐는 반응이 많다.

무예란 개인이 ‘도(道)’를 얻기위한 도구일 뿐 상대를 깨부수기 위해 익히는 게 아니란다.

수십년 동안 무술을 연공, 일정한 수준을 넘어선 무도인들에게는 가슴 깊이 자리했던 적(敵)이 자연스레 사라진다.

종국엔 그들의 무술은 정신적인 수양이 가미된 활인술(活人術)로 탈바꿈한다.
이런 특징이 유별난 사람이 있다.

아이기도(合氣道·합기도) 윤익암(42) 관장.

일본 아이기도의 명인 고바야시 야수오 선생의 직계 제자로 한국아이기도총연맹회 회장을 맡고있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아이기도 도장에서 만난 윤 관장은 넉넉한 동네 아저씨, 꼭 그 모습이었다.

“제가 무슨 고수라고 찾아오셨습니까. 젊었을 때 패기도 다 사라진지 이미 오랜데….

” 학창시절부터 소문난 파이터로 통했던 윤 관장.

아버지가 태권도 사범이었던 터라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익혀 고등학생 때 이미 사범일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후 타격계 무술에 심취한 윤 관장은 합기도 6단, 격투기 7단의 실력에다 무에타이,

극진가라데 등 여타 무술을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한다.

그 덕에 윤 관장은 지난 80년대 중반엔 국내 격투기신인왕전과 합기도챔피언결정전등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 거의 적수가 없다시피 했던 것.

그랬던 그의 무술관이 180도 바뀐다. 지난 89년 대만에서 열린 세계 무술시연회가 계기가 됐다.

“제가 여느때처럼 막 격파시범과 파괴적인 발차기를 의기양양하게 끝내고 돌아설 때였죠.

일본 참가단이 죽 나오는데 전부다 60∼70대 노인네들인 거예요. 도대체 뭘 하는지 들여다 봤죠.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몸동작과 손동작만으로 거구의 젊은이들을 메다 꽂고 있었다.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그들은 그렇게 어울려 즐겁게 연무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검과 창이 난무하는 전장(戰場)에서 갑옷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관절을 꺾고,

비틀어 던지던 무술을 통칭한 것이 유술(柔術).

사람들은 이같은 살인기술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표적 유술이 아이기도라 했다.

그런데 실제로 체험한 아이기도는 또다른 차원의 철학이 감춰진 무술이었다.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윤 관장은 그길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10년 넘게 아이기도의 깊이를 배웠다.

“아이기도에는 파괴적인 속성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공격의사가 없는 상대에게는 쓸 기술조차 변변찮은 무술이죠.

대신 아이기도는 상대를 감싸안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고 가르칩니다.

” 윤 관장은 이제 나와 적이 하나되는 ‘화(和)의 아이기도’의 전도사가 됐다.

참 궁금해졌다. 그의 ‘적(?)을 사랑하라’는 이율배반적인 무술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매트리스가 두툼히 깔린 도장에 선 윤 관장은 마치 돌부처 같다.

반면 그의 손속은 전광석화처럼 빨랐고, 몸동작은 교묘하기 비할 데가 없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덩치가 산만한 수련생들을 어린애 다루듯 쥐고 흔든다.

보법(步法)과 신법(身法)의 절묘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수련생들을 상대로 펼친 동작마다 윤 관장의 무예 각론이 따랐다.

수련생 하나가 두 손을 치켜들고 급하게 공격해 가자,

윤 관장은 어느샌가 사뿐한 걸음을 내딛는 동시에 수련생의 손을 아래서 위로 슬쩍 치받든다.

이어 그가 부드럽게 공격자의 손목 관절을 한번 뒤집어 자신의 등뒤로 홱 뿌리치자 수련생이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입신(入身). 일본 무술의 가장 큰 특징. 사무라이들은 상대의 검이 쳐들어 올때면 자신의 목을 내놓고서라도 빈틈을 노려 뚫고 들어간다. 아이기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명인은 고류(古流)검술(목검을 사용해 연마하는 전통 사무라이 검법)의 달인이었다.

아이기도에는 검술의 보법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슈우~욱. 이번엔 주먹 공격이 매섭게 공기를 가른다.

그러나 윤 관장은 맞선 수련생의 내디딘 앞발 옆으로 몸을 180도 돌려 붙이며 상대의 공격을 흘린다.

그는 이미 상대공격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死角)에 있었다. 전환(轉換)이다. 공격 동선(動線)을 읽고 미리 대처하는 방법.

상대의 힘의 운용 방향만 감지하면 힘 하나 안들이고 상대를 쉽게 뉘일 수 있다고 했다.

한번은 상대가 두 손을 잡은 기세로 강하게 밀쳐오자 정 관장이 빙그르르 연이어 도는듯 싶더니 상대의 목 뒷덜미를 낚아채 버린다.

수련생은 또다시 우당탕. 회전(回轉)수법이라 했다.

“재밌죠? 이게 아이기도의 기본이죠. 힘드는 동작이 없어요. 상대를 정면으로 맞받아치지 않고 그 힘을 역이용하는 겁니다.

” 이 모든 체술(體術)을 일컬어 ‘다이사바키(たいさぱき)’라 했다.

물론 관절을 꺾고, 비틀어 뽑아 버리는 관절기(貫節技)의 특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대를 제압하는 유효타가 나올 수 없다.

