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⑦]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우리집에는 반지하 작업실이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새벽에 피아노를 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난한 계절병을 앓는 나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틀어놓고 목이 쉬도록 따라 부른다. 가끔 브람스 교향곡을 귀가 얼얼하도록 볼륨을 높여 듣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출력이 떨어지는 빈티지 진공관 오디오지만 바닥으로 전해지는 베이스음이 장난이 아니다.
어두운 지하방에 앉아 작은 백열등만을 켜고 앉아 창밖만 보고 있는 나를 아내는 매번 못마땅해 한다. “도대체 그놈의 생리는 한 달에 몇 번이나 하는 거냐! 이젠 폐경기가 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그런다. 그렇다. 남자에게도 나이가 들면 폐경기가 온다. 영혼의 폐경기. 크흐, 영혼의….
창밖으로 모과나무와 새가 보이는 집
내 아내는 몸도 튼튼하지만 마음은 더 튼튼하다. 도무지 계절과는 관계없는 동남아시아적 삶을 산다. 가끔 몬순바람이 불며 세찬 소나기가 올 때도 있지만 그건 잠시다. 그때만 피하면 된다. 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우울하다며, 인생이 허무하다며, 입맛이 없다며, 쫓아다니면서 맛있는 저녁 해달라는 나를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계절은 타라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사계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함께 아침방송에 출연한 후, 커피를 마시며 천하장사 이만기가 그랬다. 자기는 가을이면 낙엽 타는 냄새를 꼭 맡아야 한다고. 차 몰고 볏단 타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했다. 안 그러면 부인에게 꼭 짜증내게 된다고 그랬다. 세상을 뒤집어엎던 천하장사도 그러는데, 소심하고 귀 얇고, 뒤끝 긴,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계절 변화에 무심하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좌우간 우리집은 남 눈치 안 보고 음악도 듣고,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도 돼 좋다.
가을 햇살 좋은 날은 정말 예쁜 새가 날아와 창밖의 모과나무 위에 앉아 있기도 한다. 그 뒤의 작은 언덕에는 꿩 식구가 자주 놀러 온다.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나 올려다보면 어미 꿩이 새끼들을 데리고 언덕을 기어올라간다. 우리집은 아주 먼 시골의 전원주택이 아니다. 우리는 분당과 용인 사이에 있는 산언저리에 산다. 다들 우리집을 부러워해,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포기하면 언제든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 다들 당장 이사 올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할 자신이 없는 거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문제다. 고속도로 때문에 분당에 있는 학교에 가기가 쉽지 않다. 매일 아침 우리 부부가 번갈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 내 아침 강연과 아내의 1교시 수업이 겹칠 때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진다. 처남이나 장인이 출동하기도 한다. 밤에 큰아이가 학원에 다녀올 때도 마찬가지다. 매번 데리러 가야 한다.
‘형제약수터’에 가면 ‘행복물’이 나온다
근처에 변변한 쇼핑센터나 장볼 곳도 없다. 분당이나 용인으로 장보러 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집값도 전혀 오르지 않고, 매매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반상회 때마다 이웃들은 걱정이 많다. 그러나 어느 광고처럼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계속 그곳에 살 생각이라면 집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최근 내게 지금의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다른 곳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아이들과의 특별한 일 때문이다. 집 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로가 있다. 사실 등산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다. 그렇다고 산책로라고 하기엔 땀이 제법 많이 나오는 길이다. 숲도 꽤 깊어 어두컴컴한 길이 계속된다. 가을에 송이버섯을 따러 오는 사람들 빼놓고는, 2시간 내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작년 추석 때 아이들과 함께 그 등산로를 올랐다. 추석 음식이 소화가 안돼 산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따라나선 것이다. 송편과 배를 싸 들고 아내까지 합류했다.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둘째아이가 병아리 오줌처럼 흐르는 아주 작은 물줄기를 발견했다. 길옆으로 올라가더니 ‘약수터’를 발견했다며 모두 와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물이 바닥에서 송송 올라오고 있었다. 그 옆에서 쉬며 깎아 온 배를 먹었다. 아이들은 나무로 그 물이 솟는 곳을 파헤쳤다. 좋은 놀잇감을 만난 듯, 아이들은 손으로 물구멍 주위를 넓히고, 약수터를 만든다며 한참을 헤집었다. 그러자 제법 많은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에 정식으로 약수터를 만들자고 약속하며 산을 내려왔다.
