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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醉月 2008. 11. 16. 16:01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드럼통 치켜들고 삽 휘두르면 일단 후퇴할 수밖에요”

 

박경조(48) 경위가 중국어선을 검색하던 중 숨졌다. 이후 해경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중국선원 구속, 3003함 함장 직위 해제, 특수기동대 창설, 헬기 탑재한 3000t급 경비함정 상주 배치까지. 그러나 오늘도 우리 측 EEZ 해역을 지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경에겐 아직 먼 얘기였다. 10월3일부터 3박4일간 49명의 해경이 탑승한 경비함(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509함)에 동승해 중국어선 검문 현장을 지켜봤다.
 
 

“정말 이런 날이 없어요. 호수죠, 호수. 꼭 누가 오시기만 하면 이렇다니까. 그러니 우리 고생하는 걸 제대로 알려드릴 수가 없죠. 출동한 지 3일이 지나도록 바다가 이리 잔잔하긴 어려운데…. 꼴랑거리기 시작하면 밥도 못 먹고 토하고 드러눕기 일쑤거든요. 롤링(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없고 피칭(상하로 흔들리는 것)도 없고. 게다가 중국어선도 국경일이다 뭐다 해서 한 척도 보이질 않으니, 운이 좋아요 운이 좋아.”

목포 앞바다 EEZ(배타적경제수역) 선상을 나흘째 오가던 1509함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시간. 함장, 부함장, 기관장이 연이어 기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한 마음에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해경이 중국어선을 어떻게 잡는지’ 취재하러 왔는데 3일 동안 본 거라고는 해경들의 심심한 일상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밤을 새우는 수밖에. 혹시나 배가 나타나나 싶어 배 꼭대기 조타실에 자주 올라갔지만 ‘역시나’였다. 레이더에는 점 하나 찍혀 있질 않다.

중국어선 검문시 단정요원 8명이 출동한다. 사진은 배에서 단정을 내리는 광경.

기관실에 내려가니 마침 당직자들이 야식을 먹고 있다. 메뉴는 오이김치와 속이 꽉 찬 참치김밥, 다시마와 콩나물 우려낸 국물에 끓인 라면이다. 기관실 직원들은 “내무반장이 음식솜씨가 좋다”며 “김치도 직접 담근 것”이라 치켜세운다. 야식을 만든 임현섭 내무반장이 구석에서 수줍게 웃는다. 밤늦게 과식한 터라 운동 삼아 배 꼭대기에 있는 조타실에 올라갔다. 시곗바늘은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탐자(레이더 들여다보는 사람)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레이더에 중국 어선으로 추정되는 배 두 척이 잡힙니다!”

조타실 양옆에 설치된 레이더에 형광빛 초록색 물표(점)두개가 찍혀 있다. 어두운 조타실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 전탐자가 그 물표를 클릭하자 속도와 위치, 이 배와의 거리가 찍힌다.

당직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함장님, 지금 EEZ 내측 4마일 선상에서 중국어선 두 척이 조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2분도 지나지 않아, 조타실 바로 밑 자기 방에 머물러 있던 함장이 정복을 갖춰 입고 뛰어올라왔다. 전탐자는 레이더를 가리키며 함장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그 사이 육안에 들어온 어선 숫자는 두 척이 아니라 여덟 척으로 늘어났다. 철선과 달리 목선은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 20t급 목선의 경우 5마일 이내에 있어야 레이더에 포착된다.

“검색해보자고. 부함장, 출동 준비시키소!”

부함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알리는 공지가 배 전체에 쩌렁쩌렁 울린다.

“알림, 알림, 잠시 후 중국어선 검색 예정, 거리 3마일, 검색요원을 다음과 같이 하달함. 단정장 경사 한원산, 단정요원 수경 정부용, 검색 1조 경위 배준, 경장 석충환, 순경 이태묵, 검색 2조 경사 신철호, 경장 주희안 순경 정명환, 잠시 후 검색 예정, 바로 준비 바람!”

 

“허가 있는지 파악해라!”

이미 조타실에서는 현장 증거를 모으기 위한 채증이 시작됐다. 담당요원이 캠코더를 잡고 전자해도와 레이더를 비추며 경비함과 중국 어선의 위치를 기록으로 남긴다. 허름한 배가 여러 척 나타나자 해적선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어선들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겹쳐 있던 배들이 각각 식별되자 여덟 척이 아니라 열 척임이 확인된다. 채증요원이 확인된 사항을 캠코더로 기록한다.