반면 내세울 만한 살수(殺手)는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쇼는 아닐까? 또 같은 무술 유파간 약속대련에서는 통하는 기술이 생판 다른 무술에는 안먹히는 수가 종종 있다.

그래서 기자가 덤벼봤다. 그러나 마찬가지. 어떤 공격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관절이 잡혔다 싶으면 스스로 몸을 던져 쓰러질 수밖에 없다. 뼈가 부러지지 않으려면….

또 일단 몸을 날리면 무서운 뒷심이 따라붙는다.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관성을 이용해 던지기 때문.

제 풀에 나가 떨어지는 꼴이다. 그걸 ‘합기(合氣)’라 불렀다.

“직선의 공세를 곡선으로 변화시켜 무위로 만드는 거죠. 직접 수련하면서 느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어요.

”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상대가 고수라면 공격을 흘린다거나 급소를 움켜 잡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자칫 자신이 크게 다치는 수도 다반사다.

“아이기도는 본능적인 터져나오는 체술을 익히기 위해 검술과 장술(杖術·1.5m 가량의 봉을 이용하는 무술)을 같이 수련합니다.

실전감각의 살려 상대의 공격의지와 방향, 힘의 정도를 정확하게 간파해내는 수련을 끊임없이 합니다.

” 이어 윤 관장이 도장벽에 붙은 액자를 가리킨다.

‘천리동풍(千里同風)’. 바람이 천리를 한결같이 내달을 수 있을까? 그렇게 수련해야 이룰까 말까한 게 아이기도라는 걸까.

방증? 우에시바 명인조차 나이 아흔이 넘어서야 일신의 무예를 완성했다.

그제서야 우에시바 선생이 즐겨 썼다는 글귀가 ‘무신(武神)’.

선생은 말년에 들자 날아오는 총알도 몸 한번 슬쩍 트는 것으로 피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어떤 사람이 고수입니까? “정신수련이 깊은 사람입니다.

살의를 가지고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조차 상처를 주지않고 제압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고수죠.

그런 사람은 실제 얼마 없을 겁니다….” 정 관장은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태극권이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중국무술을 꼽으라면 역시 소림권(少林拳)과 태극권(太極拳)이다.

소림권은 이연걸 주연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빠른 움직임과 도약, 강맹한 주먹과 발차기가 특기다.

반면 태극권은 부드러우면서도 끊기지 않는 움직임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태극권의 무서움을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양징보(1883~1936) 명인의 태극권 무명(武名)은 일세를 풍미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의 화경(化勁·상대의 공격을 풀어버리는 기술)과 발경(發勁·순간적으로 힘을 써 공격하는 기술)의 정순함은 견줄 상대가 없었다.

그와 대결을 벌인 당대의 숱한 고수들은 한없이 부드러워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끼다가는 일순간 ‘펑’하고 나가떨어졌다고 전한다.

태극권 수련은 부드럽게 시작해 강한 것으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최대한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기혈(氣血)의 흐름을 원활하게 뚫고, 이어 태극권 초식(招式)을 익힌다.

이 과정에서 돌로 된 커다란 항아리 돌리기, 쇠공 굴리기등 팔과 다리, 허리의 힘을 키우는 공법(功法·단련법)을 집중적으로 행한다.

그런 다음에야 상대와 퇴수(推手·약속대련)도 하고, 산수(散手·일종의 자유대련)를 통해 실전기술을 연마한다.

건강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라면 참장공과 태극권의 기본 동작만 꾸준히 수련해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단, 호흡과 의식, 동작이란 태극권 3요소를 하나로 일치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양기(養氣·기를 쌓는 것)와 연기(練氣·기를 단련하는 것)가 동시에 이뤄져 무병장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以柔制强’ 솜안에 숨긴 송곳
동양무술엔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알듯 모를듯, 또 존재하는 것 같지만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게 많다.

좀처럼 믿기 힘들다.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아예 무시해 버리기가 다반사.

그래서 전대(前代) 불세출 고수들의 영웅담 조차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런 대표적인 무술이 태극권(太極拳)일 게다. 누구라도 한두번 씩은 TV에서라도 봤을 법하다.

강맹함과 스피디함이 도외시되는 무술이다.

얼핏 보더라도 춤사위처럼 태연하게 흐느적거리는 몸짓이 결코 적을 공격해 쓰러뜨릴 위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태극권을 수련하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나?
태극권 고수를 찾았다.

무술을 연공하면서도 사군자(四君子)를 치고,

서도(書道)를 즐기는 사람. 서울 은평구 불광동 도장(www.korea―taiji.com)에서 태극권사 정민영(46) 관장을 만났다.

동양 고전음악이 흘러나오고, 수련생들은 장판지가 깔린 도장에서 맨발로 예의 그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색하시죠? 그냥 양생법(養生法)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허허.” 천진한 웃음이 어린애 같다. 요새는 건강을 위해 도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치고 박고하는 무술보다는 건강체조, 기체조를 배우러 온다.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밥맛이 좋아지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단다. 태극권을 배워 당료를 치료했다는 수련생도 있고, 안경을 벗은 사람도 나왔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아침마다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건지….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와 술, 담배로 작던 크던 간에 지병을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태극권은 만병을 치유하는 효험을 보이고 있죠.

