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큰한 시금치 가득하지만 반찬 내놓는 식당은 없어 섬 안쪽으로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소금밭·창고 섬초와 천일염만 사와도 이미 마음은 충분히 ‘넉넉’ # 시금치와 염전…비금도의 가을 풍경 남녘 바다의 섬들은, 이제야 가을이다. 겨울에도 푸른 난대림의 숲을 가진 남쪽의 섬들은, 가을이라고 해도 ‘온통 가을 아닌 것이 없는’ 느낌의 내륙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숲은 아직도 왕성한 초록빛을 잃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나 가을 임을 느낄 수 있으려니 했는데, 여기 전남 신안의 섬 비금도는 그마저도 없다. 추수를 끝낸 논에 ‘섬초’라고 불리는 겨울 시금치를 심어 거두기 때문이다. 논마다 시금치의 초록빛이 번져가고 있다. 달고 부드러운 비금도 시금치는 값이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지경이어서, 밭에서 거두다가 급기야 논으로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논에 시금치를 심어 거두는 곳은 아마 여기 비금도 외에는 없으리라. 비금도에서 시금치 말고도 유명한 것이 바로 소금이다. 비금도 가산 선착장에는 천일염전에 물을 퍼 올리는 물레방아 모양의 도구인 ‘수차’를 딛고 선 근육질 사내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이 사내의 이름이 뚜렷하다. 박삼만. 일제강점기에 그는 평양에서 소금밭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와 신안 일대에 전파했다. 비금도 출신 중에서는 평안남도 일대 염전에 일하러 간 이들이 여럿 있었다. 박삼만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해방 이후 귀국한 이들은 배워온 기술로 비금도에 염전을 만들었다. 비금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끓여 만드는 방식의 화염(火鹽) 제조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박삼만은 동료였던 손봉훈과 함께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신안 지역 최초의 천일염전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시험염전’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일호염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6·25전쟁 이전에 염전은 주로 38선 북쪽에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고 분단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남쪽에는 소금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이에 정부는 난민을 구호하고, 부족한 소금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비금도를 호남지역 천일염전 개발의 거점으로 삼았었다.
# 섬초와 소금만으로도 수지맞는 여행 비금도 섬 안쪽으로 발을 들이면 이내 소금밭과 소금 창고가 끝 간 데 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비금도의 많은 염전 중에서 1948년 조성한 대동염전만이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대동염전은 비금도 주민 450여 명이 조합을 구성해 조성을 추진한 염전. 그때까지만 해도 염전은 자본과 권력의 강제로 동원돼 조성되는 게 보통이었는데, 대동염전만큼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직접 운영해왔다. 대동염전이 주민 공동 소유가 된 데는 목포에서 조선업을 하며 부를 일궜던 명만술의 덕이 컸다. 염전 주인 명만술이 염전을 처분하면서 개인에게 목돈을 받고 한꺼번에 넘겨주는 대신, 염전을 작게 나눠서 주민들에게 매각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장 돈이 없는 주민에게는 외상으로도 내줬다. 덕분에 대동염전은 외지인에게 넘어가지 않은 채 여태 비금도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다. 비금도 안에는 소금을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염전에서 직접 팔기도 하고, 가게에서 알음알음 소개해주는 염전에서도 소금을 살 수 있다. 소금보다 더 이름난 비금도 섬초는 한창 수확기인데도 사기가 쉽잖다. 시금치가 흔전만전인 비금도 주민이 가게에서 시금치를 사다 먹을 리가 없으니, 비금도의 ‘하나로마트’에도 시금치는 없다. 시금치를 사려면 섬을 다니다가 때마침 수확하고 있는 주민들에게서 구입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지금 같은 수확기에 시금치를 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섬초 가격은 10㎏에 3만 원 선. 시금치도 품종이 여럿이라 더 비싼 것도 있고, 싼 것도 있다. 납작하고 잎이 두껍고 윤이 나는 게 가장 비싼 토종 시금치란다. 이렇게 장황하게 섬초 구입 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그만큼 특별해서다. 비금도를 다녀가면서 장마 직후 거둔 천일염과 다디단 섬초를 사올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 그림산, 선왕산 두 산을 이어 걷다 비금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섬 산행’이다. 비금도에는 빼어난 풍경을 가진 그림산(226m)과 선왕산(255m)이 있다. 산이라고 해봐야 두 산이 각각 해발 200m대에 불과해 하나씩 보면 부담스럽지 않다. 등산 경험이 없거나 적은 이들도 산 하나만 택한다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산행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싱겁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긴 능선으로 이어진 두 산을 종주하는 코스가 있어서다. 