“2008년 10월6일 공삼백시(03:00시), 본함의 위치 북위 35도 28.56분, 동경 124도 33.41분, 홍도 북서 55마일. 중국어선으로 추정되는 타깃 번호 33번과 34번, 위치 북위 35도 33분 동경 124도 37분에서 3노트로 이동 조업 중에 있음. 홍도 북서 57마일, EEZ 내측 5마일임!”

3분이 지나도 검색요원들이 나오지 않자 함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부함장이 다시 마이크를 든다. 갑판에는 단정(인명구조용, 불법어선 검거용 소형 배)요원으로 호명된 이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구명재킷과 헬멧을 착용 중이다. 단정장비를 내리기 위해 전경도 10여 명 나와 있다. 함장이 다시 소리친다.

“허가 여부 파악해라!”

   

파도가 높으면 배가 들썩여 단정 타기가 더 어렵다(왼쪽). 전탐자가 레이더를 보고 있다(오른쪽).

조타실의 경찰관 세 명이 저마다 망원경을 들고 어선에 붙은 허가번호를 확인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번호판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탐조등이 도는 그 짧은 순간에 한 척씩 확인해야 하는 식이다. 그러니 3, 4분이 지나도록 허가번호는 쉬이 파악되질 않는다.

조타실 배준 경위가 망원경으로 확인하곤 소리친다.

“어선번호 오-일-일-칠, 반복합니다. 오일일칠!”

조타실 뒤 조사실에서 EEZ 조업허가명부를 뒤지던 박주연 순경이 외친다.

“허가 있습니다. 출항신고도 했습니다!”

이번엔 김선훈 순경이 소리친다.

“어선번호 오-이-일-이! 오이일이!”

허가 있는 배냐고 함장이 묻자 이번에도 박 순경이 ‘허가 있음’을 확인한다.

이동 중인 배에 탐조등을 잘 비추라는 지시가 연이어 내려진다. 5분이 지났지만 10척 중 5척의 허가번호만이 파악된다. 어선들이 첩첩이 떠 있는데다 멀리 있어 탐조등을 비추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경조 경위를 죽음으로 몬 그 17톤급 목선. 해경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수거한 뒤 인데도 여전히 무기가 될 만한 것이 눈에 띈다.

고개 돌린 채 담배 피우던 청년

중국 어선의 폭력 시비가 한창 예민한 문제로 불거져 있었기 때문일까, 함장은 끝내 단정을 바다에 내리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다섯 척 모두 허가번호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어선 가운데 한 척에 ‘멈추라’고 중국말로 방송한다. ‘계류하라’는 지시가 이어진다.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해서였는지 지시를 받은 배는 계류를 위해 순순히 경비함으로 다가왔다.

갑판장으로 뛰어내려가자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요호어 35059호가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작았지만 가까이 오니 놀이동산의 바이킹만큼 크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데도 수산물시장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등어 썩은 냄새다. 옆에 서 있던 박래혁 순경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 정도면 향긋한 것”이라고 말한다.

“양쯔강 쪽에는 이미 중국 어선들이 고기를 다 긁어가서 여기로 오는데, 이 배는 조업 나온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청소도 꽤 잘돼 있고. 이 정도면 냄새 나는 것도 아니죠. 지난번에 36시간 호송했을 때는 정말이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니까요. 코가 제일 빨리 둔감해지지만, 어선에 갈 때마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꾀죄죄한 내복을 입고 눈을 껌뻑껌뻑 하는 중국 선원 10여 명이 선실로 사라졌다 다시 갑판으로 올라왔다 한다. 복장만 다를 뿐 영락없는 서울역 노숙자들이다. 경찰관들이 선장을 경비함으로 데려간 게 착잡했던지 갑판 한켠에서 담배를 무는 이도 보인다. 배 생활에 찌들어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돌린 채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곤 이내 꽁초를 바다에 던진다.

선장을 조사했지만 이제 막 조업을 시작한 배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돌려보낸다. 빨간 줄이 그어진 누런 내복을 입은 선장은 경찰들의 질의에 주눅이 들었는지 몸이 굳어 있다. “중국에서 박 경위 사건을 들었다”는 그는 출항 직전 당국으로부터 “한국 경비함이 조사를 하거든 잘 응하라” 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박 경위 사건으로 한국 정부가 격렬히 항의한 데 따라 중국 측이 취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한국 정부에 사과한 바로 다음날에도 인천 앞바다에서는 한국경비함과 중국어선 사이에 폭행 사건이 있었다.