” 때문인지 그가 지난 2001년 써낸 책 ‘참장공(站장功) 하나로 평생 건강을 지킨다(명진출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참장공은 말을 타듯 엉거주춤하게 다리를 벌려, 두손은 항아리를 안은듯 끌어안고 서 있는 수련법이다.

참장공이 태극권 수련 기본자세가 되고, 태극권은 곧 움직이는 참장공이란 해설. 태극권 동작은 각종 질병에 반발,

심신의 강력한 자정운동을 지향하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자세라 했다. 여기에 호흡법이 혈액 순환을 돕는다.

태극권에 미친 남편 바가지 긁기를 일삼던 정 관장 부인 김경희(39)씨도 4년전 태극권에 매료된 뒤 태극권 예찬론자가 됐다.

그 좋은 태극권을 진작 배우기 못한 게 아쉬울 뿐. 김씨는 현재 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태극권 강좌를 맡고있다.

김씨가 펼쳐 보인 양식(楊式)태극권은 부드럽고 온화하기 이를 데 없다.

무슨 생각에 그리 꼴똘한 지 눈을 지긋이 내리 감기도 하고, 휘 완만하게 돌아가는 손에 어깨가 가볍게 들썩인다.

그래도 무술은 역시 기격(技擊)이라 했다. 정 관장이 무명(武名)을 떨친 진식(陳式)태극권을 청했다.

그는 소림권 고수 이연걸에게 태극권을 가르쳤다는 명인 등걸 노사(老師)에 정식 배사(拜師)한 고수.

그랬더니 정 관장은 대뜸 검지 손가락을 펴서는 기자에게 내민다.

힘껏 밀어 보라고. 어찌된 영문인지 손가락 하나를 밀지 못해 기자가 되밀려 나온다.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는 통에 급조한 편법이라 했다. 기(氣)를 보여준 걸까?

그의 몸이 처음 부드럽게 출렁인다.

그러다 갑자기 쾌(快). 실을 꼬듯 비틀린 그의 망형장(망形掌·구렁이가 꾸불꾸불 감아 올라가듯 쳐낸 주먹)이 허공을 번개같이 가른다.

손바람이 휙 불었다. 엄청난 기세다. 그러나 이내 완(緩). 느릿하지만 묵직하다. 손을 접었다 펴면 어깨가 ‘퉁’ 튕겨진다.

태극권 특유의 방송(放松). 쓸데없는 힘의 낭비를 줄이고, 효과적인 방어와 내적인 힘을 실은 빠른 공격을 위한 준비 동작.

이어 잔뜩 움츠렸던 허리가 틀어지며 양손이 가운데서 허리 양 옆으로 급하게 갈라진다. 청경(廳勁)이다.

상대의 힘을 읽어, 부드럽게 받아들인 뒤 자신의 힘을 한 점으로 폭발시키는 수법.

가히 고수의 품격이 묻어난다. 그의 태극권엔 완급 조절의 묘(妙)가 숨어있다.

태극권을 이유제강(以柔制强·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함)의 무술로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태극권시 유중우강, 면리장침(太極拳是 柔中寓剛, 棉裏藏針).

양식태극권 창시자 ‘천하무적’ 양로선의 손자로 현대 태극권 최고수로 알려진 양징보(楊澄甫) 선생이 말년에 했다는 무언(武諺).

태극권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 속에 강함을 품고 있으니, 이는 마치 솜뭉치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감춘 것과 같다는 말이다.

태극권의 힘쓰는 방법이다.

“태극권은 신(精神·정신)이 일어나면 기(氣)가 따르고, 이어 몸이 움직이는 무술이에요. 의념(意念)을 중시하는 거죠.

” 태극권이 뭔가 뜸을 들이는듯 느릿한 이유다. 믿음이 강할수록 수련효과가 크고, 무술도 강해진다.

무술이 강해지면 그 기로 하늘의 구름도 가를 수 있다 했다.

“태극권은 나이가 들수록, 또 수련할수록 기예가 높아져요. 생각의 힘이 깊어지기 때문이죠. 과학적 근거도 있어요.

태극권은 어깨와 단전, 또 대퇴부 인대의 힘을 주로 이용하는 무술입니다.

그런데 인대는 근육과 달리 노화가 굉장히 느리다는 거죠. 논문도 나왔더군요.”

정 관장은 태극권 외에도 익히 알려진 비기(秘技)가 한 둘이 아니다.

전극련 노사에 사사한 음양 팔괘장과 마림장 선생이 친히 전수했다는 심의육합권 시연을 청했다.

팔괘장의 독특한 계횡보(鷄橫步). 쭈볏쭈볏 내리차는 발걸음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뭘 하자는 건지….

그가 도장 한 켠에서 어른 등판만한 미트를 툭툭털어 들고 나왔다.

덩치가 산만한 수련생에게 쥐어 주더니 기자보고 한 번 차보란다.

유파에 따라 다르지만 정통무술의 발차기는 관각(貫脚)이 대부분.

끊어차는 게 아니라 목표물을 뚫는 발차기다. 퍼~억. 수련생이 대충 움찔한다.

이번엔 정 관장이 시범을 보였다. 로우킥. 수련생은 세발짝이나 뒤로 물러섰다.

날렵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가 영 믿기지 않을 정도. 다 계횡보 수련의 덕이란다.

