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 출렁다리의 흥행 성공 이후 얘기는 뻔하다. 전국 지자체들이 산이건, 물이건 가리지 않고 출렁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나 ‘국내 최장’이 빠르게 경신됐다.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나오면 이내 ‘그것보다 더 긴 다리’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가장 긴 출렁다리는 지난해 말 완공된 충남 예산의 예당호 출렁다리. 출렁다리 길이가 402m다. 그런데 내년 5월 충남 논산의 탑정호에 600m짜리 출렁다리가 완공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국내를 넘어 ‘동양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란다. 베끼기식 관광개발이 어디 출렁다리뿐일까. 집라인도 그렇고, 레일바이크도 그렇다. 케이블카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성공하면 저마다 비슷비슷한 관광 시설을 들여놓고 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베끼는데 ‘망하는 곳’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겠다. 사정이 이런데, 또 출렁다리 얘기를 꺼낸다. 경남 거창 가조면의 우두산 출렁다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을 앞세워 ‘베끼기’로 폄하되고 있는 출렁다리를 또 소개하는 이유는 딱 하나. 우두산 출렁다리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출렁다리의 독특한 형태도 그렇고, 주변 지형이나 경관도 그렇다.
우두산 출렁다리는 거창군이 우두산 아래에 조성하고 있는 ‘항노화힐링랜드’ 시설 중 하나다. 2021년 말에 조성작업이 완료되는 항노화힐링랜드에는 출렁다리를 비롯해 치유의 숲, 자연휴양림, 산림치유센터, 자생식물원 등 힐링과 치유를 주제로 한 다양한 산림관광자원이 들어서게 된다. 우두산 출렁다리가 특별한 건 국내 최초로 교각 없이 세 갈래로 연결한 Y자형 출렁다리라는 점 때문이다. 우두산은 바위가 힘줄처럼 툭툭 불거진 암산. 온갖 군상의 바위들이 각기 미감을 뽐낸다. 출렁다리를 놓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이다. 우두산 출렁다리는 다른 출렁다리와 차별화를 위해 V자형으로 설계했으나, 아예 더 극적인 형태로 만들기로 하고 Y자형으로 다시 설계했다는 후문이다. 출렁다리는 해발 600m쯤의 협곡 지형에 놓였다. 마주 보고 있는 세 곳의 암봉과 암반에 출렁다리를 놓아 Y자형으로 연결했다. 출렁다리의 길이는 총연장 109m. 삼각지점에 각기 매어놓은 45m와 40m, 25m 길이의 다리가 허공의 중심에서 만난다. 공중에 띄워놓은 듯한 입체적인 출렁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구경거리’다. 흔들거리는 다리는 아슬아슬하지만, 마음을 놓아도 된다. 시공사 설명에 따르면 우두산 출렁다리 설계하중은 48t. 60㎏의 성인 800명이 올라가도 된단다. 안전하중은 설계하중보다 2배로 더 무거운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출렁다리에 1600명 이상이 올라서야 다리가 끊어진다는 얘기다. 어떤 경우에도 다리가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 물리적으로 다리 위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은 250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출렁다리에서는 발아래 협곡의 좁은 바위틈새로 쏟아지는 폭포가 보인다. 갈수기라 실 꾸러미 같은 물줄기가 걸린 정도지만, 바위틈 사이에서 꺾여서 떨어지는 폭포가 제법 운치 있다. 폭포 아래에는 깊은 소(沼)가 있다. 용이 산다는 용소다. 명주실을 풀어 넣으면 합천 해인사의 용소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초록의 신비로운 물색에 걸맞은 전설이다.