 

유자망 조업은 위법성 파악하기 어렵다

EEZ 내에 들어온 모든 중국 어선은 해경의 검색 대상이다. 불법 어선은 물론이고 조업허가를 받은 합법 어선 역시 고기를 기준치 이상으로 잡은 건 아닌지, 적재량을 속이지는 않는지 등 총 15가지 항목을 확인해야 한다.

단정을 내리기 위한 준비에 5분, 단정을 타고 중국 어선으로 가는 데 5분, 선장을 제압하는 데 5분, 조타실 조사와 어선 검색에 5분, 선장을 압송해 경비함으로 돌아오는 데 5분이 걸린다고 쳐도 어선 한 척 검색에는 최소 20분이 소요된다. 파도가 높고 주위가 어두우면 단정을 중국 어선에 대기가 어려워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그러니 ‘시범 케이스’를 잘 골라 검색하는 수밖에 없다.

단정을 내리지 않고 중국 어선에 경비함에 계류하도록 지시한 뒤 검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15분 이상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한 척을 검색하는 동안 위법사항이 있는 다른 어선들은 모두 도망쳐버린다.

   

검색을 한다 해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어선은 조업일지를 기록하게 돼 있으므로 이를 배에 쌓인 고기 양과 비교하면 간단히 끝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자망 조업을 하는 중국 배 대부분이 어창(물고기 보관 창고)이 없어 잡은 고기를 다른 배로 옮겨놓는다. 이 작업을 위한 어선이 따로 있을 정도. 고기를 옮기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지 않는 이상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어선 한 척이 유자망을 한 번 내리면 수백kg의 물고기가 잡히지만, 검색한 배의 일지에는 대개 수십kg만 적혀 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유자망 조업어선의 위법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게다가 기록일지는 12시를 기준으로 쓰기 때문에 오후 늦게 검색하면 ‘기록 허위작성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

이날은 단정을 내리지 않았다. 워낙 민감한 시점이라 가능한 한 다른 경비함과 연합해서 대응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함장이 “10척의 배가 조업을 안 하고 8노트 정도로 항해 중이라 단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함장은 “만약 그 배가 계류를 거절했다면 단정을 내렸을 것”이라 말했다.

 

“일단 선장부터 제압해야”

그러나 계류하라고 하기보다는 단정을 내리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조업 중인 배에 대해 경비함으로 오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정을 직접 띄우는 경우가 많다.3003함의 박 경위도 단정을 내려 검색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1509함 단정요원들의 말을 종합해 단정 내리는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대략 이렇다.

부함장과 현장지휘자의 판단에 따라 단정 하강 지시가 떨어지면, 통상 8명의 단정요원은 경비함에 높이 매달려 있는 단정을 타기 위해 사다리에 오른다. 중국 어선은 경비함으로부터 1~2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단정 요원 중 두 사람은 워키토키로 부함장이나 현장지휘자와 교신을 이어간다.

단정에는 사람 몸뚱아리만한 배낭도 챙겨 싣는다. 그 안에는 위반사항을 가려낼 도구인 디지털카메라와 자, 저울 등이 들어 있다. 시위현장의 전경들이 쓰는 방패의 4분의1 크기인 플라스틱 방패도 두 개 싣는다. 어선에 접할 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소시지처럼 생긴 ‘휀다(완충장치)’를 내리고 나면, 전경들이 단정에 연결된 밧줄을 푼다.

같은 시각 조타실에서는 전탐사가 부함장에게 가야 할 방향과 속도를 알려주고, 부함장은 이를 단정요원들에게 전한다. 중국 어선에 접해 계류하는 모든 동작은 부함장의 무선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파도가 높아 요원들이 바다에 빠질 위험이 있을 때면 돌아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자칫, 높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10초 만에 시야에서 사라져버진다.