살인기로 알려진 심의육합권은 파괴력이 일품. 팔목과 무릎 관절치기가 장기다.

상대방의 하체를 공격, 중심을 무너뜨린 뒤 파상적인 팔목 관절기로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간다.

시범도중 정 관장이 슬쩍 기자의 종아리를 찼다. 그때는 조금 아프다 싶을 정도였는데 두 세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저려왔다.

“싸움을 염두에 두고 무술을 익힌다는 건 허망한 짓이에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태극권 역시 건강을 지키고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도장을 나서는 기자에게 정 관장은 언제 한 번 들러 달라고 했다.

난(蘭)을 쳐 주겠다고…. 태극권에 미쳐 돈이 안되는 도장을 10년 넘게 붙들고 살아온 사람.

현대인의 양생을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버텨왔다. 기자의 등 뒤로 정 관장에게서 나는 난초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얼쑤!이크!창끝 고무다리 발끝 
 무예(武藝) 인간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다.

때문에 수십년을 연공한 고수(高手)의 몸놀림을 곁에서 지켜보자면 저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들고 만다.

고수가 구현하는 무예가 강한 것이든, 부드러움을 추구하든 그 현란한 몸짓에는 흐트러짐 없는 고도의 절제됨이 녹아있기 마련.

불필요한 동작은 추호도 찾을 수 없고, 동작은 바늘 끝처럼 최소한의 모양으로 응축돼 작아진다.

그런 군더더기 없는, 물흐르듯 자연스런 고수의 움직임에서 배어나오는 행위예술의 총체가 무예의 최고봉이라.

수천년의 전통을 이어온 ‘택견(또는 태껸)’ 명인(名人)이 보여 준 모습이 꼭 그러했다.

국내 유일의 택견(중요무형문화재 76호) 인간문화재 운암(雲巖) 정경화(48).

학(鶴)처럼 고고한 움직임을 간직한 그는

지난 87년 작고한 택견계의 두 큰 어른 송덕기(宋德基) 옹(翁)과 신한승(辛漢承) 선생의 직계 전인이다.

“택견의 선(線)은 부드럽습니다.

한국의 산 모양이 둥글둥글하고, 기와집 처마 끝이 부드럽게 치켜 올라간 형상과 꼭 같아요.

부드러운 움직임, 그게 한국 택견의 특질입니다”. 운암의 ‘택견 사랑’ 출발점이다.

선조들이 지켜온 고유의 몸짓,

얼핏 탈춤의 출렁거림과도 크게 진배없어 보이는 그 움직임은 부지불식간에 한국인의 눈에 익고 몸에 배어있는지라

어린애들조차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단아한 고의적삼을 차려입은 운암이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잔디밭에 턱하니 섰다.

그의 두 손이 연방 아래위로, 혹은 양 옆으로 갈라졌다가 합쳐진다. 활갯짓이다.

상대의 공격을 걷어내거나 자신의 허(虛)를 드러내 공격을 유인하는 페인트가 요체.

끊임없이 부드럽게 휩쓰는 동작에 어떤 묘(妙)가 숨어있음을 직감한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고결함이 묻어있다.

무술 초심자들이 고수들의 형(形)이나 투로(套路·권법)를 보고 속된말로 ‘뻑’ 가서는,

‘나도 언젠가는 저런 수준에 가 봐야 하잖겠는가’라는 욕심에 사로잡혀 연공에 정성을 들이는 그런 고결함 말이다.

‘품(品)밟기’가 어우러진다. 송덕기 옹은 “품밟기가 택견의 전부다”고 했다던가.

품밟기는 가장 안정적인 움직임을 간직한 일종의 보법(步法). 크게 물러서거나 옆으로 돌아서는 데 이만한 자세가 없단다.

허리 움직임으로 버드나무 가지가 휘는듯한 ‘능청거림’과 무릎의 반동이 적절히 녹아든 벌레의 ‘굼실거림’이 특이하다.

곧 ‘얼쑤!’하고 추임새가 터질 법도 한 참에 특유의 그 발질(발차기)이 터졌다.

휘~리릭. 매무세가 단정한 운암의 홑바지춤이 급하게 흔들린다.

발질의 가공할 속도 때문. 곧은 발질로 허리를 쭉 뽑아 발 앞꿈치로 차내는 데 위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창과 같이 찔러들어간다. 이어 다리를 들어 안에서 밖으로 크게 내차는 ‘째차기’는 곡선이 크다.

능청거림의 탄력을 이용, 회초리처럼 허리를 틀어서는 후려친다.

‘고무다리’로 통했다던 운암의 발질은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

운암의 발차기를 받아보니 손이 퉁그러져 나가는 묵직한 파워가 실려있다.

‘이크!’ 운암의 입에서 기합소리가 터진다.

‘신통비각술(神通飛脚術)’이란 별칭을 얻은 택견의 뛰어차기.

순식간에 상대의 ‘봉곳’(상투를 묶는 끈)을 차 떨어뜨리는 높이차기가 택견 최고의 기술이다.

돌개질(360도 뛰어 돌려차기)이 시원스럽게 돌아간다.

50줄을 바라보는 운암의 도약력이 믿기지 않는다.

구한말 종로택견의 명인 임호(林虎) 선생은 한창 시절 웬만한 담장 정도는 쉬 뛰어넘었다던가.