종주하게 되면 하나의 산을 오른 뒤에 거의 다 내려와서 다른 산을 올라야 하니, 두 산을 이어붙이면 산행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너무 헐겁지 않은 훌륭한 산행 코스가 된다. 섬 산행은 보통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을 첫손으로 꼽는데, 그림산과 선왕산의 매력은 다른 섬의 산과는 좀 다르다. 그림산과 선왕산의 능선에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도 빼어나지만, 못지않은 게 암릉과 암봉으로 이뤄진 산 자체가 가진 산세다. 지도에 표시된 산의 규모나 숫자로 잰 해발고도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경관도 있고, 기이한 바위들이 늘어선 풍경도 있다. 산행 내내 탁 트인 시야와 쪽빛 바다가 따라오는 건 물론이다. 한마디로 산에 올라 ‘산의 바깥’뿐만 아니라 ‘산의 안’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는 산행의 명소란 얘기다. 목포나 암태도에서 온 여객선이 닿는 가산선착장에 내리면 자연스럽게 도초도로 이어지는 2번 국도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 길을 따라 비금면 소재지를 지나 상암마을 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이렇게 설명하니 복잡한 듯하지만, 배에서 내려 그냥 ‘앞으로’만 가면 산행의 기점이 되는 그림산 아래 주차장에 닿게 된다. 비금도를 꺼내놓은 이유의 8할은 그림산과 선왕산 때문이고, 그게 꼭 ‘지금’인 건 산행을 하기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맘때가 연중 가장 좋기 때문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시계는 깨끗하고, 계절이 늦게 당도하는 남녘의 섬은 지금 춥지도 덥지도 않다. 소금밭에는 소금 결정이 맺히고, 비금도 섬초의 수확이 시작됐다. 여기에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 아찔한 바위와 치솟은 암봉 비금도의 산행 코스는 그림산을 먼저 올랐다가 선왕산으로 이어진다. 그림산과 선왕산은 비슷한 듯 다르다. 먼저 오르는 그림산 얘기부터. 그림산은 산 정상 주위가 가파른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급경사의 암봉이라 곳곳이 철제계단이다. 급경사의 바위에는 구부린 철근으로 발 받침을 만들어놓기도 했고, 아슬아슬한 칼날 구간에는 난간과 밧줄을 매어 놓았다. 발 받침은 물론이고, 난간과 밧줄로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았다면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건너갈 수 없었을 것 같은 구간이 한두 곳이 아니다. 지금은 우회하는 길을 정비했지만, 과거 그림산 정상은 성인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바위 구멍을 통과해야 오를 수 있었다. 이런 코스를 두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바위 구멍을 빠져나온다’고 해서 등산객들이 흔히 ‘해산굴’로 이름 붙인다.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산행객들은 굳이 고집처럼 이 길로 정상을 오른다. 정상의 시야도 좋지만, 산정에서 종주 능선 쪽으로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나타나는, 나무 덱을 설치한 암봉에서의 전망이 한 수 위다. 전망대로 오르는 나무 덱이 ‘칼로 자른 듯한’ 바위 사이로 이어진 것도 신기하다. 종주코스는 그림산에서 가파른 경사를 따라 한참을 내려왔다가, 다시 선왕산으로 차고 오른다. 그림산이 전체가 바위로 다듬어진 듯하다면, 선왕산은 곳곳에 거대한 바위들이 조각작품처럼 늘어서 있다. 거대한 마애불상처럼 서 있는 것도 있고, 복잡한 지층과 결이 새겨진 기괴한 형상으로 서 있는 것도 있다. 비금도에서 가장 높은 선왕산의 정상에서는 그림산 너머로 섬의 동쪽, 그러니까 안좌도며 장산도, 압해도를 비롯해 멀리 목포 일대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 낭만과 감성 충만한 ‘하누넘’ 해변 선왕산 정상을 넘어서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뜻밖의 광경에 탄성이 나온다. 발아래 쪽으로 쪽빛 바다와 둥근 반원의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누넘’ 해변이다. 이 정도라면 세계적인 휴양지의 이름난 해변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아무 시설이나 장식 없이도 해변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게다가 호젓하다 못해 적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즈넉하다. 혼자 와서는 필시 더 쓸쓸해질 것이고, 누군가 같이 와서 이 해변의 낭만을 함께 경험한다면, 둘 사이는 한결 더 가까워질 것임을 단언할 수 있다. 종주등반은 하누넘 해변에서 끝난다. 하누넘 해안 주변에는 때 이른 겹동백이 피었다. 그냥 한두 송이가 피어난 게 아니라 나무마다 꽃이 흐드러져 해안가 주위는 붉은 동백 꽃잎으로 온통 낭자하다. 해변이 이름으로 삼은 ‘하누넘’은 ‘하늘 너머’쯤의 의미다. 지금은 기억 속에 흐릿해졌지만 뱃길이 지금보다 더 멀었던 13년 전쯤에 오로지 이 해변 하나 보려고 관광객들이 비금도로 몰려들었다. 한류 붐을 견인한 드라마 ‘겨울연가’와 ‘여름동화’ 등을 연출한 윤석호 PD의 계절 4부작 드라마 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에 하누넘 해변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으로 줄곧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 속에서 하누넘 해변은 ‘하트 해변’으로 등장했다. 