일단 단정이 중국 어선에 계류하면 단정장은 부함장에게 승선 인원을 보고한다. 검색요원 중 세 사람은 조타실로 뛰어 올라간다. 두 명이 밖에서 다른 선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동안 한 명이 들어가 선장을 제압한다. 불법 행위를 저지른 배라면 선장이 격렬히 저항하게 마련이다. 배의 크기와 위반사항에 따라 다르긴 해도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항이 심하면…

“저항이 만만찮죠. 폭력으로 맞서는 선장도 있고요. 그렇다고 거기서 물러나면 아무것도 안 되기 때문에 격하게 대들면 신체적인 위협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까딱하면 제소될 수도 있으니 정강이를 차는 정도죠. 일단 선장을 제압하면 통신기를 끕니다. 다른 배를 불러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정요원 가운데 나머지 세 명은 어창에 들어가 어획량이 어느 정도인지, 새끼 고기들까지 잡아갈 정도로 그물이 촘촘한 것은 아닌지, 적재 기록과 실제 양이 제대로 적혀 있는지를 살핀다. 혐의점이 있는 경우 선장만 경비함으로 데려와 추가 조사를 실시하고 자인서를 작성하게 한다. 자인을 하면 압송요원들이 선장과 함께 다시 중국 어선에 오른다. 나머지 선원들은 한국경비함에 태우고, 선장과 조타수만 어선에 남아 압송요원들의 감시 하에 경비함을 따라 목포해양경찰서 전용부두나 대흑산도 흑산파출소로 향한다.

때가 덕지덕지 낀 빵

목포해양경찰서 3003함 소속 박경조경위는 단정을 내려 검색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 9월25일 가거도 서쪽 73km 해상에서 중국선원들이 휘두른 삽에 맞고 바다에 빠져 숨진 것이다. 사건 발생 이틀 전, 같은 배 경찰관 4명이 중국어선에 감금된 채 선원 20명에게 한 시간 동안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맞아, 중국 선장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풀려난 사건도 다름아닌 단정요원들의 검색 도중 벌어졌다.

중국 선원들이 저항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날은 극심했다. 게다가 그날따라, 파도도 유난히 높았다.

“3년째 중국어선 검문검색을 하고 있지만 그런 날씨는 처음이었어요. 저희(1509함)가 박 경위가 사고를 당한 어선을 압송하러 갔거든요.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고 갸들 원래 안 그랬어요. 보통은 오히려 우리 쪽에서 마음이 짠할 정도죠. 돼지가 도망 나올 정도로 지저분한 배에서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거든요. 저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잡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순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엄포 놓으면 자백도 순순히 하고요.”(박주연 순경)

   

“자기네들을 잡으러 갔는데도 채증용 디지털카메라를 신기해하며 찍어달라는 선원도 있습니다. 선장들은 저항하는 경우가 많아도 선원들은 멍하니 있는 경우가 더 많죠. 담배를 권하는가 하면 배고플 거라고 생각했는지 빵을 주기도 하고요, 때가 덕지덕지 껴 있어서 먹긴 좀 께름칙했지만.”(박래혁 순경)

그랬던 중국 어선이 1년 사이에 변했다고 1509함 해경들은 말한다. 평생 벌어도 못 갚을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야 하는 선장이 선원들에게 대들라고 시켰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중국 배 안에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이 많이 있다.

“유자망(걸그물) 깃발을 고정시키기 위해 돌멩이 같은 걸 달아놓았는데, 위급하다 싶으면 그물을 잘라내고 그걸 무기로 씁니다. 중국 어선과 단정의 높이 차이가 1m 이상이니 위에서 아래로 던지면 위험하죠. 드럼통 들고 어른 키만한 삽으로 위협하면 작전상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한을 보냈으니, 답장이 곧 오겠죠”

반면 해경 측 무기는 부실하다.

“가스총, 삼단봉, 전기충격기를 들고 가지만 마땅히 쓸 만한 게 없습니다. 높이 차이가 있으니까요. 삽을 휘두르거나 돌멩이를 던지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방패도 단정에 두 개뿐이니 턱없고요. 가스총은 바람 방향에 따라 자칫 가스가 우리한테 날아옵니다. 지금으로서는 삼단봉이 유일한 무기죠.”

중국 어선들이 떼로 몰린다는 점 또한 심각한 일이다. 박 경위 사건 때만 해도 한 번에 50척이 몰려왔다. 1509함 함장 정태인 경정은 선단으로 무리지어 다니는 중국 어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한두 척씩 다녔지만 근래에는 10척, 많게는 100척이 몰려다닙니다. 배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고, 한국 경비함을 만났을 때도 유리하다고 보는 거겠죠. 흩어져 있다가도 경비함을 보면 서로 신호를 보내 모이는 경우도 있어요. 여러 척이 합세해 폭력을 휘두르면서 검색을 거부하면 단정요원들이 더 위험해지는 거죠.”