이어 뛰어오르며 ‘두발낭상’(깨끔발로 뛰어올라 상대의 턱차기)을 하는 데 발끝이 솟구치는 예각(銳角)이 놀랍다.

30cm가 채 안되는 거리에 선 기자의 면상을 걷어 차 올리는 날카로움이 숨어있다.

이쯤되니 ‘목엣 가시’처럼 걸렸던 점을 짚고 넘어갔다.

무예계 내지는 학계의 구구한 논란거리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구한말 민속학 저서인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보면 택견을 ‘탁견희(托肩戱)’로 표현했다.

또 “옛 풍속에 다리를 걸거나 발길질로 차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로 내기를 하곤 했는데,

폐혜가 심해 관가에서 이 다리짓을 금하니 이같은 유희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곧 택견은 씨름과 같은 내기중심의 ‘민속놀이’였다는 등등의 해석이다. 무예라기 보다는….

“그렇지 않아요. 고려때 무신 이의민이 택견의 유례가 된 수박(手搏) 기술로 의종(毅宗)의 등뼈를 꺾어,

살해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든 이후 천무(踐武) 사상 때문에 택견이 놀이화됐던 거지요”.

운암의 반론이다. 고려사에 보면, 수박의 두 고수 이의민과 두경승이 수박으로 힘겨루기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의민이 수박으로 기둥을 치니 서까래가 들썩였고, 이에 두경승이 손으로 벽을 치자 손자국이 깊게 파였다.

“택견은 종합무술이에요. 흔히 발질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손기술을 이용한 살수(殺手)가 적지 않지요. 또 씨름, 유도와 같이 상대를 걸어 던져버리는 걸이기술도 많아서 실전에 유용한 무술이죠”.

운암이 살인기술이라는 결련수(決然手) ‘본때’를 보인다.

반줌(반주먹 치기)으로 턱을 때리는 ‘낙함치기’와 접근한 상대의 코를 아래서 위로 훑어내는 ‘코침’.

상대를 낚아채며 뒷목을 치는 ‘항정치기’. 쇄골(빗장뼈)을 부수는 ‘손도끼질’.

하나 같이 상대의 뼈나 인대를 끊는 살수였다.

운암과 손 얽기를 저어해 나선 두 사범의 ‘맞서기(대련)’ 시연이 대단하다.

품밟기로 기회를 엿보다 A가 ‘뱅뱅이질’(앉은 채로 다리를 펼쳐 360도를 회전하며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을 하면

B가 ‘돌개질’로 맞서고, B가 ‘는질러차기’(발바닥 차기)로 쇄도하면

A가 이를 흘리며 칼잽이(당수)를 날린다. 휙휙 돌아가는 손속 빠르기가 비할 데 없다.

덩치가 좋은 A는 낚시걸이와 딴죽걸이(발목 걸어넘기기)등 주로 ‘걸이기술’에 능했고,

날렵한 B는 째차기와 후려차기를 주무기로 싸운다. 디딤발이 견고해 둘다 힘이 장사다. 이래서 선비각(仙飛脚)이구나.

옆에 섰던 운암은 ‘택견은 동작이 질박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곡선의 몸놀림으로 자연스럽게 공격과 방어를 하는 외유내강(外柔內强)의 무예’라고 설명한다.

또 중국의 내가권(태극권등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권법)처럼 길게 늘이는 동작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우쭐거려 튕기는 탄력을 특기로 사용한다.

“문화유산이란 한번 왜곡되면 영원히 본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 거지요.

좋건 나쁘건 택견은 우리민족이 수천년을 간직해온 아름다운 몸짓이에요.

아끼고 지켜야 할진데, 우리것에 대한 애착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앞발 세운 성난곰 먹잇감 후려치듯 
무술계에도 소위 ‘족보’가 있다. 분명 무술 명가(名家)도 존재한다.

이는 숱한 무술 유파들이 연공중인 각각의 무술이 얼마나 계통을 잘 밟아 전해졌는지,

또는 절대 고수(高手)가 얼마나 있었는가로 판명되는 것.

족보가 뚜렷하다면 당연히 무술의 정수(精髓)가 제대로 전달됐을 것이고,

따라서 문하(門下)엔 고수들도 구름처럼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반면 무술계엔 수많은 과장과 억측이 난무하기도 한다.

족보를 속이거나 문파의 비전(秘傳) 기예수준을 높여 칭하려는 허언(虛言)도 적지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단 무술가(武術家)가 몸소 부딪쳐,

특정 유파의 고수및 무술에 단 한번만이라도 탄복을 하게되면 향후 해당 문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으레 고개를 숙이게 마련.

십팔기(十八技)가 이런 경우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의 십팔기 도장.

사극에나 나올법한 당파(堂爬·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와 월도(月刀·창날이 달처럼 굽어진 창)등

장병기가 도장 한 편에 빼곡히 세워진 풍경.

작달막한 체구의 신해식(47) 관장이 소탈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지난 수십년간 국내 최고의 초절정 고수로 무명을 떨쳐,

현재 ‘무성(武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의 애제자이자 수제자인 신관장은 십팔기 6단의 고수.

8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가까이 해범 자택을 찾아 기예를 사사했다.

조선 정조 왕명으로 편찬된 무예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18가지 병장기 기예를 통칭한다는 십팔기.

한국 고유의 전통무술이다.