며칠 후, 아이들과 나는 산을 다시 올랐다. 이번엔 장비가 달랐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아이의 배낭에는 정원용 자갈과 벽돌 등을 넣고, 난 야전삽을 들었다. 둘째는 나무를 잘라 만든 ‘형제약수터’팻말을 들었다. 돌과 벽돌이 가득 든 무거운 배낭을 번갈아 메가며 그 형제약수터에 낑낑거리며 올랐다. 그리고 정식으로 약수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 나오는 구멍 위에 자갈을 올려 물이 맑게 유지되도록 했다. 물 구멍 위로는 쓰러진 통나무를 잘라 덮었다. 둘째는 물길을 만든다며 크게 도움 안 되는 작업에 나름 씩씩거리며 몰두했다. 주변을 정비하고 형제약수터 팻말을 꽂았다.
형제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이제 우리식구의 정기적인 행사가 됐다. 벌써 팻말의 글씨가 바랬고, 물은 말라 있을 때가 많다. 약수터를 만들 당시에는 비가 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무늬만 약수터를 오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겐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가족이 모두 약수터를 방문하는 날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가족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있으면 아무도 산에 오르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할 때, 아니 행복함을 느끼고 가족 서로에게 고맙고 감사할 때 우리는 형제약수터를 오른다. 아내는 과일을 깎고, 보온병에 커피와 코코아를 담는다. 약수터에 오르며 나는 아이들에게 계속 다짐한다. 나중에 너희들이 장가가서 아이를 낳으면 할아버지 이야기해주며 함께 올라야 한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식구가 모두 즐거울 때면 내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어투까지 닮아 있다. 형제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우리 식구가 최근 발견한 행복의 리추얼(ritual)이다. 행복과 재미는 리추얼로 확인된다.
그토록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던 이유
그때는 그랬다.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며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을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 위에 태어났다’. 그렇게 누구나 힘들게 찾아내려 하는 내 삶의 목적을 국가가 그렇게 간단히 정해준 것이다.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모여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확인해야 하는 그 국민의례는 지금 생각하면 진짜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지금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일부 페미니스트가 예수, 석가, 공자를 마초, 남성우월주의자로 비난하는 것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냄새가 가득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농후한 국민교육헌장과 국민의례지만 당시 사회 맥락에서는 결정적 기능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후진적 경제구조를 벗어나 국가의 일대 변혁을 꾀하기 위해선 의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의례, 즉 리추얼처럼 강력한 수단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아침마다 외웠던 ‘국가를 위한 내 삶의 목적’은 지금까지 입안에 빙빙 돈다. 나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모든 이에게 물어보라.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그럼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혹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헷갈려 하는 이들은 이렇게도 대답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리추얼은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단순히 반복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계속해서 의미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습관과 리추얼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계적인 행동의 반복은 습관이다. 그러나 리추얼은 ‘반복되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의 맥락’이다. 그 행위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의미가 구성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의례나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가가 갖는 의미를 재생산한다. 그 집단주의적 의미의 재생산구조 때문에 오늘날 아무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일부 바뀌었다. 더 이상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라는 문장은 없다. 대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지난해부터 바뀌었다.
미국 국가를 들으며 감동하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과연 오늘날도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국기에 대해 꼭 그런 식으로 맹세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엄숙주의, 과도한 진지함이 싫다. 국민교육헌장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리추얼이 동반하는 그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언제까지나 이토록 진지하고, 무겁고, 부담스러워야 할까?
나는 지금도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저려온다. 어쩌다 TV를 방송이 끝날 때까지 켜놓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애국가가 장엄하게 나온다. 백두산이 나오고, 한라산이 나온다.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낙산사의 일출도 빠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장면쯤에 이르면 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이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몰입이다.