그렇다면 경찰의 대응책은 무엇일까. 서해지방해양경찰청(서해청) 담당자는 “중국 어선들이 선단을 이뤄 다니면서 폭력행위를 한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보고받은 건 2008년 3월18일 있었던 폭력사건이 유일하다”고 했다. 한국 경비함이 검문검색을 요청하자 중국어선 20여 척이 칼과 몽둥이 등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행동을 한 것을 말한다.

한 건만 파악한 것도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소극적인 대응이다. 다시 서해청 담당자의 말이다.

“우리 측에 다친 사람이 없어서 서해청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서한을 보여주며) 중국 쪽에서 어선을 관할하는 황발해어정국에 그 배의 이름과 출항신고 여부를 묻는 서한과 해당 어선의 사법처리를 요청하는 서한 등 두 차례 서한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서한은 답신을 받았지만 두 번째 서한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9월30일 해양경찰청이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단속 과정에서 부상한 경찰관의 숫자만 26명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전까지 단 한 차례도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를 하지 않았다. 정부의 공식 항의는 박 경위 사건을 계기로 처음 이뤄졌다.

 

“인사 못 드린 게 정말 한이 돼요….”

박 경위 사건 이후 해경에는 침체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자가 1509함에 탑승한 10월3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葬)으로 거행된 영결식에 참석한 뒤 일주일 만에 출항하는 1509함 식구들의 눈에는 긴장의 빛이 어려 있었다. 구릿빛 피부의 특공대 출신 안 경사는 말하는 도중 자꾸만 표정이 어두워졌다.

“늘 하는 일이지만 긴장되는 게 사실이죠. 그동안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제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더 조심해야겠다, 우선 단정요원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애써 담담한 척하는 석종훈 경장은 우스갯소리를 섞어 이렇게 말한다.

“집에서 운전하고 나오는데, 평소에는 집안에서 인사하던 마누라가 이번에는 차 뒤에 남아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위험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혹시 누가 들을까 작은 소리로 심경을 토로하는 경찰도 있었다.

“해경 생활이 워낙 힘들어서 이직률이 높다고 하는데, 사고가 나니 정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나 싶데요. 그런 맘 안 들면 그게 이상한 거죠.”

박경조 경위와 함께 함정 근무를 했다는 요원들은 목이 깊이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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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하는 날 멀리서 뵈었는데, 소리치기가 그래서 그냥 지나쳤거든요. 인사 못한 게 정말이지 한이 되네요. 연세가 적지 않은데도 경력이 있고 실력도 좋다 보니까 이번에도 나가셨던 건데…. 국가유공자 혜택이 있긴 하지만, 퇴직금 위로금 보험금 다 합쳐도 얼마 안 될 거예요. 연금이 월 135만원이라대요. 남은 가족분이 걱정이죠….”

그의 침울한 목소리에 기자의 마음에도 순간 휑한 바람이 불었다.

누구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찰관들은 계급사회의 일원인 탓인지 대책을 물으면 하나같이 “위에서 다 알아서 하고 있을 겁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취재원을 보호하겠다고 거듭 다짐하자 그제서야 조금씩 입이 열린다. 250마력짜리 단정 한 척 대신 90마력짜리 두 척을 설치하는 게 낫다거나, 바람을 넣어야 하는 튜브형 단정 대신 미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쓰는 스펀지형 단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방수복이 필요하다, 밤에 바다에 빠져도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발광형 구명재킷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화돼야 할 대책으로 ‘무기’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말 위급한 상황에는 실탄을 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위해를 가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필요하면 실탄을 발포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현실에 적용된 적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쏠 수 있어야죠.”

 

“본때를 보여줄 겁니다.”

그러나 정태인 함장은 실탄 사용에 회의적이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으니까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고무탄이나 잠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섬광탄 정도로도 충분히 폭력행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역류 가능성이 없는 고속분무기나 그물망도 좋고요.”

기자가 “나 같으면 겁이 나서 중국 배에 오르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둘러앉은 해경들이 펄쩍 뛴다. 자신들은 그 일이 임무라는 것이다. 한참이나 선배들의 말만 듣고 있던 기관실 막내 주희안 경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민들이 중국어선들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다는 얘길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들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이니까요. 원래부터 경찰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해경 특공대에 지원해서 실력을 기른 뒤 돌아오고 싶습니다. 한국 EEZ 내에서 불법 조업을 하면 무조건 걸려 엄청난 벌금을 문다는 걸 알게 할 겁니다. 그렇게 하나둘 잡다 보면 언젠가는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경비함 요원들의 일상
“아내를 보면 지금도 설레요”