현대 들어서는 가문 비전으로 전해온 도가(道家)무술에 정통한 해범이 그 기예들을 세세히 풀어내면서 각광을 받았다.

얼핏 무술 수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신 관장이 자신의 특기인 편곤(鞭棍)을 집어들었다.

일종의 철퇴. 기다란 봉(棒)에 짧은 쇠사슬로 연결된 20cm 가량의 자편(茨片) 흔들리는 모양이 어지럽다.

신 관장이 편곤을 도리깨처럼 크게 휘둘러 쳐내면, 자편은 실 끊긴 연 마냥 짧은 진동을 반복한다.

웬만한 고수라도 편곤의 신귀막측(神鬼莫測)한 변화에 쉬 무너진다.

얼굴로 날아오는 편곤을 막아내면 자편이 채찍처럼 뒤통수를 감아 돌려쳐오고,

이를 피하자면 편곤이 장봉이 돼 몸통을 찔러들어온다.

단단한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자편엔 무수한 철침(鐵針)이 심어져 있다.

위력이 대단하다. 찌르고 돌려치고, 걸어 막은 뒤 후려치는 식으로 무수한 변화를 창출해 내는 신 관장의 편곤기예는 이미 절정에 올랐다. 봉의 장점과 철퇴의 위력, 채찍의 교묘함이 결합된 편곤의 묘리(妙理)를 터득한 것이다.

권법 투로(套路)를 감상했다.

웅주포가권(熊走砲架拳). 해범의 비전무술 오령권(五靈拳)중 하나다.

성난 곰이 두발로 달려들며 앞발로 먹이를 후려치는 형상을 흉내낸 권법이다.

중후한 체구의 해범이 즐겨했다는 권법. 애제자라 해범의 절기(絶技)를 받아들였던 것일까.

왜소한 신 관장이 의외로 포가권을 펼쳐 보인다.

허리를 보일듯 말듯 틀어내며 어깨를 ‘죽’ 뻗어 쳐내는 주먹이 일품이다.

자로 잰듯한 보폭과 안정된 자세로 빈틈이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

주먹을 쳐냈다가 허리로 회수하는 동선(動線)이 같은데, 일정한 리듬을 탄 듯 막힘이 없다.

완급이 조절된 신 관장의 권풍(拳風)이 도장을 꽉 채운다.

권법이란 겉으로 보이는 위력이 전부는 아니다. 무술수련을 단 몇년이라도 해본 권법가라면 시연자의 수준은 쉽게 판별해 낸다.

동작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 지를 보는 것이다. 사군자를 잘 친다 하여 서예를 잘하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다.

얼핏 아름다워 보일수도 있지만, 한자(漢字)를 모르고 써댄 글은 결국 가짜일 뿐이다.

무술에서 말하는 권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권법은 흐트러짐이 없다.

전통 명가의 기품이 녹아있는 것이다. 포가권의 요란주세(拗鸞走勢).

오른발 일보를 내딛으며 왼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눌러막고,

동시에 우권(右拳)을 허리에서 뽑아 위로 올려쳐낸다.

이어 정란세(井亂勢). 막았던 왼손을 허공에 살려 상대의 후속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우권(右拳)을 허리로 급하게 회수한다.

상대의 발차기나 주먹공격은 왼손이 막아, 오른손이 되돌려 위에서 아래로 쳐내며 끊어낸다.

“무술이란 기술 운동인 거예요. 좋은 기술일수록 완벽하게 이해해 수련해야만 그 묘(妙)가 나오는 법이지요.

섣불리 흉내만 냈다가는 오히려 상대에게 크게 당하기 십상이에요”.

해범은 ‘열 손가락에 눈이 달려야 한다’고 했단다.

눈을 감고도 상대의 공격을 감지(聽勁·청경), 빈틈을 뚫고 들어가는 감각이다.

수(手)를 정확히 알고, 반복 수련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한 것이다.

기자가 한번 손을 얽어보고 싶다고 했다. 고수를 보면 꼭 부딪쳐보고 싶어지는 법.

신 관장이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련은 단 몇 초식만에 싱겁게 끝났다.

‘철형(鐵領)’. 신 관장이 왼손 손날을 살려 내 목을 쳐오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상대와의 거리는 1.5m 가량. 그의 손이 들어왔다. 이미 예고한 공격이었는데도 막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 바람처럼 들어온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바람은 폭풍이 아니라 산들바람이었다.

거리도 있었건만 그가 출수(出手)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탓이다.

기자의 목 1촌(寸) 앞에 신 관장의 손이 멎어 있었다.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저 번쩍이며 뛰어들어가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선생님(해범)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시는데, 수차례 반복해도 상대는 공격을 막아내질 못하지요”.

무술에서 말하는 빠르기다. 상대적인 빠름.

허리를 움직이는 신법(身法)과 보법(步法)이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해범이라면

능히 상대의 공방(功方) 동작과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것.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갈진데,

상대가 아무리 빨리 응수해도 해범은 사각(死角)인 뒤로 돌아가 상대의 몸통 전체를 공격권 안에 놓게 되는 식이다.

신 관장이 이번엔 주먹을 묵직하게 쳐내며 막아보란다.

쿵! 팔뚝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느껴졌다.

젊은 시절 뼈가 드러날 정도의 혹독한 수련을 했다는 팔뚝이다.