필요 이상의 몰입은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눈물을 동반하는 애국가에 대한 내 정서적 반응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눈물이 애국가 할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나와도 눈물이 나온다. 웬 황당한 상황인가. 미국식 애국을 강조하는 할리우드 영화나 스포츠에서 봤던 장면에서 학습된 결과와 내 애국가에 대한 반응이 연합되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정서적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애국가나 태극기에 대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정서적 반응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젊은이들의 태극기에 대한 태도는 기성세대들이 당황할 정도다. 그전까지 태극기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엄숙한 것, 성스러운 것이었다. 어릴 때 우리는 태극기를 정성스럽게 다루는 법까지 배웠다. 그런 태극기를 젊은이들이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치마를 해 입고, 머리띠를 하고, 민소매 ‘난닝구’까지 만들어 입은 것이다. 엄숙하게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태극기가 이제는 재미의 소재가 돼버렸다.
기성세대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할 것 없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방식이 변한 것이다. 태극기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눈물의 내용이 다르다. 젊은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더 이상 서러움과 고통을 기억하며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즐거움과 재미와 벅찬 감동의 눈물이다. 리추얼이 동반하는 정서의 내용도 달라진 것이다.
통제는 리추얼로
리추얼이 강력한 문화현상이 되는 까닭은 정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는 정형화된 리추얼을 반복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문화적 특징 중에는 다양한 사회적 리추얼이 개발됐다는 점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국민의례부터 새마을운동, 여의도광장의 국군의 날 행사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다양한 리추얼을 통해 국민 정서를 통제하려 했다. 당시 국민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묵묵히 따라 했다. 근대국가의 의미는 이젠 제발 보릿고개는 넘지 말자는 새마을운동의 리추얼로 반복됐고, 우리도 이제 제대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는 그 벅찬 감동 또한 군사 퍼레이드나 ‘박스컵’, 심지어는 ‘김일의 박치기’와 같은 사회문화적 리추얼로 재생산됐다. 오늘날 중년들이 갖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는 모두 리추얼 때문이다. 당시의 리추얼로 경험된 정서는 종교적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리추얼은 종교적 제의, 혹은 의례에서 출발한다. 아직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없었던 고대사회에서 집단은 리추얼로 유지됐다. 대부분 종교적 의례였다. 부족의 리더는 종교적 의례의 우두머리를 겸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이 종교적 의례에서 종교와 도덕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독점한 것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편 먹고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아들들은 괴로워한다. 이에 아버지를 상징하는 토템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종교의 기원이다. 또한 아버지의 여자(어머니와 누이들), 아버지의 환생동물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금지, 즉 터부에 관해서도 서로 합의한다. 아들들 중 어느 하나가 다시 강력한 아버지의 위치에 올라서,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을 원천 금지하는 사회적 합의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인 종교적 의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시부족의 질서는 이런 식의 종교적 의례를 통해 지켜졌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아니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해석이다.
종교적 권위에서 풀려난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사회에서도 의례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질서 유지의 기능을 한다. 차이는 종교적 의례가 훨씬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문화적 의례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국가적 권위가 자신들만의 의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독일의 문화사회학자 엘리아스는 이를 문명화 과정론으로 풀어낸다. 귀족들만의 독특한 몸가짐, 식탁예절, 심지어는 코 푸는 방식까지 규정하는 리추얼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리추얼의 유무는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바로 이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의례’를 종교적 맥락에만 한정해 사용하고,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는 ‘리추얼’의 영어식 표현 그대로 사용한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
리추얼의 유무로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설명법이다. 물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세련됨이나 품위 있음은 바로 이 리추얼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책상다리를 하고, 발바닥을 만져가며 “아줌마, 여기 빨리 줘요”를 외치는 변두리식당과 입구부터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기다렸다 들어가고, 앉는 것도 웨이터가 의자를 빼줘야만 앉을 수 있는 고급식당에서 느끼는 기분의 차이는 바로 이 리추얼에 있다. 사실 음식 맛이야 ‘아줌마가 빨리 주는 식당’일수록 맛있다. 호텔의 고급식당은 음식 맛보다는 리추얼을 즐기는 곳이다.