하누넘 해변 옆에 작은 백사장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두 해변을 해안도로에서 보면 누워있는 하트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하트 해변이 됐다. 실제로는 드라마제작진의 작명 센스에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고, ‘뭐 그렇게 보인다니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하트 해변이 ‘기대 이하’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꼭 하트를 닮았다고 우기지 않아도 해변의 경관과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찾아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어찌 됐든 드라마에서 ‘하트’라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이곳은 불원천리 찾아온 드라마 팬들의 성지가 됐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성지가 된 남이섬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잊혔고, 하트 해변이란 이름도 해안도의 전망대 안내판과 조형물로만 남아있다. 비금도에는 하누넘 말고도 여러 해변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명사십리해수욕장이다. 바로 옆에는 원평해수욕장도 있다. 여름철에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이런 곳들이 좋다.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백사장의 길이도 넓고, 수심도 완만하다. 하지만 여름을 뺀 다른 계절의 바닷가 낭만은 하누넘 해변 주변의 작은 백사장에 있다. 백사장이 작은 텐트 크기만 해서 딱 두 명을 위한 프라이빗 해변처럼 보이는 곳도 있고, 그곳에 숨으면 아무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해변도 여럿 있다. 인근의 다른 섬과는 사뭇 다른, 비금도만의 매력이다. # 한국 바둑의 전설과 만나다 비금도의 명사십리 해변 근처에는 폐교를 다듬어 세운 이세돌 바둑기념관이 있다. 지난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내고 24년 4개월 만에 반상을 떠난 한국 바둑의 전설 이세돌의 고향이 여기 비금도다. 기념관 앞에는 대국 중인 바둑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 유명한 이세돌과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4번 대국이다. 이 대국은 알파고와의 공식 바둑대국에서 인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인 한 판이다. 바둑판에는 알파고와의 대국을 승리로 이끌어 화제를 모은 이세돌의 ‘78수’가 놓여있다. ‘신의 한 수’라는 이 착점을 놓고 바둑계 안팎에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은퇴 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수를 “한마디로 꼼수”라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수지만 꼼수에 대한 학습이 덜 된 알파고에 버그가 생겨 ‘행운의 1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담박한 솔직함과 겸손함이야말로 그의 매력이다. 영웅의 자취는 전설이 되는 법.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그의 은퇴로 더욱 각별한 곳이 됐다. 기념관은 이세돌을 배출한 신안군이 10년 전 창단해 바둑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신안천일염팀 기념관과 이세돌 전시관, 그리고 대국실이 있다. 교실 두 칸쯤을 헐어내 만든 이세돌 전시관에는 그가 바둑을 두게 되는 과정과 현역시절의 화려한 전적 등이 소개돼 있다. 전시품이나 전시방식은 소박하지만, 섬에서 나서 바둑의 전설이 된 자긍심이 묻어났다. 바둑기념관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이세돌 전시관 옆의 대국실에서 바둑을 두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대국실로 꾸며진 폐교 교실에서는 두 판의 바둑이 두어지고 있었다. 마을 주민 넷이 서로 마주 앉아 거의 무아지경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금도 남자들은 대부분 바둑이 취미였다. 그러니 기념관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훌륭한 기원인 셈이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일행과 바둑 한 수를 놓고 갈 수도 있겠고, 대국실의 주민과 치수를 맞춰 한 판 바둑을 두며 ‘수담(手談)’을 나눠볼 수도 있겠다. 옛 기록이나 지도에는 그림산이란 이름은 없다. 선왕산에 딸린 봉우리 정도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근래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언제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주민들도 모두 ‘모른다’고 했다. ■ 여행정보 목포 북항에서 비금도까지는 쾌속선으로 1시간, 일반 카페리호로는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의 남강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비금도까지 40분이면 도착한다. 목포 북항에서 쾌속선 2편, 카페리호 3편 등 하루 5편을 운항하는 반면,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는 하루 15편을 운항한다. 요금은 목포에서 가는 게 좀 더 비싸다. 목포∼비금은 8000원, 암태∼비금은 6000원. 차량 요금은 목포∼비금 3만3000원, 암태∼비금 2만4000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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