이곳 무장애 덱도 아직 공사 중이다. 전체 구간의 목재 바닥은 모두 깔았고, 한창 난간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낙엽송을 켜서 만들었다는 난간의 나뭇결무늬가 선명했다. 항노화힐링랜드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오병우 현장소장은 무장애 덱 로드를 앞장서 안내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출렁다리보다 여기 무장애 덱이 몇 배나 더 좋다”고 말했다. 무장애 덱 맞은편에는 우두산의 천년고찰 고견사를 거쳐 우두산 서쪽 지맥의 제2봉인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암봉으로 이뤄진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견사는 의상봉의 기운이 모이는 자리에 있다. ‘옛고(古)’자에 ‘볼견(見)’자를 쓰는 고견(古見)이란 절집의 이름은, 원효가 절을 창건하러 이곳으로 와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등산로와 절집 가는 길이 겹쳐지는데, 고견사까지는 1.2㎞ 남짓. 산길을 30분쯤 걸어 올라야 한다. 의상봉까지는 고견사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1㎞를 더 가야 한다. 고견사는 산중에 어찌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터에 들어서 있다. 넓은 터를 신라 때 최치원이 심었다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은행나무에 내줬다. 은행나무가 떨군 잎으로 주위가 온통 다 노란색이다. 절집은 넓은 터 뒤쪽에 축대를 놓고 앉혔다. 절집은 단정하다. 법당 마당의 빗질 자국이 단정한 걸 보니 절집 살림살이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고견사는 조선개국 초기 왕실이 수륙재를 지내도록 한 원찰이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으로 떼죽음을 당한 고려 왕 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밭을 하사하고, 궁궐의 향을 내려보내 수륙제를 지내도록 했다. 절집 경내에는 눈·코·입이 모두 마모된 고려 석불이 있다. 석불은 건너온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지만, 눈길이 더 가는 건 사성각 옆의 거대한 바위에 근래 새긴 마애불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다듬어 가부좌를 튼 석불이 바위를 빠져나올 듯 돋을새김해놓았다. 여기서는 등을 돌려 마애불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시길…. 발아래로 고견사와 그 너머 능선이 ‘마음의 눈’까지 환하게 해주니 말이다.
수승대의 본래 이름은 수송대(愁送臺)였다. 수승대 자리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접경이었는데, 바위 앞에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을 근심으로 보냈다 해서 ‘근심 수(愁)’자에 ‘보낼 송(送)’자를 썼다. 이름을 바꾼 이는 퇴계 이황이다. 장인 회갑에 거창의 처가를 찾아온 퇴계는 말로만 듣고는 ‘무슨 그런 우울한 이름을 쓰느냐’며 시를 지어 바꿔 부른 이름이 수승대(搜勝臺)였다. 새 이름에서 ‘찾을 수(搜)’에다 ‘경치가 좋다’는 뜻의 ‘이길 승(勝)’ 자를 썼으니 ‘명승지를 찾았다’는 뜻이겠다. 이름을 바꾸게 한 퇴계의 시는 수승대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뜻밖인 것은 정작 퇴계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수승대를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처가에서 십 리 거리인데도 뭐가 그리 바빴던지 퇴계는 수승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거북바위 형상의 수승대 풍경이 각별한 것은 거북과 닮아서라기보다 바위 곳곳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새겨놓은 글귀 때문이다. 바위에 새겨진 건 시나 문장도 있지만 대개가 이름이다. 옛사람들이 남긴 이름과 시문(詩文)이 바위 곳곳에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수승대는 옛사람들이 자연 속에 남긴 한 권의 책, 혹은 방명록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수승대는 또한 처남 매부 사이였던 거창 선비 ‘요수 신권’과 ‘갈천 임훈’의 후손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던 각축장이기도 했다. 양쪽 집안이 수승대 바위에 선조의 시와 문장, 급기야 후손의 이름까지 빽빽하게 새겨놓고는 서로 자기 가문의 명소로 끌어들이려다가 다툼이 생겨 끝내 수십 년에 걸친 소유권 소송까지 벌였던 것. 양쪽 가문이 적잖은 재산을 탕진하고 받은 판결은 당연히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게 누구였든 무슨 상관일까. 수승대 앞에 서면 흐르는 물처럼 덕과 학문으로 자신을 채우기에 힘썼던 옛 선비의 맑은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요수정의 물 건너편에는 구연서원이 있다. 신권이 제자를 가르치던 서당 자리에 세운 서원이다. 서원의 문루에 현판으로 건 ‘관수루(觀水樓)’는 직역하자면 ‘물을 본다’라는 뜻. 수승대의 물가를 끼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려니 싶은데, 실은 맹자에 나오는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관수루 문루의 안쪽 기둥은 휘어지고 굽어 용트림하는 나무를 일부러 골라다가 깎아 세운 것이다. 서원 마당에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큼직큼직한 글씨를 지고 있는 거대한 거북 비석이 있고, 서원 앞에는 떨군 잎으로 온통 주위를 노랗게 물들인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물을 도리(道理)로 해독하는 관수루의 멋스러운 이름에 짝할 만한 곳이, 구연서원에서 서른 걸음이나 될까 싶은 곳에 있는 신권의 아들이 공부하던 집 ‘청송당(聽松堂)’이다. 본래 자리였던 인근의 산자락에서 옮겨온 것이라는데 옮겨진 지금의 자리도 맞춘 것처럼 이름이 풍경과 딱 맞는다. 청송당 앞의 물가에 솔숲이 울창한데, 한겨울 차가운 바람 속에 ‘솔숲(松)의 소리(聽)’를 들을 만한 곳이다. ■ 출렁다리, 얼마나 출렁거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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