품격을 강조하는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 리추얼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가의 품격’’남성의 품격’’여성의 품격’은 다양한 리추얼을 얼마나 엄격하게 유지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단순한 태도에 관련된 리추얼이 아니다. 내면의 정서, 느낌, 감정의 리추얼이기도 하다. 엘리아스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리추얼을 통해 정제되는 것은 행동양식뿐만이 아니다. 이 리추얼을 엘리아스는 ‘하비투스(habitus)’라고 개념화한다. 하비투스가 무서운 것은 하비투스를 통해 주체 스스로도 다스리기 어려운 내면의 정서까지 관리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능에 충실한 감정들, 예를 들면 성욕, 공격성, 분노 등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분출하도록 다양한 문화적 장치가 보다 복잡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고안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임원이 되려면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그 사회적 수준에 맞는 문화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 과거 귀족들이 배웠던 문화적 가치 습득 학습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대기업 임원들은 반복해서 받는다. 한국 사회를 이끄는 리더그룹에서 가장 글로벌한 수준에 접근해 있는 집단은 대기업 임원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뒤처진 집단은 교수들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문화 수준도 교수들보다는 훨씬 높다.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세련된 매너와 품격을 유지할 것을 철저하게 교육받는다. 이들이 배우는 리더십 이론의 핵심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일이다. 정제되지 못한 감정의 발산은 리더가 범하는 가장 큰 죄악이 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현상을 프랑스의 철학자 부르디외는 계급적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 감정, 행동양식의 하비투스로 설명한다. 엘리아스의 ‘하비투스’의 프랑스적 해석이다. 결국 엘리아스나 부르디외의 하비투스 개념은 리추얼에 관한 독일적, 혹은 프랑스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무너진 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나치권력의 정신분석학적 기원에 몰두해 연구했다. 그들은 독일 나치가 갖는 야만상의 심리학적 기원을 독일의 권위주의적 가족주의에서 찾았다. 권위주의는 가족 내의 다양한 일상의 리추얼을 통해 반복해서 학습되고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복종과 순응을 학습한 이들에게 민주와 자유는 공포다. 히틀러는 이 권위적 아버지의 상징적 대안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의 지식인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잔재한 권위주의 타파에 앞장선다. 단체로 모이는 행사 자체를 없앤다. 학교의 단체 조회는 물론 대학의 졸업식, 심지어는 초등학교의 합창시간까지 없앤다. 집단적 리추얼의 싹을 없애버린 것이다. 전후 태어난 68세대는 아버지세대의 죄악을 비난하며 권위적 일부일처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적 가족제도를 찾아 나선다. 동거, 계약결혼, 집단동거, 등등. 그러나 리추얼의 내용은 달라질지언정, 리추얼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전의 권위적 리추얼은 또 다른 리추얼로 대치될 따름이다. 리추얼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해병전우회,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
한국 사회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로 나눠 구태여 분석하자면, 보수에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리추얼이다. 물론 리추얼이 존재한다. 그러나 낡고, 진부하다. 촌스럽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았지만 이를 보수진영의 승리로 이야기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문화적 리추얼이 없기 때문이다. 숫자로는 소수인 진보진영이 지난 10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논리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문화적 리추얼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정서를 지배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전히 낡은 투쟁적, 이분법적 리추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는 머리 나쁜 주사파들 정도에 국한된다.
진보진영의 다양한 문화적 리추얼은 지난 촛불시위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줬다. ‘미친 소’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수많은 퍼포먼스와 이벤트를 만들어냈다. 몇 가지 구호와 몸짓만으로 단숨에 사람들의 집단정서를 지배하는 무서운 응집력을 보여준다. 21세기 권력은 논리나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문화에서 나온다. 그래서 문화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그 문화권력의 생성과정에서 리추얼의 기능은 결정적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이 문화 과정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이념적 구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집단문화에서 이 리추얼의 기능은 절대적이다. 한국 집단주의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해병전우회,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를 살펴보자. 이 세 집단이 결속력이 그토록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리추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컨테이너를 놓아두고, 때만 되면 해병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이 해병전우회가 즐기는 것은 ‘귀신 잡는 해병’의 정서적 리추얼이다.