해경은 중국어선 검문 외에도 북한어선 항로 이탈 감시, 밀입국선 검색, 조난선이나 응급환자 구조도 한다. 10월5일, 1509함은 북한 어선을 시야에 두고 레이더로 항로이탈 여부를 따졌다. 2005년 남북해운합의서 발효에 따라 남과 북 사이에 항로가 생긴 뒤부터다.
이러한 임무를 총괄하는 경비함의 지도부는 함장, 부함장, 기관장으로 구성된다. 부함장은 구난, 서무, 병기를 관할하는 항해파트장이고, 기관장은 내연, 전기, 보수를 책임지는 기관파트장이다. 부함장은 배의 머리인 조타실을, 기관장은 배의 심장인 기관실을 책임진다.
경찰 공무원 근무원칙에 따라 경비함 요원들도 3교대 근무를 한다. 다만 육지 경찰은 8시간 일하고 16시간을 쉬지만 이들은 4시간 일하고 8시간을 쉰다. ‘미루아찌(미드워치)’로 불리는 0~4시 1조가 당연히 가장 힘들다. 그러나 어선 검문은 승무원 전원이 참여해야 하는 ‘올 당직’ 상황이다. 함정 관리와 검색활동이 동시에 진행되는 임무 특성상 3교대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경비함 내부는 철로 돼 있기 때문에 엔진 진동이 전달돼 계속 신경을 자극한다. 10시간을 자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기자는 배를 탄 지 3일이 되자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쑤셨다. 기관실 근무자들의 경우 소음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다. 경위 특채로 들어와 영특하다는 평을 듣는 배준 경위도 “평소에 자기계발도 하고 그래야 할 텐데 몸도 쉬이 나른해져서 허술하게 보내기 일쑤”라고 말한다. 순경들은 네 명이 한 방을 쓰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쉽다. 정명환 순경은 “엊그제 같은 방 동료와 싸웠다”며 “서로 각별히 조심해야 조용히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좁은 배 생활에서 겪는 고충이다.
그래도 고된 나날을 견딜 수 있는 건 취사병과 운동기구, 텔레비전 덕분이다. 해경 전경들은 처음 배치를 받으면 취사반 생활부터 하는데, 음식솜씨가 웬만한 전라도 아줌마보다 낫다. 지급되는 음식은 하루 세 끼. 야식은 1인당 1만원씩 모아서 미리 재료를 사온다. 탁구대와 러닝머신, 사우나시설은 없어선 안 될 ‘원기회복제‘다. 5년 전부터 위성으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나 분당 1200원 하는 수신자부담 위성전화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전에 비해 나아진 부분이다. 그러나 위성전화비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섬 근처에서만 터지는 휴대전화를 이용한다.
육지 경찰에 비해 수당은 월 60만~100만원 많다. 그러나 친구는 점점 줄어든다. 한 달에 20일 이상 근무하고 휴대전화 연락도 안 되는 친구를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모두가 볼멘소리다. 미혼 요원의 경우 마음은 더 심란하다. 올해 서른이 된 김선훈 순경에게 기관실 선배들이 충고한다.
“손만 잡다 끝날래? 일주일 동안 겨우 말 트고 고백해서 손 잡는 데까지 진도가 나가도, 출동 갔다 오면 다시 어색해져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거든. 결혼하려면 육지 근무해야지, 아니면 못해.”(웃음)
경비함은 원래 3교대 출항이 원칙이다. 쉽게 말해 일주일을 출동하면 2주일은 항구에 정박해 수리와 정비근무를 해야 맞다. 그러나 한 척이 수리에 들어가면 더 자주 출동할 수밖에 없어서, 실제로 올해 3교대가 지켜진 것은 7월뿐이다. 정박 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비상이 걸리면 한 시간 내에 집합해야 해요. 그러니 아이들 데리고 어디 멀리 놀러가지도 못하죠. ‘목포 애들은 이마트에서 꿈을 키운다’는 농담이 그래서 나왔어요.”(웃음) 안순권 경장이 말하자 옆에 있던 석종훈 경장이 거든다. “우리 애는 롯데마트여.”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그나마 좋은 건 부부 금슬이다. 기관장은 “이혼한 해경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옆에서 부함장도 거든다. “가장 오래 같이 있어본 게 닷새나 될까요. 그래서인지 결혼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아내를 보면 여전히 설레요.” 부함장 휴대전화에는 아내의 번호가 ‘오직 내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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