그런데 일순 팔에 힘을 빼면서 다른 손으로 기자의 팔목 곡지혈(曲池穴)을 움켜쥔다.

전광석화 같은 빠르기다. 팔을 빼보란다. 이번엔 어깨 쇄골(鎖骨)을 관통하는 견정혈(肩井穴)을 움켜 잡혔다.

오른 어깨가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대련이 안됐다.

이번엔 대학에서 십팔기동아리 활동을 하며 도장에 나온다는 수련생들의 시연을 봤다.

창과 검의 교전, 칼과 맨손의 대련, 또 맨손간 대련. 발차기엔 힘이 실려있었고,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병장기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뱉는다.

신 관장은 해범 문하에 들어간 게 일생 최대의 행복이라 했다. 십팔기 입문 이전,

이미 중국 소림권을 익혀 도장을 내기도 했던 신 관장.

그는 지난 20여년간 십팔기 연마에만 매진, 고수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신 관장이 고마워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고고한 선비의 기풍으로 유명한 해범은 무술기예를 전해주기보다는 무술인의 몸가짐을 가르치는데 공을 들였다.

신 관장은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듯이,

무술을 통해서는 그 사람의 덕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文以評心, 武以觀德-문이평심, 무이관덕)”라고 말했다.

 

50년 연륜의 백발 찰나에 번개 연타

50대 초반 나이에 이미 중국 100대 고수의 반열에 오른 사람.

무술 교학(敎學)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중 10대 명교수로 뽑힌 먼후이펑(門惠豊·66) 선생.

이제는 베이징(北京) 체육대학 무술학과 명예교수로 위촉돼 존경을 한몸에 받고있는 그를 만났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먼후이펑 선생이지만 장년의 대춧빛 혈색과 건장한 풍채가 돋보인다.

착각번자권(脚蒜子拳). 선생은 중국내에서도 그 명맥이 끊길 찰라의 전통 무술의 유일한 전인(傳人)으로 남아있었다.

무덕(武德)에 관련한 책을 2권이나 펴냈다는 먼 선생은 특히나 무술가(武術家)로서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고상(高尙)해야죠. 천박하고 대충 얽어만든 게 아닌 본래 타고난 선(善)한 사상으로 무술을 연마해야 합니다.

무술은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아야 하고(政派·정파), 항시 겸손하며 화합을 추구해야 합니다(謙和·겸화).

그래야 정묘하고 참된 무술을 얻을 수 있죠(武技精)….

” 중국어 통역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금언(金言)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와닿는다.

착각번자권은 둘로 나눠 설명해야 한다.

‘착각(脚)’이란 관절을 끊고 뚫어내는 전통적 관각(貫脚) 형태의 신묘한 발차기다.

특히 공격 방향으로 진공(進攻)하며 날리는 태권도 ‘뒷차기’식의 발차기가 재밌다.

‘번자권(蒜子拳)’은 슬로우 비디오로 잡힌 벌새의 날개짓을 연상시키는 쾌(快)한 연권(連拳)을 특징으로 한다.

1초에 주먹을 8∼9번이나 찔러내는 식이다.

먼후이펑 선생은 번자권이 유명한 허베이성(河北省) 태생이다.

친형한테 장권(長拳)류의 무술을 익혔던 선생은 무술에 뜻을 둔 초동시절 이후 베이징에 나와 훌륭한 스승을 찾았고,

우빈로우(吳斌樓) 노사한테 착각번자권을 8년여 동안 사사했다.

우빈로우 노사(老師)는 초등학생이던 먼후이펑 선생을 가르치기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미 육순이 넘은 나이였단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가장 큰 무술도관을 운영하던 우빈로우 선생.

표국(현재의 경호회사)에서 경호원으로 일하며 칼 한자루와 구절편(九節鞭·9 마디의 쇠로 만들어진 채찍)만으로 천하를 호령해

‘화편(花鞭)’이라 칭송받았던 고수.

선생은 당시에도 제자리에서

선자(旋子·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한발로 땅을 딛고 도는 공중제비)를 12회나 연속할 정도의 기예를 자랑했다.

현재는 젊은 사람들 중에도 도움닫기 없이 그 같은 동작을 시연할 사람은 없다 했다.

자신의 기예도 당시의 선생과 비교해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하니….

착각번자권은 빠름이 생명이다. 빠르기 위해선 유연해야 한다.

문 선생은 인터뷰 도중 쇼파에 앉은 채로 다리를 펴고는 얼굴을 발끝에 쉽게 갖다댔다.

한창때는 허리를 뒤로 구부려 발바닥을 뒷통수에 댔었다 했다.

유연성은 어렸때부터의 수련 없이는 배양이 불가능하다.

착각번자권은 20세 미만의 나이에 수련하지 않고서는 그 묘(妙)를 이룰 수 없는 까닭이다.

다리만이 아닌 몸 전체의 유연성. 주먹이 일어나면 기묘한 발차기가 터지고,

다리가 영활한 보법(步法)으로 따른다. 전후좌우로 돌아가는 바람같은 속도감은 적으로 하여금 빈틈을 찾기 힘들게 만든다.

형(形)이 복잡해 수련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권법.

흰색 도복이 그의 백발(白髮)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베이징체대 캠퍼스 푸른 잔디밭에 선 그의 풍모는 역시 대가(大家)답다.