고려대교우회도 마찬가지다. 모이면 자기들끼리 ‘고대’를 외친다. 밖에서 보면 정말 웃긴다. 그러나 그 리추얼에 익숙해지면 즐겁다. 행복하다. 얼마 전 고려대 경영대의 최고위과정 워크숍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자 신입생환영회가 이어졌다. 이 신입생환영회에서 행해진 프로그램은 단 한 가지였다. ‘민족고대…’ 어쩌구 하는 건배구호 학습이었다. 선창자가 ‘‥을 위하‥’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어서 모두 ‘‥고!’를 외치고 그 다음은 ‘고!, 고!’, 그 다음은 ‘고!, 고!, 고!’ 하는 식이다. 고대라 ‘위하고!’란다. 연대에서는 ‘위하..’하면 다들 ‘‥세!’하고 외친다. 연세대라 ‘위하세’인 것이다. 그러나 ‘고!’를 외칠 때의 정서적 충격이 훨씬 강력하다. 아, 그 ‘황당한’ 구호만 돌아가면서 외치고, 틀리면 벌주를 마시는 데만 3시간이 족히 걸렸다. 남들이 보면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이들은 이 리추얼의 학습을 통해 자신들만의 소속감을 확인하고, 확대재생산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행복하다. 그리고 정말 즐겁다.
호남향우회도 마찬가지다. 남도 특유의 리추얼은 언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뒤끝을 흐리며 말끝마다 상대방의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는 ‘… 하지요, 잉!’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전세계 어딜 가도 호남사람들을 서로 뭉치게 하는 강력한 정서공유 수단이다.
해병전우회,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의 물불 안 가리는 집단주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집단이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강력한 문화적 리추얼은 정서공유를 통한 공동체 구성원리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준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든다. 호남사람이 고려대 다니다 해병대 다녀오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
한국 사회가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는 문화적 리추얼이 부재해서다. 고작해야 해병전우회,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의 학연, 지연, 군연(?)의 공동체가 전부다. 이들 세 집단이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문화적 가치를 구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정서공유의 리추얼이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없다. 문화가 사라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바로 이 빈틈을 뚫고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리추얼만이 춤춘다. 모두들 ‘건들기만 해봐라’ 하는 표정과 몸짓이다.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리추얼만 남다
행복과 재미의 리추얼이 회복돼야 한다.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는 축제가 복원돼야 한다. 관광객 주머니만 털 생각하는 지역축제는 정말 아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는 축제에 외부의 관광객들이 찾아가게 돼 있다. 한번 가고는 다시 가고픈 마음이 안 드는, 어디나 똑같은 그런 지역 축제가 아니다. 축제를 통해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의 리추얼은 반복되며 제 기능을 한다. 행복과 재미의 리추얼이 사라진 삶은 사는 게 아니다. 견디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더 이상 월급 받고 내 노동력을 파는 곳이 아니다. 내 존재가 확인되는 곳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연봉과 지위로만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우울한 일은 없다. 그러니 뛰어난 인재일수록 가능한 한 높은 지위와 연봉을 받고, 몸값 불려 다른 직장으로 튈 생각만 할뿐이다. 문화가 사라진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정서공유의 리추얼이 없다는 이야기다. 정서공유의 리추얼이 없다는 이야기는 지식경영의 결정적 조건이 되는 암묵지의 부재로 이어진다. 결국 지식구성체로서의 기능이 마비된다. 그래서 펀경영은 ‘리추얼 매니지먼트(ritual management)’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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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어떤가? 내가 정말 우연히 발견한 뒷산 형제약수터로 인한 행복과 재미의 리추얼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가족이 얼마나 될까? 이런 행복과 재미의 리추얼을 끝없이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다. 식탁에서 반복되는 행복의 리추얼,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아이들과 반복하는 재회의 리추얼을 만들어야 한다. 자녀가 아직 아기였을 때, 재우며 옛날 이야기해주던 것 같은 행복을 확인하는 리추얼을 회복해야 한다. 가족은 그런 리추얼을 만들고 배우라고 만들어진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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