장(掌)을 죽 뻗어내더니 출수(出手)를 물리는 동시에 권(拳)을 쳐낸다.

빠른 주먹에도 체중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노인네의 그것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

너덧 걸음을 한달음에 내딛으며 쳐내는 연권(連拳)은 쾌속하기 이를 데 없다.

유난히 팔과 다리가 길어 보인다. 고무줄 같은 탄력 때문이다.

고무줄에 매단 육중한 통나무가 이리저리 퉁겨지면 이같은 효과가 나올까.

들고 나는 발과 주먹은 탄력이 붙어가면서 속도감을 배가시킨다.

남권북퇴(南拳北腿). 중국의 남쪽지방에서 주먹을 위주한 권법이 발달됐다면 북쪽지역에서는 발차기가 유명하다는 말.

북퇴의 ‘퇴(腿)’는 착각을 일컫는 것이었다.

먼 선생은 주먹을 내 뻗는 동시에 오른발로 앞차기를 날린다.

허리힘을 뽑아 아래에서 올려 찬다. 주먹과 발 공격이 교묘히 배합돼 있다.

쾌속무비(快速無比)한 권각(拳脚)의 요체는 페인트다. 막연한 빠름이 아니다.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순서를 매기며 정밀한 공방(功防)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주먹으로 상단을 가격하는 체 하다가는 다리로 무릎을 차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다가는 몸통을 180도 거꾸로 틀어대며 발차기로 가슴을 명중시킨다.

密如雨点(밀여우점), 快如閃電(쾌여섬전).

선생의 시연은 착각번자권의 특징을 칭송한 말 그대로를 꼭 빼닮았다.

연속해 터지는 주먹은 그 촘촘함이 빗방울 만큼이나 빽빽한데, 빠르기가 번갯불과 같다.

此起彼伏(차기피복), 環環相逑(환환상구). 발차기는 두 발은 번갈아 연이어 차내는데,

마치 앞발과 뒷발이 끝없는 고리를 잇댄듯 조화를 이룬다. 앞발이 공격하면 뒷발은 연타 암퇴(暗腿)을 품고있다.

먼후이펑 선생의 옆차기는 상대의 발차기가 들어오는 틈을 노려 체중이 실린 디딤발 무릎을 가격하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다.

상대의 출수를 보고도 정확하게 차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민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파상적인 연속 권(拳)을 쳐내며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다가는 뒤로 홱 몸을 돌려 뒷차기를 터뜨린다.

두손은 땅을 짚은 채로 였는데 거구의 선생이 날렵한 동작으로 시연하니 모양세가 훌륭하다.

기자가 감히 부딪혀 보니, 선생의 묵직한 팔뚝의 공력이 전달된다. 50년이 넘은 수련의 결과였다.

“착각권도 서른 가지 정도의 세세한 무술유형이 있어요.

내용이 많은 만큼 수련이 고되죠. (베이징)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기술을 전수하려 했지만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수련하는 학생을 찾지 못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수련을 자기 멋에 해내는 사람이 없는 게 아쉬워요….”

선생 말대로 라면 착각번자권은 이미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

가르쳐 줘도 한 두 번 수련한 뒤 소중한 줄 모르고 내팽겨쳐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반 백년을 무술이 좋아 수련에만 몰두했던 선생의 열정이 이제는 찾기 힘든 까닭이다.

기연(奇緣)이랄까. 먼후이펑 선생의 곁에 선 부인 간구이샹(?A桂香·63) 역시 무시못할 고수다.

남편의 대학 후배로 무술계에 입문한 뒤,

무술인들이 탄압받던 문화대혁명 당시 진식(陳式) 태극권 가문인 허난성(河南省) 진가구(陳家邱)를 찾아

태극권 사상 최고수라는 진발과(陳發科) 선생의 수제자 탠시우천(田秀臣) 사부로부터 10여년간 태극권을 사사했다는 전인(傳人).

그는 베이징체육대 무술과 교수를 역임한, 말로만 듣던 할머니 고수다.

모든 무술중에 가장 여성에게 알맞다는 태극권을 그가 시연했다.

그의 운공(運功)엔 부드러운 힘이 실린다. 진식 태극권 공식 투로(套路·권법)를 만들어낸 그의 자세는 교과서적인 모양세로 그 자체다.

현재 출간된 태극권 교재는 대부분 그의 움직임을 본떠 삽화를 그려냈다할 정도니

정제된 폼은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몰랐다.

간구이샹 선생은 이연걸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소림사를 찍기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던 소년고수 이연걸은 간 선생을 찾아 태극권을 사사했던 것.

이연걸의 자질을 물으니, 영민한 제자였단다.

선생으로부터 불과 3개월 가량만에 태극권을 사사한 이연걸은

자신의 주연 영화 ‘태극권’에서 진식 태극권 기예 대부분을 깔끔하게 펼쳐내는 영악함을 보였던 것이다.

먼후이펑과 간구이샹 선생이 이제 서로 손을 얽어 태극권 퇴수(推手·일종의 대련) 시범을 보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수(手)를 주고받음에 편안한 기운이 감돈다.

춤사위 마냥 돌아가는 두 노고수(老高手)의 몸놀림이 아름다웠다.

평생을 무술 수련에 바쳐 일가를 이룬 그들은 노년을 그렇게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